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 10점
올더스 헉슬리 지음, 정승섭 옮김, 바나나몽스 그림/혜원출판사

 

흔히들 말하듯 유토피아의 반대가 디스토피아, 그런 간단한 말로 축약될 때 뭉개지는 것들이 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인간의 이지가 확장되면서 예견하는 밝고 풍요한 미래, 그 자신만만한 예측과 전망이

 

유토피아의 밑그림이 되는 거야 당연하다지만 실은 그대로 디스토피아의 깔개가 되기도 하는 거다.

 

 

"삶의 요소가 획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생활의 학문이라는 수단에 의해서뿐이다...

진정 혁명적인 혁명은 외적인 세계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영혼과 육체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천국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술을 마셨습니다.

영혼이라는 것과 불멸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르핀과 코카인을 복용했습니다."

 

"감정은 욕망과 그 욕망의 달성 사이에 있는 시간 속에 숨어있다."

 

 

이런 얕지 않은 성찰과 반성을 기반으로, 인간의 물질적/정서적 필요를 최대한 신속정확하게 충족시키고

 

부정적인 감정과 불편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건 사실 대부분의 근대화 프로젝트가 공유하는 야심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가용한 모든 자원과 기술, 사회제도까지 송두리째 기울여지는.

 

 

"정말로 능률적인 전체주의 국가라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정치적 우두머리인 간부들과 그들 아래의 많은 관리층이

노예생활을 사랑하기 때문에 억압할 필요가 없는 노예를 통제하는 형태를 띄고 있다."

 

 

헉슬리가 묘사한 건 그런 야심을 거대한 뿌리로 삼은 커다란 나무가 키워낸 어느 굵은 가지의 한 극한이다.

 

사회적 역할과 운명이 결정된 인공 수정과 공동 양육, 자유로운 성생활, 더이상의 철학과 상상이 용인되지 않는

 

'완전한' 사회제도, 정교한 톱니바퀴와 같이 인간이 결핍을 느끼기도 전에 제공되는 물질들, 그리고 신경안정제까지.

 

 

아니, 그 '멋진 신세계'에서 완벽하게 충족되는 건 '인간' 일반이 아니라 그 사회의 구성원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의 의미는, 마치 서서히 끓어오르는 물에 빠진 개구리와 같이 인간은 특정 사회제도와 분위기에 함몰된 채 휩쓸려가기

 

쉽다는 함의도 포함한다. 미래상을 늘어놓기만 하던 소설이 생명력을 얻는 건 버려졌던 땅의 '야만인'이 나타나면서부터다.

 

 

그는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이라 여기는 것들 하나하나에 당혹감을 느끼고, 어느 순간 굉장한 거부감을

 

토해내게 된다. 그는 셰익스피어 문학에 표현된 '옛 시대' 인간들의 정서와 상식에 기대어, 어느 극단적인 정점에 올라선 채

 

더이상 과거와 같은 인간이 살 수 없게 된 세계가 얼마나 기형적이고 추한 얼굴을 갖고 있는지 보는 눈을 가진 자다.

 

 

결국 그는 사람들로부터 구경거리가 되어 조롱받고 희화화되다가, 끝내 자살하고 만다. 그 '눈'을 감아버린 셈이다.

 

그의 죽음이란 현재 인류가 지향하고 있는 가치라거나 역사발전의 이상향 같은 게 끝내 도달하게 될 미래가 얼마나

 

황량하고 비인간적일지에 대한 감각을 극적으로 폭발시키는 장면이 아닐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끝내 못버텨낼 그런 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더 짚어보고 싶은 부분이 생긴다.

 

 

어쩌면 그 '원시인'은 단지 일종의 '타임-슬립'으로 인한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건 아닐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면,

 

그는 그 '멋진 신세계'에 적응이 실패한 것뿐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원시의 자연에 살다가 문득 발견된 사람의 아이들이

 

사회 적응에 실패해서 자살하거나 다시 자연으로 도망가는 사례가 없지 않은 것처럼, 그도 자신이 준거로 삼은 시대-

 

그것도 고작 세익스피어의 책 속에 그려진 시대-로 '퇴행'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보다 중요한 건, 책에 그려진 그 '멋진 신세계'의 모습이 진심으로 정말 그렇게 비극적이고 비인간적인지 하는 문제다.

