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남부의 가장 아름다운 해안 중의 하나라는 샌디에고 라호야 지역, 그 보석같은 해안 중에서도 특히나

 

영롱하게 빛나는 해변, 블랙 비치(Black's Beach)다. 이곳은 특히 자연주의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으로, 누드로

 

모래밭을 활보해도 전혀 눈치보거나 어색할 일이 없다.

 

블랙 비치는 토레이 소나무 주립 비치(Torey Pines State Natural Reserve)와 맞붙어 있는 곳으로, 다만 그 황량하고

 

아름다운 해안가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제법 가파른 비탈길을 통해야 한다.

 

절벽 위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는 시야에 걸려들어오는 건, 누군가가 만들어 세워놓은 세로로 길쭉한 푸른색 액자.

 

 

 

빗물에 씻겨 거대한 등뼈가 드러난 것처럼 울룩불룩한 땅을 조심해서 밟으며 해안가로 내려가는 길.

 

 

휘영청 구부러진 해안선 따라 슬며시 내려앉은 안개낀 풍경을 보고 있으니 여기가 어딘가, 문득 망연해진다.

 

 

 

열심히 내려가는 길, 전날 내렸던 소나기 탓인지 길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이제 바닷가 도착. 도착하자마자 반기는 건 해류가 세니 수영할 때 조심하라는 경고판이다.

 

그리고 곱고 새카만 입자들을 숨기고 있는 금빛 모래사장. 파도에 쓸려서 오르내리며 환상적인 무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곳곳에서 보이는 실루엣들. 전혀 아무런 색깔도 추가되지 않은 살색의 실루엣들이 해안선을 따라 여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그리고 막 도착한 사람들은 한귀퉁이에서 자연스럽게 훌렁훌렁 옷을 벗고 있었고.

 

 

그들을 향해 카메라를 향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이럴 땐 그저 앞에 펼쳐진 푸른 하늘과 바다를 감상할 따름.

 

 

나 역시 그들의 대열에 동참한 채 조금은 차갑지만 이내 기분이 좋아졌던 태평양 푸른 바닷물에 몸을 담궜다가

 

모래사장을 거닐기도 했다. 모두 벗어던진 채 탁 트인 바닷가에서 파도와 바람과 모래에 살부빌 수 있다는 것,

 

그런 기회를 어디서고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꼭 다시 한번 잡아챌 일이다.

 

 

 

태국 꼬싸멧의 동부 해안가, 핫 싸이 깨우(보석모래 해변)에서 아오 힌콕(돌 언덕 해변), 그리고 아오 파이(대나무 해변)이란

 

이름으로 이어지는 그곳에서 늘어지게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우선 아침 겸 점심. 탁한 색깔로 바래버린 먼지투성이 팬이

 

머리 위에서 빙빙 돌아가는 길가의 음식점에서 간단한 식사로 토스트, 햄과 베이컨 등.

 

텔레비전이 있는 음식점을 들어갈 때마다 꼭 한번씩은 한국 드라마나 한국 배우를 봤던 거 같다.

 

여전히 한국의 촌에 드문드문 남아있는 시골 상회같은 느낌으로 번다한 음식점의 카운터.

 

그리고 꼬싸멧 동부해안의 서로 다닥다닥 붙어있어 쉽게 구분하기 쉽지 않은 어느 해안으로 들어가는 길목.

 

아마도 아오 힌 콕과 아오 파이의 사이쯤이랄까, 사실 해변의 이름이 중요하진 않다.

 

이렇게 하얗고 보드랍고 고운, 밀가루같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법한 모래사장에서 일광욕을 하고 쉴 수 있다면.

 

뜨거운 햇살을 막아줄 천을 파는 아저씨가 온몸을 칭칭 가리고서 모래사장을 산책중이셨고.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파라솔과 긴의자들은 따끈하게 덥혀지는 중이었으며.

 

비로소 자리를 잡고 돌아본 주변 풍경은 정말이지..

 

구아바니 망고니 코코넛을 바구니에 담고 팔러다니시는 행상아주머니도 적절한 타이밍에 찾아주시고.

 

 

어느 중년의 부부는 양산을 하나씩 받쳐들고서, 한손엔 신발을 덜렁거리면서 나란히 백사장을 거닐고 있었다.

 

 

모래사장이 워낙 하얗고 깨끗해서 더욱 맑고 투명해보이는 바닷물.

 

 

바닷물이 이런 파스텔톤의 에메랄드빛이랄까, 청록빛으로 반짝거리는 데야 뭍에서 버틸 재간이 없는 거다.

 

 

잠시 뛰어들어 파도랑 놀다가 다시 파라솔 아래로 들어오면 파라솔에 걸러진 기분좋은 햇살이 몸을 말려준다.

