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지킴이 김장훈, 구글코리아의 가장 큰 미팅룸 '독도'에서 두시간여 미팅을 가지다가


문득 '독도'와 '김장훈'의 재미있는 연관관계가 떠오르고 말았다. 


'독도'라는 미팅룸 명패 앞에서 사진을 찍자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이왕이면 독도지킴이 김장훈씨의 사인을


하나 남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받아주시는 가수 겸 공연기획자 김장훈.


그렇게 구글코리아 오피스에 작지만 재미있는 스토리가 하나 더 쌓이게 된 하루.




+ 그리고 구글코리아의 빼놓을 수 없는 셀렙, 싸이의 사진 한장.


구글 에릭 슈미트 회장과 싸이의 만남 구글 에릭 슈미트 회장과 싸이가 27일 오후

구글코리아 본사에서 직원들과 만남을 가진 후 함께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추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포항 호미곶,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이 곳을 가본 사람이던 안 가본 사람이던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바로 이렇게 바다에서 불쑥 솟아오른 커다란 손의 형상. 갈매기들이 쉬어 가는 다섯 개의 봉우리이기도 하다.

 

 

사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생각보다 작아 보일 수도, 혹은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는 이 청동 조각상은 '상생의 손'이라는 이름으로

 

새천년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99년 12월에 완공된 상생의 손,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기리는 상징물로, 육지에선

 

왼손, 바다에선 오른손 이렇게 두 손이 함께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손이 육지에도

 

하나 더 있다는 사실. 처음 알았다.

 

 

 

성화대에 있는 화반은 해와 달을 의미하고, 두 개의 원형고리는 화합을 의미한다던가.

 

바다에 있는 오른손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진 육지의 왼손. 그 앞에는 독도 일출과 피지의 일출에서 얻어온 불씨가

 

2000년 1월 1일 이래 꺼지지 않고 불을 밝히고 있었다.

 

새천년 기념관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왼손과 오른손, 상생하라는 두 개의 손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공을 쥐고 있는 듯

 

살짝 움켜쥔 모양새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호미곶에 와서야 알게 된 손 조각상의 진실이랄까.

 

호미곶에 도착하면 딱 보이는 꽃마차들. 말갈기를 쉼없이 희롱하고 있던, 제법 쌀쌀한 바닷바람에도 말들은 꿈쩍없었다.

 

상생의 왼손을 에둘러 바다쪽으로 훅 들어가는 전망대. 바다 쪽에서 육지를 배경으로, 미친 듯이 날아다니며 시야를 가리는

 

갈매기들 틈새로 상생의 오른손을 볼 수 있다.

 

 

전망대 걸어들어가는 길에 한번씩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거대 문어상. 포항이 문어로도 유명한 데다 심지어 문어축제도 있다는 사실.

 

 

더이상 나갈 곳 없는 전망대의 끝단에 서면 정확히 동쪽을 가리키고 선 꼬마 아이의 동상이 있고, 호미곶의 위치가 잡혀 있는

 

한반도 지도와 나침반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분분히 날아다니며 상생의 손을 향한 시야를 여지없이 가리는 정신사나운 갈매기들. 사람들이 자꾸 과자를 던져댄 탓이다.

 

이쪽에서 보이는 상생의 오른손 측면샷. 아무래도 육지의 왼손보다 크기도 크거니와 그림도 훨씬 이쁘게 잡힌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서, 미처 보지 못했던 가로등에 눈길이 간다. 포효하는 호랑이 형태의 한반도가 장식된 가로등이다.

 

같은 형태로 동해를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상 , 검고 노란 줄무늬가 선연하던 가로등 호랑이와는 달리 흰색과 하늘색의 줄무늬를 가졌다.

 

그리고 파란 하늘에 둥싯 떠있는 하얀 달을 움켜쥐려는 듯 내뻗은 육지의 왼손상.

 

 

광장에는 지난 새천년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전국 최대의 가마솥이라거나 각종 기념물들. 그 와중에 수쳔년 전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기념한 기념탑이 하나 숨바꼭질중.

 

 

새천년 기념관 전망대로 가는 길은 엘레베이터와 계단. 계단으로 갔더니 대충 4층에서 5층 정도 높이가 되는 거 같다.

 

 

옆에 나란히 선 풍력발전기 한 대. 시험삼아 돌리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뭔가 효성의 광고판 같아보이기도 하고.

 

 

확실히 바닷바람이 매우 세게 몰아치기는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얼레를 하나씩 손에 쥐고 연을 날리고 있었고,

 

호미곶에 갓 도착한 아이들은 일단 부모손을 끌고 연 하나씩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으니. 그나저나 바닷가의 소도시답게,

 

혹은 바닷가의 명소답게 저런 연들을 담은 종이박스에 새겨진 글자가 눈에 잡힌다. 돌자반.

 

 

 

 

 

포항 북부해수욕장, 새벽부터 내달려 세시간반만에 도착한 한반도 동남쪽 바닷가에는 그런 이름이 붙어있었다.

 

해수면까지 짙게 내려앉은 희뿌옇고 눈부신 장막 너머 포스코의 굴뚝들이 은폐엄폐중이던 그 곳.

 

 독도가 경상북도 울릉군, 이었다는 건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문구가 무수히 꽂힌 해수욕장 모래사장과 어릴 적부터

 

익어버린 노래 가사가 서로 만나는 순간 새롭게 각인되었다. 독도는 한국땅.

 

 포스코 제철공장을 마주본 이 곳인지라 그런지 곳곳에 철로 만들어진 조각들이 보였다. 이렇게 커다란 철로 만든 모기도 한마리.

 

 북부해수욕장 끄트머리부터 시작하는 야트막한 구릉은, 봄철에 왔더라면 좀더 물이 올라 싱싱한 초록빛으로 반짝이지 않았을까.

 

중앙공원, 해맞이공원, 혹은 환여공원이라고도 불리는 것 같은, 수많은 이름을 가진 그 큼지막한 공원 가운데께에는 멀리

 

영일만의 반짝이는 파도가 굽어보이는 전망대도 있고, 몇 걸음 더 걷지 않아 도착하는 포항시립미술관(POMA)도 품고 있다.

 

 

 지방이라 그런지 아니면 포항이 부유한 도시여서 그런지 포항시립미술관은 무료. 마침 개관 3주년 기념 전시라며 그간

 

수집한 한국 모더니즘 작가들의 예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대적인 분위기 물씬한 미술관 내부에 문득 볕이 들이치던 순간.

 

 미술관 정문 옆에 심어져 있던 아롱다롱한 소망나무 한 그루. 은빛으로 번쩍거리는 열매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필체의 얼룩을 품었다.

 

 그리고 제법 오래 눈길을 붙잡았던, 포항시립미술관 앞의 이 작품. 허리춤을 아프지는 않게, 그렇지만 단단하게 부여잡은 저 손.

 

전망대에서 미술관을 지나 다시 공원 밖으로 내려서는 참에 다시 만난 포스코 제철공장의 어슴푸레한 풍경.

 

맑은날 밤에 여기서 야경을 찍어도 꽤나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도동을 둘러보는 건 여태 울릉도의 깊고 짙은 자연 풍광을 벗하며 걸었던 길과는 워낙 다르고, 다소 힘든 길이었다.

 

항구에서 떠나고 들어오는 사람도 많고, 무려 삼사층이나 되는 고층건물들이 수두룩빽빽하게 꽂혀 있었으며,

 

차들도 엄청 많아서 그새 낯설어진 탓이다.

 

그런 사람과 건물과 자동차의 틈새에 이런 울릉 역사문화체험센터가 숨어있기도 하고, 잘 보이진 않지만 눈을 크게 뜨고

 

찾으면 보이는 관광용 지도의 힘을 빌어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약수공원 안의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오를 참이었다.

 

 

슬슬 오르막길의 시동이 걸리고 있었고, 가는 길에 '호박막걸리'를 팔길래 울릉도 특산 아니겠는가 싶어 사려고 보니

 

2리터 들이 댓병뿐, 혼자 이걸 다 마실 수 있으려나 잠시 고민하다가 먹을 만큼만 먹고 버릴 생각으로 거금 만원을 질렀다.

 

 

오르면서 '뻥' 글씨가 크게 씌여진 가게를 보며 막걸리 한모금, 약수공원 앞을 지키는 독도대장군과 여장군을 보며

 

또 한모금, 생각보다 호박 맛이나 향이 진하진 않고 덩달아 알콜도수도 약한 편이지 싶어 물처럼 마시기 시작.

 

도량에 있는 관음보살 석상 위로 떠다니는 건 독도전망대를 향해 오르내리는 케이블카.

 

다소 과격하고 유치한 발상의 비석도 하나 보고. 독도를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한다고 우리도 똑같이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고 우기자는 건가. 문제는 그거다. 대마도니 간도니 만주니 이런 소모적인 땅따먹기 논쟁이 우리의

 

'역사강역'-한때 이만큼의 영향권을 가졌다는-을 고치는 수준이라면 좋다, 그치만 근대적 의미에서의 영토분쟁과

 

국토의 확장을 기도하는 차원이니까 문제. 임나 일본부설을 내세우며 조선을 병합한 일본 제국주의와 다를게 뭔지.

 

여하간, 그 앞에 잔디밭도 좋고 너른 돌판도 따끈하길래 잠시 앉아 또 한모금. 어느새 호박막걸리가 저만큼 줄었다.

 

 

약수터가 있어 약수공원이라 했던가, 약수터로 향하는 길목에 있던 잘생긴 돌계단은 그저 한번 눈도장만 찍고.

 

 

그 옆에서 케이블카를 타러 올라왔다. 편도 5분의 왕복 티켓이 어른 7500원.

