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는 신의 외양을 흉내낸 것들에 주의가 기울여지는 순간 우상숭배로 빠질 수 있다면서 조각상이나 징표를

빌려 신을 기리는 걸 경계할 만큼 분별있는 종교라고 생각한다. 모스크에 가도 화려한 스태인드글라스나 장식,

조각상들은 보이지 않고, 다만 코란 말씀들을 적어넣은 아랍문자들이 그림처럼 장식되어 있을 뿐. 그런 맥락에서

모스크가 주변 건물들에 포위당한 듯 압도당한 그림이 나오는 건 어떻게 생각할지 잘 모르겠다. 어쩜 크게 괘념치

않을지도 모르겠고, 아님 반대로 그렇게 독실하게 따르는 신의 처소 내지 전당을 압박하는 것에 버럭할지도.


보통 이렇게 띄엄띄엄 놓인 건물들 사이에서라면, 모스크가 아무리 작고 야트막해 보인다하더라도 하루 다섯번씩

독경 소리를 울려퍼뜨리며 기도시간을 알리는 미나렛이, 마치 물 밖으로 튀어나온 스노클링처럼 톡 튀어나와서는

모스크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그렇지만 이미 한껏 높아져 버린 카타르 도심의 공사현장 틈바구니에서는 미나렛이 제아무리 쫑긋대봐야

잘 눈에 띄지도 않는다. 외려 저 괴물처럼 커다란 건물 꼭대기쯤에서 신에게 기도드릴 시간임을 알리는 게

더 웅장하고 그럴듯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작고 약해보이는 모스크가 금세라도 밀쳐질 거 같다.

이 건물은 뭔가...세계 몇 번째로 높네 어쩌네 말이 나오고 있을 거 같다. 아직 건물이 다 올라간 건지, 아님 미처

다 올리지 못하고 여전히 올리고 있는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주위에 크레인이 없는 걸로 봐서 이미 다

올릴 만큼 올린 걸까. 저 높이쯤임 만족하고 세계 몇 번째니 하는 섹시한 광고문구와 타이틀을 거머쥐는 건가.

근방의 건물들도 모두 공사중. 카타르 도하는 공사중. 이렇게 짧막하게 이야기해도 별로 무리가 없지 싶을 정도로

차암~ 여기저기서 공사중이다. 도심을 지나는 도로가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모를만큼 길을 중간중간 막아놓고

돌려놓으며, 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사진으로 카타르의 열감과 열풍을 전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 저 분들이 얼마나 더울까..그래도 햇볕에 직접

닿지만 않으면 조금은 서늘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기에 머리고 팔이고 온통 천으로 가려 놓은 듯 하다.

노가다 현장에서 몇 달 일을 해본 바로는, 일 자체가 고되다기 보다는 그 먼지날리고 위험한 작업환경이 더

고되었던 것 같다. 다만 드럼통에 목재들 넣고 모닥불을 쬐가며 작업해야 할 만큼 추운 날이라거나, 햇볕이 너무

뜨거워 오후 한시에서 세시정도까지는 아예 그늘을 찾아 쉬어버리는 날에는 날씨 그 자체도 무지 힘들었다.

여긴 어떨까. 7,80년대, 그리고 지금도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어떨까.

도심을 벗어나 시 외곽쪽으로 조금만 나서면 이렇게 여유있고 설렁설렁 공간을 쓰고 있는 건물들이 천지삐까리다.

삼각뿔 형태의 담장, 삼각뿔 형태의 건물 외관. 그리고 빨간 삼각뿔이 뒤집어진 형태의 못알아먹을 교통표지판.

도하에 면한 아라비아해의 파란 바다를 내려다보는 저 집들. 여긴 딱히 모래사장을 찾아 걷고 싶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바다 앞에 지어진 집들은 좋을 거 같다. 낚시도 하고, 보트도 타고..가끔 살짝 잊어버리곤 하는데, 사막

근처의 바다라고 해서 바다까지 사막처럼 황량한 건 아닐 거다. 이집트 여행때 휴양도시 다합에서도 느꼈었지만,

바다는 어디에서든 바다다. 온갖 빛깔의 어패류와 생명들이 가득한.

물론 마냥 황량하게만 보이는 사막도 사실은 조심조심 생명들을 품고 있다.

