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하카타역에 내릴 즈음 아슬아슬하게 해가 남아있다 했더니, 숙소에 짐을 놓고 다시 나오니 그새 깜깜해졌다.

 

하카다역, JR선이나 신칸센을 탈 수 있는 후쿠오카의 구도심 중심지다.

 

퇴근시간, 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여기나 한국이나.

 

 

역사 앞에 차곡차고 주차되어 있는 차들에서 번지는 불빛, 그리고 그 너머 그리 높지는 않은 건물들로 이뤄진

 

스카이라인에서 터져나오는 불빛들.

 

 

조리개를 바싹 조이고 바라본 후쿠오카 시내의 밤 풍경.

 

후쿠오카에 와서 라멘을 놓치고 갈 수는 없는 일. 돼지뼈를 푹 고아서 완전 찐득한 국물까진 아니었지만 이정도만 되도.

 

 

다음날 아침, 250엔의 전철을 타고 세네 정거장, 후쿠오카 공항으로 향하는 참이다.

 

게이트에서 비행기로 탑승하는데 문득 눈에 띈 에바항공의 헬로키티 비행기. 저걸 타는 건 아니었고.

 

사실 저런 건 본인이 직접 타는 것보다 누가 타고 있는 걸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다. 대부분의 통유리창 까페가 그렇듯.

 

내가 탔던 티웨이항공의 소박한 기내식. 음...저가항공사의 합리적인 비용 절감책이 반영된 부분이다.

 

그리고 한국, 인천공항에 새초록한 잎사귀들이 돋아났다.

 

 

유후인을 목적으로 했던 2박3일의 여정, 유후인을 만끽하기에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일정이었지만,

 

후쿠오카 시내 관광을 더하기에는 분명 짧았던 기간이었다. (사실 모든 여행은 늘 너무 짧다. 늘 짧다.)

 

 

1일차. 후쿠오카 도착, 유후인 도착 (늦은 점심) 온천 (저녁) (밤마실 조금)

 

2일차. (아침) 유후인 마을 구경. (점심) (이른 저녁) 후쿠오카 이동. (늦은 저녁) (도심 구경 조금)

 

3일차. (여유있는 아침) 후쿠오카 출발. 서울 도착. (점심)

 

 

 

 

 

 

 

 

이번 여행기는 좀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흘러가는 거 같은데..하카다항에 내려서 패키지 관광객들이 우르르 대형

버스에 올라타고 나면, 다소 한산한 느낌의 하카다항 건물 앞 도로변에 붙어있는 버스 정류장 안내판. 일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적혀 있다. 텐진과 하카다 역 방면 버스가 몇 번인지, 운임이 얼마인지에 대한 2008년 11월 버전

정보랄까.

역시 하카다항 국제터미널에서 주요 버스 노선이 몇시몇시에 출발하는지에 대한 2008년 11월 버전 정보.

저렇게 세분화된 주중, 토요일, 일요일의 버스 시간표는 거의 오차없이 딱딱 제시간을 맞췄던 것 같다. 한국선

이리저리 구불구불해서 좀체 불편한 지하철과 배차 간격이 쉽게 지켜지지 않는 버스 때문에 도무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데, 저렇게 시간대를 딱 지켜서 운행되는 버스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막차 시간이 정말 이르더라는 것 정도?

하카다항 터미널건물에서 나와 처음 밟은 후쿠오카 땅, 그리고 처음 본 풍경은, 어찌 보면 살짝 김이 빠질 만큼

한산하고 변두리스러운 느낌의 도시랄까. 그치만 하늘이 어찌나 이쁘던지 마냥 설렜었다.

아까 그 버스 표지판 앞에 있는 정류장. 제각기 캐리어 하나씩 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버스 노선도를

눈여겨 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지도를 신문처럼 펼쳐 보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그 위로 그야말로 하늘색이

그득히 담긴 하늘.

