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에서 촬영되었다는 옛날옛적의 드라마, '겨울연가'를 알리는 낡은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2002년 드라마였던가..했다가 문득, 군대가는 바람에 마지막 엔딩을 못봤었단 생각이 떠올랐다.

근데 정말 어떤 장면에서 외도가 나왔던 거지? 전혀 기억에 남는 게 없는 걸 보면 내가 놓친 엔딩?

국내 유일의 해상농원,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섬으로 개인적인 취향과 안목이 그대로 투영된

이국적인 아열대 식물들, 평소에 관리가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를 느끼게 하던 범상치않은 조경.

온통 하늘로 치솟은 덤불의 끄트머리가 무슨 탑의 형상같기도 하고, 에너지가 뻗쳐나가는 거 같기도.

동양의 하와이라 불리기도 한다는 외도에서 눈에 띄던 건 역시 육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아열대의 식물들, 황금빛에 가까운 신기한 빛깔을 뽐내던 요 신기한 풀떼기처럼.

산책로를 따라 걷는 길, 한바퀴를 도는데 대략 한시간 정도 소용된다니 걷기 전에 몸을 가볍게

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 엘레강스한 화장실 표지 역시 섬주인의 취향이 그대로

묻어나는 하나의 특징적인 포인트일 텐데 조금 거창하단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이쁘다.

화장실 표지도 표지지만, 전지역 금연을 실시할 정도로 환경을 보호하기에 열심인 이 작은 섬에선

빗물을 저장시설에 모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섬이 작아 딱히 물이 있지는 않은가 본데,

이렇게 많이 다녀가는 관광객들을 소화하려니 이런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을 듯.

정말이지 깔끔하게 전정된 가로수들, 가지들을 툭툭 쳐낸 모양새가 인상적이다. 옷걸이로 쓰면

딱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저기에 잘못 부딪히면 푹 박히는 거 아닌가 싶어 지레 소름돋기도

하고. 저런 곳의 나무를 켜내면 옹이구멍이 송송 박혀있는 거 아닌가.

2월의 매화꽃. 짙은 초록색의 두텁고 반들거리는 울창한 잎사귀 사이에서 샛노란 술을 가진

새빨간 꽃들이 촘촘이 박혔다. 슬쩍 잎사귀를 차양삼아 햇살을 가리려는 듯한 꽃잎의 제스처가

사랑스럽다.

판판한 평지에 조성된 정원이 아니라 제법 오르내림이 있는 조그마한 산 같은 섬인지라, 이렇게

산책로를 걷는 재미도 더 큰 거 같았다. 더러는 높은 나무로 울타리쳐진 길을 오르기도 하고,

아니면 저런 야트막한 정원수들이 양쪽에 줄서 있는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며 전체 섬을

내려보기도 하고.

조금 당황스러웠던 공간, 외도에서 가장 뭐랄까, 이질적이고 뜬금없다 싶었던 공간이었던 거 같다.

물론 갠적으로. 이름하여 '비너스가든'과 '음악당'. 루브르박물관에서 봤던 니케상 비슷한 것도

하나 서 있고, 그리스 느낌 가득한-그렇지만 꽤나 아쉬운 느낌 역시 가득한-구조물이 바닷바람을

맞고 녹슨 채 서 있었다.

프랑스 식으로 잘 다듬어진 정원은 외도의 한복판, 그야말로 외도 정원의 노른자위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조금만 늦게 와서 날도 풀리고 꽃도 좀더 피고 녹색도 좀더 싱싱했다면 더 멋졌을 거 같긴

하지만, 뭍은 아직 겨울바람 씽씽 불어닥치는 2월에 갔어도 꽤나 좋았았던 공간.


중간중간에 놓인 벤치 역시 바닷바람에 씻기고 적당히 헐어보여서 오히려 더 맘에 들었다.

