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대중대통령 추모 공식홈페이지(http://211.233.13.92/?brch=1)에 고인의 마지막 일기 중 일부가 PDF형태로

공개되었다. 생각보다 현 정권에 대해 '세게' 발언한 부분도 공개되어서 왠지 안심했다. 고인이 생전에

침묵하지 않으셨다는 게 안심이 되었고, 서거 후에도 타의에 의해 침묵당하지 않으셨다는 것 역시 안심이

되었달까.



■ 건강에 대한 언급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2009. 5. 2)

이렇게 건강도 괜찮으셨다는 분이 갑작스레...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충격이 크셨던 게다.


■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언급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 될 모양. 큰 불행이다.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2009.4.18)

고인은 스스로를 노 전대통령과 함께 "진보진영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진보'라는
것에 주어지는 운신의 폭이란 그 두 분의 서거를 돌이켜도 빤히 보이는 것 같아 답답하다.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2009.5.23)

결국 노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던 사람들,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들.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2009.5.29)


전례는 없었겠지만, 생각보다 금방 또다른 사례가 생겨나고 있습니다...그런데 전현직 대통령 중 당신의 추도사는
누가 해줄지, 누가 이렇게 진심을 담아 울어줄지...먹먹해지네요.


■ 정치적 시사점을 던지는 언급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 '찬미예수 백세건강'"

야당 정치인들이 뭐라뭐라 떠들기는 하지만, 김대중 전대통령만큼 명징하게 현재의 위기상황을 정리한 사람은 없었다.
대정부 비판을 위해서 제대로 된 프레임을 마련해 주었고, 실제로 이후 야당은 이 세가지를 잘 활용하고 있다.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2009.1.20)

동계 철거는 실시하지 않는 게 상례였다는 점에서, 용산 참사는 사정을 아는 모두에게 매우 예기치 않았던 비극이었다.
빈민들의 처지가 눈물겹다고 일기에 적는 당신의 모습에서, 20대 체게바라의 감수성을 본다면 과장일까.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2009.1.16)

지금이 독재인지 아닌지, 그걸 이론적으로 따지고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적인 구속감, 자유의 박탈감'이
더욱 중요한 거 아닐까. 마치 빈부차에 있어 '상대적인 박탈감'이 '절대적인 박탈감'보다 중요한 요소듯이.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는 노 정객의 다짐. '삼김'이라 도매금으로 묶였지만 줄곧 피해자의 위치에 서있었고,
YS 대 DJ의 라이벌구도라 하지만 사실 YS만큼의 막말을 던진 적이 없는 고인. YS와 JP의 일기장엔 뭐가 적혀있을까.
그리고 우리의 MB 일기장엔 대체 뭐가 들어있을까.


■ 촛불집회 관련 언급

"(인류의 역사는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며...)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촛불시위에 대한 이런 심정적 지지, 온건한 입장을 갖기란 '노땅'의 마음가짐으론 쉽지가 않을 터다. 평생의 살아온 길이
고인의 열린 마음, 합리적인 판단을 가능케 한 것일까. 정말 대단한 정치인이었다.



■ 아내와의 사랑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이희호 여사와의 관계가 참 돈독하셨나 보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라는 표현에 담긴 애정이 잔잔하게 와닿는다.


■ 기타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 졌다.지금 우리 마당에는 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 없다고 발표. 너무도 긴 세월동안 '용공'이니 '비자금 은닉'이니 한 것, 이번은 법적 심판 받을 것."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p.s. 김대중 전 대통령님, 허락을 안 받고 감히 '마지막일기' 파일을 제가 첨부하려 합니다. 널리 읽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올리오니 부디 넓은 마음으로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곳은, 평안하신지요.








8월 19일자 동아일보 '스포트라이트' 면입니다. 어제는 양용은 골퍼, 오늘은 나로호 발사...러시아를 위한 사전테스트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로호 기술진 내부로부터 나오고 있긴 하지만, 나로호 중요하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라고는

하지만 사실 어차피 나이 든 분들은 가시기 마련 아닙니까. 어차피 기력 쇠한 좌파정부 수장 노인네, 만평거리조차

못된다는 걸까요.

