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파이잘리야 타워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사우디를 떠나기 전 최후의 만찬, 비록 며칠 안 있었다지만.

메리어트 리야드 호텔에서 멀리 어슴푸레 윤곽만 보이던 걸 아쉬워하던 그 뾰족한 뿔같은 유선형의 건물이다.

대체 애초에 뭘 형상화하고 싶었던 걸까, 건물에 조금씩 접근하면서도 계속 궁금했다. 단도? 칼날? 창? 아님...

죽순? 뭔가 봉긋 튀어나오고 날카로운 느낌이 강한 사각뿔 형태의 것..뭘까.

건물 상층부에 남보랏빛 조명 아래 잠시 어두운 부분을 지나치면 드문드문 불이 켜진 (그나마 평범해보이는)

층 공간들의 식별이 가능하다. 그 불빛없는 상층부 공간은 금빛 구가 틀어박혀 있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이 건물,

정말 뭘 형상화한 걸까. 날렵하게 빠진 유선형으로 다듬어진 사각뿔, 게다가 끝부분 가까이에는 금색 구까지

박혀있다니. 그나저나 건물에 조명시설은 꽤나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타워 옆에는 호텔 건물이 있었다. 렉서스니 크라이슬러니 벤츠니 베엠베(BMW)의 로고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그 앞 주차 공간에서 유독 많이 보이던 차종은 SUV. 암만해도 사막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니 딱 어울리는 곳이긴

할 거 같다. 저 T자형 하얀 불빛이 차곡차곡 쌓인 공간은 아마도 호텔의 라운지 공간이나..그런 거 같았지만,

모시고 다녀야 할 일행분들을 챙겨야 하므로 쫑긋 고개를 든 궁금증은 애써 눌러담았다.

타워에 들어서기 직전 뒤돌아 찍은 호텔의 전경. 아주 독특한 외관을 갖고 있었는데, 뭐랄까, 둥글게 휜 점토판에

네모난 빵꾸를 뽕뽕 격자무늬로 뚫어놓은 듯한 전면의 모습. 이미 어둠이 많이 깊어진 시간이었고, 배가 고팠기

때문에 다시금 궁금증을 즈려 밟아주었다.

리야드의 통치자인 왕자의 명을 받아 1997년 착공했다는 내용의 '머릿돌'이랄까. 알 파이잘리야 타워는 생각보다

오래 된 거구나, 사우디의 저력..아님 금력을 보여주는 거 같다.

타원 안에 들어서니 모형이 로비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다. 이 곳 역시 금속탐지기에 짐을 던지고, 나 자신 역시

스캐너를 통과해야 입장이 가능한 곳이었다. 아..저런 부속건물이 있구나, 하는 것보다는 그저 이 타워 자체가

참 신기하게 생겼단 느낌이다. 상해에 갔을 때도 동그란 구를 위아래로 두개 꼬치 모냥으로 꼽아놓은 건물, 이름이

동방명주탑이던가..그걸 보고 대체 촌스럽고 초현실적인 저게 뭐냐 했었는데, 그것처럼 똑같은 구를 건물 형태에

본격적으로 도입했으면서도 뭔가 세련된 느낌이다. 실용적인지는 차치하고, 건물의 날렵한 외관을 잡아주는 네개

선 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황금빛 구는 확실히 그럴듯하다 싶다.

로비 한 벽면에 장식되어 있는 낙타, 그리고 사막의 모래구름 풍경 사진. 사실은 이걸 찍는 척 하면서 저 벤치에

앉은 세 사람을 찍고 싶었다. 온통 까만 옷으로 전신을 감싼 채 두손 모으고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여성, 그리고

마치 신라시대 불상에서 느껴질 법한 우아하고 맵시있게 떨어지는 옷의 주름을 과시하려는 듯 쩍벌남의 자세를

과시하며 완연히 여성을 소외시킨 두 남성. 여성이 살풋 고개를 숙인 채 이야기에 공손히 귀기울이고 있는 듯한

자세가 왠지 이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의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다.

