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촌호수를 저녁때 지날 때마다 뭔가 반짝거리는 불빛이 보인다 싶어서 오리배에 조명이라도 달았나 했었는데,

 

알고 보니 백제의 역사를 중심으로 한 연등들이 호수 위에 주르륵 늘어서있었다.

 

  청계천 연등축제 때 쓰였던 연등들 중에서 백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한토막을 그대로 석촌 호수 위에 전시해둔 거라고.

 

 백제와 일본과의 교류, 칠지도를 하사한다거나 왕인박사가 교육을 한다거나 하는 내용이 있고, 백제의 선진 제철기술을

 

소개하거나 백제의 조선술 등 문화적인 부분까지 대략 일고여덟주제를 담고 있었던 듯.

 

 

 꽁꽁 얼어붙은 석촌호수, 조류독감 때문에 곳곳에 방제선을 쳐두고 오리 등 가금류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가 살벌하긴 했지만

 

그래도, 롯데호텔 건물을 배경으로 한 해양국가 백제의 자그마한 선박이 반짝반짝.

 

 

 

 

 

 

태국 중부의 국립공원 휴양지 꼬싸멧, 역삼각형 모양 자그마한 섬의 무게중심쯤에 있는 뷰포인트에서 바라본 코발트빛 바다.

 

하루 300바트짜리(약 11,000원) 스쿠터를 대여해서 거의 산악 오토바이 수준으로 역동적인 코스를 내달린 후에

 

도착한 뷰포인트, 사실은 섬의 남단까지 가보려 했지만 비포장의 산길이 워낙 울퉁불퉁해서 그만 돌아가기로 했다.

 

 

제법 높은 지대까지 올라와서 자그마한 섬이 온통 눈 아래, 게다가 이런 각도로 굽어보니 바닷물 빛깔도 훨씬 깊고 푸르다.

 

돌아오는 길에 섬의 동쪽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비치를 하나씩 돌아보며 쉬엄쉬엄, 음료도 마시고 바다도 보고.

 

저 서양 아저씨는 바다를 바라보며 태극권을 하는 듯 한참동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여긴 모래보단 돌로 이루어진 해안인 듯, 잠시 앉아서 코코넛 주스를 홀짝홀짝.

 

꽃과 양산으로 장식된 코코넛 열매엔 물이 그득 담겨있었고, 하얗고 탱글한 젤리 역시 두껍게 붙어있고.

 

해변에선 어느 서양인 커플이 영화를 찍고 있는 중.

 

해안에서 다시 비포장도로로 올라가는 길, 정글 한가운데로 스며들어가는 느낌이다.

 

24시간동안 빌려서 열심히 타고 다닌 125cc 혼다 스쿠터. 기름은 일단 만땅 채워주던데, 섬 내부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절반도 채 닳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골목 어귀에선가 만났던 용 그림. 화려한 색감의 용 두마리가 입을 쩍 벌린 채 지키고 섰다.

 

동쪽 해안가에는 방갈로나 값싼 숙소가 많이 모여 있었는데, 그런 숙소들을 가리키는 표지들.

 

슬슬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서쪽 하늘.

 

 

 

둥근 홍등이 주렁주렁 내걸린 장대들이 맥주병이 놓인 테이블들 사이에 가로수처럼 불을 밝혔다.

 

 

몇걸음 내딛지 않아 바다에 들어가 파도랑 놀다 온 사람들이 물을 뚝뚝 흘리며 테이블에 앉아 저녁을 먹는 시간.

 

자그마한 해안 모래사장 곳곳에 색색의 조명들이 불을 밝히고 한줌의 사람들을 꼬드기는 시간.

 

 

 

순식간에 까맣게 불살라진 하늘 아래 점점 휘황찬란한 느낌으로 번뜩거리는 노랗고 붉은 등불들.

 

 

 

 

코엑스 메가박스 가는 길, 리모델링이 한창인 코엑스 곳곳에서 문닫고 사라져버린 샵과 공간들이 많아지는 시기다.

 

늘 무심코 지나쳤던 장식등들이 새삼스럽게 보이고, 마치 이 곳에 놀러온 외국인 관광객인양 카메라를 들게 만든 이유.

 

 구간구간 상점들이 빠져나가고 공사가 시작되고 있는 즈음이라 살짝 황량해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많다.

 

그리고 코엑스 메가박스의 상징과도 같은, 이 텔레비전 탑.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라고 해도 믿을 법한.

 

 

어느샌가부터 메가박스 옆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생겼다. 도슨트도 상주 중이어서 언제든 들어가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작지만 알차게 작품이 전시된 공간을 돌아볼 수 있는 것.

