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작지 않은 강, 슈프레(Spree) 강변으로는 과거 독일 분단시기의 유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독일이 동서로 나뉘고, 동독 내에 소재하던 수도 베를린 역시 동서로 나뉘었던 그 시절, 체제 경쟁이 심화하면서 동독은 서베를린의 구획을 온통 장벽으로 둘러싸버리기로 한 것. 그게 베를린 장벽의 초기 모습이었다. 물론 '클래시 오브 클랜'같은 게임을 보면 알 수 있듯 장벽이 점차 업그레이드되면서 내구성도 단단해지고 강화되는 것처럼, 이 장벽도 점점 최신의 기술적 진보를 더해 걷잡을 수 없이 삼엄해졌고.

20여 킬로미터에 이르던 그 장벽이 일부 구간, 약 2킬로미터 정도로 남아있는 곳이 바로 이곳 East Side Gallery다. 말그대로 거리의 갤러리, 장벽을 미술관 전시품처럼 보전해 놓은 곳. 


이른 아침에 도착해서 한번 따라가보기로 했는데, 상상보다 충격적이었다. 장벽 자체는 이렇게 얇고 허름했구나 싶어서.


보전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듯, 여기 보이는 그래피티들은 전부다 최근의 것들. 그러니까 '훼손'이랄 수 있겠다.


1961년 이래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된 1989년까지 장벽을 넘으려다 숨진 사람들의 공식적인 숫자는 163명이라고 한다. 그 숫자만큼 해당 년도에 표기해 둔 이 작품은, 그렇지만 공식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탈주 시도자와 은폐된 죽음들을 놓치고 있을 거다.


누군가 가져다둔 화환. 아마도 여전히 그 상흔을 생생히 갖고 있는 누군가겠지.


이렇게 장벽에 자그마한 구멍을 뚫어둔 것처럼 묘사해둔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작은 구멍 하나로부터 장벽이 무너지리라는 기대 혹은 다짐.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가 끝나는 지점에 '장벽 박물관(The Wall Museum)'이 있다는 표지가 곳곳의 아스팔트 바닥에.


그렇지만, 동방의 여전한 분단국가에서 온 이가 새삼 감회에 젖기엔 이미 독일 통일은 역사가 되고 말았다. 이제 통일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마구 그려댄 그래피티로 장벽은 훼손되고, 그 코앞 전봇대나 가로등에는 온통 난삽한 광고 뿐이다. 이미 27년전이라니, 믿기지 않지만 이미 시간이 그렇게 지났다.


장벽이 던졌던 문제의식, 혹은 장벽을 남기며 사람들이 남기고 싶었을 자유라느니 정의라느니, 그런 가치들은 이제 얼마나 싱싱하게 남아있을까. 아니면 이들은 이미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젖히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느라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부러운 일이다.


장벽 너머 보이는 슈프레강, 이 작은 강은 대체로 동독의 영역에 속한 채 군사 대치중이었기 때문에 강에 아이가 빠졌을 때 모두가 손을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자칫 상대편의 총격을 입을까 두려웠기 때문인데, 이후 인도적인 조치를 취할 때에는 협조하도록 원칙을 세웠다고.


자꾸 한반도의 상황과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 없다. 5차 핵실험이 벌어지고, 남북한 양측의 '최고존엄'이 전쟁을 부추기는 언어를 주고 받는 상황이다.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진, 동독과 구소련 정치지도자 간의 유착관계를 비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버전으로 치면, 글쎄, 두 명은 누구여야 하려나.


The Wall Museum 내부, 생각보다 전시물도 많고, 장벽이 생긴 이래 철거되기까지의 역사에 대한 시청각 자료가 엄청 많아서 둘러보는 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사진은 처음 장벽을 쌓아올릴 때 쓰였던 허름하고 기초적인 장비들.


그리고 최초의 기초적인 망루. 슈프레강 넘어 보이는 건 서베를린.


다리 중간도 이렇게 엉성하고 속이 빈 벽돌블럭으로 담을 쌓고.


그러다가 1989년, 외부 세력의 개입을 적절히 차단해 가면서, 또 적절히 활용해 가면서 서독과 동독은 결국 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맞이한다. 박물관 내 영상 자료들을 따라가다보면 그 생생함이 그대로 전해질 지경이다.


