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들은 읽고 나면 숙성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사방팔방으로 울림이 번져나가는 책,

그게 소설이던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되었던, 들불처럼 사방으로 번질 수 있는 의미의 갈래들을

하나씩 새겨보고, 그게 어떤 의미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되짚어보는 과정은 읽는 것 자체와는

또다른 큰 쾌감을 준다. 그리고 그런 책들에서 자신이 애써 고삐를 추스려 잡아 자신의 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 중의 아주 조금에 불과하다. 뭐, 고작해야 학사 나부랭이인 내 수준에서

그렇단 얘기다.


민중에서 시민으로 - 10점
최장집 지음/돌베개

최장집 교수의 이 책, 그의 다른 책들처럼 굉장한 책이다. 나는 그저, 내 나름의 맥락에서 그 중

일부를 떼어서 조금이나마 사고를 자극하고 정렬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은

'리뷰'라기보다는 일종의 발제문.


'갈등'과 '분열'을 조장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전제로 한다. 특정 주제에 대해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는 두 개의 집단이 맞서고, 두 집단은

모종의 타협이나 정치적 과정을 거쳐 적절한 균형을 만들어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그런 무조건적인 통합의 메시지는 국가주의나 집단주의를 초혼할 뿐이다. 시끄러울 수 밖에

없다. 국회는 안건을 갖고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게 당연하고, 시민들 역시 떠들어댈 광장이 필요하며,

시스템이 안배한 통로 속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괴로운 사람은 초법적 수단조차 동원해야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갈등선'이 비로소 그어지는 거다.


갈등을 부정하고 묵살하는 사회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런 '갈등'에 대해 그 존재부터 부정하고, 묵살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시스템 내의 '갈등

발견&해소 프로그램'은 협소하고 취약하기 짝이 없어서, 모든 갈등은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치환된다. 결국 사교육비 많이 부담하라는 교육문제, 애기 외롭지 않게 키우라는 출산율문제, 손 많이 씻고

쇠고기는 알아서 골라 먹으라는 보건문제, 우유 많이 먹고 성형외과 찾아가라는 젠더문제, 눈높이를 낮추고

기술을 배우라는 취업문제. 사실은 사회 문제, 즉 사회적인 갈등선을 빚어내는 문제들이 대부분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소하도록 종용되고 있다.


복불복 마인드로 순치되어 버린 파편화된 개인

그리고 조용한 사회. 누군가 '노'라고 이야기하면-갈등을 말하려 하면-사회 불만세력, 반정부세력, 심지어는

국론 분열과 국력 낭비를 조장하는 매국노로까지 매도당한다. 지금의 비정규직 정책에 반대한다, 한미FTA에

반대한다, 재개발 정책에 반대한다, 등등 이어지는 '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답은 언제나 그렇듯 무조건적인

사회 통합의 강요, 국가발전 한길로 매진해야 할 시기에 힘 빼지 말자는 국가주의적 교시였다. '노'라고 말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스템적 안배나 기제가 없는 상황에서 번번이 '불법'으로 밀려나는 최악의 상황에선, 1박2일식

'복불복 마인드', '나만 아니면 돼'라는 파편화된 개인들은 그러한 무서운 국가 앞에 무력할 뿐이다.


똘레랑스는 갈등 인정 이후의 문제다

그게 민주주의일까. 황장엽이 말하고 보수세력들이 떠드는 '한국식 민주주의'가 그런 거라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 혹은 다른 무엇이다. 민주주의는 최장집의 표현을 고대로 빌건대 "폭력을 배제한 갈등과

타협에 기초한 정치체제"에 가까운 무엇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한 똘레랑스는 고사하고 갈등 자체를 터부시

하고 있는 거다. 시끄러운 국회가 싫다, 시끄러운 광장이 싫다, 결국 '시끄러운 게 싫다'란 정도로 요약될

갈등 상황 자체에 대한 혐오나 염증이 문제다. "정치인 아저씨들은 왜 맨날 싸워요?"라고 묻는 어린애의 똘망한

눈망울 앞에 무조건 부끄러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적인 갈등을 대체하는 추상적 전선(戰線)

혹은 갈등을 묵살하고 없는 것 취급하는 것과 동시에, 추상적인 양극 구도로 몰아간다.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 '평화개혁세력 대 냉전수구세력' 따위의 갈등선은 뭔가 선명하고 뚜렷해 보이지만, 사실은 더이상

내용도 없고 실천적 의미 또한 던져주지 못하는 죽어버린 그림이 아닐까. 87년을 기점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나서, '민주', '진보', '개혁' 따위의 단어로 지시되는 내용은 그때그때 바뀌어 버렸다. 이미 갈등선이

그 고도로 추상화된, 그렇지만 그래서 오히려 쉬운 단어의 세계를 넘어서 복잡다단한 현실세계로 넘어온 거다. 