오늘(8/19)자 조선일보. 음...잉크값 좀 들었겠군요. 어떻게 보면 참 단정하다 싶고, 또 어떻게 보면 고인에 대한

아무런 평가도, 기억도 되살리지 못하는 '쉬어가기용' 만평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고인을 '인동초'라

칭하는 건 (갠적으로는) 80년대까지의 민주화 투쟁에 한해 고인을 평하는 것 같아 좀 입맛이 좋지 않습니다.

그 이후의 '대통령 김대중'의 치적에 대한 언급과 평가를 피하려는 것 같아서요. 


그나저나, 좀 낯익습니다. 아마 5월에도 비슷한 만평을 봤던 기억이 있다는 거죠.
지난 5월 어느날 조선일보의 만평입니다. 좀더 선명해지죠. 자신들이 불과 하루 전에도 줄기차게 비난하고

여론몰이를 하던 당사자의 비극적인 죽음을 접하고..."쩝..." 이정도 느낌이었을까요. 할 말은 한다는 신문,

전직 대통령 두 분이 서거 앞에 할 말이 이리도 없었나 봅니다.
 
오늘(8/19)자 중앙일보. 신기한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느낌은...저만의 편견일지요. 뭐랄까, 좌파정권의 수장, 잃어버린

10년의 주동자 김대중 전대통령의 서거를 '북괴의 수장' 김정일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만평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조차 북한 비아냥거리기의 소재로 소비해 버리는 중앙일보의 '통큰 만평', 감탄할 수 밖에요.

어쩌면 북한 지도자가 방한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미리 '물타기' 좀 하려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한겨레 만평입니다. 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최근 어록을 저 구름 위 하늘세상에 말풍선삼아 띄워놓았네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그분의 가톨릭적 감수성에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왠지

만평 속 그분의 표정, 그걸 멀찍이서 바라보는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표정이 처연하네요. 눈밑에 온통

근심걱정이 가득해 보이십니다.

경향신문입니다. 고인을 기리는 만평의 정석 아닐까 싶네요. 성함과 이미지를 넣고, 생몰연대를 적고,

고인의 행적과 생각, 평생의 삶을 떠올릴 만한 한마디를 퍼올리는 거죠.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되어야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다." '인동초'라는 잔뜩 바랜 이미지, 독재정권과 투쟁하던 민주화투사로서의

이미지보다 더욱 중요한 고인의 업적이 그의 대통령 재임 중에 이뤄졌던 걸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프레시안 어제(8/18) 만평입니다. 왠지 보고 있으면 울컥한 만평이었는데, 하루가 지났지만 아직 이만한 만평을

보지 못했습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죽음은 어쩔 수 없이 불과 몇개월 전에 돌아간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오버랩시키고, 그 두분의 죽음을 재촉한 공통의 무언가가 있었음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아마도 그게

상식적인 반응일 겁니다.


굳이 '인동초'라는 이미지로 '대통령 김대중'의 치적을 가리거나 지워버리려 하고, 남북화해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고인의 죽음 앞에서 북한 지도자 비아냥거리기에 골몰하고 있고, 아니면 아예 대담한 '생략'기법을

구사하는 언론이라면...'우리'가 아닌 '그들'이란 단어로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p.s. 혹시나 하고 8월 20일자 동아일보 '스포트라이트'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23일날 천만관객을 맞게 된다는

영화 '해운대' 이야기를 20일날 굳이 하는 이유는 뭘까요. 정말......참...그러네요.





* 이 연설문은 김 전 대통령이 7월 14일 주한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초청연설을 위해 준비했다가 연설을 하루 앞두고 폐렴 증세로 입원하면서 발표되지 못한 것이다.

* 김대중평화센터(http://www.kdjpeace.com/)에서 생전의 연설문과 사진 자료 등을 구할 수 있다.


