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온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떠나기 전에도 구시다 신사가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 또한 어떤 의미가

서려 있는지 그런 건 잘 모르고 갔다. 다만 여행정보를 여기저기서 긁어모으면서 살짝 흠집나듯 기억에 남았던

건 누군가 구시다 신사에서 좋아라 하며 일본식 참배를 하는 사진을 올렸던 여행후기에다가, 또다른 누군가가

이곳엔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보관되어 있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마냥 좋아라 할 수만은 없지 않냐고 쓴소릴

던졌던..그런 익숙하고도 새삼스런 반응이었다.


익숙했던 이유는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가 마치 '연리지'처럼 얽혀 있어서 어딜 건들든 양국의 상처와 피해의식을

자극하기 십상이란 것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부부처럼 일심동체가 된 연리지라고 해도 알고 보면 하나로

붙어버린 지들끼리 영양분과 수분을 더 많이 흡수하겠다고 싸우지 않을까 싶다. 인간과 생명체를 구성하는

유전자 사이에도 이기심이 그칠 날이 없어 쉼없는 전쟁과 꼼수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일본이나 한국이나

오랜 원한과 오랜 우월감-열등감 관계에 부비부비해왔기 때문에 더욱 날카롭고 민감한 듯 싶고, 그게 만성화되다

보니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거 같다.


그러면서도 또 새삼스러웠던 이유는, 그런 이야기와 감정의 골이 남아있는 그 경계에 내가 직접 찾아 본 적은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지 싶다. 말하자면 옛 적국, 혹은 옛 조국의 원수 품을 찾아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적으로)

생생한 과거를 들추어 내고 마는 기회가 될 거 같았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은 코빼기도 못 봤고 난 그런 뭔가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공간에 들어섰다기보다는 그저 조용한 도심 속 절간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칼은

유료 공개인데다가 공개 기간이 따로 정해져 있다나 머 그렇댄다. 별 관심도 없긴 했다. 명성황후의 피를 부른 건

그 칼이 아니라 이미 헐떡대며 숨을 몰아쉬던 오랜 왕국, 그리고 강성하게 일어나던 이웃나라와의 구조적 문제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다. 그리고 내친 김에 말하자면, 명성황후가 조선의 국모란 말은 좀 찝찝하다.

그 말이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읽혀지는지, 어떻게 대통령과 관료 등 근대적 정치시스템을 전근대의 왕, 사대부의

이미지와 중첩시킬 수 있는지까지 생각하면 더 찝찝하다.

조선의 국모란 말, 그것만 놓고 봐도 그렇다. 시해당하기 전 당대 조선사람들에게는 외국문물에 홀린 사치스러운

여자라거나, 시아버지 대원군을 잡아먹고 무능력한 고종을 이리저리 조종하는 교활한 여자라거나, 그런 평들이

적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실제로 그녀가 조선이 혼란기에 길을 찾아 나서는데 어떠한 공헌을 했는지, 어떠한

비전을 갖고 있었는지도 명확히 드러나지 못할 만큼 당시의 조정이 미미한 힘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도,

최소한 그녀가 조선왕조와 조선이란 나라의 근본, 백성들을 위해 크게 품을 줄 아는 '국모'였는지는 의문이다.


가설 1. 그녀는 말하자면,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의 손에 처형당함으로써 '국모'의 지위를 획득한 게 아닐까.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자국의 '신민'되었던 자들에게 처형당하고 왕조 역사의 종지부를 찍었다면, 그녀에게 과연

'국모'라는 칭호가 가당키나 했을까. 물론 그녀를 제거함으로써 대한제국황실의 외교 다변화 노력(혹은 전략없이

시류에 따라 임기응변하는데 그치는, 힘없는 국가의 우울한 이이제이 노력)이 좌초하였다거나 고종에게 확실한

무력 시위를 통해 다른 움직임을 미연에 봉쇄할 수 있어 이후 일본의 침략이 수월해 졌다는 지적도 있지만..결국

전근대적 사회를 극복하려면 그녀와 황실은 어떤 식으로던 전면에서 물러나야 했을 거다. 최소한 그런 거다.

그녀를 '국모'라고 칭하거나 그에 준하는 애정을 표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 


그녀가 드라마틱한 목소리로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외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지금 우리가 한국인임에서

비롯하는 일말의 가슴뭉클함을 느낀다면, 그건 아마도 그 외침의 대상이 외적, 일본 제국주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아닐까 싶다. 어떤 면에선,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일본인에게 당했기 때문에 그녀가 외려 민족주의적인 아이콘으로

스러져가는 왕조의 상징으로 예기치 않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은 건지도 모르겠다.


