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명물 케이블카, 파웰역(powell st.)에서부터 피어39(pier39)까지 한 이십분 걸리던가. 한번 맘먹고 걸어봤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 걸리는 길은 아니었다. 한..오십분 거리였던 듯. 아래는 그렇게 걸어가면서 마주친 풍경들 스냅샷.

 

왼켠집의 일층이 오른켠집의 이층이 될 만큼의 가파른 경사길, 나중에 자전거를 타고 여길 다녀보고야 그 극악한 경사도를 깨닫다.

 

손을 꼭 부여잡고 신나게 앞뒤로 흔들며 발걸음도 가벼운 커플의 뒷모습이 부러워 냉큼 도촬. 어디까지 가려나 내심 기대했지만

 

피어39까지는커녕 바로 앞 골목에서 홱 꺾어선 어디론가 들어가버려서 살짝 아쉬웠다.

 

 

사거리의 네 방향 모두 일단 스탑. 굉장히 천천히 서행하는 차들의 여유로움만 보면 이 도시도 참 살기 좋은 거 같은데,

 

십분이 멀다하고 빽빽거리는 불자동차 소리는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을 거 같다.

 

 

어디였더라, 무슨 호텔 앞에 있던 분수대에는 다소 뜬금없다 싶은 청동주물의 유럽 느낌 물씬한 조각들이 가득.

 

터널을 지나기도 하고, 터널 너머 차이나타운을 지나치기도 하고.

 

쓰레기로 하수구가 막히니 버리지 마시오, 라는 영어 메시지는 이해하겠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게의 그림은 뭐지. 바다가 머지 않았다.

 

역시나. 꼬부랑 고개를 여덟개쯤 넘고 나니 저 너머에 시퍼런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뉴욕 소호지구에서 특히나 많이 봤던, 건물 외벽에 설치된 접이식 층계.

 

문득 주거지역 한복판에서 아마도 버스 종점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수십대의 버스를 차곡차곡 채워놓은 공간도 만나고.

 

그러고 나니 피셔맨스워프(fisherman's wharf), 바다다. 짠내와 섞여나오던 스프레이 냄새는 이 아저씨의 것.

 

 

 

숲을 보전하기 위해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는, 하루 입장객수를 제한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정부 운영 트레킹코스라는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을 걸었다. 아침 9시까지 주차장에 모여서는 가이드 겸 숲해설사와 함께 무리지어 출발하기 직전.

 

 

     입구에서부터 특별한 구간임을 강조하는 표지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탐방은 안내자를 동반한 경우에만 가능하고,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는 내용. 이 곳의 소나무들은 한국의 토종 소나무들로 산림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무척 높다고 한다.

 

 무리지어 움직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산길 숲길이니만치 제법 멀리 벌어져서 움직이게 된다. 그냥 조금 밀도가 낮지 않은

 

등산을 나선 느낌 정도랄까. 아무래도 울진이 서울에서 쉽게 가닿기는 어려운 거리니만치 경상도 분들이 많으신 듯.

 

 

 

 아직 가을볕이 따끔거리는 시간, 단풍이 채 여물지 않은 싱싱한 초록빛 나뭇잎들이 연두빛 햇살을 걸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가이드분이 잠시 쉬어가는 길에 보여줬던 화전민들의 생활터. 70년대까지만 해도 산 곳곳에 터를 잡고서는

 

숲에 기대어 생활을 이어갔다는 화전민분들의 삶에도 술은 빠질 수 없었을 거다.

 

굉장히 옛날 디자인처럼 보이는 '금복주'의 깨진 병이 곳곳에 뒹굴고 있는 모습이 신산스럽기도 하고.

 

 

 

 금강소나무숲길은 현재까지는 1코스, 2코스, 그리고 3코스와 3-1코스 정도가 개장된 것 같은데, 난이도는 고만고만해 보인다.

 

대충 아침부터 오후 4시쯤까지면 끝나는 코스인데 점심식사의 경우는 근처 주민분들이 직접 밥차를 챙겨 준비해주신다고.

 

 우리말로 '재'라고 표현하는 언덕배기를 두어개 오르내리고 나니 본격적인 금강소나무 군락지로 진입.