9.19로 돌아가자

 

존경하는 장 마리 위르띠제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 회장, 장 자끄 그로하 소장, 유럽연합의 각국대사, 그리고 이 자리에 오신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몇 말씀드리게 된 것을 매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21세기는 세계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세기입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시대가 출현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그 동안 세계는 미국의 일방주의 시대였습니다. 세계는 미국과의 친소관계, 이해관계, 종교적 차이 등으로 양분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후 세계는 달라졌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의 친소와 원근에 상관없이 대화를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세계는 그동안 미국의 이분주의에 고통을 겪다가 이제 정치, 경제, 종교,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대화와 협력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세계에 대한 희망이 부풀어 오른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그 동안 소원하고 적대관계에 있던 이란, 시리아, 러시아, 쿠바 등과 대화를 시작하고 있으며 이슬람 세계와의 접근이라는 획기적인 자세도 보이고 있습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만은 예외가 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란, 북한의 지도자들과 직접 만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당선 이후에는 클린턴 대통령이 취했던 정책처럼 유연한 태도로 북한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를 크게 고무시켰습니다. 아마 북한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태는 우리의 기대처럼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오바마 정권은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 언급하지 않고 차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바마 정부의 태도에 실망하고 위협을 느낀 북한은 극단적인 반발자세로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를 둘러싼 북한 내부의 상황이 사태를 더욱 촉진시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만, 여하튼 북한으로서는 지금 절박한 입장에 처한 것은 사실입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서 안심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든지, 그것이 불가능하면 사생결단의 자세로 생존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증거가 있습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를 통해 북한은 핵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를 이은 부시 정부는 당시 합의된 경수로 건설, 국교정상화, 경제협력 등의 약속을 파기했습니다. 그리고 북미간 실질적인 합의에 접근한 장거리 미사일 문제 협상도 부시 정권에 의해서 파기되었습니다.

이에 반발하여 북한은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IAEA(국제원자력기구) 감시요원을 추방시켰으며, 핵실험까지 강행했습니다. 북핵 문제는 다시 꽁꽁 얼어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부시 정부는 6년 동안 북한에 온갖 압박을 가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굴복하지 않았고 북한정권이 무너지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미국은 태도를 바꾸어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의 합의를 통해 핵문제 해결의 길을 열었습니다.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한다. 미국은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경제지원을 한다. 미국과 북한은 협력해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실현한다’ 등이 합의되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북한 핵문제 해결에 다시 희망의 무지개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다시 핵 사찰 문제, 에너지 지원 부진 등으로 혼미한 사태가 거듭되다가 부시 정권은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지도자와 직접 대화를 통해서 핵문제를 풀겠다는 오바마 정권이 등장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바마 정권 하에서는 세계적인 문제들이 대화를 통해 유연하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북한과의 관계도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 비핵화에 협조하는 동시에 2005년 9.19 합의에서 이루어진 북미 국교 정상화를 위한 관계개선 등의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는 우울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북한 핵문제는 전쟁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도 중국이 협력하지 않는 한 성공의 가능성은 없습니다. 저는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해서 시진핑 국가부주석 등 여러 정치지도자들과 대화했습니다. 중국의 태도는 분명했습니다. ‘우리는 북한 핵을 절대 반대한다. 그러나 이웃국가인 북한에 대한 경제적 원조는 끊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은 역사적, 지리적 관계로 봐서 이웃국가인 북한이 파멸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을 것입니다.

전쟁이 있을 수 없고, 경제제재가 큰 효과를 얻지 못한다면 방법은 무엇입니까? 대화와 협상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는 어느 정도 고통을 주겠지만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협상은 우방국가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이해를 주고받고 윈윈(win-win)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와도 얼마든지 협상을 해야 합니다. 북한의 근본적 목표는 국가안보와 체제보장, 북미 국교 정상화와 경제협력을 통한 국제사회의 진출입니다. 또한 한국과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 역시 북한으로 하여금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포기하게 해서 태평양 국가들의 위협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안전보장, 핵과 미사일 문제의 해결, 이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조건입니다. 이 조건에 대한 합의는 이미 2005년 9.19 선언으로 합의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서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립니다. 북한은 완전무결하게 핵을 포기해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시켜야 합니다. 미국은 북한과 국교 정상화하고 북한을 국제사회에 편입시켜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평화롭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원만한 해결의 길입니다.

