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루시드폴 연말공연에 이어 이번엔 그의 세미심포닉 공연!

 

듬성하고 촉촉하지만 얼어붙은 땅속 깊숙히 스며드는 봄비처럼 맘속을 적셔주던 루시드폴의 읊조림은 정말.

 

 

 

인터미션도 없이 근 두시간동안 워낙 많은 노래를 불러서 뭘 불렀던지 제대로 기억도 안 나지만,

 

'어'로 시작하거나 '어'로 끝나는 그의 대표곡들을 비롯, 앨범 미수록곡과 브라질 노래들까지 다양했지만 다 좋은.

 

기타 네개를 앉은 자리 좌우로 둥글게 후광처럼 배치해 두고서 노래를 불렀던 루시드폴, 잠깐 곡을 소개하고

 

두세개씩 연거푸 노래를 부르던 그가 마지막 노래를 마치고 일어나 함께 했던 마에스트로 조윤성에게 박수를 보냈다.

 

 

루시드폴 조윤석과 마에스트로 조윤성. 이름도 한끝차이인데 생긴 거나 개그코드까지 비슷하던 그들.

 

항상 공연가면 궁금한 점, 어차피 앵콜곡 준비해둔 것도 알고 있는데 왜 굳이 인사하고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걸까. 아마 관객들이 '앵콜곡'을 들어야 돈이 덜 아깝게 여겨진다는 심리 때문아닐까 싶은데, 이날

 

역시 그런 조삼모사의 지략이 발휘되어 앵콜곡이 두개. 마지막은 고등어를 다함께 열창.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관객 앞에서 추어올리던 그들.

 

5집에서 그들이 함께 작업했던 노래는 '어부가', '불', '그리고 눈이 내린다', 모두 인상적이던 노래들.

 

작년말에 들었던 루시드폴의 'Silent Night, Nylon Night' 공연은 그가 매년 하던 연말 공연이었는데,

 

올해는 이 공연 LUCID FALL with 조윤성 Semi-Symphonic Ensemble로 끝으로 안식년을 갖는단다.

 

 

영혼의 떨림이란 게 있다면 저런 게 아닐까 싶은 그의 감성적이고 섬세한 미성을 위해 필요한 일이겠지만,

 

내년에 다시 돌아올 그의 공연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싶다.

 

 

 

완전 아기같은 표정으로 두손을 나풀나풀 흔들며 관객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루시드폴.

 

공연이 있었던 LG아트센터. 벤치의 색감이나 디자인이 참 독특하다.


'노래하는 음유시인' 루시드폴의 작품들. 작년 '고등어'와 '평범한 사람'으로 홀딱 빠지고 나선 걷잡을 수 없이

맘 속에 자리잡은 그의 나즈막하지만 깊은 곳까지 와닿는 음색, 서정적이지만 떨림 가득한 가사. 그의 노래랄까,

읊조림이랄까, 속삭임을 듣고 있으면 달콤쌉쌀한 99% 다크초콜렛를 녹여먹는 느낌같기도 하고.


수줍게 관객에 인사하던 루시드폴, 두시간반동안 깨알같은 농담으로 행여나 졸릴까 관객까지 배려하던 그.

그렇지만 가끔은 걸터앉은 의자에서 바닥에 닿지 않은 두발을 까닥거리며 음률에 빠져들기도 하던, 천상 아티스트.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리꽂히던 2011년의 끝자락에서 포근한 백허그로 감싸안아주는 듯 하던 마법의 밤.

 

"오, 사랑" (오, 사랑, 2005)

고요하게 어둠이 찾아오는
이 가을 끝에 봄의 첫날을 꿈꾸네
만리 넘어 멀리 있는 그대가
볼 수 없어도 나는 꽃밭을 일구네

가을은 저물고 겨울은 찾아들지만
나는 봄볕을 잊지 않으니
눈발은 몰아치고 세상을 삼킬듯
이 미약한 햇빛조차 날 버려도
저 멀리 봄이 사는 곳 오, 사랑

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
날개가 없어도 나는 하늘을 날으네
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
돛대가 없어도 나는 바다를 가르네

꽃잎은 말라가고 힘찬 나무들 조차
하얗게 앙상하게 변해도
들어줘 이렇게 끈질기게 선명하게
그대 부르는 이 목소리따라
어디선가 숨쉬고 있을 나를 찾아
내가 틔운 싹을 보렴 오, 사랑

내가 틔운 싹을 보렴 오, 사랑 -


"봄눈" (레 미제라블, 2009)

자 내 얘기를 들어보렴
따뜻한 차 한잔 두고서
오늘은 참 맑은 하루지
몇 년 전의 그 날도 그랬듯이

유난히 덥던 그 여름날
유난히 춥던 그 해 가을, 겨울
계절을 견디고
이렇게 마주앉은 그대여

벚꽃은 봄눈 되어 하얗게 덮인 거리
겨우내 움을 틔우듯 돋아난 사랑

처음으로 말을 놓았던
어색했던 그날의 우리 모습
돌아보면 쑥스럽지만

손끝에 닿을 듯이 닿지 않던 그대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인데
하루에도 몇 번을 내게 물어봐도 나는 믿고 있어
떨어지지 않는, 시들지 않는, 그대라는 꽃잎

처음으로 말을 놓았던
어색했던 그날의 우리 모습
돌아보면 쑥스럽지만

손끝에 닿을 듯이 닿지 않던 그대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인데
하루에도 몇 번을 내게 물어봐도 나는 믿고 있어
떨어지지 않는, 시들지 않는, 그대라는 꽃잎

그대라는 꽃잎



"알고 있어요" (레 미제라블, 2009)