괜히 엘레강스한 분위기를 내려 힘준 게 아니라, 그리고 괜히 유럽이나 그리스식의 분위기를

잡느라 꼬불꼬불한 문양으로 흉내낸 게 아니라 좋았다.


같이 갔던 사람들이 여긴가, 여긴가 했다. '겨울연가'에 나왔던 장면이, 나왔던 외도의 풍경이

여기 어디선가 찍혔던 건 아닐까 추측이 난무했던 곳.


곳곳에 숨어있던 귀여운 소품들, 고양이 가족들의 익살맞은 표정도 맘에 쏙 들었지만 색색깔의

기린들이 보이는 시크한 표정과 우물대는 듯한 입모양이 참.

외도의 주인이 얼마나 조경에 힘쏟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몇그루의 잘 가꿔진 나무들.

남자사람 머리만 해도 삐쭉삐쭉대지 않도록 잘 다듬어주려면 삼주에 한번씩은 깎아줘야 하는데,

작다고는 하지만 이 섬 전체를 정원으로 꾸며버린 스케일을 감안했을 때 정말 얼마나 손길이

필요한 일일까. 하나 흐트러짐이나 지저분한 구석없이 이렇게 관리하려면. 



양배추처럼 생긴 꽃..저거 이름이 뭐더라, 맨날 듣고는 까먹어버리는 이름의 꽃들 사이로

곰발바닥이 새겨진 시멘트 바닥을 따라가면, 지금은 출입통제된 정원의 어느 샛길이 나타난다.

막혀있단 거 뻔히 보이지만 곰발바닥이 귀여워서 일단 따라 걷고 보는 단순한 걸음걸이.


이전부터 섬에 대한 로망은 있었다. 한쪽 끝에 서면 다른 쪽 끝이 보이는 그런 조그마한 섬.

외도는 그정도 사이즈는 아니어도, 불쑥 올라선 섬의 중앙부에선 섬의 가장자리가 손에 닿을듯

가깝게 보일만한 사이즈. 정원으로 꾸며진 섬 전체가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 섬들이

가득한 남해바다가 희끄무레한 바다안개를 덮은 채 버티고 있고.

기묘하게 생긴 벤치, 아마도 커다란 죽은 나무를 다듬어서 만든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어디론가

통하는 샛길 하나가 또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귀여운 바리케이트로 막혔다. 자연스런

나무의 휘어짐이나 모양새가 그대로 살아있는 느낌이 좋다.

날씨에 따라 대마도까지 보인다는 전망대, 오백원짜리 동전은 내가 어렸을 적 통일동산이나

판문점 같은 곳에 올랐을 때부터 변치않는 가격인 거 같다. 물가는 미친 듯이 뛰었어도

전망대용 망원경 가격은 십여년째 그대로.


날이 흐리고 해무도 끼어서, 게다가 딱히 망원경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섬 너머는 전부 바다니깐

그냥 맨눈으로 보아도 이쁘다. 그리고 전망대 아랫자락으로 펼쳐지는 외도의 살갗도 참 이쁘고.

거의 외도를 한 바퀴 돌고서, 선착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 내려다보이는 '비너스정원'과

'음악당'의 모습이 자그마하니 귀엽다. 그리고 건물 안에서 삥삥 도는 저 계단 역시.


'명상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 혹은 성당. 사이즈로는 정말

X딱지만하다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질 정도로 작지만, 안에 슬쩍 들어가서 바라본 창밖

풍경은 바다랑 섬들이랑 사이좋게 어깨겯고선 따뜻하기 그지없던.


선착장으로 가는 길, 바닥엔 동글동글 까만 돌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기하학적인 문양들을 만들고

담백한 풀꽃모양도 떠올려냈다. 그리고 가로수들 그루마다 둘러싼 깔끔한 돌화분에 박혀있는

산뜻한 타일들, 애기들이 지나가다 관심을 바싹 갖고 하나하나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바닥에 하트 모양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공간을 발견, 저 은은하고 부드러운 핑크빛의

하트에는 동글동글하고 작은 조약돌로 두번이나 하트모양으로 띠도 둘려 있다. 일종의 이별여행을

떠났던 곳이니만치, 저런 모양 하나하나에 쿡쿡 가슴이 찔려왔지만, 사랑ing인 사람들이야 뭐.