부럽기도 하고, 천운이었다 싶기도 하고, 또 한국과는 굉장히 상황이 달랐다 싶기도 하고. 일단 베를린이 엄청 어색하게 동독 한복판에 박혀 있었던 데다가 동독과 서독간에 전쟁 같은 대규모 유혈사태도 없었으니. 한국은, 그리고 북한은 독일과 같이 분단 체제를 역사로 되돌릴 수 있을까.





싱가폴 차이나타운에서 이십분 정도 남쪽으로 걸어가다보면 나오는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 red dot design museum.


매년 디자인이 출중한 제품들에 수여하는 상인 레드닷 어워드를 받았거나 그에 준할 만큼 훌륭한 제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인데, 아직 한국사람들한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듯 하다. (가이드북에도 안 나와있는 듯)



이쁜 빨강색으로 온통 칠해진 맵시있는 건물이 멀리서부터 눈길을 끈다. 


그 건물 전체가 뮤지엄인가 했지만 그렇진 않고, 이렇게 생긴 샵을 포함해 일층을 쓰고 있었다. 샵에도 디자인이


살아있는 제품들을 꽤 많이 전시, 판매하고 있었지만 가격대가 만만치 않아 패스.


샵 안을 둘러보고 이렇게 생긴 문을 지나 뮤지엄으로 입장. 입장료는 성인 8싱가폴달러, 학생 4싱가폴달러.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전시품은 이제 꽤나 널리 알려진 이 시계. 한국인 디자이너가 만든 이 시계는 시각장애인들이


시계를 감촉하는 것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고안된 시계다. 가운데서 뱅글뱅글 도는 쇠구슬이 시침이던가.


그리고 3D 퍼즐형태로 조립분해할 수 있는 반지. 



디자인이 매끈한 자전거다 싶더니 역시. BMW에서 만든 자전거.


목하 국내에서도 대유행중이라는 인디언텐트의 원조. 



눈꽃 모양의 육각형 부품들이 이어져 만들어진 커다란 전등갓.



싱크대라거나 주방용품에 대해서도 디자인을 어떻게 할지 고민은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보관 및 활용이 용이하도록 고안된 물병으로 장식된 한쪽 벽면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입체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디자인된 타일로 꾸며진 한쪽 테이블 위엔 올해의 레드닷 수상작 도록이.


갈수록 기계적 아름다움에 대해 눈이 돌아가는 건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이런 식의 나염이 살아있는 의자라거나 은빛으로 번쩍거리는 미려한 휠은 누가 봐도 이쁘지 않으려나.



제품들이 주제별로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 빙 둘러선 가운데 공간에는 기업 디자인과 포스터 작품들이 전시.



중간중간 한국어도 보이고 한국에서 쉽게 접했던 것들도 보였는데 예컨대 AP통신의 한국어 버전 명함 시안이라거나


NHN의 환경친화적 명함 아이디어 시안이라거나. 


그리고 현대차에서 진행했던 전화기-우산 디자인 아이디어도 전시되어 있었다. 전화기를 쓰기 편한 우산, 이라는


컨셉을 생각해 내는 것도, 또 그걸 어떻게 구현시킬지 방법을 생각하는 것도 모두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각종 전시회라거나 공연, 아니면 공공 목적에 부응하기 위한 포스터들. 꽤나 많고 한장 한장 디테일한 설명이 있었지만


몇몇 눈길을 잡아끌던 아이들만 사진으로 담아봤다.


포토그래퍼들을 초대해 강연을 연다는 걸 고려한 포스터. 사진기에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피아노학원의 포스터를 이렇게도 만들 수 있다. 블라인드를 피아노 건반인 듯 어루만지는 장면들로 가득.


전쟁과 평화 뮤지컬(인지 오페라인지)의 포스터. 전쟁시와 평화시의 레드크로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으랴만은 한장의 이미지는 백마디 말보다 강력하다.


아동 성폭력이라는 불편하고 어려운 주제를 어떻게 이미지화할 수 있을까. 얼음에 갇힌 꽃이라면 어떨까.


혹은 쇠고랑으로 구속받는 꽃의 이미지라면 어떨까. 