'부러지지 않는 쌍쌍바', 자잘한 균열선들의 긍정적 역할

두 개의 그림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쌍쌍바 여러개를 고르게 포개어 쪼개는 그림, 그리고 쌍쌍바 여러개를

무질서하게 포개어 부러뜨리는 그림. 첫번째 그림에서 쉽게 부러질 쌍쌍바가 '민주 대 반민주'니 '진보 대

보수'니 따위의 극단적이고 추상적인 갈등선으로 일관하는 사회의 파국 혹은 불건전성을 의미한다면, 둘째

그림에서 좀처럼 부러지지 않을 쌍쌍바들은 예컨대 '동성애 찬성 대 반대', '증세 찬성 대 반대', '등록금 무료

찬성 대 반대', '모병제 찬성 대 반대' 따위 수많은 이슈에 대한 자잘한 갈등선을 품어내는 사회의 건전성을

의미한다. 최장집은 정당정치가 그러한 자잘한 갈등선을 반영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부재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할까. 정당 정치는 마비되었고, 광장 정치(광장 민주주의라 높이 평가되기도 한)는

고양되지 못한 채 배설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근대 정치에 걸맞는 '자유주의적 인간형'조차 제대로 세워지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 거대한 국가와 동등한 계약관계로 묶인(혹은 묶였다고 상정되는)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인간, '시민' 대신에 NL(민족민주)이니 PD(민중민주)니 통일조국, 민주국가건설을 위한 '민중'만이 화석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광기에 가까운 월드컵 응원 열기, 골프와 피겨, 축구 선수에 대한 과도한 국가적 상징화,

새롭게는 '국격'이니 '국위 선양'이니 따위의 국가주의적 수사에 푹 절어 있는 것이 하나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면 '네티즌 수사대'가 몰려들어와 융단폭격을 하는 원시적/집단주의적 작태가 다른 하나다.


'민중'에서 '시민'으로 바꿔내지 못한 한국 민주주의

최장집이 이른바 386세대, 운동권에 대해 비판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기득권 세력,

구조에 대한 거울 이미지로서 스스로를 형상화하고 안티화해내면 되었을 뿐인, 역사적인 한계기도 하지만 능력

부족이기도 했던 부분이다. '민중'이란 불분명한 역사적 집단에 기대어 '역사의 정방향으로의 발전'을 믿었던,

지금과는 정반대의 뒤집어진 세상만 꿈꾸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불철저했던 문제의식은 곧 김대중/노무현

두 자칭 '진보성향' 정권의 실패 원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결국 김대중과 노무현, 이명박은

동일한 문제를 내재하고 있다, 혹은 이명박은 10년 '좌파 정부'의 예정된 귀결이었다고 판단한다.


김대중과 노무현, 그들을 박제화한 '민중'의 배신은 당연하다

과연 그런 걸까. 판단은 유보하되 의견을 말해 보자면,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의 죽음에 비통해 하던 이들은

'민중'이었지 '시민'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세속된' 이해관계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갈등을 시스템 내에서

해소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시민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태에서, 또 이명박이 퇴행시켰거나 노출시킨

허술한 민주주의에 놀란 상태에서 '민주 대 반민주'라는 손쉬운 갈등선에서 어느 한 쪽을 택한 '민중'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명박 덕분에 갑자기 '민주'의 화신, 실패한 영웅으로 부활했지만, 사실 그들은 재임 중

수많은 이슈에 대해 사람들을 실망시켰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도 시스템 내로 그런 이슈, 갈등을 들고 들어와

해결하는 기제를 마련치 않았다. 그 결과다. '민중'은 속되고 삿되다 하여 정치권에서 다루지 않는 온갖 생활

밀착형 이슈들, 부동산과 주식과 교육과 취업과 세금의 문제에서 또다시 '김대중과 노무현'의 가치를 배신하고

있다. 이명박의 지지율을 보면 알 일이다.


운동권 세력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

그건 한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을 10년을 날려버린 정치권의 실패다. 그들은

"샐러리맨 세금낮추기 정당", "공휴일에 지하철 막차시간 연장하기 정당", "대학생 일자리 보장 정당" 따위, 좀더

세분화되고 생활에 발딛고 있는 이슈로 자잘한 찬/반 균열을 그어줄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이슈들의 묶음으로

커다란 '진보'를 형상화할 수 있어야 했다. 그것이 곧 '구체에서 추상으로' 나아가라는 구호의 함의였을 거다.