위의 사진을 찍고는 잽싸게 초점을 옆으로 이동, 안 그래도 일행분들이 저사람들이 여자 사진찍는 줄 오해하면

큰일난다고(실제로 사진 찍은 건데), 그러다 카메라 뺏긴다며 염려해 주셨다. 천장도 높고 공간도 꽤나 넓은

로비였지만,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건 단지 커다란 금속탐지기, 타워 모형, 그리고 드문드문 엉성하게 놓인

저 화분들. 휑뎅그레한 느낌이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10층이던가, 그쯤에 있는 식당으로 올라가면 드디어 밥을 먹을 수 있는 거다.

아무리 배가 고파 손이 떨려도 엘레베이터 문짝이 건물 모습을 담고 있는데야 또 게으를 수는 없지 싶어서.

10층, 통유리로 감싸인 실내의 레스토랑은 부페식, 양고기와 온갖 아랍 전통 음식이 가득했지만 그보다 내 관심은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실외 전망공간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온통 그쪽으로 쏠려 버렸다.

생각보다 사우디 리야드의 야경도 볼 만하다 싶었다. 그렇게 높은 곳에 오른 건 아니어서 거리나 건물의 불빛들을

위에서 내리꽂듯 본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살짝 비스듬한 각도로 편하게 보는 것도 좋았다.

건물들의 실루엣에 중간중간 끊겨나간 거리의 꼬마가로등 불빛들, 앞건물에 가리워진 뒷건물의 옆구리. 그리고

저 멀리 까만 하늘과 까만 땅의 경계를 그어주는 주홍불빛무리들. 그런 것들이 왠지 살짝 감질나면서도 못견디게

사랑스러워지는 순간. 저 불빛 하나하나가 사람의 심장이거나 생명 그 자체인 양 따스한 느낌이다.
큰길을 따라 주욱 늘어선 가게나 기타 자본주의적 공간들의 네온사인이 화려하다. 다국적기업들의 간판도 꽤나

많이 봤고, 베스킨라빈스, 맥도널드, 피자헛 이런 것들도 쉽게 눈에 띄는 곳이라 첨에는 살짝 당황했지만, 여기

사우디는 원래 그런 곳이었던 거다. 다른 아랍권 국가들처럼 반자본주의, 반미적인 투사형 국가가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왕정의 안위가 가장 큰 관심사일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


실외로 나서니 한바퀴 돌아볼 수 있게 사면으로 연결이 되어있었다. 한쪽 방향에서 한 장씩, 그렇게 네장을

찍음 되겠다 했지만 그게 또 아니다. 보다 밝고 불빛이 화사한 곳, 보다 어둡고 불빛이 귀한 곳, 고만고만한 높이의

건물들 사이에서 불쑥 뛰쳐올라 하늘을 찌르는 건물-랜드마크라고 부르는-이 있는 방향이 있는가 하면, 그 고만한

높이마저도 현저히 낮아보이는 주택가 지역쪽 방향이 있다는 걸 금세 알아채고 말았다.


확실히 심심하고 단조롭게 배치된 불빛들, 단순히 내 생각일까, 불빛도 한결 흐리멍텅해 보인다.

이게 내가 느낀 사우디의 이미지에는 훨씬 맞아떨어지지 싶다. 그러고보니 이쪽에는 가게 간판 불빛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다시 한번 비교해 봐도 뭔가 많이 다른 것 같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라 해도 다양한 풍경과 높이, 그리고 불빛이

공존하듯 이곳 리야드 역시 그런 게다.

사진을 얼추 찍고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실외에 마련된 자리 한 켠에 검은 옷으로 둘둘 감은 여성들만 세네명이

앉아 까르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거다. 순간 내 머리를 스친 두가지 생각, 실외의 전망을 위한 통로를

찍는 척하면서 찍어야겠다는 생각과 잘못 찍었다가 큰일나겠다라는 생각. 첫번째 생각이 카메라를 눈높이로

끌어올려 전광석화같은 속도로 셔터를 누르도록 시키는데 두번째 생각이 개입해서는 손을 잡아끌어버렸다.