변화를 내건 오바마 대통령은 오래된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비핵화를 통한 점진적 관계개선'이라는, 장기간이 소요되는 단계별 접근방식을 지속하기에는 상황이 달라졌고, 사태가 급박합니다. 북한의 핵무장을 조속히 막아야 합니다.

미국은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라는 근본적이고도 포괄적인 접근방법으로 전환할 때가 되었습니다. 평화협정, 외교관계 수립, 경제협력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함께 핵 폐기를 실현하는 일괄타결방식으로 한반도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다시 압축해서 말씀드리면 오늘의 북핵문제 해결방안은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미국은 관계정상화를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길뿐입니다. 이 외에 대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원칙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의 공동성명, 그것을 준수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도 좋고, 일본도 좋고, 중국도 좋고, 러시아도 좋고, 한국도 좋고, 북한도 좋은 것입니다. 다시 9.19 선언으로 돌아갑시다. 그리하여 동북아시아에 평화와 안전, 협력의 시대를 열어갑시다.

감사합니다. (끝)


*                                                                  *                                                                  *

참...절박한 심경이 구절마다 녹아 있는 연설문이다. 당신의 죽음을 예감해서일 수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체가 핀치에 몰렸다는 상황 인식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북핵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함께

가장 현실적이고 모범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아마 당신이 수십년 동안 대결했던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강고하게 편협한지, 얼마나 대결적이고 소모적인지를 알기에 그랬겠지만,

"전쟁이 있을 수 없고, 경제제재가 큰 효과를 얻지 못한다면 방법은 무엇입니까? 대화와 협상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는 어느 정도 고통을 주겠지만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원칙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이 정도 인식에도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한국의, 미국의 대북 정책을 지휘하고 있으니 말이다. 부디 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확고한 대북관이

사후에라도 남녘땅 곳곳에서 만개하기를 바란다.


사실 놓치기 아까운 기회가 온 셈이지 않나 싶다. 북한 측에서 현정은 회장을 통해 남북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전했고, '포용정책'으로 남북관계의 혁신적인 전기를 열었던 고인에 대한 조문단을 보내온다지 않나.

아무리 이명박 정부가 계속 헛발질만 해대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지만, 그래도 이 나라가 결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좀 잘 해냈으면 좋겠다. 북한과의 관계를 조속히 복구하고 지난 10년의 성과 위에서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리길 바란다.





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소심하게나마 담벼락 쳐다보고 욕이나 실컷 하렵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뭔가...분노를 표할 수 있을 거 같네요. 가슴이 너무 답답합니다. 


대통령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잡아먹었구나..야이 벼락맞을 담벼락아.

하필이면 그나마 제일 이쁜 구석이 있던 두 사람을 거꾸려뜨렸구나..이런 십장생그려진 담벼락아.

역사를 지우고 분칠하기 시작하더니 최근 십년을 이렇게 청산하는구나..쥐새끼가 숨어사는 담벼락아.


아...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맥이 풀려서 아무 것도 못 하겠네요. 그저 담벼락 욕만 해댈 수 밖에.

씨팍 담벼락. 쥐구멍 뽕뽕 뚫린 담벼락.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돌아가셨다는군요. 지금 방금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후 1시 43분...

이제 정말 그들이 말하던 '잃어버린 10년'을 이끌었던 두 정치지도자가 모두 서거해 버렸습니다.


...정말 그 10년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민주주의가 조금은 더 자라나고 피어나던 10년.

민주주의와 경제, 남북관계 이렇게 세 가지로 최근의 역 급발진 상황을 정리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조금은 더 남아계시길 바랬는데...손에 힘이 풀리네요.


담벼락 보고 욕한마디 해야겠습니다. 대통령을 둘이나 잡아먹었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안한 영면을 바랍니다.





"민주주의는 싸우는 자, 지키는 자의 것"

출장 가기 전날 밤, 허위허위 썼던 글이 프레시안에 올랐었다. 몰랐다.


"당신의 눈물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뭐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기고를 보내주면 다 받아주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던데, 모르겠다.

지금은 생각이 다소 바뀌었달까. 사람들은 '노무현'을 '민주주의'와 등치시키고 있다.

