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 문대성 뒤에 숨지 말라"

 

[데스크 칼럼]<13> 김용민 후보가 사퇴해야 하는 이유

 

기사입력 2012-04-06 오후 12:50:07

 

 

지난 3월 초 '김용민 공천설'이 나왔을 때,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는 말했다. '국회의원은 자신의 인생 경로에는 예정에 없던 일'이라고. 대의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피선거권'은 만 25세 이상인 모든 국민에게 보장된 권리이기도 하다.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의원' 자리는 '공인'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갖는다. 무려 7-8년 전 한 인터넷 방송에서 쏟아낸 '성적 발언'으로 보수세력으로부터 난타를 당하고 있는 김용민 후보가 사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가 된 김 후보의 발언이 정말 본인이 선거에 나설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던 시절에, 그것도 '성인방송'을 표방하고 대놓고 성적 농담을 하는 프로그램에서 나왔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또 '라이스를 강간해 죽이자'는 발언이 당시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 수감돼 이라크 여성들이 미군들에 의해 강간당한 사건을 얘기하다 나온 것이라는 맥락도 안다.(관련 기사 보기 :"이라크 여성포로, 하루에 17차례나 강간 당해") 논란이 되자마자 김용민 후보가 트위터와 동영상을 통해 바로 사과한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용민 후보는 원칙적으로 사퇴하는 게 맞다고 본다.

왜? 정봉주 전 의원의 구속으로 자리가 빈 노원을 지역구를 당 안팎의 비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용민 후보를 전략공천하는 과정에서부터 잘못됐다. 물론 <나는 꼼수다>가 20-30대 젊은이들이 정치 참여에 지대한 공을 세웠고, 이런 열기를 4.11 총선에서 민주당이 흡수할 전략적 필요가 있었다는 배경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후보에 대한 검증은 생략됐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김용민 후보가 국회의원이 돼야 할 근거가 이젠 실종됐다는 점이다. 김용민 후보는 지난달 14일 공천이 확정됨과 동시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나쁜 정권에 너무 화가 난다"며 'MB정권 심판'을 출마 이유로 밝혔었다. 최근 드러난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사찰 문제 등을 밑에 깔고 "공포 속에 가둬질 우리 권리를 지켜내는 일이 더 절박하다"고도 했다.

 

▲ 공천 사실이 확정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김용민 후보(오른쪽)ⓒ연합


 

지난 3일 오후 김용민 후보의 '저질 발언'이 처음 공개된 이후 보수세력은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새누리당은 5일 김구라 씨와 같이 한 방송에서 나온 '성적 발언'과 '노인 폄훼 발언'을 추가로 공개했고, 6일엔 '기독교 폄훼 발언'을 문제 삼았다. 대변인, 여성 비례대표 후보 등이 나서서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일 하고 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 보수적 기독교단체, 어버이연합 등 보수적 시민단체 등도 김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아마 총선이 끝날 때까지 보수세력의 공세는 계속될 것이다.

오히려 이런 보수세력의 공세가 "쫄지 마!"를 외치며 버틸 수 있는 명분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선이 되더라도 보수세력의 공세는 계속될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 싸움에서 보수세력의 문제제기는 '트집잡기'가 아니다. 누가 봐도 김 후보의 발언은 '도'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의원 김용민'의 정치적 앞날은 매우 험난할 뿐 아니라 정치적 입지도 매우 좁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원 김용민'이 'MB 심판'의 최전선에 설 수 있을까? '의원 김용민'의 발언에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정치적 무게'를 실어줄 수 있을까?

박사학위 논문 표절이 사실상 드러난 새누리당 문대성 후보도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방패'로 삼는 것은 비겁하다. 새누리당에도 '불륜 의혹'을 받고 있는 유재중 후보(부산 수영), '성상납 의혹'이 불거진 정우택 후보(청주 상당) 등 의혹이 사실이라면 김 후보보다 더 죄질(?)이 나빠 보이는 후보들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자를 성추행한 뒤 "식당 여주인인 줄 알았다"는 명언을 남긴 무소속 최연희 후보(강원 동해삼척), 여대생 성희롱 발언을 한 무소속 강용석 후보(서울 마포을)도 출마했다.

