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 희뿌연 하늘이 계속되더니 끝내 펑펑 눈이 내렸다.

 

진눈깨비처럼, 혹은 쌀가루처럼 휘몰아치는 눈이 내리고, 시커먼 기와지붕위에는 하얗게 줄이 그어졌다.

 

 

 

 

두 명의 남자, 두 명의 여자가 있다. 그리고 첫눈에 반한 네 개의 사랑이 있다.

 

 

#1. 첫번째 남자. 사랑이란 '상대'라는 책을 남김없이 읽고 이해하 것이라 믿는다.

 

우선 쥬드 로가 연기한 댄. 그는 자신이 매력있다는 걸 아는 남자다. 처음 만나는 여자에게 자신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발산하고 상대를 끌어내는 방법을 아는 사람. 그에게 포섭된 건 두 명의 여자였다. 먼저 그가 손에 넣고 싶다 생각한 건

 

앨리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발판삼아 만나게 된 안나. 두 명의 여자 사이를 진동하며 그는 자신의 소유욕을 한껏

 

채우려 든다. 맞다. 그의 사랑은 소유욕의 형태를 띈다. 상대에 대한 자신의 관대하고 진실한 사랑을 과시하려 들면서

 

상대가 자신에게 완전히 무장해제한 채 앞에 설 것을 요구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마음 밑바닥까지 검열하고

 

타인의 흔적을 지우거나 공유하려 한다. 감내할 수 있을까. 그녀, 그리고 그가.

 

 

때로 그렇다. 끝내 견뎌내지 못할 '진실', '진심'을 알고 싶다며 지나간 사랑 이야기를 채근하거나 옛 애인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어보는 불퉁맞은 심술이 있다. 그게 심술을 넘어 내 안의 불안감과 결벽증으로 발전한다 싶을 때도 있다.

 

우리의 사랑이 아름답기 위해서, 완전하기 위해서는 마치 백퍼센트의 순금을 정련하듯 당신과 나의 마음 속에서 티끌과

 

부스러기들을 모두 쓸어내야 한다는 강박이다.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이 맹렬히 불붙었을 때,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쌍끌이 어선으로 샅샅이 긁듯이 읽어내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의 발현이기도 하다. 상대를

 

사랑한다는 게 상대를 남김없이 알아야 한단 건 아닌데, 사랑을 시험에 들게 하는 무모한 짓을 벌이고 말았다.

 

 

 

#2. 두번째 남자. 사랑이란 적당한 스킬과 경험치로 쌓아올려진 섹스와 비슷한 것이라 믿는다.

 

클라이브 오웬의 래리. 그는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 남자다. 어떻게 해야 여자가 웃을지, 어떻게 해야 여자를

 

안심시킬 수 있을지, 그리하여 어떻게 해야 여자가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남자를 연기할 수 있는지 아는 남자다.

 

그렇게 댄으로부터 안나를 끝내 되찾아오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는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 척,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 척 하지만 정작 앨리스가 그녀의 본명을 말할 때조차 그 진심을 읽어내지 못한다. 사실 안나를

 

되찾아 온 것도, 안나의 마음을 읽어서라기보다는 같은 남자인 댄의 조바심을 읽고 상처를 예비했기에 가능했던 거니까.

 

 

아는 척 하는 남자. 선수인 척 하는 남자들, 그리고 여자들이 꽤나 있다. 연애를 많이 해봤다느니, 이럴 땐 이렇고

 

저럴 땐 저러면 된다는 식의 일반론들. 전부 시덥잖다. 래리가 그런 재기발랄한 몇 마디 말들로, 시의적절한 이벤트와

 

감동을 안길 수 있는 멘트로 상대의 마음을 얻었던 건 잠시뿐, 그조차 상대의 마음 깊은 곳은 미동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 허랑한 지식이니 얕은 경험 따위를 양손에 쥐고 요리할 수 있는 상대란 없는 거다. 래리에게 부족했던 건 뭘까,

 

그는 여자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려고 한 게 아니라 아는 척 연기했던 거 아닐까. 그가 집착하는 '섹스'를 위한 지름길이라

 

여기며 스스로 감탄할지 몰라도 그의 옆에 남은 여자, 안나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3. 첫번째 여자. 사랑이란 자칫 방심하면 자신이 다치는 불, 어느때고 꺼버릴 준비가 필요하다 믿는다.

