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제통문, 라제통문, 혹은 그냥 '통일문'이라고도 불린다는 이 곳은 아주 짧고 자그마한 동굴 하나가 있는 곳이다.

 

비록 동굴은 작고 석벽은 야트막하지만 과거 신라와 백제 두 나라의 자연적 경계 역할을 했다는 데서 그 역사적

 

의미와 무거움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삼국이 정립했던 시대에는 동굴 서쪽, 이켠에는 백제의 군사들이, 그리고 저쪽켠에는 신라의 군사들이 삼엄하게

 

대치하고 있었을 거다. 호시탐탐 상대의 동태를 살피고 이상 징후는 없는지, 특이한 동향은 없는지 살피는 와중에도

 

두 나라 군대의 깃발은 저렇게 바람을 희롱하며 나부끼고 있었을 거다.

 

아, 그러고 보니 동굴 아래편으로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과거에도 이렇게 다리가 동굴 앞에서부터 뻗어나왔던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다리없이, 조금은 더 가파르고 험난한 구멍이란 느낌이었을까.

 

그야말로 시골의 한가로운 정경이다. 개울은 맑고 차게 흘러내리고, 그 물을 뿌리 깊숙한 곳에서부터 움켜쥐고선

 

우쭉우쭉 새순을 밀어올리는 초록 나무와 연둣빛 풀떼기들.

 

가만히 다가가보니 나제통문이라고 돌로 된 간판이 동굴 위에 남겨져 있었다. 저건 돌을 쪼아서 만든 걸까.

 

아니면 시멘트로 치덕치덕 덧바른 후세 사람들의 짓일까.

 

동굴의 반대편으로 뛰어가서 온 길을 되돌아보니 풍경이 확 달라졌다. 단순히 해가 기우는 방향을 거슬러 달린

 

때문이라기엔, 왠지 백제와 신라의 천년 전 경계를 넘었다는 실감이 턱없이 육박해왔기 때문이라 믿고 싶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 문을 경계로 양쪽 지방의 언어나 풍습이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티비나

 

라디오를 틀면 온통 '교양있는 서울사람들이 쓰는' 표준어만 나오는 이 시대에도 양쪽의 사람들은 제각기의

 

오랜 사투리를 지켜오고 있는 셈이다.

 

요새 드라마를 보면 퓨전사극이니 뭐니, 조선시대 사람이 현대로 넘어오기도 하고 막 그러는 거 같던데, 왠지

 

이 동굴을 특정한 타이밍에 특정한 조건을 충족하고 지나가면 순식간에 고백신, 삼국이 정립했던 그 시기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비오는 날 깊은 밤에 피티체조를 하며 지나간다거나.

 

 

 

 

 

 

 

태권도공원은 뭐고 태권도원은 뭐야?

 

태권도원? 태권도공원을 짓는단 이야기는 어디선가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지만, 이번엔 또 태권도원이라고?

 

지자체마다 난립하는 온갖 '생색내기용' 토목공사의 하나인 건 아닐까, 의심부터 하게 된 건 내 잘못만은 아니다.

 

 

 

 

뭐, 일단 의심 하나는 불식된 셈이다. '태권도공원'이라는 이름으로 2004년부터 시작되었던 사업이 2012년 2월에

 

'태권도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니, 적어도 한국의 국기라는 '태권도'를 두고 지자체들이 질세라 숟가락얹기 경쟁을

 

하는 흉한 모습은 아니니까. 그래도 여전히 궁금증, 혹은 의심은 남는다. 2013년 9월에 개관 예정이라는 태권도원

 

공사현장을 둘러보며 배종신 태권도진흥재단 이사장과 현장소장과의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태권도원을 왜 지어야 하나요?

 

가장 큰 궁금증은 아무래도, 왜 굳이 태권도원을 짓느냐는 거다. 최근 '태권도人'의 스포츠정신에 누를 끼친 복사기인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굳이 커다란 기념사업이니 거창한 시설물을 지어야 태권도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곤 하지만, 전세계에 널리 퍼져 201개국 7천만명의 수련 인구가 있고 올림픽 정식종목으로도 수년째 자리잡고 있는

 

태권도의 본산이자 종주국으로서 한국에 상징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 사실이다. 일본엔 무도관이 있고, 중국엔 소림사가

 

있다고 치면, 한국엔, 글쎄, 국기원이 있다고 해야 하나. 그치만 국기원은 강남의 높고 거대한 건물들 사이에 숨은지 오래다.

 

(이제 버스 정류장 이름으로나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일까. 국기원 앞 사거리 운운.)

