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국강병의 기치 아래 백성들에게 목숨을 내맡기고 충성을 다하라고 외치는 그들,

그렇지만 정작 사태가 엄혹해지면 그렇게 말한다. 너희같은 장똘뱅이가 어찌 그 뜻을 알겠느냐.

아 예, 어차피 아랫것들은 윗대가리에 누가 밟고 올라서나 그놈이 그놈인 것을.


영화에서 묘사된 대로라면 현상타파를 추구하는 전쟁광 세종의 치하나, 명이니 여진이니 왜니

그런 외국의 치하나 사실 '장똘뱅이' 백성들에겐 다를 바 하나 없는 것 아닌가.



# 현대식의 어정쩡한 말투라거나 마지막 장면의 '사물놀이'패 등장이라거나, 한은정의 복장이라거나,

어차피 엄정한 고증을 통한 정극을 추구하는 영화는 아니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제발 장르가 뭔지를 알려다오. 액션인가 드라마인가 멜로인가 역사물인가.


아무리 그래도 세종의 호위무사와 항아리를 집어던지며 개싸움을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300을 패러디하듯 대책없이 대군과 붙여놓는 건 아니지 않나.

전혀 설득력도 없고 떼잡이식으로 '애국심을 팔았으니 감동먹지 않을 테냐'라는 건가.
 
아니면 한은정의 (연기말고) 외모나 즐감하라는 건가.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 허접 스토리.



# 버섯구름까지 등장시키는 그 적나라하고 호전적인 마인드.

뭐 다른 거 다 넘어가고 그저 '킬링타임용' 쓰레기영화라고 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버섯구름.

근대국가끼리의 관계에서 비로소 나타나는 '주권'의 개념을 울부짖는 세종,

그야말로 벌레처럼 죽어나간 적군의 시체 틈바구니에서 당당히 버티고 선 전쟁영웅들,

노골적으로 피어오른 버섯구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를 노래하고 싶었던 거구나.


그놈의 무궁화꽃, 핵주권 따위 이야기는 정말 질리지도 않나. 전쟁동원을 위한 그들만의 노래.

조선시대 버전으로 피어난 무궁화, 이건 쓰레기 중에서도 아주 악질적인 상쓰레기.



# 민족주의에 대한 일그램의 성찰 따위도 없는 영화.

민족주의를 들먹이는 윗대가리들이 의식하던 못하던, 그 사고회로는 대략 이런 거다.

'우리 민족은 잘났다', '과거에는 남들보다 잘나갔다',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현재를 보라',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 '그걸 위해 너의 피와 철을 바쳐라'.


우습게도 '우리 민족 잘났다'는 민족주의가 그 민족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현재를 수탈한다.

우습게도 그 잘났다는 민족의 과거를 강조하다 보니, 멀쩡히 나름의 역사적 맥락과 문맥 속에 존재하는

나름의 역사를 마냥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묘사하고 만다. 과거의 특정부분을 억지로 부각하고 높이려니

다른 부분은 깍여나가고 폄훼되는 거다.

 

# 사대교린의 옛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주권평등의 근대국가 질서를 섞어놓고,

'신기전'이라는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기 위해 뻔히 보이는 위험도 감내하도록 만들며,

조국과 민족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국민된 도리라고 강변하는 스토리는 혐오스럽다.


그런 스토리와 속내가 품고 있는 함의는 너무나도 정치적이라서. 그리고 현실에서는

그나마 안성기가 연기한 세종처럼 '백성은 황제'라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조차 없어놔서.

그러고 보면 정말 최악의 영화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노골적으로 최악의 인간들이 존재하는 현실세계에

비기면 나름의 영화적 상상력과 매만짐으로 조금은 이쁘게 만들어 놓은 셈이랄까.



아...시간 아까워. 아 진짜 쓰레기쓰레기 이런 상쓰레기 영화가 당시에 그렇게 화제였다니. 

