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을 내려다보기 좋은 트윈픽스 발치, F라인 전차의 서쪽 종점이기도 한 이쪽 미션Mission 지구 곳곳에는

 

성적소수자의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나부끼는 중이다. 그만큼 샌프란시스코의 전향적인 분위기가 물씬한 이 곳,

 

특히나 돌로레스 대성당 어간에서부터 시작되는 발미 앨리Balmy Alley에는 1970년대 이래 진보적 아티스트들이 그렸다는

 

그래피티들이 골목들을 온통 점령하고 있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평온한 일상이 흘러다니는 깔끔하고 단정한 큰길, 어느 길모퉁이에서 예기치 않게 나타난 전복의 순간.

 

 그리고 골목 담벼락을 온통 활용한 화려하고 입체감 넘치는 벽화.

 

 

비록 살짝 지린내도 나고 인적도 드물어 조금은 염려스럽기도 한 구간도 있긴 하지만, 차들이 늘어선 큰길가에도 그래피티의 축복이.

 

1776년에 지어져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오랜 건물이라는 돌로레스 대성당의 종탑. 이 위에서라면 울긋불긋하게 단풍처럼

 

번져나간 발미 앨리 지역의 그래피티들의 물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말에는 세 차례씩, 2시간 동안 이 곳에 그려진 60-70여개의 벽화를 감상하는 투어가 진행되고 있다고도 하는데,

 

혼자 돌아다니기보다는 아무래도 대낮 시간에 단체로 가이드를 따라 움직이는 게 안전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혼자 이 구역을 돌아다니는 게 위험하다고 느꼈다거나 곤란을 겪었던 건 아니고, 워낙 골목마다 숨어있는 그림들이

 

많아서, 잘 아는 사람의 안내가 있었다면 더욱 알차게 돌아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정도랄까. 요런 귀여운 토끼도 놓칠 뻔 했다.

 

 

성긴 철창이 가로막은 건물 외벽에도 누군가의 손길은 여지없이 거쳐갔다. 거대한 연꽃을 타고 있는 부처가 샌프란시스코에 현현했다.

 

 

 

정교하고 잘 안배된 기하학적 무늬가 차고 하나를 통째로 감싸버린 풍경이라니, 작업했던 모습을 상상해보게 만드는 풍경이다.

 

 조던의 드리블 장면이 붉게 두드러진 농구 골대에 내리쬐던 햇살, 좁다란 골목 양켠에서 형형색색의 색채를 밝힌 그래피티들.

 

 

 

 이름 모를 성당-혹은 교회-옆구리에도 그래피티의 가차없는 스프레이는 비켜가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성당의 위신을 고려했는지 만화체로 그려지긴 했지만 예수와 성모..인 듯한 캐릭터들이 독특한 수인을 맺고 있다.

 

 

 사실 벽화보다는 이런 그래피티가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좀더 본격적이고 멋진 그래피티를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가 하면 작정하고 캔버스로 벽돌담 벽면을 활용한 듯한, 무려 호랑이와 상어 간의 일촉즉발 격돌 장면.

 

 사실 발미 앨리 아니어도 샌프란시스코의 곳곳에서 숨어있는 벽화, 혹은 그래피티들을 찾는 재미는 쏠쏠하다.

 

아마도, 카센터의 내려진 셔터에 그려진 그래피티. 이 정도면 나름 상업적인 목적에도 충실하면서 미적인 기능까지 놓치지 않은 수작. 

 

 

 혹은, 뜬금없지만서도 파라오의 토실한 입술이 센스넘치게 가리키고 있는 소화전의 붉은 주둥이.

 

 이 건물은 GLBT 역사 박물관, 그러니까 게이(Gay), 레즈비언(Lesbian),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의

 

역사와 투쟁을 담고 있는 박물관이라고 한다.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당당하게 펄럭이는 무지개 깃발만으로도 뭔가 상쾌하다.

 

 

샌프란시스코의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래피티, 혹은 좀더 포멀한 차원의 벽화들. 아래는 작년인가

 

금문교를 배경으로 치뤄졌던 세계 요트대회의 한 장면을 건물 벽면에 재현해 둔 거라고 한다.