 

 

 

5분이라고는 하지만 제법 지상과 멀리 떨어진 높이에서 질질 끌려가는 느낌이어서 그렇게 짧게 느껴지진 않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쇠줄이 출렁거리며 살짝 스릴감을 맛보여주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굉장히 아늑했다.

 

불자동차처럼 새빨간 케이블카가 농담을 달리하는 온갖 초록빛을 배경으로 팝업되어 있는 모습.

 

 그리고 전망대. 울릉도의 울룩불룩한 구릉들 사이에서 배어나온 것처럼 형성된 도동리의 '번화가' 풍경이다.

 

 케이블카를 내려서 전망대까지 가려면 조금은 더 걸어야 한다. 나무데크로 잘 꾸며진 길을 따라 조금만.

 

 구릉줄기에서 굴러내리는듯한 깍둑썰기 뭉탱이들이 도동항에서 바다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배 한 척.

 

 

독도전망대의 다른 쪽 전망 포인트. 저기서는 맑은 날엔 독도가 보인다던데, 사람들이 그쪽으로 많이 가는 것 같아

 

일부러 이쪽으로 온 참이었다. 커다란 술병 옆에 차고 덜렁덜렁.

 

 

그러고 나니 제법 너른 전망대 위 공간이 온통 혼자만의 평상이 되어 버렸다. 가방도 던지고, 신발도 벗고,

 

술병과 종이컵도 일단은 바닥에 내려놓고 사면을 두루두루 둘러보기 시작.

 

 

온통 짙푸른 초록으로 성숙해가는 울릉도의 산하. 그 와중에 사방으로 뱅뱅 굽이치는 하얀 길들 중에는

 

어제그제 내가 걸었던 길도 있을 거고, 갈까 하다 말았던 샛길이나 갈랫길도 있을 테고.

 

삼일동안 뒷주머니에 꽂고 다녔던 울릉도 전체지도는 접힌 부분이 닳고 찢어지고 이제 온통 너덜너덜 걸레가 되어 버렸다.

 

핸드폰을 꺼내 노래를 틀어놓고 맨발로 슬쩍슬쩍 거닐며 피로를 풀어주며 홀짝대다보니 어느새 호박막걸리가 바닥을 보였다.

 

 

한 삼사십분 그러고 있었으려나. 마지막 남은 막걸리를 탈탈 털어넣고 일어섰다. 사방의 시야가 탁 트인 이곳에서

 

굽어본 울릉도 동남쪽의 풍경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음직하다. 노래와, 막걸리의 흥취와 함께. 

 

 

 

다시 내려가는 길. 공식명칭으로는, 티켓에 따르자면, '독도전망삭도시설'인 케이블카는 수시로 운행되어서

 

딱히 사람이 차길 기다리거나 그럴 필요는 없어 좋았다. 어디든 대체로 한산한 편, 몰려다니는 관광객 타이밍만 피하면.

 

 

  

 그리고 인제, 사동항으로 걷기 시작. 바야흐로 울릉도에서 내처 걸었던 2박3일의 일정이 끝나가는 참이다.

 

 도동의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울릉터널을 지나고 흑비둘기 서식지를 지나.

 

 

 두둥, 공사가 한창인 사동항에 도착했다. 이제 일이년만 지나도 이 곳의 풍경은 확 바뀌어 있을 거다.

 

 

다섯시 반에 출항하는 배를 타려 줄을 선 사람들, 갑판으로 나가 바람을 쐴 수도 없는 답답한 배 안으로 일찍부터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으니 근처를 서성거리며 바람을 쐬다가, 울릉도를 좀더 바라보다가 거의 마지막에 탑승 완료.

 

묵호까지 세시간 반, 딱 그만큼 소요되어 주차했던 차를 찾으니 아홉시가 살짝 넘은 시각. 열심히 서울로 내달려 귀환하다.1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저동항의 촛대암에서 도동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걷는 산책로가 시작되는 곳, 행남등대까지 약 2km 정도의 구간이다.

 

촛대암에 바싹 붙어선 방파제 위에서 멀찍이 보이는 곶, 그 위의 자그마한 구조물이 바로 행남등대. 그 너머가 도동항.

 

해안산책로, 말 그대로 해안에 바싹 붙어서 슬쩍슬쩍 오르내리며 바람소리 파도소리 귀기울이며 걷는 길이다.

 

 

조금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죽도가 멀찍이 배웅해주고 있기도 하고.

 

 

빨강, 주황, 노랑, 녹색, 무지개 색깔을 빠짐없이 짚어가며 길을 이어가는 구름다리들. 발판 틈새로 퍼런 바다가 넘실넘실.

 

 

그리고 조금씩 크게 나타나는 소라계단. 드릴처럼 비비 꼬인 계단이 해수면에서부터 훌쩍 언덕 위로 치솟는다.

 

 

구름다리를 몇 개 지나고, 이따금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머릿칼을 한껏 나부끼며 산발을 한 즈음.

 

물빛이 참 곱다. 빛깔만 해도 화려한데 쉼없는 물결이 더해져서 몽롱하기까지 하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작은 드라이버 드릴심 같던 소라계단이 석유시추선의 드릴만큼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투명한 청색으로 반짝거리고 있는 울릉도 앞바다.

 

 

무려 57미터의 높이를 커버하는 소라계단. 노약자 및 임산부, 심신장애자는 조심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실 그렇게 어지럽거나 가파르진 않고, 그냥 좀 뱅글뱅글 가는구나 싶다보면 어느새 이만큼 눈이 높아진다.

 

 

그리고 이제 바다는 숨고 초록빛 숲 한가운데 길을 걷기 시작. 행남등대로 걷는 길이다.

 

 

 

등대까지 남은 거리는 300미터. 저 귀여운 오징어 캐릭터를 좀더 적극적으로 써도 좋겠다 싶다.

 

 

녹색 장막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울릉도의 풍경. 저동항과 촛대암이 저 멀리 보인다.

 

촛대암, 방파제가 저렇게 항구를 막아서서 이 곳의 어업 환경이 수월해졌다고는 하지만 촛대암이 아쉽다.

 

행남등대 도착!

 

 

옥상에 한번 올라가서 굽어 살펴주고, 다시 내려와서 야외 전망대로 향하는 길.

 

 

울릉도, 그리고 북저바위, 오른쪽 끄트머리에는 죽도.

 

저동항에서부터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와 구름다리들, 오는 내내 감탄했던 쪽빛바다의 색감은 그대로다.

 

 

울릉도의 단연 특출한 세가지를 꼽으라면 숲, 공기, 그리고 물이 아닐까 싶다. 섬 내의 모든 물은 수돗물이 아니라

 

울릉도 해양심층수라고 하는데, 정말 물맛이 확연히 다르다. 등대를 떠나 도동항으로 계속 이어지는 해안산책로를 다시 밟기 전

 

화장실에서 좀 씻기도 하고 머리도 감고 물통에 물도 다시 채우고 출발.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남양리에서 맞는 울릉도 세번째 날, 그대로 섬의 아랫도리를 따라 걸을까 하다가, 아무래도 동선이 애매하여

 

울릉도 입항한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중교통을 한번 타기로 했다.

 

 

3일차, 오후 5시반 배를 타고 나가기로 했으니 저동에까지 일단 버스를 타고 가서, 내수전을 거쳐 저동항,

 

촛대암, 행남등대를 지나는 해안산책로를 따라 도동으로 들어가 사동항으로 가는 코스를 잡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삼사십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안되겠다 싶어 정류장 앞의 따개비칼국수집에서

 

한그릇 말아먹고, 해군사령부에서 붙여준 간첩선 식별 스티커도 숙지하고.

 

 

저 멀리 보이는 옆구리 구멍 빵빵 나있는 터널도 구경하고, 남양리 앞바다도 굽어보고.

 

WARP~! 한 이십분 타고 나서 촛대암이 우뚝한 저동항에서 내렸다. 내수전은 이번에 못 가본 울릉도 동북쪽과 더불어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하고, 저동항부터 한바퀴 둘러보고 해안산책로 따라 도동쪽으로 넘어가는 걸로.

 

저동항 앞에 길게 방파제를 박정희 대통령때 만드는 바람에 촛대암이 그 이전과 같은 위엄은 상실했다지만.

 

저동항에 죽 늘어선 해산물시장, 이층짜리 회집타운에 올라가는 계단에서 아래를 향해 부리부리한 눈알을

 

굴리며 마치 천하대장군처럼 당당히 서 있는 오징어 한마리.

 

울릉도스럽다, 라고 해야 하려나. 오징어잡이 집어등을 따로 모으는 수거함이 항구 한쪽에 있고.

 

저동항 한 쪽에 있는 이 커다란 갈매기같은 기묘한 건물은..아마 배에 뭔가를 싣거나 부릴 때 쓰는 구조물이려나.

 

 

 

 

 

저동항을 거의 감싸다시피한 방파제 안의 차분한 바다에서 다닥다닥 주차된 배들이 곰실곰실 움직이고 있었다.

 

 

 

 

방파제를 따라 걸어서 촛대암 근접 촬영. 제법 크고 굵직한 게 위에 갈매기 둥지 여남은개는 품고도 남겠다.

 

 

울릉도 동쪽의 커다란 북저바위, 그너머로 보이는 한 가구가 살고 있다는 죽도. 이게 일본어로는 제대로 '다께시마'가

 

되겠다. 생긴 건 살짝 종합운동장처럼 생겼고, 왠지 위로 솟을수록 풍성해지는 모양새가 사람 살기 좋을 듯한.

 

 

보통 울릉도에서 배를 타고 나가서 돌아보는 코스로는 크게 독도 왕복, 아니면 죽도 왕복, 이렇게 두개 코스가 있다고

 

하니 다음에 또 울릉도를 오게 되면 나머지 울릉도를 돌아보고, 죽도랑 독도를 가봐야겠다.