 

이런 풍경을 보면 기분이 더 좋아지기도 한다..지만 잘 모르겠고. 크흠.

 

 

해가 슬금슬금 중천으로 오르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로 내몰렸나보다.

 

그러고 보니 긴의자 옆에 적힌 저 태국문자, 이국적이고 매력적이다.

 

 

사람들이 슬슬 많이 보인다 싶더니 패러세일링 하는 사람도 계속 보이고, 멀리 나간 배들도 많아진 듯 하다.

 

파라솔 이용료를 걷으러 다니는 아주머니의 움직임은 살짝 부산해진 거 같지만 역시 여유롭기만 하다.

 

 

파라솔 아래서 뒹굴, 청록빛 파도 아래서 뒹굴, 하다가 슬몃 몸을 일으켜 술을 찾으러 가는 길.

 

술집에는 시계를 걸어두지 않는다더니, 여긴 그래도 시간은 봐가며 마시라고 하나보다. 저 온갖 류의 신의 물방울들은 어쩌고.

 

꽁무니에 태국 국기를 펄럭이며 앞코를 들썩들썩, 벌름벌름하는 게 어지간히 배고픈 모양새다. 내달리는 모터보트.

 

숨은 쉬고 있나, 걱정될 정도로 몸을 운신하지 못하던 검둥개 녀석. 만사 귀찮거나 어지간히 나른한 게다.

 

 

꺄아..이런 물빛을 맨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패러세일링이나 스노클링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찾아다녀주시는 서비스.

 

흠..찍으려던 게 뭐였냐면..저 푸른 바다..

 

아니면 이렇게 의자까지 갖고 다니시는 간식 파는 아주머니 아저씨.

 

그러고 보면 파라솔 아래 긴의자 밑에는 예기치 않게 강아지들이 숨어있다. 곳곳에 숨은 강아지를 찾아라.

 

그치만 다시 시선은 푸른 바다..로 쏠리고.

 

서양 꼬맹이들은 왜케 인형처럼 귀엽게 생긴 건지, 금새 커버리고 징그러워지겠지만서도.

 

어느 험난한 시절엔가 목을 잘린 불상이런가, 해변 들머리에 놓여있던 부처의 미소가 은근하다.

 

MEDITATION이란 글자 왼쪽에 이렇게 내리깔고 있는 눈매도 인상적이고.

 

그러고 보면, 여기서 이렇게 목걸이도 꿰고 팔찌도 꿰는 이네들의 눈매가 저 그림이랑 닮았다. 순하고 정신적인 느낌.

 

꼬싸멧의 동쪽 해변,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굴려대며 보낸 한나절.

 

달리 해야 할 것도 보다 중요할 것도 없던 그런 더할나위없던 시간.

 

 

 

태국 중부의 국립공원 휴양지 꼬싸멧, 역삼각형 모양 자그마한 섬의 무게중심쯤에 있는 뷰포인트에서 바라본 코발트빛 바다.

 

하루 300바트짜리(약 11,000원) 스쿠터를 대여해서 거의 산악 오토바이 수준으로 역동적인 코스를 내달린 후에

 

도착한 뷰포인트, 사실은 섬의 남단까지 가보려 했지만 비포장의 산길이 워낙 울퉁불퉁해서 그만 돌아가기로 했다.

 

 

제법 높은 지대까지 올라와서 자그마한 섬이 온통 눈 아래, 게다가 이런 각도로 굽어보니 바닷물 빛깔도 훨씬 깊고 푸르다.

 

돌아오는 길에 섬의 동쪽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비치를 하나씩 돌아보며 쉬엄쉬엄, 음료도 마시고 바다도 보고.

 

저 서양 아저씨는 바다를 바라보며 태극권을 하는 듯 한참동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여긴 모래보단 돌로 이루어진 해안인 듯, 잠시 앉아서 코코넛 주스를 홀짝홀짝.

 

꽃과 양산으로 장식된 코코넛 열매엔 물이 그득 담겨있었고, 하얗고 탱글한 젤리 역시 두껍게 붙어있고.

 

해변에선 어느 서양인 커플이 영화를 찍고 있는 중.

 

해안에서 다시 비포장도로로 올라가는 길, 정글 한가운데로 스며들어가는 느낌이다.

 

24시간동안 빌려서 열심히 타고 다닌 125cc 혼다 스쿠터. 기름은 일단 만땅 채워주던데, 섬 내부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절반도 채 닳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골목 어귀에선가 만났던 용 그림. 화려한 색감의 용 두마리가 입을 쩍 벌린 채 지키고 섰다.

 

동쪽 해안가에는 방갈로나 값싼 숙소가 많이 모여 있었는데, 그런 숙소들을 가리키는 표지들.

