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LA에서 출발해서 Las Vegas로 달리기 시작했다. 온통 까맣기만 한 어둠 속을 달리다가, 문득 하늘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가스를 잇는 15번 프리웨이, 모하비 프리웨이에서 일출을 맞았다.

 

 

까뭇까뭇하던 하늘이 지평선에서부터 조금씩 붉은 기가 번지기 시작한다. 가로등 불빛보다도 여린, 그렇지만 훨씬

 

압도적인 빛이 바야흐로 저 멀리서부터 떠오르려는 참이다.

 

 

마침 차를 세운 곳이 온통 황량한 사막 가운데를 지나는 프리웨이, 커다란 거인들처럼 고압선이 철탑에 지탱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지점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윙윙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왠지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그들이 버티고 선 하늘이 붉게, 그리고 조금씩 노랗게 밝아지더니 이윽고 조금씩 새파란 하늘빛을 짜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전파방해라도 당한 듯 하얀색 구름이 온통 으깨진 채로 하늘 곳곳에 내걸렸고.

 

 

조금 다시 달리다가 발견한 풍경은, 그야말로 황량하고 황량한. 덤불이 모랫바람에 휘둘려 이리저리 굴러다닐 법한

 

바싹 마른 대지 너머 희끄무레한 안개에 감싸인 저 멀리 어딘가의 커다란 산 하나가 홀로 섰다.

 

심야 운전의 위기는 사실 이맘때, 해가 막 돋아나 사방이 밝아지는 즈음에 도래한다. 다시 차를 안전한 곳에 세우고

 

잠시 눈을 붙이려다 발견한 직선 형태의 구름. 마치 차의 허리춤에서 뻗어나가 펼쳐지려는 듯한 날개 같기도 하고.

 

대충 세시간반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자며 쉬며 근 대여섯시간 만에 도착했던 거 같다. 중간에 잠시 쉬었던 곳에서

 

발견했던 재미있는 표지들, 사막 지대에 사는 동물들의 생태와 습성을 설명하고는 휴게소 곳곳에 그들의 발자욱을

 

남겨놓았다. 누군지 마침 그 발자욱이 닿는 곳에 차를 세워두고 문까지 활짝 열어두었길래 놓치지 않고 한장.

 

그리고 점점더 황량해지던 라스베거스 인근의 풍경들. 저렇게 근육질이 온통 울퉁불퉁한 거대한 산이 그냥 툭,

 

던져진 느낌으로 지평선에 꽂혀있고, 그걸 지나 한참 또 한참 지나가도 길이 끝나지 않는다는 게 미국여행의 매력.

 

 

 

 

 

포항 호미곶의 등대공원, 상생의 두손이 활짝 움켜쥐고 있는 땅끝 어귀에 펼쳐진 몇몇 박물관과 시설물들, 그리고 야외 공원.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는 중에 만난 '등대원 생활관' 입구. 실제 등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수은조식 회전등명기. 1953년 제작되어서 목포 홍도등대에서 사용되었다던가. 1979년까지 사용되다가 지금은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저 등불이 계속 회전하면서 반짝반짝 빛을 냈던 구조였던가 보다.

 

매월 25일은 저축의 날. 월급의 계좌이체가 일상화되기 전, 매달 회사에서 지급받았다는 월급봉투. 등대지기 김용정님은 매달

 

2만7천원정도를 받으며 근무하셨구나. 언제적 물가인지 모르겠지만 요새 돈 가치가 엄청 떨어지긴 했구나 싶다.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출연했던 쏨뱀이. 기억이 안 나실 분들도 있겠지만, 영화에서 톰 행크스가 악령이 깃들었다고 믿는

 

산에 오르기로 결심했던 건 여동생 딸, 그러니까 여조카가 '쏨뱀이'에 물려서 다리가 팅팅 부어올라 죽어가던 사건 때문이었다.

 

사실 그 녀석이 이녀석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서도, 왠지 무섭게 생겼으니 납득이 가기도 하고.

 

1900년대 초에 처음 만들어졌다는 대한제국시기의 근대식 등대. 안에 들어가면

 

각층 천장마다 대한제국의 꽃문양이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굳게 걸어잠겨 있어서 안에는 구경도 못했다.

 

 

 

뒤로 보이는 해양박물관의 세모꼴 모양새도 독특하지만, 그 앞에 위풍당당 배를 깔고 누운 호랑이의 눈매도 인상적이다.