가설 2. 그녀를 국모라고 칭하는 데에는, 채 펴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대한제국 혹은 제왕적 시스템에 대한 일말의

기대나 환상이 있는 건 아닐까. 이건 좀더 위험한 건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라곤 하지만

허약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과 얼개 이외에 사람들의 의식이나 사고방식은 여전히 전근대에 머물러있는 면이 없지

않은 거다. 예컨대 한국에 여전한 사농공상 류의 귀천의식, 대통령과 공무원에 대한 거대한 복종(그만큼 거대한

불만은 차치하고라도), 교육(이라고 쓰고 시험이라고 읽는다)을 통한 신분상승의 오랜 꿈, 그리고 성숙한 토론을

어렵게 하는 온갖 권위(나이, 학력, 지역...)에 대한 인정. 이야기의 소요를 일으키고 시끄러운 논쟁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악으로 여기는 나라에서 누군가 '성군'이나 '천자'와 같은 제왕적 지도자를 다시 소환하고 싶어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실제로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로 한번 뽑은 대통령이니 더이상 어쩔 수 없다는 류의 입장이나, 박정희같은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시끄럽기만 한) 정치인들 다 쓸어넣고 비전을 제시하길 바라는 류의 시대

착오적인 입장이나, 일정한 지지를 받고 있는 육영수같은 영부인상을 얻기 위해 시장통과 뒷골목으로 발품을

팔고 또 일정한 효험을 보고 있는 정치인의 아내들이나, 오로지 부모의 은덕을 입어 아무런 정견도 소신도

없는 사람이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굳건한 상황이나...후우...정말 '국모', 그리고 '국부'를 원하는 걸까.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과 왕에게 바라는 것은 달라야 하며, 대통령을 대하는 예의는

하늘의 현신인 왕에 대한 예의와는 달리 인간을 대하는 예의이면 차고 넘친다. 대통령님, 대통령 각하, 요딴 단어는

좀 피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아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파란 기와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과 그 주변 똘마니들은

전혀 모르는 거 같아서 중언부언해버렸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는, 때로 아니다 싶을 때 욕도 할 수 있고

성질 못이기면 자리에서 끄집어 내리자고 외칠 수도 있고, 실제로 끄집어 내릴 수도 있는 예의도 포함되는 게

아닌가 싶다. 더구나 12일 라디오연설에서처럼, 자신이 야기한 국회 내 혼란상을 두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해머'로

내리쳤다느니 따위 막말을 하는데야...

어쨌든,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구시다신사 이곳에 있다고 해서, 글쎄..굳이 이곳을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이를

악물며 돌아본다거나, 괜시리 숙연해지고 장엄해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건, 옵션이다.

사람이 죽은 것 그 자체가 분명 비극이지만, 거기에 뭔가 의아한 정치적 의도가 첨가된 의미를 부여하며

'충성스런 한국인(더구나 당연하다는 듯 조선인의 연장으로서의 한국인)'으로서 의식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싶은 사람이나 그런 진지함을 뒤집어 쓰던가. 역사의 무게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굳이 "어떻게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있는 신사에 들어가 웃고 박수치며 절할 수 있느냐"라고 갈구지 않아도 뭔가를 생각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해 내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돌아본 구시다 신사, 방금까지 주절주절 써내리면서 몇장씩 사진들을 올렸지만..다른 신사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소원을 빌고, 물로 입을 헹구고, 잘 다듬어진 정원을 보고..다만 이 때 무슨 행사가

있던 건지 아님 여긴 늘 저렇게 대나무 장대를 세워두는지 모르겠지만, 저거 왠지 익숙하다. 무당들 집에 세워진

깃대랑 비슷한 의미, 비슷한 유래 아닐까.

절하는 법이 구분동작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1) 사당 앞의 저 굵은 줄을 한번 당겼다가 놓고는, 가볍게 목례하듯

반절을 하고, 2) 두번 절하..라는 거겠지? 3) 박수를 두번 짝 짝 치고, 4) 다시 한번 절을 한다. 5) 마지막으로는 음..

