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작정하고 울리려드는 신파라는 점에서는 '칠번방의 선물'에 못지 않아 머리가 아팠고, 후손들에게 길이 남을 업적을 해냈다는 자부심을 끌어올리는 점에서는 '명량'과 비슷한 부담스러움이 있던 영화. 희극적이고 과장스런 연기와 앙상하고 작위적인 스토리, 엉성한 분장까지. (게다가 김윤진의 발음과 발성은 너무 어색했다) 영화적 완성도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그냥 이정도로 충분해 보인다. 현재는 이 영화의 시선과 내러티브에 대한 진영논리에 갇힌 선정적인 비난이 교차하면서-게다가 수첩공주의 애드립이 더해서-괜시리 입소문만 더 타고 있어 보인다.

 

그보다 더 흥미로워보이는 지점은 사실, 신산한 한국사를 관통해 살아낸 그들이 아버지를 줄곧 필요로 하고 혹은 그걸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있다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비전이나 전략도 분명히 제시하지 못하면서 거의 신적인 차원에서 작동하는(작동했다고 믿어지는) 아버지의 리더십을 초혼해내는 '명량'보다 한발 더 분명...히 나간 이 영화는, 한국의 보통사람들이 살았던 그 시절과 그때의 아버지들을 그저 무비판적으로 감싸안고 긍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가 상징할 수 있는 뒷배경/자산/경험 등이 없던 시기 가정을, 사회를, 역사를 끌고 간 게 그들이었다는 이유로.

 

사실 이와 비슷한 작품들, 사회와 역사를 이끌어 왔다며 아버지들을 상찬하고 새삼 위무하던 작품들은 이미 IMF 때 있었다. 당대의 비전이나 미래가 흔들릴 때 원기회복을 위해 쉽게 돌아갈 곳은 여태 쌓아온 과거, 그리고 그 일꾼들이니까. '아버지'란 삼류소설이나 유사한 아류 작품들이 그런 건데, 경제위기 직전의 한세대만을 주목했던 그때보다 지금은 좀더 멀리 길게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아마 앞으로의 비전이나 전망이 불투명하고 불안감이 확산되는 시기가 다시 올 거라는 예후 혹은 이미 도래했다는 징후는 아닐까.

 

 

+ 또다른 문제는, 이 '아버지 만세'의 퇴행적 스토리가 불가결하게 견지하는 여러 단순하고 유치한 사고방식과 관점들일 수 있다. 미군은 그저 착한 해방군이고, 베트콩은 사악한 전사인 것처럼 보여지는 것도 그렇지만, 심지어 젊은애들은 어른들의 공헌을 전혀 이해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는 듯한 거짓된 세대갈등을 빚도록 피해의식을 양산하는.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가 인정할만큼 위대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G20 정상회의 유치는 한 마디로 이제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이제 세계사적으로나 민족사적으로 진정한 21세기가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 오전 10시 청와대에서 주요 방송 생중계로 전달된 특별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말들을 했다고 한다.

G-20 정상회담을 서울에서 내년 10월에 개최하기로 결정된 것을 두고 만세삼창을 하니 어쩌니 어처구니없는 쌩쇼를

벌이는 게 한참 어이없던 와중이었다. 그게 뭐라고. '세계 유지'들의 모임이니, '지구 GDP의 85%'를 담당하는 부자나라

클럽이니 하는 천박한 표현들은 최소한 '선진일류국가'의 지도자란 사람이 앞장세울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세계가 인정했다'느니,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애아이마냥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갈구하는 그 사람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고. 사실 하고 싶은 얘기는 다른 거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엔가 배웠던 '억양법'. 사전에서 찾아보면 "문장중에서

앞에서 누르고 뒤에서 추기거나 먼저 나무라고 나중에 칭찬하는 등의 형식으로 의도하는 바를 더욱 강조하는 수사법"

이라고 되어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사람은 착하다, 착한데 못생겼다."라거나 "예수천국 불신지옥(혹은 불신지옥

예수천국)"류의 뚜렷한 대비를 통해 드라마틱한 쏠림현상을 이끄는 거다.


