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대한 로망이 늘 있었다. 제주도처럼 너무 커서 육지에 사는 것과 별반 느낌이 다름없는 거 말고-제주도가 


섬이라면 왠지 호주도 섬이고 유라시아 대륙도 섬이라고 해도 별로 억지스럽지 않은 것 같달까-섬 끝에 서면 섬의 


반대편 끝이 보이는 그런 작은 섬에 머물고 싶단 생각. 울릉도가 그랬고 그보다 더 작게는 가파도가 그랬으며


승봉도 역시 그런 섬이었던 셈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자월도, 이작도를 거쳐 승봉도까지 닿는 뱃길은 대충 한시간. 새로 제작한 게 틀림없어 보이는


구명조끼 입는 방법에 대한 동영상을 관람하고 잠시 바다구경을 하고 나면 금세 닿는 거리지만, 바다를 사이에 둔


덕분에 분위기며 풍경이 확 다르다. 


피서철을 지난 때문이겠지만 거의 보이지 않는 여행자들, 그저 곳곳에 점점이 박힌 듯한 현지 주민분들.


숙소는 되는대로 도착해서 구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왔던 터라 무작정 선착장에서부터 바다를 따라 걸었다. 


내키는 풍광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를 잡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멋진 바닷가를 앞에 품은 곳에


맘씨 좋은 아저씨가 살고 계신 민박집이 있었다.


(라면에 소주를 함께 기울이며 이런저런 좋은 말씀 해주신 아저씨, 감사합니다~*)



내가 도착한 날 아침에 들였다던 따끈한 강아지. 어미품에서 떨어진 충격이 커서인지 엄청나게 낑낑거리던


녀석의 이름은 개똥이.



그리고 나비.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귀찮아하지도 않던 순둥이 개냥이의 이름치곤 다소 새초롬하다지만,


눈빛의 요염함이 뒤지지 않으니 인정.



민박집 앞마당의 낡고 닳은 파라솔, 저 그늘에 의지해서 책도 읽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참 좋았던 곳.


그리고 설렁설렁 돌아봐도 세네시간이면 한바퀴를 돌아본다는 승봉도 산책에 나섰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띄인 화장실.


남자화장실은 도약하는 돌고래, 여자화장실은 해바라기(?) 그림을 붙여둔 게 뭔가 의미심장하다.



확실히 서해바다는 갯벌이다. 물이 쓸려나간 전장에 남은 흔적과 잔해를 헤집고 다니는 자잘한 생명체들.


그 와중에는 제법 우아하게 뒤뚱거리며 이런 자국을 남기는 녀석들도 있고.




갯벌길을 따라 한바퀴 돌기에는 중간중간 바닷물로 끊긴 구간도 있고 제법 난코스여서 다시 섬으로 상륙. 



승봉도 삼림욕장 안내도. 피톤치드를 듬뿍담뿍 흡수하실 수 있으시단다.



무성한 녹음, 그리고 잘 닦였지만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찻길.




김인지 해초인지 뭔가 양식을 위한 구조물이 설치된 해변가를 따라 섬의 끄트머리, 나무가 많이 나서 목섬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섬으로 설렁설렁.



나무데크로 길도 잘 갖춰져 있고, 걷는 와중에 쉼없이 우측으로 지나는 거대한 고래같은 화물선들 보는 재미도 쏠쏠.




목섬 역시 썰물 때는 이렇게 육지랑 이어진 채, 밀물 때나 조금 바닷물로 가로막혀서 섬다운 모양새가 되는 곳이다.


조그마한 섬이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고 길을 벗어나 아무렇게나 섬의 반대편으로 접어든 참인데..숲이 우거지고


풀떼기가 무성하게 자란 곳에는 역시 함부로 발딛는 게 아니다. 미아되서 해경에 신고할 뻔.


