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뿐 아니라 인도 대륙 전체를 통틀어 4대 시바 사원 중의 하나로 꼽힌다는 카투만두 파슈파티나스 사원.

 

쉼없이 쌓이는 장작들, 어디선가 끊임없이 옮겨오는 고인들의 유해들이 피워올리는 연기와 독특한 냄새가 특징적이다.

 

그리고 한쪽 강변으로는 11개의 새하얀 탑이 있는데, 이건 힌두교 최고의 신 시바의 성기, 양물을 형상화한 상징과도 같은 것이라나.

 

그 거대하고도 수많은-무려 11개의-양물 아래에서 사람들은 초에 불을 붙인 채 유유자적한 강물에 띄워보내기도 하고.

 

그리고 그 강물은 또다시 화장터에서 쏟아져내리는 잔해들을 삼키고 계속 나아갈 테고.

 

사람들은 유해를 따라 움직이며 눈물을 흘리고 더러는 한국과도 같이 곡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장작 위에 안치되는 고인을 따르는 그 행렬 마지막에는 동전을 짤그랑짤그랑 흘리며 뒤따르는 사람까지.

 

 

파슈파티나스 사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왠지 굉장히 황폐하고 인적도 드물어, 조금 들어가보려다가 말았다.

 

강의 상류, 뭔가 낡고 잔뜩 허물어진 사원들이 이어져 있었지만 왠지 맥이 풀려서 의욕을 잃었다. 냄새 때문일지도.

 

그래도 이만큼 강을 거슬러 올라와 화장터와 사원 본진쪽을 바라보니 마치 삼도천 같기도 하다.

 

강변의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면에 기댄 허름한 오두막들, 이곳에 상주하는 힌두교 수행자들의 수행지라고 한다.

 

 

다시 내려온 화장터에서는 누군가의 화장이 막 시작되려는 참.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이렇게 트인 공간, 게다가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공간에서 화장을 치르는 것 자체가 개념이 다르다는 반증일지도.

 

사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낡은 기부함. 저렇게 양철 껍데기가 삭아들어버릴 정도면 대체 언제 만든 걸까.

 

 

연기가 하늘로, 강변으로 번져나가고 슬슬 빗겨내리는 햇살 속에 까만 실루엣으로 자리한 파슈파티나스사원.

 

화장터가 살짝 그늘 속에 숨겨지고 나니까 그지없이 평화로운 풍경이다. 사진엔, 냄새가 담기지 않는다.

 

 

파슈파티나스 사원의 가운데에 위치한 탑. 힌두교 수행자인 듯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나이스 뷰, 나이스 뷰'를 외친다. 탑 안에 들어와 전망을 볼 수 있게 해줄 테니 팁을 달라는 거 같아 싱긋 웃고 지나친다.

 

파슈파티나스 사원 내의 사원 건물들은 대부분 힌두교도들에게만 입장이 허락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그저 외관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낌이 전해진다.

 

역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카메라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는 사람들. 이들이 그 유명한 힌두교 수행자들,

 

사두라고 불리우는 이들이다. 사실 저렇게 치장하고 사람들 사이를 슬슬 지나다가 누군가가 카메라라도 쥘라 치면

 

기둥 뒤로 숨어버리거나 얼른 내빼버리고는 돈을 먼저 요구하는 사람들이니, 수행을 한다고 해야 할지는 의심스럽다.

 

내게도 여지없이 돈부터 요구하는 그들에게 지갑을 툭툭 쳐보이고는 카메라를 먼저 가리켰다. 나름 '선촬영 후보수'의 조건을

 

제시한 셈인데, 눈치빠른 이 수행자님들은 바로 알아들으시고 얌전히 포즈를 쥐어주었다. 일단 주도권을 쥐었으니 다양한

 

각도로 일단 쉼없이 셔터부터 누르고 본다. 그리고 나서 감사를 표하며 지폐를 한 장 꺼내들었더니 자기들은 두 명이라며

 

두 장의 지폐를 달라는 이 고명하신 수행자님들. 그냥 둘이 갈라쓰시라는 수신호를 하고는 꾸벅 인사를 해드렸다.

 

 

이 멋진 치장. 대체 저런 액세서리들은 어디서 다 조달해 오신 걸까. 그리고 온몸 가득 하얗게 분칠을 할 때는 무슨 화장품을 쓰는 걸까.