 

 

 

 

 

방콕에서 인물 사진을 찍을 때는 간단히 물었다. 'May I?' 하며 카메라를 슬쩍 들어올리면

애나 어른이나 다들 알아듣고선 방긋 웃어주거나, 별 흔들림없이 시크하게 멈춰주거나.

그렇게 찍은 사진들. 황금산 위에 올랐을 때 올망졸망 머리를 맞대고 방콕 시내를 내려다보던

가뭇가뭇한 아이들이 귀여웠다.

황금산 주변동네를 진동시키던 징소리, 종소리를 만들어내던 저 팔뚝들. 여자친구와 함께

무언가를 빌러 온 아저씨 하나가 나의 '메이 아이?(카메라 들썩)' 앞에서 흔쾌히 포즈를

취했다. 사진 이후의 다시, 대애앵- 귓바퀴에서 데굴데굴 구르던 굵은 떨림.

황금산 위의 황금탑, 사람들의 기원을 모으는 안테나처럼 위로 뾰족하게 곧추선 그 탑을 향해

무언가를 조용하게 빌고 있던 태국의 아가씨. 꺾인 발바닥이 하얘지도록 미동도 없이 탑을 향했다.

어딘가의 재래시장, 순대를 튀긴 것처럼 곱창 안에 밥풀이 잔뜩 채워진 채 기름으로 튀겨진

간식을 팔던 해맑은 꼬맹이 숙녀들. 하나만 달라는 내게 계속 두개를 디밀어주어 당황시키던.

두리안에도 제철이 있는줄은 몰랐다. 지금은 남국에도 두리안은 제철이 아니라더니, 과일시장은

온통 파인애플과 수박뿐. 조그마한 밴 위로 바늘꼽을 틈도 없이 차곡차곡 쟁여진 파인애플을

내리던 이들의 머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 있었다.

그리고 적재가 끝난 다음인지 파란색 바구니들을 탑처럼 쌓아둔 채 고단한 몸을 뉘인 아저씨.


다른 시장, 또다른 고단함. 고개를 한껏 젖힌 채 불편한 자세지만 잠시라도 쉬어 가실 수 있다면.

짜오프라야 강으로 스미는 방콕의 거미줄같은 운하들, 사람들은 마을버스를 타듯 수상보트를

타고 방콕 깊숙히 들어갔다. 그리고 좁은 운하만큼이나 가늘고 긴 배를 타고 온통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달리는 통에 저런 파란 방수포를 끌어올린 채, 검표원만 배 밖에 남겼었다.

지저분한 방콕의 운하 좌우변의 허름한 수상 가옥들을 쾌속 보트로 휙휙 지나치며 문득 눈에

꽂혔던, Joy is UP이란 저 높은 건물. 선착장에 내리니 문득 풍경이 바뀌었다. 여기는 모던 방콕.

그리고 제법 대도시스러운 복장의 사람들.

그리고 어느 재즈바, 클래식기타를 쥐뜯으며 분위기를 잡던, 그리고 그만큼의 공력을 갖췄던

태국의 아티스트가 있었다. 구불구불한 장발을 커튼처럼 늘어뜨린 채 그가 만들어내던 멜로디들.

그런가 하면 태국의 소수부족, 아마도 북쪽 치앙마이 인근에서 온 듯한 분들이 나무 개구리를

막대기로 긁으며 개구리 소리를 내기도 하고, 원색의 고깔모자처럼 생긴 전통모자를 쓴 채

여행자들에게 팔고 있었다. 대부분은 저렇게 단호한 거절, 그래도 개구리 소리는 그치지 않고.



정말 귀엽게 생긴 백인 꼬맹이들이 짜오프라야 강을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유람선 앞선창에

딱 버티고 서서는 아주 신났다. 찢어질 듯 맹렬하게 펄럭이는 태국 깃발에 얼굴을 들이밀고는

어찌나 재미있어하던지. 녀석의 윗도리도 질세라 나부끼고 있었다.