 

슬슬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서쪽 하늘.

 

 

 

둥근 홍등이 주렁주렁 내걸린 장대들이 맥주병이 놓인 테이블들 사이에 가로수처럼 불을 밝혔다.

 

 

몇걸음 내딛지 않아 바다에 들어가 파도랑 놀다 온 사람들이 물을 뚝뚝 흘리며 테이블에 앉아 저녁을 먹는 시간.

 

자그마한 해안 모래사장 곳곳에 색색의 조명들이 불을 밝히고 한줌의 사람들을 꼬드기는 시간.

 

 

 

순식간에 까맣게 불살라진 하늘 아래 점점 휘황찬란한 느낌으로 번뜩거리는 노랗고 붉은 등불들.

 

 

 

태국 꼬싸멧, 역삼각형꼴의 섬에 동해안가에 대표적인 해변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번화가도 이쪽에 형성되어 있다.

 

타이 음식점이나 뭔가 유러피안식 음식점, 술집이라거나 상점들, 심지어는 타투샵 같은 것들도 모두.

 

그리고 산깨우 비치, 태국 가이드북에도 고작 세네 페이지 소개되고 마는 꼬싸멧인지라 별반 정보도 없이 갔고

 

어느 비치, 어느 식당이 유명하다는 정도의 정보조차 관심없이 그저 꼬싸멧이란 섬을 덩어리로 즐기러 갔다.

 

저런 마음이면 충분한 거 같다. 꼬맹이가 좋아라고 팔짝팔짝 바닷물로 뛰어들듯, 즐길 준비만 되었다면 끝.

 

바다에서 놀다가 지치면 하얗고 고운 모래사장 위의 파라솔과 긴의자에 누워 과일도 사먹고 맥주도 사마시고.

 

그늘에 누워 따뜻한 온기, 파란 바다, 시원한 바람, 보슬거리는 모래의 촉감을 즐기는 유러피안 부부들.

 

좀체 급할 줄도 모르고 양순해보이기만 하는 강아지들도 그늘을 찾아 누웠다.

 

간식거리를 팔며 돌아다니는 행상 아주머니와 계속 눈에 밟히는 저 파란 거북 튜브. 재밌겠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림 그리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듯, 누군가의 하트가 모래에 새겨졌다.

 

시퍼렇게 시원한 바다, 그리고 맹렬하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달리는 모터보트. 그 위에 나부끼는 풍선 하나.

 

 

누가 만들었을까, 꼬싸멧 모래사장의 곱디고운 모래를 물에다가 개어서 빚어올린 느낌이다. 거대한 천불천탑이 섰다.

 

 

해변과 해변 사이, 야트막한 돌무더기들이 바다 깊숙이 치고 들어간 둔덕 위에 피리부는 아저씨와 인어 아가씨 상이 섰다.

 

 

 

잔잔하게 보글보글 밀려들어오고 나가는 투명한 파도. 하얀 거품이 일다가도  이내 맑고 투명한 유리같이

 

하얀 모래사장을 쓰다듬곤 밀려나버리는, 한없이 평화롭고 아늑한 바다.

 

그렇지만 살짝 북적이는 노점가 앞에서는 이렇게 거북거북들의 종족 번식의 욕구가 피어오르고.

 

 

 

어느 파란 플라스틱 의자를 떡하니 차지하고 뒹굴거리던 고양이 한마리는 사람이 다가와도 마냥 게으르기만 한 눈빛이다.

 

 

 

 

 

 

 

 

강릉 앞바다가 고스란히 내려다보이는 호텔. 대체로 경포해수욕장이나 그 옆의 사근진해수욕장에 인접한 호텔/모텔들은

 

바다쪽 오션뷰와 경포호쪽 마운틴뷰 중에 하나를 골라잡게 되는데, 이 곳 같은 경우는 높이나 위치나 딱 바다 옆이다.

 

창가 밖 테라스에 나가 아래를 굽어보면 용궁민박집도 보이고, 담백하고 고졸한 기와지붕과 색색으로 널린 빨래를

 

몽창 삼켜버릴 듯한 파도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밀려들어오고 빠져나가고.

 

비치 하우스라고 적힌 간판의 '스'를 가만히 보면 나름의 센스랄까 미감이 느껴져서 훈훈하기도 하다.

 

해안도로와 바다 사이, 갈수록 쓸려나가며 좁아지기만 한다는 모래톱에 바닥을 뉘이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파랗고 벌겋고 희끄무레한 단층 민박집들이 쪼르르 늘어섰다.

 

 

 

이리저리 창밖으로만 둘러봐도 속이 탁 트이는 동해바다 풍경.

