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어제 눈여겨 봐두었던 봉은사 앞의 현수막 앞에 섰다.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


한참 노무현 전대통령을 죽음에 몰아넣었던 검찰의 강압수사에 대한 공분이 일던 무렵에도

봉은사 앞에는 현수막이 걸렸었다.

"대한민국 검찰의 출입을 금합니다."


종교가 이 땅을 밟고 섰지 공중부양을 하는 게 아닌 바에야, 이런 '현실 개입'은 필요하지 않을까.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이야기하며 청빈하고 정갈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분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지천으로 벌어지는 토목사업에 반대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봉은사 정문 앞에는 뜬금없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대학가에도 다시 대자보 문화가 일고 있다더니, 이젠 절에도

대자보가 붙어야 한다. 원래 대자보는 문화혁명기 중국에서 잘 활용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억눌렸고 표현의

욕구가 가장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방식으로 표출된 수단으로 읽을 수 있을 거다. 세련된 방송, 지면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어떻게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싶을 때.

A4용지에 커다란 폰트로 가로뽑기를 해서는, 전지 한장에 여덟장 정도로 붙여넣는 게 대학가의 대자보 기본형태.

봉은사 앞에는 전지 한장에 직접 출력해 낸 '일독을 청합니다'라는 글. 정말, 봉은사에 외압을 넣고 종교에

정치적 입김을 불어넣는 사람들, 일독을 청합니다.

'존경하는 총무원장님'도 한번 봐 주시길. 읽히기 위해 벌려놓아진 글이니만치.




절을 찾아가는 길은 꼭 산과 내를 찾아가는 길이 되곤 한다.

다독다독 잘 다져진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그 길 끝쯤, 더이상 들어갈 수 없다 싶은 깊숙한 산허리춤에서

문득 산사가 나타나는 거다.

불끈 진로를 비틀고 내려닫는 나뭇가지가 수면을 희롱하고 있다.

백화산 반야사 들어서는 입구. 커다란 대문이 반긴다.

선명한 단청보다 눈에 들어왔던 건 배불뚝한 기둥에 그려져 있던 네 마리 용.

사천왕상을 대신해서 휘감겨있는 네 마리 용인가보다.

흑백톤으로 바꾸니 또 다른 분위기가 나는 것 같다. 이른 봄 실개천을 가로지른 돌다리.

500년 묵었다는 나무가 굵고 커지지는 않고, 꼬불꼬불 안으로만 무성해졌다. 배롱나무랬던가. 메롱이다.

삼층석탑의 단단한 기단 위에 사면으로 네 명 부처가 앉았다. 그리고 그보다 많이 올라앉아 있는 돌멩이같은

납작한 동전들. 어떻게 보면 부처를 향해 가르침을 청하는 것 같기도 하고.

스님들이 수행하시는 곳, '출입금지'라는 두꺼운 붓글씨가 멋지다. 금지의 '지'자가 살풋 앞으로 구부린 모습이

이런 딱딱한 표현을 쓰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함이랄까, 종교인답게 양해를 구하는 것만 같다.

무너져 내릴 듯 살짝 위태로운 산방의 대나무울타리.

백화산 산신령의 호랑이가 출현하는 국내유일의 도량, 백화산 반야사. 절 에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낙석무더기들이 흘러내린 모양이 호랑이를 닮았다는 건데, 글쎄. 그냥 저건 많이 휘어진 나이키 로고다.

아까 지나친 삼층석탑, 기교와 크기와 가용자원의 차이일 뿐 그것과 같은 정성이 땅에 발딛고 하늘로 뻗었다.

다소간 끈적해 보이는 개울물이 휘여휘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엉성한 나뭇가지로 까칠한 윤곽을 가리던 산이

너울너울해진 수면 위에 내려앉아 한결 부드러워졌다.

돌탑위에 또 돌을 올리자니 이미 완결되어 버렸다 싶은, 오를 대로 오른 돌탑들 뿐이다. 괜찮다. 위로 오를수록

작고 가파르고 위험해지는 돌탑이 정점에 달했다 싶으면 또 다시 그 옆에 큰 돌 하나부터 차분히 박아넣고

시작하면 되는 거다.  

오밀조밀 사이좋게 쌓여있는 땔나무들이 이쁘다. 그 땔나무가 토해내고 있을 흰연기가 굴뚝을 거쳐 사방으로

뽈뽈뽈 번져 나갔다.



▶◀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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