샌프란시스코의 북쪽끝에 위치한 항구지역, 피셔맨스 워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자전거 대여점, 시간당 8달러였던가에

 

일단 세시간을 약정하고 빌려서는 저멀리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붉은 금문교를 향해 출발.

 

금문교 반대쪽을 찍고 돌아오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대여점 아저씨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문제는 금문교로 향하는 길에 계속 밟히던 풍경들. 오른쪽으로 끼고 향하는 샌프란시스코 만에서는 악명높은 수용소

 

알카트라즈섬 내부의 건물과 시설물들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고.

 

 

 이리저리 휘영청 종횡하는 부두 시설들이 보여주는 리드미컬한 곡선들과 시퍼런 바닷물 역시.

 

 

 

중간에 잠시 녹색빛 가득한 공원을 가로질러 달리기도 하고. 알고 보니 샌프란시스코는 공원 투어가 있을 정도로 공원이 많다고.

 

 수백척의 요트가 대규모 공용주차장의 차들처럼 빽빽히 열맞춰 주차되어 있는 정박장을 지나고.

 

 

 어느새 이만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야외전시물들이 놓인 새초록 잔디밭 너머로는 붉은 금문교가, 앞으로는 개장수 아저씨가.

 

 

자전거 전용도로의 방향을 일러주는 표지판, 바닷바람에 지친 듯한 피로한 낯빛이 맘에 들었다. 

 

 돌아보면 생각보다 먼 거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금문교까지 닿는 길이 제법 오르막과 내리막이 랜덤으로 이어지는 편이다.

 

 그래도 중간중간 이런 사진찍기 딱 좋은 명당들을 마주치는 재미. 그리고 조금씩 금문교가 육박해들어오는 생생한 실감까지.

 

 

 

 시간대에 따라 금문교 위의 통행로를 자전거에 교차해서 오픈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표지판이 이만치 닳았을만큼 오랜 룰인 듯.

 

 

그리고 사진찍기 좋겠다 싶은 포인트에는 어김없이 바글거리는 사람들. 저 꼬맹이들은 무슨 수학여행이라도 나온 듯 시끌벅적.

 

 바야흐로 금문교 진입 직전. 360도로 크게 회전하는 길 중턱에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는 금문교와 함께 한 장.

 

 다리 양쪽으로 나 있는 인도 겸 자전거 도로는 생각보다 좁아서인지,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온갖 규정들이 입구부터 빼곡했다.

 

 

 금문교를 건너다가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풍경. 꽤나 멀어 보이는 게, 자전거로 쉬지 않고 달려도 삼십분은 걸리겠다.

 

 조금 땡겨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시내.

 

No U Turn. 자전거나 보행자를 위한 표지판은 아니고 실은 자동차들 보라는 표지라지만 왠지. 뭔가 계시를 받는 느낌.

 

 굉장히 고풍스럽고 우아한 금문교의 준공기념패랄까나. 청동덩어리를 양각한 듯한 모양새하며 그 클래식한 글씨체까지.

 

 

 

 뭐라더라, 선진시민은 우측통행이라던 어느 정부의 강변과는 상관없이 좌측통행을 하되 대체로 내키는 대로 보행중인 미국시민들.

 

 

 금문교 저너머로 보이는 건물들의 군집이 바로 소살리토. 시간만 괜찮으면 저기까지 내달려도 좋을 듯 해서 고민고민하던 중.

 

보통은 저기까지 내달리고는 페리에 자전거째 싣고 피셔맨스워프로 돌아오는 코스를 많이들 탄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금문교 건너편에 도착. 이쪽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또 다른 맛이 있다.

 

 

 

포카라의 페와 호수. 히말라야에서 터져나온 물줄기가 모여 호수를 이루었다는 곳이다. 해발 800미터의 포카라에서 해발 8,000미터의

 

즐비한 산봉우리들을 바라볼 수도 있고, 날이 맑고 좋으면 호수면에 비친 또다른 히말라야 영봉들을 볼 수 있다는 명소기도 하다.