 

 

 

방파제 안전난간에 자리를 잡고 저동항을 바라보는 갈매기 녀석의 매서운 눈빛.

 

 

그리고 저동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도동쪽, 해안도로가 저 바윗덩이 중간중간에 숨어있다.

 

그리고 저동에서 도동으로 이어지는 해안산책로 입구. 뭔가 두터운 콘크리트 벽을 넘어서면

 

새로운 풍경이 확 덤벼들 거 같은 느낌의 출입문이다.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태하 등대가 굽어보고 있는 동그란 만 형태의 바다, 짙은 에메랄드빛 잉크를 풀어내린 듯한 파도가 부서지던 곳.

 

태하 앞바다를 따라 걷는 해안 산책로, 뱅글뱅글 올라가는 길을 걸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저런 건 거리를 살짝

 

두고 보는 게 인상적이지 막상 저 나선궤도 위에 올라서면 별반 흥취가 없다며.

 

태하까지 왔으니 울릉도 북쪽 해안의 동에서 서까지 걸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셈.

 

야트막하고 자그마한 집들이 좁다란 골목을 함께 나눠쓰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

 

뜨거운 계절엔 누군가의 수영복과 옷가지를 얹어두고 두팔 펼쳤을 빨랫대도 얌전히 쉬고 있다.

 

다시 태하삼거리로 돌아가는 길, 아무래도 저녁은 남양약소숯불구이를 먹어야겠다.

 

 

도로변에 이어진 너른 공터 한가득 나물을 말리고 있는 아주머니들. 트럭까지 동원해서 정말 대규모로 널고 계셨다.

 

거기서부터 이젠 남쪽으로 걷기로 했다. 울릉도에 있는 두개의 둘레길은 태하에서 남양을 잇는 길 하나,

 

그리고 내수전과 석포를 잇는 길 하나. 그중 태하에서 남양을 잇는 약 7km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

 

태하 등대에서부터 남양까지 치자면 대충 9km 정도 되는 거리, 그치만 결과적으로 길을 잘못 들어버려서

 

태하령입구를 지나 구암으로 빠져 남양까지 걸었으니 대충 11.2km 정도. 2km 정도야 대충 30분 더 걸으면 되는 정도니까.

 

예부터 있던 길을 다시 연결해서 만들어놓은 둘레길이라고 들었는데,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살짝 의심부터 든다.

 

차는 고사하고 인적조차 한동안 끊겼던 길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 거다. 온통 범람한 녹색의 이파리들도 그렇고.

 

생각보다 길도 험하다. 오르내리막이 연속되는 꼬부랑 고개가 꼬불꼬불, 하늘을 온통 가린 두터운 녹색의 장막.

 

게다가 여기가 어디쯤인지, 제대로 된 길은 맞는지 알려주는 표지가 굉장히 귀했던 것도 뭔가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사람 하나 없는 길에 자박자박 발걸음 소리가 울리면 사방에서 흑비둘기가 푸드덕거리는 짙은 숲속 외길.

 

 

그래도 한참 걷다보니 이런 정자도 나타나고. 숲에 대한 소개나 식생에 대한 정보가 담긴 안내판들도 정비되어 있고.

 

 

 

벤치도 중간에 조금 꾸며져 있긴 했는데, 정말 사람 손을 거의 타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에 잡아먹혀서는 이제 엉덩이 반쪽 자리할 공간도 없으니.

 

오르고 내리고 오르고 내리며 점점 고도가 올라간다 싶다가, 태하령에서 고비를 찍고는 본격적으로 다시 내려가는 길.

 

'구비구비 버혀낸 긴긴 겨울밤'이 이럴라나 싶을 정도로 배배 꼬인 창자같은 길을 슬슬 풀어내는 참에

 

거꾸로 눈돌려 확인한 울릉도 제2둘레길의 호젓함. 차량 통행이 금지되었는지라 굳이 걸어서 넘어갈 사람 아니고서는

 

이 길을 이용할 일이 없는 거다. 그게 이 길을 걷는 동안 사람 하나 발견하지 못한 채 짙은 숲을 음미할 수 있었던 이유.

 

둘레길의 시작점과 종점이 명확하지 않긴 하지만, 대충 사람의 흔적이 길 양옆으로 남아있는 즈음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다. 가로등이 양쪽에 늘어서고, 하늘까지 치솟은 나무들의 키높이가 곤두박질치고, 비료 봉투를

 

뒤집어 세워 허수아비를 갈음하는 자그마한 개간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체 시작점과 종점이 어디인지 명료하지 않은 상황,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안내판들이 세워진 상황에서

 

몇 km 남고 몇 km 걸었는지 따위 계산은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외길이어서 그저 걸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어느순간 옆길로 새더니 구암 쪽으로 걷고 있었단 걸 발견했을 때 좀 신기하긴 했지만.

 

뭐 잘못 들어선 길이긴 했지만, 꼭 다시 되짚어 바로잡을 생각은 없었다. 어쨌거나 '손바닥만한 섬', 아무리 애를 써서

 

모로 가려 애써봐야 거기서 거기다. 시속 4km의 도보로는 나름 굉장히 광활한 땅처럼 느껴질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직 해가 한참 남았는데 번쩍 가로등이 불을 밝혔다. 알게 모르게 슬슬 조바심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순간.

 

 

구비구비, 저기만 지나면 눈앞에 울릉도 남쪽 바다가 보이겠거니, 생각하다가 헛탕치기를 몇 차례.

 

뭐 그래도 발걸음이 한가로운 완만한 내리막길.

 

이 사진의 제목은 왠지 그런 거 어떨까 싶다. '삼송의 최후'라거나 뭐 그런거.

 

 

드디어 울릉도 남쪽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저만치 땡겨지도록, 태하를 출발한 이후부터 사람 하나 못 보고.

 

 

그러다가 우르르 길가에 나와 맞이해주던 까망색 흑염소 녀석들. 무슨 고산지대 산양처럼 맘껏 뛰놀던.

 

구암마을, 울릉둘레길로 돌아가는 안내판이랑 버스정류장을 보며. 무엇보다 눈앞에 바로 놓인 바다를 보며.

 

 

이제 해안도로를 따라 남양리로 걷는 길이다. 남양엔 유명한 남양약소숯불구이집이 있다니 저녁은 그곳에서 먹기로 하고.

 

 

구암과 남양 사이의 사태감 터널. 여느 터널과는 좀 다르다 싶어 유심히 살피다가 이유를 알았다.

 

 

구멍이 뽕뽕 나있는 외벽은, 언제고 바다가 거칠어지고 높은 파도가 몰아칠 때 터널 구조물이 좀더 버티도록.

 

바닷물이 들이칠 때 타격이 덜하도록, 그리고 빠져나갈 때 좀더 쉽게 빠져나가도록 만들어진 거 같다.

 

 

그리고 남양 몽돌해변으로 이어지는 동글동글한 자갈 마당이 파도에 씻기우고.

 

 

울릉도에서 공사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제법 여기저기 공사판이다. 그 앞에 보이는 게 구암터널.

 

 

남쪽 해안이라 해넘이가 잘 보이진 않을 거 같고, 살짝 바다가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양리에 들어서는 길에 바로 보이는 사자바위, 그 앞에 남근바위도 있다는데 아무리 찾아도

 

남근 비스무레한 건 찾는데 실패. 사실 이녀석도 딱히 사자다워 보이진 않는데.

 

그리고 투구봉.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의 우산국을 정벌했을 때 우산국 왕이 벗어놓은 투구가 봉우리가 되었다.

 

혹시나, 떨어지는 해와 경쟁해서 달리면 사진 한장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싶어 남양리 안쪽으로 들어가

 

남서일몰전망대를 찾아보았는데. 발은 아프고 배는 고프고 길도 모르겠고 하여 잠시 헤매이다 포기.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태하항 옆의 해안산책로, 뱅글뱅글 말려올라가는 골뱅이 계단이 전신주에서 뻗어나간 전선들마저 감아돌리려 든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해변마을. 민박집을 겸한 자그마한 슈퍼와 이발소와 음식점들.

 

 

 

태하 등대와 전망대로 가는 모노레일을 타는 길.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운행이나 하려나 싶었는데 그래도 수시 운행중이다.

 

 

몰랐었는데 위에 올라가고야 알게 된 사실. 태하등대까지 올라가는데 꼭 모노레일을 탈 필요는 없다. 살짝 걸어올라가는

 

길이 있다고 하는데 걸어보신 분 말씀으로는 그 길도 제법 가파르지만 이쁘다고 했다.

 

 

모노레일 타고 올라가는 길, 거의 수직 급상승하는 느낌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눈높이를 따라 바닷물 수위가 모노레일

 

위로 넘실넘실 차오르기 시작했다.

 

 

모노레일 안에 붙어있던 울릉도 순환버스 시간표. 버스회사 이름이 '우산버스'다.

 

한때 우산국이라는 이름의 나라였던 자취가 이런 식으로나마 남아있었다.

 

 

모노레일은 한 육분 정도, 순식간에 해안가에서 가파른 야산 위로 올라왔다. 태하 등대 가는 길은 한때 굉장했다는 향나무숲.

 

태하 등대와 전망대의 갈림길에서 푯말을 들고 두뺨을 붉힌 오징오징 오징어.

 

 

 

전망대 한가운데에는 밑에서 치받고 올라오는 나무를 위한 공간을 틔워놓았다.

 

 

그리고, 사진작가들이 국내의 10대 비경 중 하나로 손꼽았다는 태하 등대 앞의 푸른 바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동남아 어느 리조트 앞바다에서나 볼 법한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아무래도 저렇게 시시각각 다른 빛깔을 내뿜으며 반짝거리는 푸른 파도의 질감이라거나

 

하얀 포말을 포기할 수 없어서 사진들을 골라내고 버리기를 포기해 버렸다.