 

 

부표. 바닷물이 넘실거릴 때 속절없이 출렁이는 부표같은-사실 부초, 부평초같은, 이란 표현이 더 보편적이지만-이미지와는

 

달리 굉장히 묵직하고 거대한 느낌이다. 배의 왕래를 돕는 중앙선이나 차선 같은 역할을 하는 부표.

 

등대박물관 앞마당에서 침묵에 잠긴 야트막한 난쟁이 등대 광원.

 

겨울이라 물이 쫙 빠진 등대공원의 야외분수를 지키고 선 인어의 헐벗은 몸이 추워보인다.

 

 

 

 

 

포항 호미곶,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이 곳을 가본 사람이던 안 가본 사람이던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바로 이렇게 바다에서 불쑥 솟아오른 커다란 손의 형상. 갈매기들이 쉬어 가는 다섯 개의 봉우리이기도 하다.

 

 

사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생각보다 작아 보일 수도, 혹은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는 이 청동 조각상은 '상생의 손'이라는 이름으로

 

새천년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99년 12월에 완공된 상생의 손,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기리는 상징물로, 육지에선

 

왼손, 바다에선 오른손 이렇게 두 손이 함께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손이 육지에도

 

하나 더 있다는 사실. 처음 알았다.

 

 

 

성화대에 있는 화반은 해와 달을 의미하고, 두 개의 원형고리는 화합을 의미한다던가.

 

바다에 있는 오른손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진 육지의 왼손. 그 앞에는 독도 일출과 피지의 일출에서 얻어온 불씨가

 

2000년 1월 1일 이래 꺼지지 않고 불을 밝히고 있었다.

 

새천년 기념관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왼손과 오른손, 상생하라는 두 개의 손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공을 쥐고 있는 듯

 

살짝 움켜쥔 모양새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호미곶에 와서야 알게 된 손 조각상의 진실이랄까.

 

호미곶에 도착하면 딱 보이는 꽃마차들. 말갈기를 쉼없이 희롱하고 있던, 제법 쌀쌀한 바닷바람에도 말들은 꿈쩍없었다.

 

상생의 왼손을 에둘러 바다쪽으로 훅 들어가는 전망대. 바다 쪽에서 육지를 배경으로, 미친 듯이 날아다니며 시야를 가리는

 

갈매기들 틈새로 상생의 오른손을 볼 수 있다.

 

 

전망대 걸어들어가는 길에 한번씩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거대 문어상. 포항이 문어로도 유명한 데다 심지어 문어축제도 있다는 사실.

 

 

더이상 나갈 곳 없는 전망대의 끝단에 서면 정확히 동쪽을 가리키고 선 꼬마 아이의 동상이 있고, 호미곶의 위치가 잡혀 있는

 

한반도 지도와 나침반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분분히 날아다니며 상생의 손을 향한 시야를 여지없이 가리는 정신사나운 갈매기들. 사람들이 자꾸 과자를 던져댄 탓이다.

 

이쪽에서 보이는 상생의 오른손 측면샷. 아무래도 육지의 왼손보다 크기도 크거니와 그림도 훨씬 이쁘게 잡힌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서, 미처 보지 못했던 가로등에 눈길이 간다. 포효하는 호랑이 형태의 한반도가 장식된 가로등이다.

 

같은 형태로 동해를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상 , 검고 노란 줄무늬가 선연하던 가로등 호랑이와는 달리 흰색과 하늘색의 줄무늬를 가졌다.

 

그리고 파란 하늘에 둥싯 떠있는 하얀 달을 움켜쥐려는 듯 내뻗은 육지의 왼손상.

 

 

광장에는 지난 새천년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전국 최대의 가마솥이라거나 각종 기념물들. 그 와중에 수쳔년 전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기념한 기념탑이 하나 숨바꼭질중.

 

 

새천년 기념관 전망대로 가는 길은 엘레베이터와 계단. 계단으로 갔더니 대충 4층에서 5층 정도 높이가 되는 거 같다.

 

 

옆에 나란히 선 풍력발전기 한 대. 시험삼아 돌리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뭔가 효성의 광고판 같아보이기도 하고.

