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아래, 변산반도국립공원 끄트머리에 있는 격포항에서. 허리와 엉덩이와 입술을 맞댄 배들이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조조의 연환계라도 쓴 듯 그렇게 바다를 뒤덮은 채로 옴쭉달싹 못할 거 같은 배들 너머로 유유히

항구를 빠져나가는 배가 보인다.

그리고 조금 너머에는 배 세척을 사이좋게 나란히 묶어둔 채 둥실둥실하는 모습도 보였다. 가운데 있는 배가 조금

커보이긴 하지만 비슷한 사이즈의 비슷한 색깔, 모양새의 배 세척이 고양이 발가락처럼 곰실곰실.

여객선터미널을 지나 쭉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사람들과 대치하고 선 우락부락하게 층진 암반, 그위에 살풋

얹힌 단풍들. 저쪽으로 좀더 걸어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모자란 관계로 패스, 어찌나 아쉽던지.

대신 무지개빛의 바람개비 옆을 지났다. 바람이 불지 않던 탓에 빳빳이 굳어있던 바람개비들은 바다쪽으로부터

육지쪽을 향해 날아갈 폼만 잡고는 장대 위에 게으르게 앉아있었다.

바다도 보고 언덕도 보고, 그리고 단풍도 즐기며 변산반도 쪽, 다음에 시간 내어 제대로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바람이 불어왔고 바람개비들이 씽씽 돌기 시작했다. 저러다간 어느 순간 포르르 날아가버리겠다 싶도록.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새만금, 몇 년전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그 전에는 간간히 뉴스나 신문에서 접했던

그 곳 새만금에 와 보기는 처음이었다. 어디서 어디가 매립지인지도 가늠하기 힘든 그 곳, 직선으로 쭉쭉 뻗은 도로만이

이 곳이 지도위에 그려진 몇개의 직선을 따라 만들어진 땅일 거라 짐작하게 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거침없는 직선으로

내뻗은 도로를 따라 함께 저너머 안개가 자욱한 곳으로 내달리는 건 듬성듬성하지만 역시 완고한 직선으로 심어진 잔디.


2009 희망다큐프로젝트 "살기 위하여" 시사회..물막이댐을 쓸어낼 '재해'를 기다리며.

 

다큐를 보고 나서도 그렇지만 그 이전에도, 이런 대규모 간척사업이 대체 무슨 경제적 이득이 있을지, 그리고 설사

이득이 있다 해도 다른 생태계 파괴 등의 요소를 고려했을 때도 여전히 이득일지는 의문이었다. 그런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땅이 좁은 나라라 하지만, 실제로 쓸 땅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계획과 시스템의 문제 아니던가 싶어서다.

새만금을 둘러본 건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던지라 판단에 새로운 팩트를 가감하지는 못했지만, 풍경은 남았다.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채 공사중이었던 새만금 관광센터 앞에서 빙글빙글 도는 동그란 순환로가 있었다.

군산으로, 부안으로, 그리고 수변로로 빠지는 길들이 동그라미 밖으로 빠지는 화살표들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그 옆에 노란 삼각형 안에 검은 화살표가 빙글빙글 도는 모습은 왠지 '재활용 표시'같기도 하다. 플라스틱이니

알루미늄이니 재활용이 가능하단 표시로 꼬리에 꼬리를 문 채 순환하는 화살표. 그렇지만 빨갛고 노란 바탕색에

검정 화살표가 그려져 있으니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는 불길한 징조 같기도 하다.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공사중인 모습. 저 멀리 무슨 갑각류의 딱딱하고 화려한 껍데기처럼 반짝이는 주황색

포크레인이 여러 대 세워져 있고, 앞에는 물빼기 작업용으로 쓰였을 녹슨 쇠파이프가 여러개. 그렇게 물이

바싹 빠진 바닥에 물새들이 몇 마리 깃을 접고 내려앉았다.

방조제를 따라 이어진 수변로를 쭉 걷다 보니 방조제 안쪽으로, 아마도 이제 폐선으로 버려지고 만 듯한 배들이

생각보다 잔뜩 있었다. 아직은 방조제 안쪽의 물이 전부 빠지지 않은 상태인지라 제법 둥실거리며 떠 있긴 했지만

바닷바람과 바닷물에 하릴없이 낡아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그리고 수변로 옆의 성기게 심어진 잔디밭 위에 동그마니 놓여있던 배 한 척. 그 조금 위로 씽씽 달리는 관광버스와

자동차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조금씩 흔들거리는 배는 어쩜 잔디가 일으키는 물결을 타고 있는 거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잔디가 어쩜 저리 반듯한 이랑을 만들어 놓고 있는지, 정말 굉장히 작위적이기도 하고 인공적이기도 하고.