 

일제시기 한국의 곧고 단단한 금강소나무를 거침없이 벌채해가는 바람에 토종 소나무의 수가 확 줄어버렸다고는 해도

 

이곳 울진은 워낙 벽지여서 그런 수탈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금강소나무는 여느 소나무와는 달리 이파리를 뜯었을 때 잎이 두 가닥이고, 송진이 많고 속이 꽉 차 있어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강도와 내구성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는 조선시대 초에 궁궐 건축자재로 쓰였던 금강소나무 기둥을

 

수백년 후에 수리할 때에도 그대로 다시 썼다고 할 정도라고 하니, 시멘트나 콘크리트보다도 더욱 오래 버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곳곳에서 펼쳐지는 가을, 가을. 어느덧 부쩍 높아져버린 푸른 하늘과 각자의 색깔로 가을을 맞이하는 나무들의 향연이다.

 

 

 

 

성미급한 나무 하나는 제멋에 겨워 벌써 홀로 새빨갛게 뺨을 붉혔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렇지만 곳곳에 붉은 기운이 스며든 채 호시탐탐 호루라기 소리만 기다리는 중이다. 준비~ 땅.

 

 

 금강소나무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던 숲해설사님, 저 정도의 굵기로 자라려 해도 금강소나무는 근 이백년 가까이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던가. 생장 속도나 나이테 불리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 속이 더욱 실한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손길이 함부로 접할 수 없어서일까, 쓰레기 하나 없이 말끔한 자연 속에서는

 

개울물 소리가 더욱 영롱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물빛도 훨씬 깊어보이는 거다.

 

 

 그렇지만 탐방로는 의외로 잘 정비되어 있는 편이었다. 경사가 가파른 곳에는 나무 계단이 걸음을 인도했고,

 

빽빽하게 치솟은 소나무숲을 요리조리 꺽어가며 붉은 황토길이 이어지고 있었으니.

 

더러는 이런 징검다리 돌다리도 건너기도 하고.

 

 

 

 

 

구불구불 자연스런 리듬감이 묻어나는 길을 따라 훤칠한 금강소나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하고.

 

 

 금강소나무로 만든 것 같은 곧고 단단한 나무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그렇게 우선 점심 식사를 위한 밥차가 있는 장소까지 걸었다. 대충 세시간 정도 걸린 듯.

 

그러고 보니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의 1코스였던가, 산양 보호지역을 지난다고 했던 것 같은데

 

3코스에서는 산양을 직접 볼 기회는 없다고 했다. 길 잃은 산양이라도 한 마리 조우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마침내 영접한 밥차. 주민분들이 직접 매일매일 준비하는 밥과 국과 반찬들이라는데 맛도 훌륭하고 양도 적지 않아서,

 

오전의 어렵지도 않았지만 또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던 산행으로 출출해진 배를 충전하기에 부족함이 없던.

 

다들 식판에 받아들고는 근처에 적당한 나무그늘이나 등걸을 찾아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바람소리 시원하고 어디선가 딱다구리 나무 쪼는 소리까지 들리던, 10월 중순의 녹색 그늘.

 

 

이제 점심을 먹고서는 금강소나무의 보존을 위한 생태경영림을 돌아보는 코스로 이어질 차례.

 

 

 

 

 

얼마전까지만 해도 어느 가족의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보금자리였겠지만 이젠 한무더기의 건축폐기물로 변한 돌무덤

 

위를 밟고 올라가 아현동 일대의 재개발지역을 한눈에 내려보았다.

 

 

그 와중에 돌무덤 틈새를 비집고 노란 꽃줄기 한 가닥이 꿋꿋이 피어오른 모습이란.

 

 

 

누군가 신었을 발레슈즈도 탁하고 무거운 시멘트 덩어리들 사이에서 하늘하늘, 반짝거리고 있었다.

 

 

 

B&W 모드의 사진 몇 장. 뒤에 우뚝 서 있는 삼성 아파트와 그 앞 슬레이트 지붕의 단층 건물들이 뚜렷한 온도차를 보인다.

 

 

화장실 창문만한 조그마한 창에 엉성하게 덧붙은 가림막.

 

붕괴 위험으로 막아놓은 길 너머엔 이십년 전에나 보았을 법한 비디오테잎이 나뒹굴고 있다. 저 안은, 1990년대인 건가.