 

 

확실히 바닷바람이 매우 세게 몰아치기는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얼레를 하나씩 손에 쥐고 연을 날리고 있었고,

 

호미곶에 갓 도착한 아이들은 일단 부모손을 끌고 연 하나씩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으니. 그나저나 바닷가의 소도시답게,

 

혹은 바닷가의 명소답게 저런 연들을 담은 종이박스에 새겨진 글자가 눈에 잡힌다. 돌자반.

 

 

 

 

 

썬크루즈호텔의 갑판부 위에 있는 풀장에서 바라본 정동진 해안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던 시간대.

 

해수풀장이었으니 아마도 정동진 앞바다에서부터 퍼온 물이었을 텐데, 작은 파이프에서 쏟아지는 수압이 생각보다 세다.

 

  

 

저녁 7시가 넘어도 아직 사위가 흐적흐적 발가스름하던 때. 고작 두어달이 흘러 해넘이의 호흡은 무척이나 가빠졌다.

 

 

 

호텔 안 7, 8층쯤의 객실에서 내려다본 풍경.

 

 

양손을 살짝 벌려 치켜든 자세는, 살짝 어색하면서 변태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해를 잡으려는 손짓이라 치자.

 

'손각대'를 쓰다보니 좀 많이 흔들렸지만, 조리개를 바짝 조인 렌즈의 빛갈라짐이 제대로 잡혀서 그냥.

 

 

호텔 로비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고, 천장에는 열두 별자리의 상징들이 원형을 이루며 박혀 있었다. 이건 물병자리.

 

 

선크루즈 호텔 앞으로 살살 걸어본 야밤의 산책 풍경.

 

 

 

 

유람선 한 척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서 이 곳에 올려서는 호텔로 쓴다는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저 아랫쪽으로는 조금은 작은 배 모양으로 만들어진 횟집. 옆에는 요트들이 줄줄이 주차중이다.

 

 

호텔에서 뻗어나가는 산책로는 정동진 시내를 굽어보는 전망대로 이어졌다. 작고 어슴푸레한 불빛무더기.

 

 

 

밤마실을 마치고 새벽 해돋이를 보러 달려나가기 전, 잠시 희뿌연 분위기를 감상하며 호텔의 정원을 살폈다.

 

 

그리고 해돋이. 이 호텔과 정동진은 특히 새해 첫 해돋이를 하겠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고 하는데, 사실 꼭 그런 날

 

해돋이를 보겠다고 남들 모두 줄서서 가는 곳에 덩달아 가는 건 조금 생각해볼 부분이 있는 거 같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해돋이가 꽤나 볼 만한 건 사실이니 굳이 새해 첫날 말고, 언제든 본인이 맘을 다잡고 싶은 때

 

오는 건 어떨까. 모든 사람들이 요이땅, 해서 새해 1월 1일부터 새사람이 되겠다며 다짐하는 건 좀 그로테스크하다.

 

정원에서 자라는 나무나 풀들을 보면 꽤나 이국적이다. 무성하지는 않지만 야자수도 자라고.

 

밤마실을 다녔던, 그땐 잘 알아채지 못했지만 꽤나 잘 다듬어진 정원.

 

호텔 출입구에 설치된 우표모양의 구조물. 오가는 투숙객들이 전부다 저 안에 들어가서 기념사진을 찍던.

 

 

 

밤에 봤던 야경이 조금은 어설프고 부족해 보였지만, 역시 바닷가 풍경이 뜨거운 여름 대낮에 봐야 진짜다. 파라솔들하며.

 

 

그리고 다른 쪽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장승공원도 있었는데, 관리가 안 된 건지 아님 잡초들이 워낙 생명력이

 

강인한 건지 거의 버려졌다 싶은 느낌으로 황량하던, 두눈 부리부리한 험상궂은 표정의 장승들이 더욱 부각되던 곳.

 

 

 

 

 

 

정동진 앞바다, 7월말 햇살이 뜨겁던 그 때는 마냥 시원하게 보이던 풍경이었는데 어느새 살풋 냉기가 전해오는 패러세일링.

 

 정동진의 랜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썬크루즈호텔에서 바라본 정동진 앞 바다.

 

 

 한철의 한주일 그렇게 그악스럽게 울어대며 자손을 남기려 애쓰던 녀석들은 이제 모두 흙으로 돌아갔을 시간.