그렇게 죽죽 그어진 잔디밭 골들은 그대로 얼어붙은 파도 같기도 하다. 안개가 잔뜩 끼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 빗발도

흩뿌리는 날씨 탓에 왠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반쯤 헐벗은 채 얼어붙은 파도 위에 올라앉은 배 한조각이 분위기를 더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눈에 걸리던 저 콘크리트 기반 위에 비석처럼 서 있는 게 뭔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봤다.

방조제 관리를 위한 전기설비 단자함이란 걸 알고 난 후에도, 이 땅 밑에 잠들어있을 수많은 바다 생명들, 이곳에

깃을 접고 내려앉았을 뭇 생명들, 그리고 이 곳에서 땅을 파고 바다를 일구며 살아왔던 사람들을 위로하는

반듯한 직선으로 만들어진 비석같기만 했다.


이 곳은 방조제로 감싸이지 않은, 살아있는 바다 쪽의 갯벌. 아직 살아있는 것들이 생생한 자취를 남기고, 그에

더해 파도가 얼기설기 갯벌을 흐트러뜨리며 손자욱을 깊게 긋고 내리는 곳.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갯벌을 뒤집고 뭔가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수변로 안 쪽의 갇힌 배들과는 달리 바닥을 드러낸 맨땅 위에 기우뚱 정박해있는 배들, 그건 오히려 이들이

아직 갇히지 않고 자유로이 바다 위를 달리며 움직일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다시 물이 들이차면 둥둥 떠올라선

사람들을 싣고 고기를 잡으러 앞바다로 나갈 준비가 된 배들이다.

수변로를 따라 앞서 내달리던 일군의 자전거 무리들. 관광안내소 앞 주차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달리기

대신 이층으로 탑쌓기 놀이 중이었다. 화려한 유니폼 때문인지 자전거를 차곡차곡 챙기는 모습이 무슨 탑쌓기

퍼포먼스를 하는 것 같더라는.

새만금 방조제가 가둬버린 땅과 바다에는 더이상 파도가 갈퀴질할 갯벌도, 갈퀴질의 흔적이 남을 만큼 말랑한 공간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대신 남은 건 온통 쭉쭉 뻗은 단단한 직선들이다. 게다가 아직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직선들은 사람들의 손길이나 자연의 세례를 받지 못해 엄청 날카롭고 황량해보이기조차 한다. 그러고 보면 여기서

보았던 유일한 동그라미조차 생태계의 순환이 파괴되고 재생이 불가해졌음을 묵시하는 것 같았던 거다.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종로3가의 허름한 낙원상가 4층에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다는데, 아직 실제로 가본 적은 없었다.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나면 늘 그렇듯, 잔뜩 피곤하고 뭔가에 절어버린 듯한 느낌으로..한동안 고심했다.

시사회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피곤하기도 하고, 혼자 영화를 보고 전시회를 보는 게 요샌 별로 땡기지도 않고,

금요일 저녁에 사람 복작대는 종로통에서 헤매는 기분을 느끼고 싶지도 않았다.


시사회 티켓교부처에서 이름을 말하고 티켓 두 장을 받았다. 한 장은 됐다고 돌려줄까 하다가, 그냥 받았다.

담배를 피는 커플들 틈에 끼어 낙원상가 옥상에서 종로를 내려다보았다. 역시 약간 헤매며 찾은 이곳은, 말하자면

낙원상가 건물 옥상에 위치한 모양새의 영화관인 거다. 카메라를 들고 왔어도 뭔가 신기한 것들이 잡혔겠다고

살짝 아쉬워했지만, 어차피 영화시간에 딱 맞춰 근근히 도착했으니 할애할 시간도 얼마 없었다. 입장 전에 티켓

한 장은 아예 가방에 밀어넣고, 나머지 한 장만 손에 쥔 채 조용히 통과했다.


처음 이 영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다, 갯벌 어쩌구 하길래 난 왠지 당연히 '태안 앞바다'겠거니 했었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영화는 근 15년간 끌어왔던 '새만금 간척사업' 에 대한 이야기였다. 망가지는 갯벌을 보여주며

자연 다큐처럼 시작해서는, 간척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농성이나 천막투쟁을 보여주고, 그간 간척 사업을 둘러싼

간략한 역사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간척 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분열'되고 '패배'했는지,

또한 그러면서도 바다를 터전삼아 살아가는 여성어민들이 얼마나 강인하면서 인간적인지를 보여준다.


