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_01. 후쿠오카 국제공항에서 유후인 가는 길(고속버스 시간표 포함)

 

#2012_02. 유후인 료칸의 열세가지 코스 만찬.

 

#2012_03. 방마다 노천온천이 딸린 유후인 몰.

 

#2012_04. 유후인 료칸의 숨은 그림찾기.

 

#2012_05. 유후인 료칸의 흔한 조식.

 

#2012_06. 유후인역까지 걷는 밤마실.

 

#2012_07. 유후인의 토토로, 그리고 숯의 정령들까지.

 

#2012_08. 유후인 료칸 체크아웃 후의 하루짜리 산책..오전편.

 

#2012_09. 흑마백마가 환대해주는 유후인.

 

#2012_10. 유후인 료칸 체크아웃 후의 하루짜리 산책..오후편.

 

#2012_11. 짙은 녹색의 그림자에 숨어든 금색 비늘의 호수, 유후인 긴린코.

 

#2012_12. 유후인의 편의점털이.

 

#2012_13. 후쿠오카의 밤거리 & 유후인 2박3일 여행일정

 

 

1일차. 후쿠오카 도착, 유후인 도착 (늦은 점심) 온천 (저녁) (밤마실 조금)

 

2일차. (아침) 유후인 마을 구경. (점심) (이른 저녁) 후쿠오카 이동. (늦은 저녁) (도심 구경 조금)

 

3일차. (여유있는 아침) 후쿠오카 출발. 서울 도착. (점심)

 

(끗)

 

 

 

 

 

 

 

 

후쿠오카 하카타역에 내릴 즈음 아슬아슬하게 해가 남아있다 했더니, 숙소에 짐을 놓고 다시 나오니 그새 깜깜해졌다.

 

하카다역, JR선이나 신칸센을 탈 수 있는 후쿠오카의 구도심 중심지다.

 

퇴근시간, 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여기나 한국이나.

 

 

역사 앞에 차곡차고 주차되어 있는 차들에서 번지는 불빛, 그리고 그 너머 그리 높지는 않은 건물들로 이뤄진

 

스카이라인에서 터져나오는 불빛들.

 

 

조리개를 바싹 조이고 바라본 후쿠오카 시내의 밤 풍경.

 

후쿠오카에 와서 라멘을 놓치고 갈 수는 없는 일. 돼지뼈를 푹 고아서 완전 찐득한 국물까진 아니었지만 이정도만 되도.

 

 

다음날 아침, 250엔의 전철을 타고 세네 정거장, 후쿠오카 공항으로 향하는 참이다.

 

게이트에서 비행기로 탑승하는데 문득 눈에 띈 에바항공의 헬로키티 비행기. 저걸 타는 건 아니었고.

 

사실 저런 건 본인이 직접 타는 것보다 누가 타고 있는 걸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다. 대부분의 통유리창 까페가 그렇듯.

 

내가 탔던 티웨이항공의 소박한 기내식. 음...저가항공사의 합리적인 비용 절감책이 반영된 부분이다.

 

그리고 한국, 인천공항에 새초록한 잎사귀들이 돋아났다.

 

 

유후인을 목적으로 했던 2박3일의 여정, 유후인을 만끽하기에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일정이었지만,

 

후쿠오카 시내 관광을 더하기에는 분명 짧았던 기간이었다. (사실 모든 여행은 늘 너무 짧다. 늘 짧다.)

 

 

1일차. 후쿠오카 도착, 유후인 도착 (늦은 점심) 온천 (저녁) (밤마실 조금)

 

2일차. (아침) 유후인 마을 구경. (점심) (이른 저녁) 후쿠오카 이동. (늦은 저녁) (도심 구경 조금)

 

3일차. (여유있는 아침) 후쿠오카 출발. 서울 도착. (점심)

 

 

 

 

 

 

 

 

'여위는 효과의 우롱차', 후쿠오카나 유후인은 아무래도 한국인 여행객들이 워낙 많아서 이런 한글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편의점이나 어디나, 만화적인 이미지들이 많은 나라인지라 이런 유머러스한 그림도 곳곳에 숨어있다. 저 침흘리는 모습은 참.

 

 

그리고 이번에 마셔본 것 중 가장 신기했던 건, 무려 스파클링 소이 워터. 한국어론 뭐랄까, 탄산 콩물?

 

 

그렇지만 역시 포장도 참 이쁘고 깔끔해서 더욱 호기심을 부채질, 맛은 생각보다 괜찮은 탄산 콩물맛이었다.

 

편의점에 흔한 과자랄까, 스낵이랄까. 이걸 먹을 때는 저 꼬맹이처럼 눈을 가리고 먹어야 하나보다.

 

볶음면이 레토르트 음식으로 편의점에서 이렇게 팔리기도 했다. 양념도 다 되고 야채도 조금 들어간 상태 그대로.

 

오후의 홍차 시리즈 증에서도, 이건 아마 한국에선 보지 못했던 거 같은데.

 

미니쉘 같은 초코렛들이 이렇게 낱갤로 팔리기도 한다. 리라쿠마가 누워있는 포장지가 귀엽다.

 

 

210ml, 딱 한잔감인 월계관의 사케병.

 

편의점 옆에도 굳이 이렇게 음료가 잔뜩 디스플레이된 자판기가 줄줄줄.

 

 

편의점, 슈퍼에 들러서 한바퀴 돌며 이 동네 이 나라 사람들은 뭘 먹고 사나 살피는 것도 여행의 재미 중 하나.

 

특히나 일본의 진하디 진한 마차가 맘에 들어서 꼭꼭 찾아보곤 했던 일본차 코너.

 

그리고 편의점에서 사왔던 라면들, 다다미가 깔린 유후인 료칸의 방에 앉아 시식 시작.

 

 

짜파게티나 볶음면처럼 끓는 물로 면을 익히고 나서 물을 빼 버려야 하는 조리상, 이렇게 속포장지에는 구멍이

 

뽕뽕 뚫리게 되는 부분이 배려되어 있다. 이런 게 정말 일본의 세심함을 보여주는 사례.

 

 

그리고 이 녀석은, 모밀면으로 된 라면..이라고 해야 하나. 온천물 속에서 하드보일드하게 익고 있던 계란 하나를

 

풀어 넣었더니 더 맛있게 먹었던 거 같다. 아니면 그냥 밤늦은 시간에 컵라면과 맥주란 게 으레 그런지도 모른다.

 

 

 

 

 

유후인역에서부터 유후인아동공원을 지나 드디어 유후인에서 놓쳐서는 안 된다는 곳, 긴린코 호수 초입에 도달했다.

 

슬슬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살짝 목이 마르다 싶던 타이밍, 일본까지 와서 물을 사 마시느니 음료를 사마시고 까페에서 차를 마시는 게

 

낫겠다며 계속 그런 걸 마셨던 차에, 저렇게 신기한 '오이 막대'라니. 살짝 짭조름하게 간이 밴 오이가 와삭와삭.

 

기운이 불끈 돋아 씩씩하게 걷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보이는 한글들, 그리고 한국인들의 한국말 소리들.

 

 

긴린코 호수 주변을 어슬렁대는 오리들, 처음에 조우했을 때는 정말 화들짝 놀랐는데, 그런 사람 따위 관심도 없는 듯

 

시크하고 여유로운 뒤뚱거림으로 이내 시야를 벗어났던 오리 한 마리.

