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울산바위까지의 등정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아직 채 농익지는 않았으나 그대로 또 풋풋한 단풍을 눈에 담았다.

 

왕복 네다섯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해가 뉘엿해질 무렵, 설악산 초입쯔음에서 문득 돌아본 설악산의 석양. 노란빛과 파란빛이

 

적당히 버무려진 신비로운 하늘 아래에는 금빛을 잔뜩 품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에만 해도 사람이 바글거리던 좌불 동상 앞에는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하산객들만이 띄엄띄엄.

 

 

셔터속도를 달리 해서 찍은 사진은 좀더 밝기는 한데, 금빛이 덜 표현된 듯. 이것도 이것대로 좋다만서도.

 

 

투르크메니스탄, 아쉬하바드의 야경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이 신도시가 투르크를 외부에 보이기

위한 일종의 '쇼윈도 시티'라는 사실도 알고 있고, 저토록 불필요하게 곳곳에 촘촘이 박힌 불들이 얼마나

에너지 낭비인가 탄식할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고는 해도, 그래도 밤늦게 일을 보러 다니면서도 늘 카메라를

손에서 뗄 수가 없었던 거다.

도시 너머로는 온통 사막뿐인가 했더니, 어느 한쪽으로는 투박한 산맥이 등뼈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등뼈

끄트머리에 살짝 얹힌 마지막 햇살이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증거하고 있었다.

호텔 앞에서, 어물쩍 해가 넘어가려는 무렵부터 시작인 거다. 어느 순간 팟 소리를 내며 켜졌을 법한 가로등들과

그 너머 띄엄띄엄 세워진 거인같은 건물들이 보랏빛 황혼이 무색하게 빛을 밝혔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 도시의 가로등들이 세워진 간격은 한국의 서울보다 두배쯤은 촘촘한 거 같다.

이맘때, 빛과 어둠의 투쟁이 막바지에 치달아 태양의 잔광이 마지막 숨을 깔딱거리는 즈음의 분위기란 어디고

참 싱숭생숭하다. 퍼렁빛의 하늘, 왠지 크게 술렁거리는 듯한 대기, 그리고 갈피를 못잡는 사람 마음.

어둠의 완승, 빛의 세상을 완전히 지구 반대편으로 몰아내고 나서 자축하며 잔뜩 꼽아둔 노랑색 촛불들.

여기도 중동 지역의 돈많은 국가들처럼 아스팔트가 다르다. 빛이 한없이 미끄러져 내리며 번쩍번쩍하는, 그런.

중동 지역은 비도 많이 오지 않고 오일머니랑 바꾼 최고급 스포츠카들이 잘 달리기 위해서 F1같은 레이싱트랙에

발라지는 특별한 아스팔트를 썼다고 했었다. 우리나라의 여느 아스팔트보다 훨씬 조밀하고 맨들맨들해서

승차감도 좋고 타이어도 찰싹 달라붙지만, 비가 오면 완전 잘 미끄러진다는 그런 특성의 아스팔트란 거다.

여기도 그런 건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지만, 비슷하게 건조한 기후인데다가 오일머니, 가스머니 많은 나라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이제 그냥 조용히 사진들 보여주기. 야경에 딱히 멘트라고 달 것도 많지 않은 거다.

가로등이 촘촘한 것도 그렇지만, 하나에 네다섯개씩 휘영청한 전구가 들어있는 것도 사람 할 말 잃게 만든다.

저 가로등들은 차들이 안전하게 다니라고, 행인들이 안전하게 다니라고 만든 게 아닌 건 분명한 거다.




청계천 광장의 재림이랄까. 색색으로 변하는 분수들은 밤이나 낮이나 꺼질 줄 모르고 그 구간 역시 청계천의

지극히 일부만 포장해둔 쪼잔한 사이즈와는 비교되지 않는단 점에서 오히려 여기가 한 수 위인 거 같기도 하다.

투르크메니스탄을 지배하는 과거 공산정권의 잔재, 냉막한 얼굴과 건조한 분위기에다가 예측 불가능하고 느린

일처리 같은 것들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야경이 참 이뻤다고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다. 사진으로라도 그 이유를 조금이라도 찾고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프놈 바껭(Phnom Bakheng)에 올라 바라본 캄보디아의 석양.

처음에는 두껍두껍한 구름들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니 달려나가는 걸 보며 오늘 해가 지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조금씩 상앗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 그렇지만 태양이 뜨겁던 대낮에 보았던 파란 하늘은 한점도 남지

않은 채 안개처럼 풀어진 구름이 하늘가득 점령해 버렸다.

프놈 바껭의 사암 돌덩이 건물에 노란 햇살이 스며들어 자체뽀샵의 경지에 올랐다.

휙휙 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들만큼 순식간에 구름이 쓸려나가더니 노란 햇살이 본격적으로 비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점차 커지기 시작한 빗소리, 쏴아...

하늘은 이렇게 노랗게 밝아져 가는데,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우왕좌왕이다. 열대의 스콜을 제대로 실감하는 순간.

빗방울이 들이치는 우산들 너머로 하늘만 혼자 청청하다. 발딛은 이 곳과는 다른 세상, 스크린 속에 펼쳐지는

풍경 같이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황홀하기도 하고. 몽롱해지는 느낌이다.

그 와중에도 하늘 풍경은 계속 변하고 있었다. 당장 눈 앞의 비구름조차 휙휙 어디론가 내달리던 상황, 저 멀리

두꺼운 구름장막이 매초 새로운 질감과 두께감을 과시하며 만화경처럼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울렁울렁 노랗게 빛나는 햇살을 배경으로 막 결혼을 한 듯한 신혼부부의 드레스가 흠뻑 젖어버렸다.

악플처럼 까맣게 몰려오는 먹구름.

어느새 이곳도 비가 멈추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살이 만만찮게 뿜어내는 온기가 공기가득 충만해졌다.

한순간 눈을 떼기가 아쉬운 풍경들이 계속 이어졌다. 굳이 말이 더 필요하지 않았던 장면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가 떨어져내리는 궤적을 좇았다. 석양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불러내어지는 센치한 감정,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사그라들고 어느새 어둠 속에 묻혀버린다는데야.

돌아갈 길이 멀어 한 걸음 먼저 프놈 바껭에서 내려섰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킨 채 저물어가는

남국의 태양에 젖은 옷을 말리고, 지친 몸을 쉬이고, 하루의 기억을 다독다독 갈무리하고 있었다.

프놈 바껭은 야트막한 산 위에 세워진 사원이다. 예전엔 일출이나 일몰을 보러 몰려들었던 여행객들이 어두운

발치를 조심하지 못해 대형 사고도 난 적이 있다고 한다. 여전히 남아있는 야트막한 경사를 따라 조심조심

내려오면서도 끝내 눈을 떼지 못했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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