 

그리고 저 앙상한 다리. 아마도 이 분들은, 종교나 문화는 달랐지만 '신밧드의 모험'에 나왔던 그 할아버지와 동류일지도 모르겠다.

 

개울을 좀 건너게 해달라고는 무등을 탄 채 그대로 계속해서 신밧드를 말처럼 부리던 심술궂은 할아버지.

 

이 아저씨도 그랬다. 카메라를 보자마자 알아서 이리저리 포즈를 잡거나 웃거나 손을 흔들고는,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눈을 뗀

 

나를 보자마자 돈을 달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인다. 아저씨 찍은 거 아니라고, 저 탑을 찍은 거라고 (거짓)수신호.

 

네팔어인지 아니면 산스크리트어(범어)인지 모르겠지만 금이 쫙쫙 가고 가장자리가 깨어져 있는 종들.

 

 

허름한 건물, 아마도 수행자들을 위한 그나마 제대로 갖춰진 숙소인 듯한 공간에서 창살쳐진 창밖을 굽어보는 어느 수행자.

 

 

슬슬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의 구름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화장터의 불빛은 주홍빛으로 더욱 아름다워졌다.

 

몇 개의 사원 건물들이 군집해 있는 이곳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건 역시 파슈파티나스 사원. 금속제의 지붕이 황금빛으로 은은하다.

 

 

안 그래도 가장 센치멘털하고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시간대가 이렇게 뉘엿뉘엿 해가 지기 직전인데, 사방에서 오르는 연기와

 

싱숭생숭 착잡한 냄새까지. 문득 여기가 어디고 난 누구인가, 싶을 만큼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 버렸다.

 

 

떨어지는 해를 보는 걸까, 거뭇거뭇해지는 하늘을 보는 걸까. 아니면, 아직 작고 여린 새끼의 가쁜 심장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나라에 큰 일이 생겼을 때는 봉수대의 모든 봉화를 올려 전력을 다해 불을 피웠다고 했다. 그게 네 개던가 세 개던가.

 

여긴 예닐곱개의 연기가 한꺼번에 피어오르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라의 큰 일보다 더 큰 일, 누군가의 부재를 알리는.

 

 

한쪽에서는 사람이 사라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연극을 하듯 강렬한 조명 아래에서 살아 숨쉬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뭔가 다른 세상에 잠시 떨어졌다가 돌아온 것만 같은 파슈파티나스 사원에서의 오후와 저녁 시간을 보내고,

 

엷은 보랏빛으로 물들던 하늘이 삽시간에 새까매지고 나서야 덜컥 걱정스러워져서 깜깜한 길을 십분여 더듬어 공항으로 걷다.

 

갈 때와는 달리 훨씬 금방 도착했다는 느낌으로, 'Buddha's eye'가 내려보고 있는 국제공항 입구에 도착해서야 안도하다.

 

어디나 그렇지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올랐다 내려올 때도 그랬지만,

 

일단 한번 밟아보고 거리감을 익힌 길에 대해서는 훨씬 금방 도착하는 것만 같다. 훨씬 안정되고 안심한 채로.

 

 

그렇게, 꼬박 10일에 걸친 네팔 여행, 주로 안나푸르나 푼힐과 베이스캠프 트레킹에 할애했던 여행에 마침표.

 

 

 

 

8일간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치고 잠시 포카라를 둘러보곤 카투만두로 날아왔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은

 

대충 대여섯시간 남은 상황, 카투만두 트리부번 국제공항에서 걸어서 십오분 거리쯤에 있는 파슈파티나스 사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무려 1,000NPR(한국돈으로 약 10,000원)에 달하는 예기치 않은 고액 입장료에 놀랐으나 사원 입구에서부터 현란한 색깔로 압도당하다.

 

나무나 석물을 파서 만든 저 도장들을 위한 염료인 것 같은데, 색깔이 어쩌면 이렇게도 곱고 화려하게 발하는지.

 

사원 비스무레한 건물이 나타나기도 전 이런 류의 기념품샵들에서부터 삼매경에 빠져 한참을 지체하고 있었다.

 

네팔의 상징과도 같은 'Buddha's eye'. 그 문양을 박아넣은 주발. 막대기를 사용해 주발의 바깥을 따라 부비면 거대한 공명이 생긴다.