 

 

드디어 눈 앞에 호수가 펼쳐지기 시작!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호수가 쫙쫙 양팔을 벌린 만큼 커지는 것만 같았다.

 

'긴린코'라는 호수 이름은 金鱗湖, 즉 금색 비늘 호수라는 뜻으로 풀이하면 될 텐데, 석양에 비친 물고기들의 비늘이

 

금빛으로 번쩍거린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호수 수면 아래로 팔뚝보다 굵은 물고기들이 미끄러지듯 유영중이었다. 아침해가 빛날 때나

 

저녁해가 가라앉을 때쯤에는 정말 꽤나 볼만하겠다 싶다.

 

 

알고 보니 이 '긴린코 호수'의 물 절반은 뜨거운 온천수, 나머지 절반은 차가운 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자욱하게 물안개를 피워올린다고 하는데 일정상 그 풍경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그래도 한낮의 쨍쨍한 햇살 아래에도 짙푸른 녹색이 시원하게 수면 위로 내리깔린 긴린코 호수의 호젓한 분위기나

 

드문드문 호수를 내려다보는 찻집이나 레스토랑들, 잠시 앉아 쉬어가며 시간을 붙잡아 두기에 딱 좋은 곳.

 

멀찍이 신사도 보이고, 저건 왠지 일본 애니메이션 '지옥소녀' 오프닝에 나오는 그 곳 같은 느낌.

 

 

긴린코 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산은 유후인의 명산 유후다케, 유후인 마을에서도 멀찍이 보이던 그 산자락이다.

 

 

 

호수변에 피어난 노란 꽃들이 제법 뜨거운 햇살에 축축 늘어졌다. 호숫물을 쭉쭉 빨아올리란 말이다.

 

 

유후인의 소로들을 거닐 때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들, 울창하게 숲을 이룬 커다란 나무들과 드문드문 호숫가에

 

모로 누워버린 나무들이라니. 꽤나 깊숙한 자연 속에 안겨 있는 느낌이 들었다.

 

 

 

 

호수를 한 바퀴 돌거나 이리저리 에둘러가는 길들이 꼬불꼬불 서로 꼬리를 물고 있었지만, 이미 유후인 료칸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오며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으니 굳이 다 돌아보진 않기로 했다. 잠시 짙은 녹색 그늘 아래서 쉬다가 유턴.

 

긴린코 호수 옆을 빠져나가고 다시 샵들이 즐비한 거리로 나가기 전, 아까는 미처 눈에 띄지 않았던 이쁜 가게가 하나.

 

 

인력거가 조금 탐이 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과연 이런 뜨거운 날씨에 사람이 헉헉거리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끄는데

 

나몰라라 맘 편하게 저 위에 앉아서 갈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어서 패스.

 

슬슬 유후인역까지 걸었다. 유후인역에서 긴린코 호수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무지무지 오래, 대충 네다섯 시간 걸렸던 거 같은데

 

여기저기 한눈 안 팔고 적당히 슬슬 내려오니깐 고작 30분쯤 걸렸으려나. 조금 이르지만 유후인에서 먹는 마지막 간식..이랄까

 

혹은 이른 저녁 part1이랄까, 유후인 수제버거.

 

 

이제 유후인에서 후쿠오카로 나가는 가장 늦은 고속버스를 타고 후쿠오카 하카다역 버스터미널로~*

 

 

 

 

 

 

유후인역에서 긴린코호수까지 유유히 걷는 길, 대충 중간쯤의 지점에는 '중앙아동공원'이 있고, 거기서부터 쭉 이어지는

 

직선길을 따라 걸으면 바로 긴린코 호수까지 가 닿게 된다. 소형차 두 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도로 양켠으로는 온통 꽃들,

 

그리고 간식거리를 팔거나 악세서리니 캐릭터상품을 파는 샵들.

 

지도만큼이나 간단하고 쉬운 길이라 좀체 길을 잃을 염려도 없거니와, 실제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서 쉬엄쉬엄 걷기 좋다.

 

 

바람에 펄럭이는 이발소의 출입문 커튼. 그리고 선연한 붉은 빛을 밝혀든 화분들.

 

비가 내릴 때 처마에서 땅바닥이 패이도록 주룩주룩 흘러내길 빗물을 달래려 살살 타고 흘러내길 길을 늘어뜨렸다.

 

곳곳에서 보이는 인력거꾼들. 꽤나 요금이 비쌌던 거 같은데, 3,000엔이었던가.

 

 

언젠가부터 이곳저곳에 있는 바이크들에 시선이 꽂히기 시작했다. 이 녀석도 참 이쁘네.

 

 

그렇다고 유후인 마을의 길들이 온통 샵들이 빽빽하게 꽂힌 그런 길은 아니다. 이렇게 빈 틈새도 보이고, 그 곳엔

 

옥수수를 걸어두고 말리거나 자전거들을 꼬리물고 주차해두는 공간들이 여백처럼 존재한다.

 

시식거리를 잔뜩 마련해둔 견과류 가게, 고양이를 컨셉으로 한 온갖 상품들을 팔던 가게, 악세사리들을 걸어둘 장식대마저

 

저렇게 이쁜 인형 모양으로 만들어둔 가게들. 어디 하나 그냥 흘려보내기 아쉬운 볼거리들이다.

 

 

특히나 이 고양이를 컨셉으로 잡은 가게는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고양이 인형이니 악세서리들이 가득가득.

 

 

 

 

길가에는 이 곳의 유명한 우유 아이스크림도 팔고, 이런 오징어 철판구이도 팔고, 빵에 오꼬노미야끼에 햄버거에..

 

길 건널 때 조심하라며 입을 한껏 벌려 소리없이 외치고 있는 저 꼬맹이, 거참.

 

 

홍등이 길게 이어지는 이 골목도 꽤나 궁금했지만, 조금씩 덥고 발의 무게가 느껴지고 있었다. 스킵.

 

 

 

그래서 다시 까페에 들어가 좀 쉬기로 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른 시간, 잠시 햇빛을 피하며 땀도 식히고 차도 마시고.

 

 

겸겸 까페 안에 그득한 아이템들도 하나하나 구경하고 사진도 정리하고.

 

유후인에서만 맛볼 수 있는(아마도) 유후인 사이다. 여느 사이다랑 별반 다를 게 없는 맛이었지만, 사실 병이 탐났던 거다.

 

가게 이층의 한 귀퉁이에 놓인 흔들의자. 햇살을 받으며 제 혼자 흔들흔들, 땀을 식히고 있엇다.

 

거품이 양껏 풍성하던 카푸치노.

 

꼬리를 흐느적 거리는 고양이 시계가 참 귀여워서, 저런 건 동영상으로 남겨야지 싶어서 담았더니..옆으로 누웠다.

 

 

온실처럼 온통 유리창으로 세워진 벽들을 돌아보며 나름 이 층에서의 경관을 바라보았다. 어딜 보나 말끔하고 단정하다.

 

 

 

 다시 원기를 좀 회복하고 밖으로.  