행복하게 웃어보자
오늘 너무 슬퍼보여
내말에 그저 조용히 웃던
그대의 뒷모습
하지만 웃고 있어도,
항상 울고있는 사람
한없이 고단한 그대 모습
멀리 사라지고

하루라는 짧은 시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
세상에 험한 말들로 그댈
아프게 했는지
여전히 어려운
눈빛으로 나에게 얘기하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왜 그러냐고

난 말하고 있었지
뒤돌아선 그대가
그런 눈물 흘리지 않아도 알고 있다고
다 알고 있다고

나도 그대의 하루에
무거운 짐이었다면
그래서 말 할 수 없었다고,
미안해 하진 마
하루라는 짧은 시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
세상에 험한 말들로 그댈
아프게 했는지
여전히 어려운
눈빛으로 나에게 얘기하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왜 그러냐고

난 말하고 있었지
뒤돌아선 그대가
그런 눈물 흘리지 않아도 알고 있다고
다 알고 있다고

넌, 여전히 어려운
눈빛으로 나에게 얘기하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왜 그러냐고
난 말하고 있었지
뒤돌아선 그대가
그런 눈물 흘리지 않아도 알고 있다고
다 알고 있다고
알고 있다고


"그대 손으로" (버스, 정류장 OST (L'Abri), 2001)

바람 부는 곳으로
지친 머리를 돌리네
나는 쉴 곳이 없어
고달픈 내 두 다리 어루만져주오
그대 손으로 그대 손으로

세찬 빗줄기처럼
거센 저 물결처럼
날 휩쓸어 간대도
좁은 돛단배 속에
작은 몸을 실으리
지금 가야만 한다면
그대 품으로 그대 품으로

태양은 그 환한 빛으로
어리석은 날 가르치네
당신은 따뜻한 온기로
얼어붙은 날 데워주네
언제나 아무 말 없이
그대 손으로 그대 손으로


"그리고 눈이 내린다" (아름다운 날들, 2011)

참 좋아라 했던
이 길 위엔 아무도 없는데
밤은 정말 이렇게
나도 모르게
조용하게 흘러가고 있어

날 보듬어 주던
그 눈빛은 사라졌지만
푸르고 푸르던 기억
아직도 향기로 남아
눈짓으로 인사하는구나

외롭다는 건
기다리는 것

잊혀지는 게
아무렇지 않도록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루 또 하루가 지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을까

그래, 나는 약해졌는지 몰라
하지만 이 밤이 지나면
하늘은 밝아올 테고
거리는 분주할 테고
내 마음도 조금씩 환해질 거야

그래, 나는 약해졌는지 몰라
하지만 견디다 보면
여름은 다시 올 테고
겨울엔 눈이 올 테고
나는 다시 빛날 수 있겠지


"그대는 나즈막히" (레 미제라블, 2009)

그대는 나즈막히
당신은 언제라도 날
떠날 수 있어요
얘기하네

난 아무 말 못하고
두터운 목도리를 말 없이 벗어준 채
돌아서지만

세상에 어떤 인연은
변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서 사람들 모두 껴안고서
조심스럽게 걸어가겠지

스쳐가는 말이라도
그렇게 얘기말아요
나에게 그대는 언제나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사람
사랑하는 나에게는
모질게 얘기말아요
언젠가 마음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할 필요 없어요

세상에 어떤 인연은
변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서 사람들 모두 껴안고서
조심스럽게 걸어가겠지

스쳐가는 말이라도
그렇게 얘기말아요
나에게 그대는 언제나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사람
사랑하는 나에게는
모질게 얘기말아요
언젠가 마음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할 필요 없어요
필요 없어요
필요 없어요

언젠가 마음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할 필요 없어요


"평범한 사람" (레 미제라블, 2009)

오르고 또 올라가면
모두들 얘기하는 것처럼
정말 행복한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나는 갈 곳이 없었네
그래서 오르고 또 올랐네
어둠을 죽이던 불빛
자꾸만 나를 오르게 했네

알다시피 나는 참 평범한 사람
조금만 더 살고 싶어 올라갔던 길
이제 나의 이름은 사라지지만
난 어차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울고 있는 내 친구여
아직까지도 슬퍼하진 말아주게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평범한 사람

알다시피 나는 참 평범한 사람
조금만 더 살고 싶어 올라갔던 길
이제 나의 이름은 사라지지만
난 어차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울고 있는 내 친구여
아직까지도 슬퍼하진 말아주게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너무나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평범한 사람
평범한 사람
평범한 사람



"꿈꾸는 나무" (아름다운 날들, 2011)

내가 자라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난 말하지 못한 채
잎새만 펄럭이겠지

얘기해도 될까
매일 내가 꾸는 꿈
비웃지 않고서 나의 얘기 들어준다면
한번 느릿느릿 얘기해볼까

따뜻한 집,
편안한 의자,
널찍한 배,
만원 버스 손잡이,
푸른 숲,
새의 둥지,
기타와 바이올린,
엄마가 물려준
어느 아이의 인형

하지만 이 세상에서
되고 싶지 않은 게
내게 하나 있다면
누군가를 겨누며
미친 듯이
날아가는
화살

내가 꾸는 꿈

얘기해도 될까
매일 내가 꾸는 꿈
비웃지 않고서 나의 얘기 들어준다면
한번 느릿느릿 얘기해볼까


작은 책상,
동그란 거울,
뜨거운 불빛,
시원한 그늘,
식탁 위 한 쌍의 젓가락과 술잔,
눈물 닦아줄 휴지,
사랑 전해줄 편지

하지만 이 세상에서
되고 싶지 않은 게
내게 하나 있다면
누군가를 겨누며
미친 듯이
날아가는
화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