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의 풍경은 골목길 구석까지 샅샅이 훑어볼 수 있게 되었다지만, 우리 동네의 오래 전 풍경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거다. 서울 삼성역 일대의 풍경 역시 80년대까지만 해도 비가 조금만 오면 물웅덩이가

사방에 포탄자국처럼 생겨나는 '깡촌'이었다던가.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장소에 봉은사는 그대로 있어서 그걸 기준삼아 대충 코엑스는 어디, 트레이드타워는 어디,

아티움은 어디, 한전 건물은 어디 등등 위치를 잡아볼 수가 있다. 어둠의 경로를 통해 얻어낸 삼십년 전 항공사진,

그러고 보면 참 순식간에 변했다.

삼십년 전, 정확히는 1982년에 국제무역박람회장을 준비했던 장소다. 뒤로 보이는 숲속 한옥이 바로 봉은사.

사진의 발색이 살짝 희미해지고 바랜 듯한 느낌이어서 그런지 봄날 아지랑이처럼 아련하다.

80년대 초만 해도 칼라사진과 흑백사진이 혼용되던 시기였나보다. 사진 오른쪽 쯤에는 타이어 모양으로 생긴

종합운동장이 세워질 테지만 아직은.

저 너머 보이는 숲은 선릉. 아마도 좀더 이전에는 이 근방이 모두 저렇게 숲이었을 텐데, 야금야금 땅따먹기

해서는 지금 저만큼 남을 걸 테다. 왼쪽으로 쭉 올라가는 테헤란로는 그냥, 신작로 하나 덜렁 난 느낌.

88년에 삼성역 옆에 들어차는 종합무역센터 신축 현장. 54층짜리 무역센터랑 코엑스, 현대백화점, 인터콘호텔,

도심공항터미널 등이 한 곳에 집결하게 된 곳이다. 이곳에 그런 고층 건물이 들어서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믿거나 말거나라지만, 88년 서울올림픽 때 종합운동장 전경을 전세계에 생중계로 내보낼 때 뒷배경이 너무

허해 보인다는 '쩌~ 위'의 지시가 있었다나.

봉은사 꽤나 뒤숭숭했겠지 싶다. 이런 커다란 공사장이 코 앞에서 온갖 소음을 내며 쉼없이 돌아갔을 텐데.

그리고 2010년. 현재의 삼성역 인근 전경이 찍힌 항공사진이다. 상전벽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지만

정말, 삼십년도 채 안되었는데 논밭이 빌딩숲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래도 봉은사와 선릉이 녹색벨트처럼 단단히

매여 있어서 다행이지 싶다. 누군가 백투더 퓨처했을 때 알아보기 쉬운 징표들.

서울이라고 전부 고층건물이 즐비하고 끝없는 마천루를 가진 건 아니어서, 조금만 시 변두리로 나가도 굉장히

낯선 풍광에 당황할 때가 있다. 신작로 하나 덜렁 났었던 테헤란로 인근은 그래도, 가장 '국제도시' 서울의

이미지에 값하는 풍경인 거 같다. 고작 한세대, 삼십년동안 이렇게까지 극적으로 풍광이 바뀌어버린 동네라니,

압축적으로 달려온 한국의 경제발전상을 실감케 하는 사진들이다.





삼성동 트레이드타워 후문밖에는 자그마한 유리 피라밋이 있다. 이 유리 피라밋은 코엑스몰의 중심부 푸드코트의

채광창 역할을 하기도 하고, 도심공항터미널-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현대백화점-트레이드타워-코엑스 건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휴식공간의 볼거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말갛게 하늘과 구름이 비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마치 예술작품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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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걸 본 누구라도 다음순간 떠올리게 되는 건, 루브르 박물관의 유명한 유리 피라밋일 게다. 파리땅을

밟아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불문하고 영화속에서든, 티비 속에서든, 하다못해 다른 블로그 속에서든 이미

눈에 익을 대로 익어버린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밋.

규모면에서 따져도 루브르의 그것이 서울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솔직히 코엑스몰의 유리 피라밋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도 않은 귀여운 소품에 불과한 거다. 그리고 구조물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조명시설 같은 백업 면에서

루브르의 유리 피라밋은 그야말로 서울의 남대문 같은-어쩌면 그 이상의-랜드 마크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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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은, 이 역시도 오리지널은 아니었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따서 워싱턴 모뉴먼트가 만들어졌듯,

이집트의 피라밋을 따서 프랑스의 유리 피라밋이 만들어진 거다. 2004년 이집트에 갔을 때..

"쿠푸왕의 대피라미드에 들어가서 좁은 통로를 기어올라가 맞았던 그 사각형의 반듯한 무덤실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한가운데 있던 크다란 석관에 들어가 누워보는 특혜를 얻은 것도 정말 색다른 체험이었고. 수십만개의

돌덩이로 짜낸 속이 꽉 차있으면서 정교한 터널과 네모반듯한 방이 있는 그 기묘함. 그 한가운데에 놓인 석실에

누워 잠들만한 사람은, 어떠한 세계를 머리속에 품고 있었을까. 피라미드를 '등산'하는 것도 꽤나 인기있는

익스트림스포츠였다고 해서 나도 꼭 해볼라 그랬는데, 더이상 가능할 법하지가 않다. 낙타타고 있는 경찰이

50미터마다 배치되어 있어서...누군가 떨어져죽은 이후로 그랬다더군. 난 안 죽고 올라갈 수 있는데.ㅋㅋ"

내게 피라미드 내 석관에 눕도록 종용하곤 박시쉬를 요구했던 안내인 아저씨에겐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물경 오천년전쯤 지어졌단 그 피라미드, 내 생각엔 스핑크스는 덤이다. 첨에는 맨들맨들 크리스탈같이 이뻤던

연분홍빛 '건축물'이었던 피라미드였다지만, 이젠 그 맨 모습이 거칠거칠 보이면서..뭐랄까, 오천년쯤 지나면

인공의 것도 어떤 경지에 이르는 거 같다. 자연..이랄 경지.ㅋ 피라밋이 눈에 잔뜩 찼다 싶을 때까지 보면서,

지치도록 걸어돌아다녔지만 암만봐도 이건 진짜다.

이래서, 피라밋을 보기전엔 이집트를 말하지 말라 했던 게다.


어쨌든, 파리 여행을 앞두고 여행준비에 여러모로 들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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