 

  

 

 긴린코 호수가 조금씩 가까워진다 싶으니 샵들이 점점 드문드문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여긴 긴린코 호수 옆에 위치한 자동차 박물관. 입구부터 동전을 넣고 탈 수 있는 자동차 장난감이 있어 눈길을 끌었지만,

 

박물관은 문을 열었는지 닫았는지, 좀 휑한 분위기다 싶어서 그냥 스킵. 이제는 긴린코 호수로~*

 

 

 

 

 

유후인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띈 건 사실 이렇게 흰 갈기를 찰랑거리는 백마였다. 백마가 끄는 마차는 그 다음으로

 

시선이 가 닿았고, 아무래도 저 백마의 긴 생머리같은 갈기는 엘라스틴을 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

 

마차에 사람들이 제법 꽉꽉 들어차 있었는데도 백마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유후인의 파란 하늘 아래 반점 하나 없이 하얀 말이 끄는 고풍스러운 마차라니, 유후인 도착하자마자 분위기가 샤방하다.

 

사실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교통 표지판 역시 하늘로 치솟으라는 의미로 새삼 새롭게 읽히는가 하면.

 

길바닥에 고개를 꿇어박고 귀여운 펭귄들이 가방을 메고 있는 그림을 찍어대기도 하고.

 

 

유후인역사 건물이 떡 버티고 선 유후인의 메인로드.

 

 

곳곳에 나있는 샛길들 하나하나, 재미있는 기억과 예기치 않은 즐거움을 품고 있을 가능성들이다.

 

그러던 와중에 곁눈질을 하며 따가닥 거리는 얼룩말 한마리 추가로 발견.

 

이 녀석도 참 순둥이처럼 생긴데다가 반질반질한 등저리에서 햇살이 자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마차 꽁무니를 조금 쫓다가 포기하고, 어느결에 살짝 달라진 풍경을 구경하고. 여기 사람들은 이미 마차엔 익숙한 듯.

 

그럴 수 밖에. 유후인의 자그마한 마을을 돌아볼 수 있는 마차가 시시때때로 돌아다니다 보니 워낙

 

곳곳에서 조우하게 되는 거다. 깔끔한 아스팔트 위를 다가닥다가닥, 경쾌한 발걸음으로 내달리는 말들.

 

 

문득 궁금해지고 경탄하게 되는 건, 저 흑마와 백마들이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양의 배설물들은 대체

 

어떻게 처리하길래 이렇게 깨끗하게 거리가 유지되는 걸까. 일본 문화나 교양의 저력인지도.

 

 

 

 

 

 

 

 

유후인 료칸의 체크아웃 시간은 보통 오전 10시, 그때쯤 나서서 후쿠오카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기 마련이지만 아예

 

하루를 유후인 마을에서 보내기로 했다. 유후인 역의 라커에 가방을 보관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걷기 시작.

 

인력거 아저씨가 토막난 한국어로 흥정을 걸어왔지만 기력이 쌩쌩한 상태에서 저런 걸 탈 리가 있나.

 

 

전날 밤에 미처 걷지 못했던 골목을 좀더 헤집어 보기도 하고, 밝은 대낮에 보니 또다른 풍경에 감탄하며 연방 사진을.

 

 

 

뭐지, 여기가 유후인의 긴자 거리쯤 된다는 걸까. 잔뜩 색바랜 간판을 보면 도저히 그럴 리는 없는데.

 

자판기 왕국답게 담배 자판기가 네다섯대 즐비하게 늘어선 건 제법 장관이었다.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숯의 정령을 만났던 곳, 여러 귀여운 아이템들이 많았다.

 

 

이렇게 굵은 터치로 파내어진 등불이 반짝반짝거리기도 했고.

 

 

이 정도 인테리어에, 이렇게 사람 없는 샵이라면 한번 앉아서 쉬어주는 게 예의지만, 아직은 몇 걸음 떼지도 않아서 패스.

 

 

샵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조그마한 왕복 이차선의 길거리. 그런 샵중엔 퇴마 효과를 연구하는 샵도 있다.

 

 

이런 류의 사이비 과학이랄까, 운명론이 발달한 나라답게 손가락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반지를 끼라고 유혹하는.

 

그러고 보니 일본은 아버지의 날이 있었다. 6월 17일, 아버지의 날.

 

조촐하지만 확연한 메인도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골목길은 틈틈이 나타나서 손짓했지만, 꾹 참았다. 일단은

 

긴린코 호수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다.

 

 

 

 

준보석이라 불리는 돌멩이마다 '능력치'를 표시하고 있던 그림. 우와, 이런 건 역시 온갖 종류의 게임이 발달한

 

나라라서 그런지 굉장히 시각적이고 확연하다. 마치 삼국지의 장수들 능력치를 따지는 것 같잖아. 지력, 매력, 무력..

 

이 복을 던져주는 고양이는, 그 주인의 복을 사방으로 던져버릴 셈인지 굉장히 몸값이 비쌌다. 무려 28만엔. 헉.

 

 

그리고 완전완전 귀여운 것들이 가득하던 샵 하나 발견.

 

 

 

날씨도 적당히 따뜻하다 싶었다. 아직 오전이라 그랬겠지만, 5시 버스로 유후인을 뜰 생각이었으니 근 6시간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었다. 흐느적흐느적 걷다가 쉬고 배고프면 군것질하고 차마시고 그러기로 했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그래서 이렇게 샅샅이 샵을 순례하며 사진도 찍고 이것저것 살까 말까 재보기도 하고.

 

 

이 고양이는 가게 앞에 놓인 의자에 배를 깔고 누워서는 슈퍼맨 놀이 중이었다.

 

이 곰인형은 어메리칸 스타일의 바이크에 기우뚱 앉아서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역시 고양이, 고양이. 일본은 왜 이리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걸까.

 

그리고 술을 파는 가게 앞에서 빗자루를 쥐고 있던 고질라.

 

잠시 앉아 쉬었다. 사실 직선거리로만 따지면 얼마 걷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샵들이 많아서 꼬불꼬불 걸었던 걸 헤아리면

 

마치 꽁꽁 감겨있던 실타래를 풀어놓은 것처럼 왕창 늘어날 거다.

 

 

너무너무 유명한-아마도 한국인 사이에서 특히?-롤케잌집 비스픽은 이미 가게 안이 바글바글하길래 스킵.

 

다리를 건너고 나서 만난 또다른 샛길. 개울을 따라 쭉 걷는 길 옆에 색색의 꽃들이 만발해서 유혹하는 중.

 

어느 길 모퉁이에는 누가 만들었을까, 페트병을 잘라서 어찌어찌 만들어낸 바람개비가 팽글거리며 돌고 있었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군부대의 움직임. 뭔가 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유후인에는 자위대 주둔지가 인접해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더 고급스럽고 세련되어 보이는 상점들, 음식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간단하게 브런치랄까, 가볍게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여행 중에는 가볍게 여러 끼를 먹는 게 현지의 다양한

 

음식도 맛볼 수 있고 특히나 유후인 같은 데에서는 길거리 음식이라거나 군것질거리들을 위한 여지를 남기는 방법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막상 메뉴판을 보니 이것저것 맛있어 보이는 게 잔뜩. 치즈 케잌이니 단팥죽이니 고구마 세트는 뭘까.

 

그래서 이것저것 맛보고 일본의 맛난 커피도 마시고, 시원한 에어콘 바람 맞으며 쉬다가 정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그렇게 유후인 마을을 샅샅이 살펴보기로 한 하루 일정의 반나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마을의 분위기만큼 고즈넉하고 여유롭게.