 

이윽고 나타난 사원 비스무레한 건물들의 실루엣. 켜켜이 중첩된 낡은 건물들, 그리고 그 앞에서 혼자서도 잘 노는 꼬맹이 하나.

 

 

 

그리고 예기치않은 연기와 매캐한 냄새의 기습. 대체 이게 뭐야, 할 틈도 없이 시각과 후각을 빼앗겼다.

 

뭔가 굉장히 불편하고 메스껍기까지 한 냄새, 뭐랄까 고기를 굽는 게 아니라 작정하고 태우는 듯한 그런 냄새와 연기였다.

 

강 건너편에서 불구덩이를 만들고는 뭔가 열심히 태우는 사람들, 거의 다 불길이 사그라들어 연기를 뿜어내는 것도 있었고

 

혹은 이제 막 살라붙은 불이 맹렬하게 장작들을 공략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불쾌하고 역한 속을 애써 다독이며 걷다 보니 커다란 중심 탑 앞까지. 온통 구름 속인 듯 연기가 자욱하다.

 

 

그리고 붉은 축복의 징표가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려 온몸을 시뻘겋게 피칠갑하듯 염색해버린 조각상들.

 

그리고 다리를 건너 좀더 가까이 다가간, 그 장작더미들과 불구덩이들의 정체는.

 

마치..나무로 짜인 침대와도 같은 장작 위에 놓인 그것, 한때 웃고 말하고 움직였을 그 몸뚱아리.

 

이곳 '성스러운 바그머띠 강'을 끼고 위치한 파슈파티나스 사원은, 네팔 최대의 힌두사원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보다도 더 유명한 건, 힌두교도들의 마지막을 위한 강변의 노천 화장터가 상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방금까지 누군가의 마지막을 위한 제의의 공간이었던 곳, 타고 남은 잿가루들이 강으로 쓸려내보내지고 나니

 

어디선가 비틀거리며 조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털썩, 소리가 들릴만큼 주저앉았다. 혹시, 주인이었던 건 아니겠지.

 

화장터 앞에서 망자의 마지막을 지키는 가족들, 그리고 관련된 종사자들. 마치 들것과도 같은 저 철판 위에다가

 

모셔와서는 정성껏 쌓아올린 나무 장작 위에 안치한다. 그리고 구석구석 고체 기름을 꼽고는 불을 댕긴다.

 

 

그게 끝. 아니, 사실 끝은 그보다 훨씬 이전일 거다. 눈을 감는 순간, 심장이 멈추고 뇌가 작동을 멈추는 순간.

 

그러고 나면 남는 쭉정이, 땅에 묻던 불로 사르던 수많은 원소로 돌아가는 건 같다. 다만 속도의 차이일 뿐.

 

 

그렇다고는 해도, 그 정제되지 않은 냄새와 연기. 가까이서 지켜보고 나니 더욱 숨이 답답해지는 것 같아

 

잠시 옆의 지붕이 그럴 듯한 사원으로 피신하여 숨을 돌렸다.

 

 

사실 이곳 파슈파티나스 사원은 힌두교 최고의 신인 시바를 모신 사원 중에서도 손꼽히는, 심지어 인도까지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사원 중의 하나라고 한다. 아마도 그렇기에 교인들이 이곳에서 최후를 맞고 싶은지도 모른다.

 

아까 열심히 연기와 냄새와 싸우며 걸어왔던 강변, 문득 다시 보니 지금은 원숭이떼가 온통 길을 점령해 버렸다.

 

이 곳에 사는 원숭이떼들은 더러 먹거리를 들고 있는 사람을 습격하기도 할 만큼 악명이 높다고 한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조금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사원의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참, 장작을 쌓는 모습을

 

처음부터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방망이 깎는 노인'의 자세랄까, 편안하게 누울 수 있도록 짝을 맞추고 높이를 조정하고.

 

그렇게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는 불길이 일 수 있도록 쌓은 장작더미.

 

위에 고인을 모시고 짚으로 몸과 얼굴을 잘 가리고 나면, 삐쭉 나온 두 발이 남긴 하지만 차라리 그건 덜 안타까운 장면.

 

옆엣 공간에서는 굉장히 작고 조그마한 짚덤불이 놓인 채 불이 올랐더랬다.

 

그리고 이리저리 불을 뒤채며 잔해가 남지 않도록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는 일꾼. 결국 재만 남고 나면

 

삽같은 것으로 긁어 강으로 남은 것들을 뿌려버린다. 아이들이 수영하고 뛰어노는 바로 그 강변으로.