 

다음날 아침, 졸린 눈 부비며 테라스로 나가 게으르게 몇 방 찍어본 일출 사진. 날이 흐려서 조금 찍다가 말았지만.

 

언제고 이런 풍경을 가진 방이라면 와서 머물고 싶다는 생각. 몸이고 마음이고 금세 충전될 거 같다.

 

호텔방을 나와 잠시 해변가를 산책하다 눈에 띈 들꽃 한 무더기. 11월 중순이니 제법 추웠는데 지지 않았다.

 

지지 않은 건 노랑 꽃잎들 말고도 싱싱한 젊음들 역시. 저러다 따뜻하게 덥혀진 방에 들어가면 바로 뻗겠지만서도.

 

아무래도 겨울 바다란 건, 이렇게 휑한 게 정상이다. 일말의 로맨스나 낭만을 꿈꾸지만 이내 차갑게 몸이 식고 마니까.

 

 

조금 차로 내달려 강릉초당순두부마을을 가다가 만난 텅빈 들녘. 어느새 산너머 가라앉는 해가 단말마의 비명을.

 

뙇. 하고 내지르다.

 

바다를 옆에 끼고서, 잠시잠깐의 침묵도 존재하지 않도록 파도소리가 우르릉거리며 맥놀이 중인 곳이기도 하지만.

 

살짝살짝 변주되며 쉼없이 이어지는 파도소리가 어느 순간 먹먹하게 사라져버리는,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속초 해변의, (내맘대로 이름붙인) 사랑나무. 사랑이 주렁주렁.

저 생선의 이름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폴짝 뛰어올라 등대를 집어삼키려는 타이밍에 사진 한장.

겨울날의 바다는 잔망스러운 파도 앞에서 다들 멈춰서 있는 느낌이다. 벤치도, 감시탑도, 바다를 찾은 사람들도.

바다가 거칠어져 쓰나미가 몰려오면 바로 코앞에 있는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 가까운 이마트까지 도망가라는 안내판.

고놈 참 잘 생겼다. 사람들이 쉼없이 번갈아 사진을 찍어대는 틈새에서 비스듬히 올려다본 사랑나무.


한 장의 사진을 기억하며 찾았던 강릉 경포해수욕장. 해풍을 막는 야트막한 솔숲 너머로 깔끔한 흔들의자가,

그리고 그 너머로 탈색되어버린 듯한 누런 빛의 모래사장과 퍼러딩딩한 바다가 있었다.

바다에 도달하면 더 나아갈 곳이 없다 멈추게 되지만, 사실 조금만 몸을 틀면 될 일이다. 바다와 함께, 파도소리와

함께 발맞춰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무한하게 뻗어가는 거다.

모래사장엔 경사에 기대어 꽁꽁 얼어있는 잔설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여름철 뜨겁게 달궈졌던 누런 모래사장이

색이 바랜듯 창백해져버린지라 시퍼렇게 차가운 얼음눈들은 자연스레 보호색을 맞춰입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바다를 따라 앞서 걸어간 걸음걸이들. 발자욱들이 줄맞춰 정연히 늘어선 게 왠지 땅을 헤집어둔 공동묘지같다.

무언가 저 구덩이에 넣고 봉긋하게 흙을 쌓아올리면 파도가 와서 다 쓸어버릴 것 같은. 그런 세기말적 풍경.

바다를 따라 걷는 기분이 그랬다. 파티나 잔치가 끝난 뒤의 적막함이랄까, 50연발 폭죽이 숨쉴틈 없이 터지고 나서

텅 비어버린 채 모래사장에 나뒹구는 느낌. 겨울바다의 풍경들이 하얗게 재만 남아버린 가슴에 날아와 박혔댔다.

BGM은 서영은의 '겨울바다', 경포해수욕장에서 무작정 북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뭐 뾰족한 일정이 있는 것도

가야 할 곳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그냥 저 위쪽 어딘가에 테라로사라는 까페가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슬슬 걸어보기로 했던 참이었다. 바다를 따라 걷다가 불쑥 기습하는 파도에 발걸음이 뒤척거리기도 하고,

문득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발걸음이 파도에 씻겨내리기도 하는 길.

그러다 문득 발에 채인 유리병 하나. 와인병에 코르크 마개로 단단히 막힌 게, 안에는 돌돌 말린 종이까지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게 한눈에도 파도에 실려온 메시지를 담고 있어 보였다. 뭐지, 일본에서 왔나. 아님 미국..?

그 자리에서 코르크마개를 따고 안의 종이두루마리를 꺼내 보았다. 약간 습기가 차 있긴 했지만 까끌한 종이의

질감이 그대로 남아있고, 테이프로 허리춤이 둘둘 감겨 있어 슬쩍 들춰본 속지엔 한글이 써져 있는 듯. 일단은

들고 가다가 나중에 따뜻한 데 앉아서 읽어보기로 했다.