 

 

 

료칸과 각종 아기자기한 샵들이 즐비한 유후인의 거리엔 저녁이 일찍 찾아온다. 저녁 5시만 되어도 하나둘 가게 문을 닫고는

 

저녁 6시가 될 즈음이면 대개의 상점들이 불을 끄고 문을 내려서 여행자들이 북적이던 한낮의 풍경 같은 건 삽시간에 사라진다.

 

대개 그즈음이면 각자의 료칸에서 석식을 하고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고 있을 때인지라 그렇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동네 한바퀴 돌아보며 밤마실을 다니는 건 여행의 묘미 중 하나. 픽업차량을 타고 돌고 돌아 도착한 료칸에서부터

 

다시 유후인역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드문드문 불이 켜진 음식점들, 료칸들. 사람 손이 구석구석 닿아 이쁘게 꾸며진 깔끔한 건물들의 표정이 제각각이다.

 

한자로 '이용'이라 크게 적힌 이발소의 빨갛고 파란 간판도 잠시 지난한 회전에서 풀려나 한숨 돌리는 시간.

 

 

유후인 거리의 건물들은 대부분 2층, 끽해봐야 3층이었는데 이 호텔 정도면 굉장히 덩치가 큰 편에 속한다.

 

건물 앞이고 창문틀이고 온통 색색깔의 꽃들이 지천이다. 게다가 9시가 넘어간 밤에도 쓰레기 하나 없고 취객 하나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청결한 밤거리.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아도 무섭진 않고 살짝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조금 어둡다 싶으면 이내 코 앞에서 고개를 박고서 빛을 내려뜨리는 가로등들이 꾸벅꾸벅.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고 하하호호 하며 뱅글뱅글 돌고 있는 듯한 모션을 취하고 잇는 야쿠르트 집.

 

 

마음에 뭔가 짠하게 남던 풍경. 가로등 불빛에 기대어 겨우 하얀색 빛깔을 지키고 있는 저 허름한 양철 건물의 셔츠들.

 

 

그리고 깜짝 놀랐던 자판기. 맥주 자판기야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지만 이렇게 맥주병을 파는 자판기라니.

 

슬슬 걷다보니 벌써 낯익은 유후인역 앞 유후인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역 앞이라고 해서 가게들이 좀더 문을 열었거나 밤늦도록 불야성인 풍경 같은 걸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내친 김에 역 안까지 들어가서 구경하기로 했는데, 마침 새빨간 색의 기차가 서있는 게 보였다.

 

 

잠시 멈춘 게 아니라 아예 불을 꺼놓고 유후인 역에 웅크린 채 쉬고 있는 기차. 기차역조차 참 고즈넉하구나 싶다.

 

다시 돌아나오는 길, 택시 한대가 겨우 역사 앞을 지키고 있었고, 그 앞에 바리케이트엔 기차 모양이 꾸며져 있었고.

 

어느 골목에 슬쩍 고개를 들이박아 보니 멀찍이 대낮처럼 환한 풍경이 조금 보이는 거다. 저긴 뭘까, 싶었는데

 

왠지 온통 교교하게 침묵하며 어둠이 나려든 유후인 골목통의 분위기가 더 맘에 들어서 그냥 스킵.

 

그리고 살짝 후각을 자극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던 공중 화장실.

 

 

손톱달이 떠 있는 밤 하늘 아래에 그림처럼 이쁜 샛노란 집이 반짝반짝 빛망울을 두른 채 편의점 앞을 지키고 섰다.

 

 

아직 그래도 몇몇 술집은 불을 켜놓은 채 한적하게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버스 정류장 표지판을 빙 둘러싼 원형의 벤치엔 어둠만 내려앉았다.

 

 

크게 한바퀴 유후인 역까지 돌아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이 정도면 여자들끼리 여행와서 밤마실 나와도

 

딱히 위험하거나 무섭진 않겠다. 게다가 워낙 조그마한 동네라서 걸어서 돌아보는 재미도 있으니.

 

숙소인 '유후인몰'에 도착하고 나니 하얗고 노란 불빛들이 환하게 밝혀진 게 안도감이 든다.

 

 

 

 

유후인 료칸 '유후인몰'의 조식. 체크인할 때 7시반과 8시의 두 타임 중에서 선택해 놓으면 모닝콜도 겸해준다는.

 

신선한 샐러드로 먼저 입맛을 좀 돋군 후에 밥과 반찬으로 돌입.

 

생각보다 적지도 많지도 않았던, 딱 적당한 만큼의 아침식사.

 

 

반찬들도 조금씩 맛을 볼 수 있는 정도로, 그렇지만 그렇게 하나씩 맛보다 보면 밥 한그릇이 비워지는 정도로.

 

식사가 치워지고 나서 나온 건 정말 간이 하나도 맞춰지지 않은 그냥 생 콩즙이랄까. 콩비지랄까.

 

과일잼이 뿌려진 채 살짝 얼려져서 나온 치즈까지 먹고 나면 조식은 끝~

 

아무래도 일본의 료칸에 묵으면 이렇게 멋진 저녁과 아침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인 듯.

 

자리 옆에 일본 전통 화지로 문창살을 발라 놓고는, 더러 빵꾸가 난 곳에는 저렇게 이쁜 꽃모양으로 땜빵을 해 놨다.

 

 

유후인 료칸, '유후인몰'의 외관 탐구. 료칸에 들어서면서 꼭꼭 눈에 담기던 풍경을 좇아 밖으로 나왔더니

 

곳곳에 숨어있는 깨알같은 아이템들을 찾아내는 게 더욱 큰 재미였던.

 

 

료칸의 입구. 입구에서부터 온통 울긋불긋 그야말로 꽃대궐이다.

 

  

입구에 놓인 차임벨. 여느 술집이나 교실에서 볼 수 있는 벨에도 온통 꽃무늬다.

 

유후인에서 실감했던 '원피스'의 위력. 료칸에도, 유후인 거리에도 온통 원피스!

 

 

 

풀섶에 숨어서 갸웃이 고개를 내민 고양이 인형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고.

 

 

유후인몰, 조그마한 세로형 간판 양 옆에 서서 손님을 반기는 마냥 해피한 얼굴의 인형 두개.

 

 

이건 사실 유후인몰이 아니라 이전에 들렀던 숙소에서 담은 풍경. 비슷한 료칸의 풍경이다.

 

 객실문마다 별자리를 따서 붙인 이름, 그리고 나무를 파서 만든 호실 명패.

 

 

1층에 있던 레스토랑의 입구. 이 곳에서 저녁도 먹고 아침도 먹고.

 

 

남녀탕이나 가족탕으로 향하는 길에 발에 채일만큼 많이 널렸던 아이템들, 이 장난감 강아지도 그중 하나.

 

 

완전 싱싱하게 뻗어나간 굵고 탄탄한 대궁 위에서 활짝 피어난 잎사귀.

 

 

 

 혼자 사진에 담긴 고양이는 왠지 도도해 보이는 느낌이 아주 강하지만,

 

  두 녀석이 함께 담긴 사진에서 녀석들은 왠지 다소곳하다.

 

 

그냥 되는 대로 툭툭 아무데나 던져둔 것 같은 악세사리들이 료칸 바깥에 온통 널렸다.

 

 

 

그리고 따사로운 큐슈 지방의 햇살을 온몸으로 흠뻑 맞고 있는 꽃들.

 

2층 객실로 올라가는 길, 그 옆에 소복소복 쌓인 초록빛 무더기들.

