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이 곳에 머물 예정은 아니었다. 애초 머물기로 했던 숙소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된 것.

 

그렇게 옮겨간 유후인 료칸 '유후인몰'의 픽업 차량은 벤츠, 벤츠 로고를 단 봉고차였긴 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유후인 역까지 걸어서 20분이면 가닿는 곳, 유후인 동네가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걸 감안해도 이정도 입지면

 

정말 꽤나 훌륭한 편이다. 그리고 입지보다 중요한 건 그 곳에서 머물 공간의 내부 풍경.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시야가 한없이 쭉쭉 뻗어나간다. 현관을 지나 침실을 지나 다다미방을 지나 저 멀찍이 보이는 건,

 

방마다 구비했다는 실내 노천 온천..!!

 

 

사람 둘셋이 들어가도 모자라지 않을 사이즈의 노천 온천이 뻥 뚫린 하늘 아래 검게 그을린 나무 담벼락과 초록빛 왕성한

 

풀숲의 호위를 받으며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나중엔 그 뜨끈하고 미끈한 온천물에다가 편의점에서 사온 날계란을 담궈놓고 온천 계란을 만들기도 하고.

 

 

방 안에는 화사한 일본 전통종이로 씌워진 빳빳한 안내 책자에 료칸 객실에 대한 안내가 적혀 있었(던 것 같)다.

 

방에 들어선 손님들을 맞이하는 건 간단한 스낵.

 

그리고 유카타 두 벌과 일본의 진한 녹차 티백이 가득 담긴 다기 세트.

 

 

 

방안 곳곳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적당한 장소에 놓여 있었다. 온천에 들고 나갈 수건 꾸러미 옆에는 토끼,

 

열쇠나 잡다한 장신구를 놓음직한 받침대 위에는 꽃바구니, 뭐 그런 식으로.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 개인을 위한 노천 온천이 객실 안에 있다는 건 시간대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 때고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고즈넉한 시간대, 둥근 조명빛이 고스란히 옮겨진 온천 수면을 깨고 들어가기.

 

사실 온천물에 날계란을 익혀 먹기는 반쯤 실패하고 말았다. 물이 굉장히 뜨거워서 한참이나 찬물을 섞어야 했지만

 

막상 날계란을 익히기는 온도가 모자랐던 듯 하다. 그렇지만 밤새 온천물에 담겼던 계란들은 정말 굉장히 맛있었다!

 

 

 

개인용 노천 온천탕이 있다는 건,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에 눈뜨자 마자 첨벙 뛰어들 수 있는 뜨겁고 시원한 온천탕이

 

있다는 이야기. 밤새 지켜왔을 무거운 정적과 침묵이 한순간에 깨어져 나가는 순간. 보통 유후인의 료칸은 오전 10시까지

 

체크아웃을 완료해야 하는데, 그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온천탕 안에서 버티는 게 남는 거다. 몸에나 마음에나.

 

그리고 료칸의 객실 내부를 좀더 살펴보자면, 여느 일본의 호텔이나 숙소처럼 화장실은 꽤나 작다.

 

샤워장과 화장실은 분리되어 있고 각자는 꽤나 협소한 공간. 욕조가 그래도 들어가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실내에 개인용 노천 온천이 있다고는 하지만, 별도로 공용 남탕과 여탕도 있고, 크고 작은 '가족탕'도 있다.

 

가족탕의 경우는 이렇게 사용하기 전에 빨갛고 파란 램프에 불을 켜두어서 해당 욕실을 지금 사용하고 있다는 표시를 한다.

 

그래야 누군가 사용하러 와서 벌컥 문을 여는 민망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불빛을 켜두어 표시한다고 해도 만의 하나 가능성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가족탕 앞에 표지판도 세워둔다.

 

입욕중, 혹은 비어있음의 표시를 해두는 것에 더해 안에서 사람들의 말소리나 물소리가 들리면 조심해야 할 일이다.

 

 

가족탕 내부에 뻥 뚫린 하늘, 그리고 멀찍이 내려다보이는 유후인 마을의 모습.

 

 

그리고 대나무발로 구획지어지고 천장이 절반쯤 닫힌 가족탕의 모습. 이 정도 크기면 왠만한 목욕탕 사이즈다.