의미도 없고 최소한의 재미도 없고. 정말이지 최악.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이어 정권마다 반복되던 독도 문제가 곧바로 불거져 나왔다. "2MB 대통령이 독도를 일본에 팔아넘기려 한다"는 '독도 괴담'을 방불케 하는 <요미우리>의 자극적인 보도 내용과 사안 자체의 심각성은 독도 문제를 금세 여론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또, 대북문제에서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정부는 이번만큼은 '건수'를 잡은 듯 마음껏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독도 괴담'의 주인공인 만큼 그 혐의를 벗기 위해 열심인 모습이 꽤나 가상하다. 하지만 역시 '2MB'는 역시 '2MB'다.
 
  청와대는 <요미우리>와 일본 정부에 한국의 내분을 획책한다며 비난했다. 동시에 독도 문제로 맹공을 퍼붓는 야당에 대해서도 '자국 정부보다 일본의 우파 신문을 믿고 대통령을 공격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자국민보다 극우 언론을 믿는 정부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2MB를 제외하곤 누구도 완벽하지는 않으니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같은 날 나온 다른 보도를 보자. 2MB 대통령은 지난 15일 부산시 업무보고 및 부산 발전전략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외환은 어쩔 수 없지만 내우(內憂)는 하나가 돼 극복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제시된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고 초점을 잠시 '공화국 북반부'로 돌려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 정부와 언론의 북한 인권문제 제기에 대해 "지도부와 인민을 분열시키려는 음해공작이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북한의 식량위기는 미제의 고립 압살 책동 때문이니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전 인민의 단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북한에 핵 문제를 제기하는 남한의 '동족'에 대해서는 모두 '미제의 앞잡이'로 매도하고 있다.
 
  극적인 비교를 위해 다소 과장을 하기는 했지만, 기본 구도가 상당히 유사하다. 외부의 적과 어려운 환경을 설정하고 그것을 빌미로 내부의 총화단결을 호소(라고 쓰고 협박이라고 읽는다)하는 수법은 나치 이래로 전체주의 세력들의 고전적 수법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아군'의 악덕을 비판하는 내부 구성원들은 '적군'을 이롭게 하는 반역자로 간주되어 숙청 대상이 된다. 일본 재단의 자금을 지원받는 낙성대 연구소-노파심에서 말하자면 필자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친일적'이기 때문에 매도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보다 일본 언론을 인용해 대통령을 공격하는 민주당이 '국가의 반역자'에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사실 이 수법을 가장 성공적으로 구사한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취임 초기부터 반대세력에게 '반미 민족주의 진보'로 낙인찍힌 노무현 대통령은 강경한 대일발언과 자주국방이라는 명분을 통해 대중의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했다. 그는 반대세력이 자신에게 붙인 딱지를 오히려 정치적 자산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그는 참여정부 때 신자유주의적 사회질서를 전면적으로 도입해 사회 각 계급을 재편했고, 이에 따른 불만은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억압되었다. '국익'이라는 단어가 대부분의 정치적 논란을 종결짓고, 잘못을 전가하는 보도가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반대자들은 '친일세력'으로 규정되어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평소 민족의 해체를 주장해 대표적 '친일세력'으로 인식되는 '뉴라이트' 세력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2MB 정권의 총화단결 호소는 참여정부가 자극한 민족주의 정서와 맥락도 다르고, 효과도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극한 민족주의 역시 '선진 국가'를 위한 국가주의적 프로그램의 외피에 불과하다는 면에서 2MB의 노골적 국가주의와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정치에서 포장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2MB의 딜레마는 자신은 끝없이 국가주의를 강조하지만, 이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종족담론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민족주의와 불협화음을 일으킨다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MB 정권은 국가주의를 향한 질주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기세다. 정부는 독도 문제에 대해 신중한 대응을 주문-금강산 문제에 대한 쌍팔년도 식 발언을 보자면 특별히 성숙한 정세판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념적 편견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하면서도 대내적으로는 "일본의 언론을 보라", "여야도 없고, 진보-보수도 없고 모두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우리는 본질적이지도 않은 것으로 안에다 총질을 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와 같이 노골적으로 총화단결을 호소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신중한 대응을 외치면서도 마치 외부의 적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일 것인 양 대내적 단결을 호소하는 것은 다소 형용 모순 같다. 과연 무엇을 위한 총화단결일까?
 