 

 

무주에 뭘 어떻게 지을 셈인가요?

 

아무래도 아직 공정율은 38%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니 현장에는 뼈대밖에 없을 거다. 우선 건설 현장에 도착해서

 

진흥재단 이사장과 홍보팀장의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태권도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 알겠다,

 

이제 그럼 왜 무주인지, 그보다 중요한 질문은 뭘 어떻게 지을 건지가 관건이겠다. "우리 세대에 우리가 만드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걸맞는 내용물이 있는지 궁금했다.

 

 

무주는, 어렸을 적 무주구천동 계곡에 텐트를 치고 놀았던 기억에 따르자면 완전 심산유곡, 멀고도 험한 오지라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내려갈 때 고속버스로 세시간 정도 걸렸으니 그렇게 먼 곳은 아닌 셈이다. 게다가 반딧불이

 

축제라거나 무주구천동, 나제통문같은 유명한 관광자원을 갖춘, 신라와 백제가 경합하던 내륙중앙부이니 남한 땅에선

 

대충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는 의미도 있겠다.

 

그리고 뭘 지을 거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꽤나 그럴듯하고 매혹적인 답안을 갖고 있었다. BODY, MIND, SPIRIT을

 

테마로 했다는 세가지 구역으로 나누어 전시체험, 수련연구, 고단자전용의 용도로 구획한다는 것 정도는 기본이고.

 

무주의 백운산 자락에 기대어 조성되는 9곡 8경, 9개의 골짜기와 8개의 풍경에 태권도의 경지에 따라 밑에서부터

 

차츰 성장하고 깊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해낸다는 것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애초부터 굉장히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가득 담고 공간을 조성한다는 거니까 야심만만하면서도 흥미가 바싹 당기는 거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건, 태권도의 띠 색깔을 그대로 차용해서 다리 여섯개를 만들겠다는 계획.

 

밑에서부터 백원교-흰띠, 황원교-노란띠, 청원교-파란띠, 적원교-빨간띠, 품원교-품띠, 그리고 흑원교-검정띠,

 

이렇게 여섯개의 다리를 만들어서 각자의 색깔을 살려내고 각기 단계별 수련과정을 형상화한다는 건, 무슨

 

태권도를 소재로 한 만화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살짝 황당무계하면서도 굉장히 참신한 아이디어 아닌가.

 

 

그리고 또 하나, 태권도 고수들에게만 허락되는 특별한 공간, 태권전과 명인관을 짓는다는 것도 포인트다.

 

전적으로 기부금에 의탁하여 지을 계획이라는 이 두 건물은 고단자들의 커뮤니티 및 네트워크 공간으로, 말하자면

 

전세계에 퍼져나간 태권도의 정수를 품고 있는 곳이랄 수 있지 않을까. 안에 들어가려면 마치 끝판왕을 깨러가듯

 

즐비한 고수들의 숲을 넘고 온갖 비밀장치들을 해소해야 겨우 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우라가.

 

 

그렇다곤 하지만 아직 기부금이 그렇게 원만하게 쌓이고 있는 상황은 아닌 듯 하다. 아직은 좀 휑해보이는 기부금

 

명단, 그리고 '공' 자가 떨어져나간 '태권도원'의 이름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아무래도 기부금을 걷는다는 건 법적인

 

문제도 있고, 아직까지 '태권도원'의 건립 프로젝트 자체가 거의 홍보가 되지 않은 이유도 있을 거다.

 

그렇다면 과연 현장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백문이 불여일견, 아직 공정율이 그리 높은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태권도 경기장이니 기타 시설의 뼈대가 섰고

 

제법 윤곽은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한다. 준비해준 SUV에 차례로 타고 현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저게 나중에 태권도 띠 색깔에 맞춰서 색이 입혀진다는 여섯 개의 다리 중 하나. 아마도 흰띠를 형상화한 백원교인 듯.

 

 

여전히 현장 곳곳은 높은 크레인이 자재들을 옮기거나 조립된 부분을 얹어 올리느라 분주한 모습이었고,

 

태권도 경기장의 경우는 이제 차근차근 지붕을 이어나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천지인을 형상화한 삼태극을

 

모티브로 했다는 태권도 경기장은 다 지어지고 나면 꽤나 멋진 건물이 될 거 같다.

 

그리고 태권전과 명인전이 들어서야 할 공간. 아직 기부금이 원만히 걷히지 않아 다른 곳보다 공사 진척상황이

 

늦어지는 편이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태권도원의 핵심이자 정수인 곳이니만치 차근차근, 날림이나 부실없이

 

단단하게 지어졌으면 좋겠다.

