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마다 동네 주민들이 모이고 호스텔에 체류 중인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던 연주회들, 혹은 심지어 패션쇼까지 벌어지던 숙소.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의 셀리카. 이날은 하루종일 걷고 숙소로 돌아왔더니, 손풍금..아코디언 연주회가 막 시작한 참이었다.

 

바에서 파는 생맥주를 한 잔 들고서, 낯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건배도 하고 노래에 대해 속삭이기도 하며 노래를 즐기던 그 시간들.

 

연주는 한두 곡으로 끝나지 않고 거의 한시간 반 가까이 계속되었던 거 같다. 덕분에 맥주는 한잔 두잔 늘어만 가고. 옆에 유쾌한

 

아저씨와의 시덥잖은 농담도 점점 더 웃음이 빵빵 터지는 농담으로 바뀌어버리고.

 

원래 감옥이었던 공간, 잠시 갤러리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호스텔로 바뀌었다는 곳, 그래서인지 벽면 가득

 

그래피티가 아낌없이 채우고 있었다. 숙소 내부도 제법 독특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잘 꾸며져 있었고.

 

이런 발랄한 그래피티라니. 오천년 묵은 스핑크스는 아마 이런 모습일 게다.

 

호스텔과는 상관없지만 바로 옆에 붙어있던 건물의 지하 주차장 입구.

 

그리고 둘째날 밤이던가, 이 지역 의상학과 대학생들이 준비한 패션쇼가 한참 준비중이던 호스텔 로비에서, 매서운 눈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던 아마도 교수..지 않으려나 싶던 아주머니. 머리 모양이 굉장히 모델스러워서 슬쩍 도촬 한장.

 

그리고 이 아가씨. 호스텔의 바에서 서빙도 하고, 데스크에서 체크인-아웃도 챙겨주시던 분인데, 류블랴나에서 블레드 호수까지

 

타고 가겠다며 스쿠터를 빌리려 했더니 날씨가 궂어서 위험할 거라며 말려주었던 마음 착한 아가씨였다. (정말이지 스쿠터 빌려서

 

타고 갔다가는 영영 못 돌아올 수도 있었겠다능..)

 

꽤나 매력적으로 생겨서 마치 영화 '제5원소'에 나왔던 그..매혹적인 여배우의 분위기를 풍겨내느라 주위에 남자들이 계속 집적거렸지만

 

정작 내 눈을 끌었던 건 몸 곳곳에 숨어있던 타투들. 그 중에서도 뒷목에 슬쩍 그려져있던 이 것. 호루스의 눈. 이집트 왕들의 무덤을

 

지키는 수호 부적의 문양이랄까, 내가 벌써 10년째 끼고 있는 반지 (메이드 인 이집트 룩소르)의 문양과 같아서 굉장히 반가웠다.

 

그리고 숙소 주변을 슬쩍 산책하던 참에 발견한, 대우의 '레이서'라는 차. 이런 차가 있었나? 기억조차 없는데 한국에는 다른 이름으로

 

팔렸었거나, 혹은 내 기억에도 없을 만큼 옛날옛날 한옛날에 팔렸던 모델이라 그럴지도. 여하간에, 슬로베니아에서 대우 이름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Beat!

풍물을 처음 접했던 건 중학교 때, 축구 응원을 하며 어설프게 잡았던 북채였던 거 같다.

두툼한 가죽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심장 깊숙이부터 울려대는 듯하던 그 북소리는 이후

군대에서 체육대회 응원을 할 때 손가락이 까지고 피가 흐르도록 때려대던 북소리로 이어졌고,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체육대회 때 난타 공연을 연습하며 또다시 되살아났었더랬다.


인천부평풍물축제는 어느새 15년째를 맞고 있는 대표적인 풍물축제라고 한다. 예전부터

부평 삼산동 일대에서 두레형태로 유지되어 오던 풍물을 1997년부터 축제 형태로 되살려

이제는 연인원 80만명 이상이 관람하는 규모에 이르렀다니, 올해 "아시아 문화중심을

꿈꾸다"라는 타이틀이 굉장히 야심차고 자부심넘쳐 보일만한 거다.  


올해는 특히 부평풍물고유제를 시작으로 인천 K-아트 초이스, 부평평생학습축제 등이 처음

함께 열리기도 하고, 주민들이나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마당이나 전국 각지의

풍물패들이 솜씨를 겨루는 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여느 지역축제처럼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거나 잠깐 즐기다 뜨는 그런 행사가 아니라, 풍물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이것저것 관심이 가는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직접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명품 축제랄까.