 

 

 

굉장히 커다란 호수 주변에는 레스토랑과 바들이 성기게 늘어서서는 관광객들을 맞고 있기도 했지만, 여전히 네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빨래도 하고 낚시도 하고, 잠시 그늘에 쉬어가는 생활의 공간인 듯 했다.

 

띄엄띄엄, 뭔가 아직은 본격적인 관광지라기엔 엉성해보이는 배후시설들. 그래도 몇몇 군데 레스토랑은 당장 들어가 눕고 싶은

 

푹신한 쿠션이나 해먹을 걸어두고 있었다. 모히토 같은 거 한잔 하면서 한나절 빈둥대기에도 좋을 법한 곳.

 

 

아니면 저 산봉우리, '사랑곳'이라는 이름의 1,500여미터 고지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것도 시도해봄직하다. 쉼없이 산봉우리에서

 

낙하하는 분분한 낙하산들. 히말라야 산봉우리들을 뒤로 한채 휘적휘적 바람을 타며 내려오는 모습이 굉장히 재미있어 보였다.

 

 

페와 호수 가운데에는 조그마한 섬이 있는데, 힌두교 여신을 모셨다는 바라히 사원이 세워져있다고 한다.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빌려타기로 하고 가는 길에, 거리의 악사가 잠시 내려둔 네팔 전통 현악기와 타악기를 보았다.

 

현악기의 경우에는 그다지 맑거나 이쁜 소리는 아니고, 좀 탁하고 텁텁한 소리가 났던 거 같다. 튜닝장치도 좀 엉성해보이고.

 

 

 

호수변을 따라 좀 걷다보니 나타난 선착장. 배들이 전부 여기다 모여있었다.

 

 

선착장에서 배를 한시간 빌리고, 코스는 가운데의 조그마한 섬을 돌아보고 호수를 크게 한번 돌아보는 걸로 잡았다.

 

뱃사공이 포함된 요금은 400루피, 한국돈으로는 대충 4천원쯤인데 그에 더해 구명조끼 대여 비용도 개당 20루피.

 

  사랑곳 너머 새하얗고 두툼한 구름이 잔뜩 깔려있어 보이지 않지만, 저쪽 방향이 히말라야의 하얀 만년설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있는 곳이라고 했다. 하늘이 맑고 구름이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호수면에 그대로 반사되어 멋진 풍경이 보인다던데.

 

바라히 사원이 세워져있는 페와 호수 가운데의 조그마한 섬.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원에서 기도도 할 겸 더위도 식힐 겸 들어왔다.

 

해발 800미터의 포카라는 바나나나무가 길거리에 왕성하게 자라나있는 열대기후에 가까운 지역이다. 얼마전까지 안나푸르나에서

 

밤새 추위로 떨었던 걸 생각하면 믿기 어려울만큼의 온도차이다.

 

 

그리고 조그마한 섬을 꽉 채우다시피한 바라히 사원의 모습들.

 

힌두교도로서 하루를 맞을 때 신을 경배하는 의미로 이마에 새기는 빨간 꽃장식을 한 아저씨와 아이가 호숫가로 나왔다.

 

그리고 바라히사원의 중심탑. 왜 그리도 비둘기가 많던지, 그 녀석들이 푸드덕거리고 사방으로 종횡무진 날아대는 통에 시껍했다.

 

호숫물도 왠지 색깔이 혼탁해보이고 지저분해 보여서 뭐가 살기는 하려나 싶었는데, 팔뚝만한 고기떼들이 섬 주변에 잔뜩 몰렸다.

 

 

바라히 사원에서 소원을 빌고 향을 올리는 사람들. 스스로의 이마 가운데에 붉은 꽃잎을 묻히듯 사원을 지키는 사자상들에도,

 

그리고 신들의 조각상들에도 온통 붉은 꽃잎이 핏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섬 주변을 에워싼 안전망 너머로 뭐가 그리도 궁금한지, 조그마한 꼬맹이가 위태롭도록 올라가서는 수면을 바라보느라 정신없다.