 

이쪽 끝으로 가서 내려다보다가, 또 다시 저쪽 끝으로 가서 하염없이 내려다보다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 맑고 부드러운 색감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을 머물렀다.

 

어찌 바닷물 색깔이 저런 빛을 띌 수 있는 건지. 

 

 

그리고 등대. 태하 등대는 전망대 바로 옆에 붙어 있다시피 하다.

 

거대한 대왕오징어, 괴수 크라켄이 빨판이 그득한 다리를 꿈틀거리며 지상으로 솟아오르는 중.

 

 

다시 모노레일을 타러 내려가는 길, 아까는 조용하던 염소가 갑자기 울어제끼며 사진을 보챈다.

 

역시 이곳도, 도르레가 설치되어 있어 간단한 물품을 쉽게 오르내릴 수 있게 했다.

 

 

모노레일이 내려가는 방향의 바다, 방파제가 저렇게 정연하게 차곡차곡 놓인 모습은 보기 쉽지 않은데.

 

두 량짜리 모노레일, 어렸을 적 타고 놀던 다람쥐통처럼 동그랗게 생겼다.

 

 

또다시 수직낙하하는 기분으로 가파르게 내려앉는 길, 같이 모노레일을 탔던 분들이 너른 유리창 너머 바다와

 

태하항의 풍경을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으시다.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울릉도 평리의 예림원(a.k.a. 문자조각공원)을 걸어나와서 다시 북쪽 해변을 따라 울릉도 서안으로 향하는 길.

 

둥글둥글 다듬어진 자갈들이 차르르륵 차르르륵 소리를 내며 파도랑 얼싸안고 나뒹구는 해변.

 

 

 

시멘트 옹벽 아래까지 도톨도톨한 돌기가 선연한 분홍빛 혀를 빼물고는 온통 흐드러진 꽃무더기.

 

그러고 보면, 바다로 향한 등대의 왼쪽은 꼭 빨간색, 오른쪽은 꼭 하얀색으로 반짝거린다. 일종의 약속인 듯 하다.

 

 

현포항에 들어서는 길목, 방파제가 두 팔 벌려 안아주고 있는 야트막한 내해에 소심하게 뻗어나간 구름다리.

 

뒷꿈치가 완전히 아작이 나서, 게다가 울릉도의 길가엔 편의점도 슈퍼도 흔치 않아서, 급기야 현포항에 들어서

 

가장 먼저 눈에 띄인 경찰서에 무작정 들어갔다. 밴드랑 기타 응급약상자가 있을까 했는데, 없다며 근처의 주민분께

 

밴드를 얻어주신 경찰 아저씨를 기다리다 한 컷. 걸음이 빠른 경찰 아저씨가 화면 한구석에 잡혔다.

 

 

맨발도 답이 아니고, 밴드를 발라봐야 이미 뒷꿈치는 피칠갑을 했고. 잠시 암담해하며 쉬어가던 참. 주머니에 꽂았던

 

핸드폰은 그냥 신발에 발 대신 우겨넣고 노래를 틀어버렸다. 신발이 그대로 주크박스로 변신해 버린 참이다.

 

그래도 돌아보면, 한걸음 한걸음 걷다보니 저만치 멀어져 버렸다.

 

 

잠시 앉아 쉬어가던 현포 전망대. 멀찍이 지나쳐온 코끼리바위니 노인봉이니, 송곳니처럼 삐쭉 튀어나온 송곳산도 보인다.

 

그리고 울릉도의 밭떼기에서 자주 보이던 저 조그마한 모노레일. 아니지, 레일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니 '모노'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워낙 경사가 심한 비탈을 일구고 가꿔야 하니 이동네엔 저게 필수품일 듯.

 

울릉도는 크게 북면, 서면, 그리고 울릉읍으로 나뉜다. 울릉도 북쪽 해변의 서쪽끝과 동쪽끝을 꼭지점으로 한 역삼각형

 

모양으로 울릉도 북쪽을 차지한 북면의 끄트머리를 지나는 참. 돈키호테를 기다리는 커다란 바람개비가 꽂힌 곳이다.

 

 

현포와 태하 사이, 그러니까 울릉도의 북면과 서면을 가로지르는 고갯길은 구불구불 꼬부랑길.

 

슬슬 짙푸른 군청빛의 바다가 하늘로 기어오르고.

 

조그마한 초등학교 분교 앞 운동장 가득 뭔가를 널어 말리는 계신 아주머니들을 지나.(아마도 울릉도 특산나물 '부지깽이'인 듯)

 

이처럼 씁쓸하고 잔인한 이야기가 서려있는 성하신당으로 도착.

 

 

나이 어린 동남동녀는 서로를 끌어안고 백골이 되기까지 사람을 원망했을까, 울릉도 앞 험한 바다를 원망했을까.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눈이 뜨이고 나니 온몸이 아팠지만, 뒷꿈치는 얼얼함이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나섰다. 천부항의 아침.

 

 

바다를 따라 시계반대방향으로, 현포를 지나 태하등대까지 가볼까 하는 참이었다. 울릉도의 북쪽 해변가를 따라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에어콘 바람같은 시원한 강풍이 불어오는 쉼터가 있길래 일단 쉬고 보겠다며 엉덩이를 붙였다.

 

 

 

 

조금이라도 일찍 나서길 잘했다 싶었던 게, 날이 삼일 내내 흐리리라던 예보와는 달리 둘째날엔 아침부터 햇볕이 쨍쨍.

 

 

바닷가와 도로를 구획하고 있는 콘크리트 블록이 해풍과 파도에 온통 삭아내려 페인트가 벗겨지고 자갈들이 드러났다.

 

버스 정류장. 제법 띄엄띄엄 눈에 밟히긴 했는데 막상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던 한적한 울릉도.

 

 

울릉도 북쪽 해변 중앙에 떡하니 버티고 선 송곳산. 그 앞으로는 추산 몽돌해변이 펼쳐지고, 해변 너머 바닷가에는

 

코끼리 바위가 보인다. 툭 튀어나와 몸뚱이랑 떨어져 있는 굵은 기둥 하나가 영락없는 코끼리 코다.

 

 

각도를 달리 해서-한참 더 서쪽으로 걸어가서- 확인한 코끼리 바위의 코끼리 코.

 

 

 

 

 

투명하고 시퍼런 파도가 넘실거리며 둥글둥글한 돌멩이들을 희롱하는 소리에도 아랑곳않고 부동자세중인 새들.

 

그리고 뒷꿈치가 온통 까져버려서 급기야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기 시작한 시점. 그다지 현명한 짓은 아니었던 게,

 

얼마 걷지 못하고 맨발바닥 아래에 물집이 잡혀서 다시 신발을 꿰어차야 했다.

 

 

바다에 이랑을 내고 씨를 뿌리러 갈 기세인 산뜻한 색감의 경운기 한대가 바다에 찰싹 붙어 주차 중이다.

 

그리고, 들어갈까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입장했던 예림원, 문자조각공원. 망설였던 이유는 4,000원의 입장료도 아니고

 

구경온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한적한 분위기 때문도 아니었다. 다만 해안도로에서 걸어가려면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꽤나 걸어야 했다는 이유, 게다가 발바닥에 콕콕 박혀오는 잔돌멩이들이 너무 많은 길이었어서.

 

 

 

 

이 바위의 이름은 얼굴바위였던가, 얼굴의 옆 실루엣이 어찌어찌 잘만 따져보면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다.

 

전망대 아래를 잘 살피면 파도가 철썩이며 부딪히는 전복 바위랑 조개 바위도 찾을 수 있다는데.

 

 

 

 

 

얼굴바위 위까지 이어지는 전망대로 오르는 길. 오를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저 높이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궁금해졌다.

 

 

 

 

얼굴바위 위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아침에 꾸역꾸역 걸어온 길. 맨발에 느껴지던 서늘한 콘크리트의 감촉이 서서히

 

달아올라 뜨거워지기에 이른 시간만큼 해가 내달려선 하늘 높이 솟았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이내 도착할 곳, 현포항이 미리 내다보인다. 빨갛고 하얀 등대가 배들을 항구로 이끄는 곳.

 

반듯한 직선에 가까운 도로가 섬세한 물결이 새겨진 에메랄드빛 바다와 싱싱한 초록의 보들보들한 기슭을 가른다.

 

 

 

그리고 전망대에서 발견한 '젖봉' 또는 '찌찌봉'이라 불린다는 제법 리얼한 느낌의 봉우리 하나.

 

 

현포항의 모습을 좀더 바싹 땡겨보고는, 저쯤에서 점심을 먹으면 되겠구나 가늠해보았다.

 

 

 

정말 향기가 그윽하던, 그리고 한번 손으로 훑고 나니 한참이나 손과 온몸에 향기가 배어있던 섬백리향. 이름도 참 이쁘다.

 

예림원, 특히 예림원 안쪽에 자리한 얼굴바위 전망대는 꼭 한번 올라가 보시길 권하고 싶다.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울릉도 성인봉에서 내려가는 길, 다시금 발아래 짙은 구름을 헤치는 나가는 길이다.

 

 

 

제법 가파른 하산길엔 나무도 눕고 바람보다 먼저 고사리(같은 것)들도 누웠다.

 

 

대체로 보자면 성인봉 끄트머리를 잡고 바싹 땡겨올린 원뿔 모양을 하고 있는 울릉도, 그 북쪽 사면에 움푹 패인

 

너른 분지가 바로 나리분지. 옛날부터 사람이 자리를 잡고 살았던 곳이 나리분지 쪽이라고 한다.

 

 

 

 

 

 

나리분지 중간쯤에서 만난 투막집. 울릉도 전통 가옥인 투막집은 저멀리 구름을 두른 채 뾰족한 봉우리들과 대치 중.