 

길게 백운산 자락을 타고 달리는 태권도원을 따라 흐르는 개울, 이 곳은 예로부터 백제와 신라가 영토분쟁을

 

벌이며 숱하게 전투를 벌여왔던 곳인지라 태권도원을 조성하기에 풍수적으로랄까 적당한 곳이란 이야기도 있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저 붉은 돌 두개는 이 곳의 개울을 정비할 때 발견된 시뻘건 색의 돌로 공사중의 액도 막고

 

앞으로 태권도원의 기상을 지켜줄 상서로운 돌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태권도원의 전경. 둘러보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공사가 꽤나 진척이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태권도진흥재단 측에서도 이제 어느정도 눈에 보이는 윤곽이 잡히기에 이렇게 블로거들을 초청해서 소개도 하고

 

본격적으로 홍보에 나설 참이라 했다.

 

나중에 공사가 완료되면 저 산꼭대기 가파른 곳에 위치한 전망대까지 모노레일도 놓일 예정이라 한다. 이왕이면

 

태권도라는 무예의 공간이니만치 일부러라도 더 가파르고 힘든 코스를 만들어 체력단련 코스로 활용하는 게 낫지

 

괜히 모노레일 만들어서 유지비만 많이 들지 않겠냐고 나름의 고언을 했다.

 

태권도원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첩첩한 산봉우리들, 왠지 이런 곳이라면 태권도의 칼날같은 기세와 무예로서의

 

품위에 걸맞는 공간이겠다 싶다. 알고 보니 충청, 전라, 경상 삼도를 가르는 삼도봉이 있는 명산이라 하니 더욱

 

옷깃이 여며진다. 이런 곳에서 우렁우렁 기합소리를 내며 태권도를 연마하는 건 꽤나 멋질 듯.

 

 

2013년 9월, 그때쯤에 이곳은 얼마나 어떻게 단장되어 있을까. 색색의 띠 색깔에 맞춰 지어지는 다리는 어떨까,

 

그리고 태권도의 수양 단계를 비유한 9곡 8경의 풍경은 또 어떨까. 궁금한 것투성이인 채로 일단은 기다릴 뿐.

 

 

 

+ 주변 볼거리

 

나제통문, 신라와 백제의 통로였다는 조그마하고 매우 짧은 동굴이 하나 있다. 두 나라의 자연적 경계였다기엔

 

너무 약소하다 싶지만, 이쪽과 저쪽의 언어와 풍습이 여전히 차이가 뚜렷하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

 

무주구천동 계곡을 따라 달리는 벚꽃길. 벚꽃비가 내리길 기다리기를 한참, 아무래도 바람이 멎었다 싶어 자리를


뜨려는 참에 한줄기 바람이 불었댔다.

 

머루와인 동굴, 수차발전을 위해 만들어졌던 동굴을 와인 숙성창고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독특하지만, 시원한

 

동굴 내로 300여미터 들어가서 맛보는 달콤한 머루와인도 독특하다.

 

적상산 사고, 조선시대 실록과 그 사초를 보관하던 사고 중의 하나인 이 곳에서는 통풍과 제습을 위해 다리를 껑충

 

걷어올린 신기한 한옥들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새 무주의 대표 볼거리는 반딧불이 축제. 인공으로 길러낸 반딧불이를 풀어놓는 게 아니라

 

진짜 자연 속으로 들어가 야생의 반딧불이를 관찰하는 거니까, 그만큼 무주란 곳이 깨끗하고 축복받은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렸다.

 

먹거리를 굳이 더하자면

 

'김대중 선생님'도 다녀가셨다는 이 곳의 산채정식은, 테이블 가득 빈틈없이 메워진 반찬 접시들이 하나하나

 

맛있기도 했지만 산에서 갓 캐왔을 것만 같은 온갖 버섯 반찬들이 참 맛나더라는.

 

 

 

 

 

* 이 포스팅은 '태권도진흥재단'의 초청을 받아 '태권도원 팸투어'에 참여하고 취재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제주 한림공원에서 토실토실 잘 자라고 있던 선인장들, 심심하거나 단조롭게 생겼다 싶은 외관과는 달리 피어내는

꽃들은 제법 천연색이 발랄하니 샤방샤방한 모습이었다. 다만 사람들이 이름을 남기고 기록을 남기고 싶은 욕구는

어쩔 도리가 없어 손 뻗어 닿기 쉬운 곳에 있는 선인장들은 마치 '골든벨' 최종도전자의 그것과도 같이 누군지도

알 수 없는 명찰들이 바글바글 달려있는 모습. 