 

파란색 바구니와 빨간색 바구니, 역시 이건 남자용 그리고 여자용 옷을 담아두라는 의미일 듯. 외국에 나가도

 

인류 공통의 색감과 색에 담긴 함의를 이해하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남탕, 여탕이 분리된 여느 온천에서 흔히 보이는 입구.

 

 

 남탕에서 보이는 유후인의 봉긋한 산봉오리, 그리고 저만치 떨어진 다른 건물들.

 

탕 안의 시설만 보면 한국의 시내에선 이제 보기도 힘든 낡고 오랜 목욕탕 같기도 하지만, 여긴 물이 다르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열어본 여탕의 출입문. 부처님 오신 날 연휴가 끼어있는 황금연휴였지만 이곳까지 온 사람들은

 

(특히 한국인들은) 그리 보이지 않아 문을 열어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여탕이라고 말해두지 않으면 전혀 남탕과의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실내.

 

 

유일하고도 중대한 차이라면, 남탕에는 없는 디지털 체중계가 여탕 한구석엔 놓여있었다는 점이랄까. 그리고

 

옷을 보관해두는 바구니가 저렇게 얌전하게 대기하고 있다는 점도 차이점이랄 수 있겠다.

 

 

가족탕, 그리고 남탕과 여탕. 무엇보다도 객실마다 구비된 개인용 노천탕까지. 온천의 수질이 어떤지, 어떤 성분이

 

녹아있는지 같은 거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분명한 건, 이 곳의 온천 시설은 '개인용 노천탕' 하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일본과 다른 나라의 온천장들을 올킬하고도 남는다.

 

 

 

 

 

일본의 100대 온천호텔 중 하나로 손꼽힌다는 호텔, 무려 1200평 넓이의 대욕장과 노천탕들을 갖추고 있는

곳이라 하여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실제로 가서도 실망하지 않을 만큼 괜찮은 곳이었다. 커다란 호수를

끼고서 곳곳에 지어진 건물들과 온천시설들로 무척이나 흐뭇했던.

호텔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맞아주는 아오모리, 푸른숲靑森의 마스코트 인형. 깊고 울창한 숲속에선

저런 커다랗고 머리에 꽃단 괴물이 살고 있대도 왠지 수긍할 만 하다. 바야바~ 라거나, 토토로처럼. 


호텔 로비가 그 호텔의 격을 대변하는 공간이라고 하면, 이런 식으로 정갈하고 차분한 느낌의 인테리어도

좋은 거 같다. 서양인들의 표현으로는 뭐랄까, 젠ZEN의 느낌이 충만하달까.

호텔 객실, 도쿄나 아오모리나 일본의 온천 호텔들은 다다미방인데다가 체크인하고 나서 저녁을 먹고 오면

저 테이블과 의자가 한쪽으로 싹 치워진 채 이불까지 깔아주는 서비스를 해주는 게 인상적이다. 다다미에선

살짝 풀내음도 나는 거 같고, 미니멀하면서도 드라이기니 전기포트니 있을 건 다 있는 아기자기함도 좋고.

화장실에 비치된 슬리퍼에는 아예 'TOILET'이라고 씌여 있었다. 화장실용이니 객실 안에서 신고 다니거나

밖으로 신고 나다니지 말라는 완곡하고 공손한 마음이 담겨 있는 듯.

두 사람분의 유카타. 게다에 어울리게 엄지발가락과 나머지 발가락을 분리시킨 벙어리 양말도 있었고,

별모양으로 단단히 말아둔 허리띠도 재미있었다.

호텔 로비 옆에 붙어 있는 샵에서 팔고 있던 유카타는 훨씬 다 다채로운 색깔들에 화려한 느낌이었는데,

유카타는 한번 입어보면 참 입고 벗기 편해서 좋은 거 같다. 집에서도 한벌 있음 오자마자 입고 있을 듯.

호텔 안을 한 바퀴 둘러보러 나왔는데 이쁘게 생긴 앉은뱅이 의자와 탁자 너머로 산책길이 보였다. 냉큼

건물밖으로 나와 나무 사이로 구비구비 이어지는 산책길을 걸었다.