 

재미지고 발랄한 작품들을 볼 겸, 슬쩍슬쩍 점심시간에 산책 삼아 돌아다니는 곳 중 하나.

 

 

 

덕수궁 돌담길. 연인들이 걸어가면 백방 깨진다지만 사실 안 깨지는 연인이란 거, 한 사람에 한번쯤이려나.

내가 좋아하는 길, '검문'이란 단어가 사람들을 주눅들게 만들어 놓아서 아주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의경들이나 주머니에 손 꾹 찔러넣고 걷고 있는 길을 계속 걷다 보면 구세군회관도 나오고. 종로통도 나오고.

장소를 옮겨 효자동, 거리를 지나다 허벅지 높이에서부터 말간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뜬금없어 보이던, 그렇지만 사실 머잖은 산타클로스의 재림, 등잔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 오각별들이 반짝반짝.

아오모리 지역의 토속 분위기가 물씬한 쯔가루 네부타마을, 네부타 마츠리라 불리는 동북 최대의 축제를

일년내내 감상할 수 있는 관광지. 마츠리 체험 외에 샤미센 연주 감상과 팽이와 같은 놀이문화도 체험할 수

있고, 일본의 전통적인 정원도 잘 가꿔놓고 있어서 일본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흔히들 '도쿄'를 다녀오고 '일본'을 다녀왔다 하고, '뉴욕'을 다녀오고 '미국'을 다녀왔다 하는 식으로 도시

한두개를 보고 그 나라 전체를 다 경험해 본 양 말하는 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게 만드는지 새삼 생각해

보게 만들었던 공간.

입구로 들어가니 네부타 마츠리를 설명하고 네부타에 대해 설명하는 할아버지가 떠듬대는 한국말이지만

굉장히 진지하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마음을 움직였다. 네부타 마츠리는 일본을 대표하는 3대축제의 하나로,

아오모리의 여름을 역동적으로 수놓는 축제라고 한다. 일본의 전통 종이에 사람 모형을 그리고 철사로

뼈대를 잡아 만드는 등불장식수레를 네부타라고 하는데, 네부타 하나에 150kg의 철사가 소요, 총 2500장의

화지가 소요되는 커다란 사이즈의 그것들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니 직접 축제를 보고 싶어진다.

일본의 마츠리,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이런 커다란 북을 신명나게 두드리는 것. 가슴 깊은 곳을

두드리는 듯한 그 북소리가 점점 고조되면서 사람들은 단조롭고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멀리

떠나가거나, 혹은 몸과 마음에 꽉 차 있던 불만족과 권태로움을 태워버리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시범을 따라 방문객 중 한명이 함께 북을 두드리는 모습이 엄청나게 파워풀해 보인다.

히로사키 네부타 축제는 매년 8월 1일부터 7일까지 1주일간 열리며, 60대 정도의 큰 등통(네부타)이 거리를

대열지어 행진하는 축제라고 한다. 아오모리현에서는 크게 구분해서 히로사키 네부타, 아오모리 네부타의

두가지로 나뉘는데, 아오모리 네부타는 인형의 모양을 한 입체적인 것으로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행진하는

반면 히로사키 네부타는 부채꼴 형태로 된 것이 주류이며 천천히 위풍당당하게 거리를 행진하는 게 제일

큰 차이점이라고. 그러니까 이렇게 입체적인 네부타는 아오모리식인 거다.

반면 이렇게 부채꼴 모양으로 평면상 그림이 펼쳐진 건 히로사키식 네부타. 입체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동적인 느낌은 떨어지지만, 면과 면을 이어 만드는 입체적인 아오모리식에 비해 훨씬 정교하고 아름다운

표현이 인상적이다. 특히 여성의 저런 나긋나긋한 표정이나 실루엣은 거칠고 압도적인 느낌의 입체로는

표현하기 쉽지 않을 거다. 결국 두가지 모두 일본의 중요 무형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니 네부타는

사실상 일본 축제 문화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네부타의 속살, 철사가 쓰이는 입체형의 네부타 대신 부채꼴형의 네부타 뼈대는 나무로 엮여있었다. 저렇게

부채꼴 모양으로 뼈대를 잡는 것도 생각보다 복잡하다 싶은 게, 워낙 사이즈 자체가 크다 보니까 그 안에서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제작하기 위해 사다리가 필요해지고, 중간중간 발디딤대가 필요해지고 뭐 그런 식으로

정교해진 거 아닐까 싶다. 그 위에 저렇게 화려하게 채색된 그림을 한면 한면 붙이고 불을 켜면 끝, 이라기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일 거라 짐작해 볼 뿐이다.

