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인형' 리뷰는 기네스 병맥주를 사서 마시고는 그 딸랑이는 것의 정체를 찍은 사진을

포스팅할 때까지 미뤄둬야겠다, 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런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잠드는 건

역시 못할 짓이다.


노조미가 처음으로 밟은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발견한 달그락대는 병, 아마도 기네스 병맥주일

그 이미지만으로 이 영화는 응축될 수 있다. 별 다를 거 없는 그 유리병은 조그마한 구슬 하나를

안에 꼭 품고 있다. 고작 조그만 구슬 하나가 더 들어있을 뿐인데, 그 존재로 인해 오히려 유리병

속이 텅 비어있음이 더욱 부각되는 거다.


유리병을 꽉 채우지도 못하고 절겅절겅 소리만 내는 구슬, 사람의 마음이 딱 그렇다. 존재를 꽉

채워주지도 못하면서 그 '결락감'만 더욱 부각시키는, 도무지 쓸모를 모르겠는 '맹장'같은 녀석.


마음이 생긴 공기인형이 바라보는 세상은 누군가가 누군가의 대용품이 되는 세상이다. 그것은

그녀가 늘 스스로 '나는 공기인형,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용품'이라고 아프게 되뇌여왔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처지로부터 비롯한 날카로운 시선이다. 그녀가 그렇게 보이는 세상에 마음

아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옛 여자친구를 잊지 못하고 섹스돌에 그녀 이름을 붙인 채 인형놀이에 열중인 아저씨,

자동응답기에 녹음해둔 자신의 목소리와 대화하며 스스로를 위안 중인 아가씨, 젊은 시절

학교에서 대리교사로 일했던 할아버지,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여직원을 세탁기 위에서

겁탈하는 사장님..심지어는 공기인형 그녀가 마음을 주려는 남자조차 그녀를 옛 여자친구의

대용품으로 여기고 있다.


어쩌면 그녀의, 또 나의 과잉한 반응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의 집에 여전히 간직된

옛 여친의 사진들, 옛 여친이 썼던 헬멧의 긁힌 자국, 자신도 공기인형과 비슷하다는 그의 고백,

그녀의 바람을 뺐다가 넣었다가 하고 싶다며 그가 아무 설명없이 요청해왔던 것들 모두

'공기인형 그녀는 그의 옛 여친 대용품'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공기인형 그녀의 바람을 뺐다가 넣다가 하는 건, 그야말로 옛 여친에 대한 그의 욕구를

극적으로, 그리고 지독히도 이기적으로 해소하는 방식 아닐까. 떠난 옛 여친에 대한 복수심

-죽어라죽어라 하는-인지, 반대로 아마도 죽어버린 옛 여친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공기인형을 통해서만이 해소할 수 있는 그의 욕구. 적어도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배려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그걸 왜 하고 싶은데, 라는 그녀의

질문에 우물쭈물 답하지 못했던 그의 흐트러진 눈빛만 봐도 뻔하다.


그녀가, 인간의 마음이란 게 꼭 '대용품 or not'으로 칼처럼 갈리는 게 아니란 걸 깨달은 후여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쉽게 분별증류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게 마음이란 걸 깨달아서 다행이었다.

그녀는 이미 훌쩍 자라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를 품어줄 만큼, 비록 그녀의 숨으로 그를 살릴

수는 없을지언정, 그녀가 어쩌면 그보다 성숙한 마음을 갖게 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는 아직

미처 인정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공기인형 그녀에 대한 '사랑'을 그녀는 그의 마음 속에서 발견해냈다.


한때 그녀의 주인이었던 남자는 말한다. 마음이 없던 때가 좋았어, 그때로 돌아와주지 않을래.

글쎄. 그저 자신의 욕망을 쏟아붓고 돌아서 화장실에서 씻어내면 그만이었던 그때를 말하는 거라면,

당신이 쭈그려앉은 모습은, 섹스돌을 껴안고 말을 거는 모습은, 왜 그리도 불행해 보였던 걸까.