 

절대 만나지 못하는 두 개의 평행선, 이라 흔히들 말해지는 철도길이 이리저리 휘며 겹쳐지고 관통할 때.

 

 

 저런 요트를 타고 둥싯둥싯 푸른 동해바다 위를 떠다니며 노니는 것도 꽤나 재미있을 거 같다. 조금은 파도가 높아도 좋을 텐데.

 

 

 

정동진 앞바다, 시꺼먼 구름처럼 바닷가바위를 온통 뒤덮은 갯벌레나 따개비처럼 자글자글한 파라솔 너머 늠름한 요트. 

 

 정동진 해돋이 열차가 들어오는 건가, 알록달록 원색으로 칠해진 통유리창 열차가 시원시원하다.

 

그저 들어가 보려고만 해도 티켓을 끊고 들어가야 하는 정동진역사, 야트막한 천장에 모기향처럼 대롱거리던 피노키오.

 

 

 모래밭에 드문드문 꽂혀 있는 파라솔들이 옷깃을 잔뜩 그러쥐고 꽁꽁 여몄다.

 

 

 

 

육칠년만인가, 참 오랜만에 다시 찾은 추암 해수욕장. 그리고 추암 촛대바위.

 

추암의 해돋이를 보겠다고 부지런히 달렸지만, 아쉽게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어슴푸레한 빛의 띠만 보고 말았다.

 

그래도 여전했던 건, 마치 거대한 대포를 쉼없이 쏘아올리듯 온몸을 진동시키는 삼엄하고 우람한 파도소리.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울타리도 꾸며놓고 망원경도 가져다 놓고 그랬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람 한명 찾기 힘든 추암의 해안 산책로. 해는 구름 뒤에서 스물스물 떠오르고 있겠지만 바닷바람은 살을 에인다.

 

 

 

 

아스라히 보이는 배 한 척. 그리고 수만년 파도에 으깨지면서도 여전히 뾰족 솟은 돌부리 하나.

 

 

이 곳의 풍경을 한층 더 삼엄하게 만드는 건 여느 해안선에서처럼 바다를 온통 가로막고 선 철책들.

 

 

추암 촛대바위 들어가는 길목,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부리며 서 있는 돌멩이들. 위태로운 소원들.

 

추암 촛대바위 들어가는 길의 낡은 집 한 채는, 아마도 칠팔년전에도 눈에 담아놨던 풍경이다.

 

 

 

 

파도에 떠밀려온 온갖 쓰레기들, 외적을 막아낼 철망엔 쓰레기만 걸렸다.

 

 

철망에서 흘러내린 녹물이 온통 시뻘겋게 바닥을 적시고 있는 곳. 이제 60년이 되어가는 살풍경이다.

 

 

 

 

추암 촛대바위, 해수욕장 옆에 조각공원. 얼마나 관리를 안 하고 있는지 잡초가 보풀보풀.

 

 

좀 뜬금없다 싶은 조각공원 너머로 파랑주황 슬레이트 지붕이 이어지고 그 너머 수평선이다.

 

 

 

추암의 일출을 보러 가는 화살표 따라 노니는 청둥오리들의 물결.

 

 

 

추암역이 원래 이렇게 생겼었던가. 해수욕장 바로 앞에 있는 기차역은 좀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역사 건물도 없이 그저 철로 옆에 플랫폼 하나가 전부인 추암역. 내려다보니 주차장에 글자가 떠오른다. 공허한 문구.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해안가를 거닐고 촛대바위에 눈길을 준 후, 해가 완전히 떴지만 결국 해돋이를 보는 건

 

실패했음을 확인하고 묵호로 달려가기로 했다. 울릉도로 떠나는 배를 타기 전 해돋이를 보려 왔던 참이었으니.

 

 

추암 해수욕장에 접근하려면 이렇게 차 한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굴다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옆에 사람이라도 걸어지난다 하면 꼼짝없이 조심운전해야 하는, 그런 좁고 어둡고 짧은 굴다리 터널.

 

 

 

 

 

 

 

밤을 꼬박 샌 참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였지만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 곧 동터올 시간이 되었음을 의식했고, 굳이 커다란 가방에 쑤셔넣어온 삼각대가 머릿속 귀퉁이부터

스물스물 다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목도리까지 꽁꽁 싸매고 내키지 않는 몇걸음 나서니 바로 경포 해수욕장의 모래변.

