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써 돼써 이제 그런 가르침은 돼써
매일 아침 일곱시 오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이제 됐다고 소리칠 곳도 모호해진, 누가 몰아넣는지도 모르게

스스로 넥타이를 졸라매고 천장낮은 조그만 사무실로 발걸음하고 있는 나는야 서른두살.

나이를 엔간치 먹었어도 몸뚱이만 늘어나고 주름만 생겨났지 나아지기는 커녕 그자리 그대로구나.


서태지 1집이 나온 게 1992년 3월 23일이었다니 어느새 이십년 전이다.

그새 국내 가요시장은 K-POP으로 바뀌었고 '교실이데아'를 목놓아 부르던 아이들은 넥타이를 맨 어른이 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서태지는 이미 어른들을 위한 노래도 만들었댔다. 시대유감.


거 짜식들 되게 시끄럽게구네 그렇게 거만하기만 한 주제에
거짓된 너의 가식때문에 너의 얼굴 가죽은 꿈틀거리고

나이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리를 헤메 다니네
모두가 은근히 바라고 있는 그런날이 오늘 바로 올것만 같아



'나이든 유식한 어른들'을 까는 가사에 속이 후련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조금 찔려오는 건

아무래도 이십년 가까이 흐른 시간 탓인지 모른다. 어쨌던 서태지와 아이들 20주년..! 스페셜한 뭔가 없으려나.





교실 이데아

됐어(됐어)이젠 됐어(됐어)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이젠 족해(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매일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곤 덥썩 모두를 먹어 삼킨
이 시커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수가 있어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됐어(됐어)이젠 됐어(됐어)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이젠 족해(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며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센타로 넘겨
겉보기 좋은 널 만들기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이젠 생각해봐 대학!
본 얼굴은 가린 체 근엄한 척
할 시대가 지나버린건
좀더 솔직해봐 넌 알수 있어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수가 있어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됐어(됐어)이젠 됐어(됐어)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시대유감(時代遺憾)

왜 기다려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것 같네

거 짜식들 되게 시끄럽게구네 그렇게 거만하기만 한 주제에
거짓된 너의 가식때문에 너의 얼굴 가죽은 꿈틀거리고

나이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리를 헤메 다니네
모두가 은근히 바라고 있는 그런날이 오늘 바로 올것만 같아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숱한 가식속에서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수 있어)

왜 기다려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것 같네

부러져버린 너의 그런 날개로 (너는 얼마나 날아갈수있다) 생각하나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

너의 심장은 태워버리고 너의 그 날카로운 발톱들은 감추고
돌이킬수 없는 과거와 모두다 잘못되어 가고 있는데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숱한 가식속에서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수 있어)

왜 (기다려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것 같네

바로 오늘이 두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이야
네 가슴에 맺힌 한을 풀수 있기를...

오늘이야

모처럼 집까지 걸어서 퇴근했다.

찬 바람이 떠밀어 더욱 재게 놀리던 발걸음이었지만 좀 지나니 몸이 훈훈해져 똑딱똑딱 걸었다. 똑,딱,똑,딱.

문득 내 안의 '불안과 불만'이 되살아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술에 잔뜩 쩔었던 내장이 다시 작동할 때처럼

기이하지만 왠지 안심이 되는 느낌이랄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 그런 건 모르는 듯 마냥 든든하고 안정적이며 긍정적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만, 이미 그것도 옛날 얘기. 사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있지만 없는 척, 그렇게 애써 눈돌리는데

능숙해지는 것 뿐이었다. 지금의 나, 내 주위의 것들, 나로부터 뻗어나가거나 나를 얽어두고 있는 관계들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문득문득 잊어가곤 하지만, '잊은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차라리 눈 앞에 딱, 불만의 대상, 불안의 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것 때문에. 라고 말할 수

있는 타겟이 있다면 좋겠다고. 이미 지난 것들은 간편하게 추려져서 명료한 이유를 붙일 수 있지만, 지금

지나는 것들, 앞으로 지날 것들에 대해서는 마냥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이미지 뿐, 뭔가 딱 떨어지는 '답'이

없어 보인다.


몇 개의 통발을 지났다. 한번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적인 순간들, 취직, 진학, 입학, 그리고

탄생까지 거스를 수 있을 그것들. 어쩌면 그것들은 간편한 핑계가 되어 주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핑계거리,

혹은 시험관문이 사라지고 나면, 뭔가 그 과정을 거쳐 성숙하기는 커녕 마냥 나태하고 진부해져버려 '불안과

불만' 자체를 그냥 없는 문제인 양 하면서 외면하고, 그렇게 지친 어른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수학을 왜 공부하냐고. 수학에서 배운 것들을 바로 써먹을 리야 없겠지만, 그걸 통해 사고의 논리력과 응용력을

배울 수 있으리라 믿는 거라고, 와타나베보다 먼저 생각했었다. 어쩌면 '불안과 불만'은 항상 그 시점까지

살아오며 배운 것들을 총동원해 해결하고 해소해야 하는 커다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응용력을 키우기 위한

연습문제들이 동나버린지도 오래, 응용력 따위 키우기도 전인데 하루하루 문제의 압박은 커져간다.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불만과 불안의 골이 깊으면 만족과 안온함의 산도 깊을 거라고. 정면으로 이 녀석들과

마주하지 않으면 하루하루 마비된 채 살아가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좀처럼 

듬직하고 안정감 있는 어른 따위 못해먹겠다. 혹여 그런 모습이 보일 때라 해도 그것은 연기, 내면에선 여전히

질풍노도가 치고 있는 데다가 나 역시 집중해서 그걸 바라보는 중인 거다.