일년에 딱 한번, 부평역 앞의 팔차선 대로를 온통 막고서는 곳곳에서 쉼없이 주고 받듯

이어지는 풍물의 가슴뜨거운 맥박소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인 것 같다. 올해 5월의 마지막 5일동안 벌어졌던 부평풍물축제 기간 중에서도 이틀,

28일(토)부터 29일(일)까지의 기간동안 이런 해방구가 열렸고 뜨거운 뙤약볕도 아랑곳없이

풍물꾼들의 상모돌림에 넋을 잃고 말았다.



팔차선 대로를 꽉 채우고 양쪽의 인도로, 그리고 인도 너머 실핏줄같은 골목골목으로

넘쳐흐르는 풍물, 꽹과리, 장구, 북, 징의 어우러진 소리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그렇게 가슴을 직접 때리는 듯한 소리에 홀려 불러모아진 사람들은 이내 그네들의 눈까지

빼앗기게 되는 거다. 물흐르듯 쉼없이 흘러가며 휘감기고 더러는 휙휙 꺽이고 나풀거리는

저 상모꼬리를 보고 있자니 눈까지 빙글빙글 돌 지경이다.


Play!

그러던 와중에, 이 사람들이 갑자기 냅다 내달리며 원을 그리더니 점점 속도를 높이며

나는 듯 달리다가 펄쩍펄쩍 몸을 비틀며 돌기 시작했다. 빨강노랑파랑의 끈을 바람에

찢어질 듯 펄럭거리는 동시에 머리 위 상모가 빙빙 돌아가는 정신을 쏙 빼놓는 광경.

동영상이라도 찍어서 온통 원을 그리는 그들의 옷자락과 상모, 온몸의 팽팽한 실루엣과

그 에너자이틱한 역동성을 공유하고 싶지만, 이렇게 올리는 사진에서 그 일단의 느낌이라도

얻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쩌면 부평풍물축제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이런 곳에 있는 것 아닐까. 과거엔 농사일의

고단함과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되었을 풍물놀이가 시꺼먼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서

재현되면서, 다시금 사람들의 심장을 두드리고 피를 휘몰이치게 만드는 그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마력을 확인하는 것. 지켜보는 사람들이 절로 흥분하며 움직임과 소리에 쫑긋

신경을 세우고 함께 몰입하고 녹아드는 과정이 바로 축제의 본령 아닐까 싶은 거다.


슬, 정리모드로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하는 풍물패의 가락과 춤사위. 그네들의 꽹과리와 장구

소리가 조금씩 잦아지면서 술렁대며 방방 떴던 주위 공기부터 차츰 무겁게 내려앉았고,

소리와 몸사위에 흠뻑 몰입했던 마취상태에서 벗어나 주위를 조금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문득 눈에 띈 저 꼬맹이는, 공연을 펼치는 사람들과 꼭 같이 옷을 차려입고서는 심정

상모까지 쉼없이 돌리며 박자를 맞추고 있는 저 꼬맹이 녀석은 풍물천재?!


어려서부터 저런 국악, 우리 소리의 재미와 흥겨움을 체득하고 있는 아이라면 앞으로

어떤 음감과 감성을 가지고 커나갈지 모르지만 최소한 이런 축제에서 남들보다 한결 더

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전통의 문화라고는 하지만 축제때나

드문드문 접하며 생소함과 낯섦으로부터 슬슬 몸을 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제대로

문화의 정수를 즐기고 이어받은 아이들의 세대엔 이 풍물축제가 얼마나 발전해 있으려나.


Fun! 

그렇다고 우리 풍물이 꼭 뭔가 남다른 감각을 갖춰야 한다거나 훈련을 통해서만 즐길 수 있단건

절대로 아니다. 게다가 풍물축제라면야, 잘 몰라도 나름의 재미를 찾고 깨알같이 소소한 것들을

발견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축제를 만끽하면 그만인 거다. 아마도 그런 축제의 여유로움과

다양한 면모야말로 부평풍물축제를 세계인의 축제로 발전시킬 거대한 잠재력이기도 할 거다.

그 중에서도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만난 아리따운 분들을 찾는 재미도 작은 건 아니다.

