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풍물을 처음 접했던 건 중학교 때, 축구 응원을 하며 어설프게 잡았던 북채였던 거 같다.

두툼한 가죽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심장 깊숙이부터 울려대는 듯하던 그 북소리는 이후

군대에서 체육대회 응원을 할 때 손가락이 까지고 피가 흐르도록 때려대던 북소리로 이어졌고,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체육대회 때 난타 공연을 연습하며 또다시 되살아났었더랬다.


인천부평풍물축제는 어느새 15년째를 맞고 있는 대표적인 풍물축제라고 한다. 예전부터

부평 삼산동 일대에서 두레형태로 유지되어 오던 풍물을 1997년부터 축제 형태로 되살려

이제는 연인원 80만명 이상이 관람하는 규모에 이르렀다니, 올해 "아시아 문화중심을

꿈꾸다"라는 타이틀이 굉장히 야심차고 자부심넘쳐 보일만한 거다.  


올해는 특히 부평풍물고유제를 시작으로 인천 K-아트 초이스, 부평평생학습축제 등이 처음

함께 열리기도 하고, 주민들이나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마당이나 전국 각지의

풍물패들이 솜씨를 겨루는 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여느 지역축제처럼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거나 잠깐 즐기다 뜨는 그런 행사가 아니라, 풍물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이것저것 관심이 가는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직접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명품 축제랄까.

일년에 딱 한번, 부평역 앞의 팔차선 대로를 온통 막고서는 곳곳에서 쉼없이 주고 받듯

이어지는 풍물의 가슴뜨거운 맥박소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인 것 같다. 올해 5월의 마지막 5일동안 벌어졌던 부평풍물축제 기간 중에서도 이틀,

28일(토)부터 29일(일)까지의 기간동안 이런 해방구가 열렸고 뜨거운 뙤약볕도 아랑곳없이

풍물꾼들의 상모돌림에 넋을 잃고 말았다.



팔차선 대로를 꽉 채우고 양쪽의 인도로, 그리고 인도 너머 실핏줄같은 골목골목으로

넘쳐흐르는 풍물, 꽹과리, 장구, 북, 징의 어우러진 소리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그렇게 가슴을 직접 때리는 듯한 소리에 홀려 불러모아진 사람들은 이내 그네들의 눈까지

빼앗기게 되는 거다. 물흐르듯 쉼없이 흘러가며 휘감기고 더러는 휙휙 꺽이고 나풀거리는

저 상모꼬리를 보고 있자니 눈까지 빙글빙글 돌 지경이다.


Play!

그러던 와중에, 이 사람들이 갑자기 냅다 내달리며 원을 그리더니 점점 속도를 높이며

나는 듯 달리다가 펄쩍펄쩍 몸을 비틀며 돌기 시작했다. 빨강노랑파랑의 끈을 바람에

찢어질 듯 펄럭거리는 동시에 머리 위 상모가 빙빙 돌아가는 정신을 쏙 빼놓는 광경.

동영상이라도 찍어서 온통 원을 그리는 그들의 옷자락과 상모, 온몸의 팽팽한 실루엣과

그 에너자이틱한 역동성을 공유하고 싶지만, 이렇게 올리는 사진에서 그 일단의 느낌이라도

얻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쩌면 부평풍물축제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이런 곳에 있는 것 아닐까. 과거엔 농사일의

고단함과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되었을 풍물놀이가 시꺼먼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서

재현되면서, 다시금 사람들의 심장을 두드리고 피를 휘몰이치게 만드는 그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마력을 확인하는 것. 지켜보는 사람들이 절로 흥분하며 움직임과 소리에 쫑긋

신경을 세우고 함께 몰입하고 녹아드는 과정이 바로 축제의 본령 아닐까 싶은 거다.


슬, 정리모드로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하는 풍물패의 가락과 춤사위. 그네들의 꽹과리와 장구

소리가 조금씩 잦아지면서 술렁대며 방방 떴던 주위 공기부터 차츰 무겁게 내려앉았고,

소리와 몸사위에 흠뻑 몰입했던 마취상태에서 벗어나 주위를 조금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문득 눈에 띈 저 꼬맹이는, 공연을 펼치는 사람들과 꼭 같이 옷을 차려입고서는 심정

상모까지 쉼없이 돌리며 박자를 맞추고 있는 저 꼬맹이 녀석은 풍물천재?!