또다시 가볍게 목례하듯 반절을 하라는 건가..사람들이 돈던지고 저렇게 뭔가 꾸벅꾸벅 하는 걸 옆에서 아무리

지켜봐도 왜그리도 구분동작과 매칭시켜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던지.


함 나도 해봤다. 너무 어설프고 겸연쩍어서, 뭔가 빌고 어쩌고 한다는 생각은 하나도 없이 그냥 몸짓만 최대한

따라해보겠다는 심정으로 했다. 취한 것은 흉내, 버린 것은 내용..이랄까. 아무것도 빌지 않았다.

소원을 적어 주렁주렁 걸어놓는 저 나무판..그림은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이 복던지는 고양이가 젤로 인상적이다.

눈밑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느낌으로, 무지 지치고 힘들어보이는 표정이랄까. 왠지 저녀석한테 복을 받아야 할 게

아니라 저녀석한테 복을 되려 좀 줘야 할 거같은 맥빠진 눈빛. 역시..눈빛이 생명이다.

신사 내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화려한 가마. 저건 누굴 태우고 언제 쓰이는 건지, 박물관에 진열된 과거의 유물과

달리 아무런 설명도 안 붙어있다. 그건 아마 여전히 실제로 쓰이고 있고, 박제화되지 않은 채로 사람들의 손때가

더해지고 있기 때문일 듯.

좀 뜬금없다 싶던 이 오줌싸개 소년은 대체 왜 여기에 있을까. 빨간 머플러를 감고선 안 어울리게시리 시크하달까

어른스럽달까 싶은 표정을 짓고 있다. 물이 쫄쫄쫄 나오는데, 리얼하구나 싶었다.

신사 한켠에는 무슨무슨 단체나 개인이 봉헌한 듯한 저 엔자 문이 차곡차곡 세워져있었다. 그리고 그 열주문들이

굳건히 박힌 흙바닥에 빈틈없이 채워져있는 갈퀴질 자국. 저렇게 빈틈없이 바닥에 고랑을 내는 건 쉽지 않을 텐데,

자신이 어디로 들어가서 어디로 빠져야 할지, 그리고 언제 밀고 언제 당겨야 할지 같은 '밀고 당기기'의 고수가

한 갈퀴질임에 틀림없다.

신사 본당은 아니었고 옆에 별채처럼 세워져있던 건물. 프랑스에서 네모난 하드 모양으로 싹둑싹둑 가차없이

잘려있던 가로수들에 깜짝을 놀랬었는데, 여기는 뭐랄까 원통형 모양으로 나무를 정돈하는 건가. 그치만 주변의

유유한 연못과 휘영청 늘어져내린 나무들 사이에서 저렇게 혼자만 "Simpson"와이프같은 머리 모양으로 가꿔져

있다는 건 그다지 나무에게나, 보는 사람에게나 유쾌한 기분은 아닐 거 같다.

그리고 일본스럽다..라는 식으로 내게 굳어지고 있는 이미지들, 야박하리만치 단정하고, 나무 자체의 발색을 살려

차분한 느낌의, 화려하지 않고 잘 정돈된 네모난 벤또꾸러미같은 신사 건물들.

이 처자는 누군데 딱 찍혔는지 모르겠지만, 구시다신사에서 밖으로 걸어나가는 길. 뭔가 등불도 주렁주렁하고,

글자 빼곡한 비석도 좌우로 시립해 있고, 그리고 신사 밖을 향해 뻗은 대리석 포장길을 따라 걸으면 바로 버스와

사람들이 번잡스럽게 살고 있는 후쿠오카 시내라는.

놓칠 뻔 했는데, 한켠에는 또 돌로 만들어진 그 예의 문들이 차곡차곡 채워져있다. 그리고 그 앞쯤에서 뭔가를

이빨가득 물고서 수호하고 있는 개인지 늑대인지 여우인지, 여튼 네발짐승 하나의 석상.

구시다 신사는 사람들이 오며 가며 담배 한대를 맛있게 피우고 떠나는 흡연장소의 역할도 하는 것 같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사이 적지않은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담배를 한대 뻐금대며 태우고는 떠나갔더랬다.

그리고 그 앞에 놓여있던 재떨이가 압권. 이런 사고가 잦은가..? 아이의 얼굴과 담배의 불티부분, 그리고 어른의

손 높이가 같은 높이로 그려져있다. 그 밑에 떡하니 붙어있는 거대한-어른 몸보다도 길고 두꺼운-느낌표.