 쯔가루의 독특한 '쯔가루니시키'라고 하는 금붕어가 모델이 된 금붕어 네부타. 1706년경부터 서민들이 네부타로

만들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며, 현재는 네부타 축제 때에 어린이들이 제등처럼 손에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고

한다. 어쩐지 아오모리쪽의 호텔들을 전전하며 호텔 내에서 예외없이 마주쳤던 저 금붕어 등불들이 궁금해지던

참이었다.


금붕어 말고도 십이간지의 열두 동물이 모두 등불을 속에 품고 반짝반짝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방아를

찧다가 급하게 불려온 듯 떡방아를 쥐고 있는 토끼도, 닭도 개도, 심지어 뱀이나 쥐새끼조차도 제법 귀여운

모습으로 불을 밝히고 있었다. 
 

네부타 축제가 처음 생겨났을 즈음에는 물론 지금처럼 이렇게 커다랗고 화려한 네부타 등불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조그맣고 상대적으로 심플한 형태의 등불들을 앞세우고 축제를 벌였다고 하는데,

슬쩍 새장 속의 새들이 보일듯 말듯한 모양도 그렇고 화지를 잘게 잘라서 한번 꼬아 붙인 모양도 그렇고

간단해 보이면서도 꽤나 세련된 모습이다.


히로사키 네부타 축제의 기원에 대한 유력한 학설은 '옛날, 농민이 여름철 작업중에 졸음 때문에 농사일이

소홀해지거나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졸음을 작은 등통과 함께 강에 흘려보낸다'는 행사가 기원이라는 거다.

그 행사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축제로 변화발전해 왔다고 전해지는데, 그 근거로 '졸립다'라 하는 말이 쯔가루

방언으로 '네푸테', '네푸테쟈'이고 그 말이 변하여 '네부타'가 되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어쨌거나 네부타의 그림에는 그 원형적인 감성이나 정서가 그대로 남아있는 듯 보인다. 굉장히 섹시하고

도발적이면서 관능적인 느낌마저 도는 그 여전사들의 모습이나 여성적인 선들도 그렇거니와 이를 온통

드러낸 채 으르렁대는 모습의 남성들도 그야말로 남성성의 화신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다. 시대가 지나

거칠고 날것의 흉폭함을 보이던 그림이 조금씩 정련되기는 하지만, 다소 섬뜩하고 위화감이 이는 신성성

가득한 그림의 포스는 그대로다.


너른 공간 가득했던 네부타들을 하나하나 눈여겨 보다보니 한걸음 내딛기도 쉽지 않았다. 일본의 장인들이

네부타를 만들고 코케시 인형을 만드는 모습을 조금 구경하다가 도착한 곳은 샤미센 연주장. 벽면 가득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으로 안구를 괴롭히던 네부타로부터 벗어나 담백한 햇살이 내려앉는 공간에

도착하니 갑자기 눈이 심심해진 느낌이다.

일본의 샤미센은 원래 뱀가죽을 덧댄 중국의 '산싱(삼선)'이란 악기가 기원으로 16세기에 오사카로

전해진 것이 처음이라 한다. 그렇게 고양이 가죽으로 만든다는 샤미센은 민요 등 노래의 반주 악기로

널리 쓰이다가 이제 일본을 대표하는 예능, 문화로서의 츠가루 자미센이 되어 버린 셈이니 니것내것

가르며 자국 문화를 편협하게 고수하려는 자세가 우습단 걸 존재 자체로 웅변하는 것 같다.


선생님과 제자 같은 두 사람은 가끔 눈빛을 교환하기도 하고, 서로의 멜로디에 악기통을 툭툭

두들기며 박자를 맞춰주기도 하면서 기교를 맘껏 구사하고 있었다. 때로 굉장히 힘있게 현이

끊어질 듯 튕기기도 하고, 때로는 나뭇가지를 살랑이는 미풍처럼 현을 건드리는 듯 마는 듯

섬세하게 연주하는 모습도 모습이거니와, 그 섬세한 음율이 인상적이었다.
 

마당에 꾸며져 있는 정원은 '요키원', 1880년경부터 1914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35년동안 가꾸며 형태를

잡아온 정원이라고 한다. 쯔가루 지방의 고유한 방식에 맞춰 세심하게 배열된 돌과 나무들, 그리고

연못의 구성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저런 석등에 새겨진 초승달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돌에 새겨넣은 걸까 아니면 인공석인 걸까 궁금해서 만져봤는데 잘 모르겠다.