 

가족탕으로 꺽어들어가는 길, 그 앞에 빨간 불이 들어온 걸로 보아 어느 가족이 지금 사용중이다.

 

주의할 것조차 딱히 없어서 온통 녹슬어버린 주의 표지판. 이 조그마한 온천 마을이란.

 

 

자칫 못 보고 지나칠 뻔 했다. 저 도자기 밖으로 뛰쳐나올 듯한 고양이 녀석 한 마리를.

 

 

 

료칸에서 펑펑 솟는 온천수 덕분일까, 새로 돋는 잎사귀가 무지 두텁고 반질거린다.

 

 

 

 

사람도 딱히 눈에 띄지 않는 고즈넉한 마을의 조용한 료칸, 건물 밖의 의자에 앉아 흐느적대기 딱 좋은 곳.

 

 

온통 담쟁이덩굴이 칭칭 휘감아 시간도 끈적하게 쉬엄쉬엄 흐르는 곳이라 이끼조차 한모금 머금었다.

 

 

 

 

조화라는 티가 너무 많이 난다 싶어서 처음엔 그냥 지나쳤었지만, 아무래도 그 빨갛고 푸른 색감이 참 선명하다.

 

 

 

어느새 어슴푸레하게 너울지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풍경, 시퍼런 어둠에 먹힌 바깥 풍경과는 달리

 

아직은 제 색깔을 고르게 지켜내고 있는 테이블 위에 아기자기한 장식들. 

 

 

체크인했을 때 고개를 꿇어박고 서류를 작성했던 딱딱한 책상에도 주홍빛 불빛이 둥실 떠올랐다.

 

  

그렇게 조금씩 어둠이 건물을 갉아들어왔고, 카메라로 담을 수 있는 풍경은 조금씩 줄어들어가고.

 

 

그 와중에 나비 모양 등불은 꽃망울을 향해서 활짝 날개를 펼쳤다.

 

 

 

원래는 이 곳에 머물 예정은 아니었다. 애초 머물기로 했던 숙소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된 것.

 

그렇게 옮겨간 유후인 료칸 '유후인몰'의 픽업 차량은 벤츠, 벤츠 로고를 단 봉고차였긴 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유후인 역까지 걸어서 20분이면 가닿는 곳, 유후인 동네가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걸 감안해도 이정도 입지면

 

정말 꽤나 훌륭한 편이다. 그리고 입지보다 중요한 건 그 곳에서 머물 공간의 내부 풍경.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시야가 한없이 쭉쭉 뻗어나간다. 현관을 지나 침실을 지나 다다미방을 지나 저 멀찍이 보이는 건,

 

방마다 구비했다는 실내 노천 온천..!!

 

 

사람 둘셋이 들어가도 모자라지 않을 사이즈의 노천 온천이 뻥 뚫린 하늘 아래 검게 그을린 나무 담벼락과 초록빛 왕성한

 

풀숲의 호위를 받으며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나중엔 그 뜨끈하고 미끈한 온천물에다가 편의점에서 사온 날계란을 담궈놓고 온천 계란을 만들기도 하고.

 

 

방 안에는 화사한 일본 전통종이로 씌워진 빳빳한 안내 책자에 료칸 객실에 대한 안내가 적혀 있었(던 것 같)다.

 

방에 들어선 손님들을 맞이하는 건 간단한 스낵.

 

그리고 유카타 두 벌과 일본의 진한 녹차 티백이 가득 담긴 다기 세트.

 

 

 

방안 곳곳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적당한 장소에 놓여 있었다. 온천에 들고 나갈 수건 꾸러미 옆에는 토끼,

 

열쇠나 잡다한 장신구를 놓음직한 받침대 위에는 꽃바구니, 뭐 그런 식으로.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 개인을 위한 노천 온천이 객실 안에 있다는 건 시간대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 때고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고즈넉한 시간대, 둥근 조명빛이 고스란히 옮겨진 온천 수면을 깨고 들어가기.

 

사실 온천물에 날계란을 익혀 먹기는 반쯤 실패하고 말았다. 물이 굉장히 뜨거워서 한참이나 찬물을 섞어야 했지만

 

막상 날계란을 익히기는 온도가 모자랐던 듯 하다. 그렇지만 밤새 온천물에 담겼던 계란들은 정말 굉장히 맛있었다!

 

 

 

개인용 노천 온천탕이 있다는 건,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에 눈뜨자 마자 첨벙 뛰어들 수 있는 뜨겁고 시원한 온천탕이

 

있다는 이야기. 밤새 지켜왔을 무거운 정적과 침묵이 한순간에 깨어져 나가는 순간. 보통 유후인의 료칸은 오전 10시까지

 

체크아웃을 완료해야 하는데, 그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온천탕 안에서 버티는 게 남는 거다. 몸에나 마음에나.

 

그리고 료칸의 객실 내부를 좀더 살펴보자면, 여느 일본의 호텔이나 숙소처럼 화장실은 꽤나 작다.

 

샤워장과 화장실은 분리되어 있고 각자는 꽤나 협소한 공간. 욕조가 그래도 들어가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실내에 개인용 노천 온천이 있다고는 하지만, 별도로 공용 남탕과 여탕도 있고, 크고 작은 '가족탕'도 있다.

 

가족탕의 경우는 이렇게 사용하기 전에 빨갛고 파란 램프에 불을 켜두어서 해당 욕실을 지금 사용하고 있다는 표시를 한다.

 

그래야 누군가 사용하러 와서 벌컥 문을 여는 민망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불빛을 켜두어 표시한다고 해도 만의 하나 가능성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가족탕 앞에 표지판도 세워둔다.

 

입욕중, 혹은 비어있음의 표시를 해두는 것에 더해 안에서 사람들의 말소리나 물소리가 들리면 조심해야 할 일이다.

 

 

가족탕 내부에 뻥 뚫린 하늘, 그리고 멀찍이 내려다보이는 유후인 마을의 모습.

 

 

그리고 대나무발로 구획지어지고 천장이 절반쯤 닫힌 가족탕의 모습. 이 정도 크기면 왠만한 목욕탕 사이즈다.

 

파란색 바구니와 빨간색 바구니, 역시 이건 남자용 그리고 여자용 옷을 담아두라는 의미일 듯. 외국에 나가도

 

인류 공통의 색감과 색에 담긴 함의를 이해하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남탕, 여탕이 분리된 여느 온천에서 흔히 보이는 입구.

 

 

 남탕에서 보이는 유후인의 봉긋한 산봉오리, 그리고 저만치 떨어진 다른 건물들.

 

탕 안의 시설만 보면 한국의 시내에선 이제 보기도 힘든 낡고 오랜 목욕탕 같기도 하지만, 여긴 물이 다르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열어본 여탕의 출입문. 부처님 오신 날 연휴가 끼어있는 황금연휴였지만 이곳까지 온 사람들은

 

(특히 한국인들은) 그리 보이지 않아 문을 열어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여탕이라고 말해두지 않으면 전혀 남탕과의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실내.

 

 

유일하고도 중대한 차이라면, 남탕에는 없는 디지털 체중계가 여탕 한구석엔 놓여있었다는 점이랄까. 그리고

 

옷을 보관해두는 바구니가 저렇게 얌전하게 대기하고 있다는 점도 차이점이랄 수 있겠다.