이번 여행기는 좀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흘러가는 거 같은데..하카다항에 내려서 패키지 관광객들이 우르르 대형

버스에 올라타고 나면, 다소 한산한 느낌의 하카다항 건물 앞 도로변에 붙어있는 버스 정류장 안내판. 일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적혀 있다. 텐진과 하카다 역 방면 버스가 몇 번인지, 운임이 얼마인지에 대한 2008년 11월 버전

정보랄까.

역시 하카다항 국제터미널에서 주요 버스 노선이 몇시몇시에 출발하는지에 대한 2008년 11월 버전 정보.

저렇게 세분화된 주중, 토요일, 일요일의 버스 시간표는 거의 오차없이 딱딱 제시간을 맞췄던 것 같다. 한국선

이리저리 구불구불해서 좀체 불편한 지하철과 배차 간격이 쉽게 지켜지지 않는 버스 때문에 도무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데, 저렇게 시간대를 딱 지켜서 운행되는 버스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막차 시간이 정말 이르더라는 것 정도?

하카다항 터미널건물에서 나와 처음 밟은 후쿠오카 땅, 그리고 처음 본 풍경은, 어찌 보면 살짝 김이 빠질 만큼

한산하고 변두리스러운 느낌의 도시랄까. 그치만 하늘이 어찌나 이쁘던지 마냥 설렜었다.

아까 그 버스 표지판 앞에 있는 정류장. 제각기 캐리어 하나씩 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버스 노선도를

눈여겨 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지도를 신문처럼 펼쳐 보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그 위로 그야말로 하늘색이

그득히 담긴 하늘.

경제학 복수전공을 하면서 졸업논문을 준비할 때, 버스나 지하철 광고판이 얼마나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일종의 경제적 UP & DOWN의 지표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아이디어를 냈었다. 지하철광고공사나 그런

곳의 협조를 얻어 지하철 광고가 어떤 형태로 몇 곳이나 가능하며, 실제로 팔려나간 정도는 얼마나 되는지 자료를

얻을 수 있다면 경기를 선행하거나 후행하는 식으로 추세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아침저녁으로 보는 텅빈 지하철 광고판, 계약기간이 지나 뒤집어 게시되고 있는 광고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 탓일까. 외국에 나가면 광고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채워져 있는지를 꼭 유심히 보게
 
된다. 여름에 갔던 파리 지하철은 빈 공간이 거의 없이 광고가 꽉 차 있었고, 이번 일본 여행에서 봤던 버스와

지하철 광고판도 그닥 텅 빈 곳은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이런 식의 버스 사용안내로 채워진다고는 해도.

앞에 타신 한국인 아주머니들은 소녀처럼 설레셨다. 당장 버스를 타고 요금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부터 설왕설래

하시면서도 마냥 즐거우신 표정들. 그분들께 알려드린 것처럼, 버스 뒷문으로 탑승해서 정리권이라고 적힌 곳에서

번호표를 떼어내 자리에 앉으면 된다. 그러면 버스가 출발하고, 앞쪽에 있는 1부터 32까지 숫자가 적힌 전광판에

버스 승차금액이 나타나게 된다. 구간에 따라 요금이 할증되는 시스템인지라, 정류장을 많이 지나칠수록 180, 220,

250..뭐 그런 식으로 숫자가 커진다. 그리고 내릴 역이 되면 자기가 갖고 있던 정리권 번호에 맞는 금액을 지불하고

내리면 된다는 식..

정리권은 이런 식으로 생겼는데, 아주 엷게 한자로 정리권, 그리고 오른쪽엔 좀더 진한 글씨로 숫자가 적혀있다.

흔들리는 차안에서 일케 땡겨서 찍을 수 있었던 이유, 버스가 신호에 걸리거나 해서 멈추게 되면 바로 시동을

꺼버렸다. 에너지 절약 차원인 걸까 아님 공기오염 방지 차원인 걸까..이래저래 좋은 거 같긴 하다. 시동을 자꾸

껐다 켰다 하면서 기름이 더 소모되는 게 아니라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머물었던 호텔은 하카다역 옆의 도요호텔(東洋호텔)이란 곳이었다. 머 특별할 거 없는 조그맣고 깔끔한 비즈니스

호텔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하카다역 근처에 있는 호텔들보다 텐진 시내에 있는 호텔들이 더 놀기에는 좋지 않나

싶지만, 암만해도 하카다역 근처가 좀더 숙박료가 쌌던 거 같다. 그리고 머, 후쿠오카가 그렇게 거대한 도시도

아닌지라, 사실 숙소는 어디든 상관없다. 워싱턴 모뉴먼트 옆에서 노숙도 했었는데 모.