싱겁게 벌겋던 하늘, 날이 흐려 해뜨는 게 안 보이나 했다. 어느 순간 파도가 미친 듯이 펄쩍거렸고, 귀가 얼얼한

파도소리에 덩달아 흥분하기라도 한 듯 붉은 해가 솟았다. 잿빛의 짙은 안개같은 구름을 찢고 그야말로 불쑥, 솟았다.

그 순간만큼은 머릿속을 꽉 채운 채 미동조차 없던 그 한가지 생각도 잠시 사라진 듯 했다. 다행이었달까.

환상이었다. 그 생각은 잠시 밀려났던 성난 파도처럼 내 머릿속을 온통 휩쓸고 다시금 흠뻑 잠식해버렸다. 그렇지만,

태양이 솟고 파도가 철썩이던 그 순간의 압도적이고 삼엄하던 분위기는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온몸에 직접 와 부딪히는

것처럼 격하게 헐떡거리며 절정을 향해 내달리던 파도소리, 그리고 그 거대하고도 무거운 구체의 몸뚱이를 우아하고도

가볍게 하늘의 길을 따라 쳐올리던 태양의 부지런한 궤적.


 


 

@ 강릉, 경포 해수욕장.


목포는 항구다, 깊은 밤 산책길에 만난 아크로바틱한 조기들.

에 이어지는, 새벽 이른 시간부터 목포수협 위판장을 찾아간 이야기다. 조기가 풍년이라는 요새 어선들이 쏟아내는

생선이 어떻게 모이고 분류되고 포장되는지를 봤으니 이젠, 그 생선들이 어떻게 경매에 붙여지고 팔려나가는지.

온통 새까맣기만 하더니, 어느덧 희뿌여니 바다 저편의 실루엣이 눈에 띈다. 밤새 뱅글거리며 밤바다에서 있을지

모르는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던 소리없는 사이렌 불빛이 이제야 조금 졸음이 오는지 한풀 꺾였다.

구름이 많이 끼어서 또렷하게 해가 뜨는 건 구경하기 쉽지 않겠다 예감했지만, 그래도 제법 구름들에 붉은 물이

슬금슬금 배어오르는 게 시시각각 주위 풍경과 분위기를 바꿔놓고 있었다. 하나도 안보이던 먹장 커튼이 걷히고

점차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했다.

5시부터 경매가 시작된다고 했는데 좀 늦었다 싶어서 재게 걸음을 놀리는 와중, 벌써 해안가에 나와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싶어서 한참 바라보며 걸었는데 어느 순간 그네들이 살짝 떨어져 있는 배들을 낚시질하는

것처럼 보여서 깜짝 놀랬다. 배들이 묶여있는 두꺼운 밧줄이 마치 그들이 늘어뜨린 낚시줄 같이 보였다.

밤에 지나다가 '개 풀어놓았음, 물려도 책임안짐'이라는 살벌한 경고문구에 쫄아서 돌아갔던 곳에는 그새

불이 환히 밝혀진 채 일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알고 보니 생선들을 담는 나무상자를 제작하는 공장이랄까,

좁지 않은 마당 한가득 나무상자가 잔뜩 포개어 쌓여있었고, 새벽바다 냄새에 더해 싱그러운 나왕 나무

냄새가 온통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핏 밝아오는 하늘 아래서 노랑색 낡은 간판 위를 빈틈없이 빼곡하게 채운 자그마한 화분들이 눈에 띄었다.

저 나즈막한 2층짜리 건물 2층에 있는 조그만 창문을 활짝 열면 바다가 멀리까지 보이려나. 눈앞의 화분들 때문에

시야가 약간은 가리거나 초록빛으로 일렁일지도 모르지만, 그 전망도 꽤나 매력적일 거 같다.

아직 경매가 시작되지 않은 창고를 지나서, 시끌벅적한 소리를 따라 그 옆의 창고로 향했더니 역시 사람들이 바글바글.