 

낚시바늘로 성을 지은 것처럼 살벌한 담장 끝 방범창살.

 

 

빛과 그림자. 왠지 딱 그런 문구가 떠오르는 풍경이다.

 

 

 

 

 

 

 

집앞에 잔뜩 쟁여진 쓰레기들, 그리고 생활 폐품과 재활용품들.

 

 

저 집은 아무래도 사람 얼굴이다. 눈썹 붙인 게 뜯어져버린 오른쪽 눈에 너덜거리는 왼쪽 눈,

 

게다가 젓가락을 꼽고 있는 한쪽 콧구멍. 뭔가 일본식으로 즐기며 술을 마시는 중인가 싶은.

 

 

 

 

 

어느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부지런히 모아서 꽁꽁 동여매 놓으셨을 폐지 묶음들. 어렸을 땐 그러고보니 저거 챙겨서

 

학교에 가져가서 무게도 달고 그랬는데.

 

애오개 고개에 자리잡은 철거촌, 그 곳에 핀 꽃들은 이쁘다기보다는 왠지 풀죽은 채, 그렇지만 가시를 세운 어린 왕자의

 

장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다.

 

 

 

 

아마도 저 허름하고 시트조차 다 사라져버린 소파는 이 곳 어르신들의 사랑방 같은 거 아닐까.

 

 

재개발지역을 떠나 차들이 씽씽 다니는 큰길로 올라서는 계단, 시멘트 계단에 녹물이 흐르고 흘렀는지

 

붉게 염색이 되어 버렸다.

 

5호선 애오개역, 출구에서 내리고 몇걸음 떼지 않아 저너머로 보이는 황폐한 옛 성같은 느낌의 외딴 건물.

 

 

큰 길가에서 한발, 골목을 내딛었을 뿐인데 공기부터 달라지는 듯한 분위기.

 

 

 

 

 

 

가로등과 건물들이 켜켜이 어깨를 이어붙이고 선 좁은 골목, 불빛이 사정없이 짓쳐드는 게 불편했던지 아랫도리를 둘렀다.

 

마치 종로 피맛골 골목통에서 옛 국세청 건물을 올려다보는 듯한 풍경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저 세발 자전거는 누가 타고 놀았을까. 언제부터 저 야트막한 지붕들과 눈높이를 나란히 하고 얹혀 있었을까.

 

 

 

 

 

 

골목 한 귀퉁이엔 언제 잘려나갔는지 제법 굵직한 나무 밑둥이 그대로다. 심지어 연둣빛 싹마저 돋았다. 어쩌려고.

 

 

아귀가 틀어져버린 붉은 벽돌담. 언제부터 저런 계단식 균열이 생겨난 건지 모르겠지만, 철거가 빠를까 붕괴가 빠를까.

 

 

 

하늘에다 대고 날리는 주먹감자처럼, 뻐큐손가락처럼, 삐뚜스름하게 올려세워진 연통.

 

 

 

방범창살들이 엿가락처럼 휘어져버린 위에는, 고작해야 나무 판넬 몇장에 헝겊이 덮인 천장 뿐인데. 하늘이 무거웠나보다.

 

 

어디론가 계속 발걸음을 유도하는, 골목과 골목과 골목들. 이집트 카이로의 옛 거리나 상해의 골목통을 찾을 일이 아니었다.

 

 

납작 엎드린 건물 뒤에서는 훤칠하고 반듯한 아파트가 위세를 부리고 섰다.

 

 

벽돌들과 폐건축자재로 가림막을 친 조그마한 채소밭..이랄까. 행여 누가 뜯어갈세라 사람사는 집만큼 높은 담장을 둘렀다.

 

 

어느 집 대문 밖에 내걸린 채 하릴없이 바람에 시달리던 몸뻬바지 한 벌.