 

 

그렇게 강변을 따라 늘어선 대여섯 개의 화장터. 마침표 이후의 잔해가 또 하나, 안식을 찾아들었다.

 

그리고, 이런 장면들을 하루에 수십번씩 벌써 수백수천날을 보았을 어미 원숭이와 그녀의 조그마한 새끼 원숭이.

 

 

 

 

해발 4,130미터. 이 표지를 보고 나자 생각보다 훨씬 감개무량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를 오려고 여태 걸었구나, 싶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높이까지 걸어올라와 보았구나, 싶기도 하고. 그냥, 질리도록 걷고 싶었는데 그야말로 5일간 징하게 걸어서 도착한 곳.

 

 

그리고 짙은 안개속에서 헤엄치듯 조금 더 걸어가니 비로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나타났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예기치 않게도 산악인 고 박영석의 기념패. 2011년에 안나푸르나 등정을 왔다가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크고 황량하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시즌이 아니라 더욱 사람이 적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앞서 걷던 미국 친구 하나는 벌써 다이닝룸에 누워서는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있길래, 슬쩍 도촬. 훌륭한 풍경이다.

 

그리고 한쪽에는 새로 롯지를 짓고 있는 공사판이 있고, 그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위한 텐트가 짙은 구름 속에 숨어있다.

 

새로 지어지는 롯지에 들어갈 침대들. 그러고 보니 트레킹 중에 내가 누웠던 침대는 모두 저렇게 생겼던 거 같다.

 

멀찍이 흐릿하게 보이는 탑 같은 형체가 삐죽 솟았길래 슬쩍 가봤다.

 

가는 길에는 온통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진과 글귀가 가득했고.

 

 

탑 역시도 티벳 불교식의 깃발을 온통 휘감고서는 안나푸르나를 바라보고 향했던 사람들을 품었다.

 

 

 

비교적 최근에 늘어뜨린 것처럼 보이는 선명한 빛깔의 깃발은 '부처의 눈' 그림을 새긴 채 산아래를 굽어보는 중.

 

4,130미터 고도의 이곳에서도 공사판은 별다를 거 없다. 물론 건축용 부자재들은 하나씩 전부 사람이 이고지고 날라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면 있겠지만, 그렇게 날라온 문짝과 유리와 나무판넬들을 가지고 건물을 세우는 건 기술자들의 몫.

 

이렇게 촘촘한 발받침을 갖고 있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도 할 테고. 저렇게 간격이 좁으면 오히려 불편하지 않을까, 괜한 걱정.

 

여기까지 무사히 트레커들을 인도해서 끌고 온 가이드와 포터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이야기에 열중이다.

 

모두들 추위를 막기위해 오리털 파카에 네팔 전통의 양털 모자를 썼다.

 

그리고 이미 이 곳 다이닝룸에 자리를 잡은 한 트레커는 침낭 안에 들어간 채 꽁꽁 옷을 싸매고 모자까지 쓴 채 독서삼매경.

 

아침마다 향을 새롭게 갈아 피울 텐데, 저렇게 나무벽에 찰싹 붙여서 태우면 위험하지 않으려나 걱정스럽기도 하고.

 

애초 제대로 씻을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도 고양이세수라도 하려고 화장실을 찾았더니 주인 아저씨가 양동이를 내준다.

 

여기는 물도 귀하다면서 저 양동이에 달린 수도꼭지를 틀고 세수도 하고 발도 닦고 하라는 것. 대충 씻고 치웠다.

 

 

그리고, 짙은 안개를 뚫고 불현듯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두둥실, 구름 사이에서 삐쭉 고객만 내밀었다.

 

근데 이토록 가까이 다가섰을 줄이야. 거의 코앞이잖아 싶을 정도로 눈앞을 압도하는 위용과 그 디테일.

 

이내 짙은 구름 속으로 다시 숨어버렸고, 한참을 바라보아도 좀체 다시 나타날 기미가 없더니,

 

해가 거의 떨어지기 직전 다시 한번 슬쩍 안부인사를 건넸다. 굳 나잇. 내일 새벽에 봅시다.

 

 

해발 2,874미터의 마을 고레파니. 백두산이 2,744미터였던가 그러니까 이미 백두산보다 높은 지역으로 올라온 셈이다.