이건 뭘까. 카타르에서 이용해본 대중교통이라곤 택시가 전부여서, 저게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버스라고 확실히

단언하진 못하겠다. 왠지 스쿨버스의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흔치 않게 강한 색을 가진 집이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살짝 흐끄무레한 색깔을 띄고 있거나 오랜시간 닳아버린

모랫빛깔을 닮아 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색 자체가 강하진 않더라도 뭔가 선명하고 단호한 느낌의 건물이라

맘에 들었다.

펄 카타르에 지어질 건물을 광고하는 대형 포스터랄까. 펄 카타르가 다 완성이 되면 저렇게 되는구나..빨간 원색이

좀 많이 쓰이고 녹색 정원이 건물 사이의 공간을 꽉 메운.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색깔이 좀더 밝고 선명해지고,

녹색이 훨씬 많이 눈에 띄고.


'펄 카타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LUSAIL 신도시 건설현장을 찾았다. 호텔서 나서서 그곳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게 전부 모래먼지 풀풀 날리는 공사현장들이었다. 카타르 정부에선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이

기존의 건물과 비슷하거나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착공 허가를 내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이 전부 뭔가 특이하다. 살짝 비틀어놓은 듯한 외양이거나, 허리춤을 바싹 졸라맨

모습, 혹은 얼기설기 꺽어놓은 듯한 모습까지.

도로의 양쪽은 그다지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계속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 심겨져 있는 비실비실한 나무

몇 그루가 그나마 황량한 경관을 조금 덜어주고 있었지만, 모랫빛의 토양, 모랫빛에 침식된 아스팔트, 그리고

모랫빛과 섞인 채 뿌연 하늘..저 뿌연 먼지가 사막에서 오는 건지 공사현장에서 오는 건지.

물론 모든 동네가 이런 건 아니다. 평균국민소득이 7만달러가 넘나드는 자원부국인지라, 그리고 그 부가 카타르

국적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집중된 나라인지라 잘 사는 사람은 엄청 잘 산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살지 않을까,

이렇게 베이지색 건물이 반듯하고 야자나무 가로수와 녹색 정원까지 잘 관리되고 있는 동네라면.

참,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가스세, 전기세, 수도세 같은 공공요금이 전부 무료라고 한다. 카타르 국적을

얻는 것은 출생이 아닌 한 불가능하다고 했던가..카타르 여성이 본국 남성이 아닌, 예컨대 미국 남성이라 해도 국제

결혼을 마다하는 것도 카타르 국적을 상실하는 것이 얼마나 큰 손실인지 알기 때문이라고.

카타르의 가정은 사람 수만큼 차를 굴리고 있다고 한다. 기름 값도 워낙 싸지만, 그만큼의 구매력이 된다는

뜻이겠다. 자연히 집 앞 주차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고, 마당이 넓거나 차고를 넓게 만들거나 한다고 했다.

그리고 역시나, 녹색 공간을 많이 확보하고 잘 관리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라고.

넓찍하게 공간을 쓰면서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단층 내지 복층짜리 건물들. 그리고 도로주변도 말끔하게 정비된 채

차들의 그림자들도 그리 짙지 않아서, 사진만 보고서야 여기가 한창 토목공사가 진행중인, 섭씨 삼사십도를 우습게

넘나드는 아랍지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지나가는데 가이드해주신 분이 불쑥 우측에 있는 건물이 카타르 왕의 공주가 사는 집이라며 잘 봐두라고 했다.

제법 달리는 버스 안에서 우측을 아무리 쳐다보아도 이런 담백한 모양의 담이 쭉 이어지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게

모두 공주집을 에워싸고 있는 담이라고 했다. 안이 어떻게 꾸며져 있을지 궁금했지만, 대충 녹색 정원이 건물들을

촘촘이 에워싸서 열을 식히고 있을 테고, 몇 채나 될법한 건물들은 모두 공주와 그 일가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봉사하는 시설과 사람들로 가득할 거다.

펄 카타르 공사현장에 가까이 접어드니 뭔가 더욱 본격적인 움직임들이 한창이다. 중동의 비버리힐스를 만들겠단

야심찬 계획이 실행되고 있으며, 4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규모의 고급 주거단지가 최종적으로 건설될 예정이라고.

앗..이렇게 찍고 본 사진은 왠지 다른 사이트에서 찾아본 펄 카타르의 조감도 중 일부랑 구도가 비슷하다. 아닌가..