 

 

 

 

 

 

사실 그렇다. 어디서부터가 성인봉 등산로의 시작이고 끝인지, 어디서부터 성인봉이고 옆 봉우리인지 알기란 어렵다.

 

그저 길이 이어질 뿐.

 

 

제법 늦은 시간에 성인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했는데, 나리분지가 끝나도록 여전히 해가 중천이다.

 

어디에 묵겠단 계획은 없었지만 이렇게 된 거, 바다를 보기로 했다. 울릉도 남쪽 바다에서 시작했으니 이제 북쪽 바다로.

 

 

 

 

파꽃이 온통 피어있는 밭을 지나고 캠프장을 지나, 길을 조금 더듬으며 가다 문득 고개를 돌려 발견한 풍경.

 

이곳저것 집들에서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연기가 뭉게뭉게 모여서는 산 중턱에 구름으로 걸렸다.

 

 

그러고 나니 다시 오르막길. 생각해보니 여긴 나리'분지'. 분지를 빠져나가려면 다시 야트막하나마

 

고개를 하나 다시 넘어야 하는 거다. 그냥 여기에서 멈출까 3초쯤 생각하다가 그냥 계속 걸었다.

 

고개를 얼추 올라 돌아본 나리분지의 전경. 마을이랄 것도 없는 집 몇 채가 듬성하니 꽂혀 있는 초록빛 풀밭같은 곳.

 

그리고 내리막. 닳고 나면 재생되지 않는다는 도가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파르고 꼬불거리던 길.

 

그냥 한바퀴 빙글 돌아 전방낙법을 치고 나면 아랫목에 도달했음 좋겠다 싶도록 지치고 질리고 힘들던 걸음.

 

홍살문이 하나 갈림길에 서서 삿된 것들을 걸러내고.

 

산을 둥글둥글 타고 내려가는 길은 대체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지는 건지, 이쪽으로 가면 되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멀찍이 보이는 바다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만 믿고 계속 걷기.

 

해가 조금씩 가라앉는가 싶더니 가속이 붙었다. 어느새 어둠이 살라먹은 짙은 숲, 나무그늘, 그리고 비탈의 사면들.

 

 

조금 마음이 바빠지던 찰나, 길을 헤매거나 맴돌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지던 차에 문득 나타난 천부 마을.

 

 

이제야 안심하고 널 보낼 수 있을 듯 하여. 저물어가는 해를 잠시 구경해주며 아스팔트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가.

 

 

반나절만에 다시 만난 건물들이 반갑기도 하고, 그래봐야 울릉도의 조그마한 마을이라 아기자기하기도 하고.

 

 

'독도수호 중점학교'란 게 뭔지 모르겠지만, 독도의용대라도 양성하는 곳인지 뭔지. 여하간 자그마한 학교.

 

이 조그마한 마을에 내려서는 와중에 놀란 건, 헤아릴 수 있을 만큼의 건물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에 십자가가

 

네다섯 개나 꼽혀 있었던 모습. 그것도 하나같이 크고 높고 뾰족한. 음...

 

드디어 천부 도착. 다행히 여전히 밝은 중에 도착했다. 해가 가장 길다는 하지 다음날이라 재수가 좋았던 걸지도.

 

 

잠시 바닷가를 거닐다가 바다를 코앞에 낀 전망 좋고 파도소리 좋은 펜션에 절룩거리며 들어갔더니 맘좋은

 

주인아주머니가 우뭇가사리로 만든 냉콩국을 한 사발 내어주셨다. 어찌나 감사하고 맛있게 먹었던지.

 

금세 어둠이 나리고, 밥먹을 곳을 찾아 조금 마을을 헤집고는 부둣가 제방에 앉아 바람 쐬며 파도소리 듣다가 한장.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KBS중계소부터 울릉도 성인봉 오르는 길, 계획없이 일행없이, 또 정해진 숙소없이 가는 길이었는지라 그냥

 

내키는 대로 걷고 쉬고 걸었다. 초반에 가팔랐던 비탈길은 정말 쉬엄쉬엄 올랐고.

 

 

 

나무데크로 잘 꾸며진 길을 지나 구름다리를 출렁출렁, 그냥 얌전히 지나려다가 괜히 우다다 뛰어서 건너보기도 하고

 

다시 돌아와 잠시 앉았다가 누웠다가 온몸으로 그 출렁이는 진동을 맛보기도 하고.

 

 

고사리같은 양치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에선 바람이 일일이 그 조그마한 이파리들을 손잡아주는 걸 보았고.

 

 

안개가 슬슬 서리기 시작하는 울릉도 깊은 산속의 흐릿한 풍경.

 

 

 

 

어디선가 숲의 정령이 톡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런 풍경이 이어졌다.

 

 

그냥 아무 말없이, 가슴속 깊이 숲의 초록향을 들이마시며,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

 

 

나무들이 드릴처럼 윙윙 뿌리를 맹렬히 땅에다 대고 회전시켜 박아버린 느낌이다. 덕분에 좁다란 숲길마저 같이 휘감긴.

 

 

 

인적조차 없는 등산로. 쓰레기 하나 찾아볼 수 없이 깨끗하게 관리되는 숲길이어서 문득 현실감이 희박해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퍼뜩 현실에 발딛게 해줬던 건 저런 산악회들의 끄나풀, 그리고 살짝 거슬리던 쥐새끼들.

 

 * 울릉도 때아닌 ‘들쥐와의 전쟁’ (2012. 6. 21, 문화일보)

 

 

기사에 여러 차례 다뤄질 만큼 들쥐들이 창궐한 것도 사실인 거 같고, 고양이가 있는 민가나 마을이 아닌 천적이 없는

 

산으로 전부 올라와 사는 거 같긴 한데, 그래도 뭐..피리부는 사나이가 필요할 정도는 아니다. (하여간 쥐가 문제...)

 

 

그래도, 들쥐 한마리가 길 앞섶에서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는

 

울릉도에서 사는 검은비둘기가 푸드덕거리며 머리 위 나뭇가지를 박차고 도망가는 게 더 사람을 놀래킨다.

 

 

 

 

이런 정경에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을까. 그저 아슴프레하고 꿈결같던 풍경.

 

촉촉하게 젖은 공기에 오래 묵은 나무 향기와 흙내음이 가득 담겨있던.

 

 

 

 

그리고 성인봉을 900미터 남겨둔 지점. 도동에서 출발하면 성인봉까지 대충 4~5km정도 소요된다고 생각함 될 듯.

 

KBS중계소를 기점으로 해서도 거리가 별반 차이는 없을 듯.

 

 

 

그리고 초록빛 운무를 꿰뚫고 나려든 빛무리.

 

 

오히려 정상에 오르니 구름인지 안개인지 뿌옇던 시야가 말끔해졌다. 성인봉 중턱에 짙게 드리웠던 커튼을 뚫고 올랐다.

 

 

성인봉 정상의 표석.

 

 

울릉도를 에워싼 푸른 바다와 하얀 구름바다. 그리고 희뿌연 하늘.

 

울릉도의 듬성듬성한 봉우리들이 구름바다 위로 섬처럼 솟았다.

 

 

검은 비둘기가 날고, 온갖 산새들이 지저귀고, 그리고 구름은 잠시동안 지켜보는 와중에도 시시각각 물결친다.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KBS중계소를 지나 울릉도 성인봉으로 오르는 길, 갈수록 가팔라지는 계단이나 비탈길에 지치다가도

 

잠시 옆 나무에 털썩 몸을 부려놓고 있으면 평생 처음 맡아보는 짙고 진한,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숲향이 그득.

 

 

위로 올라가며 어느순간 희뿌연 안개 같은 구름이 사방을 가리웠다. 일년 중 대부분의 날들을 이렇게

 

구름으로 휘감고 있는 봉우리인지라 성스럽다 하여 성인봉이라 이름지었다던가.

 

뭔가 네이쳐 리퍼블릭 광고 같이 초록빛이 농염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광고를 찍기에 딱 맞춤한,

 

그런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 이런 게 어쩌면 깊은 숲이나 원시림에 대한 뿌리깊은 경외심을 자아내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숲향에 흠뻑 취해서 나무 사이를 뒤채며 내달리는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숲바람을 쐬노라면

 

금세 기운이 다시 회복되는 거다. 정말 취한 듯한 기분으로, 모세혈관 하나하나 깨어나는 기분으로.

 

 

그렇다고는 해도 몇 걸음 걷다가 이내 에라 모르겠다, 굳이 서둘러야 할 이유 따위 없으니 털썩.

 

오후 세네시쯤이어선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등산객들. 세상에 혼자 존재하는 느낌이다. 온갖 새소리들 빼고.

 

 

그렇게 쉬엄쉬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농밀하고 강렬한 숲향에 취하고 산바람에 희롱당하며 오르다가 문득.

 

어느 나무 등걸에 몸을 거의 뉘이고 있는데 불쑥 초록빛 운무를 뚫고 빛이 내렸다.

 

 

온통 희뿌옇고 어른어른한 풍경들 속에서 불쑥 땅바닥에까지 늘어뜨려진 햇살 몇 가닥.

 

 

 

 

 

아마도,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풍경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느닷없는 빛살이 내려 초록빛 운무와 짙은 숲향을

 

일렁이고는 마음까지 흔들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말았다.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사동항 앞의 몽돌해변. 돌들이 파도에 쓸려 뒤척이며 내는 소리가 하나하나 포개지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하모니.

 

 

초록빛 무성한 잡초사이로 점점이 붉은 꽃이 인상적으로 콕콕 박혀 있었다.