이 나무의 이름은 '와싱토니아'.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와싱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라는데 와싱톤이라..

아무래도 저 안내판은 이 '와싱토니아'의 씨앗이 처음 뿌려진 1971년쯤 만들어진 거 아닐까 싶었다.




곳곳에 있던 제주 전통 현관문인 '정낭', 자연스레 한림공원 내부의 동선을 잡아주고 있었는데, 이런 돌담들도

은근히 어거지로 밀고 나가려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돌담을 허물지 말아달라는 표지판이 서 있을 정도.

내부의 온실에서 자라고 있던 뱀이나 도마뱀 같은 동물들에 더해 거북이들도. 두마리가 서로 반대쪽을 바라보면서도

무슨 탑쌓기하듯이 포개어져 있었다.


 






그리고, 만지면 느끼는 게 아니라 보면서 느끼는 꽃들. "보기만 허고 만지지랑 맙서예!"








한림공원에는 협재굴과 쌍용동굴이 있다. 그쪽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저 만화 캐릭터를 보면서 왠지 '낢 이야기'의

낢 작가 캐릭터가 떠올랐던 건 왜일까.



협재굴 들어갔다, 협재굴 나왔다. 빛이 반겼다.



그리고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왔던 정령들처럼 봉긋봉긋 튀어나온

돌 인형들. 짙고 거칠게 파인 눈매가 장난스럽기도 하고 살짝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한림공원을 떠나 바로 앞의 협재해수욕장이나 금능해변으로 옮겨가는 길, 하루방과 해녀가 어깨를 걸고는

살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제주도 서남부에 '오설록' 차박물관이 있다면 동북부에는 '다희연'이 있는 셈이었다. 너른 차밭이 언덕을

꿀렁꿀렁 넘어다니며 펼쳐진 모습도 장관일 거라 생각은 했지만, 여기는 동굴까페가 있는 데다가 카트를

직접 운전하며 6만평 차밭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것.


거문오름 자락에 연해 있다고 하더니 정말, 다원 한쪽엔 거문오름 트레킹코스 종점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고, '다희연'이란 이름보단 '동굴의다원'이란 이름으로 계속 도로표지판이 나오더니 정말,

구석구석 땅밑세계가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갈라지고 터진 검정돌바닥 아래로 슬쩍 내비치는 땅밑의

터널이라거나, 물소리가 졸졸거리며 옆구리가 터친 동굴까지.

우선 카트를 빌려서 다원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6만평에 달한다니 걷기엔 무리인 크기인데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피하기엔 저렇게 꽁꽁 비닐차양이 둘러쳐진 전동카트가 제격.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소리없이 나가는 그 느낌이 굉장히 신기해서 한두어 바퀴 다원을 돌며 카트레이싱을 펼쳐보기도 했다.

카트를 타다가 발견한 전망대..라기엔 조금 애매한 높이의 2층짜리 건물. 비에 젖은 철계단을 조심스레

휘휘 돌아감으며 2층까지 올라갔더니 탁 펼쳐진 풍경. 몇개 놓인 나무의자와 말간 아크릴창 너머 가지런한

싱그러움이 있었다.

아침부터 여우비가 오고 있었는지라 햇살이 언뜻언뜻 내리쬐는 와중에도 부슬거리는 빗발. 안개가

자욱한 구릉들이 안온하게 감싸고 있는 녹색의 다원. 차라리 비가 조금 온 게 다행이다 싶었다. 사람 하나

마주치기 쉽지 않은 공간에 고즈넉한 공기가 차분하게 내려앉은 채 단단히 응결된 느낌.

카트를 타며 지나친 풍경들. 6만평이란 게 얼마나 넓은지 처음엔 와닿지 않더니, 좀 달리며 둘러보니까

비로소 실감이 간다. 산도 있고 나무도 있고 오르막내리막길도 있고 언덕도 있고 다원도 있고. 저런

흔들의자들이 띄엄띄엄 놓여있기도 하고. 참 많은 게 들어가는구나.

그야말로 '언덕 위의 하얀 집'이다. 빗물에 씻겨 더욱 싱싱하게 풀빛을 뿜어내는 녹차밭과 잔디밭 사이로

깜장돌이 차곡차곡 즈려박혔고, 돌이 이끄는대로 밟아 올라가면 도착하는 언덕 위의 하얀 집. 그리고 다희연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또다른 뷰포인트.