사람 한명이 겨우 걸어다닐 통로를 드문드문 남기고는 온통 바닥을 몇 겹으로 점령해버린 생선들, 그리고 그 통로에

비집고 서서는 경매인의 손가락들과 생선들로 시선을 옮기기 바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식인 거다. 목포수협 마크가 박힌 빨간 모자를 쓴 경매인분들을 한번 쳐다보고, 그 밑에 지천으로 깔린

셀수없이 많은 생선들의 상태와 크기와 선도를 전문가의 안목으로 식별해내느라 번쩍거리는 눈빛. 금빛으로

번쩍이는 오동통한 조기들은 바다처럼 싱그러운 짠내를 풀풀 풍기고 있었고, 은빛의 긴 칼처럼 번뜩이는

갈치들은 비늘이 벗겨지거나 하는 상처 하나 없이 차곡차곡 포개어져 있었다.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은 번호가 적힌 모자를 쓰고 매물에 대해서 제각기의 금액을 말하고, 빨간모자 아저씨는 그걸

다시 확인하며 창고가 울리도록 쩌렁쩌렁하고도 재빠른 목소리로 모두에게 확인하는, 그런 다이내믹한 풍경.

 

 창고 끝에 쌓인 생선들부터 거래가 이루어져서는 점점 옮겨오는 경매인, 그리고 그를 따라 모세혈관같은 샛길을

밟고 신속하고 헤쳐 모이는 사람들. 거래가 끝난 생선들은 리어카나 트럭에 바삐 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점점

부옇게 밝아오는 바다와 하늘.

거래에 나온 건 대풍이라는 조기만이 아니었다. 갈치도 있었고, 복어도 있었고, 고등어니 삼치도 있었고, 심지어

익숙하게 생긴 상어와 이상하게 생긴 상어도 있었다. 거의 '시장에 가면~'으로 시작해 줄줄이 이어지는 무한

돌림노래를 듣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나저나 마지막 사진의 이상하게 생긴 놈도 상어라니, 신기하다.


그리고 저 녀석. 저 발갛게 달아오른 부분을 보고 '홍어X'이라고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지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까 이것도 모르는 딱한 도시사람을 봤다는 투로 '아귀'라고 알려주셨다. 콩나물넣고 찜으로 쪄먹는

아귀 혹은 아구찜 모르냐고 부연설명이 들어가기도 전에, 그럼 저건 '홍어X'이 아니라 '아귀X'이구나 하고

머릿속 정리를 끝내고 가만히 눈에 담아두었다.

아침식사 시간에 맞추려면 이제 슬슬 떠야겠다 싶어서, 마지막으로 외판장 전경을 담고는 자리를 떴다. 수협외판장

앞면에 내려진 철제 셔터막에는 귀여운 거북이들이 곰실곰실.

이제 저렇게 경매를 거쳐 팔려나온 조기와 갈치 같은 생선들이 위판장 근처 생선가게에서부터 깔리기 시작했나보다.

깔끔하게 포장된 조기 상자하며, 진열대 아래로 추욱추욱 꼬리를 늘어뜨린 갈치들. 갈치 꼬리들이 무슨 고드름처럼

진열대에 매달렸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 이미 해가 바싹 떠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오르는 중이었나보다. 시멘트 바닥 위에

올라와있는 배 위로도, 걸쭉한 물결이 이는 불투명한 수면 위로도, 조금씩 저 너머 바다끝에서부터 천천히

그렇지만 거침없이 햇살이 번져오기 시작했다.

갈매기도 날고, 날다가 지친 새들은 햇살을 받으며 바다에 내려앉아 쉬기도 하고. 구름이 좀만 더 옅었어도

햇빛이 좀더 구름의 장막을 뚫고 넓게 배어나오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하다.


같은 듯 하면서도 조금씩 느낌도 다르고, 수면 위에 이는 고요한 물결 무늬가 불러일으키는 느낌도 달라서

좀체 해돋이 사진이나 바다 사진은 골라내질 못하겠다. 하여, 그냥 핑계김에 전부 올려버리는 게으름을.


그러다가 역시, 제버릇 개 못준다고 또다시 옆길로 새어서는 꽃도 보고, 어느 낡은 건물 벽면에 기대어선 닻도

구경하고. 산동네처럼 언덕을 따라 층층이 올라가는 건물들을 보며 저 사잇길로 돌아다니면 예기치 못한

재미난 풍경들을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기도 하고. 결국은 가보지 못한 길을 남겨두었지만.

