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릿의 수산시장, 바다에 바로 접한 대로의 반질거리는 대리석 위로 생선 비린내가 바다향기를 짙게 풍긴다.

 

 

이 곳에 풍부한 해산물들, 그 중에서도 집게 달린 이 새우로 만든 요리들은 뭘 먹어도 맛있었던 듯.

 

 

바다를 옆으로 끼고 걸어가는 길,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거대한 옛 궁전에 기대어 지어진 까페와 주택들을 바라보며

 

바다냄새 나는 손가락으로 기타를 튕기던 아저씨는 잠시 그늘로 숨어들었다.

 

 

이 곳에 보이는 벽들은 모두 디오클레티아누스 왕궁의 남쪽 벽면이다. 폐허로 남겨진 곳에 사람들이 모여살기를 몇백년.

 

 

이제는 이런 쌍둥이 꼬맹이들도 보라색 옷 때깔 맞춰입고 찾아올만큼 유명한 유적지로 남았다.

 

 

거의 이천년이 다 되어가는 로마황제의 거대한 개인 궁전, 한참을 버려졌던 이곳엔 이제 유리창도 에어컨도 끼워맞췄다.

 

 

성의 동쪽 외벽에 기대어 펼쳐진 재래시장에선 올리브유니 꿀이니 채소니 과일이니 온갖 것들이 주섬주섬 펼쳐졌고.

 

샘플 하나씩을 뚜껑에 달고서 갖가지의 크기와 색깔과 모양을 뽐내는 단추들.

 

꽃이 무척이나 화려하다 했다. 알고 보니 꽃 위에다가 락카를 뿌린 건지 어쩐 건지 퍼렇게 뻘겋고.

 

비닐로 몸을 둘둘 대충 감아둔 돼지 서너마리가 통으로 매달린 정육점.

 

 

 

그리고 머리까지 고스란히 붙은 채 생전의 모습과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닭고기들. 이건 설마..채식을 유도하는 고도의 장치?

 

 

색색의 바지들과, 과하게 가슴과 엉덩이를 튕겨낸 마네킹들. 허리에서 에구구 소리나는 것만 같다.

 

핏물처럼 붉은 과즙이 흐르던 블러드 오렌지.

 

 

그리고 다른 곳보다 좀더 많이 허물어진 성벽을 바라보고 선 성당 하나.

 

예수의 12길이 굉장히 강렬한 색감과 필치로 그려진 인상적인 모습들을 한바퀴 둘러보니 마음이 써늘해졌다.

 

아마도 옆가게로 수다떨러간 주인아주머니 대신 노상의 꽃가게를 지키고 선 고양이 두마리. 한마리는 벌써 지겨운지 기지개다.

 

 

 

네모 반듯한 왕궁의 외벽을 따라 바깥 풍경을 한 바퀴, 벌써 남문과 동문을 지나 북문으로 향하는 참이다.

 

 

그리고 북문에서 만난 마법사 같은 차림의 거대한 동상 하나. 10세기 크로아티아의 주교였다는 닌스키의 동상이라나.

 

 

라틴어 대신 크로아티아 어로 예배를 보도록 했던 그의 의도에는 무심한 관광객들은, 문지르면 복이 온다는 그의

 

엄지발가락만 반질반질거리도록 쓰다듬고 떠나버렸나 보다.

 

스플릿의 구시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왕궁을 굽어볼 만큼 거대한 그의 모습, 그리고 저 역동적인 어깨와 손가락 놀림은

 

왠지 모를 위압감을 전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표정도 너무 진지해보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벽을 따라 돌면서 발견했던 가장 흥미롭던 장면 하나는 이 클래식 포크스바겐.

 

양쪽 어깨에 높은 건물을 올려둔 좁다란 골목 안에 짙게 배인 그늘을 벗어나던 샛노란 차로 향한 카메라를 의식했다.

 

문득 멈추더니, 다시 슬슬 뒤로 후진해서는 촬영할 준비를 하라며 손짓을 한다. 빵 터져서 웃고는 오케이, 손짓하니

 

살금살금, 대리석을 즈려밟으며 한바퀴 한바퀴 우아한 워킹. 양팔을 쭉 뻗어 하트 한번 그려줬더니 그쪽 역시 빵 터졌다.

 

포즈를 취하기 전 자기들끼리 뭔가를 이야기하며 편한 표정과 포즈를 지은 채 웃고 있던 모델들.

 

모델들이 서 있는 앞으로 카메라폰, 똑딱이 카메라, 대형 DSLR에 이르기까지 렌즈를 겨눈 사람들.

 

모델인지 관계자인지 아님 그저 일반인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남들이 찍으면 덩달아 불을 뿜는 카메라.

 

오랜 시간 마네킹처럼 얌전히 포즈를 살짝살짝 취하는데도 옷매무새는 곧잘 헝클어지나보다.

 

무대 뒷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델. 깔끔하고 화려한 무대 위에 선 모습과는 다른 느낌으로 쓰레기봉지 옆 뒷문을 지난다.

 

붙인 속눈썹과 서클렌즈로 고문당한 눈이 시뻘겋게 핏발이 서고, 입술 끝은 안간힘을 쓰며 올라가 있었다.

 

무대에서 내려와 다음 선수와 교체할 때의 후련한 표정이라니.

 

새로 무대에 서는 모델들은 신선한 에너지를 담뿍 담아 바톤 체인지.

 

아무리 그래도, 높은 굽 위에서 꽃장식을 이고지고 뭇 사람들의 시선과 대항했을 그녀들 참 대단하다.

 

그 와중에 이렇게 의자에 앉아서 살짝 자세를 풀어주는 모델도 있고.

 

누군가는 카메라 삼각대 다리만큼이나 여릿한 다리를 번갈아 꼬며 아픈 다리를 달래고 있었고.

 

누군가는 하품을 억지로 참는 듯, 충혈된 눈을 천천히 깜빡거리며 자꾸 찌르는 속눈썹을 달래보는 거 같기도.

 

어정쩡한 높이의 딱딱한 의자에 살짝 엉덩이만 걸친 채 높은 힐의 뾰족한 두 개 기둥에 실린 몸무게.

 

그러고 보면 기자재전 안에는 남자 스탭조차 찾기 힘들었던 거 같다. 온통 여자 여자 여자. 그것도..

 

장비에 관심이 있는 건지 아니면 모델에 관심이 있는 건지, 아님 그저 모델을 상대로 사진찍기 연습인지.

 

모델들이 세 방향으로 세워놓고는 벚꽃나무 모양의 무대는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어지럽진 않으려나.

 

당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놓은 모습에 눈이 갔다가도, 아무래도 이런 무대 뒤의 모습들,

 

남몰래 깜빡이며 속눈썹을 밀어낸다거나 구둣발 속 발가락을 꼼지락댄다거나 하는,

 

그녀들의 고충이나 인간적인 모습에 더욱 눈길이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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