카오산로드 바로 옆에는 커다란 복권 상설도매시장이 위치해 있었다. 방콕 구석구석을 넘어

태국의 곳곳으로 퍼지는 복권을 대량으로 구매하기 위한 사람들, 그리고 팔기 위한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잔뜩 쌓아둔 채 몇십장 단위로 끊어서 스테이플러로 묶어두는 어른들의

부산함 속에서 혼자 가판을 지키는 아이의 눈빛이 심퉁스럽다. 놀고 싶은 거겠지.

라오스에서 왔다는 Kai, 이 게이 아저씨는 내 선글라스를 굉장히 부러워했다. 아침부터 쌀국수에

맥주를 먹는 내 앞에 앉아 계속 재잘재잘, 며칠 안 되는 사이 세번이나 가서 밥도 먹고 그와 얘기도

나누는 '단골'이 되어버렸다. 남자친구 자랑을 어찌나 하던지 문득 시샘이 샘솟듯 하더라는.

왕실선박박물관에서 온몸을 구부린 채 배 안쪽을 수선하고 있던 아저씨. '메이아이(카메라)?'의

물음에 슬쩍 흘려주던 수줍은 미소가 참 좋았는데.

숙소로 돌아가던 길, 카오산로드로 돌아가는 숏컷shortcut, 지름길을 자기집 안방인 양

차지하고 의자에 누워 티비를 보는 가족들이 넘 웃기고 정겨운 거다. 전등 불빛과 함께

어둑한 골목길을 비추는 티비 조명.

어느 음식점들, 골목 뒷켠에 숨어 외국인이나 여행자는 눈에 띄지 않던 그 곳은 태국의

아저씨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신문을 꾸깃하게 펼친 채 달겨붙는 파리에게 엉성하게

손을 휘저으며.

그렇지만 카오산에만 들어가면 이렇게 꿈틀거리는 문신을 과시하며 벗고 다니는 외국인들 천지.

유럽인, 미국인, 아시아인들, 온갖 국적의 인종들이 몰려들어와선 그야말로 국적불명의 문화를

만들어놓은 해방구의 분위기가 참 좋았는데.

이렇게 온몸 가득 타투가 새겨진 마네킹이 서 있던 카오산의 그 어느 골목, 아무래도 저런 식의

타투는 그렇게 이쁘다는 생각은 절대 안 든다.

공원의 큼지막한 그늘 아래에서, 돗자리처럼 펼쳐진 초록빛 잔디밭에 기대 누운 채 책도 읽고

낮잠도 자는 금발의 아가씨들. 저런 식의 여유를 그렸던 거다. 사진을 찍고는 나도 슬몃

풍경에 끼어들어 책도 보고, 낮잠도 자고. 또 누군가 사진을 찍었을지도.

하얗게 칠해진 길다란 벤치 위에 척하니 양반다리를 한 채 신문을 읽던 아저씨가 있었다.

밑에는 커다란 개 두마리가 녹아내린 듯 땅에 달라붙어서 나른하게 잠들어있었고. 꽤나

한가롭고 평화로워보이는 풍경이었는데, 카메라를 들이대니 개들은 도망가고 아저씨만 웃었다.

조그마한 불당에 들어갔는데 아저씨가 부처상 앞을 싸리빗자루로 쓸다가 잠시 멈추더니 한참을

통화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내게 하나도 의미를 싣지 못한 채 그저 시끄럽고 야릇한 노래처럼

울렸지만, 왠지 부처는 다 이해했다는 듯 빙긋 웃고 있었다.

드디어 돌아오던 날, 짐가방을 질질 끌며 공항버스를 기다리던 때. 따끈하게 덥혀진 보도블록에

앉아 눈앞에서 내달리는 차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사방으로 꼬불거리는 글씨가

창문에 가득 적힌 시내버스 한 대가 멈췄고 사람들을 쏟아냈고 다시 삼켰다. 사람들이 몸싸움하듯

오르내리던 부산함 가운데도 흔들림없던 그녀, 무심한 눈빛으로 버스를 보내버렸다.





Smart와 Nice와 Handsome, 세 개의 그룹이 중첩되면서 나타나는 영역들,

난 어디에 속하는 걸까, 잠시 고민하다가 속편한 답을 찾았다.





난 여집합.


그렇다면 여자의 경우는 어떨까. boy에 대응하는 Girl의 패러독스.

공감이 간다기보다는 재미있어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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