꽁꽁 언 민물길이 바다로 향하는 길, 얼음에 반사된 빛무리들이 시멘트 교각 바닥을 긁으며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삼면이 바다라는 한국의 해안가에 빼놓을 수 없는, 군부대와 군대 시설물들. 여긴 심지어 탱크가 한대

바닷바람에 녹슬어가고 있었다.

뭍에서 흘러내리는 민물이 모래사장 사이로 야트막한 개울을 만들었다. 찰박거리며 위태로이 바다로 향하는

물길을 시시각각 얼리며 덮쳐오는 얼음판, 그 위로 성글게 번지는 빛그림자.


더이상 물의 흐름이 읽히지 않는 빙판, 여러번 깨지고 얼고 깨지고 얼고의 과정을 반복한 듯 조각난 얼음판들이

조각보처럼 이리저리 얽혔다.

그리고 어느 모래사장에 꽂힌 채 당당히 바다를 굽어보던 팽팽한 낚시대 하나. 가늘고 약해 보이는 낚시대가

바싹 성난 듯이 머리를 곧추세우고 있는 게 제법 긴장감을 머금고 있다.

몇 걸음 걷다가 문득 뒷주머니가 허전해졌다. 아까 그 와인병 안에서 꺼냈던 메시지를 뒷춤에 꼽아넣고 있었는데

여러번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카메라를 만지다 보니 어느 틈에 도망가 버린 것. 왠지, 그 종이쪼가리를 꼭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발걸음을 되짚어 거꾸로 걷길 십여분. 이렇게 얌전히 구덩이에 놓여있는 걸 용케 다시 만났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은 언제 봐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바다가 떠밀어 보내준 메시지도 다시 찾았고,

방파제를 때려부술 듯한 소리를 내며 들썩이는 파도를 보며 계속 걸었다. 


날카로운 칼날처럼 깨어졌을 유리조각조차 이렇게 부드럽고 둥그런 모습으로 바꿔버리는 파도의, 바다의 위력.

특히나 겨울바다가 주는 신산하고 허한 느낌이란 건, 어쩌면 이렇게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고 잘게 부숴버리다가

종국에는 남는 것 하나 없이 지워버리는 그 압도적이고 거대한 힘에 대한 경외감이나 허무함일지도 모르겠다.

겨울이라 그런지, 바다 색깔이 한결 더 검푸르다. 잉크처럼 검푸른 바닷물이 수면으로 밀어올려져서는 점점

에메랄드빛으로 연해지다간 하얀 파도로 보글보글. 모래사장까지 끌려나온 파도는 뒤미쳐 온 파도에 익사해버린다.

이쯤이 좋겠다 싶어서, 메시지를 펼쳐 보았다. 누군가의 글씨가 하얀 종이 가득 적힌 채 인연을 칭하며 친구를

청하고 있었고, 언제나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란다는 인사까지 적혀있었던 메시지. 이메일 주소도 적혀있었지만

알아볼 수가 없어 연락할 도리는 없고, 배를 접어 바다에 띄워보내는 게 최선이지 싶었다.

그렇게 뭍에서 흘러내리는 민물이 만들어낸 자그마한 개울에 띄워서 바다로 흘려보내며. 중간중간 모래톱에

걸쳐 멈추기도 하고, 빙글빙글 제자리에 맴을 돌기도 했지만 어쨌든 바다까지 나가는데 성공.

순긋해변이던가, 간소하게 만들어진 부두가 방파제의 품 속에 안겨 있었다. 시뻘겋게 녹슨 철제구조물 위로

앙상하게 덮인 나무판때기, 그리고 딱딱한 부두시설과 딱딱하고 약한 배 사이의 완충을 위한 고무타이어.


파도가 철썩철썩 방파제에 속절없이 부딪혀 깨지고 있었다. 자그마한 부두의 외곽을 단단히 감싼 방파제,

언뜻 보면 아무렇게나 팔다리를 쩍쩍 벌린 채 내팽개친 탕녀나 탕아 같기도 하다.

모래사장을 따라 계속 걷고 있는 참이었다. 경포대에서 사근진, 순긋, 순포해변까지 이름이 계속 바뀌고는

있었지만, 모래사장은 죽 이어진 한 길이었다. 물론 이렇게 중간중간 민물이 넘실거리며 모래사장을 가르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물이 마른 겨울철이라 잔뜩 녹슨 다리는 아무 쓰임도 없이 그저 거기 있을 뿐.