믿기지 않는다고? 그를 향해 써내려진 만장들, 온갖 편지와 메모와 메시지들, 그리고 슬픔에 잠긴 조사들..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부분을 '민주주의'라고 바꾸어 읽어도 어느 한대목 문맥상 거슬림이 없다.

민주주의의 화신 노무현이 되었다.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을 구분해서 보면 더욱 보이는 게 많았을 텐데, 그건 놓쳤다.

대통령 노무현이 실제로 이룬 업적과는 달리, 인간 노무현이 표상할 수 있는, 그래서 대통령에까지 오르게 했던
 
'시대정신'이란 부분이 분명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생각은 여전히 똑같다. 사람들이 추모하는 건 민주주의의 죽음이다.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여겼던

역사의 수레바퀴, 절차적, 실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상이 문득 숨을 몰아쉬며 핀치에 몰린 상황임을 깨달은 거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이 도저한 애도의 물결은은 눈물을 위한 핑계거나, 혹은 집단적인 신드롬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노무현은 민주주의에 가장 '프렌들리'했던 대통령은 맞지만, 이명박을 넘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곳은 아니다.



눈물을 흘리는 행위는 감정을 정화하고 정돈시켜, 새로운 상황에 적응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헤어진 연인이 실제로 헤어지는 순간은, 그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라던가.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작년 촛불시위 때의 방향성없는 폭발력과 지금의 전염성강한 눈물바다가 갖는 동일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비루하고 피곤한 삶. 대통령 노무현조차 감당치 못한 강고한 시스템과 주류 세력에 대한 패배감. 울고 싶은 삶.

그 모든 것들을 공유하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부글대던 울화, 불만, 그런 것들이 해소되는 거 아닐까.


노무현의 급서 후 눈물을 글썽이고,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고, 불쌍하고 안쓰러워 어쩔 줄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성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인 차원의 '자기 위로용'이라는 심증이 갈수록 짙어진다. 노무현에게 미안하단다.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한단다. 존경했고, 훌륭한 정치인이었으며, 서민의 편이었고, '바보'같이 우직한 우리들의

대통령이었단다. 심지어는 그가 그립댄다. 


이런 묻지마식 감정의 물결이 사회를 온통 휩쓸고 사고를 마비시키는 건 경계할 일이다.


언제, 누구에게 그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았던가. 아마 그가 검찰, 그리고 그 뒤에 선 권력자의 '피살자'로써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 시작된 일이다. 그렇기에 노사모에선 '국민이 죽여놓은' 노무현이 국민장이라니, 당치않다고 펄쩍

뛰었던 거 아닌가.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를 비난하고,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야, 라는 말을 초딩들까지 입에 물고
 
있던 게 불과 이삼년 전이다.


막말로, 이명박은 왜 당선되었는가. 우리가 노무현을 싫어해서였다.


처음에 방송이 났을 때, 그가 죽었다는 이야기에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울 일은 아니었다. 노무현은 아무것도 대표하지 못했고, 그는 더이상 현실세계에 작용하지 않았으며, 그가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유일한 가치 도덕성마저 땅에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티비 속 사람들의 눈가가 빨갛게

축축해지더니, 울고 쓰러지고 그러다가 세네시간씩 줄을 서서 헌화하기 시작했다. 꼬맹이들을 안고 업고, 그렇게.

그러고 보면 그새 티비들은 감동적인 음향이 깔린 다큐멘터리와 코멘트들을 쉼없이 돌렸다.


물론 그를 향한 눈물바다가 죽은 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너그러움이 가미된 애도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졌던

대통령 중에 가장 '진보'적이었고, 가장 호감이 갔고, 또 가장 청렴했고 도덕적으로도 우월했던 대통령인 사실도 맞다. 

그렇지만, 노무현의 정체가 없다. 5공 청문회 스타였다고? 입지전적인 궤적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다고? 대통령된 후에
 
검사들과 한판 뜨려 했다고? 대통령 된 후의 업적에 대한 다큐는 과문한 탓인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들은 노무현을 바라보고 울지만, 그 눈물은 살아남은 자들, 살고 있는 자신들을 위해 바치는 눈물이다.