 

 

 

 

한줌 볕조차 다닥다닥한 게딱지 지붕에 걸려버려서, 골목은 으레 어두침침한 데다가 선뜻한 냉기마저 감돈다.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데 어느 집에선가 커다랗고 호들갑스러운 라디오 광고도 들리고, 아이들이 웃고 떠들고

 

싸우는 소리도 들린다. 좁은 골목통을 비집고 들어오기엔 벅찬 한줌 햇살 대신 골목을 채운 건 어디선가 날아온

 

짙고 끈적한 메주 냄새, 음식물 썩는 냄새.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사방으로 난반사되는 소음들만 난무하는 덕에 현실감각이 살짝 비틀어지는 듯 했지만,

 

그래도 여기 사람이 산다. 비닐봉투에 야무지게 묶여 나온 하얗게 타버린 연탄 네장.

 

 

 

 

하늘을 이리저리 내키는대로 구획하고 있던 까맣고 강단진 나뭇가지들이 까칠해 보였지만,

그네들이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주홍빛의 살짝 길쭉하고 둥근 열매는 마냥 풍만해보였다.

장대가 닿기 쉬운 가지 아랫자락은 몽창 털린 채, 바짝 손들고 선 나무 꼭대기층에나

듬성듬성 남은 채 대책없이 매달려있던 감들. 정확히 말하자면 감 중에서도 대봉시들이다.

감을 딴다는 것, 감이 아니라도 나무에 달린 뭔가를 딴다는 작업을 어떻게 하는지는 사실

평소에 별로 생각을 해볼 일도 아니고 상상을 해본 적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나무

작대기 끝에 천으로 대강 기워진 주머니를 달아서는 하나씩-좀 숙달되면 세네개씩-따는 것

이상 더 좋은 방법이 없단 건 조금은 놀랍달까. 더 편하고 더 빠른 방법이 없다니.

감나무를 기어오르기란 생각보다 수월한 게 디딜만한 어깨를 여기저기에 마련해둔 거다.

나무 높이의 반절만 기어올라도 잔뜩 달고 있는 묵직한 대봉시들의 무게로 추욱축 늘어진

가지를 손쉽게 털 수 있다. 여차하면 장대 대신 손만 뻗어도 될 만큼 눈앞에 매달린 녀석들.

감나무에 달린 건 감뿐 아니라 지저분하게 말라붙은 감잎새들도 있어서, 사진 찍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렇게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를 찍으려니 잎사귀에 이리저리 뻗어나간

수목에 뭔가 너무 지저분해 보이는 거다. 그렇지만 거의 감나무와 밤나무만으로 이루어진

이 산에서 정말 가을철 한 때는 온통 감빛 열매가 지천에 매달린 풍경은 꼭 정제되고 아름다운

풍경만은 아닌 게 사실이니까.

올해는 태풍도 여러 번 다녀가고, 감산도 제대로 관리를 안 해서 여느 해보다 감이 조금 달린

편이라고 했지만 딱히 작년이나 이전의 풍경을 못 봤으니 이 자체로 충분히 감탄하고 말았다.

저렇게 얇고 허약한 가지 끄트머리에 저토록 씨알이 굵고 무거운 열매를 우글우글하게

피워올린다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 그야말로 일종의 기적인 듯 싶다.

보다 보면 나무 끝에 이렇게 이쁜 엉덩이처럼 두개가 톡 붙어서 몽실몽실 커나간 녀석들도

있는가 하면, 브이자로 갈라져 자라나간 가지 양끝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듯 마주보며 커나간

녀석들도 있었다. 저런 녀석들은 장대를 요리조리 움직여 한큐에 담아내는 재미도 있지만

가지째 잘 꺽어내서 어딘가 걸어둔채 오늘의 가을을 기억하는 재미가 더 쏠쏠할 듯.

장대로 훑어낸 대봉시들은 꼭지 끝에 남아있는 나뭇가지를 떼어내고 포대에 차곡차곡 담는다.

어떻게 보면 출산이랑 같다. 나뭇가지로 연결되어 한몸이던 나무와 열매를 억지로 떼어내선

탯줄과도 같았을 '꼬다리'를 잘 정돈하고 나면 저렇게 배꼽자국이 거칠게 남는다. 이녀석들,

포대 안에서 응애응애 들리지 않는 울음을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감나무 역시 마찬가지다. 감이 익을수록, 조금씩 커질수록

감나무 가지 역시 고개를 숙여간다. 급기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툭 떨궈지고 마는 시선.




@ 경남 하동. 11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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