이름붙여진 돌들에서 그 이름에 걸맞는 형상을 찾아내기란 또다른 수수께끼를 푸는 기분이다. 차라리 그냥 내멋대로


딱 보여진 형상으로 새롭게 이름을 붙여주는 게 좀더 유쾌한 수수께끼일 거 같지만. 대체 촛대바위가 무슨 돌에 


붙은 이름인지 몰라 사방을 헤매다가 포기, 내눈엔 그저 황량하고 거친 돌들 뿐인데. 


굳이 이름붙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가 솔직한 심정이겠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움직이던 프로 사진기사 아저씨 일행과 나. 전날 내린 폭설 덕에 한사람 걷기도 쉽지 않은 외길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서로의 위치를 빌려주기도 하고, 서로의 카메라가 향한 곳을 흘깃거리기도 하고.

 

 

 

그리고 잠시 한눈 판 사이, 나는 더이상의 접근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돌아섰던 그 곳을 훌쩍 넘어가버린 프로 아저씨. 엄청 불어난

 

물 때문에 통나무로 만들어진 산책로가 거의 수면 아래로 잠기다시피 했던 길인데, 저 길 너머에 플리트비체의 대폭포인 벨리키폭포가

 

있는 거다. 아마도 이렇게 한 걸음 떼는지 마는지가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일지도.

 

산책로 아래로는 바로 또 낭떠러지 폭포가 이어져 있어서 물소리도 귓전을 때리고, 사방에서 날아다니는 물방울도 온몸을 때리고.

 

 

급물살은 찰박거리며 쉼없이 산책로를 들썩여대고, 폭포수의 맹렬한 소음과 진동은 몸 전체로 전해지는 상황. 이미 신발이고 옷은

 

흠뻑 젖어버렸고, 그저 카메라나 놓치지 않도록 꼭 쥐고 있는 것이 고작인 상황.

 

그래도 역시나, 이쪽에서 바라본 풍경들도 하나같이 숨을 멎게 만들 만한 그런, 절경이다.

 

 

멀찍이서 보이던 눈꽃들의 세세한 디테일과 원근감이 하나씩 드러나는 풍경 속에서, 좀더 두텁고 둔중한 소음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벨리키 폭포. 플리트비체 하류의 대폭포라고도 불리는 이 폭포는 물의 낙폭이 78미터라나, 아래에서 올려다보기 쉽지 않다.

 

 

그리고 폭포 아래로부터 어딘가로 다시 모여 흘러내리는 개울을 이루고는 오랜 세월 무성한 나무들을 키워냈다.

 

 

눈이 많고 추운 계절이라 그런지 아직 유량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도 않은데, 소리나 위용은 굉장히 사납고도 맹렬하다.

 

 

옆엣 산책로를 조금 빗겨 올라가서 벨리키폭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한껏 감상했다. 참, 이쁘고도 오묘한 경치다.

 

 

끊긴 다리를 향해 돌아가는 길, 벨리키 폭포는 플리트비체 공원 하류의 포인트이자 끄트머리이기도 해서, 이제 상류로 올라갈 시간.

 

 

상류쪽으로 멀찍이 보면, 조그마한 웅덩이 같은 에메랄드빛 호수들이 찔끔찔끔 이쪽으로 흘러내려오는 듯한 느낌이 있다.

 

카르스트지형의 특색이랄 수 있는 그런 하류로 미끄러지는 호수들, 그에 더해 하류의 눈꽃에서 미끄러지는 무지개도.

 

 

왠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더 많은 산책로가 폭포수에 먹혀버린 듯 하다. 앞에서 한바탕 찍고 간 프로 사진기사

 

아저씨도 조금 끙끙대며 건너가는 거 같더니 이유를 알 만 하다.

 

 

뭐, 급할 거 없으니 안전하게. 그리고 가능한 풍성하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리고, 산책로가 폭포수에 먹힌 바로 그 시점을 코앞에 두고, 인증샷 한 장을 남겨 이날의 모험을 기억해두겠다며.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앞서 프로 사진기사 아저씨가 선방을 뜨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앞장설 일은 없었지 싶다.)