 

힌두교 최고의 신 시바와 팔바티의 아들, 가네쉬의 신상. 실수로 아들의 목을 베어버린 파괴의 신 시바가 급한 대로 지나던 코끼리의

 

얼굴을 대신 붙였다는 신화가 바로 가네쉬가 코끼리 형체를 가진 신으로 정형화되는 근거가 되었다고 한다.

 

 

섬의 부둣가에서 신에게 바칠 꽃을 팔고 있는 여인, 그리고 맞은편 부두에서 섬을 향해 순례하러 오려는 수많은 사람들.

 

 

바라히사원에 마지막으로 눈길을 주고는, 다시 보트에 올라타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호수를 한바퀴 크게 돌아볼 차례.

 

내가 탄 보트도 다른 배에서 보면 저런 모양새인 거다. 나와 가이드는 샛노랑 형광색의 구명조끼를 입었고, 사공은 노를 젓는다.

 

  혹은 단체의 경우 저렇게 그늘막이 드리워진 배를 타기도 하는 것 같다. 뜨거운 태양빛을 가릴 수는 있겠지만 왠지 집이 둥둥

 

떠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 직접 타면 그다지 운치는 덜하지 않으려나 싶기도 하고.

 

호수의 맞은편, 굉장히 울창한 숲이 호숫가에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가끔 원숭이나 사슴떼들이 사람 구경을 하기도 한단다.

 

호수 수면위에 온통 둥둥 떠다니는 풀떼기들 때문에 아무래도 호수가 더럽지는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수면을 뒤덮은

 

해파리떼같은 부레옥잠들도 제법 이쁜 꽃을 틔워낸다. 연보랏빛의 하늘거리는 꽃잎, 진흙 속에 뿌리박은 연꽃이나 부레옥잠 꽃이나.

 

 

 

이 드넓은 페와 호수에 기대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지 않을까 싶다. 일종의 어업이라고 해야 하나. 배를 가지고

 

이렇게 관광객들을 유람시켜 주기도 하고, 팔뚝만하던 그 물고기들을 잡아서 팔기도 하고.

 

  그리고 다시 사랑곳. 왠지 한국어와 뭔가 관련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로맨틱해보이는 이름이지만,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한다.

 

영어로는 Sarangkot이라고 쓰던, 저 산봉우리를 언제고 다시 찾아서 패러글라이딩을 꼭 해봐야겠다는 다짐.

 

 

 

한시간을 꽉 채운 뱃놀이가 끝나고 다시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

 

커다란 호수 곳곳에 흩어졌던 배들이 제각기의 궤적과 페이스로 선착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배들을 꽁꽁 동여매서 배다리를 만들면, 이곳에서부터 바라히 사원이 있는 조그마한 섬까지 금세 이어져서는

 

사람들이 다니기도 훨씬 편하지 않으려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생각보다 다양한 원색으로 두텁게 칠한 보트들이 이쁘다.

 

그 작은 보트가 미어지도록 사람을 태우면 이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도 있다. 보트 허릿춤이 거의 물살이 찰박거리도록

 

가라앉아서는 묵직하게 나아가는 보트. 저분들은 전부 바라히 사원에 기도하러 가시는 현지분들인 듯.

 

 

 

 

 

 

태국 중부지방의 꼬싸멧,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조그마한 섬 북단에 있는 리조트 중 하나인

 

Samed Seaside Resort 앞의 조그마한 해변가. 그 앞에서 유유히 낚시중인 외국인들.

 

꼬싸멧의 해변에 형성된 모래사장은 대체로 매우 곱고 하얗다.

 

리조트, 라는 이름이긴 하지만 그렇게 럭셔리하거나 비싸지는 않은 곳. 아고다를 통해 예약하고 왔는데 만족만족.

 

 

 

해변으로 나있는 숙소 건물의 측면. 모서리에 있는 방은 방의 두 면이 바다를 향해 넓게 뷰가 트여있다.