'마음이 생겨난다'는 표현, 그야말로 자신도 모르게 생겨나는 거다. 어느날 문득 공기인형이 눈을

깜빡이며 몸을 움직이듯, 누군가를 생각하고 무엇인가를 바라는 마음이란 건 한순간에 번쩍

생겨난다. 비록 그 마음이 꼭 충만하고 행복한 순간을 약속하는 건 아니라지만,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괴롭고 쓰디쓴 경험만을 불러 오겠지만, 그건 텅빈 유리병들 틈에서 스스로를 구분짓는

'가능성'이자 '축복'에 가까운 무언가다.


영화를 보는 시각에 따라서, 영화는 밝을 수도, 혹은 지독히도 어두울 수도 있을 거 같다.

아마도 그게 '마음'이란 녀석이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할 거고. 그 녀석은 그저 그림자도 투명한

'공기인형'들 틈에서 잘그랑잘그랑, 나 여기 있다고 소리내고 있을 뿐이다.



어제 '공기인형'을 보고 나서부터 기네스 맥주가 무지하게 땡겼었다.

[공기인형] 짤그랑대는 기네스 병맥주,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퇴근하고 나서 장보러 가신다는 부모님을 따라 코스트코로, 농협으로. 코스트코엔 병맥주가 없었고 농협엔

수입맥주라곤 호가든과 버드와이저 뿐이었다. 농협에 수입맥주가 있단 사실에 더 놀랬다.

집앞 편의점도 두군데 들렀다. 한군데에서 드디어 기네스 캔맥주와 조우해서, 분명 다음 편의점에선 짤랑대는

기네스 병맥주를 만날 수 있으리라 가슴이 벅차올랐었다. 웬걸, 아예 기네스는 보이지도 않았다.


하여 다시 처음 편의점으로 돌아가 두 캔 사버렸다. 캔이지만 살짝 달그락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져서, 타협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엔 맥주캔 두개를 한 손에 계주 바통처럼 옴쳐쥐고는 내달렸다. 캬~ 소리내어 마시고 싶었다.

꼴꼴꼴...맥주가 흘러나오면서 짙고도 자욱한 안개 덩어리를 만들다간 조금씩 검정 액체와 뽀얀 거품의 형체를

만들어 간다. 진한 커피같이 쌉쌀하면서도 굉장히 부드럽고 매끈한 느낌의 갈색 거품이다.

그리고, 마음. 공기인형 그녀가 백 안에 넣고 방울처럼 흔들어대던 그런 짤랑짤랑 소리가 아니라 조금은 탁성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던 이유다. 캔 속의 마지막 한방울까지 탈탈 털고 나니 기네스의 마음이 얼핏 나타났다.

이리저리 굴려가며 자세히 살피니 하얀 플라스틱 탁구공같이 생겼다. 세련된 검정색의 중후한 알루미늄 외양

속에 저런 가뿐한 느낌의 플라스틱을 굴리고 있었다니, 다시금 공기인형을 생각한다.


텅 비어있는 속을 채우지도 못하면서 도리어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그 결락감만 더욱 또렷이 떠오르게 만드는.

그런 게 마음. 하찮은 플라스틱 한 조각일 뿐인데도, 그게 이렇게 다르다.

무려 "기네스 고유의 맛인 크리미 헤드(부드러운 거품층)을 생성시키"는 능력을 가진 거다. 공기인형에게

마음이란 게 덜컥 생겨버리고 나서는 마냥 쓰잘데기없고 가슴 아픈 일들만 있었던 게 아니듯, 기네스 캔을

덜그럭덜그럭 귀찮게 부딪혀댔던 녀석도 마냥 쓸데없이 굴러다닌 건 아닌 셈이다. (물론 위젯 때문에 기네스는

일단 흔들거려서 흥분하고 나면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것 같다. 풍요로운 거품이 팝콘처럼 튀곤 하는 거다.)

마시고 나면 꼭 아쉬워지는 거품. 맥주라곤 마신 적이 없다는 결백함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 깔끔이 주걱으로

싹싹 야무지게 닦아낸 것만큼 거품이 한점 남김없이 모조리 내게 흘러들어온다면 참 좋을 텐데. 게다가 기네스,

비싸단 말이다. 편의점에서 무려 캔 하나에 3,500원.