선착장에 내려서기 직전, 외도의 마지막 포스트인 '외도 갤러리'라는데 다른 것보다 그 뷰가

참 좋았다. 천장이 높아 바람이 숭숭 자유로이 드나드는 커다란 정자 같은 곳에 삼삼오오

앉아서는 바닷바람도 맞고, 멀찍이 시선을 던져둔 채 망연하게 넋놓고 있는 것.

배가 선착장을 떠나는 순간. 선착장과 배 사이를 쉼없이 이간질하며 철썩철썩 거칠게 내지르는

파도를 견디어내려면 저렇게 튼튼한 타이어를 빈틈없이 둘러야 하는 거다. 그렇게 하고서도

바닷물과 바닷바람과 파도와 무디고 둔탁한 뱃전에 쓸려 금세 낡고 허름해지는 타이어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구나. 늘 긴장 가득한 관계구나 싶다. 배와 항구란 거.




2층 드농관

'사모트라케의 니케'. 이 천사는 땅위에 막 내려앉은 걸까, 아니면 막 떠나려는 걸까. 헬레니즘 조각 중 손꼽히는 걸작이라는 이 조각상은 명성에 맞게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며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밀로의 비너스 역시 넉넉한 공간을 확보한 채 독보적으로 우뚝 선 채 사람들에 포위당해 있었는데, 마찬가지다.

피사체로서 니케상과 적당한 거리를 격한 채 둥그렇게 포위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카메라로 기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살짝 든 생각..니케의 조각상이나 밀로의 비너스 모두, 그 오랜 명성에서 기인한 후광효과라거나, 혹은 전시 방식에 따른 효과, 그리고 정말 미적으로 작품 자체에서 우러나는 효과를 구분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이미 일련의 회로를 따라 미적감각이 유인되고 승인되고, 또 어떠한 감동을 느껴야 할지도 정형화되어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삐딱한 딴지를 걸고 싶었다. 과거의 가치를 전승하고 위계를 공고히 하는 박물관의 디스플레이 기법, 혹은 필연적인 보수성.

이런 식으로 해 보면 어떨까. 다른 유물들, 예술품들과 차별화되지 않는 식으로 함께 전시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명작으로서의 명성을 갱신하고 가치를 재평가받을 수 있도록 해 보는 거다. 사람들이 단순히 '걸작'이니까 아름답다라거나 뛰어나다라는 식으로 사고하지 않도록. 스스로 그걸 발견해 내고 다른 점을 느낄 수 있도록.

물론 이 작품이 다른 것들에 비해 달라보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특별히 섬세하고도 자연스러운 저 옷자락의 율동감이라거나,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은-아름다운 몸을 가진 인간을 고대로 대리석으로 굳혀 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인체의 비례라거나, 무엇보다 당장이라도 어디로 떠나거나 혹은 막 어디로부터 떠나온 것처럼 느껴지는 그 생생함. 힘있게 쭉쭉 뻗는 날개 역시 상상력의 소산이라기엔 너무도 그럴 듯 하게 리얼한데다가 묘한 느낌을 던진다.

사람들이 지쳐 간다. 사실 루브르의 정수라 할 만한 것은 역시 2층 드농관에 있는 모나리자 등 회화와 3층 리슐리외, 쉴리관에 있는 프랑스 회화들일 텐데, 이들은 무엇을 보며 여기까지 와서 널부러진 걸까. 나 역시도 저기 한 구석에 앉아서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점차 뭉글뭉글 부풀고 있었지만 어차피 빈자리도 없다.

제리코가 그린 '메뒤즈호의 뗏목'같은 회화 대작들을 보며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걸어나가다 보니 일종의 '정체 구간'에 들어섰다는 걸 느꼈다. 모나리자가 앞에 있다.