 

제법 기온도 서늘해졌다 싶더니, 해가 떨어지고 나니 삽시간에 추위가 몰려온다.

 

아직은 해가 떨어지기 전, 아침 7시반부터 3시까지 근 7시간여 걷고 난 후에 숙소에 들어오고 나서 마을 구경에 나섰다.

 

머물게 된 숙소 근처에서 발견한 그럴듯하게 휘감긴 염소뿔의 위용. 슬쩍 집어오고 싶을 정도로 위풍당당하더라는.

 

 

하루의 트레킹을 끝내고 숙소로 오면 일단 맥주부터 시원하게 한 캔 혹은 한 병씩을 마시는 게 그렇게도 맛났다.

 

네팔의 국산맥주인 에베레스트 맥주는 좀 싱거운 느낌이었고, 원래 유럽맥주지만 네팔에 공장이 있다는 투벅 맥주는 훌륭한 편.

 

그 외에 위스키나 럼, 아니면 옥수수나 곡물을 증류해서 만든 네팔 전통주 락시도 있는데 락시는 약한 안동소주의 느낌이랄까.

 

 

마치 서울의 여느 달동네나 산동네처럼 야트막한 집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이 입체적인 마을에서 그나마 너른 편인 광장 한켠,

 

아저씨들이 모여서 시끌벅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이런 게 바로 그 유명한 '투전판'이로구나. 주사위가 들어있는 검정 사발을 흔들고 뒤집는 아저씨들의

 

손놀림이 유쾌하다. 타지에서 온 트레커 따위는 거의 신경쓰지도 않고 즐겁게 놀고 계셨다.

 

 

어느 틈에 그 조그마한 광장을 점령해버린 당나귀 동무들. 등짐도 안 올리고 어딜 그렇게 왁자지껄하게 몰려다니는 거요.

 

좀더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흥미로운 표식. 여긴 초등학교에서 뭔가 마법진 연성하는 걸 가르치는 건가 싶은 저 별모양이라니.

 

사실 네팔에 대한 흥미는 어렸을 적 '3X3 EYES'로부터 유래했는지도 모른다. 시바와 파르바티, 삼지안이 등장하는 그 초현실적인 만화.

 

 

그렇지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정작 신체 건강하고 정신도 건전한 네팔의 남녀 젊은이들이 무려 성대결을 펼치는 중이었다.

 

그들이 토스하고 스파이크하는 소리가 산중에 메아리치는 느낌, 대결을 지켜보는 어느 어머니의 표정이 따사롭다.

 

이런 빈티지스러운 학교 간판이라니.

 

 

 

 

마을 입구에서 아까 지나쳤던 사당, 제법 모질게 부는 바람에 사당 입구를 수놓은 붉은 리본들이 마구 휘날린다.

 

 

숙소로 다시 돌아와 고레파니 마을을 내려다보니, 온통 파란 지붕들이 시루떡처럼 층층이다.

 

 

숙소 안으로 들어와 그새 차갑게 굳은 몸을 녹이려 밀크티 찌야를 마시며 이번엔 숙소 안 구경. 여기는 식당마다 휴지를 저렇게

 

한장한장, 삐뚤빼뚤 포개넣으며 탑을 쌓아놨더라. 그게 꼭 활짝 피어오르는 꽃송이 같더라.

 

그리고 밤새 추위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난로, 뜨거운 물로 샤워를 모처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요, 땀에 흠뻑 젖은 옷들을

 

슬쩍 빨아볼 엄두를 내게 해준 것도 이 난로 덕분이었다.

 

그리고 저녁. 아무리 롯지마다 다른 레시피의 달밧을 내어준다지만 뭔가 변화를 주고 싶어서 주문한 베지터블 카레.

 

 

 

바탄티에서 점심을 먹고 고레파니까지 가는 것이 2일차 오후의 목표. 고레파니는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 중 이름난 전망대인

 

푼힐 전망대와 1시간 이내로 떨어져있는 곳이어서, 내일 아침 해뜨는 것을 푼힐에서 보려면 해발 2,874미터의 고레파니까진 가야한다.