풍물을 하는 분들은 모두 나이 좀 있는 얼굴 까만 아저씨들일 거라는 선입견을 보기좋게

깨주신 이분께 감사를 드리며, 공연을 보면서도 자꾸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더라는.


부평풍물축제의 홍보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부평풍물단의 '삼신두레농악 판굿',

'웃다리농악' 공연 내내 사방에서 터져나오던 셔터소리의 대부분은 이 분의 활짝 핀 웃음을

향하진 않았을까. 정말 진정 흥이 돋아서 꽹과리를 두드리고 즐기는 게 오롯이 느껴졌다.

한켠에서 벌어지고 있던 온갖 경연대회나 청소년공연들도 풍물을 즐기는 또다른 방식의

체험이었다. 상모를 쓰고 복장을 갖춘 아이들이 관객석에 앉아 올망졸망 머리를 모으고

무대에 열중해 있는 장면이나,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앉으신 할아버지가 ENG카메라와

DSLR을 챙겨들고선 공연을 챙기는 모습들이 너무 보기 좋았다.

전국의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 활동중일 풍물패들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걸고

경연을 펼친다지만, 풍물의 신기한 마력은 역시 여지없이 발현되어 공연에 나선 아이들의

표정이나 관객석에 앉은 관중들의 표정은 그저 즐거울 따름이었다. 악기를 두드리고

박자를 만들고, 화음을 만들어내며 심장 고동소리처럼 꽉 찬 맥박을 부평의 8차선 도로위에

메워내며 눈빛을 교환하는 아이들이 너무도 대견하고 이뻐보였다.

무대 위에 오른 공연팀이나 무대 옆에서 연습중인 팀들이나. 풍물의 마력이 이런 거구나,

어렴풋이 깨닫게 해주었다. 아무리 인상을 쓰고 기분이 안 좋던 상황이라고 해도 북소리

몇번, 꽹과리 소리 몇 번에 이내 심장이 두근거려 표정을 풀고 몰입하게 될 그런 마력.

그런 마력에 빠져든 아이들이 자신들의 솜씨를 보이며 부평대로 8차선의 공기를

두근두근 두들겨대기 직전, 다소곳이 서로의 머리띠를 묶어주고 있었다.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야 보는 사람이 즐겁다고 합니다.

일년에 딱 한 번 8차선 대로를 밟을 수 있는 일탈의 기회를 함께 어우러져 도시 구석구석을

채우며, 흘러넘치는 풍물에 몸을 맡기고 흥에 취할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인천부평풍물대축제위원장의 말 中)



작년도 올해도, 그리고 내년도 마찬가지다. 풍물은 무엇보다 하는 사람을 즐겁게 만들고,

그래서 보는 사람들도 절로 흥겹게 즐기도록 만드는 마력을 가진 것 같다. 내년에도

꼭 다시 부평에 돌아와 몸을 가볍게 날리며 겅중겅중 원을 그리는 그네들의 몸동작과,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두드리는 타악의 울림을 함께 하고 싶어졌다.




 

사막형 전투복에 무장을 단디 한 미군이 총을 꼬나쥐고 자세를 잡았다. 그런 그림만 아니었으면, 언뜻 비치는

글자로 추측컨대 아프가니스탄의 미를 대표하는 "MISS AFGHANISTAN" 정도로 기꺼이 오독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지인이 아프가니스탄에 다녀오며 현지에 주둔 중인 미군의 피엑스에서 선물로 사가져온 것이었다. 여전히

산발적인 전투가 진행중인 배틀필드, 실제로 탱크들이 저렇게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기동하고 다니는 게 전혀

낯설거나 드문 풍경은 아닐 거다. 

험비를 타고 경계중인 미군. 모랫빛 황량한 풍경에 건조하게 녹아들어간 사물들이다. 그러고 보니 포장박스도

은근히 모래색의 위장술을 전개 중이다.

태스크포스 로지스틱스. 미군의 로지스틱스, 미군의 피엑스는 아프간에도 이런 맞춤형 머그컵을 팔고 있었다.

드디어 박스 안에서 튀어나온 머그컵, 손잡이가 붙은 모양이 왠지 아프간같은 곳에 딱 어울릴 법한 실용성을

강조하는 것만 같았다. 디자인이나 장식이 지워지고 전적으로 실용성에 포인트가 맞춰진 듯한.


