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의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굉장히 세련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쉼없이 쏟아져나오는 육두문자와 걸레 물고

내뱉는 온갖 말들조차 세련되었다거나 세련되어서 어색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김기덕의 영화들에서 나왔던

막말들보다도 더욱 강하고, 진짜같았다. 리얼했다. 여기서 '리얼했다'는 말은 흔히 조폭 코미디나 깡패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관용어구'같은 욕들과 억양이 아니라, 정말 진짜로 '마음을 담아' 욕을 하고 있어 보였단 의미다.


세상 무서운 것 없이 경찰을 폭행하고, 거침없이 욕을 달고 살며, 아버지를 밟아 짓이기고, 길가는 여자에 침을

뱉으며, 여자에 주먹질도 서슴치 않는 사채 해결사. 그런 사람이 주인공이다. 대화와 소재와 주제, 스토리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막장인데 대체 '세련되다'는 느낌은 어디서 왔을까. 세련된 거라 함은 보통 디테일까지

은근하지만 꼼꼼하게 안배되어 있으며, 어거지스럽거나 촌스러운 부분을 최대한 배격한 것을 이르는 것 같다.


아마 그런 부분 아니었을까. 남대문시장에 여자와 아이와 함께 놀러나갔던 남자, 그전까지 항상 쉼없이 담배를

뻐끔대던 남자의 입에 물린 담배가 불이 붙지 않은 채 빙빙 돌고 있던 어느 스쳐간 장면. 또, 아이와 여자가

금세 친해지고 살짝 겉도는 느낌을 받은 남자가 어색하게 주머니에 쑤셔넣은 손을 아이가 슬그머니 끌어당겨

잡아주는 장면. 여자가 남자의 이복 누이의 집에서 서둘러 일어나려는 남자에게 "갈테면 혼자 가"라는 식으로

당돌하게 말하면서도 문 앞을 가로막은 채 주저앉아 양파니 파를 다듬는 장면. 그리고..남자가 손목을 그은

아버지를 들쳐업고 뛰면서 내뱉는 헉헉 끊어지는 단어들, 중간중간 미처 뱉어지지 못한 채 삼켜진 단어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장면. 남자가 입안가득 피를 머금고 꾸륵꾸륵대며 던지는 몇마디 짐승소리 같은 그것들.

너무나 함축적인데, 그러면서도 또 너무나 생생하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 역시 굉장히 좋았다. 양익준의 눈빛은
 
특히나.


세련되다는 느낌은 무엇보다 선정적이고 표피적으로 동원해낸 막장스러움이 아니라 그냥 진정한 막장을

보여준 데서 나온 것 같다. 왜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듯이, 극단으로 밀고 간 막장은 오히려 극단의 세련됨과

통하는지도 모른다. 어정쩡한 선에서 타협하거나 우물쭈물하는 게 아니라, 거침없이, 끝까지 보여주면서

꾸미지 않는다. 어쩌면 그랬기에 더욱 이야기에 흡인력이 생기고 '진심'이 담겨 버린 게다. 이 영화, 어정쩡한
 
자세로 보면 왠지 한 대 호되게 두들겨 맞을 만큼의 서늘함과 기백을 품고 있다. 실제로 양익준은 이 영화를

자신의 지난 시절을 해소해내기 위해, 오로지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어쨌거나 굉장히 날것이면서도 굉장히 세련된 이 영화는, 결국은 사람을 굉장히 우울하게 만들어버렸다. 아니,

그보다는 '굉장히 우울함'이라는 연못에 빠졌다가 흠뻑 젖어서 기어나온 느낌이랄까. 써늘하고, 소름이 돋고,

너무 먹먹해서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가 끝났다는 것만으로 왠지 따뜻하고 안전한 곳으로 돌아왔다는 안심마저

들게 만드는 영화다. 이 영화의 단점이랄까, 나무랄데없이 행복해보이는 풍경과 최악의 상황을 맞바로 붙여

놓는 거침없는 모양새와 비쥬얼과 사운드를 필요에 따라 드문드문 생략한 채 어느 하나에 집중시켜 버리는

영리한 머리씀씀이. 그런 것들이 일종의 뒤집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다. 이렇게 망가지고, 이렇게

형편없어져도 괜찮구나. 그래도 어엿하게 살아갈 수 있구나, 하고. 그건 분명 단점이라면 단점이고, 또 분명

장점이라면 장점인 게다.