이들을 방패로 삼는다면 김 후보도 같은 수준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의원직을 고집하는 게 김 후보 본인에게도, 또 그가 그토록 바라는 'MB 심판'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MB심판'이 꼭 의원이 돼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진영논리'를 내세울지도 모른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전으로 총선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 후보가 사퇴하면 한 석을 새누리당에 거저 주는 셈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진보의 가치 중에 어떤 것도 다른 무엇에 앞서는 것은 없다. 더 이상 성평등이나 인권이 '진영논리' 속에서 때로는 과도하게 이용당하거나, 때로는 침묵해야할 가치로 인식돼서는 안 된다.

신생 진보정당인 녹색당은 5일 논평을 내고 "야권이 한 석을 얻는 것보다, 성평등과 인권이 정치의 잣대로 자리잡는 일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며 "(김용민 후보가)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성평등과 인권이 정치의 중요한 잣대임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김용민 씨가 지금 우리 정치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깊이 공감한다.

 

/전홍기혜 정치팀장

삼성을 생각한다 - 10점
김용철 지음/사회평론
이 책은, 이건희와 (아마도) 이재용을 위해 온갖 범법행위를 함께 했던 한 '범죄자'의 최후고백이다. 자신이

이건희를 위해 검찰에, 그리고 삼성 계열사에 범죄를 저질렀다며 벌을 달게 받겠다, 고 양심선언을 했던

한 사람을 그저 미친 사람, 성격 더러운 사람, 심지어는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는 세상에 크게 외치려는 책이다.

"결국 '정사'에는 나에 대한 비난만 남게 됐다. '삼성 비리는 이제 '야사'에만 기록되겠구나' 싶었다."라는

자괴감, 혹은 (중립적인 단어로는) 위기감이랄까. 책을 읽어내리다 보면 정말 본인이 하고 싶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활자화하려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범죄와 관련된 무수한 실명이 등장하고, 자신의 의도와

입장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추가되며, 뭐랄까, 김용철의 삶 중 삼성과 관련된 부분은 남김없이 들어간 것 같다.


그의 양심선언은 잠깐이나마, 통제되지 않은 힘을 휘두르던 우리나라 일등 '경제권력'이 제 입맛에 맞게 요리한

시장경제 판을 정돈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불렀었다. 상식적으로, 지시를 받고 범죄를 직접 저지른

사람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내용과 대상에 대해 구체적인 자백을 한 거였으니까. 굳이 "뇌물 수수 범죄에서

'뇌물을 준 사람의 자백'은 직접 증거"라는 변호사의 권위를 빌은 말이 아니어도 말이다. 그런데 그는, 김용철

전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은 재판에서 졌다.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 조성과 국가 권력 매수를 위한 조직적인

불법 로비'가 죄가 안 되서가 아니다. 법이 불비해서도, 법이 집행된 전례가 없어서도 아니다.

(*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르면 연간 세금 포탈 규모가 10억 원이 넘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검찰과 법원의 거듭된 봐주기 편법에도 불구하고 이건희는 무려 465억원의 세금 포탈 혐의가
인정되었고, 특검은 삼성 비자금 중 약 4조 5000억을 발견해서 이건희에 돌려줬다.)