 

 

 

 

 

 

 

강릉, 묵었던 호텔의 주인 아주머니에게 별 생각없이 "맛있는 칼국수 근처에 없나요", 라 물었더니 냉큼 알려주신 곳. '해궁'이란

 

곳의 푸짐한 해물칼국수. 아무래도 바닷가라 그런지 온갖 해산물이 그득그득.

 

아침을 든든히 먹은 후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경포호 주변에서 드문드문 목격되는 네발 자전거를 따라 대여장소로 뙇.

 

핸들이 심플하고 단단하니 이쁘게 생겼다. 게다가 스티어링 휠이 작아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회전감.

 

경포호 옆의 공터에 여기저기서 자전거와 네발자전거..사륜마차를 주차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분들이 보인다. 추위를 막을

 

비닐 차양이 씌워진 것도 있고 그냥 날로 벗겨진 것도 있고.

 

달리기 시작, 운전하는 재미도 생각보다 쏠쏠하지만, 경포호가 생각보다 큰 호수라는 걸 금방 깨닫게 된다.

 

호수 옆에 살짝 주차해 놓고 사륜마차 전신샷. 앞에만 비닐차양을 위로 걷어올리고 삼면을 두꺼운 비닐로 막았더니 그럭저럭.

 

그러고 허난설헌의 생가로 빠지는 샛길을 달려 버렸다. 원래 호수 둘레길은 다소 안정적인 평지였는데, 다리 하나를 넘어

 

경포호에서 백미터 정도만 떨어지면 바로 나타나는 게 허난설헌의 생가. 오르막내리막이 제법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보통 사륜마차는 절대 도달하지 않는 곳에 와 버렸다는 뿌듯함.

 

 

사륜차를 한쪽에 슬쩍 세워두고 설렁설렁 돌아보고. 이미 바람이 차갑고 입김이 하얗게 새어나오는 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고, 종아리는 살짝 기분좋을 만큼의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허난설헌 생가 뒷켠의 해송림 사이 오솔길을 내달리는 길. 아까 경포호에서 이쪽으로 올 때는 내리막이라서

 

엄청난 속도로 오솔길을 육박해왔는데, 다시 돌아가는 길은 (당연하게도) 오르막. 꽤나 헥헥거리며 페달을 밟았다.

 

 

샛길에서 다시 호숫가 둘레길, 공식적인 사륜차의 코스로 복귀하기 직전.

 

찬 바람이 씽씽 불어도 굳이 이 사륜차를 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눈에 띄었다.

 

제 궤도에 올라 좀 편하게 달려볼까 하다가 문득 옆에서 눈에 띈 꼬불꼬불하고 좁다란, 한눈에 딱 보기에도 마구마구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흥미진진해보이는 길. 물 위에 다리처럼 놓였는데 이리저리 배배 꼬였는 것도 재밌어 보이고.

 

그래서 다짜고짜 진입. 그렇게 또다시 사륜차는 옆길로 새 버리고. 생각만큼 길은 좁아서 사륜차 한대가 꽉 끼는 듯 했다.

 

그 와중에 뭐 재미난 게 있나 싶어 뒤를 따라온 다른 사륜차 한 대. 더구나 저건 6인승이어서 휠베이스가 더 길었는데,

 

덕분에 일정 이상의 꼬불꼬불한 코너를 만나면 전부 내려서 자전차를 들어올려야 했다.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오신 중년부부셨는데 어쩌자고 따라오셔서는.

 

그래도 중간에 차를 돌리고 이리저리 움직일만한 비교적 넓은 공간이 나와서, 슬쩍 주차해두고 요리조리 구경도 좀 하고.

 

호숫가 한 복판에 이런 나무데크의 다리가 고불고불 이어지는 데다가 그 길에 꽉 껴서 달리는 사륜차도 재미있었다.

 

다시 정상 경로로 복귀. 그러고 보니 길 중간중간에 조각상도 보이고, 허난설헌의 오라비인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의

 

장면들을 묘사한 조각들도 보인다.