2011년쯤 완공이라 했는데 그때쯤 다시 와서 완성된 모습을 보고 싶다.

현재 공사중인 펄카타르 프로젝트는 몇 개의 개발 구역으로 나뉘는데, LUSAIL 신도시는 펄카타르의 핵심인

인공섬 배후지역쯤 되나보다. 공사현장과 공사현장을 잇는 아스팔트 도로만 제대로 완성된 채 깔려있었는데,

그 길 모퉁이께 서있는 저 쌍둥이 빌딩의 뒤틀린 모습이란. 왠지 모르게 좌우로 삐뚝빼뚝 발을 움직여대는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는 모습이 연상됐다.

20세기 소년이란 만화에서 세계 멸망후 '친구력'을 새롭게 손꼽던 시대에서던가, '친구'가 장악한 세상과 기타

세상을 분리해놓은 국경선의 번듯한 외양을 가진 성이란 게 사실은, 요 앞의 하얗게 눈부신 장식품처럼 고작

합판 한장짜리 껍데기에 불과했던 거다. 아직은 공사중이라 저런 식의 카바가 필요했겠거니, 나중에 전부 완공되면

저런 식의 분칠 따위 없이 환상적인 도시를 내보이겠거니 믿어본다.

펄카타르라는 프로젝트의 신도시 건설 계획은, 두바이의 인공섬인 '팜아일랜드'에 자극받아 세워진 거라고 한다.

두바이가 야자수 모양의 섬을 만들었다면, 카타르는 진주 모양의 섬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대체 어떻게 진주

모양이 되는 건지 몇장의 항공사진과 설명을 봐도 여전히 이해가 잘 안 되지만, 어쨌든 기름 세례를 받기 전

카타르는 진주잡이와 어업으로 먹고 살았던 나라라서 '펄 카타르'를 만든다고 한다.


그 펄, 진주 모양의 섬을 만들기 위해 인간이 원하는 대로 요기조기 바탕색을 채워넣어주는 바다.

저 멀리 보이는 괴물같은 크레인들의 실루엣, 그리고 지어지고 있는 건지 부서져 내린 건지 일순 알 수 없어져버린

저 바벨탑들. 그나마 바다가 이만큼 공간을 잡아먹어 황량함이 덜하다.

바다를 메워 섬을 만든 게 아니라, 어쩌면 사람들이 미처 돌아보지 못하고 안 챙기는 빈 공간들을 바다가 메워주고,

채워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건물은 멀찍이 정면을 볼 때랑 이렇게 옆구리를 돌아나가면서 볼 때랑 느낌이 꽤 다르다. 그럴듯 하겠다.

저 멀리 보이는 게 하얏트 호텔이라던가..특급 오성급 호텔과 쇼핑센터들을 즐비하게 늘어세우고 그앞에는

800여대의 보트를 정박시킬 수 있는 호화 선착장을 짓는다고 했다. 솔직히 무지하게 화려하고 호화스러울 거 같단

생각은 든다. 그리고 한 번쯤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

그런데 어쩌나...아스팔트 도로는 2011년쯤 완공되기 전에 다 닳아빠지겠다. 잔뜩 헐어버린 느낌의 페인트하며,

검은색이 회색으로 변해버릴듯 낡은 느낌의 아스팔트하며. 저 길쭉한 삼각형 모양들이 이어져 있는게 횡단보도.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LUSAIL 신도시..의 모델 하우스랄까. 여태껏 달려온 광활한 공사현장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펄 카타르'의 조감도에나 나올 거 같은 파란 하늘에 말간 통유리창, 그리고 싱싱한 잔디밭정원.

입구에 들어서니 별 신기한 장식품이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려져 있다. 동그란 판 형태의 바닥이 위아래로 슬슬

진동하면서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왜 나는 이걸 보면서 어린 시절 일요일마다 보았던 외화가 생각났을까.

'초자력 충전~' 어쩌구하면서 은빛 갑옷을 위풍당당하게 휘감고 달려나가던, 그 녀석들의 에너지 충전소가

저렇게 생겼던 거 같다.

우선 간단하게 펄 카타르, 그리고 LUSAIL 신도시 계획에 대한 브리핑, 이렇게 생긴 등에서 뿜어지는 은은한

조명만을 제한 채 마치 수면실처럼 어둑어둑해진 분위기의 브리핑룸에서 깜빡 잠들어버렸다.