그러니 이 사진은 내 머릿속에서 두가지 생각이 광선검의 뿜어나오는 섬광같은 속도로 충돌하며 빚어진 사고현장.
자리에 돌아와 밖에 여자들만 앉아 있다는 이야기를 하니, 나보다 앞서 그곳을 지나쳤던 일행 한 분은 그 여자들이

자신을 응시하며 말을 걸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신다. 알고 보니 이곳은, 일반인이 출입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장소라 왕족 같은 높은 신분이나 부유한 계층(이 두 집합은 대개 겹치기 마련이지만)의 여성들이 와서 다소간의

자유를 즐기고 가는 공간이랜다. 머릿수건, 히잡을 잠시 벗고 담배를 피거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여성끼리

와서 움직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다른 남성에게 말을 거는 일도 있는 곳. 그런 자유를 원하는 건 신분고하나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어쨌든 이곳은 거의 유일한 사우디 여성의 해방구라는.

실내 레스토랑 천장에서 별빛처럼 반짝이는 조명들. 창밖 어둠이 깊어질수록 실내도 점점 어두워지면서, 저 멋진

조명은 사실 아무런 조명으로서의 기능은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촛불이라봐야 음식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도나 알려주고 앞사람 얼굴이 웃고 있는지, 찡그리고 있는지 정도나 알려줄 뿐.


참, 술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사우디에선, 살짝 탄산맛이 나는 사과레몬주스를 술 대신 마셨다. 발효가 조금

되었는지 알콜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사과와 레몬맛이 섞여서 달콤시큼한 게 맛있는 주스같기도 하고 그랬다.

사우디는 비록 금주령으로 유명하고, 공식적으로 술을 팔지도 사지도 못한다고는 하지만, 또 음성적인 밀수로

들어오는 술의 양이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 술들은 대개 왕족들이 개인적으로 소비하게 된다는데,

일종의 암시장에서 수급상황에 따라 널뛰기하는 가격만 맞출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구할 수야 있다고 한다.

또 하나. 사우디의 밤거리를 달리는 차들을 보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떠날 때가 다 되어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불빛들이 강렬하게 눈을 찌른다. 마치 빙판위를 달리는 것처럼, 자동차의 불빛들이 아스팔트 노면위에서

잔뜩 궁글려져서는 더욱 번쩍번쩍 시야를 교란하고 있는 거다. 저게 고급 아스팔트라는 설명이었다.

왜 레이싱 도로를 보면 반질반질 윤이 나고 타이어와의 접착력이 높다고 하는데, 바로 그 아스팔트 도로라는 것.

비가 올 일이 일년에 하루 있을까말까 하다는 곳인지라 이런 매끄러운 아스팔트를 써도 거의 무방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대신 어쩌다가 정말 비라도 오면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진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불빛을 저렇게나 반사시키며 미끄러뜨리는 걸 보건대, 운전할 맛은 제대로 나지 않을까 싶었다. 거칠거칠한

표면 위가 아니라 벨벳처럼 부드럽고 매끈한 도로 위를 착 달라붙는 느낌으로 운전한다면..절로 엑셀레이터에

발이 가겠지. 차들이 아스팔트 위가 아니라 검은색 빙판 위에 버티고 선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화장실 표시도 남다른 사우디아라비아. 터번을 감은 턱수염 아저씨와 머릿수건 히잡을 쓴 망사 속의 아가씨가

각각 남여 화장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왠지 여성은 검은 색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남성보다 은밀하고 숨겨진 느낌이 든다. 단순히 조명이 직접

때려지지 않아 마침 광택이 조금 덜했던 걸 넘 크게 해석한 걸까.