 

나탈리 포트만, 그녀가 연기한 앨리스 혹은 제인. 그녀는 누굴까. 그녀는 댄을 진짜 사랑했을까, 래리도 사랑했던 걸까.

 

뭐 하나 쉽지 않다. 그녀의 이름. 왜 본명을 숨겼을까. 그저 순간의 장난이었을지도, 잊고 싶던 과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 잘 있어"라는 말로 상대가 더는 말도 못 붙이게 하고 떠나버린단 말. 어떻게 그렇게 모질 수 있을까.

 

그건 흔한 말로, 이전 사랑의 상처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은 그냥 그녀만의 사랑법일 뿐인지도 모른다. 댄에게 그녀가 이별을

 

선언할 때는 이 말을 덧붙였었다. '난 평생 널 사랑하려 했는데.' 진심일 수도 있었을 거고, 혹은 미안함의 발로였을 수도.

 

진심이라기엔 끝내 숨겼던 그녀의 본명이 걸리고 '진실'을 강요하는 댄의 익숙한 유치함을 참아주지 않은 게 걸린다.

 

 

문득 비약일지 모르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사랑에 빠지길 겁내고 있는 건 아닐까. 언제라도 한발 뒤로 뺄 구석은 남겨두고,

 

본명 뒤로, 사랑하지 않는단 야멸찬 선언 뒤로 숨을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남자와 희롱하거나 댄과 이야기할 때의

 

그녀는 사랑을 비웃고 쿨한 척 굴지만, 그건 일종의 징후다. 그녀는 분명 사랑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 영리한 척 어리숙한

 

남자 둘보다 훨씬 더. 첫눈에 반한 사랑이 숙명이라며 안나와의 '바람'을 정당화하려는 댄에게 그녀가 한 말, '사랑은 순간의

 

선택'이란 말의 노회함이라니. 그렇지만 정작 그녀야말로 사랑을 많이 아는 만큼 겁내게 되어버렸고, 끝내 뜨뜻하게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사랑만 취하고 떠나는 사람이 된 건 아닐까. 여전히 마음은 시리고 문득 눈물로 무너져내릴지언정.

 

 

 

#4. 두번째 여자. 사랑이란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면 그뿐, 운명이라 믿는다.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안나. 그녀가 댄과 래리 사이에서 진동하는 것을 보고 살짝 답답증이 일었던 것은, 대체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 건지 분명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댄에게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을 느꼈으며, 또한 래리에게서

 

또다른 매력과 호감을 느꼈다. 어떤 걸 사랑이고 어떤 건 사랑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약간은 도발적이고 위태로운

 

관계, 그리고 편안하고 안정적인 관계로부터 비롯했을 뿐 두 가지 모두 사랑이라 하면. 그녀는 자기 앞에 놓인 두 개의

 

사랑 중에서 무엇을 택하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그저 둘다 갖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데 혐의를 두는 게 낫겠다.

 

 

어쩌면 그녀는 앨리스(혹은 제인)와 정반대의 애정관을 가진 인물, 그녀에게 사랑은 순간의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레

 

다가온 운명이며, 감히 먼저 거부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운명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렇게 두 조각난 자신의 세계를

 

가까스로나마 보호할 수 있을 거다. 댄의 세계와 래리의 세계, 두 세계가 합쳐져야 그녀에게 완전하니까. 그 두 세계

 

어디에도 완전히 투신할 수 없는 그녀, 선택을 강요받는 지경에 이르러 댄이건 래리건 누군가의 옆에 머물게 되었지만

 

이미 그녀는 조각난 세계 앞에서 자신의 사랑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                                                             *                                                           *

 

그래서, 두 명의 남자, 두 명의 여자가 만들어낸 네 가지의 사랑이야기는 모두 비극이다. 그게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른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다 믿어지던, 혹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누군가를 향해 열었던 마음이었던, 결국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방식의 사랑을 쌓아올리다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사랑이 어디에 이르러 하트 모양의 공을 터치다운해야

 

비로소 성공하고 완성된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모든 건 사랑에 빠지기로 '순간의 선택'을 하고 나서 '당신'이라는 거대한 블랙박스 앞에서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지식과 지혜와 경험치를 살려서 그 드문드문한 신호들을 해독해 보려 애쓰면서부터 예정된 비극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침묵이, 당신의 웃음이, 당신의 손짓이 가진 알 수 없는 뉘앙스와 의미에 겁먹지 않고 내게 친숙하고 익숙한

 

것으로 바꿔보려는 시도는 대체로 오해와 균열을 낳고 만다.

