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도 옆에 바싹 붙어있어서일까, 측도라는 이름의 섬. 바다가 빠지고 나서 거칠한 자갈길이 드러나고 나면


전봇대가 측도로 내달리고 그 옆으론 차들이 드문드문 지나게 된다. 



측도까지 덜컹덜컹 내달린 길이 끝나고, 어디든 차를 세울 만한 곳에 세워두고는 타이어랑 휠베이스를 챙겨보게 된다.


천천히 달린다고 달렸는데도 워낙 모가 날카롭게 선 돌들이 사방으로 튀던 길이었던지라.



조그마한 섬이니 설렁설렁 한바퀴 돌아보는 걸로. 이렇게 담쟁이가 무성하게 건물을 덮고 있기도 했다.


파스텔톤으로 이쁘게 탈색된 슬레이트 지붕. 


윤기나는 새빨간 색으로 물든 고추는 햇살 아래 잘만 말라가고.


멀찍이 서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어느 언덕 위의 집에서는 자잘한 생선을 이렇게 말리는가 하면.


어느집 우체통은 바닷바람을 잔뜩 머금고 이렇게 벌겋게 녹슬어버렸다.



아직 해가 뜨겁던 9월의 햇살을 고스란히 맞고선 허수아비는 덥지도 않은지 깜장색 패딩점퍼를 둘렀다.



탈춤의 춤사위를 시전하는 듯한 몸짓의 허수아비. 금세라도 참새떼들을 쫓아낼 듯한 운동감이 좋다.


서해쪽의 섬은 아무래도 여름철 한철 장사려나. 살짝 피서철을 지났을 뿐인데도 사람 한명 볼 수 없는 풍경에


새빨갛고 굵은 페인트칠로 씌여진 간판이 괜시리 민망하다.



서해의 특징은 역시, 물이 빠진 바다에서 느낄 수 있는 묘한 정취랄까. 황량하고 쓸쓸하고. 그런 느낌이 담뿍이다.



돌아나오는 길, 측도의 가장자리에서 선재도를 향해 섰다.


멀찍이 인천공항에서 날아오른 비행기들도 보이고.


선재도에 다시 오르는 찰나에 잠시 차를 세우고 기념샷.



이효석이니 정지용이니, 지역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있다는 건 지자체들로서는 꽤나 '땡큐'한 일일 거다. 아니,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끼리도 산타클로스의 고향이 핀란드니 아이슬란드니 하면서 툭탁대면서 서로

갖겠다고 야단인 걸 보면, 요새같이 '마누라와 자식들 빼고 다 파는', 심지어 자신조차 좋은 값에 팔기 위해

버둥대는 시대에 정말정말 땡큐한 일일 듯. 강원도 평창의 인물, 가산(可山) 이효석 문학관으로 향하며 가장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

이효석, 그는 '메밀꽃 필 무렵'으로 중고교 교과서를 평정해버린 인물인 거다. 그 밖의 '분녀'니 '화분'이니 몇개

읽었던 작품들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그의 문학관 가는 길목에 문처럼 버티고 선 저 커다란 책들이 보여주듯

다른 대표작들도 많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메밀꽃 필 무렵'의 그 선뜩하고 소름돋도록 아름다운 묘사들의

임팩트가 워낙 크다. 내게 가장 인상깊은 구절은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 운운하던 그 대목.
 
길 오른편으로 선명한 녹색과 노랑색 모자이크가 조그맣게 펼쳐진 논밭 풍경을 끼고 메밀밭에 포위당한 언덕을

조금 올랐다. '소금을 뿌린듯이' 하얗다는 메밀꽃은 8월말에서 9월초쯤에 피는데, 그때 맞춰 이곳에선 지역

축제가 벌어진다 한다. 올해는 축제기간 중 대부분 비바람이 몰아쳐서 영 재미가 없었다는 메밀부침팔던

아주머니의 전언.

그렇지, 이 대목이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풀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굉장히 운치있고 애잔하면서도 에로틱하고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섹시한 묘사. 이효석은 정말이지 푸른 달이 풀포기와 옥수수 잎새를 폭풍처럼 덮치는 광경을

보고 말았던 건지도 모른다.

'메밀꽃 필 무렵'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새겨져 있는 판목, 이효석 문학관 바깥 벽면에 걸려 있었다. 잠시 발걸음

멈추고 좋아하는 구절을 찾아보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장면을 되짚어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길다면 긴,

그렇지만 사실 굉장히 짧아 보이는 저만큼의 글자들 무더기 안에, 물레방앗간의 속살거림이 있고 달이 따르며

비추는 길도 있고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도 생생하게 담겨 있는 거다.

사실 초기 이효석은 당대 식민지 조선의 인텔리 청년답게 사회주의, 러시아혁명에 동조했던 '동반자 작가'의

일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일제가 계급주의 문학을 탄압하기 시작한 30년대 초반, 그리고 이효석 개인으로서는

열흘남짓 조선총독부 검열계에서 일하다가 때려치고 말았던 그 즈음부터 그는 인간의 애정욕이라거나 자연에

집중하는 탐미적인 글들을 쓰기 시작한다.