경제학 복수전공을 하면서 졸업논문을 준비할 때, 버스나 지하철 광고판이 얼마나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일종의 경제적 UP & DOWN의 지표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아이디어를 냈었다. 지하철광고공사나 그런

곳의 협조를 얻어 지하철 광고가 어떤 형태로 몇 곳이나 가능하며, 실제로 팔려나간 정도는 얼마나 되는지 자료를

얻을 수 있다면 경기를 선행하거나 후행하는 식으로 추세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아침저녁으로 보는 텅빈 지하철 광고판, 계약기간이 지나 뒤집어 게시되고 있는 광고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 탓일까. 외국에 나가면 광고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채워져 있는지를 꼭 유심히 보게
 
된다. 여름에 갔던 파리 지하철은 빈 공간이 거의 없이 광고가 꽉 차 있었고, 이번 일본 여행에서 봤던 버스와

지하철 광고판도 그닥 텅 빈 곳은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이런 식의 버스 사용안내로 채워진다고는 해도.

앞에 타신 한국인 아주머니들은 소녀처럼 설레셨다. 당장 버스를 타고 요금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부터 설왕설래

하시면서도 마냥 즐거우신 표정들. 그분들께 알려드린 것처럼, 버스 뒷문으로 탑승해서 정리권이라고 적힌 곳에서

번호표를 떼어내 자리에 앉으면 된다. 그러면 버스가 출발하고, 앞쪽에 있는 1부터 32까지 숫자가 적힌 전광판에

버스 승차금액이 나타나게 된다. 구간에 따라 요금이 할증되는 시스템인지라, 정류장을 많이 지나칠수록 180, 220,

250..뭐 그런 식으로 숫자가 커진다. 그리고 내릴 역이 되면 자기가 갖고 있던 정리권 번호에 맞는 금액을 지불하고

내리면 된다는 식..

정리권은 이런 식으로 생겼는데, 아주 엷게 한자로 정리권, 그리고 오른쪽엔 좀더 진한 글씨로 숫자가 적혀있다.

흔들리는 차안에서 일케 땡겨서 찍을 수 있었던 이유, 버스가 신호에 걸리거나 해서 멈추게 되면 바로 시동을

꺼버렸다. 에너지 절약 차원인 걸까 아님 공기오염 방지 차원인 걸까..이래저래 좋은 거 같긴 하다. 시동을 자꾸

껐다 켰다 하면서 기름이 더 소모되는 게 아니라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머물었던 호텔은 하카다역 옆의 도요호텔(東洋호텔)이란 곳이었다. 머 특별할 거 없는 조그맣고 깔끔한 비즈니스

호텔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하카다역 근처에 있는 호텔들보다 텐진 시내에 있는 호텔들이 더 놀기에는 좋지 않나

싶지만, 암만해도 하카다역 근처가 좀더 숙박료가 쌌던 거 같다. 그리고 머, 후쿠오카가 그렇게 거대한 도시도

아닌지라, 사실 숙소는 어디든 상관없다. 워싱턴 모뉴먼트 옆에서 노숙도 했었는데 모.

도요 호텔. 밋밋한 외관만큼이나 할 말없는 밋밋한 내부 인테리어였지만, 그래도 2박3일간 여행의 베이스캠프가

되어 중간에 쉬러 돌아오기도 하고..자그마한 술판을 차리기도 하고..

11층짜리 건물이었구나, 머물렀던 곳이 8층이었던가..그러고 보니 호텔을 들고 나면서 한번도 다른 손님들과

함께 엘레베이터를 탔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심플한 '開', '閉' 표시만 덩그러니.

호텔 로비. 사실 이거 호텔이라기에도 좀 민망할 정도지만, 그렇게 고급스럽고 럭셔리한 게 아직 몸에 맞지 않는

나이인지라(혹은 나이라고 주장하는지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거칠고 무질서스러운 나라들에서 막무가내식으로 돌아다니는 배낭여행이 훨씬 좋다. 다만 저녁 때에는 단백질이나

좀 그럴듯한 음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싶다는 생각이 슬몃 들기는 하고 있지만.

호텔에 짐을 던져주고 걷기 시작한 거리에서 딱 마주친 기모노 복장의 아주머니 네 분. 일렬횡대로 인도를 꽉

채우고 앞서 걷고 계셨는데 어딜 가시는 건지. 뭔가 7인의 사무라이 필이 살짝 나는 게 어딘가 한판 하시러 가시는

건 아니겠지.