 

그늘막이 넓게 그늘을 드리운 앞마당에는 긴의자가 여러 개.

 

 

바닥을 장식한 색색의 조개껍데기들.

 

 

 

 

그리고 다소 흐리게 시작하던 날의 아침.

 

해변을 나눠가진 다른 리조트들이 쪼르르 이어진 모래사장.

 

 

파도가 발자락을 적실듯 달려오는 해변 긴의자에 누워 꼬냑을 홀짝홀짝.

 

 

 

 

맑은 청록빛, 투명한 하늘빛, 때로는 노르스름한 쿠키빛으로 빛나는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멍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어디선가 종종걸음으로 내달려온 누렁이 한 마리가 파도를 슬쩍슬쩍 경계하며 반대쪽 해안가로 사라질 떄까지.

 

그리고 다음날, 천장에서 늘어뜨려진 조개껍질들이 부옇게 떠오르는 아침해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표정.

 

 

햇살이 조금씩 번져내리는 거칠거칠한 태국의 앞바다. 따스하던 햇살이 이내 뜨거운 남국의 태양을 실감케 했다.

 

 

한 장의 사진을 기억하며 찾았던 강릉 경포해수욕장. 해풍을 막는 야트막한 솔숲 너머로 깔끔한 흔들의자가,

그리고 그 너머로 탈색되어버린 듯한 누런 빛의 모래사장과 퍼러딩딩한 바다가 있었다.

바다에 도달하면 더 나아갈 곳이 없다 멈추게 되지만, 사실 조금만 몸을 틀면 될 일이다. 바다와 함께, 파도소리와

함께 발맞춰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무한하게 뻗어가는 거다.

모래사장엔 경사에 기대어 꽁꽁 얼어있는 잔설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여름철 뜨겁게 달궈졌던 누런 모래사장이

색이 바랜듯 창백해져버린지라 시퍼렇게 차가운 얼음눈들은 자연스레 보호색을 맞춰입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바다를 따라 앞서 걸어간 걸음걸이들. 발자욱들이 줄맞춰 정연히 늘어선 게 왠지 땅을 헤집어둔 공동묘지같다.

무언가 저 구덩이에 넣고 봉긋하게 흙을 쌓아올리면 파도가 와서 다 쓸어버릴 것 같은. 그런 세기말적 풍경.

바다를 따라 걷는 기분이 그랬다. 파티나 잔치가 끝난 뒤의 적막함이랄까, 50연발 폭죽이 숨쉴틈 없이 터지고 나서

텅 비어버린 채 모래사장에 나뒹구는 느낌. 겨울바다의 풍경들이 하얗게 재만 남아버린 가슴에 날아와 박혔댔다.

BGM은 서영은의 '겨울바다', 경포해수욕장에서 무작정 북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뭐 뾰족한 일정이 있는 것도

가야 할 곳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그냥 저 위쪽 어딘가에 테라로사라는 까페가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슬슬 걸어보기로 했던 참이었다. 바다를 따라 걷다가 불쑥 기습하는 파도에 발걸음이 뒤척거리기도 하고,

문득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발걸음이 파도에 씻겨내리기도 하는 길.

그러다 문득 발에 채인 유리병 하나. 와인병에 코르크 마개로 단단히 막힌 게, 안에는 돌돌 말린 종이까지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게 한눈에도 파도에 실려온 메시지를 담고 있어 보였다. 뭐지, 일본에서 왔나. 아님 미국..?

그 자리에서 코르크마개를 따고 안의 종이두루마리를 꺼내 보았다. 약간 습기가 차 있긴 했지만 까끌한 종이의

질감이 그대로 남아있고, 테이프로 허리춤이 둘둘 감겨 있어 슬쩍 들춰본 속지엔 한글이 써져 있는 듯. 일단은

들고 가다가 나중에 따뜻한 데 앉아서 읽어보기로 했다.