복부 절개를 시술했다. 그녀의 마음이 보고 싶었다. 주둥이에서 흘깃흘깃 비치는 마음조각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불끈 힘줄이 선 손가락이 껍데기를 와그작, 찌그러뜨려 버렸더니 거품범벅의 '마음'이 잔뜩 당황한 채

배회하고 있었다.

기네스의 마음을 얻으려면 마법의 성을 지나 숲을 건너..어둠의 동굴 속 멀리멀리 나아가야 한다. 날카로운

알루미늄제 이빨을 조심조심 어루만지며, 달그락달그락 떨고 있는 매끌한 마음이 튕겨나가지 않도록 손끝에

감각을 집중한 채 섬세하게 쥐어야 한다. 너무 세게 쥐어도 안 되지만 너무 약하게 쥐어도 안 된다. 너무 많은

손가락들을 들이밀어도 빼내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최소 두 손가락은 집어넣어줘야 한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얻어낸 기네스의 '마음'. 일곱개를 모아서 소원을 빌면 기네스의 신이 나타난다나.




*                                                     *                                                     *

기네스 드래프트. 알콜 4.2%, 원산국은 아일랜드.

안에는 '위젯'이라 불리는 조그마한 플라스틱공이 들어가서 제멋대로 휘젓고 있어 기네스 흑맥주 특유의

풍성하고 부드러운 거품을 만들어 준다.


이선균이 부러웠다. 여복(女福)이구나. 그는 첫사랑인 두살 연상의 운동권 누나와, 파주에 내려와 만난

착하고 발랄한 아내와, 그리고 어리지만 강렬한 매력의 아가씨, 아내의 여동생까지 만수산드렁칡처럼

이리저리 얽힌 거다. (게다가 그녀는 근래 내가 기대감을 품고 영화를 찾아보게 만드는 '서우'란 말이다.)


그가 첨엔 멋져보여서, 나중엔 받은 게 많아서 계속한다던 철거민대책위원회 등 사회 운동, 그건 첫번째

첫사랑과의 접점이자 그녀를 기리는 그만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이상 계속하는 이유를 못

찾으면서도 추억을 되새기듯, 그녀에게 인정받겠다는 듯 철거촌에서 화염병을 던진다. 아내 역시 그의 삶에

늘 존재한다. 파주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로, 첫사랑과의 관계에 대한 죄씻음의 고백으로.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고백은 아내를 여전히 놓지 못하는 그의 마음을 거꾸로 보여주기도 한다. 계속 허점을 내보이고

유인해내다가 끝내 입술을 덮치고 단추를 끌러내린 서우에 대한 맘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가 누구를 사랑하는 걸까, 어느 순간 헷갈리기 시작했다. 여복이라기보다 여난(女亂)이란 단어가 가깝겠다

싶어지기도 했다. 어느 마음 하나 스쳐가거나 가짜였던 것은 아닌 거 같은데. 어느 것 하나 놓지 않은 거라면,

어느 순간부터 두 번째, 세 번째 사랑이 시작된 걸까, 그건 아예 구분조차 못하겠다. 아무리 사랑이란 감정이

칼로 잘리듯 툭 끊기고 툭 시작되는 감정이 아니라지만, 어쩌면 그는 영화가 끝나도록, 그가 삶을 다하도록 

세 명 모두를 가슴에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우 역시 혼란스럽긴 매한가지. 그녀는 언니를 위한다며 형부를 미워하고, 사랑하고, 떠나고 돌아온다.

그녀가 놓인 세속의 문제들-보험금 문제라거나 사고 원인이라거나-따위가 그녀 내면의 모순과 뒤숭숭함을

더욱 강화하는 거다. 그녀는 언니에 대한 사랑과 형부에 대한 사랑 사이에 끼인 채, 언니와 형부의 사생활을

불편함과 호기심이 복합된 눈초리로 바라보고, 언니를 위한 가출에 형부 사진을 잘라 품고 간다.


파주는, 계속해서 안개 속이다. 파주로부터 나가는 길, 들어가는 길 모두 몽환적이게도 짙고 무겁게 떠도는

안개 속에 잠겨 있다. 뭐 하나 뚜렷하지도 칼처럼 구분되지도 않는 그런 안개속, 이선균과 서우는 파주에 있다.