 

"문제의식은 옳았다, 그러나 해결방식이 너무 극단적이었다?" 따위의 어정쩡한 봉합 말고, 인간의 생래적 한계를

 

극복하고 신체적, 사회적 모순을 해소하려는 그 가상한 문제의식과 상황판단을 공유했을 때 어떤 다른 그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원시인과 함께 했던 둘셋의 지식인들이 가진 먹물 고유의 불만은 그렇다치고, 책의 마지막장까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들에서 더욱 가슴 서늘하게 느끼게 되는 부분은 사실 소설 외부에 있다. 사실 지금 도래한

 

매순간이 외부에서 온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디스토피아일지도 모른다. 상식과 비상식이 어지러이 경합하는 와중에

 

무엇인가는 쉼없이 탈각되고 생성된다. 일일이 감응할 수 없는 보통사람에게는, 대체로 행복한 시대다. 소설 속 그들처럼.

 

 

우리는 어떤 비인간과 어떤 황량한 풍경을 껴안고 살고 있는 것일까. 알량한 행복감에 젖은 채 놓치고 있는 건 뭘까.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얼마전 티스토리 초대장 30장을 빌미로 많은 분들의 고견을 경청한 결과 제 블로그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초대장 30장(완료)] 블로그명 바꾸려는데 도와주셔요~*)

그러고 나니 대체로 반응은 좋은 거 같은데, 명함이 문제네요. 작년 티스토리 우수블로거로 선정되면서 그토록

바라던 블로거 명함을 잔뜩 받았는데, 더이상 써먹기가 좀 애매해져 버렸다는.

얇은 플라스틱 재질의 명함이 이렇게나 많이 왔는데 이걸 이제 다 어째야 할지 걱정입니다. 음식점 응모함에도

넣고, 지하철 광고판에도 좀 꼽아넣고 그래야 할까요.;

처음에 명함을 받고 워낙 좋았던지라, 그렇게 허투루 쓸 수는 없고 이렇게라도 써야겠습니다. 뭐, 제 손글씨가

양념처럼 조금 얹히는 것도....;;;;


여튼, 해서 제 블로그 이름이 바뀌었다는 공지 겸 명함 아깝다는 투정 겸~ 겸겸.






제가 처음 티스토리 초대장을 받았을 때는 그냥 잠깐 해보다가 신통찮으면 금방 접을 생각이었습니다.

아이디야 늘 쓰던 ytzsche, 이채가 있었으니 그대로 간다고 쳐도, 대체 블로그명은 뭐라고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습니다. 어렵다면 한없이 어렵고 쉽다면 또 한없이 쉬운, 그런 게 작명의 아이러니함인지라, 그냥 당시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책에서 한 구절을 따오기로 했습니다.


경험적 세계의 유토피아적 가능성, 칸트가 영구평화론과 더불어 유토피아를 펼쳐보이는 그 단초에서 나왔던

말이었을 텐데, 사실 칸트는 그다지 익숙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유토피아란 어정쩡하고 형이상학적인 단어도

그렇거니와, 딱히 관념적 세계를 대비해서 강조할 필요도 못 느끼는 터에 경험적 세계라니, 여러 모로 단어의

과잉, 단어들의 부정교합이 느껴지는 타이틀이었습니다.


그래서, 30장의 초대장을 빌어 '집단지성'의 힘을 빌어보기로 했습니다.
● 일시 : 2010년 4월 12일(월) PM 10:00부터

장소 : 舊) 異彩가 꿈꾸는 경험적세계의 유토피아적 가능성
                 (http://ytzsche.tistory.com)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 자격 : 블로그 이름을 적절한 이유와 함께 골라 주시는 분중에서 당선작을 선택한 분께 드립니다.(객관식 : 6가지 선택지 중 하나 선택)

제공 : 초대장 30장


In Honor of

the hopeful bloggers of the Tistory


Ytzsche

(
http://ytzsche.tistory.com)

requests the pleasure of your joining

at
www.Tistory.com

since Monday April 12, 2010



R.S.V.P
ytzsche.tistory.com

여섯 가지 보기 중에서 하나를 골라 주시고, 골라 주신 이유를 간단하게 적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키워드로 잡은 건 자유, 그리고 기왕이면 이채라는 이름도 좀 들어갈 수 있음 좋을 거 같더라구요.

혹은 약간의 변형을 가해 주시거나 더 좋겠다 싶은 게 있다면 추천해 주셔도 넙죽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1) 스스로自의 이유由를 찾는 異彩의 여행.

2) 스스로自의 이유由로 떠날 자유.

3) 스스로自의 이유由를 찾는 다른색깔異彩

4) 걸음을 멈추지 않을 스스로自의 이유由.

5) 다른異 색깔彩를 지켜낼 자유.

6) 스스로自의 이유由로 걷고 싶은 이채異彩.


머...사실 전부 신통찮아 보여서, 이것저것 다 아니다 싶으면 "그냥 원래꺼 쓰세요..." 이렇게 말씀해주셔도...;

잘 부탁드립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