거리의 핸폰 가게. 우와~ 이뿌다, 싶은 핸드폰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엘쥐의 쪼꼬렛폰을 여태 쓰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로, 아직 맘에 드는 디자인의 핸드폰을 못 봤다..란 거였는데 글쎄, 앞줄의 귀여운 것들이나 뒷줄 오른켠의

빤짝이는 유리상자같은 것들이라면 심각하게 생각해 볼 것 같다.

무슨 가게인지 얼핏 감이 올 수 밖에 없었다. 커다란 강아지 인형, 그리고 창문 가득 붙어있는 개발바닥 자국.

멀찍이 보면 강아지 사진이나 엑스레이 사진같은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실은 요 강아지 인형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게 귀엽다 싶어서.

후쿠오카에서의 첫 점심. 구시다신사를 향해 걷던 도중에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는 작은 골목을 발견했다.

뭔가 인사동 뒷골목이나 명동 뒷골목 같은 곳의 맛집 거리같은 느낌? 이 골목에서 역사적인(?) 첫 점심을

해결하기로 맘먹고 골목으로 진입했었다.

실망스럽게도 아직 시간이 이른지 문이 닫혀있는 가게가 많았다. 그 와중에 두둥, 문을 열고 있는 가게 발견.

라멘집이었고, 하카다의 라멘은 위시 리스트에 들어있었고, 배는 이미 고팠으며, 다리도 아팠기 때문에 냉큼

들어섰다.

자그마한 가게에 뭔가 사진과 장식품들, 쪽지가 빼곡하게 붙어있고, 양념장통이나 소스통마저도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비적대며 빼곡하게 공간을 메꾸고 있는 느낌이었다. 요약컨대, 왠지 이집 맛있겠구나 하는 느낌.

일본어로만 씌여진 메뉴판에 몇 가지 런치 스페셜이 있길래, 그 중 아무거나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었더니 요런

라멘이 나왔다. 저 안에 들어있는 무려...곱창. 곱이 가득한 곱창이 아낌없이 잔뜩 들어있었고, 가뜩이나 돼지뼈로

푹 고아진 걸쭉하고 진한 국물맛에 곱창의 느끼함이 더해졌다. 무지 맛있게 먹었다. 국물까지 싹 먹었더니 뭔가

장어를 세네마리 구워 먹은 만큼 몸보신을 했다는 느낌? 힘이 불끈 솟았다.

그렇게 힘내서 골목을 나서니, 바로 구시다 신사가 보인다. 고지를 불과 몇 걸음 앞두고선 든든히 속을 채웠으니

가히 최상의 타이밍. 그리고 골목 한 옆에선 나를 향해 웃어주고 있는 한류스타들.


똥*일보 인턴기자질을 마쳐가던 즈음, 인턴들에게 4면의 지면을 주고 담고 싶은 기사를 취재해 오라고 했던,

마지막 기념품삼아 신문을 직접 만들어 보도록 하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이른바 '바이라인'이라는 기사 아래의

자신 이름 석자가 실리는 것에 환상을 갖고 있던 인턴 동기들은 저마다 열의를 갖고 이런저런 기사거리를

제안하고 취재를 하겠다고 했으나, 사실 무해하고 '건전한' 장난감같은 4면짜리 인턴신문으로 견인코자 했던

관리자들의 태클로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다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 인턴신문에 그래도 각자 바이라인 하나씩은 넣어야 한다는 게

또 보기 좋고 건전한 마무리를 위한 전제조건이었달까..결국 난 친구 하나가 발제하고 허가를 득한 주제에 대해

함께 취재하러 나가게 되었었다. 그건 바로 서울에서도 도서관 마냥 한사람씩 공간을 칸막이 쳐놓고 음식을 팔고

있는 음식점이 생겼다는 것. 당시 명동교자와 일부 음식점이 점심 때 혼자 와서 밥먹는 직장인들을 위해 그런

일인용 칸막이가 둘러쳐진 테이블을 설치해 놓고 있었다. 


