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퇴근할 때 두번 놀란다. 퇴근할 때에도 날이 여전히 훤해서 놀라고, 그런데 여전히 추워서 또 놀라고. 제길,

기나왔던 개구리들도 죄다 얼어죽지 않을까 싶도록 쌀쌀하다. 이번 겨울은 참 길고, 지루하고, 무겁고도

추웠다. 아니 여전히 춥다.

#2.

이승환 콘서트를 보고 왔다. 이천까지 가서, 이천쌀밥정식을 먹고 콘서트장에서 두시간 반 내내 방방 뛰고

소리지르다 왔더니 목이 살짝 가셨다. 언젠가부터 그의 과격한 바이브레이션과 꺽음이 부담스럽다 생각했었고,

결혼 후 망가진 아티스트의 영혼이라 생각했었지만, 여전히 최고다. (혹은 헤어짐 후 다시 최고인지도.) 게스트

하나 없이, 자신의 노래들로 두시간반을 온전히 꽉 채웠던 시간. 나도 꽉 차버렸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이번

콘서트 제목은 '空 콘서트'였다. 99년엔 '무적無敵 콘서트'.

그의 노래를 듣다보면 감정이입이 되는 거다. 저 절규는 채림을 향한 걸까, 저 황홀하고 달콤한 고백은 채림을

향한 거였을까. 괜히 순진한 척 사랑을 믿고 말하고 싶어졌던 건지도 모르지만, 그의 노래들은 가사 하나하나

허투루 넘어갈 수가 없게 만든다. 그렇게, 99년 이후 십여년 만에 그의 콘서트장을 다시 찾았던 소감.

#3.

MB와 유인촌의 피해자 1인이 요새 읊조린다는 '권주가' 한구절이 문득 와닿았다.

"아흐, 인생이 귀치않다. 처마 밑 거미줄에 내 목을 맬까. 호박잎 고인 이슬에 빠져죽을까."

貴하지 않다. 귀치 않다. 귀찮다. 귀찮다는 뜻은 그런 거였다. 귀하지 않으니 에라 모르겠다, 쌈빡하지 않으니

에라 모르겠다. 아 귀찮아. 귀차니즘의 기원은, 귀하지 않은 것에 대한 홀대 내지 천대.


아직 봄의 훈풍도 안 부는데 봄을 타기 시작했나보다.


#4.

사무실 컴터의 '받은 파일', '네이트온 받은 파일' 폴더를 정리하려니 온갖 파일들이 그득하다. 위에 올려둔

그림들도 그런 것들이고, 그 중 맨 마지막 사진은 작년인가 결혼식 참석차 부산 해운대에 가서 찍힌 뒷모습.

차라리 오프라인으로 남아있는 것들이면 그냥 버리고, 태우고, 그렇게 치울 것들이 파일로 남아있으니

지우기가 쉽잖다. 지워도 지운 거 같지 않아서 문제.


여튼, 이제 다음에서 'ytzsche 블로그'로 찾으면 여기가 나온다. 기념삼아 캡쳐 한방.





"김 차관은 "나로호는 발사과정에서 1단과 2단분리, 위성분리를 성공했으나 페어링 분리이상으로 위성궤도 진입에는 실패한 것으로 분석됐다"면서 "페어링이 한쪽만 분리돼 남아있는 페어링 무게로 인해 위성궤도에 진입하기 위한 속도를 얻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또 "과학기술위성 2호는 위성은 궤도진입을 위한 속도(8㎞/s)보다 낮은 6.2㎞속도로 떨어져 공전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지구로 낙하하면서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뉴시스, 09.08.26)


사실 날아오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날려 보내지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고 삭막해 보이기만 하는 그곳에 가는 걸,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는 게 본심이었다. 게다가 결국 거기에 도착하게 될 것은 내 전부가 아니라 했다. 거기까지 닿기에는
 
내가 가진 것들이 쓸데없이 많다며, 1단, 2단 두 차례에 걸쳐 내 가죽을 벗겨낸다는 게 그들의 계획이었다. 그들은 몰랐다.