상대가 삼성이어서 그랬다, 라고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여러 재벌기업 중 하나였다가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나며 압도적인 대표기업으로 변신한 채 국가 아젠다를 결정하고, '참여정부'라는 이름도 지어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기업이니 말이다. 삼성을 위한 정책을 펴던 공직자가 삼성 사장으로, 삼성을 위한 판결을

내리던 법관이 삼성 변호사로 가는 그런 세상이란 건, 사실 김용철 변호사가 책에서 이야기하기 전부터 익히
 
들어서 살짝 진부하기까지 한 거다. 사람들도 그럴 거다. 그래서, 금세 포인트는 옮겨간다. "왜 삼성만 갖고

야단인데? 언제 우리사회가 법대로 갔어? 일등에 대한 못난 질투가 넘 심하잖아? 삼성이 망하길 바래?"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도, 나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는 이거다. 삼성이 싫은 게 아니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계속 성장하며,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다만 잊지 말기를 바라건대, 한국의 이익과

삼성의 이익, 그리고 이건희의 이익은 대개 일치하지 않으며, 지금은 이건희의 이익을 앞세워 삼성 계열사

임직원과 주주, 국가 경제까지 좀먹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이건희 개인과 일족의 이익을 '보위하기 위해'

국가 조직과 법질서를 농단하고 있으니, 앞엣말은 이렇게 수정되어야 맞겠다. 재판에 진 이유, 상대가 합당한

죄과를 받지 않은 이유는, 상대가 다름아닌 삼성을 조작하며 제뱃속을 채우는 '이건희 일족'이어서 그랬다고.


이건희가 삼성 주식의 몇 프로를 갖고 전체를 휘두르고 있는지, 이재용으로의 승계를 위해 주주 이익을 얼마나

훼손하고 배임행위를 저질렀는지, 금산분리법 폐지나 복수노조 설립금지를 위한 로비 자금을 위해 어떤 불법을

저질렀는지, 검찰과 법원, 국세청과 언론 따위 사회곳곳에 검은 돈을 얼마나 뿌려댔는지 등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고 쉽게 알아 볼 수 있음에도, 아무도 책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런 '괴물'이 탄생하게 된

데에는 노무현과 김대중의 역할이 컸다. 그들을 두고 좌빨이니 좌익이니 말이 많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극히

친기업적인(혹은 친삼성적인) 정책으로 일관했던 거다. 삼성과 국가 사이에 놓인 부등호의 입은 그들의 십년새

확연히 삼성 쪽으로 벌어져 버린 것 같다.


사실 삼성 이야기를 하다보면 굉장한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뻔한 이야기를 대체 얼마동안 해야 제대로 '법과

원칙'이 설 지, 법은 정말 만명에게만 평등한 건지 따위 염세적인 생각이 드는 것이 하나의 이유지만, 반대로

어디까지를 '상식'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또 어디서부터 '원칙'을 들이대야 세상 물정 모르는 이상주의자

라느니 따위의 비아냥을 피할 수 있을지 말이다. 이 책 역시, 어쩌면 "범죄자를 옹호해야 한다는 게 맘에 들지

않아 변호사가 싫다"고 할 만큼 까칠하고 원칙적인 한 성마르고 결벽증 초기단계쯤의 조직부적응자가 자기

성미대로 써갈긴 그런 책이란 비난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내가 몇몇 구절, 그의 진심에 가닿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어서 소개해본다.


"다른 재벌이 삼성보다 더 깨끗한지 아닌지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나는 단지 삼성 비리를 목격했으므로 이를 고발했을 뿐이다."

"한국 사회의 부패는 뿌리가 깊고 넓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이 전체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사법기관이 다른 영역보다 유난히 더 썩은 게 아님에도, 내가 사법기관의 부패를 유독 강하게 비판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수사와 사법 처리를 담당하는 곳이 썩어버리면, 다른 영역에서 일어난 자정 노력이 허사가 될 수 있다."

"권력층이 부패한 사회는 힘센 자가 아무런 견제없이 횡포를 부리는 무법천지일 뿐, 우파의 이상도 좌파의 이상도 될 수 없다...그래서 나는 모든 시민이 부패에 맞서는 장면을 꿈꾼다."