  이러한 모순된 국가주의 드라이브가 계속된다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두 얼굴이 서로 대립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MB 정권은 '우리 민족끼리'에 대한 반명제로서의 친일, 친미적 보수 세력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종족담론을 끌어들일 수 없다. 또 2MB 정권은 참여정부의 '황우석 현상' 같은 국가지도자와 민족의 구세주가 일치하는 통일된 내셔널리즘도 확보할 수 없다. 그렇지만 2MB의 대외정책 실패와 일본의 우경화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내의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고 그 세력을 결집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 세력들은 2MB의 우군보다는 대항세력이 될 공산이 크다.
 
  촛불이 시작된 이래 '민주-반민주'의 구도로 나타났던 대립구도가 10년을 더 후퇴해 '매국노-민족'의 구도로 전환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런 구도는 한일협정 반대시위를 주도했던 2MB 자신이 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상당부분 위험한 조짐이 보인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독도 관광 붐이 일어나고, 독도 관련 영화가 개봉되고, 독도 관련 법안들이 무더기로 발의되는 '독도 마케팅'은 매우 우려스럽다. 이런 경향이 지속된다면 촛불시위에서 다양한 형태로 막연하게 표출된 내셔널리즘은 독도라는 구체적 대상을 만나 본격적으로 발현될 것이다.
 
  문제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 구도는 양자가 서로를 '반국가 세력', '매국노'로 규정하는 극한의 대립 속에서 양자를 포괄하는 내셔널리즘 자체의 상승작용을 유도하며, 이렇게 강화된 내셔널리즘으로는 어느 쪽이 승리하든 대립의 발단이 된 내우외환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결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아니,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데에 일조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데올로기에 갇힌 대외정책의 막장은 부시 행정부의 지지율이, 국가 혹은 민족의 이름으로 호소된 총화단결의 끝은 계급지배의 강화로 귀결된, 레이거노믹스의 파탄이 이미 증명해주고 있다.
 
  아마 앞으로 2MB 정부가 무엇을 하든 그 태생적 한계와 특유의 촌스러움으로 인해 단결된 국민의 동원에는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는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가 아닌, 앞에서 말했다시피 국가주의를 내세우며 억압하는 지배블록에 대한 도전연합의 저항이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전선이 내셔널리즘 내에서 형성되는 경우이다. 이 상황이야말로 정부가 주권의 두 요소인 대외적 자율성-사실 2MB 정권 하에서는 이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과 대내적 수행력 모두를 상실하는 순간이며 대항세력마저 내용물이 다를 뿐 형태는 같기에 그 미래마저 기약할 수 없는 캄캄한 상황일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요구되는 자세는 각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정부는 외교문제를 빌미로 주제넘게 시민사회에 대해 윽박지르는 것을 중단하고 본연의 임무인 외교에 충실하게 임하고, 시민들 역시 독도관광 따위의 쇼에 열광하기보다는 정부의 외교정책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의견을 표출해야 한다. 2MB 외교정책의 문제점은 예전부터 수없이 지적되어 왔지만 그것을 방치한 건 우리들 자신이다. 사실 우리가 일장기를 태운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본 정부의 행동을 바꿀 수는 없는 자위에 불과하다는 것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독도 관광 한번으로 숭고를 체험하기에는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매국노 대 민족'의 구도로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는 진즉부터 하고 있었지만-촛불시위에 태극기가 나오고 미국에 대한 불명확한 입장 속에 민족주의적 색채가 덧대어지면서-독도 문제 이후 더욱 심각해져버린 것 같다.
그런 구도로 빠져버려 민족주의 담론내로 포섭되는 순간, 한국이나 동아시아 전체에 상당한 부담이 되지 않을까.

