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하이.

경제발전만을 향해 치닫던 중국의 상해도 이제 미적 감각을 거리에 도입하기 시작한 거다,

비록 내용물은 전부 살색그림 충만한 찌라시들일지언정.




휴가여서, 하루종일 강남과 종로, 시청쪽을 돌아다녔다. 역시나 올해도 시청 앞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꼭대기에 별이 아닌 십자가를 매달고 번쩍번쩍, 휘황하고 가로수 역시 온통 손톱만한 불빛들을 휘감은 채

무슨 열매처럼 눈송이 모양 불빛장식들이 주렁주렁하다.

어둠이 짙게 내려 나무의 형체는 쉬이 보이지도 않지만, 나뭇가지 끝까지 세심하게 잘 단도리해놓은 조명

덕분에 한밤에도 나무 한그루가 어떤 형체인지 여실히 보여줄만큼 촘촘하게 해놓아서 더 이뻐 보이는 게

사실이다. 크리스마스 즈음한 연말 분위기를 내는데 빠질 수 없는 장식이기도 하고.


물론 한철만 지나면 전부 거두어질 '반짝 환경미화'이긴 하지만 언제부턴가 시작된 '루미나리에' 행사보다도

오래전부터 자연스레, 연말이면 나뭇잎을 잃고 앙상한 나무들이 불빛을 품는다고 여겼었다.

불과 몇 시간 전, 해가 떨어지기 전의 같은 장소. 삼엄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나무마다 허리춤에 전기설비

기구를 차고서는 온통 전기줄로 칭칭 동여매어져 있다. 시꺼먼 전선과 허여멀건 알전구가 나무등걸을 타고

가지마다 빼곡히 올라가는데, 무슨 벌레가 기어오르는 것처럼 징그러운 생각마저 든다.

나무마다 굉장한 품을 들였을 게 틀림없다. 한 그루 한 그루에 모두 전기 배선설비를 하고 나무 꼭대기쯤까지

전선을 돌려감아주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인력과 예산이 소모되었을까. 저렇게 전기줄로 칭칭 감긴 나무는

스트레스가 심각한데다가 조명으로 인해 야간에도 쉬지 못해 생장에도 적잖은 부작용을 끼친다던데, 연말

분위기를 꼭 저런 식으로 내야 하는 건가. 야경만 보고 만다면야 이뿌다고 치울 수도 있을지 몰라도, 벌건 대낮

발가벗겨진 저 나무들의 흉물스런 모습은 참아 줄 수도, 모른 척 하기도 쉽지 않다. 내가 오버하는 걸까.

무려 '전기위험'이다. 지금이 무슨 나무 전봇대를 세웠다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도 아니고-하다못해 그때도

죽은 나무줄기를 사용했다지만-잘만 살아있는 나무에 저런 식으로 고문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이

정부는 '녹색'을 기치로 내건 정부 아닌가. 정부나 서울시청이나 간에 말이다. '녹색'을 이야기한다는 사람의

감수성이라면, 이런 거 불편하고 낯설어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정부만 탓할 것도 아니다. 사실 크리스마스 즈음만 되면 거리 곳곳의 나무들이 몸살을 앓는다. 당장 광화문

인근의 까페니 음식점이니 호텔이니 주변 나무들만 봐도 그랬다.

나는 처음에 무슨 가시나무인가 했다. 이건 정말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경악스럽고 경탄스럽게, 징그럽도록

세심하게 꼬마전구를 말아올린 거다. 아마도 밤에는 굉장히 이쁘겠지. 어둠 가운데 나무 한그루가 온전히

제 모습을 다 드러낸 채 둥실 떠올라 있는 것처럼 보일 거다, 그것도 따뜻한 황금색 불빛으로.

그걸 위해 이렇게 뱅뱅뱅, 벌레들이 나무를 점령한 채 위로위로 좀먹어 들어가듯 전구와 전선은 나무

하나를 꼼짝없이 결박하는 거다. 징그럽고 추하다. 그리고 나무에게 미안하다.

