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는데 '카모메 식당'과 감독이 같다. 모타이 마사코라는 주연 배우도 세번째 여자로 등장했었다. 알아채기

전에도 왠지 두 영화가 느낌이 같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조용한 이야기일 거라고.

사실은 그런 첫인상과 감독과 배우 한 명 빼고는 많이 달랐다. 가끔 어색하다 싶을 정도로 담백하거나 심지어

능청스럽다 싶도록 느그지게 빼무는 카메라의 시선은 닮았지만, 느낌은 영 달랐다.


전통과 인습, 혹은 전통과 전설. 그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한 '가치'를 두고 벌이는 싸움을 이렇게 유쾌하게,

또 깊이있게 표현한 영화는 잘 못 봤던 거 같다. 금테둘린 채 무겁게 먼지 속에 가라앉은 '전통'의 이미지가

보기만 해도 앙증맞은 '바가지머리'로 치환되어 버린 순간, 파리의 최신유행 빠숑(fashion)과 촌티 사이를

위태하게 넘나드는 그 스타일을 경계로 꽤나 근본적인 이야기가 작은 마을 속에 꼭 맞게 들어앉았다.


저 아이들은 나중에 사회의 동냥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바가지 머리' 마을로 들어온 '찰랑찰랑 갈색머리'

외부인을 배척하거나 질시하는 일변도가 아니라, 내면에 숨어있던 질투와 부러움을 성찰하고 솔직히

소리내어 고백할 줄 안다. 외부인을 맞아 자신만을 바라보고 '이기적인' 성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친구가 되고 덩어리로 뭉쳐든다. 그렇게 열린 채로, 나이많은 사람부터 무서운 엄마까지 모든 사람들이

'전통'이라며 예스라고 할 때 쉼없이 물음표를 매달고는 급기야 전통에 반대하며 가출도 감행하고 시위도

하는 거다. 커서 멋진 노를 외치는 멋진 데모꾼이 될 거다.


비록 살색그림 가득한 빨간 책에 열광하고, 슬슬 철봉에 거기도 문대는 맛도 알아버린 장난꾸러기 녀석들이긴

하지만, 만약 '어른이란 타인을 배려해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꼬맹이 아버지의 기를 쓰고 멋져보이려는 말이

맞다면 녀석들은 이미 어른인지도 모른다. 마을의 룰, 규칙, 전통보다 먼저 새로 들어온 사람을 생각하고,

그런 '전통'이 깨져나갈 때 어쩔 수 없이 아프게 될 사람을 또다시 먼저 생각하는 녀석들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를테면, 바가지머리를 유지하는 건 누군가에게 싫은 일이 되니까 반대지만 그렇다고 바가지머리를 없애는

건 또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니까...어째야 할지 모르겠다며 우는 거다.


그 아이들과 미용실 아주머니의 화기애애하고 다정한 분위기는 수미상관, 그렇지만 아이들의 머리모양은

바뀌었다. 바리깡으로 밀리고 나서는 아직 형태를 잡지 못했다. 다시 바가지 머리로 길들여지지는 않을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착하게도, 강한 척 하지 않고 괜찮은 척 하지 않고 울어버렸댔다. 무언가를

바꾸고 변화시킨다는 건 그런 아픔을 모두에게 남긴다는 걸 고백함에 다름아니었다. 아주머니 역시 어른이니까

그 어른스러운 아이들에게 우악스럽고 일방적인 아픔을 전가하진 않을 거다. 어른이니까 조금은 더 양보하고

참아주면 좋겠다.


바가지 머리, 그런 거 하나를 바꾸는데도 이렇게 다치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다. 깔끔하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갈리지도 않는다. 어쩌면 모든 건 변하며 사람은 늙으니까, 실은 모두가 피해자인지도 모르겠다. 어른인 척은

아니어도 최소한 나잇값은 해가면서, 상대가 짊어지고 있는 아픔, 짊어지게 될 아픔은 헤아려 볼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생떼 피워가며 빨갱이니 뭐니 난동피우는 늙은이들, '反기성세대'라며 갈아엎자느니

죽이자느니 증오의 언어를 뱉는 젊은이들, 둘다 촌티 풀풀 나는 바가지 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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