남성이라면 잠시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난 첨 화장실에 들어가서 이걸 보는데, 앉아서 쓰란 건지 서서 쓰란 건지

순간 혼란스러운 느낌마저 일었었다. 저 거창한 칸막이도 흔히 보는 소변기 사이의 칸막이라기엔 좀 거시기하다.

비록 생긴 건 좌변기같이 길쭘하게 생겼지만, 어쨌든 이건 남성용 소변기. 서서 쓰는 거다.ㅡㅡ;

아침부터 시작한 상담회인데, 하루 종일 실내에만 있으려니 하도 답답해서 잠시 호텔 밖으로 나섰다. 여전히 호텔

문 앞에서 사람들과 짐들을 스캐닝하고 있는 금속 탐지기. 안그래도 내 손에 쥐어진 카메라를 불안하게 경계하던

보안요원은 내가 미친 척하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즉각 반응한다. 찍지 말랜다.


알았다고, 웃음기조차 없는 그 얼굴이 인상쓰면 정말 무섭겠다 싶어 얼른 밖에 나섰더니 어느새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은 알 파이잘리야(Al Faisaliah) 타워, 사우디 리야드의 가장 높은 건물 중의

하나이자 대표적인 랜드마크라고 한다. 붉고 노란 라이트불빛만 늘어뜨리고 호텔 앞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

초점이 안 맞은 채 찍힌 사진이지만, 왠지 이 딱딱하고 적대적인 공간을 조금이나마 부드러운 이미지로 기억시켜

줄 것 같은 사진. 하품이라도 하고 눈에 물기가 잔뜩 어린 채 쳐다보는 세상같다.

다시 상담회장으로 돌아가는 길, 불과 십 분도 안 되는 짧은시간 건물을 나갔다 들어왔지만 예외없이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했다. 우선 플라스틱 바구니에 카메라와 주머니속 잡동사니들을 빼놓고는 검은색 고무로 된 컨베이어

벨트 위에 얹는다. 그리고 그 바구니가 거의 소형차 마티즈만한 사이즈의 기계를 통과하는 동안 나는 공항에서

흔히 보는 탐지기를 통과해서 스캐너로 사지를 스캔당한다. 통과. 당할 때마다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상담회장 바로 옆에 카펫 판매장이 있었다. 호텔 내 기념품점이야 어느 나라에나 있고 이곳에도 이런저런

기념품을 파는 매장이 따로 있었지만 카펫을 파는 곳이 아예 이렇게 따로 있을 줄이야. 잠시 들어가서

한바퀴 돌아보며 카펫의 문양과 촉감을 구경하고 나왔다. 따스하고 보들보들한 느낌이 손끝을 스치는 게

둘둘 감고 있으면 포근할 거 같다.

메리어트 리야드 호텔의 1층 로비. 은근하지만 화려한 조명과 야자수가 휘영청 늘어진 느낌이 그럴 듯 하다.

두바이 공항과 달랐던 점은 저 야자수들이 전부 진짜였다는 점, 그리고 잎사귀에 먼지가 낄 새도 없이 잘 관리되고

있어서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였다는 점. 역시 호텔은 가오로 먹고 산다.

별 모양으로 늘어뜨려진 조명과 저 멀리 초대 국왕, 선대 국왕, 그리고 현재 국왕의 초상화가 보인다. 흡연이

자유로운 아랍 문화답게 호텔 로비에서던, 복도에서던 흡연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

내가 들은 기억으론 가운데가 초대 국왕, 왼쪽이 선대 국왕, 그리고 오른쪽이 현재 국왕이라고 했던 거 같다.

가운데 아저씨가 입고 있는 검은색 옷(사실은 왼쪽 오른쪽 아저씨들도 입고 있지만)은 굵은 금색 실로 치장되어

상당히 화려한 느낌을 주는 의례복으로, 왕가의 사람들이 공식적 행사에 참여할 때 입는 복식이라고 한다.