별 생각없이 빌려든 디비디, 저번 여름 시사회에 당첨되고도 못 갔던 영화였던지라 왠지 묵은 숙제를 해낸다는

기분으로 보게 되었댔다. 사실 별 거 없을 거 같은 영화,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겠지 싶었다.


"키스를 못하면 그게 안되잖아. 애피타이져와 메인요리같은 거지."

몰입하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키스는 섹스를 부르는 마법의 언어, 키스없는 섹스란 상상할 수 없다는 남자의

말 한마디. 느슨한 눈빛을 풀어놓고 느슨하게 보던 영화에 바싹 기대어 행간을 읽어보려 애쓰게 되고 말았다.

'그것'이 말하는 바는 사실 단순한 섹스를 이르는 건 아니다. 세상의 남자를 두 종류로 가르라면, 사랑 없는

섹스가 불가능한 사람과 사랑 없는 섹스가 가능한 사람, 이렇게 가를 수 있지 않을까. 몸과 마음이 함께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그는 전자였다.


연애가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여자는 남자에게 묻는다. 자긴 내 몸이 좋은 거야 아님 내가 좋은 거야. 나와

하는 게 좋은 거야 아님 그저 함께 있어도 좋은 거야. 몸과 마음, 욕망과 마음을 구분지으며 자신에 대한

순도 백퍼센트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하기 쉽다. 영화에선 다행히도 남자와 여자는 그런 경계를 일찍이

뛰어넘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싶도록. "뾰루지 퇴치용으로 여자를 만나는 건 싫어."


대신 그들이 봉착하는 혼란스러움은 조금은 조잡스러운 거다. 남자는 여자친구가 있고 여자는 이미 결혼한

몸, 법률적 '주인'-부부는 서로가 서로의 몸에 대한 주인이란 의미에서-이 있는 거다. 키스로 시작된 그들의

일렁이는 감정에 무엇이라 이름붙일지 몰라 서로를 시험에 들게 하고 다시금 맛보고 괴롭히는 모습은, 마치

질풍노도 십대의 그것과 같다. 키스로 불붙은 서로의 몸을 두고 이게 순수한 감정일까 아니면 잠시 환각에

취한 걸까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다.


"지루한 일상을 탈피하고픈 욕망이 만든 일탈일까. 사랑이 아니라 속궁합만 잘 맞나? 난 남들보다 나약해서
이유없이 흔들리는 건가? 난 너무 이기적이어서 내 생각만 하는 건가? 달랑 키스에 애무 갖고 인생을 뒤집어
엎을 수 있나?"

어휘는 다를지언정 그들이 겪는 혼란스러움은 어쩌면 다시, 처음이다. "난 지금 그의 몸이 좋은 걸까 마음이

좋은 걸까. 그와의 키스가 좋은 걸까 아니면 사랑하고 있는 걸까." 차마 사랑이라는 단어를 유부녀의 입과

여친 있는 남자의 입에서 다른 사람을 향해 뱉어내기 힘들어서일 뿐, 그녀 역시 몸과 마음의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들고 말았다. 남자는 끊임없이 설득하려 하고, 우정도 사랑의 일종이며, 함께 있으면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그런 끌림이 바로 사랑이라고 되풀이 말하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어 보인다.


여기서 싸우게 될 상대는 두 가지다. 일부일처제라는 혼인제도, 그리고 지금의 남편/혹은 여친. 싸울 맘이 

용케도 생겨서 싸워야 한다면 상대가 그렇단 얘기다. 영화는 혼인제도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대신, 멋지게

이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약간의 힌트를 남긴다. 그건 다시금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기도

하니, 제도적 측면을 우회하여 '사랑'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사람에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 이쯤에서..헤어지자. 자기 잘못 아냐. 자기 탓 안해, 탓은커녕 자긴 부족한 게 없어. 근데 내 사랑이 부족한
거 같아...더 노력해볼걸 하는 아쉬움은 남아. 요즘 내가 많이 소홀했지? 안됐지만 진정한 사랑을 만났어.
헤어지게 되서 맘이 안 좋다.." 운운.