잘 다듬어진 잔디밭길과 나무 사이를 지나니 단아한 색감의 나무집들이 몇 채씩 길가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아마도 호텔의 별채 아닐까 싶다. 더 넓고, 더 럭셔리하고, 그래서 아마도 더 비싼 룸. 내부가 궁금했지만 스킵.

조그마한 내가 중간중간 둥그런 연못을 만들다가 어딘가로 흘러내리고, 다시 또 연못을 만들다가

흘러내리고. 그 옆에선 잔뜩 몸을 기울인 채 흐벅지게 피어올린 꽃무더기를 수면에 비춰보느라 

여념이 없는 나르시스트 꽃나무가 하나. 워낙 크고 풍성한 꽃송이가 한두개도 아니고 저리도 많이

달려있으니 무게도 솔찮을 텐데, 저러다가 물에 잠기는 거 아닐지 모르겠다는 괜한 걱정이 들 만큼.
 

그리고 연못 한 가운데 동그마니 튀어나와있는 바위, 그 위에서 저리도 꼿꼿하게 자라나서 훌쩍 키만 큰

왠 들꽃줄가리 하나. 참 가늘고 여려 보이는데, 압정처럼 뾰족하니 하늘로 치솟은 게 대견하기도 하고.

연못, 이라 해야할지 개울, 혹은 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분명 맑은 물인데 문득 바람이

일어나니 끈적하니 바람보다 한풀 늦게, 게으르게 번져나가는 물결.

이제 지금쯤이면 초록색으로 잘 익었던 단풍잎에 조금 붉은 기가 돌기 시작하려나. 생각없이 낭창낭창 걷다가

시간감각을 잃고서는 하염없이 걷겠다 싶어 살짝 당황, 서둘러 호텔로 돌아가는 길.


호텔 레스토랑. 석식과 조식이 제공되었는데 무난했던 듯. 아무래도 부페는 뭔가 임팩트있는 한방이

부족한 느낌이어서, 배부르게 잘 먹었긴 했지만 뭐가 맛있었다고 말할 거리를 못 찾겠다.

어느덧 저녁, 일본 내에서 온천호텔로 100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곳이니 온천에 푹 몸과 마음을 담그고

쉴 생각밖에 없었다. 내려가는 길에 혀를 빼물고선 살짝 깨문 그녀의 눈빛이 굉장히 고혹적이었고,

두꺼비 이마에 놓인 동전들이 진짜인가 한번 만져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 모든 유혹을 이겨내고 온천도착.


그랬는데 이런 공연을 온천 입구 앞에서 시끌벅적하게 시작하고 있는 거다. 아마도 이게 저녁 9시부터 한다던

아오모리 남부 민요쇼인가 싶다. 이미 관객석은 꽉 차 있어서 앉을 자리를 찾기도 어려웠다.

뭔가 금빛으로 번쩍대는 삽에 줄을 걸어놓았나보다. 기타나 샤미센을 튕기듯 삽을 잡고 소리를 내는데, 정말

띠용띠용 샤미센같은 소리를 내는 연주자들이었다. 울림통도 따로 없는 걸 텐데, 소리도 제법 크고 분명하게

들리는 게 온천장 안쪽 깊숙한 곳에 노천탕에 나와 앉아있는 사람들한테도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

공연장 옆으로는 커다란 네부타가 물고기 네부타들을 주렁주렁 달고서 버티고 서 있었다. 뭔가 구름을 타고

누군가와 싸우는 듯한 다이내믹한 자세.

탕 입구에서 이렇게 올망졸망 자기들끼리 앉아서 나름 열심히 공연을 감상중이신 꼬맹이들. 한 아이는 완전

공연에 몰입해 버렸는지 박수치느라 여념이 없었고 다른 아이들도 눈을 떼질 못하고 무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공연 시작되고 나서는 무대를 지나쳐 탕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못 본 거 같기도 하고.


아오모리에서 묵었던 호텔 중 최고였던 거 같다. 수질이야 비슷하겠지만, 노천탕의 그 운치라거나 시설이 환상.
 


 

@ 고마키 아오모리야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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