 

 

가족탕, 그리고 남탕과 여탕. 무엇보다도 객실마다 구비된 개인용 노천탕까지. 온천의 수질이 어떤지, 어떤 성분이

 

녹아있는지 같은 거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분명한 건, 이 곳의 온천 시설은 '개인용 노천탕' 하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일본과 다른 나라의 온천장들을 올킬하고도 남는다.

 

 

 

 

 

유후인 료칸에서 제공되는 석식. 보통 료칸은 여느 호텔과는 달리 투숙 인원수로 숙박비를 받는데,

 

그 이유는 온천에 대한 사용료와 더불어 석식, 그리고 조식이 함께 제공되기 때문이다.

 

묵었던 '유후인몰'의 경우 석식은 오후 6시, 6시반 두 시간대 중에서 선택을 해야했고, 조식 역시 오전 8시,

 

8시반 중에서 미리 선택해야 했다. 그러면 이렇게 시간대에 맞춰서 테이블을 미리 세팅해두고

 

객실번호를 올려두어 예약석을 마련하는 시스템이다.

 

뭐가 뭔지 알아볼 수가 없는 메뉴판, 그저 알 수 있는 거라곤 몇몇 한자어로 미루어 짐작해볼 뿐인 메뉴 몇 개와

 

가짓수가 참 많은 거 같다는-대충 열세가지?-기대감을 부풀게 만들던 깨알같은 코스 요리일 거란 사실.

 

에피타이저로 제공된 매실주가 온전한 모습으로 담긴 사진은 이것 한장뿐. 따로 음료를 주문받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별도의 비용이 나가게 되므로 굳이 원치 않는다면 그냥 하나씩 날라오는 음식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듯.

 

 

어느 각도로 보나 살짝 섹시하게 얹힌 계란말이 두 조각. 그리고 푸딩인지 곤약같은 에피타이저.

 

 

생선회와 구운 생선조각들. 역시 일본의 와사비는 제대로 강판에 갈은 매콤한 와사비였다.

 

 

짜잔, 연잎에 싸여있던 농어와 가지찜. 연잎의 향기가 독특하게 배어있었던 느낌.

 

 

뜨겁게 달궈진 그릇에 담겨나온 저 포슬거리던 계란찜 속엔 어묵이 한줄.

 

마차가루가 섞인 죽염에 찍어먹는 고추튀김, 고구마튀김, 그리고 음..좌우지간 뭔뭔 튀김들.

 

 

그리고 개인용 구이판에 구워먹으라며 나온 와규(일본산 소고기), 닭고기랑 기타 채소들.

 

 

이글거리는 불판 위에 우선 마블링이 아리따운 와규부터 올려주셨다.

 

그리고 버섯과 양파 나부랭이들도 함께, 소고기 기름을 먹고 노릇노릇 익어가는 모습.

 

일종의 스프였다고 해야 하나. 한국어로 된 메뉴 소개가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서빙하시는 분 중 한 분이 한국사람이긴 했지만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고 하여, 그저 눈으로 혀로 음미할 뿐.

 

 

하얀 쌀밥에, 저건 토란국일까. 큐슈 쪽 음식이 아무래도 혼쥬에 비해 짜긴 한 듯 전체적으로 조금

 

짭조름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래도 참 맛있게 슥삭슥삭 잘도 비워냈던, 질세라 쉼없이 나오던 료칸의 석식.

 

 

그래도 정신없이 먹다 보니 마지막 음식. 황도인지 살구인지, 과일맛이 강하게 나는 푸딩이라고 해야 하나.

 

사진을 찍으며 하나하나 음미하는 게 목표였건만, 아무래도 사진에 맛이 담기지는 않아서 아쉬울 따름이다.

 

아주아주 훌륭했던, 언젠가 꼭 다시 한번 가서 만끽하고 싶은 유후인 료칸의 석식.

 

 

 

 

 

 

일본의 100대 온천호텔 중 하나로 손꼽힌다는 호텔, 무려 1200평 넓이의 대욕장과 노천탕들을 갖추고 있는

곳이라 하여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실제로 가서도 실망하지 않을 만큼 괜찮은 곳이었다. 커다란 호수를

끼고서 곳곳에 지어진 건물들과 온천시설들로 무척이나 흐뭇했던.

호텔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맞아주는 아오모리, 푸른숲靑森의 마스코트 인형. 깊고 울창한 숲속에선

저런 커다랗고 머리에 꽃단 괴물이 살고 있대도 왠지 수긍할 만 하다. 바야바~ 라거나, 토토로처럼. 


호텔 로비가 그 호텔의 격을 대변하는 공간이라고 하면, 이런 식으로 정갈하고 차분한 느낌의 인테리어도

좋은 거 같다. 서양인들의 표현으로는 뭐랄까, 젠ZEN의 느낌이 충만하달까.

호텔 객실, 도쿄나 아오모리나 일본의 온천 호텔들은 다다미방인데다가 체크인하고 나서 저녁을 먹고 오면

저 테이블과 의자가 한쪽으로 싹 치워진 채 이불까지 깔아주는 서비스를 해주는 게 인상적이다. 다다미에선

살짝 풀내음도 나는 거 같고, 미니멀하면서도 드라이기니 전기포트니 있을 건 다 있는 아기자기함도 좋고.

화장실에 비치된 슬리퍼에는 아예 'TOILET'이라고 씌여 있었다. 화장실용이니 객실 안에서 신고 다니거나

밖으로 신고 나다니지 말라는 완곡하고 공손한 마음이 담겨 있는 듯.

두 사람분의 유카타. 게다에 어울리게 엄지발가락과 나머지 발가락을 분리시킨 벙어리 양말도 있었고,

별모양으로 단단히 말아둔 허리띠도 재미있었다.

호텔 로비 옆에 붙어 있는 샵에서 팔고 있던 유카타는 훨씬 다 다채로운 색깔들에 화려한 느낌이었는데,

유카타는 한번 입어보면 참 입고 벗기 편해서 좋은 거 같다. 집에서도 한벌 있음 오자마자 입고 있을 듯.

호텔 안을 한 바퀴 둘러보러 나왔는데 이쁘게 생긴 앉은뱅이 의자와 탁자 너머로 산책길이 보였다. 냉큼

건물밖으로 나와 나무 사이로 구비구비 이어지는 산책길을 걸었다.

잘 다듬어진 잔디밭길과 나무 사이를 지나니 단아한 색감의 나무집들이 몇 채씩 길가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아마도 호텔의 별채 아닐까 싶다. 더 넓고, 더 럭셔리하고, 그래서 아마도 더 비싼 룸. 내부가 궁금했지만 스킵.

조그마한 내가 중간중간 둥그런 연못을 만들다가 어딘가로 흘러내리고, 다시 또 연못을 만들다가

흘러내리고. 그 옆에선 잔뜩 몸을 기울인 채 흐벅지게 피어올린 꽃무더기를 수면에 비춰보느라 

여념이 없는 나르시스트 꽃나무가 하나. 워낙 크고 풍성한 꽃송이가 한두개도 아니고 저리도 많이

달려있으니 무게도 솔찮을 텐데, 저러다가 물에 잠기는 거 아닐지 모르겠다는 괜한 걱정이 들 만큼.
 