꽁꽁 언 민물길이 바다로 향하는 길, 얼음에 반사된 빛무리들이 시멘트 교각 바닥을 긁으며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삼면이 바다라는 한국의 해안가에 빼놓을 수 없는, 군부대와 군대 시설물들. 여긴 심지어 탱크가 한대

바닷바람에 녹슬어가고 있었다.

뭍에서 흘러내리는 민물이 모래사장 사이로 야트막한 개울을 만들었다. 찰박거리며 위태로이 바다로 향하는

물길을 시시각각 얼리며 덮쳐오는 얼음판, 그 위로 성글게 번지는 빛그림자.


더이상 물의 흐름이 읽히지 않는 빙판, 여러번 깨지고 얼고 깨지고 얼고의 과정을 반복한 듯 조각난 얼음판들이

조각보처럼 이리저리 얽혔다.

그리고 어느 모래사장에 꽂힌 채 당당히 바다를 굽어보던 팽팽한 낚시대 하나. 가늘고 약해 보이는 낚시대가

바싹 성난 듯이 머리를 곧추세우고 있는 게 제법 긴장감을 머금고 있다.

몇 걸음 걷다가 문득 뒷주머니가 허전해졌다. 아까 그 와인병 안에서 꺼냈던 메시지를 뒷춤에 꼽아넣고 있었는데

여러번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카메라를 만지다 보니 어느 틈에 도망가 버린 것. 왠지, 그 종이쪼가리를 꼭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발걸음을 되짚어 거꾸로 걷길 십여분. 이렇게 얌전히 구덩이에 놓여있는 걸 용케 다시 만났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은 언제 봐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바다가 떠밀어 보내준 메시지도 다시 찾았고,

방파제를 때려부술 듯한 소리를 내며 들썩이는 파도를 보며 계속 걸었다. 


날카로운 칼날처럼 깨어졌을 유리조각조차 이렇게 부드럽고 둥그런 모습으로 바꿔버리는 파도의, 바다의 위력.

특히나 겨울바다가 주는 신산하고 허한 느낌이란 건, 어쩌면 이렇게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고 잘게 부숴버리다가

종국에는 남는 것 하나 없이 지워버리는 그 압도적이고 거대한 힘에 대한 경외감이나 허무함일지도 모르겠다.

겨울이라 그런지, 바다 색깔이 한결 더 검푸르다. 잉크처럼 검푸른 바닷물이 수면으로 밀어올려져서는 점점

에메랄드빛으로 연해지다간 하얀 파도로 보글보글. 모래사장까지 끌려나온 파도는 뒤미쳐 온 파도에 익사해버린다.

이쯤이 좋겠다 싶어서, 메시지를 펼쳐 보았다. 누군가의 글씨가 하얀 종이 가득 적힌 채 인연을 칭하며 친구를

청하고 있었고, 언제나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란다는 인사까지 적혀있었던 메시지. 이메일 주소도 적혀있었지만

알아볼 수가 없어 연락할 도리는 없고, 배를 접어 바다에 띄워보내는 게 최선이지 싶었다.

그렇게 뭍에서 흘러내리는 민물이 만들어낸 자그마한 개울에 띄워서 바다로 흘려보내며. 중간중간 모래톱에

걸쳐 멈추기도 하고, 빙글빙글 제자리에 맴을 돌기도 했지만 어쨌든 바다까지 나가는데 성공.

순긋해변이던가, 간소하게 만들어진 부두가 방파제의 품 속에 안겨 있었다. 시뻘겋게 녹슨 철제구조물 위로

앙상하게 덮인 나무판때기, 그리고 딱딱한 부두시설과 딱딱하고 약한 배 사이의 완충을 위한 고무타이어.


파도가 철썩철썩 방파제에 속절없이 부딪혀 깨지고 있었다. 자그마한 부두의 외곽을 단단히 감싼 방파제,

언뜻 보면 아무렇게나 팔다리를 쩍쩍 벌린 채 내팽개친 탕녀나 탕아 같기도 하다.