<경향신문>에 기명 칼럼을 연재 중인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과)가 <프레시안>에 기고를 보냈다. 김 교수는 17일 <경향신문>에 실릴 예정이던 자신의 칼럼이 게재를 거부당한 일을 소개하면서, 이 일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모순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의 글을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


안녕하세요? 저는 전남대 철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김상봉입니다. 저는 지난해 말부터 <경향신문>에 3주에 한 번씩 수요일마다 기명 칼럼을 써왔습니다. 오늘 제 글이 실릴 차례인데 불행하게도 글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경향신문>에서는 제가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를 소개하면서 삼성 및 이건희 전 회장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 신문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된다면서 양해를 구했습니다. 저는 물론 거절했으나, 신문사는 끝내 저의 칼럼 지면을 다른 분의 글로 채웠습니다.

저는 이 일에 대해 <경향신문>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문을 닫을 때 닫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언론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재 이 땅의 진보 언론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의 원인이 신문사 내부의 잘못이 아니라 언론 소비자들의 무지와 무관심에 기인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일을 두고 <경향신문>을 비난하기보다는 도리어 진정한 독립 언론의 길을 걷도록 더 열심히 돕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 <경향신문>이 삼성 관련 기고를 게재 거부한 것은 지금 한국 사회의 모순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프레시안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번 사건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순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서 결코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독재 정부에 맞서 지속적으로 투쟁해왔습니다. 수십 년 동안 시민을 폭력적으로 억압한 주체는 국가 권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결실로 국가 권력에 대한 시민적 권리는 큰 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재 권력이 물러간 자리를 지금은 자본 권력이 대신하여 또 다른 방식으로 시민적 자유와 주체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최근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일간지에 광고할 수 있는 지면을 얻지 못하고, 외부 칼럼으로 기고한 저의 원고가 신문사 자체 검열에서 끝내 게재를 거부당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삼성이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권력이 되었다는 것을 웅변해줍니다.

1970년대 유신헌법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개정이나 폐지를 청원하는 것도, 더 나아가 그런 움직임을 보도하는 것조차 금지했던 긴급조치 9호 시절처럼,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삼성과 이건희를 비판하는 것은 이른바 진보 언론이라 불리는 신문에서조차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본이라는 새로운 독재자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사회의 정의로운 기초를 뒤흔드는 시대에 누구든 어떤 식으로든 애써 역사의 종을 울려야 할 것입니다. 종이 신문에서 실리지 못한 저의 글을 혹시 실어주실 수 있는지 정중히 여쭈면서 이번 일이 이 땅에서 삼성의 독재를 끝내는 대장정의 첫걸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경향신문> 2월 17일 '김상봉 칼럼'에 실리지 못한 원고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새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나면 우리는 삼성이란 재벌이 어느덧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 암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는 삼성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코미디의 소재가 될 만한 이야기들도 꽤 많다.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은 일단 회의가 시작되면 아무리 길어져도 화장실을 가는 법이 없다 한다. 놀랍다면 놀라운 일인데 끔찍한 일은 따로 있다. 주인이 화장실을 가지 않으니 회의에 참석한 머슴들도 화장실을 못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녁에 회의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물 비슷하게 생긴 것은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 한다.

이 책에 엽기적인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건희는 유명 예술인들을 집에 불러 연주를 청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그가 부르면 대중가수든 고전음악을 하는 사람이든 달려오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한다. 그런데 유독 나훈아 씨만은 그렇게 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는 대중가수이니 오직 대중들 앞에서만 노래한다는 것이 이 존경스런 가수의 신념이라 한다.

이 재미있는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에 비하면 대다수 언론의 침묵은 기이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하다. 출판사에서는 몇몇 신문에 광고를 내려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돈 주고 광고 내겠다는데도 선뜻 받아주는 신문사가 없어 지금까지 이 책은 입소문으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일종의 금지도서 아닌 금지도서가 된 셈이다.