LUSAIL 신도시의 모형. 이 아랫쪽으로 주로 휴양 및 위락시설이 갖춰질 펄카타르 인공섬이 조성될 테고, 신도시는

펄카타르와 연계되어 비즈니스 시티로 육성된다고 한다. 현재 도하에서 거주중인 인구수와 비슷한 2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도시를 만들겠다고 하니, 그리고 그 계획이 펄카타르 프로젝트의 한 부분일 뿐이라니..정말

그야말로 역사적인 대공사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설명을 듣다가 다시 건물 밖으로 나섰다. 멀찌감치 쌍둥이빌딩이 서 있고, 근처에는 앙상하게

이쑤시개처럼 보이는 크레인들이 도처에서 삐딱하게 박혀있는 느낌이다. 이 모델하우스가 잘 정비되어 있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저 앞에 펼쳐진 공간이 정비된다면, 우선은 그 어마어마한 계획을 결국 실현시키고 만

능력(추진력은 물론 자금력까지)에 경의를 표할 용의는 있다. 그치만 왠지..뭔가 제대로 수요조사가 된 건지,

기름과 가스가 떨어지면 관광산업에 기대겠다는 방향은 맞는지, 방향이 맞다해도 이런 식으로 관광산업을

육성하려는 게 맞는 건지, 저렇게나 해안선을 뒤틀고 스카이라인을 잔뜩 치켜올려도 괜찮은 건지..좀 뭐랄까,

기가 질려 버렸다고 고백하는 게 맞을 거 같다.
사우디 리야드에서 카타르 도하까지는 1시간 20분만 날면 도착이다. 서울에서 제주도 갈 때처럼, 왠지 비행기가

미처 제 속도를 내기도 전에, 그리고 미처 충분히 고도를 올리기도 전에 내려앉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그럴까, 창밖으로 사우디인지 카타르인지, 아님 어딘지 모를 그런 지면이 얼룩덜룩 식별이

될 만큼 가까워 보였다. 황토빛의 황량한 풍경이라지만, 잘 보면 지상의 땅 위에 구획을 이리저리 지어놓고

도로도 종횡하고 건물도 올려진 게 보인다.
특히, 저 창밖의 붉은 점 하나. 붉은 라이터 불빛처럼 펄럭이는 게 뭘까...생각하다가 순간 깨달았다. 유전이구나!

난 잠시 비행기로 지나치며 언뜻 보았을 뿐이지만, 비행기 위 사람들이 알아채거나 말거나 조그마한 주홍빛 불빛이

황토빛 땅위에서 밤이나 낮이나 쉼없이 타오르고 있을 거다.

어느덧 비행기는 아라비아해 상공으로 접어들었다. 짙푸르다 못해 검은 기운마저 느껴지는 하늘, 그리고 뿌연

모래바람이 맴돌고 있는 누런 대지, 그야말로 天地玄黃이다. 아라비아해의 푸른 바다마저 살짝 누런 물감을 머금은

듯, 희뿌옇고 탁한 느낌이다.

질리지도 않고 창밖을 구경하던 중에 불쑥 나타났다. 도하에서 야심차게 추진중이라는 인공섬 "펄 카타르(Pearl

Qatar)"의 공사현장. 두바이의 인공섬 팜 아일랜드(Palm Island)가 중동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도하가 이를 벤치마킹한 거다. 석유가 터지기 전 진주조개잡이와 같은 어업으로 삶을 꾸려왔던 카타르의

역사를 상징하는 이름 "펄 카타르". 크기는 400제곱미터, 대략 여의도 반만한 크기라고 생각함 될 거 같다.

애초 기대고 비빌만한 아무런 땅조각도 없던 바다 위에다가 흙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부었겠지, 저만큼의 땅덩이를

조성해내서 아예 도시 하나를 그 위에 세워버리겠다는 아이디어란 참..막대한 오일머니가 그런 황당무계한 생각을

현실 속에 구현해 냈을 터이다.


석유가 다 떨어지고 천연가스마저 다 소진되고 나면 중동, 혹은 아랍권을 부양할 새로운 자원이 무엇이 되야 할

것인가, 라는 심각하고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나름의 적극적인 대안이겠지만 글쎄..현지의 부자와 외국의

부자들을 위한 일종의 리조트 국가를 만들 셈인가 싶다.

