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크메니스탄에도 '피데'라는 이름의 피자를 팔고 있었는데, 놀라웠던 건 길쭉하게 만들어진 도우 위에 얹힌

치즈와 계란, 고기 들 위에 대파가 하나 통째로 올려져 있었다는 사실. 썰지도 않은 대파의 하얀 뿌리까지 그대로

피자 위에 얹어놓았다는 게 꽤나 충격적이었지만, 피자와 함께 썰어서 맛을 보고 더 놀랐다.


어라, 맛있잖아. 피자의 느끼함이나 고기냄새 따위를 깔끔하게 잡아주면서 상큼하게 입맛을 돋궈주는 느낌.

대파를 여기저기 음식에 많이 넣어서 먹는 한국에서도 한번 시도해봄직한 색다른 토핑 아닐지.

양고기를 빵 안에 넣었다고 해야 하나, 빵으로 양고기를 쌌다고 해야 하나, 특유의 양고기 냄새가 풀풀 나는

부드럽고 고소한 양고기의 기름이 빵에 스며서 굉장히 잘 어울렸었다. 구운 토마토 같은 더운 야채와 함께

먹으니 그렇게 기름지지도 않고.

붉은 무가 주로 들어갔던 야채 샐러드. 붉은 무가 어찌나 붉던지, 다 먹고 나니 왠지 이빨까지 빨개지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살짝 들 정도, 그리고 조금은 저것들 인공색소는 아니겠지 할 정도로.

양꼬치, 러시아와 CIS 국가지역에서 즐겨먹는 꼬치 요리를 '샤슬릭'이라고 한다고 했다. 양고기나 닭고기, 소고기를

꼬치로 구워서 빵이랑 야채랑 같이 먹는 건데, 내가 먹었던 곳에서는 마치 인도의 '난'같이 담백하고 쫄깃한

갓 구운 빵을 고기 바닥에 깔고 고기 위에 덮어서 보온 효과도 살짝 노린 듯 하다. 보료를 깔고 이불을 덮어서

자장자장, 샤슬릭은 물론 맛있었고, 특히나 양고기 샤슬릭은 최고.

쉬어가는 사진, 투르크메니스탄 아쉬하바드에는 백화점 하나 변변한 게 없지만 그나마 터키에서 들어온 쇼핑센터

'임파스'가 가장 큰 곳이라고 했다. 그곳의 1층에서 대충 간식거리 사고 2층에 올라가 밥을 먹던 중이었다.

사탕처럼 봉지에 포장되어 있는 설탕이 귀여워서 한 장.

투르크메니스탄의 빵도 꽤나 맛있었던 거 같다. 어디서 먹던 기본 이상은 했다. 다양한 소가 들어가거나 맛이

색다르진 않은 거 같지만, 그냥 빵 자체가 맛있었던 거다. 쫄깃하고 담백하고, 게다가 이 빵 같은 경우엔 아낌없이

뿌려진 깨 덕분에 굉장히 고소했고.

온통 투르크어나 러시아어로 씌여진 메뉴 중에서 골랐던 샐러드 하나. 샐러드야 당연히 메인 메뉴 전에 야채를

좀 먹어서 비타민을 공급하려는 건데, 무작정 아무거나 찍어서 시킨 샐러드엔 온통 고기 뿐이었다. 혓바닥을

저민 듯한 햄도 있고, 간도 있고, 그리고 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첨보는 햄들도.

투르크에서도 그렇지만 러시아에서도 많이 먹는다는, 일종의 탕이랄까. 고기도 들어가고 야채도 들어가고

붉은 무도 들어가고, 저렇게 하얀 크림같은 덩어리도 넣어서 잘 섞어 먹기도 하고. 자작한 국물이 얼큰하기도

하고 건더기도 보슬보슬 맛있었다.

위에는 양고기와 소고기가 섞인 '샤슬릭', 아래는 only 양고기 '샤슬릭'. 원래는 사막에 나가 모닥불을 피우고

불 주변에 모여앉아 꼬치를 구워먹는 게 제대로라고 하던데, 출장 중에 그런 호사를 부릴 여유야 도저히 나지

않는 거고. 그래도 이 샤슬릭을 먹었던 집은 뭔가 제대로여서, 고기에서 모닥불의 향기가 은은히 배어났다.

양고기는 정말 그러고 보니 원없이 먹었구나.

너무 노골적으로 새 한마리의 형체를 오롯이 드러내고 있던 고깃덩어리. 치킨이라고 했는데, 닭이라기엔 크기가

조금 모자란 게 중닭이나 병아리를 잡은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맛도 좋고 소화도 잘 되는' 고기를 좋아하는

나라고 하지만, 이 녀석은 왠지 넘 적나라하다 싶어 조금 애도의 마음을 갖고 고기에 임했었다.

떠나기 전, 투르크 정부에서 차려주었던 만찬장의 테이블. 기본으로 테이블에 깔려있던 음식만 이만큼이었다.

일단 에피타이저처럼 저들을 엔간히 해치우고 나면, 그 다음부터 메인 디쉬가 차례차례-한 세네번 나왔던 듯-

나오는 순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테이블 한가운데 장식처럼 놓여있던 과일들을 가져가서 깍아내오는 식.

사막의 나라 투르크에서 이렇게 신선한 야채들을 먹기란 쉽지 않을 거 같은데, 역시 대부분의 야채니 과일은

인접한 카자흐스탄이나 다른 '-스탄' 국가로부터 수입해 온다고 한다. 밑에는 치즈를 감아돌린 가지 샐러드,

그리고 닭고기를 찢어서 버섯과 옥수수와 무친 샐러드.