그래도 아프가니스탄 전도와 몇몇 주요 지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많이 익숙한 지명들, Peshwar니 따위도.

작전명은 Enduring Freedom이었구나. 무려 Int'l Security Assistance Force. 그놈의 씨큐리티를 미군들이

지켜내고 있는 건지 헝클어뜨리고 있는 건지, 혹은 보다 정확히는 헝클어뜨리고 다시 쌓고 있다는 게 맞겠지만.

여튼 굉장히 자족적이고 자기애적인 작명이다.

'미스 아프가니스탄'으로 끊겨 읽혔던 문구의 풀 버전은 다음과 같다. 'Mission in Afghanistan'.


어디고 여행을 다녀오면 기억에 남을 만한 선물을 하나쯤 남겨오고 싶은데, 아프가니스탄 정도 되는 곳에

다녀왔다면 미군 피엑스에서 요런 기념품 하나 괜찮은 거 같다.




우선 나중에 '지 말 묘하게 바꿔가며 논점을 흐리네 어쩌네'하는 말 나오지 않는 정도로 이전 글,

'키작은 남자가 루저'라는 말도 못하게 하는 하이에나들. 을 요약해 본다.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에 집요하게 해명을 요구하고 뒤를 캐는 것, 후속보도가 줄줄이 나오는 게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뻔뻔하거나 '독특하구나' 이러면 되지 그렇게 흥분할 일인지 모르겠다. '미수다'같은 오락물, 그리고 그런 오락물 출연자에. 물론 덜 자극적이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자신의 이상형, 취향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고 봐줄 수는 없을까. 내 상식에 반하고 불쾌하지만 그러려니 하지 뭐, 이렇게 여유있게 넘어갈 줄 수는 없냐고 묻는 거다.

그녀의 발언으로 갑자기 '루저' 인증되는 것도 아니고(방송에 나와 한마디하면 그 말이 대번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여자들도 세뇌되듯 '키작으면 루저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이미 그런 분위기와 시각이 엄존한다면 이번 일로 그런 전반적인 기풍을 지적해야지 일 개인을 깐다고 해결될 문제는 더욱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속 기사를 업데이트하고 재생산하는 기자들, 그녀를 비방하고 인신공격하는 악플러들, 심지어는 개인정보와 방송 후 후속 움직임까지 포스팅하는 사람들까지, 굉장히 가학적이고 비겁한 반응들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생산적이지 않게 감정을 촉발하고 해소하는 대응들은 결국 인터넷 자원과 대중의 관심을 소모시키는 좋은 수단으로 쓰일 수 있지 않을까."



댓글들이 꽤나 많이 달렸지만 미처 다 댓댓글을 달지 못하는 점은 양해해 주시면 좋겠고, '하이에나'와 '열폭'

이란 단어에 자극받은 분들이 적지 않은 거 같은데 매 문단마다 언론의 부추김, 선정적인 재생산을 지적했고

이른바 '하이에나' 중 맨 앞에 기자를 언급했던 것처럼 주로 그쪽에 맞춰진 비난이었다. 물론 일부 '한량과

불만증환자들'에 대한 비난인 것도 분명하다. 그냥 어이없네, 라는 댓글 하나 단 사람이 아니라 집요하게

적극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댓글러들 말이다.


댓글들을 보면서 좀 어지러웠다. 워낙 입장들도 다르고 온도차도 커서, 게다가 중간중간 글을 제대로 읽고서

다는 건지조차 알 수 없는 쌩뚱맞은 댓글과 욕으로 도배된 댓글까지. 때론 꽤 설득력있고 새롭게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신 댓글도 있었는데, 바로 답을 못했을 뿐이지 의도적으로 무시한 건 아니니 이해해 주시길.

어떤 글을 올린다 해도 모든 댓글다신 분들에 대한 적확한 댓댓글이 될 수는 없을 거고, 일부 댓글러들에

해당하는 댓댓글삼아 질문지를 올려본다. 혹은 이번 일로 생각해 볼만하지 않을까 싶은 문제들이기도 하니,

그냥 한번 같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Q1. 오락물 프로그램의 '키 작은 남자는 루저' 발언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발언으로 '키작은 남자'에 대한 없던 편견이 생겨날까요, 혹은 존재하던 편견이 강화될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락 프로그램 출연자의 발언이 갖는 실질적 영향력, 파급력이라는 것을 너무 과장해서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Q1-1. 어쩌면 분노하는 몇몇 분들이 말씀하셨듯 애초 품고 있던 키에 대한 열등감이나 패배감을 건드린 게 문제인 건 아닌지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방송에 발언이 나갔으니만치 욕먹을 짓 자초한 거긴 하지만, 지금처럼 매체마다 실시간 보도하는 수준으로 커져버리는 게 '비례의 원칙'에 부합할까요.