작은 나무라고 예외는 아니다. 가게에서 마련한 트리용 나무인데 뭔 상관이냐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이런

식으로 나무를 괴롭히고 백주대낮의 이미지를 흉물스럽게 해야 하는지, 한번 따져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안 될까 묻고 싶은 거다. '미감'의 문제라 하면, 단지 야경의 아름다움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무 자체에 미칠

영향과 햇볕 아래 풍경의 아름다움까지도 함께 따져보자고 하고 싶다.

p.s. 집에 오는 길에 역삼역 근처에서 마주한, 최강의 나무 조명들. 건물을 둘러싼 나무들이 온통 황금빛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마냥 이쁘다, 하고 넘길 수가 없었다. 이미 저 정도 조명의 밝기와 세기라면 일종의

공해라고 인정될 수조차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굳이 연말에 나무들에 이렇게 꼬마전구들을 칭칭 감아놓아야만 이쁜가, 하는 고민은 해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다들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살아있는 생나무에 이렇게 야만적으로 괴롭히는 방법 말고

뭔가 낮에도 이쁘고 밤에도 이쁠 수 있는 그런 방식, 궁하면 통한다고 우선 이런 미친 듯한 조명에 대한 

거부감부터 생긴다면 새로운 방식은 고안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조명을 휘감고 있는 나무들, 여전히 이쁘게만 보이는가. 연말연시의 야경, '환경미화'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최소한 한번쯤 생각하는 단초가 되었으면 좋겠다.




속이 메슥거릴 정도로 선혈이 낭자했다. 실감나게 토막나버린 팔다리는 말할 것도 없이, 동강난 머리통과

허리째 베여나가 무슨 햄덩어리같은 인체의 신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중에는 그냥, 영화배우 '레인'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썰려나가는 적들의 몸뚱이를 보면서 정육점의 전동회전칼이 생각났다. 윙~ 소리나는

그것에 큼직한 고기를 갖다대면 살이고 뼈고 거침없이 썰려나가는. 아, 물론 약간의 김칫국물이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효과와 외마디 비명소리 정도는 추가되어야겠지만.


액션 영화의 스토리란 거야 뭐, 뻔하니까 딱히 기대하는 것도 없었지만 영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건

딴 생각이었다. 이 영화에 비, 혹은 레인이 나오지 않았다면 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나 욕구가 생겼을까.

그러니까 이 영화가 관객들, 최소한 국내 관객들에게 '소구'하는 요소는 레인이 주연으로 나온다는 점

이외에 뭐가 있었을까 싶었다. 적어도 난 그랬다. 딱히 액션을 다른 장르에 비해 즐기지도 않고, 새빨갛고

끈적한 느낌의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기는 비쥬얼이기만 하면 족한 것도 아니었으니. 무슨 흡혈귀도 아니고.
 

영화만 놓고 보자면 그냥 그랬다. 그다지 여운이 크지 않았던 그야말로 살짝 얹힌 드라마, 뻔하고 간결한

스토리, 만화같은 액션, 과도하다 싶을만큼 잔인하게 선정적으로 묘사된 죽고 죽이는 장면들. 결국 그 비쥬얼에

집중해서 그걸로 승부를 보려한 영화였던 것 같지만, 킬빌에서 보였던 핏빛잔혹한, 그렇지만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마저 들었던 영상미보다는 많이 모자라 보였다. 훨씬 잔인하고 리얼하게 많이 죽어나갔지만 뭐랄까,

아무리 대량의 피가 사방에 흩뿌려져도 부담감과 속의 메슥거림 이상의 감정을 느끼기 힘들었다.