모나리자가 그다지 크지 않은 그림이란 건 알았지만, 저렇게 작은 그림인 줄은 몰랐다. 세로 77cm, 가로 53cm. 온통 모나리자를 위해 열린 공간에 사람들이 그득그득 몰려 있었다. 한걸음씩, 서둘지 않고 내딛으며 모나리자에게 눈싸움을 걸었다.

사람들을 뚫고 맨 앞까지 나아가 한참동안 요모조모 찬찬히 살폈다. 눈, 입술, 얼굴, 손, 좌우 높이가 살짝 다르다는 배경..뭔가 안개가 스멀스멀 신기한 느낌을 자아내는 기법 탓이라곤 하지만, 역시 신비로운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주위에 웅성웅성대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없다면, 좀더 깊이 그 느낌에 젖어들 수 있을 텐데 아쉽다.

그치만 굳이 내가 파리에서 봤던 것 중 가장 멋졌던 예술작품을 꼽으라면..역시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중인 모네의 '수련' 연작. ([파리여행] 빛과 바람, 시간에 희롱당하는 수련..오랑주리 미술관.)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의 기법도 신묘하긴 하고, 모델이 된 그녀/그의 웃음도 신비롭긴 하지만, 그냥 난 수련이 더 맘에 들었다.

이런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촛불 시위때 등장했던 '유모차 부대'의 어머니들의 이미지도 왠지 오버랩되었고-맥락이 동일하진 않고 역할 역시 다르다지만-, 가운데 여성의 단호하고 결연한 표정이 가슴을 흔들었다.

그런가 하면 이런 평화롭고도 달콤한 풍경..화환을 만들어 자신의 허벅지를 베개삼아 기대 쉬고 있는 아가씨에게 씌워주려는 남자. 여성의 분홍빛 뺨과 발뒤꿈치가 앙증맞다.

레오나르도의 또다른 그림, '두 명의 성녀와 아기 예수'.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년의 기억"이라는 논문에서 이 그림이 그의 성적인 배경이라거나 어릴 적의 기억, 보다 정확히는 어머니에 대한 금기된 욕망을 해소하는 하나의 수단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논문에서 프로이트는 이 그림에서 발견된 '독수리'의 형체가 레오나르도가 종종 사로잡혔던 '독수리'의 환상이 반영된 것이라 말하며 이런저런 성적 욕망으로 읽어내는데, 저 그림 속 파란 옷자락이 바로 그 형체라 한다.
한참동안 그림 앞에 앉아 대체 어디에 독수리가 있는지 찾고 있을 때, 마침 옆에서도 유럽인 커플도 그 이야기를 하며 새를 찾고 있었다. 그들도 프로이트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그 새를 찾아내려 하고 있었던 게다. 우리는 한동안 대체 새가 어디에 있을지, 머리가 어디고 꼬리가 어딘지 뚫어져라 그림을 바라보았었지만 결국 그들은 포기하고 모나리자에게 가버렸댔다. 난, 내가 찾은 저게 아닐까 싶은데..모르겠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어귀에서 바라본 루브르 궁전. 그 중에서도 팔레루아얄 뮤제 드 루브르 메트로 역과 인접한 리슐리외관. 사람드이 이제 조금씩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다들 저녁을 먹으러 가거나, 다른 곳에 가서 파리의 야경을 감상할 생각이겠지. 난 이제 9시쯤까지만 3층 회화를 둘러보면 되니, 한결 여유로워졌다.

멀리 보이는 카루젤 개선문의 연한 핑크빛 대리석이 단정하고 따스한 느낌이다. 그림자가 잔뜩 길어진 저녁무렵.