출장을 힘들게 다녀와봐야, 이렇게 음식들이 풍성하니 살이 디룩디룩 쪄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다른 나라들은 몰라도 투르크메니스탄은 누구든 물갈이를 한번쯤 하고 오는 나라라고 들었는데 웬걸,

'밥만 잘 먹더라'.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 불리는 투르크메니스탄, 수도 Ashgabat는 아쉬하바드라 읽어야 할지 아쉬가바드라

읽어야 할지 스튜어디스들조차 헷갈리던 그런 곳. 아침부터 35킬로그램짜리 출장용 짐을 바리바리 싸느라 테이프

한 롤을 전부 박스포장하는데 써버렸다가, 수하물은 32킬로그램으로 무게가 제한되어있단 이야기에 저 노가다가

결국 아무 쓸데없는 삽질이 되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로 시작된 출장.

모래바람이 낭자하게 사방에 모래부스럭지를 흩날리던 거친 사막의 나라. 땀방울조차 붉다던 적토마의 조상인

명마 '아헬테케'를 품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자줏빛 석양은 특히나 마음을 흔들었더랬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자동차 번호판. 다섯 주를 의미하는 문양 다섯 개는 각 지역의 전통적인 카펫 문양에서 따온

거라고 한다. 카펫박물관도 있고, 심지어 카펫부-외교부, 지경부처럼-도 있다니 카펫은 이들에게 굉장히 큰

의미를 담고 있는 듯.

오래 된 차들과 소형 버스들, 러시아에서 넘어왔다는 이 낡고 고풍스런 차들이 번쩍거리는 BMW나 벤츠와 같이

도로를 달리는 아쉬하바드의 시내.

여전히 공산주의의 내음이 짙게 풍기는 이곳은 형식상 민주주의를 빌어 정권의 부자세습이 이루어진 나라.

러시아 풍의 군복입은 군바리 아저씨가 누군가를 태운 지나가는 차에 경례를 붙여올리는 순간.

전기가 꽁짜, 물도 꽁짜. 세계 4위의 가스 잠재부존량을 갖고 있는 부유한 나라라 그런지 졸부짓을 좀 해놨다.

촘촘이 늘어선 가로등에 커다란 건물마다 간접조명은 빠지지 않아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해지는 야경.

러시아, 중앙아시아 지역의 전통음식이라 하면 샤스리크, 돼지고기나 양고기 꼬치구이를 말한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현지음식은 제대로 먹어야 되지 않겠냐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양 통구이 샤스리크 맛집을 묻기 위한

나의 그림 설명. 이넘의 나라는 러시아어나 투르크어가 주로 쓰일 뿐더러, 영어로 '양 통구이'를 뭐라 해야할지

참 난감하더라는. 생떽쥐베리가 양 그림을 그려달라는 어린왕자를 만났을 때의 고충을 이해했다.

현지 국영방송에 살짝 나온 내 얼굴. 행사를 마치고 잔뜩 지쳐서 돌아온 호텔 방에서 문득 틀었던 티비 속에서

이번 행사 스케치가 한 오분여에 걸쳐 나오는 걸 보고 나름 보람찼다는. 살짝살짝 나오던 얼굴을 찾는 재미 역시.

그리고 잠깐, '투르크의 배한성' 가이드 압둘라를 앞세워 돌아보았던 그들의 초대대통령 묘소. 독재자에 대한,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애정은 너무나 대단해서 거대한 모스크를 지어 기리고 있었다.

마지막날 투르크메니스탄 정부에서 주관했던 만찬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문득 눈에 띈 반달. 투르크도 이렇게

와 보았구나, 그래도 행사 잘 마쳤구나, 며칠씩 두세시간만 자며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만감이 교차하던 순간.

황량하고 헐벗은 투르크메니스탄을 떠나 때마침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터키 이스탄불에 당도하니 모든 게

풍요롭고 윤택해 보인다. 활짝 열어둔 창문도, 창문틀 위의 작은 꽃화분도.

터키는 요새 석류주스가 유행인 듯. 골목마다 석류를 잔뜩 쟁여두고 바로 짜서 내어주는 주스가게가 성업중.

시지도 않고 새콤하면서 산뜻한 게 아픈 다리 쉬어가며 한잔 쭉 들이키기에 좋더라는.

6년전 터키를 여행할 때 필름카메라를 들고 간 게, 그래서 아껴찍은 데다가 잘 못 찍어 사진이 몇 장 없는 게 

너무 아쉬웠었다. 게다가 내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열심히 셔터를 눌러줬던 여행속물 한국인 아저씨는 그 뒤로

연락을 끊고 도망쳐 버려서 더욱 아쉬움이 컸었는데, 한을 풀듯이 잔뜩 셔터를 눌렀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보아도 이쁘게만 보이는 이 도시, 이스탄불은 아무래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곳.

비가 촉촉히 내리고 나니 더욱 산뜻한 색깔을 발하는 까페 앞의 테이블 & 의자.

보스포러스 해협을 달리는 크루즈 위에서 예니 사원을 바라보다. 그때, 저기서 그림그리던 할아버지와

대판 싸웠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랜드 바자르 뒤쪽의 꼬불꼬불한 골목을 헤매던 기억도 떠올리고.

그때는 너무 비싸서, 아니 돈이 없어서 그저 밖에서만 구경했던 갈라타 타워에 올라가 볼 수 있었음에 뿌듯해하며,

저 갈라타 대교 아래 어디메쯤에서 팔던 고등어케밥의 맛은 그대로일지 궁금해하며.

그렇게 이스탄불에서의 남은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무사귀환. 투르크메니스탄과 터키에서 찍은 사진들은

조만간 정리해서 올리겠지만, 우선 출장 잘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도 할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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