합리나 이성으로 따지고 들면 마냥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이기만 하다는 그 '외피' 역시 나를 나이게 하는 그 무엇이었다.


조그맣고 네모난 위성박스, 그건 나이기도 하지만 또 '나'라고 이야기하기엔 너무 작고도 어눌한, 그래서 낯선 것이었다.

그 안에 꾹꾹 눌러담겨 응축된 것들은 정말이지 생존에 꼭 필요한 것들만 담겨 있었다. 하늘엔 쏘아올려지면 별도 딸 수

있다고, 지상에선 꿈도 꿀 수 없는 것들을 맛보리라던 연구원들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뱅글뱅글 무한에 가깝도록 같은 궤도를 돌 뿐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게 로켓으로 태어난 

나의 밥벌이 수단이자,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쇼였다.


물론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발사대의 믿음직한 팔베개를 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로켓이 발사대를 떠나 우주로

향하는 건, 인간에 비기자면 자궁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같은 셈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이야기는
 
로켓이란 나고 자라면서 어쨌든 쏘아져야 한다는 거였다, 부서지던 폭발하던 간에. 그렇기에 더더욱 불필요한 것들,

부수적인 것들을 떼어내고 궤도에 돌입하는 것에만 몰두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부서지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거추장스런 것들은 모두 제거해야 했다. 허세부릴 시간이 없었다.


생각보다 궤도 진입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방금 '1단 추진체'가 떨어져 나갔다. 사실 좀 웃기는 이름이었다. 이미

수년이나 함께 해온 것들, 무엇이 무엇을 위한 추진체라느니, 무엇이 핵심이고 무엇이 부록이라느니 이야기는 최소한

내가 입에 담을 이야긴 아니었다. 내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어느새 연리지처럼 꽁꽁 얽혀버린 '나'와 또다른 '나'는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가벼워진 몸이 덜컹, 하는 순간 걸쭉하고 빨간 유액이 조금 흘렀다.


그리고 난 조금, 변했음을 느꼈다.


혼란스러워졌다. 이건 내가 아냐. 내 편할 대로 버리고 취할 수 있는 게 아니라구. 알게 뭐야, 어차피 인생 별거 없어.

일단 안착하기만 하면 돼. 궤도에 자리만 잡으면, 그때부턴 딱히 힘들일 것도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다구. 그때부터

다시 '나'를 불려나가던 쪼개나가던 알아서 하면 되잖아. 어쨌든 성공한 로켓으로 기록되겠지.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을 모른 척 할 수도 없잖아. 로켓의 '정명'은 무한궤도를 지키는데 있다구. 일단 살아남고 보는 거야.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어두워서 눈뜨고 어두워서 눈감는 그런 어제같은 오늘, 오늘같은 내일이 계속될 거야.

그래서야 옆에 누가 있던, 안에 무엇을 품고 있던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 더이상 지탱하고 설 든든한 발사대도

없을 거고, 가슴떨리고 착잡하기 이를 데 없는 카운트다운도 없겠지. 힘이 다하는 날까지 그저 나로우주센터에

출근부 도장이나 찍으며, 매일 똑같이 바싹 마른 태양열을 씹어삼키며 연명하는 삶 따위.


이건 아니잖아. 발사대에서 밀려나는 건 선택할 수 없는 거라고 쳐도, 최소한 '로켓'에게 가능한 몇 가지 선택지는

남아있어야 하잖아. 화석처럼 굳어진 채 궤도상에 고여버린다는 건 손끝 하나 까딱못하는 미이라나 다를 바가 없다.

그야말로 박제된 천재, 도달해버린 화살, 멈춰버린 시계. 시간이 얼마 없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 안간힘을 써

방향을 틀었다. 발끝에서 시작된 진동을 잘 살려 머리 끝까지 고운 웨이브를 그리고 싶었는데, 임하룡이던가

옛 개그맨의 올챙이춤처럼 우스꽝스럽게 움직거린 게 다였다. 실은,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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