와인의 맛과 향과 색을 포스터에 담고 싶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코카콜라의 광고나 디자인적 요소들은 이미 평판이 자자하지만, 여전히도 이렇게 신선할 수 있는 거다. 워낙 깊이


각인되어 버린 로고 디자인의 일부만을 활용해서도 바로 코카콜라를 연상시킬 수 있는 유려한 디자인.

이건 내가 사고 싶을 정도로 맘에 들었던 아웃도어 용품. 가볍지만 단단하고 심플한 테이블과 의자.


이제 뮤지엄이나 갤러리에서 애플의 제품들이 예술품인 양 전시되어 있는 건 놀랍지도 않다. 


이렇게 예술 작품처럼 핀 조명을 맞으며 홀로 서 있어도 전혀 주눅들거나 허름하지 않은 디자인이라니.


이 시계를 샵에서 팔길래 사고 싶었는데. 돈이 웬수랄까나.ㅋ


그리고 모빌처럼 모양이 변화하는 전등갓. 꽉 오무리고 있을 때도 활짝 열려 있을 때도 빛이 좋다.


스토케(Stokke)의 각종 아기용품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고,


BMW의 차량용 베이비시트가 전시되어 있기도 하고.


대나무로 만든 안경같은 것도 있고.


다소 민망하지만 참신하고 단아한 형태의 성인용품도 전시되어 있어서 꼼꼼히 살펴보기도 하고.


GPS기능이 내장되어 지갑의 위치를 실시간 파악할 수 있는 지갑. 자주 잊어버리는 사람들에겐 희소식인 아이템.


플라스틱으로 만든, 그렇지만 세련된 플루트. 중학교 때 싸구려 모양 플라스틱 단소로 맞았던 기억이 왜 나는 거지.


디지털 저울이 자체에 내장된 여행용 캐리어.


아주아주 매끈하게 생긴 알루미늄 책꽂이. 


해바라기 모양의 샤워기.


집에서 조립해서 쓸 수 있는 컴퓨터. 예전엔 라디오를 조립하는 키트가 있더니 이제 컴퓨터 조립 키트가 파는구나.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꼼꼼히 볼 만한 아이템들이 한 가득. 그래도 세시간 정도면 충분했던 거 같다. 


출장으로 싱가폴을 갈 때마다 자주 들른다는 친구의 이야기로는 전시품들도 규칙적으로 바뀌니만치 갈 때마다


만족스럽다고. 다음에 또 싱가폴 갈 일이 있으면 꼭 다시 들르고 싶은 뮤지엄이다.




라스베거스, 하면 도박과 화려한 쇼가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라스베거스가 있는 네바다주는 원자폭탄을 최초로

 

테스트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사람들은 라스베거스로 원폭 실험 관광을 오기도 했다니 인류 최악의 무기인

 

원폭에 쏠렸던 당대의 관심과 열광을 짐작할 만 하다. 게다가 또 하나, 외계인 시체가 숨겨있다느니 하는 온갖 루머의

 

근거지가 되는 비밀 공군기지 area 51 역시 네바다주에 위치한 곳이니, 두가지 이슈를 모두 다루는 원폭박물관은

 

꼭 가보길 권하고 싶다. 영어 이름으로는 National Atomic Testing Museum. 이곳에선 원폭의 위력도 체험할 수 있다.

 

 

생각보다 훨씬 내용이 많고, 특히 원자폭탄이 갖는 의미라거나 네바다에서 역사적으로 원폭 실험을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구 소련 등 국제정치적으로 어떤 반향이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들을 갖추고 있어서 재미있었다. 일일이

 

글을 다는 것보다는 현장에서 사진에 담아온 내용들을 확인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침묵 모드로 사진만 줄줄.

 

 

 

최초 원자폭탄 실험을 위해 갖췄던 생활시설. 이때만 해도 피폭의 위험성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더랬다.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이 이뤄진 곳에서부터의 반경. 이른바 zero point로부터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일본에 떨어졌던 원자폭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떨어졌던 아이들의 이름은 Little Boy와 Fat Man.

 

그리고 이제 지상 실험에서 슬슬 지하 실험으로 넘어가게 된 경위와 설비에 대한 설명이 나오기 시작한다.