안데르센의 대표적인 동화들인 '인어공주', '백조왕자', '장난감 병정', '성냥팔이 소녀'와 '눈의 여왕' 등 총 6편의

작품들이 '어른들을 위한' 새로운 버전으로 출간되었단다. 어른들을 위한 버전이라니, 인어공주와 왕자와의 종을

넘어선 정사 장면이라도 묘사되었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장난감 병정이 실은 메조키스트였다는 충격 고백이 독점

게재되어 있을지 궁금했지만, 글쎄, 그림체가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보다 조금 더 섬세하고 정묘해진 덕분에

어른들이 들고 다니며 읽어도 '모냥새 빠지는 일'은 없겠다 싶은 정도 외에는 뭘 바꿨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자체로 사실 큰 공헌일지 모른다. 어렸을 적의 '내'가 이해했던 그 내용과 교훈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그 동화를 공식적으로 어른이 된 '내'가 다시 한번 집어들어 펼쳐볼 만한 유인을 제공한다는 것 자체로

말이다. 동화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마주쳤던 건, 언젠가 기억도 나지 않는 까마득한 옛날, 마치 화석처럼 조용히

내 어딘가에 새겨졌던 느낌들과 나름의 해석이었고, 또 그것과 부딪히고 반발하는 지금의 '나'였다.
어렸을 적에는 진짜 감정과 가짜 감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습게도 나는 인어공주가 되어 나의 감정만을 유일시했으며, 나를 넘어 옆나라 공주를 바라보는 왕자의 감정은,

그리고 그에 호응하는 옆나라 공주의 눈빛은 가짜라고 여겼다. 굳이 악의가 철철 흐르는 '바다마녀'라거나 장난감

병정에게 시련을 안기는 '괴물 인형', 혹은 '눈의 여왕'이 아니라 해도 주인공의 감정을 가로막고 좌절시키는 것은

모두 가짜, 혹은 나쁜 놈이었다. 어쩌면 동화 속 주인공 자리는 항상 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옹이구멍만한

시야와 턱없는 자존감이 바로 내 모든 감정이야말로 진정한 것, 순수한 것이라고 믿게 하는 원동력이었을 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지 받아들여지는 감정과 받아들여지지 않는 감정이 있을 뿐인 것 같다.

모두 진짜라면 진짜고, 또 가짜라면 모두 가짜일 그 감정들의 흐름 속에서 때로 막히고 때로 뚫리면서 슬펐다가

기뻤다가, 그렇게 아프고 행복한 것 뿐인 건 아닐까.


기억도 나지 않는 어렸을 적부터 주입되었던 '선은 반드시 악에 승리한다'는 기묘한 믿음이 조금씩 사각대며

부식되고 있으면서도, 아직 공룡뼈처럼 완고히 남아있는 최후의 보루랄까,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그리고 나만이

진심이다)라는 식의 잔재가 남아 자신의 감정이 거부됨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것 뿐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내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들도 얼마나 혼탁하고, 변덕스러우며, 진실하지

못한가. 마음이 진실하다는 건 또 뭐냐, 흘러가는 감정을 '단어'와 말의 힘을 빌어 오롯이 퍼올릴 수 있을까

따위 근본주의적인 질문엔 잠시 등을 돌린 채 나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보면, 차이는 어쩜 아주 작은 것

하나 뿐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마치 망망대해에 점점이 솟아오른 섬과 같다면, 좀처럼 이어지기 힘든 

인근 섬 그 어딘가에게 연결되고 회신을 받을 수 있는 감정, 그리고 누군가에게도 걸쳐지지 못한 채 힘없이

자유낙하하다 바다 저 아래로 가라앉을 뿐인 감정. 그렇게 이어지고 이해받는지, 아닌지의 차이.


인어공주의 마음은 왕자에게 전해지지 못했으며, 받아들여지지 못했으며, 되돌려받지 못했을 뿐이다.

옆나라 공주의 마음은, 왕자의 마음은, 서로에게 전해졌으며, 받아들여졌고, 그리고 어렸을 적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걸 믿는 건 잠시 유예할지라도 당분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감정을 되먹여줄 게다. 그리고

인어공주의 아픈 감정만큼 그들의 달콤한 사랑 역시 진실하다.


동화 속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주인공일 수 있고, 저마다 감정을 쌓아온 역사와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할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 진심은 반드시 통하는 것은 아니며 자신의 감정이 진짜일까 가짜일까 답없는 고민으로 시간을

소모하느니 감정이 받아들여지도록 최선을 다해 움직여라, 정도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의 훌륭한 교훈이 아닐지. 


그렇게 자신의 진심이 언제고 거부당할 수 있다는 걸 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잔인하지 않은가. 어른들에게조차.




눈의 여왕 - 6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김양미 옮김, 규하 그림/인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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