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등산코스는 대충 다섯 개, 보통 성판악으로 올라가 백록담을 보고 관음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많이 찾는다지만,

 

영실코스를 통해 윗세오름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코스도 짧고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탓에 무리없는 트레킹이 가능하다.

 

 

백록담까지 가볼 수는 없다지만 뭐 꼭 산행이라는 게 꼭대기를 짚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날씨가 좀 흐린 탓에 백록담을

 

제대로 볼 수도 없을 바에야 안 가본 길을 가보자던 생각. 이미 예전에 활짝 개인 파란 하늘 아래 백록담을 보기도 했고.

 

 

영실휴게소에서 시작해서 얼마 걷지 않아 나타난 병풍바위, 근 1.5km 지점이던가.

 

길도 성판악과 비교해서는 나무 데크로 정비도 잘 되어 있는 편이고 경사도 완만한 편 같다.

 

 

..그렇지만 역시나 한라산은 얕볼 수 없는 산. 조금씩 경사가 가팔라진다 싶으면서 식생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게 느껴진다.

 

슬쩍 뒤돌아보면 굽이굽이, 나무데크가 끊길 듯 안 끊기며 저 멀리서부터 이어져 오는 모습이 내려보이고.

 

 

그러다 어느 순간 삽시간에 주위를 삼켜버린 구름..이라 해야 하나 안개라 해야 하나.

 

 

관음사 코스에서 참 멋졌던 죽은 주목나무의 잔해들, 여기도 조금 그런 분위기가 풍긴다.

 

 

이름 모를 보랏빛 꽃들이 활짝 피어난 경사면, 그리고 탐방길 우측으론 그보다 급한 경사의 산비탈.

 

 

 

 

올라갈수록 점점 짙어지는 안개. 공기까지 촉촉하게 젖어드는 느낌.

 

 

문득 경사가 끝났나 싶더니, 마치 마트 싱싱코너에서 물안개를 흠뻑 맞은 채소들처럼 싱싱하게 초록초록한 나무들.

 

 

멀찍이 백록담인지 뭔지 한라산 정상이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숲을 벗어나서는 야트막한 풀들이 가득한 초지다. 걷기도 좋고 기분도 딱 좋은 그런 길.

 

 

아까까지 시커멓게 먹장구름을 드리웠던 하늘이 조금씩 파란색을 머금기 시작하기도 하고.

 

 

마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막판에 잔뜩 업된 채 걸었던, 그런 완만하고도 평화로운 분위기의 산길.

 

 

그렇게 해발 1,700미터 고지의 한라산 윗세오름 도착. 여기에서 백록담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어서,

 

왔던 길로 도로 내려가거나 아니면 옆으로 틀어 어리목 코스로 내려가거나 해야 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많이 몰려들어 짖어대던 까마귀떼들. 컵라면과 음료를 현.금.으.로.만. 판매하는

 

매점 위에 앉아서 울긋불긋한 등산객들을 구경하느라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산굼부리. 벌써 두번째 찾는 이곳은 분화구만 유독 뚜렷한 지형과 바람소리를 그려내는 억새밭이 만들어내는

호젓하고도 기묘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곳이다. 저번에 왔었을 때는 억새가 온통 누렇게 물든 계절이었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이제나 그제나 제주도의 변덕스런 날씨 덕에 꾸물거리는 하늘은 변함없었던 거다.

제주도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주차장이 어디든 넓찍하니 잘 마련되어 있단 것. 게다가 주차요금을 별도로

받지도 않는다. 산굼부리 주차장은 현무암으로 잘 조성된 너른 마당인데다가, 주차장에서 산굼부리

매표소로 가는 길도 운치있게 잘 정비되어 있어서 늘 기억에 남는다.

산굼부리 들어서는 입구. 매표소를 지나 걸어들어가면 현무암으로 이쁘게 지어올려진 관리사무소가 덩굴을

온통 칭칭 휘감은 채 버티고 있고, 이끼가 보들보들하게 돋아난 나무들에도 무슨 목걸이처럼 덩굴이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 깔린 붉은 화산석이 비를 맞아 더욱 선연한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렇게 구멍이 뚫린 화산석은 어떻게 생긴 걸까. 옆의 설명을 참고하니 어찌 생긴 건지는 알겠지만 그

신비로움이 덜어지진 않는다. 화산이 폭발할 때 흘러내린 용암이 나무를 감싼채 굳어버렸단 거다. 그렇게

용암은 단단하게 굳어가고, 나무는 그대로 까맣게 숯이 되도록 타버렸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흔적도 없이

사그라져 버리곤 저렇게 빈 구멍의 흔적만 남기게 된다는. 제주도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용암수형석.