대책위의 지지부진한 행동, 불분명한 입장표명, 그리고 간척사업으로 인한 피해가 고르지 않게 돌아가는

선주들과 非선주들 간의 미묘한 입장차. 최종적으로 33킬로에 달하는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기 전까지 몇번이나

예고되었던 대규모 선상시위의 뉴스는 나도 들은 기억이 있지만, 그렇게 허탈하고 무기력하게 대응했던 건지는

몰랐다. 엉엉 울면서 하소연을 하는 젊은 아저씨의 붉은 눈시울이 가슴에 와 닿았고 물막이 공사현장을 점거하곤

밤늦도록 핏대높여 자신들끼리 방향을 두고 싸우던 그들의 절실하고 필사적인 모습이 먹먹했다. 단순한 그림이

아닌 복잡하고 미묘한 그림을 보여주는 다큐여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뭐니뭐니해도 어머니들이 앞장섰다. 어느 분은 감성적인 소녀처럼 바닷가 생명들이 죽어나간다며 한숨지었고,

또 어느 분은 자식넘이 들고 온 돈내라는 가정통신문이 겁난다며 분노했고, 그렇게 제각기의 포인트는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해수유통. 물막이댐을 터서 바다를 되살려내라. 그렇게 청와대 앞에서 일인시위도 하고, 농림부로

찾아가 책임자와의 면담도 요구하고, 해상 시위에도 앞장서고. 그리고 결국 한 분은 갯벌을 베고 돌아가셨다.


개인적으로는 농림부에 찾아갔던 그분들이 대체 누구를 보고 소리치고 호통을 쳐야 할지 모른 채, 사방에 대고

소리지르는 장면이 너무 와닿았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누가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가. 그(들)은

모두 어디에 숨었길래 화면 귀퉁이에도 나오지 않는가. 그분들의 흥분한 눈초리와 새된, 그러다가 쉬어버린

목소리는 농림부나 청와대, 혹은 국가기관 그 어디에도 내려앉지 못한 채 허탈하게도 증발해버린다.


대법원에서도 그들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기각된 어느 날, 어민 한분이 초딩 4년짜리 딸내미에게 술김

훅훅 뻗치며 허탈하게 말한다. "넌 나중에 공부 잘해도 판사 하지 말어, 그럼 아빤 너 안 봐." "차라리 시인되라.

시인이나 철학자. 그래서 이 사회 썩어빠진 거 전부 비판해 버려." ..그렇게 갯벌은 하얗게 소금기가 낀 벌판이

되어간다. "물막이한 게 뭐라고 태극기를 흔들어,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녀." 그러게요, 그러게 말입니다.


터전을 상실한 그분들이 다른 지역의 바다로 옮기면 되지 않나..하고 살짝 생각했지만, 내 생각에 답이라도 하듯

한 분이 말씀하신다. 마치 농부가 대지에 민감하듯, 어부는 바다에 민감한가 보다. 다른 지역은 영 다른 환경에

다른 기술과 도구가 필요한, 말하자면 다른 기술을 요하는 다른 '직종'인 셈이랄까. 당신들의 직장을 한순간

상실해버린 채 제대로 된 보상조차 못 받고 등떠밀리는 상황..안다고 생각했지만 몰랐었다


하긴, 나는 바다, 갯벌, 생태라고 하면 기껏 '태안' 밖에 생각해 내지 못하는 시크한 도시 남성인데다가, 물막이

공사가 끝났을 뿐 여전히 그곳에는 거대한 바다(랄까 호수랄까)가 버티고 있음을 상상도 못했던 상상력 빈곤한

녀석인 거다. 그 곳을 매립하기 위해서는 인근 반경 60킬로 내의 야산을 모두 깨야 한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어느

주민 한 분이 말했던 것처럼 (미국 뉴올리언주를 덮쳤던 카트리나 같은) 재해가 닥쳐서 차라리 저 물막이댐을

쓸어가 버리면 어떨까..


* 2009 희망다큐프로젝트는 1월 '워낭소리'를 시작으로, 2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3월 '할매꽃',

4월 '살기 위하여', 그리고 5월 '길', 6월 '3xFTM'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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