사실 국가 발전을 위해 다른 갈등들을 묵살하는 기득권 세력의 몸짓은 지금의 '운동권' 세력에게도 여기저기

발견된다. 조직 내 성추행 사건을 덮는다거나, 전경과 대치하기 위해 필요악으로 동원되는 '사수대'의 군대식
 
규율, '민주주의'의 대의를 위해 개인의 도덕률과 사명감의 차원으로 모든 것을 치환해 버리는 방만함까지.


자잘한 이슈들을 그어내고 반영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좀더 갈갈이, 중층적으로 찢겨야 한다. 무슨 모세의 기적도 아니고 반공이니, 신자유주의니, 혹은 친미/반미니,
 
심지어는 희화화된 형태의 '보수꼴통'과 '친북좌파'의 굵고도 무식하며 무시무시한 일도양단식 균열말고. 그런

세속화되고 일상적인 형태의 자잘한 균열들이 좀더 촘촘하게 그어지고 나서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고착되고

성숙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서구처럼 국가 이전에 '시민'이 먼저 형성되는 것이 실패하였다 치더라도,

이제라도 강력한 국가 앞에서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시민'을 불러내는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분열을 말할 때다. 지금처럼 인터넷 상에서 서로 ^^해가며 좌빨이니 우빨이니 맞지 않는 화살만

잔뜩 주고 받는 소모적인 이야기로 분열하는 게 아니라, 정말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입장이 다름을

확인하기 위한 분열 말이다.



덧댐.

어쩌면, 이명박을 뽑은 국민들이 '돈을 많이 벌게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으로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뿐이다. 물론 근본적으로 '경제발전'에 대한 감수성과 비판의식을 키워내야겠지만

'돈을 많이 벌게 해줄 것'에 대한 디테일과 방법론이 경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진보'를 자처한 진영이

그 이슈를 송두리째 방기했음을 반증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형태의 삶의 부유함을, 어떻게 창출할 건지에

대한 미시적 수준의 갈등선을 역시 그었어야 한다는 거다. 이 역시 이명박의 집권이 김대중/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운동권 세력이 정치적 발전에 소홀했던 덕택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들은 경학생 장면먹고 전거타고

남가동 북가석버스 타고 가

길을 갈 땐 측으로 화실은 변기로

힘내 나가 이겨야 하

빛내 빛을 내 경학생 만만세~*
 

우리들은 경학생 동먹고 마차타고

이동에 면동에 등고속 타고 가

길을 갈 땐 측으로 당구칠 땐 라마시로

힘내 나가 이겨야 하

빛내 빛을 내 경학생 만만세~*


*                                              *                                              *

왠지 오늘 아침부터 머릿속에서 잔뜩 맴도는 노래.

대학 들어가서 술자리나 집회판에서 듣고 정말 절묘하게 재미있는 노래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명박이 어느 순간 불쑥, 사회적 합의 따위 없이 '측통행'을 밀어붙이는 때 쯤엔 더이상 마냥 웃어 넘길

가사만은 아니구나 했다.


이 노래 아는 사람이 블로거 중에도 있으려나, 아는 사람 손~*ㅋㅋㅋㅋ






민중가요란 게 '감상'의 대상이 아니듯,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공식석상에서 의례화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도 왠지 그 노래의 생명과 본래 의미를 벗어나는 일이라 여겨졌지만, 그래도

꼭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만 불려야 하는 격하고 적나라한 다른 민중가요와는 다른 품위와 비감함이 있었다.


꼭 '적들의 모가지를 추수하는 낫'을 운운하거나 '복수의 빛나는 총탄', '들어라 양키야 뻐큐 갓뎀' 같은 단어를

동원하지 않고도 심장을 격동시킬 수 있구나, (물론 그런 노래도 심장을 쿡쿡 쑤시지만) 노래 하나로 80년 

광주의 참상에서부터 그 이후의 지난한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할 수 있구나, 싶었던 노래다.


그래서, 애국가 따위 부를라치면 손발이 오글오글해서 립씽크만 할지언정 '임을 위한 행진곡'은 언제나 살짝

울컥한 마음으로 숙연하게 부르게 되는 거다. (물론 그러면서도 역시 스스로 낯설고 어색해하지만.)


80년 광주를, 민주주의를 향한 타는 목마름이 부글거렸던 광주를, 미국에 대한 순진한 환상을 깨뜨렸던 광주를,

거대담론이 아닌 일상적인 삶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창조했던 잠시나마의 해방공간을 기억한다.