(이데올로기전이다. 이데올로기전에서도, 근래의 과학전에서처럼 정밀한 외과수술과 같은 surgical strike,

국부공격이 필요하다.)


다물으다. (잃은 것을) 되찾는다는 뜻을 지녔다는 우리의 고어로 알려진 이 단어는, 80년대 초 민족주의와

민족사관의 열풍을 선도한 베스트셀러 '다물'로 처음 소개된 바 있다. 식민시기 일제의 잔인한 악행과 천여번의

침탈만 당했던 애끓는 약자의 비애를 미래 언젠가 통일한국의 기개와 대비시키며 식민사관의 사슬을 끊어내자는

줄거리의 소설이다. 언젠가 '그 때'가 되면, 남북한의 통일은 물론 토문강 이남의 연해주, 만주를 되찾고 (여전히

일각에서 주장되듯) 산둥반도 부근의 동중국까지 '다물'하여, 토끼같은 형상의 한반도에 짓눌려있던 한민족의

기개가 되살아나 평균신장까지 서구인보다 더 크게 된다는 거다. 그게, 우리가 다물해야 할 세계최강 최고민족

최종 버전의 역사이자, 원래의 우리모습이라는 주장. 흔히 민족사관이 빠져버리고 마는, 결과적인 자기 부정 내지

자기 혐오의 모순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소설이다. 형이상학적인 또다른 목적론과 병든 인간.



아직 주몽이 이끄는 일단의 무리들이 내건 '다물多勿'의 의미는, 수세적인 상황인지라 그 외연이 적절히 통제된

상황에서 그나마 다소간의 설득력과 적실성을 확보하고 있다. 지역-내지 당시의 전세계-패자인 한나라와 이에

기댄 부여에 대항해서, 상실한 삶의 기반(다소 서정적), 혹은 고토(다소 국가주의적), 혹은 민족의 터전

(다소 선동적)..이랄까, 뭐가 되었던 간에 그 땅뙈기를 되찾겠다는 데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뭐..물론 그 땅에

'백성이 주인되는 땅'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왜 하필 주몽이 왕이 되어야 하는지, '이 땅 위에서 가장

강대하고 융성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고토만 회복하면 되는지 아님 어디까지 쳐부셔야 가능해지는지, 왜

전쟁에서 잔인하게 죽어나가는 건 '주몽의 착한 백성'과 '적들의 무장한 병사'들 뿐인지 등등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들투성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고대 왕국의 성립을 위해 제창된 '되찾음'의 이데올로기는 적어도 상실한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제시되고 있을 때, 그리고 상대편이 그에 대항하여 무언가 더욱 설득력있고 피끓는

명분을 제시하지 못할 때 강력한 호소력을 갖게 된다. 아무래도 목표로 삼아야 할 대상의 외연을 좁히고 명확히

할수록 유리해지는 거다. 지금의 미국이 제시한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데올로기가 그 외연을 이슬람 문화

일반으로 넓혀버리고 말아 더욱 곤란해지고 만 것은 반대의 사례일까.



고구려의 역사는 태왕사신기로 이어지면서, 아니 거기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당장 어느정도 고구려의 기틀이 잡힌

후에는, '다물'이란 단어가 폭주하기 시작한다. 외부의 제약으로 눌려있던 그 폭력성과 저속성이 드러나는 것

뿐이지만. 물론, 당시 고구려가 실제로 '다물'을 의식적인 이데올로기로 차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고구려

초기에 건원칭제하며 '다물'을 연호로 썼다는 설도 있다만-모든 국가, 조금 줄이면 고대국가는 동일한 행태를

보인다. '다물' 등 나름의 관제 이데올로기를 동원한 정복 전쟁. 더이상 우아한 '역사강역'의 문제나 합리적

(국제법적?)인 영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전쟁을 위한, 그리고 전쟁을 수행할 백성을 동원하기 위한, 혹은

(아직 이데올로기가 백성에게까지 유효하지 못하다면) 자신의 정복욕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납득하기 위한

핑계거리일 뿐이다.