산굼부리에 오르는 사람들은 이쯤에서 여지없이 한번 주춤하는 거 같다. 길이 무려 세갈래나 되는 거다.

제법 경사진 계단으로 오르는 첫째길, 좀더 완만한 두번째 길, 그리고 아예 평탄하게 이어지는 셋째길까지.

첫째둘째길은 결국 산굼부리 정상으로 오르는 같은 길, 셋째길은 억새밭을 좀더 에둘러가는 길, 결국 같다. 


산굼부리, '굼부리'는 화산의 분화구를 이르는 제주도말이라고 한다. 한라산이 불쑥 솟아오르던 즈음에 함께

생겨났다는 산굼부리가 제주도의 수많은 기생화산, 그들의 분화구 중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이유는 여기

분화구가 솟아난 산세에 비해 유독 커다랗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높이 치솟지도 않았는데 분화구의

크기가 크다 보니, 평지 한복판이 움푹 파인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올라가는 길도 이렇게 완만하고,

곳곳에 제주도식으로 돌담을 두른 무덤들도 자리를 잡았다.
 

금세 도착한 산굼부리의 분화구 둘레. '추락주의'라는 경고문구가 보여주듯 아래쪽으로는 깍아지른 듯한

가파른 사면이 분화구 아래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깊고 큰 화구가 남을 수 있었던 건 여기 분화구가

폭발할 때 주로 가스만 새어나오고 다른 용암이라거나 화산재들이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분에 분화구 주변이 높아지지 않은 거기도 하고, 분화구가 그대로 움푹 패인 채 남아있는 거고.

알고 보니 이 분화구, 백록담보다도 크고 깊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여기도 백록담처럼 물이 고여있었다면 좀더 멋지지 않았을까, 싶도록 분화구 아랫쪽은 온통 초록빛일색이다.

식물의 생태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분화구 사면에 따라 받는 일사량과 일조시간, 기온에 따라 다른 식생이

살고 있다며 온대, 난대성 식물과 각종 희귀한 식물이 산다는 사실에 좀더 많이 감탄했겠지만,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저 헤에, 그런갑다 할 뿐이다. (사실 아래까지 내려가서 직접 확인할 수도 없거니와)

산굼부리 분화구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다 보면, 그렇게 높진 않다지만 나름의 언덕 위에서 산굼부리 주변

풍경을 둘러볼 수 있어서 좋다. 시선이 산굼부리 안쪽, 바깥쪽으로 번갈아 움직이는 거다. 깊은 구멍 속에

초록빛이 연못처럼 고여있는 산굼부리 안쪽 사면, 그리고 억새밭이 넓게 펼쳐진 산굼부리 바깥 사면과

그너머 듬성듬성한 다른 기생화산들.

일단은 다시 원점, 세갈래길이 갈라지는 지점까지 돌아내려와서 다른 두길을 걷기로 했다.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기념품점 현무암 지붕이 온통 말라죽은 이끼 색으로 변해 있었는데 저게 정말 이끼가 덕지덕지

붙었다가 죽어서 남은 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색깔의 식물이 덮인 건지는 모르겠다.

두번째길로 돌아서 다시 올라가는 길은 온통 사람들의 소원이 뾰족뾰족 봉우리들을 만들고 있었다. 붉고 검은

화산석들이 제각기의 까칠한 모양새를 감내하며 어떻게든 바닥을 받치고 위로 서고, 또다시 바닥이 되어

중심을 잡고 윗자리를 마련하고.

둘째길로 들어서서 세번째길로 돌아나오는 길, 온통 억새밭이 장관이었다. 바람소리가 문득 까먹었다는 듯이

윙윙 울릴 즈음이면 억새들은 제들끼리 사각거리며 바람의 잔영을 새기기에 바빴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이 점점 다가오거나 멀어지고 있다는 게 억새밭의 움직임으로 가늠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어서,

질리지도 않고 계속 바라보았다. 