왠지 굉장히 와닿던 구절. "사상적 동감보다도 시각적 애정으로 첫눈에 끌은 그를 주리야가 사랑하지 않을 리

없었다...사람의 육체에 눈이 있고 심장이 있는 이상 이것은 결코 죄악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하였다...감정의

명령을 잘 좇는 것이 도리어 양심에 충실한 소이가 아닐까 생각하였던 것이다."([주리야], 이효석)

그의 서재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공간에서 지금의 우리가 느끼는 것과 그때 이효석이 자아내려고 했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을 거다. 그가 빵과 버터를 즐기고 프랑스 영화감상을 즐기며 유럽여행을 늘 꿈꿨다고 해서

이걸 단순히 서구지향적이라거나 서구적 취향을 갖고 있었다, 라고 이야기하고 말기에는 그 시절의 '서양'과

지금의 '서양'은 꽤나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거 같다. 그 시절의 '서양'은 뭔가 바다너머, 평생 한 번 가보기도

힘든 그런 곳. 일종의 '피안'이랄까 '노스탵지어' 같은 공간 이미지 아니었을까.


그런 곳을 지향하던 이효석의 지향은 오늘날로 바꿔 이해하자면, '달'이나 '외계' 정도로 알아들음 되려나.

그런 점에서 그를 '서구지향적 모더니스트'라고 하기보다는 '보헤미안' 아님 '노마드(실향민)' 정도로 지칭하는게

좀더 적실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시대적 좌절 속에서 정면으로 맞서지도 적응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취향대로

시대에 반응하던 존재. 빵상아줌마나 허경영 따위 짭퉁 말고, 밤하늘 어딘가 자신이 돌아갈 곳이라 믿는 작은 별

B-612를 그리는 어린왕자 쯤이 이효석의 문학세계의 감수성에 맞을 듯.

그렇지만 지구에 불시착한 어린 왕자같은 그인지라, 한글 실력은 참. 도무지 알아보기도 쉽지 않은 난필이다.

'메밀꽃 필 무렵'이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다는 사실. 이효석의 다른 작품인 '분녀' 역시 영화화되었었다고 한다.

책을 보고 영화로 다시 보게 되면 십중팔구 실망하기 마련인데 저 영화를 봤던 사람들은 어땠을까. 조금은

아슬아슬하고 색정적인 이미지들을 머릿속으로만 그리다가 직접 눈으로 보게 되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자그마한 문학관이 나름 칸칸이 알차게 꾸며져 있어서, 메밀의 효능과 메밀을 활용한 음식들을 구경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돌아나오기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굉장히 담백하고 선굵게 그어진 '화장실' 사인부터 찾아 한숨돌렸다.

문학관이 C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자그마한 정원 한귀퉁이에 섰던 빨간 우체통. 이효석 문학관과 봉평을

홍보하는 무료 엽서에 글을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나중에 배달이 된다는.

정원 한가운데 책상에 앉아 공책을 펼치고 머릿속 단어들을 가다듬고 있는 가산 이효석의 동상이 있다. 마침

누구라도 와서 앉을 수 있게 비어있는 의자도 이효석 옆자리에 마련되어 있어서 함께 사진찍고 돌아서기 딱

좋은 공간인 듯. 그게 아니라도 이렇게 이쁘장하게 꾸며놓은 벤치도 있고.

문학관 안에는 '메밀꽃 필 무렵'의 인상적인 장면 몇몇을 재현해놓은 인형 세트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그 유명한 '물레방앗간' 장면에서 느껴지는 저 생생한 긴장감과 벌떡거림이란. 젊던 허생원의 손끝이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는 것만 같다.

문학관에서 조금 내려와 걷다보면 이내 그 물레방앗간이 나타난다. 허생원과 동이들이 술을 마시던 '충주집'은

원래 실존했던 거여서 예전 위치 부근에 '복원'해 놓았다고 하고, 이 물레방앗간은 이효석 생가를 복원하면서

함께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한다. 그렇지만 낮에도 저렇게 깊고 완고한 어둠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라니 왠지

이전에 존재하던 '레알' 물레방앗간과 크게 다르지도 않을 거 같다.

이효석 문학관 주변은 온통 메밀전, 메밀동동주를 파는 집들이다. 이효석의 문학 작품 하나 덕분으로 지역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메밀. 집집마다 초가지붕과 옹기 조각 따위로 한껏 분위기를 내었지만 이 집이 그 중에서도

가장 출중한 듯. 가게 입구 어름에 동이나귀와 성처녀나귀가 장승처럼 버티고 섰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다른 버전의 성처녀상. 푸훗.

봉평 재래시장에도 들를 겸 섭다리를 건넜다. 한번 장마에 떠내려가고 나면 다시 만드는데 오백만원이 든다는

섭다리는, 작년 재작년에는 거푸 떠내려갔었지만 올해는 어째 물이 찰랑찰랑하더니 다행히도 떠내려가지는

않았다고 했다. 