 

원래 울릉도의 전통가옥은 너와지붕을 얼기설기 엮은 투막집이었던가, 강원도 동부쪽에도 비슷했던 거 같은데

 

그 현대적인 형태랄까. 함석조각을 얼기설기 이어붙인 해변가의 집들. 사실 울릉도의 외딴 집들은 대개 이런 모습이었다.

 

 

도동으로 걷는 길, 어느 초등학교 앞을 지나는데 왠지 눈에 익은 풍경인 거 같기도 하고. 1박2일에 나왔던가.

 

울릉군의 상징은 오징어, 그리고 호박꽃.

 

 

해안선을 따라 드문드문 박혀있는 간첩잡는 건물. 그냥 하얀색 콘크리트 건물인데, 살짝 벙커처럼 생긴 채 낡아가는 중.

 

 

 

 

도동에 도착해서 본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함석 집들. 도로시와 함께 다녔다는 양철 나뭇꾼을 연상시키곤 하는 함석판.

 

생각보다 울릉도의 도로는 경사가 오르락내리락 가파르다. 아무래도 섬이란 게 바다 밖으로 삐쭉 튀어나온 산봉우리

 

같은 거니까 그렇겠지만, 걸어다니기에 편한 길은 분명 아니다.

 

울릉도 내에서 돌아다니는 차들, 특히 택시들은 전부 SUV라는 게 그런 이유일 거다. 워낙 꼬불꼬불한 길에다가

 

경사도 솔찮은, 포장이 되지 않은 길도 드문드문 있는 소금섞인 해풍이 심한 섬, 울릉도.

 

 

그런 탓에 곳곳에서 이런 케이블이 보인다. 가파른 언덕 위와 아래를 연결해서 새참이던 뭐던 자그마한 것들을

 

이동시킬 수 있는 케이블카. 사람이 타면 아마..기둥 뿌리가 뽑혀 나뒹굴지 싶지만 왠만한 무게는 견딜 거 같다.

 

 

이제 울릉중계소 푯말이 보인다. KBS중계소 등산로입구 안내판이 나왔으니, 그간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길을 혼자

 

걸어오며 제대로 가고 있는지 조금은 불안했던 마음이 씻겨내렸다.

 

 

충혼탑을 지나.

 

직사광선이 내리쬐이는 붉은 열매 한웅큼을 지나.

 

짙고 끈적한 구름이 산을 허리춤까지 집어삼킨 길을 향해 계속 걷는 길.

 

 

 그리고 '언론 자유 보장하라!' 라고 누군가 써놓은 KBS 울릉중계소. 저거 누가 썼을까. 누굴까ㅋㅋㅋ

 

 여기가 바로 'KBS 중계소' 구간의 기점, 성인봉 등산로의 공식 출발지점이다. 할머니가 약술과 얼음물을 팔고 계신.

 

 

 지금부터 '공식적으로' 성인봉 등산을 시작하려는데 옆에서는 아저씨가 흔치 않은 나무 전봇대를 등산하고 계시고.

 

 

여기서 천부까지..음..5시간 40분은 굉장히 넉넉하게 잡은 시간인 거다. 여행용 짐을 전부 챙기고, DSLR과

 

삼각대를 바리바리 싸짊어지고 밤새 운전하고 세시간반 배를 타고 이미 두세시간 걸었던 성인 남자가 걸린 시간.

 

이미 중계소 기점으로 내려다보이는 울릉도 도동쪽의 풍경. 울퉁불퉁 돋아난 근육질 산맥 사이로 폭 파묻힌 마을이다.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강원도 묵호항에서 울릉도로 가는 배편을 구하는 가장 쉬운 방법, 한 좌석만 챙기면 되는 싱글 여행자라면 언제고

 

그냥 인터넷을 통하거나 전화로 예매하면 내일이고 모레고 떠나는 배를 잡을 수 있는 것 같다. (http://www.daea.com/)

 

꼭 그렇지 않아도 사실 한 좌석 정도라면 그냥 여객선터미널에 가면 대충 그까이꺼 구할 수 있을지도.

 

아침 9시 배를 타기로 전화로 예약했는데, 티켓 창구가 8시부터 연다는 이야기에 아침을 챙겨먹으려 근처를 배회.

 

 

'아침식사 됩니다'란 간판을 따라 걷는 길에는 머리를 조심해야 하는 높이 1.7미터 짜리 터널을 지나고,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뚜껑 덮인 재래시장을 지날 즈음.

 

울릉도 떠나는 배를 아침저녁으로 보시면서도 여태 울릉도를 못 가보셨다는 아주머니가 생태찌개를 맛있게

 

끓여주시던 '향로식당'에서 든든히 아침을 먹고. 원래는 생선구이를 먹을까 했는데 세시간여 배를 타고 가려면

 

멀미를 조심해야 한다며 생태찌개를 권해주셨던 아주머니.

 

비행기 타는 만큼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배 역시 위험하기 때문일까. 주민번호와 비상연락처를 적는 승선표.

 

뭔 일이 생기면 '신원불상'의 사상자가 아니라 '홍길동(31세, 남)' 뭐 이정도로 식별은 가능하겠구나 싶다.

 

꾸역꾸역 배를 타는 사람들. 대개가 단체관광객들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아주머니들인지 사투리도 각양각색.

 

이상하게도 묵호에서 울릉도로 떠나는 배는 파도가 심한 편이라 한다. 나올 때는 잔잔한 편인데, 아무래도 조수 탓인 듯.

 

배를 타고 한시간이 지나기 전, 양손으로 봉지를 쥐고 배 바닥 곳곳에서 힘든 작업을 펼치다가 널부러진 어르신들.

 

(선창으로 나갈 수 없는 밀폐형 고속정이어서 배 안 가득한 냄새와 소리는..가히 지옥도의 한장면을 방불케했다.)

 

그리고 세시간 반. 시퍼런 물결이 넘실거리던 망망대해 저쪽에서부터 삽시간에 거대해지는 섬 하나. 꽤나 크다.

2012년 6월부터 강원도 묵호에서 울릉도로 들어가는 배는 도동항이 아니라 사동항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도동쪽의 번화한 상권을 형성한 상인분들의 반대가 없지 않다고는 하는데, 사동항은 도동항에 비기면-굳이 비기지 않아도-

 

완전한 허허벌판. 이제 항구가 본격적으로 건설되고 상권이 조성되면 또 금세 이런 모습은 사라지겠지만.

 

 

 

울릉도에 와서 가장 먼저 눈에 띄인 건 오징어가 매달려 있는 가로등.

 

아무 생각없이 섬을 시계방향으로 돌아볼까, 하고 무작정 한 삼십분 걷다가 그래도 기운 빵빵한 첫날인데

 

성인봉을 쉬엄쉬엄 오르는 게 낫겠다 싶어서 다시 뒤로 돌아 걷기 시작한 기점. 성인봉을 만만히 봤었던 거다.

 

그렇게 다시 사동항을 지나가는 길에, 아까의 배가 한껏 토해놓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대형버스와 봉고를 타고 떠나버린 한적한 풍경을 다시 한 컷.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한없이 걷고 싶은데 어디까지 얼마나 걸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는, 섬이 답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한뼘만한 땅덩이, 울릉도에서 2박 3일동안 정신나간 도보여행을 하고 싶을 때 추천하는 일정.

 

눈뜨면 걷고, 어두워지면 멈췄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건 삼일차, 남양에서 저동까지 움직이는 데까지만 한 번.

 

 

제주도 올레길이 조금은 편하고 아기자기한 코스라면, 울릉도 도보여행길은 좀더 거칠고 날것의 느낌.

 

대부분 성인봉 등반만 하고 마는 단체 등산객이거나 버스로 찍고 찍고 다니는 단체 여행객들만 찾는 곳이니만치

 

하루종일 걸어도 만나는 사람들은 손 꼽을 만큼인 곳. '둘레길'도 말만 둘레길이지 그냥 버려진 옛길이랄까.

 

 

미친 짓 한번 하고 싶을 때, 러닝-하이가 아닌 워킹-하이(Walking-high)를 맛보고 싶을 때 한번쯤,

 

내키는 대로 한없이 걷다가 바다가 나오면 발길을 틀면 그뿐이었다. 딱히 정해진 일정도 계획도 없었던 코스.

 

그렇게 3일동안 한걸음씩 꾹꾹 내딛었던 발걸음들을 잇고 나니 저런 길들이 그려졌다. 시속 4km의 세상.

 

 

 

ㅇ 1일차 : 사동항 - 성인봉(KBS중계소 코스) - 천부

 

 

(03:00 서울 출발, 05:30 추암 촛대바위 도착)

 

07:00 묵호여객선터미널 도착

 

07:00~08:00 아침식사

 

09:00 묵호항 출발 (by 씨플라워호)

 

12:30 사동항 도착

 

14:30 KBS중계소(성인봉 등산코스 출발지) 도착

 

17:00 성인봉 도착

 

18:30 나리분지 도착(성인봉 등산코스 도착지)

 

20:00 천부리 도착

 

20:00~21:00 저녁식사 (울릉도식 백반정식)

 

 

 

 

 

 

 

 

ㅇ 2일차 : 천부 - 현포 - 태하 - 둘레길2코스 - 구암 - 남양

 

 

10:00 숙소 출발

 

10:30~12:00 예림원(문자조각공원) 체류

 

13:00 현포 도착

 

13:00~14:00 점심식사 (울릉도식 백반정식)

 

15:00 태하항 도착

 

15:30~16:20 태하등대(모노레일) 체류

 

16:40 태하삼거리(울릉둘레길 2코스 시작점) 도착

 

18:30 구암 도착

 

19:00 남양 일몰전망대 도착

 

19:30~20:30 저녁식사 (약소숯불구이)

 

 

 

 

 

 

 

 

 

ㅇ 3일차 : 저동항 - 행남등대 -  도동항 - 독도전망대 - 사동항

 

 

10:00~10:30 아침식사 (따개비 칼국수)

 

10:40~11:20  저동항 도착 (by BUS)

 

12:00 소라계단 도착

 

12:30 행남등대 도착, 행남해안산책로 시작

 

14:00 도동항 도착 (행남해안산책로)

 

14:30 도동약수공원 도착

 

15:00 독도전망대 도착 (케이블카 왕복)

 

17:00 사동항 도착

 

17:30 사동항 출발 (by 씨플라워호)

 

21:00 묵호항 도착 

 

23:40 서울 도착

 

 

 

 

 

 

 

 

 

 

 

 

 

 

 

 


#1. 

