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에서 몇 번 본 적은 있었다. 아티스트가 온몸을 기울이며 커다란 화폭 앞뒤로 격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며,

 

손끝에서 사방으로 튀던 물감방울이며. 그런 이미지가 그대로 담긴 '드로잉쇼'의 티켓함.

 

생각보다 크지 않은 장충동 웰콤씨어터에는 R석과 S석이 있었는데, 앞섶에 앉은 관객들에게는 아예 입장할 때

 

비옷이 제공되었다. 대체 얼마나 물감비가 쏟아져 내리려나, 사방에 마구 흩뿌리는 광란의 분위기가 연출되려나

 

조금 걱정도 되고 묘하게 설레기도 했는데. 생각보다는 물감 한방울 휘날리지 않는 깔끔한 공연이었다.

 

 

공연 중에는 카메라를 꺼내들지 않는 게 공연과 배우와 관객들에 대한 예의염치. 근 한시간반에 걸친 공연이 끝나고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커다란 그림을 배경으로 배우들이 사진 촬영 시간을 안배해 주었다.

 

 

굉장히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배우 중 한 명. 대사 하나 없이 보여지는 그림 만으로 극을 끌어가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거다. 특히나 그림을 즉석에서 그려내는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고는 해도 완성되기까지, 적어도

 

관중의 감탄을 얻어낼 만큼의 윤곽이 드러나기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가 관건일 터.

 

 

그럼 틈새를 역동적인 액션과 의미를 알 수 없는 몇 마디 괴성으로 이루어진 퍼포먼스로 때론 진지하게, 때론

 

코믹하게 채워나가는 걸 지켜보는 자잘한 재미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즉석에서 그려진 그림들의 선 하나,

 

실루엣 하나가 공연 전반에 흐르는 강렬한 에너지와 역동감이 그대로 담긴 듯 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공연이 있던 웰콤씨어터. Welcome을 왜 굳이 웰콤이라 부르나 했더니 철자부터가 달랐다. Welcomm.

 

 

엉거주춤 선 사람과 쪼그려 앉은 사람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저 그림은, 유머러스하고 명료하면서도 살짝

 

젠틀하다는 느낌마저 전해준다. 왜 쪼그려앉은 사람에게서는 머리에서  저게 나가는 걸까.

 

 

웰콤씨어터 건물 자체도 요모조모 뜯어볼 만한 구석이 많았다. 어느새 길어진 햇살마저 뉘엿거리는 시간대엔 더욱.

 

 

 

다음에 이 쪽에서 공연을 볼 일이 있다면, 저 의자에 가만 앉아서 기다리는 것도 괜찮겠다. 혹은, 아무 일 없이도

 

근처에 들를 일이 있다면 그저 앉아서 책 한권 뚝딱 읽고 일어서도 좋을 듯.

 

 

동대입구역에서 웰콤씨어터까지 왔다갔다 하는 길 위에서 만난 이쁜 건물 장식 하나.

 

 

그리고, 이 날 드로잉쇼를 보기 전 저녁식사로 먹었던 빠네 파스타와 먹물도우 피자.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찍었던 풍경과 공연이 끝난 후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은 후의 풍경이 워낙 다르다.

 

어쩌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보다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는 게 더 많은 걸 공감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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