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인에 토토로샵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체 얼마나 큰 건지, 도쿄의 지브리 뮤지엄에 비해서 뭐 얼마나

 

캐릭터상품들을 갖다 놨겠어,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손길로 민둥머리가 되어 버린 토토로부터.

 

네코버스와 거대 토토로가 떡하니 가게 앞을 지키고 섰다. 게다가 저 빈티지스런 버스 정류장 표시는 애니에서

 

나왔던 바로 그 신기한 버스정류장이 여기라고 일러주는 것만 같다. 이미 심장은 두근두근.

 

 

건반이 후줄근해진 낡은 풍금 위에도 커다란 토토로가 한 마리. 아..나도 토토로 인형 갖고 싶다.

 

게다가 이 센스 돋는 커튼은 또 어쩔 거냐고. 네코버스의 총총한 발길 따라 커튼의 실루엣이 늘어진다.

 

가게 안은 역시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온통 토토로와 지브리 애니메이션 캐릭터상품들..!!

 

이런 커튼이라고 해야 하나, 토토로가 그려진 벽 장식도 갖고 싶고.

 

낡은 티비 속에서는 계속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이 흘러나오고, 사방에는 마녀배달부 키키의 고양이나

 

토토로가 가득가득. 이들 만으로도 이 공간은 지브리의 세례를 담뿍 받았다는 느낌이다.

 

코엑스에 있는 샵에서 몇번이나 살까말까 망설였던 이 분수들. 토토로와 네코버스가 물장구를 치며 졸졸졸 분수대를

 

따라 노니는 컨셉인데..다시금 지름신 강림. 살까, 살까, 살까?

 

 

집에 있는 토토로를 보고 가족들이 잠시 입씨름이 붙었었다. 물론 가족들은 토토로를 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는데,

 

토토로가 대체 뭐야. 고양이지 뭐야. 고양이 아니라는데? 그럼 개냐. 뭐 이런 문답들.

 

토토로는 토토로라고, 숲의 정령 토토로라고 몇 번 말해줘야 하냔 말이다.

 

그리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왔던 마녀와 '붉은 돼지'의 포르코.가 그려진 수건도.

 

한참 찍는데 어느결에 점원이 주저주저하며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말한다. 노 포토.

 

얼른 하나를 사들고 가게를 나섰다. 사실 맘만 먹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구경할 수 있지만 그럴 수야 없으니.

 

그리고 또 하나, 유후인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숯의 정령'들을 취급하던 상점을 빼놓을 수 없다.

 

 

아아..'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을 도와줬던 그 녀석들 아닌가. 게다가 '이웃집 토토로'에서 새로 이사온 집에

 

꾸물꾸물 숨어살다가 메이에게 걸리기도 하고 스물스물 밤을 틈타 도망가던 그 녀석들 아닌가.

 

 

검댕이 귀신이라고도 불렸던 거 같고, 숯의 정령이라 불렸던 거 같기도 하고, 여하간 그런 녀석들이 꼬물꼬물대는 샵.

 

 

이 녀석들뿐 아니라 숯으로 만든 온갖 것들을 이쁜 상품으로 만들어 팔고 있는 가게였다. 한번 꼭 들러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아, 그리고 결국 지브리샵에서 하나 샀던 건 바로바로 만년 캘린더!!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는 여전했다. 미세한 감정의 떨림, 격랑을 그대로 애니메이션 안의 풍경으로 떠올리는

그 섬세하고도 정교한 이미지라거나, 두말할 것 없는 음악, 무엇보다 문득 말려들어간 위기상황에서 흔들리는

세계를 부여잡고 어느새 훌쩍 커버리는 아이들의 대견하고도 안쓰러운, 그리고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 역시.


특히, 고작해야 고등학생인 그녀가 어머니에게, 좋아하는 선배가 생겼는데 알고 보니 그 선배의 아빠가

우리 아빠랑 같은 사람이에요? 라고 묻고는 그 대답에 끝내 허물어지며 눈물 터뜨리는 장면의 임팩트란.