 

으레 그렇듯 점심 메뉴를 고르고 나면 적어도 삼십여분, 노닥거리는 시간이 생기기 마련이어서 롯지 주변을 어슬렁대다가

 

새끼 고양이를 둔 고양이 부부를 발견했다. (주문후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최소 삼십분, 길면 한시간까지도 각오해야 한다는)

 

어미인지 애비인지, 제 부모 꼬리가 들썩일 때마다 정신못차리고 덤벼드는 꼬꼬마 새끼 고양이.

 

여긴 그래도 제법 사방에 꽃도 피어있고 나름 정원 비스무레한 느낌을 주는 앞마당이 아늑한 편이다.

 

주인 아저씨가 돌을 일정하게 깔아둔 포석 사이의 잡풀을 뜯고 있는데 고양이 녀석은 안겨들고, 강아지는 뜯긴 풀을 씹고 있다.

 

그야말로 개풀 뜯어먹을 만큼 평화롭다 못해 나른해지는 정경.

 

메뉴는 달밧. 달밧을 시키면 저 콩으로 된 스프인 '달'과 밑반찬들, 그리고 풀풀 날리는 안남미쌀밥을 무제한 리필 요청할 수가 있다.

 

 

 

주인 아저씨가 다른 가이드들과 한담을 나누는 사이 이번엔 주인 아주머니가 풀뜯기에 나섰다. 몇분 지켜보지 못하고 아주머니한테

 

엉겨붙어 놀아달라고 애교부리는 강아지 녀석. 아주머니는 반갑게 덥썩 안아주며 요래조래 놀아주었지만.

 

 

너무 신난 나머지 정신못차리고 엉겨붙던 녀석은 급기야 아주머니한테 한대 씨게 얻어맞을 뻔 하고서는

 

잔뜩 주눅이 들어 저쪽 그늘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양이 가족들의 단란한 한때. 새끼고양이의 재롱에 부모 모두 차마 눈도 못 뜨고 있다.

 

 

그러다 이내, 이렇게 두 녀석이 휘영청 구부러진 몸뚱이를 찰싹 붙이고는 하트 모양으로, 게다가 제 새끼는 척, 팔로 감싸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건 오래 걸려도 먹고 잠시 쉬다가 출발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통틀어 한시간 내외정도.

 

뭐, 어차피 스케줄이나 움직이는 시간 같은 거야 전적으로 내가 알아서 하는 거니깐 내 맘대로 하면 되지만, 그래도 움직여야 할 때.

 

노랑꽃들이 흐벅지게 길 양옆에 피어났다. 원래는 봄철에 와야 산 전체가 네팔의 국화인 붉은 랄리그라스가 지천에 피어 더 이쁘단다.

 

잠시 쉬어가는 길, 내 짐과 (양 팔을 이어 두발로 기능케해 준) 두 개의 스틱, 그리고 가이드이자 동반자인 친구의 짐을 내렸다.

 

 

우연히 마주친 다른 일행의 포터. 포터는 정해진 루트를 따라 짐을 옮겨주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짐이 무겁다.

 

 

얼마동안이고 힘들고 지칠 때까지 걷다가, 잠시 길가에 적당한 돌들을 골라 그 위에 털썩. 이왕임 근처에 물가라도 있음 더욱 좋고.

 

 

그리고 고레파니 도착. 꽤나 큰 마을이어서, 마을 입구에는 이런 환영의 표지물도 다 서 있다.

 

 

 

마을을 가로질러 머물 롯지를 찾는 중에 발견한 히말라야 마오이스트들의 표지와 구호. 이제 3천미터에 가까운 고도에 걸맞게

 

슬쩍 서늘한 느낌이 드는 터에, 이 게릴라 집단이 여전히 횡행하는 지역에 있다는 실감에 더욱 소슬해졌다.

 

그랬다가, 요 염소 녀석이 꼬맹이들을 무시하고 사방으로 내달리려 하는 모양새에 이내 웃음이 터져버리고.

 

줄을 꼬옥 움켜쥐고 끌려가지 않으려는 다홍빛 전통의상의 꼬맹이 입매에 서린 긴장과 결의가 대단해 보인다.

 

 

고레파니의 체크포인트. 트레커 카드와 TIMS 카드의 소지 여부를 확인하고, 지금 현재의 이곳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무사히 도착했음을 기록으로 남기는 기능을 하는 곳이다. 만의 하나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한 기록인 셈이다.

 

그리고, 이 고산지대 마을 가운데 조그마한 광장 한가운데서 눈에 띄었던 '부처의 눈'이 그려진 조그마한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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