아름답지 않았다. 불편하기만 했다. 그래서일 거다. 숱한 고비를 넘기고 그야말로 혈겁의 전투를 계속해온

레인의 몸에 남은 상흔들이 처절해보이고 그래서 아름답고, 그런 종류의 미감을 끄집어내기보다는 그저

너덜너덜해진 '걸레'처럼 보였던 건. '핏빛 아름다움', 뭐 그런 류의 미감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그가 적들과 주고

받는 합들 사이로 번져나가는 붉은 피에서는 그다지 그런 미감이 건드려지지 않았다. 영화가 끝날 즈음 성한곳

하나없이 신체의 전면과 후면 모두 커다란 칼에 뜯긴 자국이 몇개씩 생겨난 레인이 우뚝 선 모습은 징그럽기만

했다.


레인의 연기가 문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액션 영화에 액션 이외 연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애초 영화가 추구했던 '미감'의 문제 아닐까 싶다. 어쩌면 영화 자체가 그런 '핏빛 미학'을 추구한 게

아니었던 거다. 그저 난도질하고 죽이고 피가 사방에 적나라하게 튀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뭐,

그렇다면 기존 헐리우드 영화가 '동양적 소재'에 기대어 그려내려 했던 '핏빛 아름다움'의 정형과는 상당히

다른, 새로운 시도가 되는 셈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냥 좀 생각없이 만든 삐급영화였던 게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저번에 전지현이 일본식 교복입고 칼휘두르던 '블러드'를 보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배우 한 두명이 헐리우드

작품에 나간다고 해서 그들이 '한국' 배우로서의 대표성을 갖는 건지, 헐리우드에서 그들이 '한국' 배우로서

인정받는 건지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그들은 이를테면 '배우 올림픽'에 한국이라는 나라 국가대표로 나간 게

아니라, 그냥 헐리우드에서 필요한 동양적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한 일개 배우인 거다. 괜히 한국 배우의

헐리우드 진출, 이렇게 대서특필하고 주목하고 자랑스러워할 게 아닌 거 같은데. 오히려 헐리우드에서 계속

이런 식으로 소비하고 왜곡해 나가는 '동양', 혹은 '한국'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만 쓰이는 소모품이 되는 건

아닐까. (배우 본인들은 헐리우드 진출의 후광을 업고 돈도 벌고 명예도 얻겠지만.)


이 영화만 해도 오리엔탈리즘에 경도된 동양의 이미지들이 덕지덕지 포장된 거다. 그건 영화가 어색한 이유 중

다른 하나일 수도 있겠다. 한국인 관객들에 익숙한 '동양'의 이미지와 컨텐츠가 왠지 익숙한 듯 낯선 모습으로

헐리우드에서 재구성되고 있으니, 도무지 몰입이 안 되는 거다. ('동양'에 대한 백지 이미지를 가진 미국이나

서구에서야 그냥 그런가부다 하고 흡수되는 이미지겠지만 말이다.) 주로 일본에서 연원하는 국적 불명의

동양적 이미지들, 상당히 강조되어 노출되는 레인의 '동양적 생김새', 가족을 중시한다 여겨지는 '동양적

가치관', 게다가 영화를 보면서 이건 일본관객들이 불쾌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던 '동양적 복수'의

방식, 묶어놓은 사람에 복수를 한다고 칼질을 하는 것까지. 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세탁소의 한국인 주인은

차치하고라도, 마이크를 쥔 힘센 '서양' 헐리우드가 동네방네 '동양'은 이런 곳이야 떠벌리는 꼴이다.


물론 한 술밥에 배부르랴, 는 지적이 나오리란 거야 빤히 예상되는 바이지만, 요는 그거다. 한국배우 한두명의

진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한국의 국격이니 위상이 중요하다 생각한다면) 헐리우드에서 한국을, 동양을

다루고 소비하는 방식의 단무지스러움을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한국배우들의 헐리우드 진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리고 그게 이슈가 되어 해당 영화가 쉽게 홍보된다고 해서 이득보는 사람이 누굴까.

결국 레인이 나온다는 사실만 빼고나면 전혀 잘 만들었단 생각이 안 들었던, 딱히 인상적인 것도 없고 울림이

남는 장면도 없던 별볼일 없는 영화였다고 고백하는 셈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