동시에 사람들의 일상을 야만스럽게 헤집었던 이땅의 지배자들을, 공수부대의 피묻은 총검과 전두환을 수괴로

하는 쿠데타세력의 잔인무도함과 비인간성을 기억한다.


많이 바뀌었고, 마치 4/19 달리기가 하나의 박제화된 기념행사로 변해가듯 5/18 역시 그렇게 한발 빗겨서

바라볼 만한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니다. 아무러해도, 추모행사에서 방아타령은 아니다.

(오마이뉴스,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


나라도 불러주마.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꾸욱 눌러쥔 주먹을 흔드는 팔뚝질 대신 엄지손가락 말아쥔 뻐큐손가락이나 실컷 날려주마. 만수무강해라ㅆㅂ



p.s. 덕분에 다시 가사를 되씹어 가만히 불러보는 노래들. 왜 '들어라 양키야'는 네이X에선 검색이 안 될까.

"잠들지 않는 남도"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아~~ 아~~~ 아~~~ 아~~~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남도 한라산이여


"열사가 전사에게"

꽃무더기 뿌려 놓은 동지의 길을
피 비린 전사의 못 다한 길을
내 다시 살아 온데도 그 길 가리라 

그 길가다 피눈물 고여 바다 된대도
싸우는 전사의 오늘 있는 한
피눈물 갈라 흐르는 내 길을 가리라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어제 내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내가 그토록 투쟁하고 싶었던 내일
복수의 빛나는 총탄으로
이제 고인 눈물을 닦아다오
마침내 올려질 승리의 깃발
힘차게 펄럭여 다오


"무노동 무임금을 자본가에게"

어깨죽지에 빛나는 상처 지켜낸 파업투쟁
막걸리잔 치켜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가진자들의 더러운 이빨 금빛으로 번쩍이며
온 세상을 휘휘 감아 피눈물을 달라하네

아 동지여 (동지여) 적들은 (적들은)
무노동 무임금의 억지를 부려
아 동지여 (동지여) 적들은 (적들은)
파업의 나팔소리 멈추라 한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자본가여 먹지도 말라
무노동 무임금 노동자 탄압
총 파업으로 맞서리라


"바쳐야 한다"

사랑을 할려거든 목숨바쳐라 사랑은 그럴때 아름다워라 
술 마시고 싶은 때는 한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보거라 
전선에서 맺어진 동지가 있다면 바쳐야 한다 죽는 날까지 
아낌없이 바쳐라  
번쩍이는 칼창 움켜쥐고  나서라 전사여 
그날을 위해 이 한목숨 걸고 나서라

구차한 목숨으로 사랑을 못해 사랑은 그렇게 쉽지 않아라 
두려움 에 떨면은 술도 못마셔 그렇게 먹은 술에 내가 죽는다   
붉은 맹세 붉은 피로 맺어진 동지여 죽어도 온다 그날은 온다
민족의 해방 이여
번쩍이는 칼날 움켜쥐고 지켜라 전사여  
우리의 깃발 이한목숨 걸고 지켜라


"인터내셔널가"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대지에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인터내셔널 깃발 아래 전진 또 전진


"들어라 양키야"

랄라라 랄라라 라라라라라라라라
랄라라 랄라라 랄랄라
랄라라 랄라라 라라라라라라라라
랄랄랄랄랄랄라

찢기운 반도 심장에서 피어오르는 진달래 칼날을 세워
여기 이렇게 굳센 가슴팍으로 그대들 앞에 섰다

순결로 씻은 조국반도 머리맡으로 침략의 불을 지른자
보라 치욕의 피로 맺은 복수로 그대들 앞에 섰다

보라 여기 이 반도를 폭압의 사슬 끊은곳
한 외침으로 명하니 이제는 이 땅을 가라

들어라 양키야 들어라 (뻐큐)
이 땅 분노의 함성을
들어라 양키야 들어라 (갓뎀)
해방통일 몸짓을

진달래 붉게 물든 반도를 피로 붉게 물들인 자여
터질듯한 심장을 품고서 그대들 앞에 섰다
수많은 꽃들 짓이기고서 끊없는 학살 일삼는 자
한많은 영혼 가슴에 품고서 그대들 앞에 섰다

보라 결연한 의지로 불타는 강철의 신념을
민족의 외침으로 명하니 이제는 이 땅을 가라
들어라 양키야 들어라 피끓는 투쟁 열기를
들어라 양키야 들어라 민족자주의 함성을
해방통일 몸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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