G-20 정상회담하면 '선진일류국가'가 되고 갑자기 '지구마을 유지'로 회원증이라도 발급받는 건지, 실제로 의장국이

운신할 수 있고 산출해낼 수 있는 여지와 영향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회의적이다. 거슬리는 건, 아직 어떻게

준비되고 어떤 효과를 낳을지도 모르는 그 정상회담-혹자는 1988 올림픽 유치에 비기기도 하지만-을 강조하기 위해

그 앞에서 후줄근하고 '변방적'이며 얼마나 보잘것 없었는지 부각되는 현재와 과거의 모습이다. 자신의 키가

크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마주선 사람 키를 사정없이 낮춰잡는 유치한 꼬맹이같은 놀음.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에서 인정받았다는 한국인의 위대성은, 여태까지는 세계에서 인정받지도 못하고 폄하되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젠 글로벌 차원의 아젠다 세팅능력을 갖춘 엄연한 선진국가라는 건, 이전까지는 이른바 '반미용공'

세력이 말하던 바 주권국가로서의 몇가지 결격사유를 갖춘 중진/후진국가였다는 말인가. 세계정상들의 축하를 받으며

손을 꼭 붙잡았다는 그의 새삼스런 감회와 비견되는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담에서의 이준 열사 에피소드는 왜 이리

뜬금없다 싶을까. 세계의 중심에 서기까지 아시아의 변방에서 고생만 죽도록 했다던 스토리, 진부한 신데렐라 드라마도

아니고.


그 모든 '변방국', '주변국', '非주요국'의 에피소드, 이미지들은 오로지 'G-20 이후'의 세계 중심국가 한국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수사다. 미래에 우뚝 설 선진국가 한국의 국민으로 마음껏 자부심을 느껴라, 라는 주문이다.

역설적인 것은 미래의 불확실한 성취를 앞당겨 맛보라며 국민들에게 저런 상찬을 들이미는 순간, 지금까지의 현재가

가없이 남루해지고 변변찮아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위대한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껴보라는데 되려, 지금까지

살았던 나라가 사실은 이토록 찌질한 나라였나, 별거아닌 나라였나 자괴감을 진하게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거다.
 

과거 10년을 오로지 부정하고 지워버리는데 골몰하는 사람들이니 의도적인 '과거사 단절'의 일환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건국60년을 기념하고 이산가족 상봉 회차도 1회부터 다시 세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사실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영광을 찬양하고 열광하기 위해 '지금, 여기'를 자학하고 비하하는 패턴은 익숙하다. 앞서 말했던 '기독교적 교리',

혹은 대부분의 종교가 갖는 현세와 내세의 비교가 대표적일 거고, 소위 '민족주의사관'의 헛점 역시 마찬가지다.

종교에선 순결하고 완전한 내세를 부각시키기 위해 비참하고 부조리한 현세를 강조하고, 바이칼호까지 뻗는

대륙을 호령하던 과거의 감춰진 영광과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쪼그라든 반도정신을 들먹거리게 되는 식으로.


G-20 정상회담이 정말 뭔가 한국이란 나라에 '양질전환'의 계기를 갖고 올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한물이
 
아니라 두물 세물 빠져버린 '21세기'를 새롭게 구분하여 '진정한 21세기'와 그 이전 '거짓된 21세기'를 분류하는

판이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앞장서 달콤한 미래를 말하는 사람들은 믿지 말라고 니체선생님이 그랬다.

더구나 그들처럼 프로페셔널한 거짓말쟁이들은.



어제 면접관으로 면접을 시행하고 나서 느낀 바를 포스팅했더니 모처럼 다음뷰에 올랐다.

([면접관 후기] 면접보는 남자들 좀 영리해지자.)

그리고 쏟아지는 댓글들, 폭언에 가까운 격앙된 반응들. 확실히 군대는 민감한 주제다.

면접에서 군대얘기는 좀 진부할 수 있으니 유의하시는 게 어떨지..라는 이야기에 열폭이라니.


2년에서 3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는 엄혹한 사실로부터 뿌리깊은 보상심리와 피해의식이

작동하며, 그건 동시에 턱없는 자부심이나 과도한 의미부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군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순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었다가, 또 순간 보람찬

애국자가 되어 자부심에 넘치기도 하는 자기분열적인 모습
을 보이는 거겠지만, 기본적으로

군인들의 애독서가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란 점이 의미심장해 보인다.

깊은 한숨으로 마지막장을 덮게 되는.


