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海霧)가 자욱하던 제주도, 바닷가 제방을 넘어 해안도로를 점령하고 사오층짜리 건물들도

모두 잠궈버렸던 안개가 삼엄하게 계엄을 선포했었다. 오후 여섯시부터 고작 삼십분, 잠시나마

햇볕이 내리쬐고 해무가 그 수만개의 두꺼운 촉수를 바닷속으로 거둬들였던 순간이 있었던 건

한순간의 꿈인양, 제주도는 다시금 짙은 안개 속으로 삼켜져버렸댔다.

알고 보면 한해의 절반 정도가 날이 궂어 비행기 일정에 차질이 생길 정도라는 제주도,

도무지 비행기가 뜰 수 없을 것 같은 짙은 안개를 뚫고 날아가는 비행기는 그 윤곽이

드러나기 전 심퉁맞은 굉음으로 존재를 먼저 알렸다.

해안도로 넘어 한치앞의 바다는 이렇게도 맑고 깨끗한데, 시선이 조금만 멀찍이 떨어지면

그저 몇개의 너울거리는 회색끈들만 파도에 맞추어 출렁일 뿐. 어디서부터 선을 그어 바다와

하늘을 구분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어지고 말았다.


안개가 삼엄해질수록 바다는 낯설어졌다. 물이 가득 차서는 출렁대는 게 아니라, 손으로

휘저으면 휘휘 감길듯한 은색실들이 바람따라 술렁이는 그런 기묘한 공간. 바다와 대기를

구분짓는 경계선은 사라지고 그저 망령처럼 둥둥 부유하는 회색 바람이 공간 사이에 놓였다.

삼십분의 짧은 후퇴에 분개하기라도 한 듯, 맹렬한 기세로 하늘을 덮고 태양을 가려서는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만 제주도의 밤바다. 더이상 은색실들은 빛나지 않고, 꺼멓고 끈적한

먹물 위로 몽롱하게 파도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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