글쎄. 새로운 사랑들에겐 과거를 닫아버리는 불쾌하지만 건설적인 '통과의례'라 해도, 남는 사람에겐 분명

치졸하고 열불 뻗치는 변명이다. 그의 여친처럼 "서툴러서 그런건데 뭐. 서툴다고 뭐랄 순 없지."라고 쿨하게

넘어갈 수 있으려면 그야말로 운명론자쯤이나 되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둘만의-셋 이상의 사랑도 있을 수

있겠지만-사랑을 위해 상처받은 이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면, 그런 걸 구할 수 있는 절대자가 있다면

말이지만, "그(전 남편)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할 거 같애"라는 여자의 말에서 그녀가 짊어질 짐을 헤아릴 수

있으리라.


이야기의 화자는 그녀 자신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마지막을 가까스로 봉합한다. "미련은...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해요. 애써 알려고도 만나려고도 하지 말아요. 그냥 키스가 끝나면 떠나요. 말없이, 눈길도 주지 말고

어떤 표정도 짓지 말아요. 여운은 가슴속에 추억으로 담아두기로 해요."
키스를 마친 후 몸과 마음의 반응을

정지시켜 버린 그녀, 그렇담 그녀는 사랑한 걸까 아닌 걸까. 키스는 몸이 반응한 걸까 마음이 반응한 걸까.

어쩌면 키스는 몸과 마음이 모두 담긴, 그래서 역시나 소크라테스 말마따나 '가장 힘센 도둑'인지도 모른다.


키스를 못하면 그게 안 된다. 키스란 건 마음을 말하기도, 몸을 말하기도 한다. 마음이 안 땡기면, 몸이 안 땡기면

섹스가 안 된단 이야기. 첫번째는 (남자를 좀더 믿어도 된단 의미에서) 의미심장하고, 두번째는 뻔한 이야기.


"키스는 나누기 전엔 가벼울지 무거울지 아무도 몰라요."


 



 

#1.

지난 토, 일요일은 충북으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말도 안 되지만 무슨 '파워블로거'와 함께 한다는

충북도청 주최 팸투어에 낄 수 있었고, 여행이란 소재로 다들 한 가닥씩 하신다는 쟁쟁한 블로거들과 함께

충북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기회였던 게다. 재미도 있었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고, 블로그에

있어서도 뭔가 시야를 넓힐 계기도 되었고. 무엇보다 갓 봄이 다가오는 시골길을 쏘다닐 수 있었다는 사실에

마냥 좋았던 1박2일이었다.


#2.

마음이 아무리 사방으로 쏘다녀도 몸은 솔직하다. 당장 몸이 나른하게 처져 있거나, 전혀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라면 머릿속에 아무리 오만 상상과 욕심이 꿈틀거려도 전부 부질없는 거다. 예전엔 사실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었다. 혹은 몸은 단순히 마음이 타고 다니는 일종의 탈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게 아녔다. 몸이 내키지 않으면 마음이 아무리 재우쳐 봐야

꼼짝도 않는 거다. 몸은, 마음보다 순결하다. 멍충이.


#4.

종로 바닥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돌아왔다. 얼마전 '반폭'이라며 소주반/맥주반의 술잔을 돌리며 쉼없이

들이키던 술자리, 혹은 밉상 고참이 낀 회사에서의 술자리같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유쾌한 자리였다.

대학에 들어간지 어느새 십년이 넘어버린 채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며 서로 엉덩이도 툭툭 쳐주고

육두문자도 남발하는 그런 자리였어서 더욱 즐거웠는지도. 하갸 언제는 안 그랬냐만서두.


#5.

커다란 T/F에 포함되어 일할 뻔 했다. 지난 1월의 출장 이후 연이은 행사 쓰나미가 지날 만 하니 거푸 바닷속

깊이 잠수를 빙자해 꼴깍꼴깍 사경을 헤맬 뻔 했던 거다. 다행인지 무사히 지나쳐갔고, 이제 다시금 예측가능한

세상에서 예측가능한 시간표를 살아갈 수 있게 된 거 같다. 무언가 굉장굉장히 정신없이 지나버린 1, 2월.

다시 정신 좀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새삼스런 다짐 한 번. 당장 내일부터 출근은 자전거로 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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