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곳곳으로 까페가 급격하게 번지는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까페를 찾는 이유는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 때문이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쿠션이 엉덩이와 허리를 받쳐주는 등받이의자,

테이블과 몸뚱이 사이에 꼽아서 고정시켜둘만큼 두툼하고 단단하면서도 보들보들한 쿠션 두어개, 또

옆테이블에 앉은 사람과 말을 섞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지 않을 만큼은 충분한 테이블간의 널찍한 거리,

굳이 통유리가 아니어도 햇살과 바깥 풍경이 꾸물꾸물 스며드는 창문과 맘에 드는 노래, 거기에 굉장히

진한 에스프레소나 더치커피 같은 것들. 그런 거라면 반나절은 족히 까페에서 뒹굴 수 있는 거다.

책을 보던, 음악을 듣던, 이야기를 하던, 다이어리를 끄적거리던, 공부를 하던, 사실 가장 좋은 건

여행책자를 펴놓고 여행계획을 짜거나 어디 놀러갈지 생각하는 거지만. 사실 그렇게 치면 까페에

들어가 마시는 커피나 차류는 일종의 자릿값인 셈이다. 커피를 마시는 게 목적이 아니라 뭔가

쿠션과 테이블, 공간을 차지하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니까.

이렇게 볕이 한조각 떨궈진 공간에서 꾸물꾸물 밀려나는 그림자와 볕이 잠식한 빛의 영토를 시계삼아,

아침부터 점심, 점심부터 저녁..이렇게 대충 얼버무려진 하루를 하릴없이 까페에 앉아 뒹굴거리는 것.

굳이 분단위, 시단위의 시계나 전화기에 신경쓰지 않으며 책 한권쯤 읽는 것. 그러고 보니 그런 여유를

즐긴지도 꽤나 된 거 같다. 이 까페에 갔던 것도 어느새 수십일 전쯤.

그렇게 조용히 있다 보면 이런 평범한 앞접시에 숨어있던 밤하늘 별들과, 조그마한 망아지 한마리가

튀어나오기도 하는 거다. 흘낏 지나치는 시선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것들.

카메라라도 쥐고 있으면 더 좋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까페 곳곳에 렌즈를 들이대며 다짜고짜

찍어대기도 하고, 잘 안 쓰던 카메라 기능을 이렇게 저렇게 시험도 해보고.

아무래도 그렇게 즐겨 찾아드는 까페는 사람들이 좀 적은 곳, 덜 알려진 곳이기 마련이다. 아니면

사람들이 많이 찾더라도 상대적으로 조금 채워져 있는 시간대일 법한 때에 찾아가고. 사실 웬만한

까페는 다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곳이어서, 그런 고즈넉하고 편안하고 조용한 까페를 찾기란 쉽잖다.

까페 이름이 처음엔 '고기'라고 읽는 건가 했다. 까페 이름이 고기라니, 했더니 알고 보니 고기가

아니라 '고희'란다. 제법 맘에 든 까페여서 앞으로도 틈나면 가보려고 생각 중.

돌아나오는 길은 가정집도 많고 조그만 이층건물들이 골목을 따라 늘어선 다감한 느낌, 어렸을 적

왠지 무섭고 위축감 느끼게 만들던 저 사자머리 철문손잡이가 여전히 버티고 섰다. 이제 더이상

무섭지도 쫄지도 않게 되어 버렸지만, 그런 골목의 느낌도 애써 찾아다닐만한 거 같다.

 











살갗을 간질이는 봄햇살의 따스함과 보드라움이 사진에 담겼으면, 하고 찍었다.

봄날엔 그림자조차 보들보들 너그럽고 따뜻한 느낌이다.



@ 대림미술관 & 통의동 어느 까페.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좀더 걸어들어가면 영추문이 나온다. 가을을 맞이한다는 그 문과 마주보고 있는 거리에는

자그마한 미술관들과 까페들이 거창한 간판도 없이 숨어있다.

늘 그 동네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건 회칠이 벗겨진 담벼락에 그려진 여리여릿한 나무 한 그루. 더이상 회칠이

벗겨지지도 않고 딱 저만한 공간 속에서 나무는 호젓하다.

그 옆에 붙은 '보안여관', 한때 안기부에 조사받으러 불려다니던 피조사인들이 애용하던 곳이었다던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허름한 뽄새와 왠지 모를 시간이 켜켜이 쌓인 포스를 늘 눈에 담고 갔었다. 마침 전시가

있어서, 카메라 뚤레뚤레 흔들며 구경질 시작.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들로 인형을 만드는 작가분이 1층과 2층을 모두 쓰며 작품을 전시하고, 또 계속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솔방울, 잔가지, 마른꽃대궁, 씨앗..담담하고 조신한 색감이 맘에 든다.

여관(으로 쓰였던) 건물 내에 붙어있던 재미있는 표어. "미성년자는 입장해서도 안 되고 입장시켜도 안됩니다."

그리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들마다 숨겨진 보물처럼 꼭꼭 감춰진 작품들.

빼꼼히 열린 방문 틈으로 창을 휘두르는 기사도 보이고, 다소곳한 매무새의 아가씨도 보이고.

2층으로 올라가는 길, 온통 낡고 헤진, 그리고 지저분한 여관의 내음이 물씬하면서도 나뭇가지니 마른 잎사귀

따위로 잘 갈무리된 느낌이다. 사실 이렇게 오래되고 우중충한 건물, 더구나 그야말로 갑남을녀가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관이란 곳은 청결함이라거나 말끔함과는 워낙 멀리 떨어진 곳 아닌가. 예술작품과는 더더욱.

솔방울과 마른 콩깍지 따위로 만들어낸 순간. 조그마한 새끼가 커다란 새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의 순간이다.

우연찮게 여길 들르기 직전에 돌아봤던 곳은 대림미술관, 커버 아트의 대가라는 로저딘의 회고전을 봤었다.

'Dragon's dream'이란 제목의 그 전시를 보고 나서 막상 여기서 또다른 형태의 용을 만나다니 신기했다.

이제 끝. 한번 설렁설렁 돌아보기 딱 좋은, 부담없고 재미있는 전시인 거 같다. 마치 전시작품들과 작가를

수호하듯 카랑카랑한 자태로 1층을 지키고 있던 (아마도) 샤먼.

그리고, 전세낸 듯 혼자 기대앉아서 해가 저물도록 책을 읽다 돌아온 통인동의 어느 까페. 정말 요새 까페하기

참 쉽다. 대충 짝이 맞지 않고 이가 어긋나 보이는 가구들 잔뜩 들여넣음 끝..이랄까. 사실은 이런 분위기 참

좋은 거 같다. 게다가 노래 선곡도 넘 맘에 들었던 게, '베란다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 그리고 '루시드폴'

앨범이 고스란히 순서대로 공간을 채웠었다.

그리고 굉장히 맛있던 갓구워낸 초코 브라우니, 그리고 에스프레소.

조그마한 병이 쟁반에 같이 나왔는데, 첨엔 시럽이려니 생각했다가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럼 이 녹색식물떼기는

왜 꼽아둔거지. 그냥 데코레이션으로 꼽아둔 건가. 아님 그냥 화병인 걸까. 뭔지 모르겠더라.



한 네시간동안, 노래에 흠뻑 취해 책 한권을 홀딱 다 읽고는 나왔다. 노래 참 잘 들었어요, 하고 나왔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