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의 화려한 점심식사, 이름난 요리집에서 '골동반' 정식을 주문했다.

요리들이 한상을 가득 채우고 넘치도록 즐비하게 서빙되었던지라, 가히 사진으로 남기고

글을 몇 자 끼적여 기억해둠직한 화려한 상차림.

 '골동반(骨童飯)'이란 '여러 가지 귀한 재료로 준비된 식사'란 의미로, 옛부터 궁중의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던 비빔밥을 골동반이라 하였다고 한다.


 '골동반(骨童飯)'이란 '여러 가지 귀한 재료로 준비된 식사'란 의미로, 옛부터 궁중의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던 비빔밥을 골동반이라 하였다고 한다. 골동반 정식은, 그런 비빔밥과 전주식

일품요리를 모두 맛볼 수 있는 풀코스 상차림이랄까. 우선 수삼샐러드와 황포묵무침이 선봉에

섰고, 이내 모주의 달콤하고 걸쭉한 물결을 타고 북어구이와 전들이 육회와 함께 쳐들어왔다.


수삼향이 감도는 샐러드도 맛있었고, 완전 탱글거리는 황포묵이 일단 입안을 싹 헹궈주더니

굉장히 진한 모주가 김치전과 생선전, 육회들을 돌돌 감고서 까무룩하니 목구멍 동굴 속으로

뛰어들어 버렸다. 북어구이도, 완전 부드럽고 완전 고소하고.

바늘꽂을 틈새도 없이 꽉 메워진 밥상의 위엄.jpg

이보다도 더 빼곡하게 음식이 즐비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때는 이미 몇몇 접시가

잔인한 젓가락질로 난도질당한 다음인지라 그다지 이쁜 그림이 안 나오기에 이 사진으로 대체.

맛난 음식을 먹는 게 춥고 힘든 날에는 가장 좋은 위로 중의 하나란 게 정말 맞는 말이다.


잡채랑 삼합이 나왔을 때 이미 지금까지 먹은 걸로도 대충 뱃속이 40%는 충전된 느낌,

잡채도 괜히 면발만 많은 게 아니라 목이버섯에 돼지고기 따위가 면발보다 많이 들어있어

맛있었는데, 삼합은 생각보다 조금 실망한 게 홍어가 좀 덜 삭았다. 뭐, 어디까지나 홍어찜과

홍어애탕, 홍어애 날것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서 그렇단 거니까 그렇게 덜 삭은 편은 아닌지도.

신선로와 갈비떡찜의 본대가 밥상 위에 얹힐 때쯤 완전 행복해져 버렸댔다. 김이 펄펄 오르는

신선로에는 어찌나 작은 새우들이 많이 들어있던지 국물이 죽도록 시원했고 온갖 해물들이

가득 들어있어서 감탄하고 말았다.


이제 더이상은 배불러서 못 먹겠다, 싶을 즈음 잊고 있던 '골동반'의 등장. 짜잔.

밥이 뜨겁게 달궈진 방짜 유기그릇에 담겨나왔고, 따로 8가지 고명과 10가지 반찬이

깔끔하게 정리된 밥상 위에 올랐다.

단순히 전주식의 일품요리들을 조금씩 맛보고 마는 게 아니라, 요리 하나하나 제대로 맛본데다가

비빔밥까지 이렇게 야채를 잔뜩 넣고 비비니까 또 왕창 양이 늘어난 느낌. 그렇지만 서울에 올라가

언제 또 이렇게 맛난 전라도 음식을 먹어보겠나 싶기도 했고, 그런 생각으로 합리화하기도 전에

이미 혀와 목구멍과 식도와 위장이 애타게 음식들을 탐하던 터라 결국 다 먹어버리고 말았다.


아, 사진만 봐도 다시 배고파진다.








전주에 내려가면 꼭 먹고 싶던 것 중 하나, 전주비빔밥! 그렇지만 96년만에 낙동강이 얼어붙는

강추위가 한반도를 뒤덮던 주말, 관광객 따위 보이지도 않는 전주의 관광안내소를 굳이 들러

추천받아 간 곳에서 펼친 메뉴판에는 '전주비빔밥'이란 다섯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당황, 자리를 박차고 다른 추천해준 곳으로 옮겨야 하나 싶은 맘이 울컥, 깜깜한 새벽부터

서울에서 전주까지 죽어라 어둠과 추위를 뚫고 왔건만 전주비빔밥은 어디에서 맛볼 수 있나,

맛집 어플에 나온 곳들은 전부 점심때부터나 문열던데 그때까지 세시간쯤 기다려볼까..싶다가.


메뉴판 둘째줄, '비.빔.밥'. 국내산 육우니 뭐니 자투리가 달려있는 건 무시하도록 하고, 하기야

전주에서 굳이 '전주비빔밥'이라고 메뉴판에 적어두는 것도 웃긴 거다. 그래서 깨달은 건,

전주엔 '전주비빔밥'이 없구나. '비빔밥'이 있을 뿐. ('전주'는 그저 도울 뿐.)

요놈이 바로 그 '비.빔.밥'. 노란 곤약은 깔맞춤을 위해 최근에야 추가된 고명이 아닐까 했는데,

국립전주박물관에 가보니까 복원된 주막과 전통음식들 중에 떡하니 버티고 섰던 비빔밥에도

꼭 같이 노랑색 곤약이 들어가 있었다. 돌솥이 후끈후끈.
이 아이는 비빔밥보다 이천원이 더 비쌌던 '육회비빔밥', Holy 메뉴판 첫째줄 참조. 비빔밥과

다른 건 역시, 추가된 두 글자 '육회'가 말해주듯 육회가 한줌 추가되어 있더라는. 그리고 그

육회가 후끈후끈한 그릇 때문에 금세 뜨겁게 익어버리지 않도록 차별화된 유기 그릇에 담겨

나왔다는 것도 다른 점이겠다. 아무래도 몸에 좋고 소화도 잘되는 고기가 있으니 더 맛있었다.

빼놓을 수 없는 모주, 창 너머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볕에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린 반찬들

가짓수도 제법이었지만, 그보다도 서울에서 맛보던 모주 세네잔은 만들 수 있을 만큼

걸쭉하고 진하기가 그지없던 전주의 모주가 인상적이었다.


대추알이 통째로 동동 유영을 하고 있는 모주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 전주, 종로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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