바다를 계속 끼고 걷자니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까는 바다가 모든 걸 지워버리고 무화시켜 버리는 힘을

갖고 있어서 허무하다 했지만, 아니, 그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아무리 잘게 깨고 부수고 으깨어도 뭔가는


남는다. 그렇게 남은 것들이 조금씩 쌓여 모래사장을 이룬 걸 테니까. 말하자면 저건 수백년, 수만년 전의

감정과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겨 있는 거대한 아카이브인지도 모른다.

사념(思念), 사념(沙念), 모래들의 사념들. 파도가 아무리 으깨고 바스라뜨릴 기세로 억겁년을 덤벼든다 해도

사념들은 고스란히 남는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변한다는 말이 진리처럼 통용되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조금씩 해가 기울어갔다. 쉬엄쉬엄 사진도 찍고 돌아보기도 하며 걸은 길인지라, 게다가 바닥이 단단하지 않아

걷기 쉽지 않은 모래사장으로만 따라 걸어온 길인지라 꽤나 시간을 들여 걷고 있었다.

저 너머 고래등처럼 수면 위로 불쑥 튀어나온 바위 위에는 갈매기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석들이

싸질렀을 게 뻔한 배설물들이 성난 파도로도 쉽게 지워지지 않을 하얀 줄무늬가 얼룩덜룩.

순포해변을 지나 계속 올라가려는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하다. 해안가를 따라 철망을 얹은 철책이 끝없이

이어져있고 중간중간 저렇게 침투 대비용 표찰까지 붙여놨다. 어렸을 때는 돌멩이를 철책에 꼽아놨었던 거 같은데.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 녹슨 깡통만 굴러다니며 버려진 해변이나 마찬가지다.

한쪽엔 바다를, 한쪽엔 부대를 끼고서 아예 쭉 주파해버릴 생각으로 열심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난리가

났다. 호루라기를 불고 손을 흔들고. 더이상 접근하지 말라길래 은근 부아가 나서 걍 지나간다는데 왜 난리냐고

한마디 했다가, 그냥 왔던 걸음 되짚어 돌아가기로. 불쌍한 군바리들, 까라면 까는 그들이 무슨 잘못인가.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트리 위에 얹었던 탈지면 솜뭉치를 닮은 얼어붙은 눈 한조각. 밟으면 아작아작 소리가 나는게

좋아서 한참 밟고 돌아다니다가 조그마한 이 녀석은 차마 밟지 못하고 사진 한장.

이 녀석은 얼마나 묵은 걸까. 모래를 잔뜩 묵은 이 녀석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단단한 알루미늄 캔이 호일처럼

얊고 약해질만큼의 시간이 흘렀고, 이제 조금씩 몸이 헐어가며 모래알로 변해갈 거다.

돌아나와선 부대 뒷켠의 차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앙상한 싸리비를 거꾸로 꽂아놓은 듯한 겨울 나무, 그 위로

싸리비에 이리저리 쓸리고 번져버린 듯한 겨울 하늘. 슬몃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다.


애초 목적지도 없이 그저 걷던 참이었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이 근방에 테라로사라는 까페가 있다고 했었다.

겨울바다라봐야, 도착하면 금세 추워져서 이내 돌아올 걸 알고 있었으니까. 저런 까페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거짓말처럼 눈 앞에 번쩍 나타났다.

그렇게 근 세시간, 경포대에서부터 북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모래사장을 밟아 걷던 길이 끝나고, 테라로사에 앉아

다시 또 네다섯시간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글도 끼적이고.


잔뜩 걸었지만, 쉼없이 뭔가를 생각했던 것 같지만. 막상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다 사라져버린 것 같아서

따뜻한 까페 안에서 이상한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했던. 그렇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




을왕리 해수욕장, 뱅글뱅글 달팽이 문양을 그리던 스피드보트에 두 가족 시선이 붙박혔다.

방금까지 모래를 가지고 놀던 에너지 넘치던 두 남자아이도, 조그마한 돗자리 위에서

바닷바람을 즐기며 따끈한 햇살을 감각하던 두 어머니도 시간이 멈춘 듯 가만히 멈춰선 채

시선만으로 그 궤적을 따르고 있었다. 뭔가 보트를 꼭지점으로 한 삼각형이 만들어지는 듯.




@ 을왕리 해수욕장

지중해와 알제리 사이에는 누렇고도 길다란 모래변이 있다. 지중해를 바로 굽어보는 호텔에서 나와 지중해로.

어제는 모랫바람이 불어온 건지 해변가 모래들이 바람에 휩쓸린 건지 온통 누런 바람이 불었는데,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그야말로 쾌청이다. 뭔가 황량하고 황폐한 느낌의 도로와 길가 녹지를 밟고 건너 바다로.