다른 각도에서 본 정원, 요키원의 모습. 비슷한 사이즈로 다듬어진 나무들이 가지런히 열맞춰서 묶여있는

연못 위 다리도 이쁘고, 위에 너덜너덜 이끼가 내려앉은 커다란 석등도 둥글둥글하니 인상좋아 보이고.

쯔가루 고유의 팽이라는 '즈구리'를 직접 시연해 보이고 있는 아저씨, 여러 가지 팽이를 하나씩 돌려가며

샵을 지나는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리나라 팽이랄까, 내가 어렸을 때 돌렸던 팽이들보다 훨씬

크고 무거워보이는 나무 팽이는 슁슁 돌아가며 굉장히 매력적인 중저음을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달마 인형들을 응용해서 만든 이런저런 장난감들, 바퀴달린 수레인지 자동차 같은 것 위에

올라 앉아있는 잔뜩 인상쓴 머리들의 표정이 우스꽝스럽다. 수레 위를 겁내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불만에 찬 것 같기도 하고. 그리 두텁게 칠하지 않은 붉은 색감 아래로 나무의 색감이나 결도 그대로

살아있는 게 저런 장난감이라면 아이들의 손때를 묻히고 묻혀서 대를 물려 넘겨줘도 좋겠다 싶다.

네부타 마을의 입장권, 애초에 저런 모양으로 접힐 수 있도록 홈이 파여 있어서 네부타 세워놓듯 세우고

코케시 인형을 앞에 배치한 장식품이 될 수도 있겠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책상 서랍 어딘가쯤에 나름

곱게 보관해둔다고 모셔두었다간 몇년쯤 지나 그냥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여느 티켓들과는 달리 이렇게

어디에고 접어서 세워두는 티켓이라니, 오래도록 네부타 마을의 기억을 반추할 수 있는 작지만 귀한

계기가 되어주고 있다.




참고. 네부타마을(네부타무라) 공식홈페이지(www.neputamura.com)







* 이번 여행은 하나투어 '겟어바웃' 필진의 일원으로 다녀왔습니다.
Get About - 당신의 여행이야기
청계천에서 열리고 있는 2010년 세계등축제, 얼마전 화재사고가 터지는 등 불상사가 있었지만

워낙 사람들이 몰리고 호응이 좋은 탓에 일주일인가 축제기간이 늘었다고 했다. 정확히는 몰라도

슬쩍 주워들은 이야기만 믿고서 다짜고짜 청계천으로.

십장생들, 학과 영지버섯, 거북이 등등이 소라광장에서부터 시작. 청계천 양쪽 수변으로는

색색의 등들이 두 줄로 내걸려 있었고, 아랫쪽 통행로는 사람들이 기차놀이를 하며 순례중.

연보랏빛 벚꽃도 샤방하지만 그 나무에 슬몃 몸을 기댄 소녀는 더욱 샤방샤방.

용궁을 형상화한 듯 사람몸통만한 잉어들이 펄떡이며 호위하고 있는 화려한 구중궁궐.

중국의 경극에서 볼 수 있는 변검을 소재로 한 등인 거 같은데, 자꾸 어딘가의 도박장이 떠오르는

이유는 뭔지 모르겠다. 빠찡꼬의 색감과 비슷해서 그런 듯.

굉장히 역동적인 동작을 보여주는 두 개의 등. 일본의 무사거나 신 아닐까 싶은데, 얼굴에

빨간 칠하고 칼든 저 분은 스트리트 파이터의 옛 캐릭터 혼다를 닮았다.

타이완에서 온 이 아저씨는, 주위에 금전을 질펀하게 깔아두고 '금전의 신' 행세를 하는 중.

남미의 어느 나라에선가 왔다는 이 초록빛깔 괴물등과 그 너머 캄보디아의 앙코르왓 모양의 등.

피사의 사탑이 원래 이 정도로 심하게 기울었나, 싶도록 완전 기우뚱한 등은 좀 위태위태해 보인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의 마스코트들인 듯. 뭐, 치렁치렁한 머릿결 외에는 그다지 특징적이지는

않은 캐릭터란 생각이 조금.

그러고 보니 대충 한 달 후면 크리스마스도 오는구나. 굉장히 심플하게 만들어진 형태지만

이런저런 그림들이 그 단순한 형태를 잘 보완해서 이쁘게 만들어진 듯. 살풋 부푼 별도 그렇고.