죽은 노무현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표시와 열렬한 지지는, 살아있는 이명박에 대한 극렬한 반대와 증오와

한 짝을 이룬다. 그리고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조차 이명박 정권에게 당하고 말았다는 묘한 '동류의식'도 한몫 한다.

그들은 자신이 불쌍한 거고, 자신의 처지가 애틋한 거고, 답답한 현실에 또다시 꽉 막혀 버린 가슴에 목메어버린 거다.


울고 싶던 차에 뺨 제대로 맞았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개별적 차원의 스트레스 해소와 감정 배출이 문제 해결의 의지를 오히려 꺽어버리거나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거다. 이미 촛불시위에 대한 상찬 후 조심스레 등장하기 시작한 비판들이 보여주듯, 한판 난장으로

-축제였고 혹은 '새로운 시위문화의 전형'이었다고 평해지는-들썩들썩했던 그 거대한 에너지는 문제 자체에 대한

해결 의지보다는 스스로의 스트레스 해소에 몰입했던 면도 없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제된 감정과 쿨해진 머리를 갖춘
 
'순치되고 이빨빠진' 양민들이 남을까봐 두렵다.


촛불시위가 정돈되는데 한몫했던 건, 종교계 인사들이 개입하면서 이성적인 문제를 감성적인 문제로 바꿔 버렸던 탓도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스템은 바뀌지 않고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감정은 분출했고 어느 정도 치밀었던 울화통도
 
해소하고 잔뜩 축적됐던 스트레스도 날려버렸다. (물론 이 정부 하에서는 더욱 빠른 속도로 스트레스가 누적되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심리적인 위로와 종교적인(혹은 도덕적인) 우월감도 만끽했다. 그리고 다시 예전과 같이 전혀 변함없이

굴러가는 시스템 내부로 걸어들어간다. 추모 신드롬, 울음바다도 한순간의 반짝, 으로 끝나지 않을까 두렵다.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순치'에 다름아니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가.


노무현에 대한 이 중독성강한 추모 물결은, 온국민에 전염되어 버린 듯한 (혼란스러운) 분노와 비통함은, 아직은

우리를 아무데로도 인도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신기루처럼 사그러들었던 노무현에 대한 열광이 순식간에 되살아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은 그저 "지금보다 나았던 것 같은 과거에 대한 향수", 그것 밖에 안 보인다. 노무현에 대해

사람들이 부여하는 가치나 이미지라는 게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추모 열기가 일종의

신드롬화되어 버린 것은, 그가 오로지 '이명박의 반대이미지'로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초점이 흐려진다. 한미FTA, 이라크파병, 비정규직법, 사학법, 부동산세제, 스크린쿼터제, 양심적

병역거부, 국가보안법, 투자은행, 금산분리, 언론법...이런 문제들에 대한 입장은 "노무현이냐 이명박이냐"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명박의 반대이미지는 노무현인지 몰라도, 이명박의 반대정책, 반대세력은 노무현이 아니다.


노무현에 대해 너무 박한 평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왜 울고 있는지 그 진정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재우쳐 물어보아야 하는 거 아닐까.


지금 왜 그를 보며 울고 있는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애도가 줄을 잇고 있다.

그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대통령이었으며 한국 사회 비주류와 소외된 자들의 대변인이었던 것처럼

기억되고 있으며, 마치 민주주의를 위해 한평생을 헌신했던 인물인 양 급격하게 단순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가 미군기지를 위한 부지를 조성한다며 평택에서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강제 진압을 벌였던 것도,

동시다발적 FTA추진전략이랍시고 한미FTA를 졸속으로 추진하며 이른바 4대 선결조건 문제를 예비했던 것도,

사실상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한국의 교조적인 시장주의 세력-신자유주의 세력-을 용인하고 부추겼던 것도,

부동산 문제나 금산분리 문제, 언론법, 사학법에 있어 지금과 같은 퇴행적 상황을 야기한 것도,

말로는 서민들을 위한다면서 비정규직을 폭증시키고 재벌들과 가진 자들의 배만 불렸던 것도,

심지어 그가 선정적으로 이야기했던 '과거의 유물' 국보법 폐지 문제에 있어서 결국 아무 성과도 없었던 것도,

그리고 이미 그의 치하에서 이명박 정권 때와 별반 다름없는 국가 권력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시위진압작전이 있었던
 