그리고 연못 한 가운데 동그마니 튀어나와있는 바위, 그 위에서 저리도 꼿꼿하게 자라나서 훌쩍 키만 큰

왠 들꽃줄가리 하나. 참 가늘고 여려 보이는데, 압정처럼 뾰족하니 하늘로 치솟은 게 대견하기도 하고.

연못, 이라 해야할지 개울, 혹은 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분명 맑은 물인데 문득 바람이

일어나니 끈적하니 바람보다 한풀 늦게, 게으르게 번져나가는 물결.

이제 지금쯤이면 초록색으로 잘 익었던 단풍잎에 조금 붉은 기가 돌기 시작하려나. 생각없이 낭창낭창 걷다가

시간감각을 잃고서는 하염없이 걷겠다 싶어 살짝 당황, 서둘러 호텔로 돌아가는 길.


호텔 레스토랑. 석식과 조식이 제공되었는데 무난했던 듯. 아무래도 부페는 뭔가 임팩트있는 한방이

부족한 느낌이어서, 배부르게 잘 먹었긴 했지만 뭐가 맛있었다고 말할 거리를 못 찾겠다.

어느덧 저녁, 일본 내에서 온천호텔로 100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곳이니 온천에 푹 몸과 마음을 담그고

쉴 생각밖에 없었다. 내려가는 길에 혀를 빼물고선 살짝 깨문 그녀의 눈빛이 굉장히 고혹적이었고,

두꺼비 이마에 놓인 동전들이 진짜인가 한번 만져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 모든 유혹을 이겨내고 온천도착.


그랬는데 이런 공연을 온천 입구 앞에서 시끌벅적하게 시작하고 있는 거다. 아마도 이게 저녁 9시부터 한다던

아오모리 남부 민요쇼인가 싶다. 이미 관객석은 꽉 차 있어서 앉을 자리를 찾기도 어려웠다.

뭔가 금빛으로 번쩍대는 삽에 줄을 걸어놓았나보다. 기타나 샤미센을 튕기듯 삽을 잡고 소리를 내는데, 정말

띠용띠용 샤미센같은 소리를 내는 연주자들이었다. 울림통도 따로 없는 걸 텐데, 소리도 제법 크고 분명하게

들리는 게 온천장 안쪽 깊숙한 곳에 노천탕에 나와 앉아있는 사람들한테도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

공연장 옆으로는 커다란 네부타가 물고기 네부타들을 주렁주렁 달고서 버티고 서 있었다. 뭔가 구름을 타고

누군가와 싸우는 듯한 다이내믹한 자세.

탕 입구에서 이렇게 올망졸망 자기들끼리 앉아서 나름 열심히 공연을 감상중이신 꼬맹이들. 한 아이는 완전

공연에 몰입해 버렸는지 박수치느라 여념이 없었고 다른 아이들도 눈을 떼질 못하고 무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공연 시작되고 나서는 무대를 지나쳐 탕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못 본 거 같기도 하고.


아오모리에서 묵었던 호텔 중 최고였던 거 같다. 수질이야 비슷하겠지만, 노천탕의 그 운치라거나 시설이 환상.
 


 

@ 고마키 아오모리야 호텔.



하코네의 어느 료칸, 잠깐 들러서 온천욕만 즐기다 갈 수도 있고 혹은 아예 숙박을 하며

온천을 즐길 수도 있는 곳이라는데, 도쿄에서 꽤나 떨어진 하코네까지 와서 하루만에

돌아가거나 료칸 대신 일반 숙소에 머무는 건 좀 아닌 거다. 분명히 싼 가격은 아니지만

온천의 질이나 시설들, 그리고 숙박비용에 포함된 저녁식사와 아침식사가 워낙 훌륭하니

절대 강추. (훌륭한 저녁식사에 대해서는 하코네, 어느 료칸의 감동적인 저녁식사.)

료칸 입구 신발장에 정리되어 있던 색색의 게다들. 아무거나 본인이 원하는 걸 골라서 신고 다닐수

있었는데, 따그닥 따그닥 소리가 재미있어서 신고 나가선 가볍게 동네도 한바퀴 돌아봤다. 생각보다

굽이 높고 발 앞굽과 뒷굽사이 간격도 좁아서 뒤뚱뒤뚱, 여자들 킬힐 신음 이렇지 않을까 싶은

느낌으로 신발 위에 올라타서 걷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던.

삼층짜리 료칸 건물 옆에는 정기적으로 하코네 역과 료칸 사이를 오가며 손님들을 옮기는

고풍스런 수송차량이 한대 서 있었다. 버스라기에도 뭐하고, 승용차라기에도 뭐한 클래식한

느낌이 물씬한 차. 조금 일찍 시간을 맞췄으면 이 차를 타고 편하게 료칸에 도착했을 텐데,

돌아다니다가 늦어서 택시를 타고 손짓발짓으로 설명해서 들어왔댔다.

료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신사. 밤이라 많이 어둑어둑해지고 나니 왠지 조금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서 안으로 들어가보려다가 포기하고, 여기서 짧은 게다 산책은 끝.

복던져주는 고양이야 뭐, 한국에도 이미 워낙 많이 퍼진 일식 밥집과 술집들에서 익숙하지만

이렇게 천으로 만들어진 건 못봤던 거 같다. 도자기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좀더 따뜻한 느낌이 배어나오는 고양이다.

다다미가 깔려있는 나무바닥은 반질반질 윤이 나서 천장의 형광등 불빛을 고스란히 되비치고

있었고, 나무색이 가득한 안온한 일층 로비의 분위기는 이층, 삼층의 객실과 식당 같은 곳까지

전부 이어져 고급스럽고 편안한 기분을 주었다.

한쪽에는 이렇게 유카타를 진열해놓기도 하고, 회의나 기타 목적으로 쓸 수 있는 방도

마련해 두었다. 여럿이면 오면 저런데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하는 것도 괜찮을 듯.ㅎ

남녀 욕탕으로 들어가는 앞에는 이런 100엔, 200엔짜리 뽑기 기계도 놓여있었다. 아마도

아이들의 마음을 자극하려는 용도 아닐까 싶지만 또 잘 살펴보면 하코네의 특색이 담긴

뭔가를 뽑을 수 있는 것 같다. 어른들도 기념품삼아 한번 돌려봄직 하겠네, 싶어졌다.

고양이 인형이니 클래식한 돌림식 전화기니 료칸 복도나 벽면을 꾸미고 있는 것들도 하나하나

눈길을 붙잡아 두는 것들이었다. 미처 사진은 못 찍었지만, 밤새도록 울어대는 귀뚜라미들

소리가 어디선가 녹음해둔 걸 무한 재생시키는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귀뚜라미들을 잡아서

기르는 통 안에서 '쌩 레알'로 난 거라는 것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고양이 문양이 가득한 벽면도 있고. 유카타를 입은 내 모습도 비쳐보이고.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고양이 인형들, 어디서 요런 귀여운 것들만 모아뒀는지, 장식품들

하나하나가 다 허투루 만들어진 싸구려같진 않은데.

그리고 아마도 이 토끼는 몸 속에서 양초나 향을 태우는 용도로 쓰이는 거 아닐까. 아랫배 쪽에

구멍이 뽕뽕 뚫려있는 걸 보면 저기서 뭔가 연기가 송송 나오던 불빛이 새어나오던.

이제 방 내부로. 간결한 수납공간과 거울이 붙어있고, 역시 하얀 벽지에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뼈대가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휴지 케이스도 '깔맞춤'해서 은은하고 차분한 갈빛으로

씌워두었고.