불쑥 낯설어진 아빠와, 선배와, 그녀 자신의 세계를 어쩌지 못하고 그저 버텨낼 뿐이다가 무너지는 순간.


영화는 시간이 흘렀다 하여 변해서는 안 되는 것들, 간직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침마다

깃발을 끌어올리는 그녀의 습관이라거나, 아빠엄마에 대한 신뢰 혹은 사랑이라거나, 첫사랑 선배에 어쩔 수없이

끌리는 마음이라거나, 그리고 '도시 미화'가 진행중인 와중에 동아리 건물을 지키겠다는 학생들의 의지같은.


아쉽게도 중간중간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다. 그녀의 큰 갈등 요인이 되는 '출생의 비밀' 비스무레한 상황은

한국적인 상황에선 너무도 자주 써먹어버린 대표적 '막장 전개'의 소재인 거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한국의

막장 드라마의 뻔한 레퍼토리를 사전에 숙지하진 않았을 테니 그쪽을 탓하긴 어려울 거 같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지브리 스튜디오의 주인공들이 그렇듯 그녀와 그 역시 영화가 끝날 때쯤엔 잔뜩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그들의 앞길이 모쪼록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는 거다. 처음 등장할 때는 그저

바르고 착한 아이일 뿐이라 생각했던 그들이, 조금씩 눈매가 깊어지고 인생의 비밀이랄까 가치를 고민하며

진정으로 어른스러워지는 걸 고작 100분도 안 되는 영화 한 편으로 감지할 수 있다는 건 축복같은 일이다.




아오모리현이 품고 있는 세계 최대의 너도밤나무 원생림, 시라카미 산지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일반에 개방되어 있지 않은 곳에는 추정수령이
 
400년에 이른다는 아름드리 너도밤나무 'Mother Tree'의 압도적인 커다란 줄기가 사방으로 뻗친 모습이

장관이라고 하는데, 그 방대한 면적과 귀중한 자연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일본에서도 가장 처음으로

세계유산 등록이 되었다고.

 

시라카미 산지에서 일반에 개방된 부분은 정말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어마어마한 숲이 뿜어내는

좋은 공기와 피톤치드 덕분일까, 근처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기분도 좋아지고 공기맛도 다른

거 같다. 우선 비지터 센터에 들어가서 시라카미 산지의 식생에 대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다른 것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3살짜리 너도밤나무의 키가 고작 저만큼이란 사실. 3년이나 묵었는데 수첩만도 못하다니.

20살쯤 되어야 이제 사람이랑 눈높이를 맞출만한 크기로 자라난다고 한다. 다른 동물들은 어렸을 때 쑤욱

자라나서는 그대로 쭉 멈춰있기 마련인데, 너도밤나무같은 저런 나무들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그렇지만

꾸준히 자라나서 수첩만한 높이에서 어른 사람만한 높이로, 그리고 몇층짜리 건물만한 높이로 자라난다는 게

실감이 나는 전시였다. 그리고 대형 스크린으로 이 곳에 사는 식물과 동물들을 만나볼 수 있기도 했고.

그리고 드디어 시라카미 산지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월령공주'를 만들 때 자주 찾아와 장면을 참고하는 등

일본의 여러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배경이자 영감을 준 장소로 유명하다고 한다. 벌써 들어가는 길에 보이는

산세라거나 숲의 울창한 정도가 차원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비지터 센터에서 받아온 한글 버전 지도 겸 안내팜플렛. 좀 어색한 번역투가 거슬리긴 했는데, 특히나

4번, '화장실은 적절히!'라는 항목이 특히 웃겼다. 트레킹 코스 중에 화장실이 별도로 없으니 미리 해결하고

입산하라는 이야기일 텐데, '할수 없을 경우에는 구멍을 파서 묻어 달라'는 아주 세심한 지침까지.

정말, 하야오의 월령공주에서 나왓던 커다란 늑대들이 사방에서 불쑥 튀어나올 거 같은 울창한 숲길이었다.