것도,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지금의 정부에 대한 불만들, 지금의 정책에 대한 불만들을 표출하기 위한 땔감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초혼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정책이 근본적으로 이명박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그림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가
 
실제로 '비주류'와 '소외된 자들'을 위한 대통령이었는지는 차치하고, 그의 몇몇 언행들이 편집되어 반복 재생되고 있는

거다.


그가 정면으로 반박했던 대운하 사업,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던 대북한 포용 정책, (발언의 실리적 공과를 떠나)

미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 검찰의 독립권을 보장하고 언론권력을 비판하려 했던 그의 문제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도 '일반인'에 가장 가까웠던 그의 화법과 '출신성분'.


그런 것들이 작금 이명박 정부의 대척점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치지어주는 키워드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손쉽게 기억하며, 그 기억들은 대개 현재의 필요로 인해 불러내어진 것들이다.


노무현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추모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떠올리는 그의 모습이 온통 긍정적이고

바람직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할 듯 하다. 그렇다고 노무현 정권 시대에 우리가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으니.


다만 그러한 '기억의 재구성'과 새로운 '인간 노무현의 탄생'이 모쪼록 지금의 답답하고 부조리한 정국을

타개하는 에너지로 化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혹자는 지금의 정국이 80년대로 돌아가는데 필요한 건

단지 성고문, 물고문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노무현은, 왜 죽었는가. 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노무현은,

우리에게 정말 희망이었는지로 답을 마감해야 할 것 같다.


티비에서 쌍둥이빌딩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어리벙벙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실감이 안나던 기억.

2001년, 3개월 동안 뉴욕에 머물다 돌아온지 채 며칠이 안 되었을 때였다.


비몽사몽 늦잠에 취해있는데 잠을 덜컥 깨운 엄마의 한마디. "노무현 죽었다".

뭐라고? 이건 흡사 9.11때 기억의 반복 아닌가. 난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여전히 티비 속보들은 잠에 취했는지,

자살이네 실족이네 서거네 운명이네, 온갖 단어들을 동원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투신자살'이라니. 노무현의 허약하고 위세없는 지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단어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글쎄, 개인적으로 노무현을 좋아하지 않았고, '진보'를 표상-혹은 위장-했던 그가 끝내 이렇게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며 더더욱 실망했지만. 아니, '진보'라는 단어에 똥물을 뿌리고 '도덕성'이란 기준 자체를 회의에

빠뜨리고 말았던 그가 끝내 자신의 언행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죽음을 선택하다니. 또다시 '경망스럽다'는

표현을 듣지 않을까 저어스럽다.


주위 사람들의 몇 가지 반응.

"광주학살을 부르고 몇백억씩 해처먹은 인간도 잘만 살고 있는데 왜 죽고 그러냐.."라는 안타까움.

"이건 결국 이명박이 초래한 거 아니냐.."라는 분노.

"남겼다는 유서에 대체 무슨 내용이 담겼을지 모르지만, 혹시 다 까고 간 거 아니냐.."라는 기대(?).


모르겠다. 장자연리스트때도 그랬지만 죽은 사람은 더이상 말이 없고, 죽은 사람은 더이상 (쥐뿔 남은) 권력도

행사하지 못하며, 그는 이제 주위 사람들을 남기고 온갖 문제들을 남기고 홀로 떠나버렸다.


혹시 故 노무현 전대통령 만큼이나 말실수 잦고 오해를 자주 부르는 그 사람이, '국가 이미지에 큰 타격'이라느니,
 
'국민의 성금을 모아 장례를 치르자'라느니...제발 그런 속내가 있어도 말않고 조용히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론들, 노무현 전대통령 때 중소기업 사장이 목매달아 자살했던 것을 두고 사실상 노 전대통령이 죽였느니

어쨌느니 말많았던 언론들, 이번엔 과연 누구더러 책임지라 하는지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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