7~80년대에는 금지도서가 많았다. 체제에 비판적인 책들은 어지간하면 금서로 분류되어 책방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그렇게 밟고 눌러도 땅거죽을 뚫고 솟아오르는 겨울 보리싹처럼 많은 금서들이 수십만 권씩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의 차이 또한 분명하다. 그 시절에는 국가가 비판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금서 같은 것을 지정하는 억압의 주체였다면, 지금은 삼성이 우리의 입과 귀를 막는 그런 권력이 된 것이다.

그렇게 말과 생각을 억압하는 것이야말로 권력의 말기적 징후이다. 삼성이 한국 최고의 경제 권력으로 군림하면서 뇌물로 국가기구를 매수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광고로 언론을 길들이고 나면, 이제 그 절대 권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내부로는 노동조합이 생기는 것을 막고 외부로는 삼성을 비판하는 개인의 입과 귀를 틀어막는 일만 남는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증언하듯이 삼성은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에 국가 기구와 주요 언론을 장악하는 과제를 완료했다. 삼성의 남은 과제는 김용철 씨처럼 어디서 출현할지 알 수 없는 비판자들이 나타나지 않게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도 삼성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유신 독재 시절처럼 모든 개개인의 말과 생각을 전면적으로 검열하고 통제해야 한다.

마치 미국에서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공공연히 비판하는 것이 금기시되듯, 한국에서 삼성과 이건희를 비판하는 것이 대중들 사이에서 금기시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삼성이 이건희의 왕국에서 그 아들 이재용의 왕국으로 순조롭게 이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포석인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금서 아닌 금서가 된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알고 보면 삼성그룹 전체에서 이건희가 소유한 지분은 0.57퍼센트에 불과하다는데, 그는 자기 머슴들의 배설을 억압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우리 모두의 입과 귀를 가리려 한다. 그러면서 이 짝퉁 루이16세 폐하께서는 황송하옵게도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한다'는 교시까지 내리셨다 한다.

선거날이 가까워올수록 사람들은 이명박 심판에 열을 올리겠지만, 그 일은 박근혜 전 대표가 누구보다 차분히 잘 해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눈앞의 허상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자본에 매수되지 않는 진보정당을 키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을 해체하고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한국식 자본주의를 타파할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삼성제품 불매는 당연한 일이지만,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생각하기를 권한다.
 

/김상봉 전남대학교 교수



*                                       *                                       *

'삼성을 생각하다'를 읽고 있다. 광고도 안 되고, 대형서점에서 구석진 자리로 쫓겨나고 있단 얘기에 회사

근처 대형서점에서도 과연 그런가 싶어 점심시간을 쪼개 가본 참에, 생각보다 전면에 노출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두툼하지만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를 몇장 읽다가 바로 사서 나와버렸다. 조만간 리뷰~*



그럴 줄 알았다.

검찰에서 관련 죄목 최저형에 가까운 7년을 구형할 때부터,

김용철변호사의 양심선언에 대해 뭐 하나 제대로 밝혀지기는 커녕, 오히려 내부고발자인 그에 대한

딴지걸기만 계속되던 때부터,

삼성을 싸안고 도는 언론/검찰/정권/정당들의 속내는 그러했을 거다.

이참에 깔끔하게 후계문제며 상속문제까지 정리해버리자고.


사실상 무죄방면에 면죄부용 구형에 판결이다. 삼성이라는 기업을 이건희의 사유물이자 승계재산이라고

법적 인증까지 해준 셈이니, 이건희는 속으로 웃고 있을 게다.(이후 기사를 보니 겉으로도 웃고 있었다.)

화낼 거리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월욜부터 일욜까지 죽어라죽어라 하면서 쌓이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나섰을 때 그를 보면서 참..가슴이 먹먹했었는데.

정의구현사제단 분들이 말했듯 巨惡이란 단어 앞에서 그 분은 얼마나 좌절스러웠을까.

하물며 지금은, 어떤 심경이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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