독도의 영유권이 한일 중 어디에 있던 큰 상관이 없는 것보다 더, 주몽이 옛 조선의 영토를 다물하던, 대조영이

발해를 꿈꾸던, 그건 사실 사는데 별 상관 없는 일이다. 하잘것 없는 민족적 일체감을 5분정도나마 느껴보거나,

우리민족도 이만큼 해낼 수 있다는 이중으로 왜곡된 자기 비하에 빠지고 싶다거나..이런 건 비추. 그저 하나의

퓨전사극으로만 볼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암만해도 붉은악마가 재등장시킨 '치우천황기'나 민족주의를 빙자한

온갖 극우주의적인 주장들과 종교들이 낭자한게..일본이 뭐만 하면 헤드라인으로 '극우주의 부활' 이러는데

사실 한국이 더 문제다. 멀쩡하게 잘 사는 인간들을 갑자기 한이 가득한 못난이로 비하한 채, 과거 '깃발을

꼬나들고 대륙을 호령하던 영웅'을 처방하는 민족주의(내지 민족사관)는 이미 정부의 FTA 옹호 광고에서 그

절정에 달했다. 미국하고 경제 자유화하자는 거지, 누가 깃발쥐고 말달리며 쳐들어가자했냐 말이다. 그런

메타포가 정부에서조차 흘러나오는 상황이라니..볼 때마다 참..가슴이 덜컥덜컥한다. 조금만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하면, 이 병든 인간들은 영웅을 부를 게다. 전쟁을 부를 거 같다. 아니, 이미 전쟁과도 같은 사고방식은

시작된지 오래다. 우리는 이미 전쟁에 동원된지도 모른 채로, 나와는 상관없는 전쟁중인지도 모르겠다. 대개

은폐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기가 순순히 죽으러 나가는 게 아니라, 상대를 죽이러 나가는 게 전쟁이다.



(민족주의는 식민주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도된 이미지 그 자체일 뿐이다.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은 단지

'일본인이 없는 일본의 지배'를 고도화했을 뿐인지도. sub-altern학파의 이야기.)

일본 정부가 중학교 사회과 지도요령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넣겠다고 한다.

MB의 '실용노선' 외교가 결국 거덜나고 있다는 또 하나의 표징이다. 북-미 관계가 호전되는 상황에서 냉전적

대북강경정책은 아무 성과도 얻을 수 없었으며, 이제 쌀을 주니 직접대화를 하니 부랴부랴 수습에 나서보지만

사실상 남-북간 대화채널은 모두 끊어진 상태다. 미국과의 관계 '회복'을 내세웠지만 이 역시도 성마르고

아마추어적인 접근으로 인해 쇠고기 문제, FTA 문제..뭐 하나 제대로 해결하고 있지 못하며 MB 정권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신뢰도마저 땅에 떨어졌다. 중국은 '친미정권'인 MB정권을 잔뜩 경계하며 북한포섭하기에

발벗고 나섰고, 일본은 준것없이 '과거는 씻어버리자'는 선언을 받아들고는 독도를 내놓으란다. 더하자면,

자원외교랍시고 중동지역의 나라들을 순방하고 각종 경로를 통해 경제협력을 강화한다고는 하지만, 실무적으로

얼마나 그 나라들과 가까워지고 전략적으로 서로의 가치를 제고시키는지는 잘 모르겠다.



막말로 그렇다. 독도가 '한국'이란 나라의 땅이던, '일본'이라는 나라의 땅이던, 나와는 상관없다.

땅 한조각 갖지 못한 내게 독도같은 '바위투성이 섬', 혹은 '갈매기들이 똥싸고 가는 섬'이 어느 국가로 귀속되던

크게 괘념할 일은 아닌 것이다. 독도가 우리 땅이란 걸 걸고 넘어진 일본은 물론 조갑제가 말한대로

'미친놈'이긴 하다. 조갑제에 동의할 때도 있다니 놀랐지만...그는 냉정하고 당당한, 그치만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고, 나 역시도 일정부분 동의한다. 다만 나는 독도문제에 대해 감정적으로 격발되는 사람들의

'민족주의적이고 혹은 국가주의적인 반응' 자체가 염려스러우며, 독도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모르겠다.