걷다가 살짝 출렁출렁하는 느낌이 들어 장난삼아 쿵쿵 뛰었더니 금세라도 밑이 쑥 빠져버릴 것만 같다. 소나무로

틀을 짜고 거적대기와 소나무가지들을 위에 올려서 흙으로 다진 거 같은데, 삐죽삐죽 튀어나온 소나무 가지들도

그리고 자잘하게 균열이 그려져 있는 다져진 흙들도 재미있다.

그에 반해, 이건 정말 아니다 싶던 것들. 말라죽거나 말거나 듬성듬성 갖다가 꼽아놨으니 내 할일은 다 했다고

말하는 듯한 이 인도변의 '꽃.밭.'. 게다가 그 옆에 저 얼룩덜룩한 무늬의 보도블록은 뭔가.

으악. 이건 너무너무 촌스럽고 하나도 도로 바닥과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인 거 같다. 무슨 꽃인지 모르겠지만

하얗고 뻘겋고 시퍼런 얼룩이 보도블록에 마치 곰팡이처럼 슬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회색빛 블록이나

검은빛 아스팔트와 맞닿아 있는 상황에서 전혀 쌩뚱맞아 보이는 부조화를 보인다는 것도. 뭔가 튀고 싶었다면

차라리 이효석이나 다른 문인들의 작품을 한글로 프린팅해 넣던가.

봉평 이효석 문화마을, 아기자기한 것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어져 있는 데다가 워낙 고즈넉한 동네여서

산책하듯 걸으며 즐기기 딱 좋은 마을인 거 같다. 다음번에는 8월말이나 9월초, 흐뭇한 달빛아래 메밀꽃이

소금을 뿌려놓은 듯 새하얗게 빛나는 때 와봐야겠다. 혹시 그때는 나도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길을 달리다 문득 내다 본 하늘. 사방으로 종횡하는 고가도로와 때마침 머리 위를 지나려는 육교, 그 위에서

흰색 솜뭉치들을 흩뿌려놓은 하늘.

우. 브리즈센터 앞에서 섹시한 포즈를 잡은 그녀의 입에 말풍선을 달아준다면 딴 한 단어. 우♡

단수이로 달리던 길, 어느 다닥다닥한 건물이 비탈을 이루고 있었다.

유난히 새파란 하늘, 오토바이들이 길 앞으로 분리된 좁은 도로 양쪽을 틀어쥔 건물들의 압박.

기차가 지나가는 어느 길목. 어렸을 땐 늘 집앞에 기차가 지나가면 좋겠다 싶었는데, 요새도 변함없는 생각.

어린이 보호구역...이라 하던가. 나라마다 다른 특징을 좀더 선명하게 잡았어야 했는데 차의 속도를 이기지 못했다.

보통우편은 초록색, 급행은 빨간 색. 왜 난 이걸 보고 양념반후라이드반이 생각나는 걸까.

주펀의 메인 골목 들어가기 전, 오랜 건물들의 1층은 전부 사설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2층은 사람이 살고

1층은 외지인들의 차에 양보하는 그들의 미덕.

주펀에서 내다봤던 해안선. 삼면이 바다로, 그리고 그 바다는 또 철조망으로 겹겹이 둘러쳐진 우리나란 참 특이한 곳.

구비구비 골목길을 버혀내어 임오신 날 밤에 펴내오리라. 주펀의 홍등가 골목길을 숨겨둔 산비탈 마을.

타이페이의 도로를 달렸다. 어디든 도시는 공사중, 어쩌면 이 거대한 무생명의 존속을 위해 쉼없는 공사는

필연적이다. 늘 어딘가 파헤쳐지고, 무너지고 새로 쌓고.

스쿠터의 빨간 브레이크등을 멍청히 보고 있으면, 그리고 누군가가 지극히 무성의하게나마 '레드썬' 비스무레하게

우물거려주기만 하면, 금세라도 최면에 걸려버릴 거 같다.

어둠 속에 둥실 떠올라 낮과는 다른 운치를 녹여내는 한자어 빼곡한 간판들.

베이먼. 여기도 저렇게 관리 안하다가 싸그리 불타 버리면 어떡할라고.

룽산쓰 옆의 화시제야시장을 갔다가 지하철 역사 옆 광장의 벤치가 홈리스들에 점령당한 모습을 보고, 카메라가

반사적으로 올라갔다가 이내 뜨끔했다. 겸연쩍은 김에 그들 위에 가로놓인 기둥에 그려진 그림에 급호기심.

끝내 풀어내지 못한 마지막 궁금증은, 밤이면 밤마다 이토록 화려하게 거리를 불밝히는 저 폭죽같은 모양의

네온사인들, 그들이 광고하는 '빈랑'이 뭘까 하는. 뭘까. 뭐였을까. 무지무지 궁금했는데 끝내 맛도 못 보고

제대로 풀어보지도 못했던 타이완의 수수께끼. "빈랑(賓郞)"이었던가, 그게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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