Q1-2. 실제 대부분 누리꾼들의 '루저 놀이'는 그녀의 발언을 희화화하고 희롱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냥 놀림감으로 소비되는 것일 뿐이겠지만, 그것 역시 너무 가혹하고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지는 않으시는지요?

Q2. 기분이 나쁘지 않을리야 없지만, 그 발언자를 집요하게 '단죄'하고 사과를 받아내는 것 말고 다른 식으로 풀 수는 없을까요? 취직시, 만남시 키와 같은 외모를 따지는 사회 분위기라는 게 단순히 말로 내뱉지 못하게만 아우성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말이죠.(단순히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여주는 댓글 하나 단 행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파장을 재생산하고 반응을 키우는 언론, 몰입해서 개인정보를 드러내고 생중계하는 몇몇 사람들, 기본적으로 입에 담지 못할말부터 하고 보는 악플러들 말입니다.)

Q3. 오락물 프로그램과 그 출연자는 시청률과 관심을 끌기 위한 자극성 떡밥을 쉼없이 던지는 게 상례입니다. 더구나 오락 프로그램 촬영시엔 우선 자유로이 발언하고 정교하고 의도적인 편집에 따라 적당한 수준에서 정돈되도록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갈수록 그런 '선'을 넘는 방송들이 빈발하고 있죠. 시청률 경쟁입니다. 오히려 문제는 방송사에 겨눠져야 하는 거 아닌지요?

Q기타. 한국에서 쓰이는 '루저'라는 단어가 미국 본토에서 쓰이는 'loser'와 같은 의미를 가질까요? 초등학생들도 세워대는 세번째 손가락의 의미가 미국의 그것과는 다르고, 이미 '장기하'라는 가수의 등장 때 루저문화의 등장이니 어떠니, 나름의 사회적 용례와 의미가 부여된 건 아닐까요. (그녀의 '루저' 발언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 그 단어 자체의 의미에 집중하는 분들이 있어서 생각해 본 질문입니다.)

몇 가지 미처 더 정리하지 못한 생각해 볼 법한 문제들이 있겠지만, 이 정도로 총총.

어제 댓글달아주시던 분들-특히 입에 걸레무신 분들-전부 뭐하시는지.


어떤 티비 프로그램에 나온 여대생 하나가 키가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라고 했댄다. 그리고 인터넷과 해당

프로그램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포털마다 '키작은 남자는 루저 파문' 어쩌구 하면서 아주 신났다.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말 한마디에 모두 열폭중이시다. 루저라는 단어에 예민하거나, 아니면 '남자의 키'라는

남성들의 스트레스 요인과 자격지심을 건드렸기 때문이거나, 둘 다이거나.(혹은 언론의 부추김/오바질이거나.)


경과를 굳이 자세히 살필 필요야 있겠냐만은, 그녀가 애초 대본에 있던 내용이었다는 해명을 하고 이에 대해

방송작가 측에서 반박을 하면서 일이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제2의 개똥녀파문으로 번질 것 같다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난무하고, 프로그램이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을 한 거라는 추측도 더해지고, 신나서 들들 볶아대는

여론이지만 늘 그렇듯 기껏해야 며칠 시끄럽고 말 일이다.


애초 이런 일에 계속 해명을 요구하고 뒤를 캐는 것 자체부터가 우스운 일이지 싶다. 키 작은 남자가 루저라고

생각하면 안 되나. 방송은 안 보고 그저 몇 개 언론이랍시고 뻥튀기에 자기복제만 해대는 기사들을 봤지만

그렇게 문제될 발언인지 잘 모르겠다. "키는 경쟁력이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했단

게 사실이라면, 그냥 본인의 생각이다. 키작은 남자가 싫은가부지, 본인 키보다 큰 남자를 찾고 있나부지,

그렇게 넘기면 될 일 아닌가. (참 기자들 기사 쉽게 쓴다. 그것도 힘없는 사람 하나 십자포화로 때려 가며.)