중요하다는 가치판단은 해당 시점에 이슈가 되는 다른 여러 문제들, 예컨대 서울시의회의 전례없는 수뢰사건,

광우병 관련 정부지정 우려식품이 680여개에 달한다는 보도, 언론에 대한 정부의 재갈물리기, 금강산 피격 사건,

쇠고기협상 국정조사, 그리고 일상적이지만 더욱 중요할 수 있는 비정규직 문제,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들

말이다. 당장 독도를 일본이 어쩌겠다는 것도 아니고, 당장 일반인들...국민들이 나서서 어쩐다고 될 문제도

아닌 그야말로 국가간의 문제인 거다. 김종필은 폭파할까, 했다가 누구는 못준다 했다가, 일본총리는 달라고

했다가 조용했다가..뭐 그런 식으로, 그저 양국 고위 정치권력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하며

탁구치듯 핑, 퐁 하고 왔다갔다 하는 문제였던 게 여태까지의 진행 사정이다. 그러한 그들만의 리그에 힘을

보태기 위해 장식되는 민족주의적 수사들과 요란하게 치뤄지는 각종 이벤트들로 인해, 가뜩이나 MB 때문에

피곤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느새 '국민'으로 호명되고 '피끓는 독도지킴이'로 동원되는 것 뿐이다.



독도를 넘겨줘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고작해야 민족적 감수성만을 자극할 뿐인 땅덩이 문제에, 온나라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아우성칠 일인가 싶다는 거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독도의 경제적 효과까지 감안해서

분노하는 것 같지도 않다. 독도를 영유함으로 인해 얻게 되는 넓은 영해와 EEZ, 혹은 대륙붕에서 어로 활동이나

기타 광물자원을 채취하는 등 잠재적인 가치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과 그로 인한 내 주머니

속사정이 조금은 풍족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먼 일이다.



역사적으로 누구 땅이었다느니, 고지도에 기재되어 있다느니, 다 좋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근대국가로

틀지워지기 전의 사람들이 어떻게 세계를 인식했는지, 근대국가의 '국민'으로 호명되는 것이 어떠한 효과를

낳는지를 되돌아보는 기회일 때 더욱 값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느새 위험한 수준으로 넘실대는

한국의 민족주의, 혹은 우석훈이 말한바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경계하고 그에 저항하는 목소리들을 키워내는

첩경일 테다.



백두산에서, 독도에서 태극기 흔든다고 대체 해결되는 게 뭔가. 게다가 민족사관이랍시고 반만년 역사에 금칠을

해서 '한단고기'네 뭐네 인류의 시조이자 선택받은 민족이라 주장해서 해결되는 게 뭔가.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를 고수해서 우리가 얻는 건 뭔가. 그 모든 것들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동체를 다방면으로

풍요롭게 하고 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기 위한 도구로 기능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이다. 꼬리에 달라붙은 일부 정치권력자가 온국민을 바보로 만들어 분탕질치는 꼴이다.

민족주의란 게 그렇게 써먹혀 왔고, 독도가 그렇게 써먹혀 왔다.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대응을 지켜보면 될 일이다. 일본에 대고 삿대질할 일이 아니라, 정작 해야 할 일은 그렇게

외교를 말아먹는 MB에 대한 규탄과 끈질긴 저항. 포커스는 '독도'가 아니라 '외교'로, '민족'을 찾을 게 아니라

'사람'으로 맞춰져야 한다.

'[일상] 사진 혹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타 안당하는 지혜 20가지(군인用)"  (0) 2008.07.16
한껏 까칠해져보기(2008.3.14)  (0) 2008.07.15
이것도 나라냐.  (2) 2008.07.14
'넌 참 이기적이야'란 말.  (0) 2008.07.12
헌혈이 아닌 매혈.  (0) 2008.07.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