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의 영면을 지키는 청룡, 왕이 뉘어진 동쪽벽에 그려져 있다.

무령왕릉, 백제를 중흥시킨 몇몇의 왕중에서도 손꼽히는 왕인 무령왕이 묻힌 곳이다. 그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저 유추해보건대 저렇게 생겼으리라는 게 박물관측의 조심스런 추측.

백제 무령왕릉의 특징은 중국 남조로부터 전래되었다던가, 일정한 사이즈의 벽돌을 촘촘이 쌓아올린 과학적이고

탄탄한 벽돌무덤이었다고 얼핏 국사 시간에 배웠던 거 같다.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은 언제나 살짝

으스스하다, 그게 실제 무덤이건 모형이건 간에.

그리 넓지 않은 벽돌무덤 공간의 사방에 서서 나머지 삼면을 찍어보겠다고 기를 쓰고 벽 틈새로 몸을

부비적댔지만 쉽지 않다. 서늘하고 교교한 램프의 불빛이 벽돌 틈새로 걸쭉하게 흘러내리는 거 같았다.

제각기 독특한 문양이 새겨진 벽돌이 정교한 가로세로 비례에 따라 아귀를 맞춰서 배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장의 벽돌을 합쳐서 저렇게 연꽃무늬가 떠오르는 식의 벽돌이란 건, 실제로 어떻게 쓰일지

어느 방향으로 배치될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준비가 있었단 얘기 아닐까.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에

더해서 섬세하고 정교하기까지.

고분들이 그려내는 저 안온하고도 푸근한 선은 볼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인공적으로 쌓아올린 흙둔덕이면서도

저렇게 자연스럽고 부드러우며 유려한 곡선이라니. 그런 고분 옆구리에 저렇게 잔뜩 녹슨 청동문짝이 숨어서

백제의 옛 왕들로 향하는 길을 내고 있단 걸 생각하면, 저 곡선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무령왕의 무덤에서 발굴된 그의 왕관. 실제로 쓰였던 건지 아니면 무덤 부장품으로 만들어진 건지는

불명확하다고 하나, 수천년을 지나고서도 저렇게 모양이 건사되어 있는 황금관의 온전함에도 감탄, 또

그 형태를 토대로 반짝반짝하게 만들어낸 재연품의 화려함에도 감탄.

무령왕의 무덤자리를 땅의 신으로부터 샀다는 것을 증명하는 매지권에 새겨졌다는 문구. 토지는 모두

지신으로부터 빌린 거라는 관념은, 얼핏 원시적이고 야만스러워보이지만, 어쩌면 그 땅 위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같았을지 모른다. 모두가 왕의 땅, 이라거나 돈있는

사람의 땅, 이라는 식으로 권력과 금력을 좇아 땅의 소유가 이전되었다면, 그 결과는 사실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이 대변하고 있지 않은가.

그의 무덤 앞을 지키고 있었다는 상서로운 석물. 등짝에는 호랑이처럼 굵은 줄무늬가 가로로 죽죽 그어져있고,

네 다리에는 불꽃이 일렁이는 것 같다. 게다가 그 다부지고 단단해 보이는 위압감은, 비교적 작은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뿜어내는 포스가 대단하다.

무령왕릉에서 발굴되었다는 귀중한 유산 중에서도 가장 맘을 끌었던 것, 은으로 만들어진 찻잔과 잔받침.

뚜껑 손잡이는 연꽃모양으로 정교하게 세공된 채 금으로 꽃받침장식을 만들어 손잡이와 뚜껑을 이었다.

게다가 찻잔의 실루엣에서 느껴지는 저 완만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미란.




@ 충남 부여, 궁남지

@ 충남 부여, 사비성




 @ 남산골 한옥마을

@ 충남 공주

@ 한강 고수부지

@ 충남 공주 무령왕릉

@ 경기도 의왕호

@ 강화도




백제 문화가 만개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건 '무령왕릉'의 발굴 이후였다고 한다. 우리가 갖고

있던 백제에 대한 이미지는 굉장히 막연하고 불분명해서, 예컨대 금동용봉대향로같은 굉장히

화려하고 세련된 유물을 발굴하고 나서도 이것이 백제의 것일지 아니면 중국의 것을 수입한

것일지 논란이 있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儉而不褸,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 :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음)"라는 백제의 미감을 한껏 표현한 무령왕릉유적의 화장실엔 그래도 조금은 신경쓴, 백제의

미감엔 한참 못 미치고 복식 역시 조선의 그것을 연상시키지만, 아무튼 조금은 신경쓴 듯한

화장실표시가 있었다.