뭐 여러 사정 끝에 그 기사는 하나의 트렌드를 짚고 있다기엔 무리가 있다 하여 짤리고 말았으나, 그때 처음으로

일본엔 이미 그런 식의 1인용 식당이 왠만큼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되었었다. 그리고 이번에 후쿠오카를 여행하며

드디어 직접 그런 식으로 구획된 라멘집을 경험했으니.

캐널시티에서 이리저리 구경을 하다가 배가 고파져서 찾은 라멘집. 일본 라면을 두고 느끼하다거나 맛이 너무

진해서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첫날 자그마치 '곱창 라멘'의 죽도록 느끼하고 진득한 맛에 반한

후로는 하카다식 라멘에 홀딱 빠진 상태였달까.


근데 여기, 다른 음식점들처럼 가게 앞에 자판기가 있어 표를 사서 주문하는 건 비슷한데, 뭔가 자리배치도에 파란

불빛으로 '空'자가 적혀 있는 게 특이했다. 뭐지? 테이블이 어디가 비어있다고 표시해 놓은 거 같긴 한데.

자리에 앉기 전 주위를 둘러보다 입구쯤서 발견한 추가주문용지. 드문드문 한자는 뭔말인지 얼추 추측은 하겠다만

일본어가 얼기설기 섞여있어서 좀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뭔가 돈을 더 내야 추가로 뭔가를 더 집어넣어

라면을 만들어주겠다는 뜻인 듯.

자리에 앉으려니 의자 하나, 그리고 딱 도서관 칸막이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만큼을 허용하는 둘러쳐진 테이블.

대체 음식은 어떻게 나오나 싶어 앞쪽으로 고개를 빼어보니 가운데엔 서빙하는 점원이 앞뒤로 움직일만큼의 좁은

통로가 있고, 그 양쪽으로 이렇게 칸쳐진 도서관 책상이 열지어 있는 구조였다.


혼자 와서 밥을 사먹을 수 있다는 건, 때론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거나 철이 들었다는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무지 꺼려지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그런 피치못한 순간에 이처럼 혼자 조용히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은폐된 채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란 꽤나 매력적이겠다 싶었다. 앞쪽에 마주보고 있는 사람과 행여 눈길이라도

마주칠까 싶어 길게 드리워진 커튼같은 천조각은 더욱 완벽하게 자기 자신과 앞에 놓인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선의 조건을 제공하게 될 거 같다.

옆에 젓가락통에 함께 꼽혀 있는 종이에는 한국어로 라면 기호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몇가지 옵션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예컨대 기름기 정도, 라면의 감촉, 그리고 비전 조미료를 얼마나 넣을지 같은 것들을 무난한

한글로 적어놓고 있었는데, 꽤나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는 반증이지 싶다. 다만 하나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저 항목, "궁극의 신맛"이 대체 무얼까..심플하게 '있다'와 '없다'만을 선택할 수 있는 양자택일

그 기로에서 난 일단 '있다'를 선택했다.

이게 바로 '궁극의 신맛'이 있는 라면. 살짝 퍼진 느낌의 네모난 라면그릇에 담긴 건 기름기 둥둥 떠다니고 마치

한국의 꼬리곰탕처럼 진한 육수맛이 인상적인 라멘. 한국의 라면을 떠올리게 된다기보다, 오히려 사골탕이나

꼬리곰탕같이, 뼈가 흐물흐물해지도록 고아낸 뿌연 육수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그런 것들은 식으면서 마치 젤리나

묵처럼 국물이 걸쭉하게 굳어버리곤 하는데, 분명 이런 후쿠오카의 라멘도 그렇게 될 거 같다.


뭐랄까, 음식의 계보를 따지자면 일본의 라멘은 분명 한국의 라면보다 꼬리곰탕같은 사골국물에 훨씬 가까운

음식으로 판명되지 않을까 싶다.

이치란. 가이드북에 따르자면, 여기가 관광객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라멘 전문점이란다. 자그마치 1960년도부터

이어온 비밀 양념장이 푹 고아진 돼지뼈 국물에 더해져서 느끼하지 않은 국물맛이 난다고 하는데, 글쎄 난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도 모르고 그저 맛있게 먹었을 뿐이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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