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리아 꼬(Preah Ko)는 씨엠립 동남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롤루오스 유적군 중 하나다. 롤루오스 유적군은

앙코르 왕조의 초기 유적, 대개 900년대를 전후한 유적지여서 훼손도 그만큼 많이 되었고, 또 기교도 전성기만

못해서 여행객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 듯 하다.

'쁘리아 꼬'란 말의 의미는 '신성한 소'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목걸이도 하고 커다란

코를 위풍당당하게 벌름거리는 듯한 제법 그럴듯한 소 조각. 뒤로 피어오르는 한 줄기 버섯같은 흰구름도

놓칠 수 없는 풍경이다.

쁘리아 꼬는 크메르 왕국의 시조부터 세 쌍의 왕/왕비 부부를 모셔 놓은 사원이라 한다. 그래서 탑도 총 여섯개

쌓아올린 거라고 하고, 탑마다 계단 아랫쪽에는 이런 특이한 모양의 기단을 받쳐놓았다. 부부의 금슬을 좋게

한다는 '월장석'이라 하여 달을 형상화한 돌조각이라 하는데, 저게 왜 달일까 한참 고민하게 만들었다. 왜

보통 '달'이라 하면 똥그랗거나 반달이거나 이지러졌거나 여하간 동그란 원의 형태로 상상하기 마련인데, 이건

무슨 말미잘처럼 너울너울 달빛이 퍼져나가는 것까지 형상으로 잡아낸 건가. 그때의 사람들은 달을 그리라하면

저렇게, 똥그란 원이 아닌 달빛 파장까지 반영된 그림을 그렸지 않을까. 아니면 어쩜 그때는 정말 저렇게 생긴

달이 이 '쁘리아 꼬' 사원을 비쳐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래 된 만큼 손대어 복원할 곳도 많은가 보다. 아예 탑 맨 아랫단부터 촌스럽도록 신선한 새 벽돌로 괴어나간

귀퉁이. 저렇게 '난 새 벽돌이요~'라고 티내는 것들이 대체 이 천년묵은 돌탑하고 융화될 수 있을까. 만약

진품 부분과 복원된 부분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일부러 그러는 거라면, 차라리 자연스레 무너진 부분에서

더이상의 붕괴를 막되 저렇게 어줍잖은 복원은 안 하는 게 차라리 보기 좋지 않을까 싶다.

사원 한 귀퉁이에서 길다란 목줄을 질질 끌며 유유자적 풀을 음미하고 계신 하얀 소님. 힌두교의 영향권 하에서

소는 파괴와 창조의 신인 시바의 현현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인도에서 소를 신성시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하는데, 여기 캄보디아는 이제 힌두교의 영향력에서 완전 벗어났다고 해야 하나. 식당에선 쉽게 소고기

음식을 찾아 볼 수 있고, 딱히 소를 존경하지도 않는다. (캄보디아는 소승불교가 95%를 차지하는 불교국가다.)

오랜 세월을 견딘 인간의 건축물들은 조금씩 '인공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어느순간 그냥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자연'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인간의 것으로 본다면 정말 남루해지고 퇴락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신비로운 느낌이 피어오르는 바윗덩이같은 거다. 저렇게 이삼천년 더 지탱해낸다면

이제야 기자의 피라밋처럼 그냥 '산'이 되고 '언덕'이 되어 버릴 거다.

지금도 벌써 드문드문 초록 이끼가 끼어 있는 바윗돌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바윗돌 깨뜨려 자갈돌, 자갈돌

깨뜨려 모래알, 모래알 깨뜨려, 뭐 그런 식으로 나가면서 차츰 닳아빠지고 없어져 버린다. 어떻게 보면 허무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떻게 보면 정작 신비로운 게 그런 가차없는 풍화, 무화의 과정 자체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건 왠 오동통한 참새냐, 했는데 가이드북 상으로는 '사자상'이랜다. 뭐 입도 쫙 찢어졌고 가슴에 불룩한 저게

탄탄한 근육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참새 몸뚱이에다가 괴물딱지 머리를 갖다 붙여 놓은 느낌은 피할

수가 없다. 아마 앙코르 문화의 초기니만치 조금은 서툴렀던 것일까.

이 다소 현대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건물은, 위에 구멍이 뽕뽕 나 있다는 것에 주목해 '화장터'로 여겨진다고

하지만 왠지 믿음이 안 간다. 아무런 기록도 없다고 하니 좀더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사실 경주의

'첨성대'를 두고도 수많은 설들이 오가고 있는 상황인 거다. 실용적 천문관측대였다느니, 하나의 상징에

불과했다느니, 커다란 기준표지였다느니, 주술적 의미가 담겨있다느니 등등. 그런 종류의 '여지'가 남아있어야

흥미로워진다. 현대의 시각으로 과거의 것을 대면하고 있을 때의 낯섦, 생경함 따위의 감정이 살아나는 거다.