어려서부터 저런 국악, 우리 소리의 재미와 흥겨움을 체득하고 있는 아이라면 앞으로

어떤 음감과 감성을 가지고 커나갈지 모르지만 최소한 이런 축제에서 남들보다 한결 더

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전통의 문화라고는 하지만 축제때나

드문드문 접하며 생소함과 낯섦으로부터 슬슬 몸을 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제대로

문화의 정수를 즐기고 이어받은 아이들의 세대엔 이 풍물축제가 얼마나 발전해 있으려나.


Fun! 

그렇다고 우리 풍물이 꼭 뭔가 남다른 감각을 갖춰야 한다거나 훈련을 통해서만 즐길 수 있단건

절대로 아니다. 게다가 풍물축제라면야, 잘 몰라도 나름의 재미를 찾고 깨알같이 소소한 것들을

발견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축제를 만끽하면 그만인 거다. 아마도 그런 축제의 여유로움과

다양한 면모야말로 부평풍물축제를 세계인의 축제로 발전시킬 거대한 잠재력이기도 할 거다.

그 중에서도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만난 아리따운 분들을 찾는 재미도 작은 건 아니다.

풍물을 하는 분들은 모두 나이 좀 있는 얼굴 까만 아저씨들일 거라는 선입견을 보기좋게

깨주신 이분께 감사를 드리며, 공연을 보면서도 자꾸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더라는.


부평풍물축제의 홍보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부평풍물단의 '삼신두레농악 판굿',

'웃다리농악' 공연 내내 사방에서 터져나오던 셔터소리의 대부분은 이 분의 활짝 핀 웃음을

향하진 않았을까. 정말 진정 흥이 돋아서 꽹과리를 두드리고 즐기는 게 오롯이 느껴졌다.

한켠에서 벌어지고 있던 온갖 경연대회나 청소년공연들도 풍물을 즐기는 또다른 방식의

체험이었다. 상모를 쓰고 복장을 갖춘 아이들이 관객석에 앉아 올망졸망 머리를 모으고

무대에 열중해 있는 장면이나,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앉으신 할아버지가 ENG카메라와

DSLR을 챙겨들고선 공연을 챙기는 모습들이 너무 보기 좋았다.

전국의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 활동중일 풍물패들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걸고

경연을 펼친다지만, 풍물의 신기한 마력은 역시 여지없이 발현되어 공연에 나선 아이들의

표정이나 관객석에 앉은 관중들의 표정은 그저 즐거울 따름이었다. 악기를 두드리고

박자를 만들고, 화음을 만들어내며 심장 고동소리처럼 꽉 찬 맥박을 부평의 8차선 도로위에

메워내며 눈빛을 교환하는 아이들이 너무도 대견하고 이뻐보였다.

무대 위에 오른 공연팀이나 무대 옆에서 연습중인 팀들이나. 풍물의 마력이 이런 거구나,

어렴풋이 깨닫게 해주었다. 아무리 인상을 쓰고 기분이 안 좋던 상황이라고 해도 북소리

몇번, 꽹과리 소리 몇 번에 이내 심장이 두근거려 표정을 풀고 몰입하게 될 그런 마력.

그런 마력에 빠져든 아이들이 자신들의 솜씨를 보이며 부평대로 8차선의 공기를

두근두근 두들겨대기 직전, 다소곳이 서로의 머리띠를 묶어주고 있었다.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야 보는 사람이 즐겁다고 합니다.

일년에 딱 한 번 8차선 대로를 밟을 수 있는 일탈의 기회를 함께 어우러져 도시 구석구석을

채우며, 흘러넘치는 풍물에 몸을 맡기고 흥에 취할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인천부평풍물대축제위원장의 말 中)



작년도 올해도, 그리고 내년도 마찬가지다. 풍물은 무엇보다 하는 사람을 즐겁게 만들고,

그래서 보는 사람들도 절로 흥겹게 즐기도록 만드는 마력을 가진 것 같다. 내년에도

꼭 다시 부평에 돌아와 몸을 가볍게 날리며 겅중겅중 원을 그리는 그네들의 몸동작과,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두드리는 타악의 울림을 함께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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