 

목 좀 축이고 가라며 만들어둔 음수대의 모양이 재미있다. 입을 쩍 벌리고 선 개구리 두 마리.

 

한바퀴를 도는데 한시간이면 느긋하고 유유자적하게, 더러는 딴 길로 새가면서 달릴 수 있는 듯 하다.

 

타기 전에는 뭐 특별한 게 있겠어, 싶다가도 생각보다 경포호 주변으로 샐 만한 곳도 있는데다가 기본적으로

 

두 발로 페달을 저으며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주는 쾌감이 진하다.

 

 

 

 

찜사쪼이 쪽에서 센트럴을 바라볼 수 있는 해변 산책로, 스타 페리를 탈 수 있는 선착장 바로 옆에는 2층짜리

 

뷰잉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월, 수, 금의 저녁 8시가 될 무렵이면 데크 위는 물론이고 해변가에 온통 몰려나온

 

사람들은 센트럴의 고층빌딩들이 밝힌 불빛을 홀린 듯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8시, 정각이 되면 건물 곳곳에서 소리 없는 폭죽처럼 쏘아올려지는 레이저 불빛 조명과 함께 스피커에서는

 

음악과 알아듣기 힘든 내레이션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덩달아 바빠지는 사람들의 손놀림은 덤이다.

 

완짜이 쪽에 있는 홍콩 컨벤션엑시비션 센터. 서울 삼성동의 코엑스나 비슷한 기능을 맡은 건물이지만 모양새나 입지가

 

천양지차다. 바다에 접해 있는 그럴 듯한 모습하며, 화려하게 번쩍거리는 조명을 두른 모습하며.

 

 사방에서 쏘아올려져 어지러이 허공을 노니는 레이져 불빛들, 그 와중에도 빅토리아항 앞바다를 가르는 조그마한 배들.

 

 

 

 이런 깜찍하고 귀여운 디자인의 배도 통통거리며 홍콩의 화려한 밤 풍경에 한 몫을 더한다.

 

약 15분여의 '심포니 오브 라이트' 쇼가 끝나고 나면 일순 정적에 휘감기는 해변, 그렇지만 반대편에 우뚝 솟은 건물들은

 

여전히 번쩍번쩍 건물 실루엣을 따라 불빛들을 흘려내리고 흘려올리는데 여념이 없다.

 

 

쇼가 끝나고 난 뒤 송곳 하나 꼽을 틈 없던 뷰잉 데크엔 몇몇 사람만이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가 했더니 어느 순간 떠오른 초승달, 조금은 차분해진 홍콩 야경에 운치를 더하러 납셨다.

 

 

 

 

 

이 IFC 건물 위에는 잘 보면 자동차 한대의 형체가 숨어 있다. 헤드라이트 한 쌍, 본넷과 그릴, 유리창틀까지.

 

2003년 완공되었다는 이 88층 빌딩의 높이는 420m, 현재 홍콩 최고의 빌딩이자 세계 7위의 빌딩이라고 한다.

 

대나무를 모티브로 했다는 비대칭 삼각형의 중국은행 건물.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밋을 설계한 사람의

 

작품이라던가, 불빛들이 현란하게 건물의 아래위를 훑어내리는 통에 눈길이고 마음이고 쏙 뺏겨 버렸다.

 

그리고 찜사쪼이의 해변가를 지키고 서있는 시계탑. 아래의 정방형 연못은 왠지 워싱턴의 그것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일렁이는 실루엣과 불빛 조명들은 제법 그럴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Symphony of Lights' 쇼를 위해 바삐 움직이며 사방으로 조명을 흩뿌리던 녀석들.

 

그렇게, 기백장의 사진을 찍고도 제대로 된 사진 하나 건지기 힘든 홍콩의 야경 사진.

 

언제나 그렇듯 삼각대는 챙겨놓고도 정작 필요할 때는 쓰지를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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