 

 

사랑을 한다는 건 서로 완강히 뻐팅긴 채 멀어지려는 직선 두개를 잡아매두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한땀한땀, 두꺼운 무명실을 대바늘에 꿰어 직선 두개 허리춤에 둘둘 묶어서 촘촘하게 바싹 붙여두는 식이랄까나.

 

그건 시지프스의 신화에 비견될만큼 지난하고 고단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어쩌나.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게 사실이고

 

사람이 사랑없이 살 수 없는 게 사실이라면, 허리춤이 아니라 속고쟁이라도 잡고 늘어져야지.

 

 

왠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소라의 노래 가사 한 대목이 떠오른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바람이 분다, 2004)

 

네 명의 사랑 이야기가 비극적이란 점에서 이렇게도 한결같을 수 있구나, 싶어서일까. 또 이야기의 처음과 끝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구나, 싶어서일까. 또, 결국 Hello, Stranger로 시작한 영화가 Bye, Stranger로 끝나는 거 같아서일까.

 

 

영화는 짧았지만 생각이 한없이 늘어진다. 한번 보고, 다시 또 보고, 그러고 나서도 할 말이 정제되지 않아 이렇게

 

길어지다니. 영화의 여운도 여운이지만 노래 탓도 크다. 요새 잠들기 전 꼭 한번은 듣고 잠드는 노래.

 

 

 

 

 

And so it is
Just like you said it would be
Life goes easy on me
Most of the time
And so it is
The shorter story
No love, no glory
No hero in her sky

당신이 말한 대로 되어 버렸죠.

대부분의 시간, 나는 인생을 편하게 받아 들이게 되었죠.

그건 아주 짧은 이야기죠.

사랑도 없고, 영광도 없고,

그녀의 하늘에는 영웅도 없는,

짧은 이야기..


I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당신에게 눈을 뗄 수가 없어요.

당신에게 눈을 뗄 수가 없어요.


And so it is
Just like you said it should be
We'll both forget the breeze
Most of the time
And so it is
The colder water
The blower's daughter
The pupil in denial

그래요.

당신이 말했던 것 처럼,

대부분의 시간에는

우리 둘 다 그 소문들은 잊어야 할 거예요.

그래요.

차가운 물.

허풍쟁이의 딸.

부정하는 눈동자..


I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당신에게 눈을 뗄 수가 없어요.

당신에게 눈을 뗄 수가 없어요.

 

Did I say that I loathe you?
Did I say that I want to
Leave it all behind?

당신이 싫다고, 내가 얘기 했었나요?

내가 말했었나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떠나 버리고 싶다고..


I can't take my mind off of you
I can't take my mind off you
I can't take my mind off of you
I can't take my mind off you
I can't take my mind off you
I can't take my mind..
My mind...my mind..
'Til I find somebody new

내 마음을 당신에게서 뗄 수가 없어요.

내 마음을..내 마음을..

새로운 누군가를 찾을 때 까지는요.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개성시 초입에 있는 봉동관이라는 음식점이었다. 얼마전까지는 이 곳의 유일한 북한식

고급 음식점이었지만, 평양관이라는 곳이 근처에 문을 열면서 독점 체제가 깨졌다고 했다. 그 이전에 비해서

서비스하는 게 훨씬 부드러워지고 친절해졌다는 짧은 촌평도 곁들여졌는데, 실제로 내가 겪은 바에는 참 친절했던

것 같았다. 한층짜리 건물 외양만 봐서는 마치 시골 어디메쯤에서나 쉽게 볼듯한 콘크리트 벽돌로 설렁설렁 지어진
 
어설픈 가건물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나간 건물 전면에 내걸린 저 간판, 자칫 머리가

부딪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야트막하다.