모래사장을 따라 계속 걷고 있는 참이었다. 경포대에서 사근진, 순긋, 순포해변까지 이름이 계속 바뀌고는

있었지만, 모래사장은 죽 이어진 한 길이었다. 물론 이렇게 중간중간 민물이 넘실거리며 모래사장을 가르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물이 마른 겨울철이라 잔뜩 녹슨 다리는 아무 쓰임도 없이 그저 거기 있을 뿐.


바다를 계속 끼고 걷자니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까는 바다가 모든 걸 지워버리고 무화시켜 버리는 힘을

갖고 있어서 허무하다 했지만, 아니, 그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아무리 잘게 깨고 부수고 으깨어도 뭔가는


남는다. 그렇게 남은 것들이 조금씩 쌓여 모래사장을 이룬 걸 테니까. 말하자면 저건 수백년, 수만년 전의

감정과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겨 있는 거대한 아카이브인지도 모른다.

사념(思念), 사념(沙念), 모래들의 사념들. 파도가 아무리 으깨고 바스라뜨릴 기세로 억겁년을 덤벼든다 해도

사념들은 고스란히 남는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변한다는 말이 진리처럼 통용되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조금씩 해가 기울어갔다. 쉬엄쉬엄 사진도 찍고 돌아보기도 하며 걸은 길인지라, 게다가 바닥이 단단하지 않아

걷기 쉽지 않은 모래사장으로만 따라 걸어온 길인지라 꽤나 시간을 들여 걷고 있었다.

저 너머 고래등처럼 수면 위로 불쑥 튀어나온 바위 위에는 갈매기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석들이

싸질렀을 게 뻔한 배설물들이 성난 파도로도 쉽게 지워지지 않을 하얀 줄무늬가 얼룩덜룩.

순포해변을 지나 계속 올라가려는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하다. 해안가를 따라 철망을 얹은 철책이 끝없이

이어져있고 중간중간 저렇게 침투 대비용 표찰까지 붙여놨다. 어렸을 때는 돌멩이를 철책에 꼽아놨었던 거 같은데.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 녹슨 깡통만 굴러다니며 버려진 해변이나 마찬가지다.

한쪽엔 바다를, 한쪽엔 부대를 끼고서 아예 쭉 주파해버릴 생각으로 열심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난리가

났다. 호루라기를 불고 손을 흔들고. 더이상 접근하지 말라길래 은근 부아가 나서 걍 지나간다는데 왜 난리냐고

한마디 했다가, 그냥 왔던 걸음 되짚어 돌아가기로. 불쌍한 군바리들, 까라면 까는 그들이 무슨 잘못인가.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트리 위에 얹었던 탈지면 솜뭉치를 닮은 얼어붙은 눈 한조각. 밟으면 아작아작 소리가 나는게

좋아서 한참 밟고 돌아다니다가 조그마한 이 녀석은 차마 밟지 못하고 사진 한장.

이 녀석은 얼마나 묵은 걸까. 모래를 잔뜩 묵은 이 녀석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단단한 알루미늄 캔이 호일처럼

얊고 약해질만큼의 시간이 흘렀고, 이제 조금씩 몸이 헐어가며 모래알로 변해갈 거다.

돌아나와선 부대 뒷켠의 차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앙상한 싸리비를 거꾸로 꽂아놓은 듯한 겨울 나무, 그 위로

싸리비에 이리저리 쓸리고 번져버린 듯한 겨울 하늘. 슬몃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다.


애초 목적지도 없이 그저 걷던 참이었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이 근방에 테라로사라는 까페가 있다고 했었다.

겨울바다라봐야, 도착하면 금세 추워져서 이내 돌아올 걸 알고 있었으니까. 저런 까페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거짓말처럼 눈 앞에 번쩍 나타났다.

그렇게 근 세시간, 경포대에서부터 북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모래사장을 밟아 걷던 길이 끝나고, 테라로사에 앉아

다시 또 네다섯시간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글도 끼적이고.


잔뜩 걸었지만, 쉼없이 뭔가를 생각했던 것 같지만. 막상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다 사라져버린 것 같아서

따뜻한 까페 안에서 이상한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했던. 그렇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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