쁘리아 꼬 옆에는 캄보디아의 유수한 사원들을 자그마한 사이즈로 줄여서 전시해둔 미니어쳐 전시관이랄까,

그런 게 있었다. 제대로 구색을 갖춘 건 아니고 그냥 마당 한복판에 앙코르왓이 있고 반띠아이 쓰레이던가

그런 유명한 사원들의 모형이 놓여 있었던 곳이다. 아이들은 그 옆에서 무심하게 자기들끼리의 놀이에 열중해

있었다. 어이 이봐, 나는 이런 거 보겠다고 한국에서부터 몇 시간씩 날아온 거란 말이다. 왠지 저런 걸 보면

억울해질 때가 있다. 피라밋 옆에서 나른하게 파리를 쫓거나 졸고 있다거나, 에펠탑엔 눈도 안 주고 시크하게

걸어가는 파리지앵들, 혹은 9/11 전 쌍둥이 빌딩 전망대를 오르는 여행객들에게 웃어주던 뉴요커들..그런 거다.




'나가'란 힌두교/불교에서 신성시되는 '뱀신'으로, 그 형태상 주로 난간에 많이 응용된다. 앙코르톰 내

문둥이왕 테라스, 코끼리 테라스 뒷켠에 있는 뗍 쁘라남(Tap Pranam) 뒷쪽 '쁘리아 빨리라이'에 있는 난간도

마찬가지.

몸의 몸통은 난간을 따라 쭉 이어져 있고, 뱀의 (무려) 일곱개나 되는 머리는 난간의 끝을 장식하고 있다.

이렇게 뱀 두마리가 인도하는 통로, 머리갯수로만 따지면 열네 머리가 인도하는 통로를 따르면 불교사원이

나타난다.

약간 이지러진 건축물, 그다지 임팩트 있는 건물은 아니었지만 문 위에 조각된 것들이 꽤나 선명해서

시선이 자연스레 옮겨졌다.

한쪽 조각면에 '우뚝' 서있는 부처, 그리고 밑에 옹송그리고 자세를 한껏 낮춘 '가련한' 중생들. 이런 식으로

신성성과 위엄을 강조한 조각은 사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조금 거부감이 든다. 쟤넨 무슨 벌레처럼.

가이드북에서 그럴듯하게 설명해놓았던 '쁘리아 빨리라이'의 북쪽 벽. 앙코르 유적에서 찾아 보기 쉽지 않은

조각이라고 한다. 부처가 성나서 폭주중인 코끼리 머리에 손을 얹어 진정시키는 장면이라고 하는데, 왠지

하얗게 녹아내린 건지 색칠이 된 건지 그런 바람에 좀 제대로 감상하기 쉽지 않다.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사원의 한쪽 벽면을 따라 이리저리 강렬하게 뻗어나간 뿌리가 사원의 벽돌들을

움켜쥐고 있는 장면이었다. 저건 나무라기보다는, 뭔가 기괴하고 이질적인 외계의 생명체같은 느낌.

어떻게 보면 하얗게 뼈다귀만 남아버린 거대한 생명체 같기도 하고, 빤딱빤딱 빛나며 비닐같은 비늘이 돋아나

있는 게 무슨 인공적인 조형물 같기도 하고, 허옇다 못해 펄빛나는 형광까지 감돌고 있다.

윗둥이 잘려져 나갔음에도 이런 포스를 내뿜을 수 있다니.

캄보디아에서 본 '나무'들은 한국에서 보아온 '나무'와는 다르다. 내가 알고 있던 '나무'를 그려라 했을 때

그릴 법한 아기자기하고 다소곳한 생명체가 아니라, 껍데기 안쪽에서 뭔가 에너지가 꿈틀거리며 나갈 구멍만

찾고 있는 느낌, 강렬하고 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아마도 이건 나무의 '발'이라 불러 마땅한 무엇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안 볼 때, 끄응~ 소리를 뱉으며 땅 속에

박아뒀던 발을 끄집어 쿠웅, 쿠웅 걷듯. 이런 이미지는 사실 '반지의 제왕'에서 구현됐댔다.

나무로 포위된 사원은, 가운뎃 부분만 위태로이 온전하다. 아직은. 알고 보니 저 위에 굴뚝처럼 뾰족하니

세워진 부분은 나중에 새로 쌓아올려진 부분이라 한다.

위태로이 세워진 탑 안에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 나도 저 안을 들락날락 거렸지만 막상 내가 들어갈

때는 못 느끼던 위태로움이 멀찍이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비로소 생겨난다.

돌아나오는 길, 뜨거운 태양 아래 나른히 늘어져 있던 개가 귀뒤를 긁는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아님 착해서

그런지 좀처럼 짖지도 않고 지들끼리 쫓고 쫓기며 시끄럽게 놀지도 않는 개들이다.

다시 돌아 나오며, 이번엔 뱀 두마리, 뱀머리 열네개가 수호하는 통로 옆길로 나란히 뱀과 함께 걸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