일행들과 함께 조그마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상해에서였던가 북한에서 운영하는 옥류관을 갔을 때랑 비슷한

분위기의 홀이 옆에 있고 그 앞켠엔 무대도 있는 듯 했지만, 우리는 8명이 겨우 자리잡아 서빙을 받을 만큼의

자그마한 방으로 들어갔다. 무대가 있는 홀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했지만, 사실 난 '반갑습니다'라거나 '휘파람'류

노래와 연주가 이어지는 그 공연은 이미 봤었기 때문에 그냥 북쪽에 와서 일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조용하고 밀폐된 방도 좋겠다 싶었다.


서빙되기 전에 화장실에 가서 손부터 씻으려는데, 남위생실/여위생실, 이렇게 명패가 붙어있었다. 마치 대학가의

허름한 주점에 달린 화장실같이 삐그덕대는 얄팍한 문짝으로 가리워진 그 내밀한 공간.

그러고 보니 자꾸 각지의 화장실 사진을 올리게 되는 듯 한데, 개성서 둘째간다면 서러워할 이 봉동관의 자그마한

화장실 모습.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거울이나 세면대 같은 것 하나 없고 그냥 물도 내려가지 않는

소변기 하나, 그리고 옆에 수도물이 나오는 호스 하나.

여러 메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인당 30달러짜리 식사를 하면 우선 술이나 음료가 나오고, 몇가지 음식이

연이어 푸짐하게 나오고, 그리고는 평양냉면이나 쟁반냉면을 마지막으로 서빙해준다고 한다. 물도 새 병인듯한

이 '고려 신덕산 샘물'의 마개를 따서는 따라주었다. EVAIN이니 FIJI니 외국물을 마셨을 때 느껴지는 다소 생경한

뒷맛이나 목넘김과는 달리 부드럽고 시원했다. 제주삼다수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술은 백두산들쭉술이니 뭐니, 꽤 종류가 많다고 했지만 괜히 술먹고 실수하지 말자고 음료수를 달라고 했다.

음료수라고 하니까 잘 못알아듣는 것 같아서, 이쪽 공장에서 오래 일하신 분이 다시 주문했다. 단물주세요.

그러니까 나온 '대동강 사과 탄산단물', 탄산의 느낌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고 노란색이었는데 꽤 맛있었다.


음식은 꽤나 여러가지가 나왔다. 녹두전, 소꼬리찜, 오리구이, 닭백숙, 잡채, 양고기 볶음. 우리를 전담하던 '접대원

동무'에게 양고기나 이런 식자재는 어디서 조달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모두 북한산이라고 한다. 북한은 양을 곧잘

키우고 있다고 했다. 거기에 도라지무침, 김치 등 밑반찬도 푸짐하게 나와서 배부르도록 먹었지만, 마지막에 나온

평양냉면은 끝내 남기고 말았다.


30달러짜리 식사면, 공단에서 일하는 공원들의 반달 월급인 셈이다. 그렇게 애초부터 살짝 불편한 마음으로 앉았던

자리였던데다가 테이블 위로 가득 펼쳐지는 음식들을 보면서 더욱 맘이 불편했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한

사람이 그득한 이곳 북한땅에서 이렇게 호사로운 밥상을 받아들고는 얼마 먹지도 않고 깨작대다가 남긴다는 건..

아침을 못 먹고 서둘러 나왔던 탓도 있었지만, 그런 마음이 쿡쿡 찔러왔기에 약간 무리를 하면서까지 먹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이 쪽의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고 닝닝하다고 얘기도 한다지만,

난 외려 그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땡기기도 했다.

나오는 길에 '접대원 동무'한테 여기 맥주는 무슨 맥주가 있는지 물어봤더니 한켠에 놓인 냉장고를 보여준다.

대동강맥주. 맛을 못 보고 돌아가는 게 아쉽긴 했지만, 일단 어떻게 생겼는지라도 알아놨으니 담에는 꼭 맛보기로

했다.