도요 호텔. 밋밋한 외관만큼이나 할 말없는 밋밋한 내부 인테리어였지만, 그래도 2박3일간 여행의 베이스캠프가

되어 중간에 쉬러 돌아오기도 하고..자그마한 술판을 차리기도 하고..

11층짜리 건물이었구나, 머물렀던 곳이 8층이었던가..그러고 보니 호텔을 들고 나면서 한번도 다른 손님들과

함께 엘레베이터를 탔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심플한 '開', '閉' 표시만 덩그러니.

호텔 로비. 사실 이거 호텔이라기에도 좀 민망할 정도지만, 그렇게 고급스럽고 럭셔리한 게 아직 몸에 맞지 않는

나이인지라(혹은 나이라고 주장하는지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거칠고 무질서스러운 나라들에서 막무가내식으로 돌아다니는 배낭여행이 훨씬 좋다. 다만 저녁 때에는 단백질이나

좀 그럴듯한 음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싶다는 생각이 슬몃 들기는 하고 있지만.

호텔에 짐을 던져주고 걷기 시작한 거리에서 딱 마주친 기모노 복장의 아주머니 네 분. 일렬횡대로 인도를 꽉

채우고 앞서 걷고 계셨는데 어딜 가시는 건지. 뭔가 7인의 사무라이 필이 살짝 나는 게 어딘가 한판 하시러 가시는

건 아니겠지.

거리의 핸폰 가게. 우와~ 이뿌다, 싶은 핸드폰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엘쥐의 쪼꼬렛폰을 여태 쓰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로, 아직 맘에 드는 디자인의 핸드폰을 못 봤다..란 거였는데 글쎄, 앞줄의 귀여운 것들이나 뒷줄 오른켠의

빤짝이는 유리상자같은 것들이라면 심각하게 생각해 볼 것 같다.

무슨 가게인지 얼핏 감이 올 수 밖에 없었다. 커다란 강아지 인형, 그리고 창문 가득 붙어있는 개발바닥 자국.

멀찍이 보면 강아지 사진이나 엑스레이 사진같은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실은 요 강아지 인형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게 귀엽다 싶어서.

후쿠오카에서의 첫 점심. 구시다신사를 향해 걷던 도중에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는 작은 골목을 발견했다.

뭔가 인사동 뒷골목이나 명동 뒷골목 같은 곳의 맛집 거리같은 느낌? 이 골목에서 역사적인(?) 첫 점심을

해결하기로 맘먹고 골목으로 진입했었다.

실망스럽게도 아직 시간이 이른지 문이 닫혀있는 가게가 많았다. 그 와중에 두둥, 문을 열고 있는 가게 발견.

라멘집이었고, 하카다의 라멘은 위시 리스트에 들어있었고, 배는 이미 고팠으며, 다리도 아팠기 때문에 냉큼

들어섰다.

자그마한 가게에 뭔가 사진과 장식품들, 쪽지가 빼곡하게 붙어있고, 양념장통이나 소스통마저도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비적대며 빼곡하게 공간을 메꾸고 있는 느낌이었다. 요약컨대, 왠지 이집 맛있겠구나 하는 느낌.

일본어로만 씌여진 메뉴판에 몇 가지 런치 스페셜이 있길래, 그 중 아무거나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었더니 요런

라멘이 나왔다. 저 안에 들어있는 무려...곱창. 곱이 가득한 곱창이 아낌없이 잔뜩 들어있었고, 가뜩이나 돼지뼈로

푹 고아진 걸쭉하고 진한 국물맛에 곱창의 느끼함이 더해졌다. 무지 맛있게 먹었다. 국물까지 싹 먹었더니 뭔가

장어를 세네마리 구워 먹은 만큼 몸보신을 했다는 느낌? 힘이 불끈 솟았다.

그렇게 힘내서 골목을 나서니, 바로 구시다 신사가 보인다. 고지를 불과 몇 걸음 앞두고선 든든히 속을 채웠으니

가히 최상의 타이밍. 그리고 골목 한 옆에선 나를 향해 웃어주고 있는 한류스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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