게다가 돈있으면 만고땡인 한국사회에서 '군필'이란 딱지는 마치 돈없고 빽없고, 그래서

순진무구하고 선량한 서민/소시민의 자격증인 듯 간주되고 있으니 더더욱 피해의식은

/커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피해의식은 대개 풍부하게 공급되는 온갖 병역비리,

군필 논란사건을 보건대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기도 하다.


결국 피해의식은 다음과 같은 이중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애초 군대를 남성만 간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

그리고 남성 중에서도 '돈없고 빽없는' 사람들만 간다는 사실에서 비롯하는 부자(남성)에

대한 피해의식. (거기에 더해 이미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의 '널럴한 요즘 군대'에 대한

피해의식도 있지만 그건 차치하자.)

그리고 그런 피해의식은 바득바득 인정을 받고 보상을 받겠다는 심리를 수반한다.

술자리에서 남자들 모두 자신이 가장 힘든 군생활 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보상심리의

사소한 발현일 거다.


만약 군대라는 공간이 조금더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고 알찬 곳이었어도 그렇게

큰 피해의식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만약 군대에서 뭔가 나름의 성과를 얻어 나왔다면, 뭔가

보람있는 시간을 보냈다면 그렇게 큰 피해의식이나 보상심리도 없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2년여의 시간을 밖에서 여성과 부자(남성)들이 공부하고 연수다녀오며 알차게 보낸만큼

자신들도 거기서 뭔가 스스로에 플러스가 되는 뭔가를 얻어왔다면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조직문화'에 대한 적응력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강변하며

'군필'에 대한 배려 내지 선호를 당연하다고 말한다. 위계에 대한 예민한 감각, 상명하복의

체화, '튀지 않고' 중간만 가려는 무사안일주의랄까 그런 것들이 이미 우리 사회 조직문화의

일부로 흡수된지는 오래인 건 맞다. 뭐 일부 그런 기풍에 벗어나는 분위기가 생겨나고는

있다고 알고 있지만, 아직 미미한 게 사실이다.


뭐 좋다. 그런 거 배울 수 있다고 치고, 진심으로 군대가 '조직문화를 익히는 배움의 전당'

이라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익힌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직장에 들어갈 때, 들어가고

난 후에 수월하게 적응한다면 된 거 아닌가. 혹 군대에서 익혀나온 '조직문화', '협동/인화/

단결' 같은것들이 제대로 사회에서 평가받지 못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페미니스트, 여성부,

군대내에서도 덜 '빡시다는' 곳을 다녀온 남성들..그런 사람들 때문에 가산점도 없어지고

호봉도 깎이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근데 이력서에는 군필 여부를 기록하고 구별이

가능토록 하고 있은 지 오래고, 군미필에 대한 주류의 시선은 여전히 따가운 게 사실이니

별로 억울할 건 없지않나. 적잖이 보상받고 있잖아.


난 사실 군대에서 개뿔 얻은 것도 없고, 아무리 사회적으로 보상하려 해봐야 그건

2년 몇개월의 시간을 메꾸기엔 턱없으며 소모적이고 갈등적인 사회적 논란-남녀간,

빈부간-만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군대란 걸 모병제라거나 기타 방식으로 시스템을

바꾸고 현실에 적응시키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괜히 허풍떨듯 여성은 못가는 군대, 남성들만

뭔가 특별한 걸 배워나온 듯 과시하지 말고, 동시에 가장 불쌍하고 천대받는다는 듯

분노하지도 말고. 어차피 갔다온 사람들은, 앞으로 그곳에서 썩어나갈 사람들이 조금은

덜 썩을 수 있도록, 그리고 조금은 더 스스로에 도움이 되는 방식의 군복무가 될 수

있도록 개선시킬 의무가 있는 거 아닌가.





P.S. 내 이전글 [면접관 후기] 면접보는 남자들 좀 영리해지자. 에서는 취업시 군필자와

미필자를 무차별하게 대하는 게 옳으니 그르니에 대한 글은 아니었다. 이미 이력서에 체크가

되어 아마도 서류전형에서 감안되었을 것이고, 면접때는 면접관의 이목을 끄는 좀더

생생하고 참신한 사례를 들어 본인을 어필하란 이야기였을 뿐. 군대 경험이 값진지 아닌지

그걸 따지는 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저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 핏발 세우고는 자부심과

피해의식이 마구 혼재된 심리상태를 자동기술하는 사람들은 참...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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