호텔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엘레베이터 앞 재떨이. 거리낌없이 아침부터 담배를 피워대는 투숙객들 때문에,

두 개층을 오르내리며 겨우 흐트러지지 않은 재떨이 모래무지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알고 보니

수시로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치우고 모래를 일부 걷어내고는 다시 메리어트 호텔 마크를 저렇게 찍어 놓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산책을 겸해 호텔 밖을 또(!) 나섰다. 호텔 바깥의 녹색 공간은 시간맞춰 분사되는 이런 스프링쿨러

시스템에 크게 빚지고 있었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몇십분 동안 쉼없이 흩뿌려지는 물들, 중동권에서 물은

기름보다 비싸다던가.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자 무진장한 수준의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사우디에서 더욱더

실감나는 말이다. 심지어 이들은 천연가스는 아직 개발도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상태인 거다.


보안요원이 따라나오더니 사진 찍지 말랜다. 왜!! 냐고 묻고 싶었지만, 역시 무서운 얼굴에 쫄아버렸다. 나무에

물주는 거 찍겠다는 나도 니들눈에 웃길지 몰라도, 그걸 굳이 막겠다고 나선 니들도 웃기다 참.

우선 알겠다고 하고 몇걸음 내딛다가 다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그 뒷켠의 화단. 물기없이 부석부석한 흙에서

비실대고 있는 꽃들이 안쓰럽다. 호스가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저런식으로 물을 뿌려주고 있었지만 글쎄..축 쳐진채

잔뜩 목말라보이는 저 꽃의 뿌리까지 촉촉하게 젖어서 꽃잎이 팽팽해지려면 한참 걸리지 싶다.

근데 이 꽃...한국에서도 많이 봤던 거 같은데, 이름도 알았던 거 같은데 영 기억이 안 난다.

꽃에 대고 사진찍는 것도 못마땅했나보다. 여기까지 다시 쫓아나온 보안요원, 오늘은 아침부터 보안요원하고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숨바꼭질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엔 짜증을 낸다. 자꾸 이러면 카메라를 검사해서 사진을 다 지워

버리는 수가 있댄다. 나도 대체 왜, 왜 꽃이나 나무도 못 찍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게 규정이랜다. 호텔, 공공건물을

촬영하는 게 금지되어 있다나. 사실 카메라를 검사하겠다는 으름장에 살짝 쫄아있던 상태였는지라, 고분고분 말을

듣기로 했다. 카메라 안에는 이들 왕의 초상화도 담겨 있는데 행여 걸리면 어찌되겠다 싶어서.


그래도 이대로 들어가긴 따땃한 사우디의 아침햇살이 너무 아쉽다. 호텔 안의 에어컨 바람에 질린 참이었다.

알 파이잘리야 타워 쪽 아침 풍경을 한번 돌아보았더니, 이번에는 타워 위쪽에 있는 구 형태의 조형까지 뚜렷이

보인다. 그리고 발톱처럼 유선형으로 건물을 타고 오르는 곡선의 실루엣도 선명하다.

메리어트 리야드 호텔 옆에 이어지는 정원, 그리고 부속건물들. 이건 대체 무슨 건물인가 싶어서 크게 호텔 주변을

돌아보기로 맘먹었다. 호텔보다 화려하고 얼마 되지 않은 새 건물 같은 게, 뭔가 특별한 용도가 있지 싶었다.

알고 보니 허무하다. 메리어트에 딸린 bodyline Health Club & Spa랜다. 사우디의 부유층들은 운동량이 정말

얼마 안 된다고 한다. 당뇨 등 성인병이 만연해 있고 양고기 등 기름진 음식에 대한 경계심도 없는 데다가, 따로

운동을 해서 건강관리를 해야겠다는 의식도 없는 탓이라고 하는데 여긴 장사가 될런지 모르겠다. 아직 한국같은

'웰빙' 바람이 불어닥치지 않은 무풍지대, 사우디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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