여기는 G20를 위한 공간, 스무 개 나라의 국기가 청사초롱으로 만들어져 빛나고 있었다.

'지난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운운 할 때의 그 주마등, 등 안에 초를 켜두고 밑에 바람개비를

달아두면 안에 있는 그림통이 빙빙 도는 대류현상이 일어나서 '말이 움직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해서 주마등이라고 한다. 스무 개 나라에서 온 말과 국기가 함께 빙빙 돌던 주마등, 아무 것도

성취없이 원점으로 도로 돌아간 G20 서울 서밋의 훌륭한 상징이긴 하겠다.

익살스런 표정의 장승들, 특히나 활짝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있는 지하여장군의 기백이 대박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한국의 전래동화를 소재로 제작한 등 중에서 가장 맘에 들던 것 하나.

마침 올해가 호랑이해였고 내년이 토끼해니까, 늘어지게 퍼져앉은 호랑이 옆에서 담배연기

훔쳐 마시고 있는 눈빨간 토끼녀석이 좀더 눈에 밟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여기도 토끼, 이 녀석은 좀 덜 귀엽다. 밑에 있는 별주부 녀석은 뭐가 좋은지 헤벌레, 아, 금세라도

토끼 녀석의 간을 빼다가 용왕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기쁨에 은근슬쩍 잠겨 있을 때겠구나.

등불만 봐도 전체 스토리를 빠바박 떠올릴 만한 몇 개의 동화 내용들이 담긴 아름다운 등들이

지나가고, 그 담에는 좀더 경쾌하고 즐거운 모양의 등불들이 등장. 제기를 차거나 말뚝박기를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는 어린이들. 그렇지만 가만히 보면 말뚝으로 박혀있는 녀석의

표정이 썩 밝고 재미있지만은 않다. 외려 굉장한 리얼리티.ㅋ

눈이 벌건 거북선도 떠있었다. 토끼의 해를 맞이하여 거북선의 용머리 눈알도 토끼눈처럼

빨갛게 충혈시켜주는 건 센스일지도.

뜬금없지만 무지 귀엽던 개 등불 옆을 지나, 메뚜기가 느적거리고 쇠똥구리가 거대한 똥을 말고 있는

풀밭을 지났다. 그러다보니 거의 종로1가쯤까지 걸은 듯 하다.

세계등축제의 마지막 전시 등불은 뭔가 '등불'의 개념파괴를 시도한 듯한 LED조명이 휙휙

지나다니는 강아지 한 마리. 파트라슈의 개처럼 얼룩덜룩한 무늬가 개의 온몸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녔는데, 그냥 난 좀전에 있었던 그 귀엽고 작지만 따뜻한 불빛을 품고 있는 강아지가 좋았다.

그리고 조금 맘에 걸리던 것들, 청계천을 대낮같이 밝힌 등불과 청계천 수로 가운데에 수십개씩

설치된 철구조물 때문인지 수로 가장자리에 잔뜩 뭉친 채 부유하고 있던 조그마한 물고기들.

치어 수준의 어린 물고기들 같았는데, 이 녀석들은 어느 수족관에서 사왔을라나.

당장 눈에는 보기 좋고 사진찍기 이쁘기는 하다지만 그런 등불들이 청계천 위에 둥둥 떠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수로 바닥에 이렇듯 튼튼한 철제 구조물을 받쳐두어야 하는 거다.

저것들이 위생상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고, 밤 시간에 저렇게 밝은 불빛들이 한동안 켜져 있어도

수중 생태에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고, 저런 장애물들이 수로에 잔뜩 있으니 물 흐름에 장애가

생기지 않을지 그것도 모르겠고.

돌아나오는 길, 청계천 내에는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물흐름장애 및

수질오염방지를 위한다는 명목인데, 두 가지 전부 세계등축제에도 해당될 여지가 있어보인다.

청계천이 정말 복개천인지 아니면 거대한 인공수조인지, 거기 사는 물고기들이 생태계가 되살아난

증거인지 아니면 서울시청에서 사다가 뿌린 건지, 따위의 문제들은 이미 많이 지적되었으니 생략.


다만, 마치 백조가 물 위에서 우아하고 아름답게 미끄러져 다니는 것 같아도 그 밑에서는 쉼없이,

그리고 고생스럽게 물갈퀴를 젓고 있다는 이야기처럼, 사람들이 한줄로 서서 순례하듯 구경하는

어여쁜 세계등축제가 벌어진 청계천 수중에서는 뭔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고생스럽고 힘겨운

삶을 사는 물고기나 수중생태계가 있음을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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