'접대원 동무'. 보통 어떻게 불러야 하냐는 질문에 그렇게 부르라고 한댄다. 사진이 실물보다 못 나왔지 싶은데,

우리는 김민희 살짝 닮았다느니 이영아 닮았다느니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이자 모델이라고 하니, 그때까지 아저씨들의 얄궂은 농담들을 능란하게 받아넘기며 얼굴색 하나 안 변하던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좋아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일하는 '접대원'들은 상해나 북경에 있는 옥류관으로

순환하며 일하는 것 같은데, 다들 출신성분도 좋고 예술학교를 나와 노래나 악기에 모두 능숙한 솜씨를 보인다고

했다. 게다가 20대 초반 정도의 나이임에도 천연덕스럽고 센스있게 사람들의 말을 받아치거나 받아주는 그 밀고

당기는 감각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일행 중 한 분이 계속 이 아가씨와 사진을 한장 찍자고 조른 덕분에, 그 사진을 찍어준 나 역시 이렇게 한 장 같이

찍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손도 꼭 잡아주셨던.ㅋ


'접대원'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남한 토양에서 뱉는 순간 상당히 불건전한 느낌으로 변하고 마는 것 같다. 그런

같지만 다른 단어의 뉘앙스를 악용했던 사례가 바로 2006년쯤엔가, 당시 열린우리당 당의장이었던 김근태의원이

졸지에 '북측 접대원과 춤을 추는 추태'를 부렸다고 보도되며 '개성공단 춤사건'으로 비화되었던 것이다. 그

장소가 바로 여기, 봉동관이라고 했다. '북한처자와 춤을 춘 좌파세력의 총수'라고까지 매도하는 극우세력들의

선정적인 비난은 당시 핵미사일 발사직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점에서 일부 심적으로 이해는 간다고 해도,

앞뒤맥락 끊어놓고 '북측 접대원'이라는 단어를 설명없이 모호하게 방치하는 건 너무 악의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공연을 구경하는 사람중 연장자나 좌장 격으로 보이는 사람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잠시나마 함께 율동을

하는 건 흥을 돋우기 위해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라고 한다.


어쨌든 불과 1-2분, 앞 무대에서 노래부르며 춤추던 북측 '접대원'의 채근에 못이겨 춤추는 시늉을 했던 그는

보수세력의 십자포화를 맞았고, 유력한 대선후보에서 급전직하하고 말았으니..

봉동관을 떠나 길가로 내려서는 계단에는 그간 내린 눈이 조금 쌓였다. 쌓였다기보다는 살짝 얹혀있다는 느낌이

더 강할 정도로, 그렇게 얄포롬하게 내려있었다.

아마 저 왼쪽에 있는 길을 계속 가면 개성 시내로 들어갈 수 있나보다. 원래 개성공단 내에 있는 모든 교통표지판엔

서울 방향과 개성 방향이 표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그 글자들이 파란 페인트로 지워져 버렸고,

남아있는 표지판이나 버스 정류장 표지에는 '현대아산', '관리위원회' 등의 공단 내 지명만 남아버렸다고.


아마 교통표지판에 있는 '개성'과, 특히 '서울'이라는 글자가 계속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지 않을까 겁났던

게 아닐까 싶다. 이쪽 방향으로 조금만 쭉 가면 서울이 나오는구나, 그리고 저쪽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개성시내가

보이겠구나. 이런 자각이 언제든 동토를 뚫고 싹을 틔울 수 있을 테니.

다시 본공장으로 돌아가는 길. 차창에 내려앉은 눈발은 금세 물방울로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차에 내려앉은 눈방울들이 금세 녹아버리는게 차내의 온도때문이라면, 정말 이렇게 초록색 솔잎위에 내려앉은

눈발이 녹지도 않고 가만히 쌓여있는 건 살짝 경이롭기도 하다. 눈이 녹지 않을 만큼 차가운 온도로 저 초록색

싱싱한 솔잎의 체온이 내려가 있다는 건데, 용케 얼지도 않고 잘 버티고 있는 셈이니까 말이다.

아까는 스쳐지나갔던 것들이 조금씩, 배가 빵빵하게 불러버린 내 눈에 들어왔다. 라인마다 한 개씩 위에 달려있는

저 금일목표, 현재목표, 현재실적을 나타낸 안내판. 비록 찰리채플린은 모던타임즈에서 저런 단순 제조작업을

풍자하기도 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조업을 경원시하기는 하지만, 사실 일자리 창출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제조업을 살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괜히 금융선진화니, 대규모 토목공사니 할 게 아니라..