운동장에 그어진 뱀처럼 꼬불거리는 하얀 선을 따라 줄을 서서 구호용품을 배급받는 일본인들.

사재기도 없었고, 치료를 받을 때도 더 급한 다른 사람은 없었는지 물어보며, 일사분란하고

차분한 대응을 하고 있다는 거다. 그에 더해 몇몇 사람들이 쓰나미가 오는데 막판까지 안내

방송을 하며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거나, 녹아내리는 원전을 막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원전 속으로 들어갔다거나. 일본인에 대한 미담은 이어진다. 이상할 정도로.


#2. 

일종의 미안함을 동반한 반작용인지도 모른다. 일본에 지진이 나자 한국 언론은 계산기를

두드려 국내 경제의 호재임을 입증하려 애쓰기도 했고, 정치인들은 한국에 산다는 게 다행이라

거침없이 이야기했으며, 무엇보다 일부 정신병자는 '하느님의 뜻'을 운운하며 천벌이라 했다.

다른 사람들도 나을 건 없었다. 이 기회에 일본을 꺽자느니, 일본이 그간 역사적으로 가해온

범죄행위에 대한 응징이라느니, 격하게는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느니. 


#3.

문득 부끄러워진 걸까. 태극무늬를 앞세워 따끈따끈한 감동을 전하자는 쓰레기같은 말이

터져나오고, 수천수만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앞에서 비로소 인간이 보인걸까. 위안부

할머니들의 '국경을 넘어 생명은 소중하다'는 당연한 이야기가 새삼스러워 보일 지경이 되서야.

그에 더해 '아이티' 때와는 다르다느니, '명성높은 외국 언론'들이 일본의 겸양하는 멘탈리티를

부각하고 일사분란한 분위기를 주목하니 왠지 '트렌드'가 그게 아닌가보다 생각한 건 아닐까.


#4.

근거가 있다. 극단에서 극단으로 휘휘 내둘리는 이 나라의 언론 혹은 여론은 이미 숱한 사례를

배출해 왔다. 이번에 그 자극적인 '장자연 편지'에 대한 들불같은 분노는 어떤가. 이미 팩트는

익히 드러났던 사안임에도 그 야설같은 스토리에 반응해서는, 필적 조사 등 객관적인 절차 이전에

불끈 달아올라 버렸다. 그 이전 '중국 총영사 정보 유출'에 대해서는 또 어떤가. 희대의 스파이인

양 묘사되다가, 막판에는 초라한 생계형 브로커의 모습만 남지 않았나.


#5.

대개 실상은 극단과 극단 사이에 있기 마련이다. 팩트는 일본인들이 그렇게 전혀 새로운 질높은

인간성을 보였노라는 격찬과 그들의 '깃발을 따르는' 국민성 및 문화적 특성 때문이라는 질시어린

폄하 사이에 어딘가 존재할 거다. 한점 흔들림없이 사재기도 없고 질서도 잘만 지킨다는 차분한

일본 국민이라는 이미지는 상당부분 자연재해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지침을 마련해 둔 것에 기대어

있었겠지만, 사태가 장기화되고 심각해지면서 조금씩 균열이 나타는 것처럼 보인다. 카트리나때

미국인들은 어땠었는지 돌이켜보면, 지금의 상황이 딱히 예외적이란 느낌은 안 든다.


#6.

문제는, 그 와중에 "재앙 속에서도 빛나는 성숙한 시민정신"이라느니, 저런 게 바로 일본의

저력이라느니 하는 쎈 타이틀들이 은근슬쩍 주입하려는 듯한 고정관념이다. '시민'이 갖춰야
 
할 덕목 중의 그런 차분함과 이타심도 있겠지만, 과연 일본사회가 권리의식, 정치적 민주화,

사회경제적 민주화 따위에 눈뜨인 '성숙한 시민정신'을 갖춘 각성된 시민사회일까. 극단적이지만

그런 표현들이 숨긴 속마음은 이런 거 아닐까. 김문수가 말했듯, "일본 국민은 일이 터져도

대통령 탓을 하지 않는다". 조용하고 다루기 쉽다. 그걸 배우라는 건 아닌가.


#7.

결론. 일본인들이 지금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저토록 차분하게 대처하는 걸 신화화하거나

신비화해서는 안 된다.
평소의 교육과 심적 대비, 그에 더한 사회적, 문화적 특성이 발현된

결과이지 무슨 새로운 인간형이 출현했다거나, 우리보다 멀찍이 앞선 '선진'시민이라거나,

우리가 배워야 할 '시민의식'의 궁극이 저런 모습이라거나 식의 이야기로 홀리는 건 곤란하다.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인식이 사춘기 소녀의 마음처럼 냉소와 찬탄으로 휙휙 바뀌는 건 결국

'질투'라는 감정에 사로잡힌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성숙하려면 아직 멀었다.


* 이 글을 쓴 다음날, 아니나다를까 치졸한 비방이 시작됐다.(중앙일보 편집인, 2011/3/16)

"그 풍경은 우리 시민의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천재지변 탓에 비행기 출발이 늦어도 창구에 몰려가 항의하는 가벼움과 어이없음, 준법 대신 목소리 큰 사람이 행세하는 떼 법, 끼어들기 주행, 남 탓하기의 풍토를 부끄럽게 한다. 우리 부모 세대들은 그렇지 않았다. 자기 탓, 자기 책임부터 먼저 생각했고 염치를 지키려 했다. 그들은 한강의 기적과 국가적 풍모를 만든 세대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 남 탓하기와 떼 법의 억지와 선동의 싸구려 사회 풍토가 득세했다. 일본발 문화 충격은 그 저급함을 퇴출시키는 자극이 될 것이다."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이어 정권마다 반복되던 독도 문제가 곧바로 불거져 나왔다. "2MB 대통령이 독도를 일본에 팔아넘기려 한다"는 '독도 괴담'을 방불케 하는 <요미우리>의 자극적인 보도 내용과 사안 자체의 심각성은 독도 문제를 금세 여론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또, 대북문제에서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정부는 이번만큼은 '건수'를 잡은 듯 마음껏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독도 괴담'의 주인공인 만큼 그 혐의를 벗기 위해 열심인 모습이 꽤나 가상하다. 하지만 역시 '2MB'는 역시 '2MB'다.
 
  청와대는 <요미우리>와 일본 정부에 한국의 내분을 획책한다며 비난했다. 동시에 독도 문제로 맹공을 퍼붓는 야당에 대해서도 '자국 정부보다 일본의 우파 신문을 믿고 대통령을 공격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자국민보다 극우 언론을 믿는 정부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2MB를 제외하곤 누구도 완벽하지는 않으니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같은 날 나온 다른 보도를 보자. 2MB 대통령은 지난 15일 부산시 업무보고 및 부산 발전전략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외환은 어쩔 수 없지만 내우(內憂)는 하나가 돼 극복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제시된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고 초점을 잠시 '공화국 북반부'로 돌려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 정부와 언론의 북한 인권문제 제기에 대해 "지도부와 인민을 분열시키려는 음해공작이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북한의 식량위기는 미제의 고립 압살 책동 때문이니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전 인민의 단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북한에 핵 문제를 제기하는 남한의 '동족'에 대해서는 모두 '미제의 앞잡이'로 매도하고 있다.
 
  극적인 비교를 위해 다소 과장을 하기는 했지만, 기본 구도가 상당히 유사하다. 외부의 적과 어려운 환경을 설정하고 그것을 빌미로 내부의 총화단결을 호소(라고 쓰고 협박이라고 읽는다)하는 수법은 나치 이래로 전체주의 세력들의 고전적 수법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아군'의 악덕을 비판하는 내부 구성원들은 '적군'을 이롭게 하는 반역자로 간주되어 숙청 대상이 된다. 일본 재단의 자금을 지원받는 낙성대 연구소-노파심에서 말하자면 필자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친일적'이기 때문에 매도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보다 일본 언론을 인용해 대통령을 공격하는 민주당이 '국가의 반역자'에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사실 이 수법을 가장 성공적으로 구사한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취임 초기부터 반대세력에게 '반미 민족주의 진보'로 낙인찍힌 노무현 대통령은 강경한 대일발언과 자주국방이라는 명분을 통해 대중의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했다. 그는 반대세력이 자신에게 붙인 딱지를 오히려 정치적 자산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그는 참여정부 때 신자유주의적 사회질서를 전면적으로 도입해 사회 각 계급을 재편했고, 이에 따른 불만은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억압되었다. '국익'이라는 단어가 대부분의 정치적 논란을 종결짓고, 잘못을 전가하는 보도가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반대자들은 '친일세력'으로 규정되어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평소 민족의 해체를 주장해 대표적 '친일세력'으로 인식되는 '뉴라이트' 세력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2MB 정권의 총화단결 호소는 참여정부가 자극한 민족주의 정서와 맥락도 다르고, 효과도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극한 민족주의 역시 '선진 국가'를 위한 국가주의적 프로그램의 외피에 불과하다는 면에서 2MB의 노골적 국가주의와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정치에서 포장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2MB의 딜레마는 자신은 끝없이 국가주의를 강조하지만, 이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종족담론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민족주의와 불협화음을 일으킨다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MB 정권은 국가주의를 향한 질주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기세다. 정부는 독도 문제에 대해 신중한 대응을 주문-금강산 문제에 대한 쌍팔년도 식 발언을 보자면 특별히 성숙한 정세판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념적 편견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하면서도 대내적으로는 "일본의 언론을 보라", "여야도 없고, 진보-보수도 없고 모두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우리는 본질적이지도 않은 것으로 안에다 총질을 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와 같이 노골적으로 총화단결을 호소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신중한 대응을 외치면서도 마치 외부의 적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일 것인 양 대내적 단결을 호소하는 것은 다소 형용 모순 같다. 과연 무엇을 위한 총화단결일까?
 