이런 운치있는 계단을 밟아 올라 열게 될 저런 낡은 대문도 맘에 들었다. 해풍을 맞고 소금기에 절어 눅진눅진

삭아가고 있을 대문 위로 세워져있는 짧막한 창살들도 방범용이라기엔 시늉만 남은, 경비할아버지같은 느낌.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오대산 자락에서 한밤중에 내려서는, 세시간정도 내처 걸었더니 조금씩 해가 밝아왔다. 때맞춰

주위를 둘렀던 산세도 조금씩 완만해지더니 바다까지 슬슬 기어내려왔더랬다. 그리고 하조대.


바닷가에 도착해서 굉장히 추웠던 지난 밤의 고생을 되새길 겨를도 없이 그새 해가 쑤욱 오르진

않았나 걸음을 재촉하는데 문득 눈에 이상한 게 띄었다. 해변 바위들에 띠처럼 둘러져 있는

하얀색 얼룩들. 뭔가 했더니 얼음이다. 파도가 치고 바위에 부딪혀 조금씩 얼어붙은 바다,

그야말로 하얗게 얼어붙은 파도인 셈이다.

보통 철썩, 철썩 치는 파도소리도 강추위에 얼어붙은 채 저기 어딘가 벤치 위에 날카롭고

무겁게 내려앉은 느낌이다. 그래도 벤치 하나가 동그마니 놓인 풍경이 아니라, 파도소리조차

서걱대는 한겨울철 동해바다가 조금은 덜 서럽다.

조금 미적대는 사이에 해가 불쑥 떠올라 버렸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꽁꽁 얼어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해돋이를 놓칠 수 없다 싶어 등대 전망대까지 카메라를 들고 뛰었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춥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다시금 오랜만에 확인했고, 사방이 온통 밝아지고 난 이후에야

해가 불쑥 떠올라버린다는 것도 새삼 확인하는 순간.

그리하여 하조대의 해돋이. 시시각각 떠오르는 태양에서 뻗쳐나온 불빛이 하늘을 주홍빛으로

밝히고는,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를 두 조각으로 갈라내선 이쪽으로 뻗쳐왔다.

하늘에 구름이 좀 끼어있어야 빛이 얼룩덜룩 구름을 물고 들어가서 더욱 화려한 모습이

되었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역시 온통 깜깜하던 세상에 불쑥 들어밀어진 주홍빛 광채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푸른색 바다에 대비되는 장면은 참 멋지다.

그리고 후두둑 후두둑 날아가던 말줄임표들. 파도따라 출렁거리며 남쪽으로 날아가던 녀석들.

어느 정도 해가 둥실 떠오르고 나서, 동그랗게 윤곽이 뚜렷하던 해가 더욱 강렬해지면서 스물스물

벌건 하늘로 녹아버릴 즈음, 함께 갔던 신입직원들의 2011년 새해 소망을 담은 연들이 하늘로

날기 시작했다. 뭐, 저렇게 연 하나 띄우는 걸로 뭔가 새해 다짐을 날려보내고 의지를 북돋는 건

조금은 우습다고 생각하지만 좋게 봐줄라 했는데. 바람이 워낙 거세게 불어서 연들이 지들끼리

잔뜩 꼬이고 엉키고, 정말 저기에 그네들의 '새해 다짐'이란 걸 고이 실어보내려 했다면 대부분이

돌바닥에 떨어지거나 바다로 추락해버렸을 듯.

그래도, 그 와중에 몇몇 연은 치열한 경합과 부딪힘을 뚫고서 하늘로 솟았더랬다. 연싸움하듯

얽혔던 실들을 겨우겨우 떼어내고 한줄기 강풍을 따라 하늘로 하늘로.

이제야 조금 해돋이의 의식을 마쳤달까, 한숨 돌리며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하조대

전망대의 등대도 올려다보고, 주위에 놀러온 한줌의 여행객들도 구경하고. 이런 날씨에 여기로

해돋이를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이 우리 말고도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붉은 기운이 돌던 하늘은 이제 엷은 청색이 돌며 바다랑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동그랗고 시뻘겋던

태양은 그 형태와 물질성을 잃어버리고, 노른자가 터지듯 하늘 구석구석으로 스며든 채 번져나가는

듯 하다. 노른자가 터지는 거 같기도 하고, 캡슐약이 터지는 거 같기도 하고.






담날 새벽엔 변태를 만났다. 뉴욕에서도, 팟타야에서도, 심지어는 이집트의 아스완에서까지 변태는 내 친구..엉?