해안선이 이런식으로 깍둑썰기하듯 네모반듯해도 웃기는 일이지만, 위에서 보았던 것처럼 똥글똥글한 몽우리들을

유지하도록 해안선을 그리는 것도 좀 웃기는 거 같다. 흙장난하는 거 같기도 하고. 아마 한국 서해안에서 그간

무분별하고 무조건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간척사업에 대한 반감 내지 거부감이 이 '펄 카타르'에도 투영되는 것

같다. 이곳 역시 아무리 겉보기엔 황량하고 을씨년스런 사막지대라고는 해도 나름의 환경과 생태가 존속하고

있을 텐데, 강하구에 쌓일 퇴적물들과 환경오염 문제..그런 건 공통적이지 않을까 싶다.

크게 선회한 비행기가 다시 육지면 위로 날아올라왔다. 아마도 여긴 카타르의 수도, 도하의 상공이겠지. 뭔가

사우디 리야드에 들어설 때 상공에서 봤던 그 띄엄띄엄한 구획들보다 훨씬 오밀조밀한게 느낌이 다르다. 건축쪽

일을 하시는 아버지가 긍지높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상에 건물들과 다른 건축물들을 올려세우는 걸 두고 지구

표면에 조각을 하는 거라 표현한다면, 여긴 훨씬 복잡하고 섬세한 그림이 치밀하게 그려진 거 같다.

이 단호하게 뻗은 4차선 도로는 어디와 어디를 잇고 있는 걸까. 전혀 곁가지를 치지 않고 쭉 일직선으로 달리는

도로 양 옆으로 모래언덕이 같이 내달리고 있다.

지면이 점차 가까워진다는 느낌과 함께, 비행기 날개가 끼긱거리면서 넓어지기 시작한다. 양날개 뒷쪽켠 숨겨진

공간에서 뻗어나오는 철판이 약간 지상쪽으로 구부러지면서 바람을 잔뜩 안기 시작한다. 날개와 거칠게 부딪히는

바람이 씩씩대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가끔은 비행기 동체까지 부르르 떨리기도 하고.

왠지 모든 비행기 사고의 대부분이 이착륙시에 생긴다는 정보를 어디선가 읽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저 날개가

푸들푸들 떨리는 것을 겁먹은 눈으로 쳐다보게 되는 타이밍.

검은 바탕에 흰색 줄무늬가 점선으로 그려진 공항 활주로가 순식간에 눈앞으로 닥쳐오는 착륙직전쯤 되면, 갑자기

비행기 날개는 변신을 한다. 트랜스포머처럼, 조금만 더 변신하면 뭔가 로봇을 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친듯이 치받는 바람, 그리고 공중에 있을 때보다 더욱 위태로이 덜컹거리는 기체.


저렇게 아이스께끼하듯 윗날개판을 들어올려서 앙상한 날개의 속살을 드러내는 때에는 대체 이 '날틀'이란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그리고 저 날개라는 것도 새들이나 상상속 동물들, 나는 것들이 그렇듯 우람하고 튼실한

근육질의 것이 아니라 몇개의 철골 뼈대에 이리저리 오려붙여진 무거운 철판나부랭이라는 사실을 얼마나 쉽게

잊고 마는지. 그 유려하고 날렵해 보이던 날개는 저런 철판으로 화장하듯 껍데기만 치장해 놓은 거였다니.

카타르 항공기를 사람들이 타고 있는 모습, 내가 탄 사우디아라비아항공기에서 내가 내리는 모습을 찍을 수 없을

땐 다른 비행기와 다른 사람들 중 하나에 스스로를 감정이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비록 그게 내리는 모습이 아니라

타고 있는 모습이라 하더라도. 나름 근사한 mirror-image.


사우디와는 달리 카타르는 입국하면서 여권과 함께 신용카드를 건네주면 바로 비자가 나온다. 약 25불 가량,

100카타르 리얄만 내면 다른 입국신고서라거나 귀찮은 절차도 없고, 길고 굵은 속눈썹에 깊고도 까만 눈동자를

가진 여성 출입국심사관의 미소섞인 "웰컴 투 카타르" 인사도 받을 수 있다. 사우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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