  이러한 모순된 국가주의 드라이브가 계속된다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두 얼굴이 서로 대립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MB 정권은 '우리 민족끼리'에 대한 반명제로서의 친일, 친미적 보수 세력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종족담론을 끌어들일 수 없다. 또 2MB 정권은 참여정부의 '황우석 현상' 같은 국가지도자와 민족의 구세주가 일치하는 통일된 내셔널리즘도 확보할 수 없다. 그렇지만 2MB의 대외정책 실패와 일본의 우경화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내의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고 그 세력을 결집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 세력들은 2MB의 우군보다는 대항세력이 될 공산이 크다.
 
  촛불이 시작된 이래 '민주-반민주'의 구도로 나타났던 대립구도가 10년을 더 후퇴해 '매국노-민족'의 구도로 전환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런 구도는 한일협정 반대시위를 주도했던 2MB 자신이 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상당부분 위험한 조짐이 보인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독도 관광 붐이 일어나고, 독도 관련 영화가 개봉되고, 독도 관련 법안들이 무더기로 발의되는 '독도 마케팅'은 매우 우려스럽다. 이런 경향이 지속된다면 촛불시위에서 다양한 형태로 막연하게 표출된 내셔널리즘은 독도라는 구체적 대상을 만나 본격적으로 발현될 것이다.
 
  문제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 구도는 양자가 서로를 '반국가 세력', '매국노'로 규정하는 극한의 대립 속에서 양자를 포괄하는 내셔널리즘 자체의 상승작용을 유도하며, 이렇게 강화된 내셔널리즘으로는 어느 쪽이 승리하든 대립의 발단이 된 내우외환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결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아니,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데에 일조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데올로기에 갇힌 대외정책의 막장은 부시 행정부의 지지율이, 국가 혹은 민족의 이름으로 호소된 총화단결의 끝은 계급지배의 강화로 귀결된, 레이거노믹스의 파탄이 이미 증명해주고 있다.
 
  아마 앞으로 2MB 정부가 무엇을 하든 그 태생적 한계와 특유의 촌스러움으로 인해 단결된 국민의 동원에는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는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가 아닌, 앞에서 말했다시피 국가주의를 내세우며 억압하는 지배블록에 대한 도전연합의 저항이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전선이 내셔널리즘 내에서 형성되는 경우이다. 이 상황이야말로 정부가 주권의 두 요소인 대외적 자율성-사실 2MB 정권 하에서는 이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과 대내적 수행력 모두를 상실하는 순간이며 대항세력마저 내용물이 다를 뿐 형태는 같기에 그 미래마저 기약할 수 없는 캄캄한 상황일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요구되는 자세는 각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정부는 외교문제를 빌미로 주제넘게 시민사회에 대해 윽박지르는 것을 중단하고 본연의 임무인 외교에 충실하게 임하고, 시민들 역시 독도관광 따위의 쇼에 열광하기보다는 정부의 외교정책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의견을 표출해야 한다. 2MB 외교정책의 문제점은 예전부터 수없이 지적되어 왔지만 그것을 방치한 건 우리들 자신이다. 사실 우리가 일장기를 태운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본 정부의 행동을 바꿀 수는 없는 자위에 불과하다는 것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독도 관광 한번으로 숭고를 체험하기에는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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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매국노 대 민족'의 구도로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는 진즉부터 하고 있었지만-촛불시위에 태극기가 나오고 미국에 대한 불명확한 입장 속에 민족주의적 색채가 덧대어지면서-독도 문제 이후 더욱 심각해져버린 것 같다.
그런 구도로 빠져버려 민족주의 담론내로 포섭되는 순간, 한국이나 동아시아 전체에 상당한 부담이 되지 않을까.

일본 정부가 중학교 사회과 지도요령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넣겠다고 한다.

MB의 '실용노선' 외교가 결국 거덜나고 있다는 또 하나의 표징이다. 북-미 관계가 호전되는 상황에서 냉전적

대북강경정책은 아무 성과도 얻을 수 없었으며, 이제 쌀을 주니 직접대화를 하니 부랴부랴 수습에 나서보지만

사실상 남-북간 대화채널은 모두 끊어진 상태다. 미국과의 관계 '회복'을 내세웠지만 이 역시도 성마르고

아마추어적인 접근으로 인해 쇠고기 문제, FTA 문제..뭐 하나 제대로 해결하고 있지 못하며 MB 정권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신뢰도마저 땅에 떨어졌다. 중국은 '친미정권'인 MB정권을 잔뜩 경계하며 북한포섭하기에

발벗고 나섰고, 일본은 준것없이 '과거는 씻어버리자'는 선언을 받아들고는 독도를 내놓으란다. 더하자면,

자원외교랍시고 중동지역의 나라들을 순방하고 각종 경로를 통해 경제협력을 강화한다고는 하지만, 실무적으로

얼마나 그 나라들과 가까워지고 전략적으로 서로의 가치를 제고시키는지는 잘 모르겠다.



막말로 그렇다. 독도가 '한국'이란 나라의 땅이던, '일본'이라는 나라의 땅이던, 나와는 상관없다.

땅 한조각 갖지 못한 내게 독도같은 '바위투성이 섬', 혹은 '갈매기들이 똥싸고 가는 섬'이 어느 국가로 귀속되던

크게 괘념할 일은 아닌 것이다. 독도가 우리 땅이란 걸 걸고 넘어진 일본은 물론 조갑제가 말한대로

'미친놈'이긴 하다. 조갑제에 동의할 때도 있다니 놀랐지만...그는 냉정하고 당당한, 그치만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고, 나 역시도 일정부분 동의한다. 다만 나는 독도문제에 대해 감정적으로 격발되는 사람들의

'민족주의적이고 혹은 국가주의적인 반응' 자체가 염려스러우며, 독도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모르겠다.



중요하다는 가치판단은 해당 시점에 이슈가 되는 다른 여러 문제들, 예컨대 서울시의회의 전례없는 수뢰사건,

광우병 관련 정부지정 우려식품이 680여개에 달한다는 보도, 언론에 대한 정부의 재갈물리기, 금강산 피격 사건,

쇠고기협상 국정조사, 그리고 일상적이지만 더욱 중요할 수 있는 비정규직 문제,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들

말이다. 당장 독도를 일본이 어쩌겠다는 것도 아니고, 당장 일반인들...국민들이 나서서 어쩐다고 될 문제도

아닌 그야말로 국가간의 문제인 거다. 김종필은 폭파할까, 했다가 누구는 못준다 했다가, 일본총리는 달라고

했다가 조용했다가..뭐 그런 식으로, 그저 양국 고위 정치권력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하며

탁구치듯 핑, 퐁 하고 왔다갔다 하는 문제였던 게 여태까지의 진행 사정이다. 그러한 그들만의 리그에 힘을

보태기 위해 장식되는 민족주의적 수사들과 요란하게 치뤄지는 각종 이벤트들로 인해, 가뜩이나 MB 때문에

피곤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느새 '국민'으로 호명되고 '피끓는 독도지킴이'로 동원되는 것 뿐이다.



독도를 넘겨줘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고작해야 민족적 감수성만을 자극할 뿐인 땅덩이 문제에, 온나라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아우성칠 일인가 싶다는 거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독도의 경제적 효과까지 감안해서

분노하는 것 같지도 않다. 독도를 영유함으로 인해 얻게 되는 넓은 영해와 EEZ, 혹은 대륙붕에서 어로 활동이나

기타 광물자원을 채취하는 등 잠재적인 가치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과 그로 인한 내 주머니

속사정이 조금은 풍족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먼 일이다.



역사적으로 누구 땅이었다느니, 고지도에 기재되어 있다느니, 다 좋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근대국가로

틀지워지기 전의 사람들이 어떻게 세계를 인식했는지, 근대국가의 '국민'으로 호명되는 것이 어떠한 효과를

낳는지를 되돌아보는 기회일 때 더욱 값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느새 위험한 수준으로 넘실대는

한국의 민족주의, 혹은 우석훈이 말한바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경계하고 그에 저항하는 목소리들을 키워내는

첩경일 테다.



백두산에서, 독도에서 태극기 흔든다고 대체 해결되는 게 뭔가. 게다가 민족사관이랍시고 반만년 역사에 금칠을

해서 '한단고기'네 뭐네 인류의 시조이자 선택받은 민족이라 주장해서 해결되는 게 뭔가.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를 고수해서 우리가 얻는 건 뭔가. 그 모든 것들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동체를 다방면으로

풍요롭게 하고 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기 위한 도구로 기능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이다. 꼬리에 달라붙은 일부 정치권력자가 온국민을 바보로 만들어 분탕질치는 꼴이다.

민족주의란 게 그렇게 써먹혀 왔고, 독도가 그렇게 써먹혀 왔다.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대응을 지켜보면 될 일이다. 일본에 대고 삿대질할 일이 아니라, 정작 해야 할 일은 그렇게

외교를 말아먹는 MB에 대한 규탄과 끈질긴 저항. 포커스는 '독도'가 아니라 '외교'로, '민족'을 찾을 게 아니라

'사람'으로 맞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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