 

사실 이 원폭박물관에 대한 총체적인 감상은, 다소간 미국 정부의 프로파간다와 핵무기의 필요성에 대한 홍보를

 

맡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미국의 원폭 실전배치로 촉발된 냉전시기의 핵무장과 군비경쟁은, 그 상당부분의

 

책임을 소련에 전가하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면 네바다의 핵폭탄 실험 지역을 배경으로 하거나 소재 중 하나로 끌어왔던 영화들도 꽤나 많았던 거 같다.

 

마네킹이 막 놓여 있고, 한쪽에선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핵폭탄을 터뜨리는 장면들. 일종의 문화적인 현상이었을 거다.

 

 

 

 

매 테스트마다 여기에 나온 리스트 순서에 따라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자폭탄의 위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그라운드 제로 씨어터'. 실제 폭탄이 터질 때의 소리와 바람과 진동을

 

실감할 수 있는데, 영상과 더불어 제법 실감도 나거니와 꽤나 으스스한 체험이다.

 

 

이 곳 원자폭탄 실험과 관련된 시설에서 일했음을 증명하는 자격증 같은 것도 발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인증서의

 

배경이 저렇게 으스스해서야, 받는 사람들이 어떤 기분으로 받았을지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이게 그 테스트 중에 있었던 모델하우스에 놓였던 마네킹들. 의복의 재질이 뭐였는지 등등에 따라 폭탄의 효과를

 

측정하고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다고 한다.

 

 

 

 

 

이렇게 직접 버튼을 누르는 체험..도 할 수가 있다는데, 이건 사실 굉장히 불편한 체험 시설이었다. 한국으로 치자면

 

열손가락에 반지끼고 왜적장을 껴안고 함께 뛰어내리는 식의 '논개 체험'을 시키는 것 같달까. 대체 누가 원자폭탄을

 

발사하는 버튼을 눌러보고 싶을까. 그리고 그런 체험 내지 교육을 왜 시켜야 할까.

 

 

미국과 구소련 양국간의 핵무장 경쟁은 어느 순간 협력 기조로 변화해서 소련의 군사 전문가나 정치인들이 이곳에 와서

 

실험시설을 시찰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었다고 한다.

 

그리고 근 50여년간 숨가쁘게 달려온 핵무기 발전사를 직접 증거하는 자료들과 풍부한 내러티브가 끝나갈 무렵

 

관람객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준비된 몇 가지 부스들. 우선은, 방사능에 대한 차폐 효과를 직접 실감케 하는.

 

알루미늄과 종이와 유리 등이 방사능을 얼마나 막는지, 방사능 탐지기로 측정해보도록 하는 체험 시설.

 

그리고 방사능 폐기물이 어떻게 분류되며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겸한 체험 자료.

 

미국 전역에 걸쳐 있는 핵무기 관련 시설물들이 어디에 어떻게 설치되어 있는지, 이런 자료를 공개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2014년 현재까지의 자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화면. 80년대 어간부터는 거의 변화가 없어진 걸로 봐서

 

아마도 대부분의 무기가 경량화, 소형화되어서 더이상 시설물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방사능 폐기물은 사실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나, 미국조차 해결하지 못한 문제지만 최소한 여기는 이렇게

 

교육을 하고 있다는 점. 이렇게 잘 갖춰진 자료와 체험 설비를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하려 한다는 자세가 눈에 밟혔다.

 

그리고 이렇게 네바다 핵폭탄 실험 지역 인근에서 끊임없이 방사능량을 측정하며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점도 역시.

 

 

다소 프로파간다적이고 미국중심적인 결론, 북한을 비롯한 국가들이 핵무장의 위협을 하고 있으며, 일본이나 한국 등은

 

핵무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친절한 정보가 원폭박물관의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던 내용.

 

그 다음 전시공간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던 area 51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로스웰의 외계인 이야기라거나 온갖 UFO 목격담과 관련된 자료들을 담고 있기도 했고, 비밀 공군기지인

 

area 51에 대한 전반적인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는 곳이었다. 외계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재미있을 듯.