내가 너무 쉽게 예상해 버렸지만, 예상치 못하게 이뻤던 장면 하나.

(한참 골몰하던 남자,) "야 한연희, 두년희, 세년희, 네년희 이 썅년아, 이 미친년아." "아씨 이 미친놈 진짜."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골목에서 남자가 여자에 침을 뱉고 주먹을 날렸을 때만 해도, 남자가

그녀 앞에서 이렇게 나름의 농담을 던지려고 애쓸 줄은, 그래서 귀여운 모습을 보이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문장을 보는 것으론 느낄 수 없는 맛, 그리고 둘 사이의 내밀한 교류를 모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맛. 저런

대사들이 난무하는 사이에서도 그들의 눈빛만 좇을 수 있다면, 비위가 약해도 한번쯤 꼭 시도해보라고 권하고

싶은 영화다. 개인적으로 기대가 꽤나 컸던 영화, 기대 이상이었다. 김기덕의 은퇴 후, 이런 감독이 나타난 건

축복이다.






#1.

어제 '내사랑 내곁에'를 보았다. 적잖이 눈물을 흘렸다. 사실은 이런저런 핑계김에 울고 싶었는데, 눈물이 흐르기만 했다.

발랄하던 하지원은 울부짖고, 김명민의 '메소드 연기' 역시 훌륭했다. 일부 평론가의 악평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대신 감독의 의지에 휘둘렸다. 눈물이 울음으로 발전토록 냅두질 않았다. 화면이 휙휙 넘어가고, 현실만큼 어색한 유머가

맥을 끊었다. 
 

뭔가 아쉬운 게 많은 영화였다. 죽음에 익숙한 장례업체 여직원, 착한 척 하다가 무너지는 루게릭병 환자라는 등장인물,

감정이입하기엔 쉽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원과 김명민의 연기는 좋았다. 스토리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너는 내운명'을 울며 보고 나서 느낀 후련함이 없었다. 눈물이라고 다 같지는 않다.


#2.

포르투 와인 두 잔 째다. 안 보려고 애썼는데, 결국 1Q84 1권을 방금까지 다 봐버렸다. 얼마전 누군가와의 대화 끝에,

하루키를 탐닉한 전력이 있되 그를 극복, 혹은 경과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하루키가 창조해낸

존재들이 갖는 공통점은, 자신의 영역 밖으로는 세계가 펼쳐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 지독히 이기적인 점이란 거다.


보통의 '이기적'이란 단어와는 뜻이 달라서, 내 한몸 제대로 추스리지도 못하니 그것부터 해보겠다는 겸손함도 담겨있고,

나부터 바로 서서 누군가를 품어보겠다는 건설적인 의지도 담겨 있겠지만. 아직 1권밖에 못 봤는지라 인물들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시니컬하며 세상에 대한 환멸에 젖어있다. 그러고 보니 '두 개의 달이 뜨는 세상'이 와인을 불렀댔다.


#3.

10월말까지는 꽤나 바쁠 예정이라 했는데, 원래 시험 전날에 더욱 만화나 책들이 땡기기 마련. 장그르니에의 '섬'을

다시 읽고 있고, '내 심장을 쏴라'나 '오늘의 거짓말' 등등의 소설들을 하룻밤새 다 읽어 버렸으며, 최장집교수의

'민중에서 시민으로'를 찬찬히 읽고 있는 중이다. 리뷰어로 받던 책들도 다 끊겼으니 이제 살림살이 좀 나아질 것 같다.


바쁜 거 다 끝날 때까지 보고 싶던 책들을 끊는 거보다, 그냥 가능한 재빨리 전부 해치워버리는 게 낫겠다.


#4.

나만의 블로깅 원칙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중이다. 인기 블로그나 파워 블로그 따위 허명들과 덧없는 거품을 지우고,

공짜에 현혹되어 자처한 온갖 리뷰들을 걸러내고,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 '블로그'라는 게 어떤 공간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원칙을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중이다. '리뷰'를 쓴다는 행위가 어느새 '그 무엇'의

사주를 받은 마케팅에 (결과적으로) 포섭되고 만 건 아닌지 싶어서다.