이왕 화장실 표시를 범용의 파란색 남자, 빨간색 여자 표시에서 벗어난 개성있고 문화가 담긴

뭔가로 바꾸고 싶었다면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약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지만

그래도 이 곳까지 생각이 미쳤다는 것 자체로도 분명 진일보한 건 사실일 터다.




'2010 세계대백제전'을 준비중인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대백제전이라니,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하나씩 들고 나오는 무분별한 지역 행사 중의 하나는 아닐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출발해

부여에 
도착했다. 최근 성남시가 재정 악화로 모라토리엄 선언을 했듯 그간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유치하고

남발했던
지역 행사들도 상당수 지지부진한 채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상황, '대백제전'은 부디 그런

'나쁜 예'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취재 전에 '대백제전', '안희정'에 대해 미리 검색해보고 조사하는 것은 필수, 여러 정보 중에서도 최근

시사지에서
봤던 기사 한 꼭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김종필 전 총리가 기획해 심대평 지사 시절 시작했고 올해 축제를 앞두고 공사가 완료되었다. 이완구

전 지사는
이 축제를 국제 행사로 키워놓았고 안희정 지사가 마무리를 하게 된 것이다."

"
안희정이 백제에 빠진 까닭(시사IN, 151호)".

라는 내용이 있을 만큼 오랜 준비 기간을 거친 세계대백제전, 안희정 지사는 자신만만해 보였다.

2010 세계대백제전이 펼쳐질 부여의 '백제문화단지', 그 중에서도 고대 국가의 궁궐을 최초로 복원했다는

부여궁(사비궁)과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된 능사를 복원한 공간을 안희정 지사와 함께 돌아보며 '대백제전'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눠보기 전, 간단한 브리핑이 있었다. 4000여 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되어 330만㎡

(100만 평)
대지에 건립된 아시아 최대의 역사 테마파크라는 백제문화단지, 1994년에서부터 근 20년 걸려

지어진 셈이다.


아시아 최대니 뭐니, 그런 거창하고 알맹이없는 수사보다, 무엇보다 놀랐던 사실 하나는 세계대백제전은 기껏

몇년 된 다른 지자체 행사와는 달리 올해로 57회를 맞는 연원깊은 행사라는 것. 일제시기 낙화암에서 나라잃은

백성의 비애를 달래던 부여/공주 지역행사를 이어받았다고 한다. 안희정 지사는 그런 역사적 연원을 강조하며

이 행사가 여느 지자체 주관의 행사들과는 다르게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성원과 지지가 있음을 강조했다.

사비궁에 들어서며 설명을 듣고 있는 안희정 지사. 그는 백제 문화와 역사가 그저 피상적인 암기와 이해에

머물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사실 '백제'라는 고대 국가의 이름이야 너무도 익숙하지만 그에 걸맞는 이미지나

깊이있는 지식이 있었던가. 북한과 남한이 각각 국가 정통성의 연원으로 '고구려'와 '신라'를 상대적으로

부각하던 사이, 1400년 전의 이 화려한 고대국가는 점점 그 흔적을 잃어가고 있었던 거다.

그런 점에서 세계대백제전을 통해 잊혀졌던 역사를 다시금 기억해내고, 재구성해내어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의

역사문화적 저력을 재발견하려는 것이 대백제전의 목적이라 한다. 외국에 나갔을 때 고작 삼성 반도체, 현대

자동차 따위 최근의 공산품 제조능력만으로 식별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화적 저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나 자신의 한국인으로서의 품격이 존중받길 바랍니다"라는 게 안희정 지사의 바람이다.


들으면서 꽤나 거창한, 그렇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지구촌 유지'의 일원이

되었음에 천박한 황금이빨을 드러내며 으스대기 바쁜 게 지금 한국의 문화적 소양이랄까, 수준인 터다.

그에 더해 필요한 건 문화적 자존감과 정체성의 풍요로움. 백제는 분명 그 중요한 수원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담이불루 화이불치'라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백제문화의 정수를 찬탄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에 잘 살려내는 건 우리 후손들의 몫.

사비궁은 삼국시대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한 것으로, 아무런 잔존 건물이나 흔적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꽤나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백제와 영향을 주고 받았던 수, 당, 남송은 물론 왜의 당대 자취를

추적하고 고증을 거치면서 탄생한 궁전이지만 당연히 원래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거다.