3층 쉴리관

앗..이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랬다. 이건 어렸을 적부터 우리 집에 있던 도록에 포함되어 있던 그림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누나 또래라 생각하며 감상했었고, 조금 크고는 비슷한 나이대라 생각했었는데, 여기서 예기치 못하게 다시 만난 그녀는 이제 여동생이겠다 싶다. 하아....예술의 불멸성이란. (여전히 이 작품의 이름과 작가 명은 모르고 있다.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시길..ㅡㅡ;)

정말 발을 질질 끄는 수준이 되어 가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을 걷기 시작한 지 거의 8시간여..4층의 회화 중에는 익히 알고 있는 것들도 많았고,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대작들도 많았지만 카메라를 들이댈 기력이 쇠해가고 있었다. 사실 속으로는 얼른 다 보고 나가서 좀 쉬자, 란 느낌도 없지 않았고, 또 한켠으로는 좀만 더 버티고 여유롭게 보자..언제 또 루브르 오겠냐..란 오기도 있었고.

그 중 이 그림은 지친 발을 좀 오래 쉬게 할 만한 유인이 되었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초상', 파스텔로 그려진 그림이라 그런지 색채가 부드러우면서 풍요한 느낌이 들고, 또 그러면서도 무지 세밀하고 섬세한 묘사를 해냈다는 점에서 경이롭기까지 했다. 모델인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루이 15세의 애첩이었고,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그녀는 당시 사교계의 여왕이었다고 한다. 그랬을 거 같다. 아름다우면서도 지적인 느낌을 잃지 않았고, 정숙해 보이는 듯 하지만 일변해 요부스러움을 과시할 만큼 충분히 유연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표정이다.(딱 내 이상형이다..ㅡㅡㆀ)

3층 리슐리외관에서는 루벤스의 대작들도 감상하며 파트라슈와 네로를 생각했고, 다른 고전파 화가들의 회화를 둘러보았다. 약간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았지만 역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려면 오르세 미술관을 가야 한다는 말이 맞지 싶었다. 그리고 난 이제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신발을 벗고 보니 심각할 정도의 악취와 함께 거대한 물집이 생겨 있었다.

뭐...저렇게 아름다운 루브르 궁전의 야경을 앞에 두고 할 이야기는 아니지 싶다.

이제 박물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고, 시간도 거의 9시에 육박해 가던 시간에 난 루브르 박물관 10시간 산책 대장정을 마칠 수 있었다. 아직 문이 닫히기 전까지 시간은 좀 남았고, 난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을 다시 한번 찾아가 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으레 전시회 같은 곳에 가면 내가 취하는 코스가 그렇기도 하다. 우선 한번 쭈욱 둘러보고, 그다음엔 맘에 들었던 작품 몇 개를 찾아가 다시 한번 감상하는 것.

3층에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을 다시 만나고, 루벤스의 그림들을 다시 보고, 2층으로 내려오며 니케를 다시 만났다. 조금 사람이 적지 않을까 해서 모나리자를 만나러 갔더니 거긴 암만해도 나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빠질 생각이 없나 보다. 여전히 시끄럽고 웅성웅성 소리가 울려서 잠시 후에 나왔다. 소란스러움을 피해 제리코의 '메뒤즈호의 뗏목',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 '나폴레옹 1세의 제관' 같은 것들을 다시 둘러보던 중, 박물관의 폐문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9시 반 루브르 OUT. 정말 지쳤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발에서 은은하게 떨림이 느껴질 정도였다.

바람은 소슬한데 루브르의 야경은 왠지 눈물겹도록 따스해서, 왠지 미친듯이 센치해져서 순간 마음의 갈피를 잃었다. 방금까지 내가 있었던 그 공간의 넘치도록 풍요한 감성과 자극들이 원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배가 차면 조금 낫지 않을까 싶어서, 생각없이 노틀담을 향해 걷다가 예술의 다리를 지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떠들고 노는 걸 보고 있자니, 왠지 배도 고프고 가슴도 고프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니 이건 완전 한국의 가을 날씨였고, 루브르를 나서며 순간 난 '가을'을 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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