그렇다고 저런 목표량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이나 삶이 위협받아서는 안 되는 건 당연하다.


애초 개성공단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남북간의 관계가 계속 진전하고 호전되기만을 바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남북관계가 점차 발전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통제가 점차 완화되고

숙련공이 자유롭게 다른 직장으로 옮겨다닐 수 있다거나 임금인상과 복리후생 등의 측면이 불거지게 되면,

저임금의 이점을 바라보고 개성에 들어갔던 기업들의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남북관계의 현상유지를 내심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며, 그게 전진이던 후퇴던 너무 급박한 움직임은

원치 않고 있다는 건 확실한 거 같다. 지금이야 어쨌든 북쪽에서 정한 최저임금선에 맞춰서 노임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매년 5% 상당의 일률적인 임금상승도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 상황인 듯.

해서, 남과 북의 관계 개선을 견인하는 여러 행위자 중에서 이렇게 북한 측에 이해관계를 가진 남측 기업인들은

점차 보수화된 입장을 표명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흔히 북한의 글씨체는 왼쪽의 저런 힘있고 전투적인 필체, 게다가 빨간 색과 검은 색이 장렬하게 섞여있기 쉽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오른쪽에 보이듯 저렇게 단정하고 힘뺀 글씨를 쓰는 사람도 북한에는 있는 거다.

아까는 제대로 귀기울여 듣지 않았지만, 여유있게 한바퀴 다시 돌아보면서 계속 가사를 분별해내려고 애쓰며

듣게 된다. 작업장 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는 마치 군가 풍의 씩씩하고 감정이 과잉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는데, 중간중간 장군님 어쩌구, 승리 어쩌구 하는 가사가 들렸던 거 같다. 북한의

대중가요 같은 거 아닐까 싶은데, 노래하는 아저씨나 아가씨나, 금방이라도 감격해서 울어버릴 거 같은 목소리다.

작업장과 사무실 공간을 구획하고 있는 낮은 파티션. 앞에는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 포스터 안에서 전지현이

화려한 외모와 모션, 그리고 옷차림을 과시하고 있었고, 뒷켠에는 하얀 머릿수건에 하얀 작업복, 주홍빛 앞치마를

두른 여공원들이 열심히 옷을 만들고 있었다.

청소를 깨끗이. 청소조로 짜여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면 참 재미있었다. 아까 봉동관에서

양념을 많이 한 음식 먹으면 건강에 안좋다고 한마디하던 '접대원' 아가씨에게도 느꼈던 거지만, 이곳은..그리고

이곳의 사람들은, 마치 30년 전쯤의 한국과 같지 않을까 싶다. 우리 할머니또래의 이름들, 할머니또래의 입맛..

그렇지만 우리처럼 (아직은) 팽팽하고 젊은 사람들.

그렇지만 또 자주 개성공단을 왕래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이곳에서 일하는 여공원들의 화장이 갈수록

짙어지고 화려해지고 있다고 하니, 이곳의 시간은 어쩜 우리네 경제가 압축성장했듯 그렇게 압축해서 총알처럼

흘러버릴지도 모르겠다.

2시 30분, 출경할 때처럼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들이 북한군 차량의 인도를 기다리고 있다. 혹시나 해서 살짝

켜본 네비게이션에서는 노이즈 섞인 한국TV 방송이 볼만하게 나오고 있어서 깜짝 놀랬다. 정말 이렇게 가깝구나.


북한을 벗어나기 전에도, 들어올 때와 똑같은 절차를 밟았다. 금속탐지기와 검색대를 지났고, 아까 들어올 때

삑, 소리를 유발했던 코트의 금속 쇠붙이는 또다시 삑, 소리를 내고 북한군인 아저씨의 이목을 끌었다. 북측에서

발부했던 출입증은 반납했고, 내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은 끝에서 끝까지 샅샅이 검사당했다. 군인아저씨가 직접

카메라를 쥐고는 사진을 한장 한장 빠르게 넘겨가며 매서운 눈매로 체크를 했다는 사실. 혹시 뭔가 꼬투리를

잡지는 않을까, 나도 모르게 뭔가 이상한 게 찍혀있는 건 아닐까..예측할 수 없는 위협이 언제고 머리를 쳐들 수

있다는 생각에 은근히 긴장했었지만 별탈없이 넘겨받았다. 하기야, 출입국으로 오면서 몇차례나 샅샅이 찍은

사진들을 확인했었고, 스스로 쫄아서 지워버린 사진도 적지 않았으니까.