역사도 마찬가지, 지금 우리가 불러내는 '백제'의 기억이란 지금 이시대의 요구와 필요성에 의해 제약받을

거다. 당장 낙화암 인근에서 대백제전 기간에 벌어진다는 '수상공연'이 4대강 정세와 맞물려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안희정 지사도 그런 부분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 했다. 한국의 토담 문화가 벽돌이나 석재를 위주로 한

여타 문화에 비해 시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금세 지워지기 쉬우나, 가능한 한 기록과 보전을 통한 역사문화의

계승은 꼭 필요하다는 것. 20세기식의 민족주의 혹은 국수주의를 극복하며, 동시에 현시대의 정치적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사비궁을 돌아보고 점심까지 함께 하며 좀더 심도 있는 질문들을 나눴다. 내가 했던 첫 질문은, 대백제전을

이렇게
커다란 규모로 준비하고 있는데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 백제문화, 조금 좁혀 대백제전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를 제시해 준다면 무엇인지
였다.


안희정 지사의 답.

백제의 키워드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대백제전의 키워드는 첫 번째로 역사무대를 소재로 한 지역의 축제이고, 두 번째로는 백제의 역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자체가 이번의 가장 큰 목표이다.

해상왕국으로서의 백제, 아시아권 질서내에서의 백제, 불교문화의 중심으로서의 백제, 향후 대백제전이 어떠한 주제의 컨셉을 가지고 볼것이냐가 앞으로 개발되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역사문화축제라고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은 국가중심의 역사로부터 땅의 사람의 역사에 대한 문화에 대한 관점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국가의 역사로부터 백제의 역사는 있지만 한반도 어느 한 지역을 차지했던 이 땅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체계적으로 그 역사와 문화 속에서 오늘과 내일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백제문화제의 초창기 55년, 56년 백제문화가 열렸던 초반기에는 국가의 패망을 애석해하는 유민의 심정으로 연민의 마음으로 행사를 치루었다면 올해 세계대백제전은 이 지역사로서의 백제의 지역역사에 대한 주목이 첫 번째 컨셉이고 역사에 대한 인식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온조 이야기를 주제로 한 사마(왕) 이야기, 사비미르 (부여의 용) 의자왕을 주제로 한 수상공연과 삼국시대의 궁터, 백제의 궁터 재현단지가 이번 축제기간에 주목받는 컨텐츠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사비궁과 능사를 둘러보던 옷차림은 참 편안했다. 등산객들이 흔히 쓰는 편한 모자, 그리고 한 손에는

플라스틱 부채를 쥔 채 캐주얼 차림이었다. 그의 말투 역시 차분하면서도 단단한 맛이 느껴지는, 그리고

무엇보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성과 열정이 전해지게 만드는 그런 느낌.

그리고 두번째 질문, 외국인 관광객을 20만명으로 잡고 있었는데 이들을 유치하기 위한 구체적인

복안이
준비되어 있는 건지. 주로 어떤 국가의 관광객이 타겟이 될지.


안희정 지사의 대답.

20만 외국인 관광객 중에서 대다수는 일본인 관광객이 차지할 것이다. 주미대사가 열심히 홍보대사 역할을 해주실 것이다. 샤프 사령관등 주한미군 가족들이 백제역사 축제에 많이 참여를 할 것이고 한국에 살고 있는 많은 미국인들의 관광도 예상하고 있다.

일반 기업인들도 한국 내에 들어와 있는 많은 외국인 바이어들을 실질적으로  대접을 잘하고 싶다면 백제재현단지 문화를 보여줌으로써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1400년 전 패망했던 백제유민의 심정으로 역사를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한반도가 아시아의 질서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우리의 조상들이 어떠한 생활반경을 가졌는지를 주목해 본다면 아시아 평화와 질서를 만드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본다.


안희정 지사는 2010 세계대백제전이 가진 커다란 의미를 강조하면서도, 무엇보다 사람들이 함께 즐기며

또다시 이 시대의 기록을 쌓고 추억을 만들어가려면 재미있고 내실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강조했다. 그가 가장 자신있게 추천하는 공연은 바로 '사비미르 수상공연'. 꼭 한번 다시 와서 1400년 전

백제의 문화와 분위기를 흠뻑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백제전 홈페이지 : www.baekje.org/html/kr )



덧댐. 백제문화전과는 상관없이, 안희정 지사에게 궁금한 점 하나가 있어 트윗 친구를 빌어 질문을 했다.

안희정 지사(@steelroot)는 평소 활발한 트윗을 하는 걸로 유명한데 요새 트윗 세계와 바깥 세계와의

온도차가 심하게 나는 건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지. 대체 왜 그럴까, 하고. 대답이 궁금하신 분은 그에게

다시 물어보셔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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