이런 디테일에 대한 세심함, 형광등 스위치까지도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

나무결 분위기가 묻어나는 걸로 챙겨서 설치하는 점에는 정말 감탄할 수 밖에.

검은색 흰색 두 가지 종류의 면봉과 솜까지도 넉넉히 구비해 두고,

반지나 귀걸이니, 액세서리들을 따로 챙겨둘 수 있는 이런 접시도 있어 빼두고 다시 찾기도

쉬웠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모여서 료칸의 전체 분위기를 만들고 더할 나위없는 흡족한

기분을 느끼도록 해주는 거 같다.

그리고 희뿌옇게 동이 터오던 아침, 간단하게 온천욕을 마치고 전날 저녁식사를 맛있게 했던

그 식당으로 다시 내려갔다. 아침식사는 또 어떨지, 간소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싶어서 제법 설레는 마음으로.

확실히 저녁 메뉴와는 많이 달랐다. 일단 기본 세팅부터가, 젓가락도 그렇고.

우선 상큼한 냉국과 크리미한 계란찜으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식욕을 좀 다독다독 일으켜세우고.

생선튀김이 한마리 나오고 끈적끈적한 마가 데코레이션처럼 살짜기 놓였다.

커다란 밥통에서 이런 이쁜 공기에 밥을 퍼서 조금씩 생선이랑 먹기 시작했더니 또 금세

식욕이 깨어났다. 온천을 하고 나니 아무래도 금방 배고파지는 거 같기도 하고, 식욕도

빨리 돌아오는 거 같고.

유부피에 쌓인 어묵이 오드득오드득, 찰지고 탱탱한 식감이다. 국물도 시원하니 좋았고.

일본식 미소국은 확실히 우리네 된장국이랑은 다르다. 좀더 맑고 간질간질한 느낌이랄까,

우리네 된장국이 좀 텁텁하고 맛이 진한 것에 비하면 그런 거 같다.

디저트, 오미자 한 알이 폭 박혀있는 푸딩이 나왔다. 이쯤되면 정말 제대로 나온 아침식사다.

아침부터 생선 한마리를 다 먹고, 큰 밥통의 밥을 또 거진 다 먹고, 이런저런 사이드디쉬의

음식들도 다 먹고 후식까지 먹었으니. 여행다니며 아침을 든든히 먹는 게 꽤나 중요한데

이 정도면 든든한 정도가 아니라 점심을 한참 늦게 먹어도 될 듯.

그러고 방으로 돌아가니 간식으로 들어왔던 검정깨 푸딩, 그리고 약간의 과일이 있어서

마저 또 다 먹고서 그야말로 정말 든든해져서, 1박 2일 하코네 료칸에서의 온천여행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갈 준비는 끝~*




아침 일찍 도쿄를 출발해서 전철, 산악열차, 유람선, 곤돌라 따위를 타며 하코네를 돌아보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도착한 어느 료칸, 예약자명을 대고 입실하고 나니 푸짐함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갈한 분위기의 다다미식당엔 발이 내려뜨려져 있고 마치 명패를

붙여놓듯 각 좌석마다 료칸 투숙객들의 이름을 붙여두었고, 그쪽으로 인도해주던 아가씨는

영어가 조금 짧았지만 생글거리는 미소와 친절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젓가락을 받치고 있는 토끼도 귀엽지만 젓가락을 묶어둔 일본전통종이 재질의 띠지도

고급스럽다. 사실 토끼 표정은 살짝 '자살토끼'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어쨌든.

내가 여태 봐왔던 수많은 물수건 중에서 가히 최고라 할 만한 걸 여기서 만났다고나 할까.

검은 바탕에 알록달록 큼직한 꽃문양이 그려져 있는 수건이었는데, 면이 헤지지 않아

털도 두툼하니 포실포실한 느낌이 들었고 따뜻하면서 깔끔한 느낌이 좋았다. 이후로

나오게 될 음식들의 질과 맛을 기대하게 만들던 그럴듯한 '에피타이저'랄까.

이내 내온 음식들, 그러고 보니 작년 가을에 갔던 이 료칸에서 은근히 토끼 장식들을

많이 보았던 것 같다. 씨알굵은 밤이니 참치니 생선알이니 따위가 금빛 접시에 담겨나왔고,

그 위에는 하얀 무로 깎여진 눈빨간 토끼 한마리가 폴짝 뛰어올랐다.

금빛 접시에 올라있던 시원한 음료랄까, 냉국이랄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탱글탱글한

알맹이가 알맹이가 자작한 국물에 가득 담겨 있었다.

보기만 해도 탱글탱글한 느낌이 잔뜩 전해지는 노란색 묵, 위에 살짝 얹힌 와사비와

초록색 별모양이 더욱 식욕을 자극했다. 단순히 미각적인 기대뿐만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날 먹어'라고 맹렬하게 유혹하는 음식들.

이제 주메뉴, 하코네 멧돼지고기 샤브샤브. 커다란 접시에 야채도 제법 풍성하게 나왔고,

깔끔하게 썰린 돼지고기들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었다.

전기온열기 위에 등나무로 만들어진 소쿠리를 올리고 기름종이를 받치고는 육수를 부었다.

그렇게 한겹의 얇은 종이 위에서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는 돼지고기와 야채들, 불이 거의

손실없이 그대로 전달되어선지 순식간이었다. 야채들은 거의 데친다는 느낌으로 끓는 물에

넣었다가 바로 꺼내어 먹기 시작했고, 돼지고기는 조금은 더 익혀서.

샤브샤브를 먹는 새 반찬들이 나왔다. 반찬이랄까, 사이드디쉬랄까. 반찬이라기엔 하나하나

단품으로도 너무 훌륭한 것들이어서, 또 딱히 밥이랑 먹는 것들도 아니어서.

밥이 그리 작지 않은 통에 담겨나왔고,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것도 잠시, 어느새

바닥을 보인 채 나뒹굴고 만 밥통. 하루종일 하코네 산간을 돌아다니느라 적잖이 지치고

배고팠던 상황이라곤 해도, 굉장히 맛있게 많이 먹었던 저녁식사였다.

그렇게 야채 한 점 남기지 않고 완전히 싹 비어버린 샤브샤브 접시도 나뒹굴고. 남은 건

애초 서빙될 때 꽂혀 왔던 '하코네멧돼지'가 꿀꿀거리는 화살표 하나.

그리고 디저트, 소복하니 상큼한 과일샤벳과 촉촉한 치즈케잌, 그리고 말차 냄새가 진하게 나는

모찌 두조각에 커피가 나왔다. 정말 디저트까지 한치의 허술함이 없는 훌륭한 만찬이구나, 싶은

느낌이 팍팍 들게 만들던 것들. 새삼 사진을 정리하며 다시 보아도 참...언제고 다시 한번

료칸의 굉장했던 온천욕 시설을 만끽하고 나서 저 만찬을 맛보고 싶은 맘이 무럭무럭.

소소한 디테일도 정겹기 그지없던 료칸의 식당 액세서리들. 젓가락을 받쳐주던 토끼들도

그렇지만, 이쑤시개를 담아두고 있던 저 쇼핑백 모양의 통도 참. 정말 종이쇼핑백을

펼쳐놓은 채인 양 옆에 라인도 들어가있을만큼 디테일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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