 

그리고 원폭박물관의 센스돋는 입장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 입장권마다 다른 외계인의 ID처럼 다른 내용을

 

담고 있고, 뒷면에는 아래와 같이 해당 외계인에 대해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Kenooz 레스토랑서 기필코 저녁 한 끼 먹어볼라다가 오늘은 또 '오늘부터 내부수리'란다. 결국 벼르고 별렀던 대충야자

밀크 쉐이크는 맛도 못보고, 걍 오다가다 대추야자만 실컷 따먹었다. 어찌나 달콤한지 나중에 배가 아릴 정도..

Shali에 올라 석양을 보려는데, 앞에서 파블로와 마르코가 내려온다. 이미 끝났대나..그래도 정상에서 벌겋게 불붙은

하늘을 보며 시와의 마지막 해를 잔뜩 감상해줬다. 생각해 보면, 아침에 일어나 해뜨는 것보고 미친 것처럼 사막으로
 
내달려 하염없이 사막을 바라보다가, 저녁이면 해지는 것 보고 별 총총한 하늘을 원없이 구경하다가 자고.

요새 계속 그런 식이다. 그렇다고 전혀 식상해질 줄 모르는 이런 스케줄..언제 또 가능할지.

샤워하고 버스를 탔는데 얼마 못가 차가 '퍼졌다'. 고친다고 운전사가 꾸물꾸물 움직거리는 새 버스 앞 아스팔트 도로에

누워 어젯밤만큼 멋진 밤하늘을 뚫어져라, 눈깜빡이는 것도 아까워하며 바라보았다. 별똥별은 역시 그냥 떨어져라,

냅뒀다. 눈에 담아가고, 마음에 담아가고, 넘칠 만큼 길어가고 싶은 이미지와 감흥과 감각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시와는.


차가 고장나서 한 30여분 아스팔트 바닥에 대자로 누워 칠흑같은 밤에 한가득 펼쳐진 별들을 잔뜩 바라본 거 빼고는,

좀체 정신을 못차리고 잠만 집요하게 청하고 만 밤 버스여행이었다. 문득 잠이 깨서 눈뜨니 왠 생경한 버스 터미널,

알렉산드리아란다. 6시 20분. 바다내음과 잔망스러운 모기떼들을 보면 알렉산드리아 같기는 한데, 사람들 표정이나

공기가 영 낯설다. 굳은 표정과 어수선하고 차가운 공기. 시와의 분위기나 호흡에 꽤나 익숙해져 있었던 게다.

그래도 친절한 아저씨 한분이 시디가베르 정류장 근처 내가 가려던 호텔까지 안내해 주어 금방 체크인할 수 있었다.

체크인하고 샤워 한번 하고는 바로 나와서, 포트 콰이트베이. 등대의 모습은 찾을 길 없고 그저 귀여운 외양의 요새만

서 있는데, 무엇보다 다시 혼자가 되어 사진찍어줄 사람도 없어지고 얘기할 사람도 없어졌단 게 좀 아쉬웠다. 그런 거다.

누군가에게 등을 보여주고 등을 보고..그렇게 나란히 서는 것. '드래곤 라자'의 후치처럼 그렇게 등을 보여주는 사람을

왕이라 생각지는 않더라도.

이제 어디로 가볼까. 생각해보면 은근히 빡시게도 여기까지 왔다. 좀 쉬엄쉬엄, 오늘은 그렇게 한 호흡 골라낼 생각인데

또 모르겠다. 트램을 한번 갈아타고 '폼페이의 기둥'을 봤다. 날 일본인이라 오해한 이집션이 일본어 한번 실습해 보려고
 
말을 걸었다가 함께 도서관이랑 기둥이랑, 사진도 번갈아 찍어주고, 근데 막상 또 한명이 생기니 불편하다. 해서 먼저

보내고, 혼자 카타콤을 향했다. 일종의 지하 공동묘지랄까, 죽음의 냄새가 짙게 서린 곳.

일본인 집단1과 프랑스 패키지집단2가 계속 앞길을 가로막아서 아예 확 뒤처져 유유히 돌아볼 생각도 했지만,

내부가 워낙 공포물스러웠던지라. 시와에서처럼 미라 한두어구 있었더라면 정말 식은땀이 흘렀을 게다.

지상으로 다시 나오니 폭싹 지쳐버렸다. 마땅히 걸을 거리도 아니고 해서, 택시 잡고 7EP 부르는 걸 4EP로 깍았다.