개성공단 지구를 벗어나는 길에 세워져 있는 저 커다란 붉은 별이 박힌 바리케이트. 어렸을 때 똘이장군이니 뭐니

반공만화 드라마에서 보았던 북한군인들은 모두 머리위나 가슴팍에 커다란 붉은 별을 달고 있었다. 그것도 왠지

음흉한 느낌을 주는 붉은 색이었거나, 좌우지간 이뿐 빨강이라는 느낌은 전혀 안 들었던 거 같다. 근데 솔직히

군복은 북한 군복이 좀더 이뿐 거 같은데. 소련과 중국의 대륙식이랄까, 그런 군복과 유사한 느낌으로.

유리창 너머 보이는 전면의 커다란 송전탑. 저 탑을 통해 무려 15만여 볼트로 내달리며 남측의 전력이 북측의

개성공단으로 공급되고 있는 거다.


아까 그 봉동관에는 이 전기가 공급되는 게 아니겠지? 밥먹는 와중에 세네차례나 전기가 끊겼더랬다. 갑자기

형광등이 꺼져버리고 주위가 조용해지는 순간, '접대원'이나 이곳에 오래 머물렀던 분들은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이었지만 난 정말 개성의 전력수급이 이렇게 열악하다는 걸 체감하고 깜짝 놀래버렸다. 개성은 북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도시인데, 실제 하루에 전력이 들어오는 시간은 네다섯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비무장지대를 건너, 자유의 다리를 건너면서 계속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어쨌든 지금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거고

지금 사진을 찍던말던 북측에서 어떻게 제재할 방법이 있겠어, 그리고 남측에서도 그렇게 빡빡하게 나오겠냐라는

생각을 했지만...어쨌든 북한 지역은 벗어나기로 했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라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게다. 북측과 남측의 구역을 식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선도로를 따라 함께 늘어선 가로등

중간쯤 꿰어진 저 플라스틱 링을 보면 알 수 있다. 남측 구역은 노란색 링을 끼고 있고, 북측 구역은 파란색 링을

끼고 있는 거다. 실제로 이 사진을 찍은 건 비무장지대를 한참 지난 후의 일.

입경하는 코스는 북한에 들어갈 때와 비교하면 훨씬 간단했고, 훨씬 부드러웠다. 아까 카메라 검사받을 때 한번

크게 풀린 긴장감은, 일렬로 마치 장송행렬하듯 천천히 전진하던 자동차 대열에서 벗어나 남측 출입사무소에서

일단 내리면서 다시금 완전히 해제되었다. 그러고 보니 입경, 표지판에는 한자와 영문이 모두 병기되어 있다.

왠지 그 밑에 웰컴 투 코리아 혹은 웰컴 백 투 코리아, 이런 거라도 적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지만, 또한 금세 내가 개성을 갔다왔고 북한땅을 밟았다는 사실이 꿈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혼란한 느낌도 들었다. 이건 너무 가까운데, 너무 다른 세상이었다.


저녁때 종로에서 가볍게 술한잔 마시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으레 그렇듯 떠들썩하게 와 하고 퍼지는 웃음소리와

시끌벅적한 붕붕 떠있는 분위기. 개성에서 첫눈을 맞았던 나는, 서울에도 첫눈이 왔다는 사실을 여기 와서야 알게

되었다. 난 오늘 하루 어디를 다녀왔던 걸까 싶었다. 차로 불과 한시간 거리면 그렇게도 비슷하고 닮은 사람들이

참 다른 세상을 감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이다지도 낯설고 모를 뿐더러 무관심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 너무나 놀라운 건데..아무리 놀라운 것도 반세기가 넘으면 그저 진부한 레토릭이 될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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