아침에 펠루카를 탄 채 나일강 위에서 해돋이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새벽 5시, 여전히 깜깜한 한밤중에 나일강변에

나섰더니 왠 이집션이 다가왔다. 시시껄렁한 얘기하고 어쩌구 하더니 불쑥, 자기 집에 아무도 없댄다. 아내도 없고,

자식들도 없고. 그리고 long banana가 있다나..not small이란다. 쳇..여전히 못 알아듣고 있던 나는, 50파운드

주겠단 얘기를 듣고서야 그제야 그제야 알아버린 거다. 일단..너무 싸다고 거절.ㅋㅋ 50파운드? 우리돈 오천원이잖아.


근데 이자식, 아니랜다. 여기 정가가 그렇다고, 얼마를 원하냐고 진지하게 치근덕거렸다. 장난으로 대거리하다가는

정말 큰일나겠다 싶어 더럭 겁이 났다. 단호히 거절하고 돌아서서 속보로 퇴각하는데도 계속 따라오길래..경찰이 보이는

곳으로 도망왔다. 성질 좀 내볼까 했으나...어찌나 정말 '남자답게' 생겼던지 화는 못 냈다.

그러고 찍은 해돋이 사진들. 아침 5시반..그 바나나 아저씨를 만나고 난 직후다. 더구나 펠루카를 빌려서 나일강 서안으로
 
건너가 해돋이 보기로 약속을 해놓고서 이 아저씨들이 바람이 없어 펠루카는 안된다며 모터보트로 건너갔던 터다. 전날

황혼을 펠루카에서 보려던 계획을 빵꾸낸지라, 대신 해돋이를 보겠다던 의욕에 불타던 내 기분이 살짝 흐려졌었지만...

하늘이 밝아지고 천지가 뿌얘지더니 그제서야 은근슬쩍 올라오는 해를 보며 모든 걸 용서할 듯한 마음이 되어버렸댔다.


6시면 해가 뜰 줄 알았더니 동쪽에 딱 산이 있어서 생각보다 꾸물거린다. 6시 50분쯤에야 해를 봤다. 단순히 "해뜨다"란

표현으로 가리우는 그 지루할만큼 길고도 변화무쌍한 국면들...뿌연 하늘, 차츰 진해지는 청색과 서편 끝에까지 뻗어나가는

빛의 알갱이들, 동편이 차츰 붉게 달아오르다가 어느 순간 이미 햇님이 어디선가 뜬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밝아졌다 싶을

즈음, 불쑥, 하고 해가 떠오른다. 처음에는 고개만 빼꼼히 그치만, 점점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고, 완전히 지면에서 떨어져

나갈 때조차 아직은 빛을 내는 아주아주 똥그란 다홍빛 원반같을 뿐. 그 열기는 한참 후에야 내게 도착해서 따뜻함을

전한다.


해뜨기 전이 가장 춥다느니 하는 통속적이고 진부한, 마냥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자세를 강조하는 말도 있지만, 기실
 
해 뜨기 전에 이미 사위는 모두 밝아진다는 점을 주목할 수도 있는 게다. 용례라면,

A : "해뜨기 전이 가장 춥다잖냐, 물고문, 성고문만 나오면 80년대와 다를 게 없다지만 좋아지겠지."

B : "꼬됴 이자식아. 해가 뜨기도 전에 이미 사방은 온통 밝아온다는 말도 모르냐."


여행 중 숱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고 가라앉는 해를 봤지만, 이때의 해돋이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물론, 그러고 나서

이 모터보트 선장이 애초 약속과는 달리 바가지를 씌우려는 바람에 불끈, 또 깡따구를 부려야 했지만. 머, 인샬라다.

이집트는 여전히 해가 떠오르는 동쪽...나일강 동쪽변에만 그들의 삶을 꾸린다. 서편은 별로 발전시킬 의욕도

없는 거 같고, 일단 과거로부터의 무덤이 너무도 많아서. 나일강을 보고 있으면 보통 볼 수 있는 water와는

다르게 점도가 상당히 높은 거 같다는 착각이 든다. 유속이 그리 느리지도 않은데, 수면에 계속해서 파문이

그려지면서도 쉽게 지워지지가 않는다. 살짝 끈적스러워 보이면서도 무진장 맑아보이는 나일강. 물 밑에는

거대한 물고기가 잔뜩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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