뭐 말투가 좀 싸가지 없었는지도, 표정이나 뉘앙스가 영 띠꺼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방송을 직접 보고
 
인용된 문장에서는 맛볼 수 없는 그런 느낌을 받았대도 마찬가지다. 그냥 좀 뻔뻔하구나, 혹은 독특한 개념을

갖추고 계시구나, 이러고 말 일이지 뭘 그렇게 흥분을 할 일인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미녀들의 수다'같은 오락

프로그램에서 뱉어지는 대사들이 사려깊고 올곧기만을 바랬던가 말이다. 공익적이고 도덕적인 발언만 나오는

교육방송을 보고자 하는 건 아닐 테고, 그녀에게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물 것도 아닌 거고.


남자의 키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사항, 개인의 취향이다. 해당 주제에 대한 본인의 기호와 취향을 이야기한 것

뿐이다. 물론 좀 덜 자극적이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랑은 좀 다르고 불쾌하지만 그러려니 하지 뭐, 그렇게 넘어갈

만큼의 여유도 없는 건가.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고 당장 남성으로서 자신이 '루저'로 낙인찍히는 것도 아니고,

그녀를 제외한 다른 여성들-그리고 자신이 어필하려는 여성들-이 대번에 그런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마인드를 장착하는 것도 아니잖나. 그녀의 마인드를 책임지고 고쳐줄 것도 아니고 당장 피해를 입는 것도

아닌데, 왠 밴댕이 속알딱지같은 열폭인가.


물론 많은 여자들이 남자의 키에 예민한 게 사실이고 하나의 냉정하고 분통터지는 기준이라고 항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더욱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그녀는 단지 그러한 트렌드 내지 풍조에 편승해

발언한 것 뿐인 거다. 저변에 깔려있는 분위기와 여성들 일반의 '입맛'이 문제라면 문제인 거다. 말을 안 한다고

지적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이 경우에도 그녀가 이렇듯 십자포화의 대상이

될 일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키에 민감한 건 오히려 남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딱히 남자가 자기보다
 
작아도 개의치 않는 것 같던데. 상대적으로.)


사실 언론에서 그려내듯 그렇게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은 못 봤다. 방송에서 그런 이야기를 대놓고 하다니 어떤

의미로던 '차암~ 대단하다'는 반응, 혹은 방송에서 이특이 반응했던 것처럼 "나도 그쪽 관심없거든요"라는 식의

맞대응 정도를 봤을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반인의 돌출 발언, 돌출 행동에 너무도 가혹하고 각박하게

'열폭'하는 사람들과 언론이 늘 있어왔던 것은 사실인 것 같아 안타깝다. 이거 원 말 한마디 잘못하면 바로

안주감 오징어처럼 짝짝 찢어발겨져 잘근잘근 씹혀진다. 힘있는 사람이어도 이렇게 집요하게 흠집내고 갈구고

꼬투리를 잡을까. 굉장히 가학적인 세상이고, 비겁한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별 것 아닌 일을 떠들썩하게 키워내어 이득을 볼 사람들이 누군지 생각해봤다. 자극적인 기사로 조회수를

손쉽게 낚아내는 기자들, 누군가 씹을 거릴 만들어내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오지랖넓고 시간많은 한량들,

시대가 선사한 공허감과 분노를 풀길 없어 간편하고 무해한 씹을거리만 찾아대는 불만증환자들. 그들은 모두

하이에나같다. '발톱사이에까지 털이 나있는' 혐오스럽고 야비한 짐승이다. 자기보다 약하고 병든 동물만

사냥한다는 하이에나-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처럼 비겁하다.


그리고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궁극의 수혜자들이 있을 거다. 80년대 3S-섹스, 스크린, 스포츠-정책이나
 
오락물과 적당한 먹거리-먹잇감-의 조합을 의미하는 티티테인먼트라는 조어가 발휘하는 힘으로 대중의 관심을

사회/정치적인 공적영역으로부터 유리시키려고 쉼없이 노력하는 권력자들. 개똥녀니 뭐니, 그런 자극적이지만

별반 공동체에 기여할 것이 없는 이슈들로 인터넷 자원과 진득하지 못한 대중의 관심을 소모시켜버림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권력자들. 무대 앞에서 일개 여대생이 다구리당하고 있을 때 키득대고 있을 장막 뒤의 '보이지

않는 손', 그들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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