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제일의 철쭉군락지라는 지리산자락 바래봉,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러 5월초 황금연휴에  남원 운봉읍의 민박집을

 

잡았더니 여기를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신 거다. 부녀회장님이시기도 한 민박집 어머니의 말씀을 좇아 철쭉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도 구경하고, 떡과 막걸리도 얼콰하니 얻어먹고.

 

시골 축제 분위기를 북돋우는 건 역시 하늘 높이 떠올라있는 애드벌룬과 만국기.

 

그리고 한마리를 통으로 굽고 있는 지리산 흑돼지 바베큐, 막걸리 안주로 더할나위 없었던. 덕분에 몇걸음 걷기도

 

전에 모든 걸 다 이루어냈다는 느낌에 빠져들고 말았으니..

 

바래봉의 철쭉 군락지로 조금 올라가는 약간의 경사길에도 헥헥거리며 발걸음을 질질 끌고 말았던 것.

 

사실 철쭉이 그다지 이쁘다는 생각도 안 했었고, 무리지어 피어봐야 얼마나 볼만하랴 싶어서 별 기대가 없었는데,

 

어느 한 굽이를 지나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꽤나 장관이었다. 온통 진분홍빛의 울긋불긋한 철쭉, 철쭉.

 

 

이렇게 지천으로 흐드러진 철쭉은 그야말로 옴쭉달싹 못 할 만큼 빼곡하게 피어나서, 사람 하나 끼어 들어가

 

사진 찍을 틈새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비집고 들어갈 엄두도 못내고 앞에서 어떻게든

 

포즈를 잡아보느라 애쓰는 중이었고.

 

 

 

 

사실 바래봉 정상까지 가는 등산로도 있고, 그 길을 따라 계속 철쭉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고는 했는데 일단

 

막걸리가 올라와 더이상 걸을 수가 없었고, 또 이제 막 개화가 시작된 터라 중턱까지만 피었지 위는 아직 멀었단

 

이야기를 듣고 지레 힘이 빠져서 그냥 크게 한바퀴 돌아보고 다시 내려오는 참이다.

 

 

그런데 여기, 생각보다 잘 꾸며놨다. 조경도 잘 해놨고 오밀조밀하니 걸어서 한바퀴 돌아볼 만하다.

 

 

 

그렇게 한참을 사방의 갈래길로 쏘다니며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조금 취기가 진정되고 나서야 하산. 본격적으로

 

지리산 둘레길 2코스를 시작하는 것으로.

 

 

 

광화문 인근을 지날 때마다 늘 맘속 한켠에 머물던 산, 인왕산. 온통 바윗덩이로 이루어진 듯한 험준한 산세 때문에

 

주저하곤 했었지만 이 짧디짧은 봄철의 산을 놓칠 수 없다 싶어 전격 트레킹.

 

 

대체 철쭉과 진달래는 어떻게 구분하는 건지, 늘 이맘때면 헷갈리고 다시 찾아서 익히고, 그리고 다시 내년엔 까먹고.

 

생각보다 훨씬 금방 올랐던 인왕산 정상머리쯤. 광화문과 서촌, 북촌은 물론이고 효자동 윗자락의 청와대까지도 환히

 

보인다. 슬쩍 카메라를 그쪽으로 돌리니 어디선가 휘리릭 나타난 의경 아저씨가 '사진 찍으시면 안됩니다'라고.

 

국내지도의 해외반출이 안되는 거나 청와대 사진찍으면 안된다는 거나 참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백악관 사진 찍으면

 

안된다거나 다른 나라 정부수반이 위치한 공간에 대해서 사진찍지 말란 이야기는 듣도보도 못한 일이다.

 

그래도 물리력을 갖춘 의경아저씨가 있으니, 얌전하고도 순순하게 카메라를 돌려서 이번엔 인왕산 자락 반대편,

 

독립문쪽이랑 아마도 신촌 근방이려나. 애꿎게 사진 한장.

 

 

광화문이랑 경복궁 궁궐들이 내려다 보인다. 아마 조선시대에 인왕산에서 내려다본 한양의 전경은 꽤나 멋졌겠지 싶다.

 

날씨가 그리 좋지 않아 시계가 맑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아늑한 느낌으로 자리잡은 서울의 구도심이라니.

 

내려가는 길에 줄곧 함께한 북한산 성곽.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벽이 제법 운치가 있다.

 

그렇지만 코앞에 들이댄 풍경은 또 다르다. 키치와 오리지널이 각기 보여주는 깊이와 색감의 차이.

 

 

벚꽃잎을 풍성하게 매달았던 벚가지 끄트머리에도 비로소 새순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봄이 지난다.

 

 

 

한라산 영실 코스, 백록담을 밟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라산의 수려한 풍광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또다른

 

경로임에는 틀림없다. 내려갈 때는 어리목 코스로 내려가는 것도 추천한다지만 차를 픽업해야 해서 같은 길로 하산.

 

우리나라 유일의 고산 초원이라는 '선작지왓'. 이름만 들으면 무슨 태국 지명같기도 한데, 봄에 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이라고 한다.

 

내려가는 길에도 계속해서 돌아보게 되는 한라산 봉우리. 빠른 화면으로 돌린 듯 삽시간에 움직이는 구름이 빚어낸

 

새파란 하늘이 듬성듬성 나타나는 모습도 정말 장관이었다.

 

 

리드미컬하게 좌우로 흐트러져 있는 울타리 말뚝들.

 

그런 울타리를 무너뜨릴 듯 커다랗게 솟아오른 소원탑들. 붉고 구멍많은 한라산의 화산질 돌멩이들이 눈에 띈다.

 

 

이름 모를 들풀 앞에 무릎을 꿇고 정면으로 사진을 담기도 하고.

 

 

 

아까 지났던 자그마한 구상나무 숲길에서 사람이 전부 지나길 기다리며 바람을 느끼기도 하고.

 

 

사람들이 밟고 다니던 구멍 숭숭한 화산암에 고인 빗물이 차분히 가라앉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혼은 떠났지만 형체는 그대로 지키고 있는 주목의 잔해들이 보여주는 비감함과 당당함의 혼합물.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산중턱에는 잔뜩 짙은 안개가 버티고 있었다. 촉촉한 공기, 초현실적인 풍경.

 

제법 가파른 계단에서는 어느새 무거워진 발과 무릎을 최대한 보호하려 줄에 기대고, 심지어는 거꾸로 걷기도 하고.

 

영실 탐방로, 올라갈 때는 온통 사방을 둘러보며 설렁설렁 올랐지만 역시나 산행은 내려올 때가 힘들다.

 

그래도 선작지왓, 구상나무 숲, 영실기암과 병풍바위까지 영실 탐방로가 숨겨둔 비경들은 꼭 챙겨서 두번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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