녹차밭만 있다기엔 중간중간 우거진 나무들도 있고, 늘씬하게 뻗은 채 그림처럼 서 있는 나무도 있었고,

아직은 전부 조성완료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자귀나무 동산이나 종가시나무로 조성한 미로 비스무레한 것도

있었다. 나뭇잎이 듬성듬성 가지끝에 성기게 매달린 게 종가시나무인 거 같던데, 아직 미로라기보다는 그냥

정신없이 우거진 종가시나무숲이란 느낌이었지만 조만간 정비되면 괜찮지 않을까. 녹차나무로 팔괘진을

만들었단 곳은 제법 잘 정비되어 있었고, 사진에 이쁘게 나오려면 조금 높이서 내려볼 수 있는 받침이나

사다리를 만들어두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조금 남았던 곳.


곶자왈, 제주도 여기저기에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 많다 했더니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였다.

'곶'은 숲, '자왈'은 자갈을 가리키는 제주도 사투리. 그러니까 자갈이 깔려있는 숲길이랄까. 제주도의 독특한

화산지형으로 생겨난 산책로인 셈인데, 비를 맞아 더욱 꺼뭇꺼뭇 구멍송송해진 현무암 틈새로 빼곡히 자리를

잡은 이끼들과 잘박거리며 발 아래에서 뒹구는 자갈들이 묘하게도 정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다지 길진

않았지만 온통 나무들이 빼곡하게 하늘을 가린 곶자왈 산책로를 걷고 다시 탁 트인 차밭으로 나오니

기분이 묘하다.

그렇게 곶자왈도 숨어있는 6만평의 너른 차밭을 샅샅이 수색하듯 전동카트로 헤집고 나서, 드디어 동굴의 다원

입장하기 직전. 거문오름에서 뻗어내린 여러 자락 중에서도 동굴계 자락 끄트머리에 자리한 덕분에 가능했던

거라고는 들었지만 대체 어떤 식이길래 동굴의 다원이라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고, 녹차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크기도 했고.

생각보다 깊고, 크고, 넓은 동굴이 조금 이어지더니 불쑥 밝은 빛이 가득한 홀이 나왔다. 뭔가 물이 뚝뚝

떨어지고 흐릿한 조명에 조악한 테이블이 몇개 있으려니 했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깔끔하고 나름

단정한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갖춘 천장 높은 까페가 있었던 거다. 30만년전에 형성된 동굴이라더니, 그래서

저리도 넓고 큰가 싶었다.


녹차 아이스크림은 물론이고 녹차빙수, 녹차발효액에 각종 케잌과 빵류까지 제법 잘 갖춘 까페에서 잠시

앉아서 시원한 에어콘을 쐬면서 이것저것 맛도 보며 쉬다 보니 금세 땀이 식어버렸다.


돌아나오는 길, 들어가는 길이나 나오는 길이나 같은 길이었지만, 이런 경우 늘 신기한 건 들어갈 때 못 보았던

것들을 나오면서 새삼 발견하는 경우가 왕왕 있더라는 것. 내가 관찰력이 떨어지거나 주의가 산만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저렇게 동굴 외길 한켠에 나란히 걸린 '사랑의 서약'은 왜 아까 못 봤을까.

녹차를 응용한 음식들을 파는 레스토랑도 있고 도자기만들기를 체험해볼 수 있는 전통도요도 있다고

하는데 뭐, 배는 고프지 않고 도자기는 익히 만들어보았으니 전부 스킵. 사전에 예약하면 녹차따기나

녹차팩만들기, 녹차비누만들기나 녹차장아찌, 녹차발효액만들기 체험도 해볼 수 있다고 한다. 조그만

아이들이랑 함께 제주도에 놀러간다면 한번쯤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지만, 머리 굵은 사람들끼리의

여행이라면 짙푸른 녹색의 다원에서 카트를 질주하곤 동굴까페에서 녹차 팥빙수 한그릇 흡입해주는 정도면

충분하지 싶다.



kR@ 충북 영동군.


싱그럽고 하얀 버섯갓이 뽀도독뽀도독.


일제시대 탄약저장용 및 피난용으로 강제동원되어 파내어졌던 토굴이 이제는 포도주 저장고로 쓰이고 있었다.

어둑어둑하고 퀴퀴한 냄새 가득한 동굴 속에서 오크통에 비스듬히 기대선 삽, 사방에 송글송글 맺힌 물방울들,

그리고 그 물방울과 함께 삽자루에 남은 사람의 땀 등 온갖 영양분을 섭취하며 자라났을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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