쉐라톤 호텔이 차지하고 있는 이 해변엔 주인없는 긴 의자들이 네개씩 다섯개씩 열맞춰 가지런했다, 위풍당당한

포신처럼 말린 파라솔을 하늘향해 쳐들고는 꼿꼿이 자세 유지 중. 발이 푹푹 빠지는 고운 모래사장이라 이미

내 구두 속은 씨름판이 된지 오래였는데, 이런 곳에서 저렇게 가지런히 긴의자를 세팅해두다니. 턱없는 감탄.


저 멀리 보이는 곶은 알제리 해방전쟁 때 프랑스군이 가장 최초로 침투했던 곳이라고 했다.

바람이 거셌다. 바람 따라 파도도 거셌다. 하얀 포말이 모래사장에 욱씬, 하며 부서져내렸다.

바닷가에 오면 늘 파도를 헤아려 보게 되는 건, 어렸을 적 무슨 동화에선가 아홉번째 파도가 그 중 크다는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 동화에선 눈이 바다색인 바다고양이가 나왔었다.

아무 긴의자에나 털썩 주저앉았다. 의자 위 얇게, 그렇지만 빈틈없이 코팅된 모래가 정장바지와 사각거렸지만
 
뭐, 알제리의 지중해를 맞이하는 데 적절한 옷차림을 하고 나올 만한 짬은 애시당초 포기했단 말이다.

역시, 알제리의 건물들은 대부분 베이지색이랄까, 회색조랄까. 바닷가 포말의 색깔같기도 하다. 색채 부족.

뒤를 돌아보면 조막만한 그림자만을 겨우 숨긴 긴의자들이 태양 아래 희뿌옇다.

"그것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그때였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하늘은 활짝 열리며 불을 비오듯 쏟아놓는 것만 같았다." (이방인, 까뮈)


아마 뫼르소 그는 바다를 등지고 있었을 거다. 바다의 요란스런 소리를 듣되 그 율동감넘치는 움직임을 못 봤기에

더위를 못 참은 게다. 

엉성하게 만들어진 해변가 한 귀퉁이의 계단. 힘주어 밟기도 겁날 정도의 바닥, 하물며 설핏 손대기조차

미안해지는 앙상한 난간.

아마도 쉐라톤 소유의 해변과 이외의 해변을 가로막아 놓은 거겠지. 모래사장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누런 빛깔의

홑껍데기 성벽이 쉐라톤의 영지를 수호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해변가 저편에는 깃발도 펄럭인다. 줌으로 땡겨보니 이런, 이 영지를 소유한 가문의 문장, 커다란 에스.

뭔가 깃발이 저렇게 혼자 맹렬하게 바람에 나부끼는 걸 보자니 피가 끓는다. 왜지..?ㅡㅡ;

바닷가, 그러니까 모래사장과 땅의 경계란 건 늘 모호하기 마련이어서, 표현하기도, 인식하기도 쉽지 않다.

대개 이런 식으로 돌멩이 마구 모아놓고 대충 야트막한 녹색식물 삐쭉삐쭉 꼽아놓으면 거기가 경계려니 한다.

자연스럽게 눙치고 들어가는 모래사장과 맨땅, 둘의 자연스러운 화해가 이뤄진다.

베티블루라는 영화에서 이런 비슷한 신이 있었던 거 같다. 주인공 남자가 베티와 함께 해변가의 허름한

집을 얻어 신나게 꾸미던 장면이었던가.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서, 다시 영화를 확인해볼만큼 열의가

뻗치진 않았으니 그냥 그랬나보다..그랬던 영화같다..정도로 넘어간다.

지단도 이렇게 해변가에서 동네친구들과 축구를 했을까? 호텔 안에는 온통 정신없고 뭔가 중요한 '척' 하는 일들이

가득한데 여긴 참 유유하다. 적당히 경쾌한 템포의 파도소리 덕분에 너무 늘어지는 느낌도 없고.

여전히 바람은 미친듯이 세게 불었다. 골대 앞 존을 그리는 사람은 몇번이고 흰색가루통에 손을 넣었다 뺐다.

손에서 흘러내린 가루들이 모래사장에 선을 그린 채 얌전히 버텨줘야 하는데, 미처 바닥에 안착하기도 전에

거개가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붉은 황소도 뿔났다. 깃발처럼 펄럭거리던 황소가 어느 순간 똑바로 알루미늄 봉을 향해 돌진하는 자세를

취했고, 나는 몇 번의 실패 끝에 저 녀석의 각진 몸뚱이와 붉은 투혼을 기울지 않고 그럭저럭 담았다.

시와라는 오아시스 마을이 있다.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지중해를 끼고 쭈욱 달리다가 리비아 국경근처까지 한 15시간 버스 달림 나오는 아주아주 조그마한

마을인데, 주변은 온통 사막이다.