세번째 길까지. 산굼부리의 길들을 샅샅이 걸어보고 내려가는 길, 여태 꾸물거리며 겨우겨우 참는다 싶더니

그 길에서야 울음이 터졌다. 굵은 빗방울이 시원하게 내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저 신민아를 닮은 아가씨가

입고 있는 우의와 쓰고 있는 우산을 사러 매점으로 달려야 했다.




한라산 백록담은 생각보다 작았다. 물이 조금 마른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원래 저 사이즈만큼

물이 고여있다고 했다. 구름이 위로 지나면 순간 뿌옇게 변하기도 할 정도로 맑은 물이었는데

제법 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데도 백록담 밑의 바닥이나 수면 위의 물결이 일렁이는 것까지

전부 보인다는 게 신기했다는. 단순히 연못이 크고 작고를 떠나서 저 시퍼렇고 맑은 물빛과

주변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맞물려서 역시 백록담, 이란 감탄을 하고 말았다.



제주도를 수차례 여행도 하고 출장도 다녀왔지만, 생각해보면 한라산은 늘 '아웃오브안중'이었던 듯 하다.

기껏해야 섬 한가운데 딱 박혀서는 겨울철에 갑작스런 폭설을 쏟아붓거나 변덕스런 날씨를 만드는 주범이라고나

생각했을까, 제주도의 찾아가볼 곳 중에서도 늘 빠졌던 한라산은 그냥 배경화면처럼 거기 있었던 거다.


이번에 그 배경화면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볼 기회가 있었다. 성판악에서 백록담으로 올라 관음사로

내려오는 구간, 오르는데 네 시간이 채 안 걸렸고 내리는데 다섯시간이 채 안 걸렸으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런 구간이겠으나, 아무에게나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는 백록담이 구름을 훑어내고 활짝 열렸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어서. BGM은 '헉헉헉' 쯤 숨이 턱에 닿는 소리라고 치고 사진만으로 포스팅.

백록담까지 오르내리는 길이나, 정상 아래로 깔린 운해나, 백록담의 미묘한 색감, 그리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들의 기이한 형상들까지. 아,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오르고 싶어졌다는 정도는 말해둬야겠다.


동생과 내가 각자 직장을 다니다 보니 부모님이랑 3박4일 가족여행을 맞춰 떠나기도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부모님과 동생은
3박4일, 난 마지막 하루 일정을 빠지고 2박3일만 함께 했던

오랜만의 가족여행이었다. 렌트카를 빌려서 돌아다니는 기동성있는 여행일정으로 참고삼아

제주시와 동부를 아우른 2박3일, 그리고 제주 서남부를 포함한 3박4일 스케줄을 기록.



첫째날. 한라산 등반


06:50 김포 출발

08:00 제주 도착 - 렌트카 픽업, 점심거리 구매

08:30 제주공항 출발

09:20 성판악 도착, 등산 시작

13:00 백록담 도착

13:30 백록담 출발
18:00 관음사 도착

19:00 숙소(제주시) 도착, 저녁식사

21:00 해안도로 까페촌



둘째날. 제주 동북부


08:30 숙소 출발

09:30 다희연 도착

12:00 산굼부리 도착


13:30 점심 (말고기)


14:30 제주미니랜드 도착


16:00 사려니숲길 도착 (불어난 계곡으로 인해 출입금지)

16:30 김녕미로공원 도착


18:30 삼양검은모래해변 도착


20:00 저녁 (붉은못허브팜 빅버거) take-out


20:30 숙소(제주시) 도착



셋째날. 제주 동부


07:30 숙소 출발

08:40 성산포항 도착

09:00 우도행  카페리 출발(15분 소요)

09:15 우도 - 우도봉, 우도등대공원, 서빈백사, 하고수동해수욕장, 비양도, 동안경굴


11:30 성산포행 카페리 출발(15분 소요)

11:45 성산포항 도착

13:00 제주시 진입, 점심 (전복뚝배기)

14:00 제주민속5일장 (2/7일 개장)


15:30 제주공항 도착




(남은 일정)


쇠소깍

쉬리의 언덕

내국인면세점(10-21시 운영)

숙소(모슬포) 도착, 저녁식사


* 넷째날. 제주 서남부

제주조각공원

화순해수욕장, 용머리해안

초콜렛박물관

생각하는 정원

유리의성

금능해수욕장-애월항 해안도로 드라이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