"이리저리 흐트러진 나의 육체를 끌어모아 글자 속에 집어넣고 뚜껑을 꽉 닫는다"(이선영, "글자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中)

내게 블로그란 그런 공간이다. 일기를 쓰고 낙서를 끄적대듯, 그런 내밀하면서도 솔직한 공간의 의미가 우선인데 어느새

'미디어'라는 측면, 가능성에 너무 천착한 나머지 여러 편향이 생겼다. 단순하게는 글투의 문제에서부터, 이야기꺼리,

심지어는 '수익'에 대한 고려까지. 리뷰 신청을 끊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5.

와인 세 잔째다. 어쩌면 내가 아직 '하루끼적으로' 이기적인 티를 못 벗은 건지도 모른다. 요새 정말 보고 싶은 영화는

'똥파리', 그 영화의 감독이 영화를 찍고 나서 이건 나를 위해 만든 영화다, 라고 했다지. 대체 어떤 영화일까. 그는

어떻게 '나'와 '그들', 혹은 '우리'를 불러내고 있을까. 당당하게 '나를 위해 만들었다'는 그가 부러운 건지, 아님

그 말 뒤에 숨어있는 원초적인 암담함과 답답함이 처연한 건지는 모르겠다.




한국독립영화협회와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개최하는 “아시아 독립영화의 오늘” 기획전 티켓을 받게 되었다.

3월 13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이번 기획전에 나온 14편의 작품 중에는 '똥파리', '농민가', '개종자', '유토피아' 등

투박하고 날것의 느낌이 풀풀 풍기는 제목도 있었고, '리버 피플'이니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나 조금은 더 제목에

신경을 쓴 듯한 영화도 있었다.


그 중 시놉시스로나 제목으로나 가장 흥미를 끌었던 것은 양익준감독의 '똥파리'란 작품이었다. 오늘 아침 신문에

이 작품이 프랑스 도빌 영화제에서 대상과 국제평론가 협회상을 받았다는 기사가 났던데..아쉬운 일이다. 

내가 보았던 "멘탈"이란 영화는 너무 길었고, 너무 난해했달까. 무려 두시간 십오분동안 영화를 보고 나니 완전히

지쳐버렸댔다.


멘탈. MENTAL. 精神. 정신질환자들이 겪고 있는 두 가지 질병에 대해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들이 '정상인'과 달리 앓고 있는 특정한 질환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들이나 다른 '정상인'를 막론하고

잠복해있는 '정신질환자' 혹은 정신병자 혹은 (막나가자면) 미친사람, 또라이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 당장 내가

모종의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고 하면 영화 속 그들이 보여줬듯 사회로부터 완전히 밀려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주변인의 시각에서 굳이 냉랭함과 두려움을 읽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는 2시간 내내 그들이 사실 그렇게 두렵지 않으며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는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신병원에서나, 가정 도우미가 드나드는 집에서나,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는 카메라를 따르다 보면

그들의 앙상하고 낯선 이미지에 살이 붙고 피가 돌면서, 그들도 별반 유별난 구석 없는 사람이라는..그런 식의

진부한 결론을 향해 치닫는 듯 하다.


그렇지만, 마지막 15분쯤 카메라는 한 정신질환 노인이 복지시설 내로 들어와 자신의 일을 보는 것을 실시간에

가까울 정도로, 집요하게 따라간다. 그 15분간 솔직히 그 노인이 어떻게 그렇게 막 나갈 수 있는지, 주위 신경

안 쓰고 하고 싶은대로 하는 태도를 보며 복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그런 거였을까? 쉽사리 '그들과 우리는

다르지 않은 같은 사람'이라며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과, 직접 그들의 복지와 생활을 챙겨야 하는 입장에서

맞닥뜨리는 건 역시 다르다고? 고작 15분여 그 노인의 언행과 태도를 마주했을 뿐인데도 참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의 의도인 걸까, 아님 나만 그렇게 느낀 걸까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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