밤에 여우가 다녀간 모양이다. 우리가 자던 주변에 온통 동물발자국이 가득했고, 저만치 던져진 빵조각과 생선뼛조각

주위에는 거의 난장판 상태다. 6시쯤 인나서 서늘한, 아니 거의 춥다시피한 공기에 부르르 떨고선, 꽁꽁 얼어붙은 몸을

살살 달래며 모래 언덕을 오르내려주곤 해뜨는 걸 구경했다. 여긴 정말 왜 이렇게도 멋진 건지.

시와 사막에 이름자 새기기. 별달리 새길 만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발을 질질 끌며 커다란 이름을 새겼다.

알리가 모는 차를 타고 성난 파도에 비척거리는 자그마한 돛단배처럼 듄을 타고 오르내리며 신나라 하다가 차밖으로

떨어질 뻔 했다. 로데오 기분을 내보겠다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손을 놓고 있었던 탓이다. 위험한 고비를 넘겼음에도

좀체 눈이 사막에서 떨어지질 않으니 실감도 안 났다. 결국 호텔로 돌아와서도 아침을 대충 먹고서는 자전거를 빌려서는
 
다시 사막으로 나섰다.

우선 가깝다는 Fatnas Springs를 들러 사막으로 갔다. 거기서 바라보는 일출, 일몰도 아주 그림이라던데, 한참 달려

도착해보니 어쨌든 사막만은 못하다. 야자수숲이 운치있게 우거져있어서 사막이란 느낌도 다 죽어버렸달까. 이미

이 때 내게 미의 기준이란, 사막이다, 아니다로 갈려있을 정도였으니.


자전거는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았던데다가 길도 아주 달리기 좋은 정도여서 타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딱

멈춰서니 등덜미에 땀이 흥건하다. 망고주스를 한잔하고 Palm Tree Hotel의 자랑인 야자수정원서 한두시간 낮잠을 자곤

다시 사탕수수주스. 이번엔 바로 남쪽으로, Grand Sand Sea로 달렸다. 알렉산드리아로 나갈 표를 구하는 문제로

좀 주춤하긴 했지만, 역시 친절하게 길안내에 용건까지 대신 설명해주는 아저씨 덕분에 금방 '졸라 큰 사막바다'로.

자전거로는 더이상 전진이 불가능한 모래사장 속에서 허부적대다가 잠시 자전거를 버려두고 방랑. 그렇지, 사막에 꼭

있어야 할 법한 하얗게 백골이 되고 만 동물의 잔해, 그 립 하나를 쥐고 괴물처럼 뜯어먹는 시늉...은 좀 심했나.


조금 걷다가 문득 주위에 아무것도 없이 붉은기운 도는 누런 모래밖에 없음에 살짝 두려움마저 느끼고는 서둘러

자전거쪽으로 돌아나오길 수차례, 그저 사막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홀린듯이 바라봤댔다. 뭐랄까...

사막의 지평을 자아내는 그 온갖 모양의 선들...밋밋하다가도 휘영청 굽어지고, 잔뜩 곡선을 그리다가도 어느 순간 탁,

하고 급전직하하는 그런 선들. 혹은 부드러운 능선으로, 혹은 각잡힌 깍아지름으로. 때론 그저 한없이 펼쳐진 양 하다가도

때론 휘영청 감아돌아가는 그런 끝없는 선. 더불어 태양이 쏘아내는 햇살에 따라 변화무쌍한 그 음양감이라니.

그 굵은 몇개의 선들로 이뤄진 경관에 촘촘히 그려진 바람무늬를 보고 있으면, 아무도 밟은 자국 없는 그 순결한 땅에

차마 발자욱을 내기가 저어스러워질 정도였단 말이다.

내가 밟고 걸어간 발자국...그것이 그린 자그마한 모래언덕을 보고 있으면 어찌나 이건 아니다 싶은지, 우악스럽거나

혹은 무지하게 푸욱 파묻혀있을 뿐이거나. 내가 딛은 발자국에 드러난 모래굴곡은 너무도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데, 사막에 펼쳐진 굴곡은 그냥..어쩔 줄 모를 정도로 아름답다. 사막은, 딱 그대로 있어야 할 모습이란 말이다.

게다가 그 능선 너머로 새파란 하늘이 세상의 절반으로 시야를 차지한다면야. 휴우...

사막에 딱 서면...그냥 나하고 모래...그것만 있는 셈인데, 그게 그렇게 좋다니. 무언가 완벽한 것이랑 마주하고 있는 그런

가슴벅참이 느껴졌다. 신이 있다면, 신을 마주한다면 그런 막막하고도 거대한 것을 마주한 느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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