초록색 식물들이 지천으로 온통 삼엄하게 점령한 가운데 잔뜩 쪼그라들어버린 흙길을 한 줄로 서서 조심조심

걸어가는 트레킹 코스. 길은 꼭 필요한 최소한의 손길만으로 정비되어 있다는 게 느껴질 만큼, 이 곳은

사람보다 자연을 우선하여 관리되고 있었다.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한 공간.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히, 숲들이 조금 몸을 웅크려 내어준 길을 따라 걸었다.

자극적인 볼거리나 흥밋거리는 없지만 수천년이나 묵었다는 원시림의 생명력이랄까 신비스러운 아우라를

체감하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거대한 산이나 바다 앞에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낀 적은 있었지만

숲을 걸으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들 줄이야.

숲길을 따라 걸으면서 눈길 닿는 대로, 그리고 숲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싶은 장면들을 찾아 사진을 찍었다.

숲의 생태계에 대해서 중간에 드문드문 설명이 적혀 있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온다면 나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이 곳에서 제대로 생태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아쉽게도 일본은 대개

외국인에 대한 설명에 인색하더라는. 저런 거 최소한 영어로라도 병기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울룩불룩 실핏줄처럼 툭툭 튀어나온 나무의 잔뿌리들이 대지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다 마르고 시들어 쓰러진 나무는 또다시 다른 나무들이나 식물을 위한 양분이 되고.

그리고 우뚝 우뚝 솟아있는 싱싱한 나무들은 또다른 식물들이 의지하고 살아갈 기둥이 되어 주고.


더러는 비비 틀어진 채 사방으로 꼬이는 사랑의 작대기마냥 나무들 사이를 종횡하는 덩굴식물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도 한 거다.

그리고 시냇물. 보기만 해도 굉장히 맑고 투명해보이는 물은, 손으로 살짝 움켜보니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잠시 손을 담궈 몇 번 비비기만 했는데도 온몸에 땀이 쏙 들어가버리는 느낌.

그렇게 온통 초록빛 일색이었지만 전혀 지루하지도, 심심하지도 않더라는. 그렇게 가파르거나 힘든 길이

아니어서 그랬기도 하겠지만, 그냥 이 길이 한없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너무도 좋았던 길.

그리고 너무도 좋았던 시라카미 원시림.


그렇지만 일반에 개방된 코스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한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는 구간이었다. 어느새 길은

살짝 내리막으로 바뀌어 되돌아나오는 중이었다.

이런 곳에 나무에 저렇게 칼로 낙서를 남기다니, 그나마 한글이 안 보이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려나.

일본인들은 예의를 중시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게 국민성이라고들 하지만, 그것도 요즘 젊은 세대들이나

그 아랫세대에는 별로 해당되지는 않는 이야기인 듯 하다. 한국에서도, 젊거나 어린 일본인 관광객들은

버스 안이던 전철 안에서도 주위를 개의치 않고 큰소리로 떠드는 경우를 종종 봤었다.

한바퀴 돌아서 나온 길, 들어갈 때는 딱히 시선을 두지 않았던 약수터가 엄청 반가웠다. 다른 사람들도

한모금씩 물을 들이키고는 그 차가움에 놀라고, 그리 힘들지 않았던 한시간여의 트레킹이 가져다 준

기분좋은 피로감마저 싹 지워버리는 듯 하다고 한마디씩.

다리를 건너 차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가는 길. 워낙 깊은 산중, 깊은 숲속인지라 딱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트레킹 코스고 일반 차도인지 구분하기도 애매할 정도다. 이렇게 울창한 숲이 풍겨내는 독특하고도

생생한 그 분위기에 매료되어서 일본의 애니메이터나 영화 감독들이 이곳을 즐겨 배경으로 활용하는 게 아닐까.


주차장 옆에는 왠 뜬금없는 놀이터가, 그렇지만 제법 그럴 듯한 스케일로 미끄럼틀도 몇 개씩 갖추고 있었다.

이정도면 거의 놀이터계의 '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럴 듯 해서, 그대로 지나치긴 아쉬워

굳이 위로 꾸역꾸역 올라가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줬다. 밑에서 보기보단 중간중간 속도를 줄여주는

구간들이 작용해서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내려오진 않았지만 엉덩이는 후끈해졌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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