방금 점심삼아 먹었던 망고주스-거의 중독수준으로 마시고 있다..-랑 꿀 들어있는 빵 값이 빠진 셈이라고 어찌나

기쁘던지.ㅡㅡ; 아저씨가 영어를 잘 못하는데, 대우/현대차 지나갈 때마다 알려주며 한국좋다고 그러길래, 나도 이집트

좋다고, 멋지다고 엄지손가락을 쭉쭉 뻗어줬다. 그레코로망박물관. 로마식의 유물은 터키서도 많이 봤었지만, 마치

카타콤에서 봤던 아누비스가 로마틱한 옷을 입고 있었듯이 조금씩 융합된 유물들을 감별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던 듯.

이집트 유적도 그렇고.

지중해 도시로 이집트의 대체적인 분위기와 상당히 이질적인 알렉산드리아마저 모스크와 미나렛들은 빼곡했다. 그중에

이 사원은, 중세까지의 황금기를 거치고 이민족들의 지배를 몇백년간 받음서 황폐해진 이집트에서 근대에 들어와 다시금

피워낸 이슬람 건축문화의 백미라고 하던가. 어찌보면, 고대 이집트에서 탑처럼 세워낸 오벨리스크는 미나렛에 상응하고,

히에라글리프(상형문자)를 빼곡히 채워낸 건물 벽면은 모스크에 잔뜩 새겨진 코란문구와 아랍어에 상응하고...그런

식으로 꾸며내는 방식을 이어온 듯하다. 물론 그 내용은 고대 이집트 문명과 이슬람 문명으로 판이하게 달랐다지만,

그걸 담아내는 그릇, 그것을 위한 상상력은 역시나 역사적인 맥락을 이어왔단 추측..어쨌거나 우리나라에도 이런 멋진

모스크가 잔뜩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막판에는 시든 풀처럼 지쳐서 아무생각없이 숙소로 돌아와 샤워하고 잠들어 버렸다. 한 세시간쯤. 그러고 보니 여태껏 푹

낮잠을 자본 게 시와의 야자수 정원에 묶여있던 해먹에서 한번뿐이었다. 생각보다 강행군이었는지도. 자고 일어나 모처럼

-무려 나흘만에-돈 계산을 해볼까 하고 다 뒤적여 꺼냈더니 복대 안의 달러가 모자란다. 최근에 정산해 본 이래로 여행자

수표(T/C) 한장 환전한 것밖에는 없는데, 허리 쌕은 잘 때도 껴안고 잤는데, 떼어놓은 적이라곤...언제지...? 어디서, 누가
 
그랬을지, 누가 그랬을 가능성이 있는지 생각해 보기도 싫다. 여태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좋은 기억들만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내가 어디에서 흘린 게다.


저녁 한끼 덜먹고 돈 덜 쓴다고 복구될 것도 아니고, 걍 지금까지처럼 크게 구애받지 않는 선에서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근데 결국 저녁은 1.5EP(300원짜리) 망고주스랑 1EP(200원짜리) 펠라페. 윽..내 나흘치 노가다 일당.


어딜 가나 말을 걸어주고 친구라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 포트 콰이트베이에서나, 폼페이의 기둥에서나, 그레코로망

박물관에서조차. 때론 무지 고맙고 재미있고 그런데, 때론 내가 혼자 조용히 다이어리를 정리하거나 론리플래넷을 뒤적일

여지조차 치고 들어온다는 사실에 짜증이 살짝 일 때도 있다. 여행자 수준의 영어를 되풀이하며, 도식적이라 할 만한

자기 소개와 인사말을 건넨 후 이집트 좋은지, 이 지역 좋은지 계속 물어보는 그들.


여행, 확실히 친구랑도 젤 마지막에 해야한다는 이벤트인 건 확실하지 싶다. 그래도 여기서 만난 사람들하고 이렇게

저렇게 서로 맞춰가면서 말을 섞는 것도 나쁘진 않다. 다만 정말 계속 붙어다닐 수 있는 한 명 정도 있으면 훨씬

좋겠단 생각도 들지만. 참, 파블로와 마르코를 또다시 알렉산드리아 거리에서 조우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들 남매에게 펄쩍 안기듯 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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